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에서 찾기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맹활약 중입니다.

누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반유대주의자라 부르는가

사회 정의를 위한 유대인의 투쟁 자체가 반유대주의적인 것으로 취급 된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아이러니다.

주디스 버틀러, 『지상에서 함께 산다는 것』

작년에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에스더님 인터뷰 읽고 영상을 만들어야지 생각하다가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1/27)을 맞아 만들었다.

자료를 찾으면서 나치 수용소에 연합군이 들어가 찍은 영상들을 봤는데.. 화면에도 갖다 썼고.. 근데 화면에 넣을 수 없었던 시체들의 산을 보며 홀로코스트가 인류에 대한, 인간성에 대한 범죄란 걸 새삼 실감했다. 영상을 보는 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이 끔찍한 사건을 누군가는 자기 개인에, 혹은 자기가 속한 소수집단에 고유한 문제로 인식하고, 누군가는 자기 개인이나 소속집단을 넘는 문제임을 통찰하고 더 넓은 연대로 나아가는데, 그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어떤 다른 경험들이 더 작용해야 하는 걸까... 생각해 봤는데 모르겠다.

에스더 베야라노 님이 진짜 대단하시단 건 알겠다 ㅠㅠㅠㅠ

국경에서 쫓겨난 언니 얘기를 읽을 때 펑펑 울었는데 만들 때도 다 만들고 다시 볼 때도 그 부분에서 눈물이 난다. 그래서 지중해 건너오는 난민들 지지하는 활동도 하신다는데, 내가 스토리를 잘 못 짜서 다 뺐다. 나중에 다시 만들 일이 있을 것이다.. 다른 생존자 분들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도 넣고 싶었는데 역시 능력 부족으로 뺐다. 누가 작가 역할을 해 줘서 홀로코스트 생존자분들 운동 전반적으로 다룰 수 있는 날이여 오라 내게

이스라엘은 자국의 점령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 아무에게나 반유대주의자라고 딱지를 붙인다. 심지어 유대인 홀로코스트 생존자에게마저.

 

+ 2차 대전 하에 인간성을 말살당하는 끔찍한 일을 겪고도 인간애를 잃지 않고 침묵하지 않고 다른 이들의 고통에 연대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영상 만들면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분들을 많이 떠올려서 그런 건지, 김복동 할머니를 언론으로 많이 접해서 그런 건지, 전에 없이 더 슬프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살아서도 외롭지 않으셨지만 가시는 걸음이 외롭지 않으셨으면 하고 장례위원에 참여했다. 그냥 너무 슬퍼서 남겨봄


평화·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께서 영면에 드셨습니다.

김복동 할머니는 시카고 방문 시 팔레스타인 활동가 '라스미아 오데'를 만나 나비기금을 전달하시기도 했습니다. (오데에 대한 기사: "48년째 '자백'을 강요 받고 있습니다") 참고로 라스미아 오데는 결국 미국에서 추방당해 요르단에 체류 중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로,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운동가로, 평화운동에 귀감이 된 김복동 할머니의 평화 여정을 잊지 않겠습니다.

추모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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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은 옳고 팔레스타인인은 틀리다

제목은 어그로로 지어보았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에서 활동가끼리 일란 파페의 『팔레스타인 현대사』라는 책으로 세미나를 하고 있다. 전철에서 책을 읽다가 갈아타기 위해 내릴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

"이 책 어떠세요?"

"재밌어요. 이 책 읽어보셨나요?"

"아뇨, 제가 최근에 이스라엘에 다녀왔거든요."

"네에 이 책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역사에 대한 책이에요."

"이스라엘 다녀오니까 한국에는 잘못된 정보가 많더라고요. 다 너무 팔레스타인에 편향되었더라고요. 그 책도 그런 책이었던 것 같아서요"

"아, 혹시 이 책 쓴 사람이 유대인 학자인 건 아세요?"

"유대인이라고요? 아닐텐데.."

"일란 파페라고 유명한 유대인 역사학자에요."

"다른 책이랑 착각했나.. 그럼 재밌게 읽으세요" (가버림)

읽어보지도 않았대매 뭔 이 책이 편향된 책이래 ㅋㅋㅋㅋ 아무튼 대단하다. 나는 한 번이라도 빻은 책 읽고 있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 선교(!)할 마음을 먹어본 적 있던가?! 없다.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아마 책 제목에 '팔레스타인'만 보고 말을 걸었을텐데, 내가 뭔가 논지를 전개한다고 빻음이 분쇄될 것도 아니고, 빨리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바로 '유대인이 비판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점이 (나 자신이 한 일이지만) 흥미롭다. 마치 유대인이 하는 말이기 때문에 더 믿을 수 있다는 듯이.

서구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의 이야기는 잘 믿지 않는다고, 서안지구에서 만난 활동가 분이 말씀하셨었다. 유명한 활동가라 뉴스를 통해 나는 그를 알고 있었고, 작년 이스라엘 쪽 활동가들이 주최한 평화 컨퍼런스에서 잠깐 인사한 뒤 집에 찾아가서 다시 만났다. 그 컨퍼런스에서 나는 내내 위화감을 느꼈는데, 이스라엘에서 반-군사점령 운동하는 활동가들을 존경하고 지지하지만,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서 그들이 주역이 된다는 게 계속 불편했다. 그러니까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서 열린 그 회의는, 호스트가 이스라엘 활동가들이었고, 게스트가 나를 비롯한 전세계 팔레스타인 연대운동 활동가들과 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이었던 것이다. 

이스라엘 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활동이 있어선 안 된다는 게 전혀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을 지지한다. 그들의 활동은 열심히 팔로업하지 않아도 뉴스를 통해서 계속 접하고 있다. 다만 그 회의에 초청된 많은 활동가들이 전에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경험이 없었고, 이 회의를 통해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처음 접하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군사점령이라는 문제 틀이, 반식민투쟁하는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아니라, 이스라엘 활동가들이라는 게, 불편했다. 이스라엘 활동가들은 자국이 타국을 군사점령하고 있는 문제를 국내 정치의 문제로 다룬다. 민주주의의 문제로도 다룬다. 이런 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들의 문제 의식은 팔레스타인의 활동가들만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이 겪는 식민 문제와는 결이 다를 수밖에 없다. 좀더 큰 소리로 집중 받아야 할 것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목소리다.

최소한 내가 만나본 이스라엘 활동가들은 매우 겸손하고, 주도권을 잡으려들기는커녕 자신들을 이 투쟁에서 보조적인 위치로 상정하고 있었다. 그냥 한국 활동가들이랑 비슷하게 훌륭했다. 그래서 따로 불편하다거나 뭐 그런 얘길 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회의 후에 팔레스타인 활동가를 만났더니, 그도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이었다. 그 역시 이스라엘 활동가들과 긴밀히 협업하며 그들을 존중하고 있었다. 다만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 측 서사에 신빙성을 가지려면 반드시 이들을 지지하는 유대인이 필요하다고, 그 같은 상황을 오랫동안 겪어왔고 이번 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개탄했다.

내 말은 아무 힘이 없고, 누군가가 내 말을 보증해 줄 때만 진실일 수 있다고 고려된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인의 일종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성년자도, 금치산자도 아닌데. 어떤 법적 후견도 필요치 않지만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이 그렇다는 것. 그 과정에서 후견인 역할을 배정 받은 사람이 원치 않아도 그 후견인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는 것.

아무 생각없이 그 공식을 동원한, 그 때가 떠오르는 아침이었다. 이런 글은 일필휘지로 쓰기보다 더 묵혀서 잘 써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침 일 때문에 걍 써버렸...

이런 생각들을 한다고 해서 이스라엘 군사점령의 문제를 알릴 때 '유대인이 비판하는 이스라엘'을 활용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내부자의 비판은 강력하고 우리가 몰랐던 부분을 보여주며 때로 핵심을 찌른다. 여담이지만 이스라엘인 아닌 유대인이 훨씬 더 많기도 하구. 유대인≠이스라엘인이고 유대교 신자≠유대인, 성서 속 이스라엘인 ≠ 현대 이스라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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