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민주주의 2분류없음 2013/06/18 13:28 언젠가 가라타니 고진이 그의 책에서 언급한 '제비뽑기' 를 읽고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실 어릴 적엔 그 방식을 '제비뽑기'라는 그 불확실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개인의 의식과 민주주의 훈련이 천차만별인 처지에서 '뽑기'로 대장을 뽑는다면? 그 조직의 명운은 이미 볼짱 다 본 겨, 이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진정한 민주주의에서는 구성원 어느 누구라도 이른바 '지도부'를 자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은 누구라도 자임하는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에서 이러한 훈련이 가능하면 우린 누가 나를 지도한다고 할 때 그것을 지도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처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함께' 그 지도와 처분을 해나가는 게 된다. 다만 지도부를 자처하는 그 일이 당번처럼 자연스레 돌아오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도 어떤 확률의 불확실성은 남는다. 글쎄, 먼저 한 사람은 제비에서 빼면 될 일 아닐까. / 정말 중요한 문제는 뭘까. 배운 사람들이, 먼저 해 본 사람들이 대중을 신뢰하지 못해 아, 쟤는 잘 못할거야, 동지를 신뢰하지 못해 정보를 차단하고 판단을 기다려주지 않고 속도전으로 몰아가는 데 있지 않을까. 그러다보니 그 물이 그 물이고 뭔가 새로운 게 나오지 않고 위기만 계속 지연되고 그런 거 아닐까. / 최근 나는 대단히 중요한 경험을 했다. 저 친구, 잘 해낼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두려웠고 일을 망치치는 않을까 걱정했다. 옆에 있는 친구가 기다려보자고 했다. 기다렸다. 그 친구는 나보다 훨씬, 결국 잘해냈다. 미안했고 스스로 창피했다. 시간을 주면, 믿음을 주면, 글자를 읽을 줄 알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은 잘 해낸다. 조바심과 불신, 오만과 편견이 모든 걸 망친다는 걸 깨달았다. / 우리 주변엔 배울만큼 배우고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 널렸다. 그러나 조바심과 불신 없이, 소처럼 넉넉히 가는 삶의 지혜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자본의 위기는 가속화하고 깊이도 더 심해가는데 정작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채울 반자본 동력은 계속 쇠잔해간다. 아직 그만한 위기가 아니란 반증인가. 우리들 중 누가 대장이 되어도 너를 믿어, 이만한 패기는 아직 먼 건가, 부족한 건가. 싶다. 나는 계속 '제비뽑기'를 하는 조직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러다보니 동네 '계'도 들지 못하고 있네, 내 팔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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