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은분류없음 2013/01/22 09:07 이 도시에 온 뒤 LGBT Community를 위한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교회에 다니고 있다. 교회 volunteer program 한 파트에서 팀 리더로 참여하고 있는데 벌써 몇 달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던 한 멤버, 그 친구를 오늘 일터(학교)에서 우연히 만났다. 아이 둘을 낳고 살던 와중 나이 사십이 넘어 자신의 성정체성을 알게 된 이 친구는 자식도, 아내도, 가족도 모두 버리고(?) 트랜스젠더의 길을 택했고 지금, 어여쁜 아가씨로 살고 있다. 이 친구는, 얼마전 아버지의 부음을 지역신문 부고란을 통해 알게 됐다고. 혈연 가족 그 누구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이 친구에게 알리지 않은 거다. 오늘 만난 이 친구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그렇게 알게 된 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했다며 정신병원 신세를 한 며칠 졌다고 했다. 딱히 위로할 도리가 없다. 슬프고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이런 말이라도 뜨문뜨문 전하고 깡총 토끼발로 꽈악 안아주는 수밖에. 도무지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슬픔.// 친언니보다 더 언니같은 사막은 언니가 '브라보게이라이프'를 보내주었다. 받자마자 냉수 들이켜듯 읽어제낀 그 얘기 속에 바로 내 이야기가, 내 가족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한국을 떠나는 날, 공항에 나온 엄마는 잘 살라고 서로의 장점을 보고살라며 축복아닌 축복을 해 주셨다. 엄마의 말을 들으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마중나온 친구는 엉엉 울며 안그래도 허연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렸다가는 이내 벌겋게 상기된 채 잘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둘의 상반된 반응에서 뭔가 비극의 전조를 읽었어야 했는데 그땐 그러지 못했다. 왜그래, 친구야. 나는 일년 있으면 올거야... 삼개월 정도 됐나, 엄마는 전화기 너머 나에게 결혼하라는 말씀을 전하셨다. 응? 결혼? 그래, 그나라 남자 만나서 결혼해. 언니는 너만 조용하면 다 괜찮은 게 우리집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 그때까지 내가 믿고 있던 하늘이 그날 바로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몇 달 뒤 더욱 더 강고한 가족들의 반응을 직접 확인했다. 착각도 유분수지, 그냥 어디가서 죽어, 너만 없으면 돼, '브라보게이라이프' 책 속의 깊은 슬픔들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아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나는 아마도 초대받지 못할 것 같다. 나의 그 트랜스젠더 친구처럼 신문부고란에서라도 나는 아마도 아버지의 죽음을, 그 소식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그래서 지금 매우 슬프다. 나를 긍정하는 것이 나 외의 가족을 부정하는 것으로 직결하는 그런 관계 속에 나는 놓여있다. 나를 해방하는 길, 투쟁해서 쟁취하는 길, 그러나 그 길에서 나는 아마도 죽을 때까지 풀지 못할 그 숙제를 안고 가야 한다. 가야 할지도 모른다.// 각종 차별에 시달리면서 나는 되뇌이곤 한다, 아, 차라리 고향가서 차별받자. 그런데 그게 아니구나 싶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외로운 인생, 그게 바로, 어쩌면 나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 나는 누구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나의 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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