문화의차이
분류없음 2014/06/02 12:27일하는 곳에 아시안 중년 남성 클라이언트가 왔다. 이민 뒤 조현증을 앓다가 의처증이 심해져 몇 차례 아내에게 살해위협을 가했다. 언어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벽에 글씨를 휘갈기거나 심지어 식칼과 같은 무기를 들고 위협하는 일도 있었다.
이이는 강한 엑센트가 들어간 영어를 쓰지만 쓰기도 곧잘 하는 터라 의사소통을 하는 데엔 큰 지장이 없다. 아침마다 일어나 바닥에 앉아 참선을 하고 자기 유닛을 매우 깨끗하게 관리하며 아침식사 뒤엔 공동공간을 스스로 청소하기도 해 평판이 좋다. 이이의 정신질환-형사사건 관련 자료를 읽지 않으면, 히스토리를 알지 못하면 이 남자는 그냥 평범하고 인상좋은 '이웃집' 아저씨일 뿐이다.
마지막 형사처벌의 조건 상 이이는 언제나 아내와 백미터 이상의 거리를 둬야 한다. 그 안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아내가 머무는 집에 가서는 안되고 전화, 이메일 등도 직접 해서는 안된다.
이탈리아 이민자 2세와 짝을 이뤄 일을 하는데, 정문에 어떤 젊은 아시안 처자가 나타났다. 뭔 일이니, 하고 나가보니 저 클라이언트의 딸이란다. 아빠를 위해 옷과 자전거, 그리고 엄마가 만든 콘지(중국식 죽)를 가져왔단다. 안타깝지만 나는 이 처자의 등장에 관해 들은 바가 없다. 그리고 이 남자는 자신의 신상에 관해 제3자와 소통을 해도 좋다는 중요한 서류(consent form)에 서명을 하지 않았다. 미안합니다만 댁의 아버지께서 이러저러한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으셔서 아무 것도 도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댁의 아버지께서 외출 중이라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버지의 전화로 연락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맙소사. 아버지는 전화가 없어요. 미안합니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따님이 오셨다는 메세지는 전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미안합니다.
볕이 짱짱한 더운 날, 돌아서는 처자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한국이었다면, 아니 한국인들을 대상하는 하는 에이전시였다면 잠깐 들어와서 앉으세요, 차라도 한 잔, 이런 게 가능했을까. 가능했겠지.
사달은 다음에 발생했다. 일터 건물 외곽을 비추는 CCTV를 바라보던 이탈리안 동료가 오마이갓, 왓더헥 저것 좀 봐. 발길을 돌린 처자가 다시 일터 정문을 지나는데 또 다른 젊은 처자, 그리고 중년의 한 여자와 함께 자전거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추측컨대 또 다른 젊은 처자는 큰 딸이고, 중년의 여성은 클라이언트의 아내다. 이탈리안 동료는 교활한 (sneaky) 사람들이라며 어디에 숨어있다가 나왔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한다. 게다가 피해자가 가해자를 찾아왔다면 조건적 석방 (conditional charge) 은 어떻게 되는 거냐며 만약 클라이언트가 있었다면 우리가 클라이언트를 보호할 수 없는 --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거라면서 난리부르스를 친다. 그는 여기에 없어. 그러니 그렇게 가정할 필요 없어.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시안 컬쳐에선 아주 흔한 일이야. 왜냐하면 그들은 그이의 가족이니까. 이탈리안 동료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안그래도 파리 들어가겠다 입 좀 다물어, 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 나는 클라이언트의 가족들, 특히 아내, 그 여성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가슴과 머리가 이해하는 그 간극이라고 할까. 나에게 가족이란 닿지 못할 은하계 저편에 있는 것이라서 그런가. 문화적 차이가 주는 충격을 복잡다단하게 중층적으로 거듭 확인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