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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을 떠나며, 설명할 수도 없고 뭔지도 모를 요상한 기분이 한국 와서도 계속 됐다. 이렇게 오래 있어본 건 처음이었는데, 다른 말로 한국을 이렇게 오래 떠났던 것도 처음인데, 전과 달리 돌아와서 한국이 반갑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다. 슬프다거나 뭔가를 남겨두고 왔다거나 그냥 그런 말로 설명이 안 되는 그 붕 뜬 기분.. 처음도 아닌데 왜 이제서. 이게 뭘까.
팔레스타인에 국제 활동가들의 현지 활동을 코디해 주는 조직이 있는데, 어쩌다보니 세 번이나 같이 활동했었다. 두 번은 아주 짧게였지만, 여튼 세 번째로 활동을 같이 하며 교육받았을 때, 전에 없던 섹션이 있었다. 귀국 후의 우울감 같은 것이 없게 하기 위해 현지에서 대비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활동이 축적되며 많은 국제 활동가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자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 하고, 마치 팔레스타인 상황은 이렇게나 중대하고 엄혹한데 여기 내 생활은 너무 편안하고 사소하고, 나 혼자만 다 내팽겨치고 도망친 기분.. 그런 기분이 들고 자기 '진짜 생활'에 적응하지 못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그 얘길 듣고 그래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나에겐 절대 해당 사항이 없다고 생각했고 조심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니까. 그리고 다른 활동가들이랑 달리 나는 돌아가서도 계속 활동하고, 또 올 거니까. 그리고 실제로 한 번도 그런 기분에 빠진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런 거라고 하긴 어려운데 그냥 그 붕 뜬 기분이 뭘까를 생각하며 이게 떠올랐다. 남겨두고 온 사람들이 있다고 죄책감 같은 건 1도 안 느낀다. 우울한 것도 아니다. 한국의 이러저러한, 나의 이러저러한 일들이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내가 있을 곳, 있어야 할 곳이 한국이라는 점에 한 치의 의심도 한 적이 없는데 그냥 그게 뭔가.. 그게 뭔가. 그게 뭔가 이상했다. 아무튼 지금도 잘 모르겠고
그러면서도 돌아와서는 팔레스타인 관련 활동을 막 할 수가 없었다. 그냥 아무것도 정리가 안 돼서. 원래보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거나(물론 그런 건 항상 있다만)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아 그냥 왤케 모르겠지
한편으론 한국을 한 번도 떠났던 적이 없는 것처럼 무엇도 반갑지가 않았는데. 그냥 일상의 연장선상으로. 겨우 몇 개월. 더 길게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 상황에서 이사 문제로 넘나 바빠져서 그냥 그게 뭔지 어떤 대답도 못 내린 채로 다시 블랙박스에 넣어 버렸다. 대부분의 문제를 다른 문제에 치여서 일단 블랙박스에 넣어버리고 잊고 살곤 하는데. 다음에 가 보면 이게 뭐였는지 알 수 있겠지. 막 꼭 거기 살고 싶고 거기 내가 있어야 되고 그런 것도 아닌데. 물론 떠나기 아쉬웠지만. 그리고 돌아와서 ㅁ이랑 있다보니까 또 좋지만.
팔레스타인 다녀와서 맴 정리도 안 되고 또 이사짐 정리도 안 된 상태로 일본까지 갔다왔다. 다음달이면 활동 복귀다. 안식년을 취하면서도 활동을 쉬지 않는 보통의 활동가들과 달리 나는 정말 쉬었다. 뭐냐면 뉴스도 잘 안 보고 한국의 운동들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잘 안 보고 참여는 더더욱 안 했던 것. 그래서 잘 쉬었다. 9월 중 일본에 다녀온 건 이미 훨 전에 예정했던 거지만 그래도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끝까지 이런 저런 와중에도 불구하고 안식년 끝까지 정말로 쉬었다고 말 할 수 있는 시간을 보냈다.
얼마 전까진 다시 출근하고, 정말 내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한다는 게 으악 출근하기 싫었는데 산적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도 불구하고, 그래도 어떤 활동들을 할지 기대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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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파디와는 2012년에 처음 만났다. 요르단 계곡에서 2시간 기다린 끝에 잘못 탄 버스에서 대책 없이 어딘지도 모르는 동네에서 내려버렸을 때, 나를 먼저 발견하고는 차에 태워줬다. 파디는 회사 차를 끌고 여러 외진 지역까지 다니며 핸드폰 및 관련 물품을 영업하는 회사원이었다. 그날 알칼릴(헤브론)에 데려다 준 뒤에도 파디는 자주 전화를 걸어오고 만나자고 했다. 그땐 나 혼자였어서, 그리고 워낙 찝적거리는 남자들이 많아서, 파디도 그 중 하나일까 경계하면서 만났다. 만날 때마다 밥 사주고 커피 사주고 돈 1원도 못 쓰게 해서 더 미심쩍었다-_-. 매일 같이 전화를 걸어와 짧게 안부를 묻고, 뭐 필요한 건 없냐고 묻던(필요한 건 항상 없었다;;) 어느날이었다. 이스라엘 심카드를 사용하느라 이틀간 팔레스타인 심카드를 사용하지 않다가 바꿔 끼웠는데, 그날 전화를 받자 파디는 엄청 성을 내며 왜 연락이 안 됐느냐고, 연락이 되었으니 이제 됐다며 전화를 끊었다. 경계심이 계속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일행이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뒤에야 같이 제닌에 있는 파디네 집을 방문했는데, 파디의 부인과 아이들, 엄마, 동생들, 동생 가족 등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비로소 안심하고 친해질 수 있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파디와 연락이 끊겼다. 전화번호가 있어서 안심했고, 페이스북에서 당연히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번호는 바뀌었고 페북에선 못 찾았다(동명이인 진짜 많은 데다 페밀리 네임을 몰랐다...). 2년 뒤 다시 방문했을 때, 그때 기억을 더듬어 파디가 일하던 회사로 찾아갔다. 다른 일행들을 햄버거집에 데려다 놓고, 밥시키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아무래도 여기 어디 쯤이었는데, 싶어서 나가서 찾아봤다. 한 번 가봤을 뿐이고 따라다니기만 해서 기억 못 할 줄 알았는데 용케도 찾아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천재라고 추켜세우지 않을 길이 없었따< 사무실에 가서 파디를 찾아왔다고 하니 아무도 이해하지 못 했다. 당시에는 파디 패밀리 네임도 몰랐으니 -_- 그래서 아이들 이름을 대며 탈라랑 아흐메드 아빠라고 했더니 그제서야 아! 하고 연락해 줬다. 근처 시장에서 휴대폰 액세서리 노점을 하고 있던 파디는 한 걸음에 달려왔다. 같이 식당으로 돌아가서 밥을 먹고, 나의 천재적 기억력을 내가 제일 열심히 찬양하고, 그리고 파디네 집에 두 번 갔다. 하지만 처음도 두번째도, 파디가 원하는 건 좀더 많은 시간을 자기 가족들과 같이 하는 거였다. 초대 전화가 올 때마다 나는 여기 일하러 온 거라고, 미안하다고 거절했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세상 나만 바쁜 것처럼 매일 일정이 있다고.. 그래서 다음에 오면 무조건 놀러오겠다고, 그때 많은 시간을 보내자고 약속했었다. 그리고 페친도 맺었따 ㅎ
파디하고는 팔레스타인에 있을 때 전화통화를 하곤 했지만, 가족들과 만난 건 몇 회 되지 않아서, 가족들을 전부 기억하지 못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구성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 이전에 만났다고 모두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만이 아니고 지난 번에 왔던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안부를 물었다. 돌아와서 옛날 사진을 찾아보니 막내 동생 남편도 왔었네 처음 본 줄 알았는데 ㅎ 지난 번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여동생 남편이 셰프라고 여동생네 집으로 초대해, 그 남편과 남편의 동생;이 차려주는 엄청 맛있는 저녁을 먹었다. 그 여동생이 6개월 전에 암으로 죽었다고 한다. 너무 젊은데, 어린 자식들 남겨두고... 이번에 가니 자식 중 둘째 아들 와라드는 외할머니, 그니까 파디네 엄마 댁에 살고 있었다. 와라드는 수많은 어린이들 중 하나로 기억도 못 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내가 자길 기억 못 하는 걸 알았는지, 머리끈 같은 팔찌를 4개 주며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했다. ㅎㅎㅎㅎ 귀여워 ㅠㅠㅠㅠ 이번에도 많이 만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와라드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네 ㅎㅎ
동생의 죽음 외에도 파디에겐 많은 일이 있었다. 이스라엘 고용 허가증을 사려다 사기를 당하고, 허가증 없이 일하다 밤에 숙소에 기습한 경찰에 붙들려 한 달간 실형을 살았다. 한국일보 기사에 썼던 것처럼 한동안 택배 기사였는데, 임금 체불, 장시간 노동 등의 문제로 내가 있는 동안 관뒀다. 그리곤 중고샵을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안 된다고 야채 가게로 바꿀 거라더니 페이스북 보니까 가게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집주인이 갑작스레 1달 안으로 집을 비우라고 해서 이사까지 했다. 그래서 전처럼 전화가 자주 오지 않았고, 여유가 그렇게 없다는 게 정말 마음 아팠다. 항상 내가 바빴는데 이번엔 너가 바쁘네, 그랬더니 그러게, 하고 한숨을 쉬었다. 서안지구 들어가기 전에 페이스북 메세지로 연락하고 있었는데, 메세지 확인을 잘 안 하고, 내가 제닌에 간다는 것도 확인을 안 하고 있었다. 제닌에 들어가서 전화했을 때, "야핑!!!!!!!" 하고 엄청 반가워하며 기다려달라고 했다. 택배 차량을 타고 숙소 앞에 와서는, 시간이 없으니까 같이 다니면서 얘기하자고 했고 자세한 건 기사에 썼다.
파디가 바빠서 엄마나 아이들하고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는데, 사실 나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데 어떻게 같이 놀 수 있는지 지금도 잘 모른다; 파디 가족들이랑만 있으면 불편했다. 그래서 여럿이 방문하는 게 좋은데 이번엔 몇 번 봐서 그런가 애기들이랑 친해졌다. 특히 엄청 너 따위엔 노관심이다 ㅎㅎ 라고 보이는 오마르... 파디 동생 히바네 둘째 아들램.. 역시 기억 못 하고 있었는데; 돌아와서 옛날 사진 보니까 생각났다 ㅎ 사진 찍을 때 엄청 움직이던 애기. 암튼 오마르네 집에서 하룻밤 자면서 오마르하고도 친해졌다! 얼마나 친해졌냐면, 밤에 다 같이 모여자는 방에 자기 옆자리를 톡 톡 치며 옆에서 자라고 할 정도였다!! 완전 넘나 기뻤지만 잠은 손님에게 마련해 주신 에어컨 나오는 방에 가서 자버림...< 전날 더워서 거의 한숨도 못 잔 상태라서 =ㅅ= 다음날 "보고싶을 거야"하고 인사하는데, 내 아랍어 발음이 구려서 못 알아듣고는 자기 엄마를 데려왔다. 뭐라는 거야? 다시 말해 봐;;; 해서 엄마가 니가 보고싶을 거래, 지금 갈 거야, 라고 말해주니 갑자기 완전 시무룩해졌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 갈게 보고 싶을 거야, 그러면서 인사 뽀뽀를 하려는데 땅만 쳐다보면서 가만히 앉아서 양볼에 뽀뽀를 받고는 아무 말도 안 했다 으윽 찌통 ㅠㅠㅠㅠ 뽀뽀하는데 눈물 날 것 같았다. 그리고는 동생 함무디한테 뽀뽀하려는뎈ㅋㅋㅋㅋㅋ 애기가 끝까지 뽀뽀 못 하게 으으으 하면서 뒤로 피하는 거 보고 웃겨서 눈물 쏙 들어감ㅋㅋㅋㅋ 함무디하고는 못 친해짐 옛날에 같이 사진도 찍은 사이라서 함무디는 기억하고 있었는데 -ㅅ-
돌아오기 전 라말라에 지내면서, 파디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했다. 파디가 "뭐 필요한 거 있어? 뭐 해줄까?" 하고 묻는데 내가 또 깔깔 웃어버렸다. 파디는, 근데 왜 내가 뭐 필요한 거 있냐고 물어볼 때마다 웃는 거야? 하고 물어왔다. 그냥 맨날 물어보는 게 너무 웃겨서, 하고 대답했던가. 모르겠다, 항상 정말로 뭐라도 내가 말하면 그게 뭐든 해 줄 것 같아서 웃긴 건데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파디는 진지한 남자라서 -ㅅ-;
벤구리온 공항에서 마지막으로 파디와 메세지를 주고 받았다. 공항이라니깐 한국이냐고, 해서 아니 벤구리온 공항이라고, 했더니 네가 팔레스타인에 있지 않으니 이젠 내가 뭐 필요한 거 있냐고 물어볼 수가 없구나, 하고 답장이 왔다. 이젠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그 메세지를 보고서 공항부터 뱅기 타서도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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