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연애 중, 을 보고
분류없음 2013/07/23 14:21*
영화 '6년째 연애 중'을 유튭으로 봤다. 기억에 남는 대목은 신성록이 감기기운 있는 김하늘에게 감기약을 권하고 김하늘이 이걸 그냥 먹는다. 나로서는, 이 나라에서 몇 년 살아서 그런가, 날 것 그대로 받아들이기 다소 어려운 장면이다. 물론 둘이 아주 친하고 말도 살도 섞고 그런 사이라면 뭐,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신성록과 김하늘은 영화의 맥락 상 그런 사이까지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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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하던 곳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브로셔를 정리하다가 "바(bar)나 클럽(club)에 가서 자신의 잔을 들고 이동하라"는 안내 문구가 붙은 브로셔를 봤다. 같이 일하는 사람에게 이게 무슨 말이냐, 고 물으니 대답인즉슨, 모르는 사람이 내 잔에 정체모를 약을 탈 수도 있으니 자신의 잔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 는 것.
처음에는 세상에,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는 데구나, 내가 사는 이 도시라는 곳은. 화들짝 놀랐다. 하기사, 인도 등지를 여행하는 여대생들이 친절한 현지 남성이 권한 음료를 마시고 졸도해 성폭행을 당했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으니 뭐,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
하지만 여기에서는 "약(물)"에 관한 한 개인의 책임과 그 책임에 대한 물음도 엄밀하다. 유독 바(bar) 등지에서만 강조하는 일이 아니라는 거다. 평소에 친하게 지낸다고 해서, 그 사람이 아프다고 해서 아무 약이나 권했다가는 대략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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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얼마 전, 일하던 곳 (앞서 말한 곳과 같은 곳)에서 아침에 출근해 업무 준비를 하는데 과거에 나의 상사였던 사람이 와서 생리통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호소를 하면서 생리대를 찾았다. 나는 pain-killer가 필요하냐고 물었고 그녀는 반가워하며 있으면 달라고 했다. 나는 아침은 먹었느냐, 아침을 먹지 않았으면 머핀이라도 먹고 약을 먹으면 좋겠다, 고 했다. 그녀는 매우 고맙다면서 "네가 내 남편보다 낫다"고 하는데 그 말이 그냥 빈 말이 아니었다. 나는 가방에서 타이레놀 통을 꺼내 두 알을 주었고 그녀는 고맙다고 거듭 감사 인사를 하곤 내 방을 떠난 뒤 일자리를 찾고 있으면 돕겠다면서 내 이메일 주소를 받아갔다.
나는 그녀가 물었던 생리대만 찾아서 주면 되는 거였지만 역시 생리통으로 고생하는 사람으로서 오늘 하루를 견뎌야 할 그녀의 고통을 '짐작'했던 것 뿐이었고, 그녀 또한 나와 지속한 2년여의 시간으로 나를 신뢰했던 것 뿐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내게 빚진 것 (i owe you)이 있다고 여겼을테니 그녀 또한 짐작으로 내게 가장 급한 일자리 문제를 거론하며 이메일 주소를 받아갔으니 서로 "퉁"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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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록과 김하늘은 감기약을 주거니받거니 한 뒤로 친해진다. 둘 사이에 논리론 설명할 수 없는 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렇다고 둘이 서로 그 감기약 때문에 "퉁"치는 그런 대목은, 맥락은 그리 도드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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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차이라는 건가.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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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영화는 그냥 그랬다. 한국 영화는 몇몇 감독의 영화를 제외하곤 결말이 대단히 후지다. 김빠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같이 사는 사람의 말로는 (한국) 상업영화엔 "개입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렇다는데 이건 뭐 한두 편도 아니고 보는 영화마다 그러니 뭐랄까, 결말을 준비하고 영화를 보라는 건가. 아니면 보지 말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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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혹은 사람 사이에 오가는 "감정"이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기는 많은 것 같다. 그걸 논리로 풀기 위해 덤비다가는 불가지론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