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의식

분류없음 2016/04/25 23:21

 

한 여자 

 

그녀의 집에 처음 방문했을 때 책장에서 시몬느 베이유 (Simone Weil, 1909-1943), 버지니아 울프 (Virginia Woolf, 1882-1941), 그리고 수전 손택 (Susan Sontag, 1933-2004) 의 책을 발견했다. 무척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의아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뭣하지만 당대에 모두 "미친년" "난년" 취급을 받았던 인물들이다. 아, 이 양반의 삶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간신히 또 간신히 줄타기하는 인생일 수도 있겠다, 그런 혼자만의 짐작을 했던 것 같다. 한참 뒤 나중에 행사장에서 수전 손택의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 (I, etcetera, 1977)" 을 봤을 때 당연히 그녀를 떠올렸다. 그 책은 책장에 없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주머니의 돈은 아슬아슬했기에 출판사 관계자에게 외상을 긋고서야 그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책을 선물했을 때 아득하게 번지던 그녀의 눈빛과 잠시나마 쓸쓸해하던 표정이 다시 생각난다. 

 

 

시몬느 베이유, 버지니아 울프, 수전 손택. 모두 한국어 판권이 있는 책들이지만 한국어로 읽어내는 데엔 다소간에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아무래도 그들 모두 평범한 사람들, 특히 평범한 여성이 아니었다는 점, 그들이 한국어가 아닌 영어나 프랑스어로 글을 쓴 사람들이자, 그들이 살아낸 당대의 역사가 꼬일대로 왕창 꼬인 어느 변곡점(들)에 놓여있었다는 것, 아울러 그러한 "여성"들의 삶을 한국어로 옮겨내는 데에서 절대적인 한계를 노출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한국사회의 몰젠더성, 치우친 정치철학의 지평 등을 원인으로 추론할 뿐이다. 무엇보다 한사람 한사람이 지나온 발자국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럴만한 여유가 글을 옮긴 사람들에게도, 책을 만든 사람들에게도, 읽는 독자들에게도 부족하지 않았나, 특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른바 "사소한 것" 보다 대강의 줄기와 전략따위에 많이 천착했던 것 같다. 그렇다. 한계는 온전히 나에게 있었다. 

 

 

지난 밤에 버지니아 울프의 전기를 소개한 어떤 글을 읽다가 잠시 이러저러한 생각이 스쳐서 여기에 기록을 남긴다. 

 

 

 

밤사이 이야기  

 

지난 밤에 파트너가 되어 일한 한 여성. 남아시아 어느 나라에서 십 년 전에 이민온 이 분은 아이 셋을 키우며 서너 곳의 일터에서 데이/ 이브닝/ 오버나이트 근무를 하느라 늘 힘들다. 갑자기 남편에 대한 불평을 하면서 자기는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다. 글쎄, 나는 남편도 아이도 없어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 너도 두 군데에서 일하고 특히 오버나이트 근무를 하는데 어떻게 셀프케어링을 해?

= 아, 그게 궁금한 거였니? 

- 남편이 집안 일을 전혀 안해. 하도 악을 썼더니 간신히 식사 준비는 하는데 그게 또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어놔서 도대체 쓸모가 없어. 일을 더 만들어. 

= 아이구 저런. 

- 일 마치고 집에 가면 또 일을 해야 돼. 완전히 녹초가 된다구 (exhausted).

= 너무 안됐다. 정말 힘들겠구나. (...) 그냥 너도 아무 일도 하지마. 남편이 어질러놓으면 그냥 둬. 

- 그럼 집안꼴이 엉망이 되잖아.

 

 

어쩌라구? 이 여성은 나에게 해결책을 묻는 게 아니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다. 잘 알고 있지만 "어쩌라구?"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사이사이 추임새를 넣어줬다. 형편이 엉망진창이다. 듣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올 것 같다, 미안하지만. 이야기를 풀다보니 아라비안나이트 저리가라 끝도 없이 이어질 것 같아서 단호하게 말하고 정리했다. 

 

"장기 계획 (long-term goals) 과 단기 계획 (short-term goals) 을 나눠서 진지하게 남편을 붙잡고 얘기해봐. 너도 잘 알겠지만 남자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 여자들보다 더 힘들어해. 왜 그런지는 너도 잘 알겠지. 아마 네 남편도 말못할 고민이 있을 거야. 우선은 격려해주고 일그람이라도 잘하는 게 있으면 칭찬해줘. 남편의 서포트 없이는 이 생활을 유지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같이 계획을 세워보자고 얘기해봐. 그래도 듣지 않으면 장기 계획에 뭔가 중대한 결정을 포함해야겠지. 하지만 나도 잘 모르겠어. 알다시피 난 남편이 없어. 앞으로도 없을 거야" 

 

내 코가 석잔데 --- 당장 대화를 끊는 수는 이것 뿐이다. 대화가 통하고 격려와 공감을 아끼지 않고 감사와 사랑의 인사에 인색하지 않은, 한편으론 집안일이 하기 싫을 때 하염없이 내버려둬도 서로 뭐라 하지 않는, 그런 파트너와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황송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총선 촌평

 

기믹선생이 선전 (과연?) 하셨다. 과거에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부르짖었던 세력(들)은 보합세 유지, 뭐 어차피 다시 시작하는 거니까. 이제부터가 관전의 시작일 듯. 여당은 참패를 했다고는 하나 한두 달 안에 뭔가 나올테니 섣부른 진단이나 안심(?) 은 금물. 더민당은 그 두 손에 들린 게 떡이 아니라 신기루라는 것을 어서 깨달아야 할텐데. 내각제 따위의 거래는 한참 물 건너간 듯 싶지만 MB 패거리들이 이제서야 비로소 "새"정치를 시작한 것 같다. 지켜볼 포인트는 바로 거기 = 기믹 + MB 패거리.  

 

 

 

2016/04/25 23:21 2016/04/25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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