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쪽방촌의 풍경...

쪽방촌에서 일한지 1년이 넘었다. 힘들고, 외롭고, 적응이 안될때 마다 마음 한구석으로 되새기는 말이 있다. 그것은 '이런 일은 어디가서 돈주고도 할 수 없는 일이고 배울 수도 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사실은 스스로 세뇌시키면서 지냈는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위로를 나가 아닌 다름 사람으로부터 받으면 더 효과적일것 같아 한동안 주변 사람들을 많이 괴롭힌 적도 있다. 그런데, 갈수록 그것은 마치 무덤을 파거나 모래위에 집을 짓는 것 처럼 그닥 효과가 크지 않다는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오늘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냐면, 오늘은 우리 단체에서 정월 대보름 행사가 있던 날이었는데, 그 행사를 진행하면서 그리고 마치고 집에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기운이 하나도 없기만하고 빨리 뻗어서 잠이나 자는게 맞는데....이렇게 간만에 홈컴터를 만지는것도 드문 일이라 여겨 몇자 적는다. 

 

아침부터 실은 어제 오후부터 대보름 행사를 어떻게 하자느니 하면서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십시일반으로 모은 돈과 사무실에서 얼마를 보태 행사 진행비를 주기만하고 빠지려고 했는데 그게 성격상 잘 되지 않았다. 꼽사리 끼어서 시장이라도 같이 갈까 했더니 대표는 나보고 주민들 알아서 하게 빠지라고 한다. 그럼 나야 좋지뭐~ 하고는 한걸음 물러났다. 드디어 오늘 아침, 오늘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매주 돌리는 반찬을 돌리는 날이다. 반찬을 협력 단체와 같이 돌리고 자봉온 아이들과 탁구 한게임씩 치고 점심 먹고 바로 행사 준비를 하는데....사무실 근처 공원이 행사지이다. 한쪽에서는 헌옷가지를 파는 바자회를 하고(내가 진행), 한쪽에서는 파전을 굽고(주민 진행), 또다른 한쪽에서는 윳놀이를 하고(대표 진행), 각자 알아서 일을 맡았다. 누가 누구를 지시하지도 않고 알아서 진행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다. 나는 옷을 팔다가 중간에 시장에 가서 오곡밥 할 재료를 사와 사무실에서 부랴부랴 밥을 준비하고 나물은 오곡밥 재료를 사면서 같이 샀다. 7가지 나물에 만원을 하더라. 굳이 7가지씩이나 사고 싶지 않았지만 7가지에 만원이라고 맞춤처럼 해 놓았길래 샀다. 헌옷을 팔아서 번 돈 약 5만원으로...^^

 

사무실에 자주 오는 사람들이랑 먹을 요량으로 밥이며 나물이며 양을 제대로 가늠하지 않았는데 밥이 될 무렵 한두명씩 몰려 오는게 장난이 아니다.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는 갑자기 음식 분량을 오바 하면 좀 내키지 않는데... 할 수 없다. 밥을 한 번 더 하는 수 밖에...첫 오곡밥과 사온 나물을 그럴싸에게 접시에 담아 내고는 오늘 행사는 어땠는지 주거니 받거니 대화라도 할 요량이었는데....아차 하는 사이에 주변에서 한 알콜릭 여성이 들이 닥친다. 밥상은 아수라장이 될 지경이고, 아주머니 한분과 알콜릭 여성은 싸움이 붙어서 서로의 머리를 쥐어뜯고 난리가 났다. 에혀~ 그럼 그렇지 언제는 이곳이 조용할 날이 있었나....그러거나 말거나 싸움을 말릴 사람은 언제나 있기 때문에 나는 한발짝 물러서서 밥을 펐다. 

 

어느새 싸움은 진정이 되고 알콜릭 여성은 사라지고 아주머니도 제자리로 왔고, 다시 평정을 되찾았다. 이제 밥을 먹을 시간. 그랬더니 주민들 대부분이 밥을 비벼서 먹자고 한다. 나는 오곡밥을 왜 비벼서 먹어? 라는 생각으로 내키지 않았는데, 주민들이 그러자고 하니 마지못해 밥을 비빌 큰 다라이를 꺼냈다. 한 아주머니가 비닐 장갑을 끼고 열씨미 밥을 비빈다. 둘러앉은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고 나한테도 한공기 퍼준다. 먹어보니 오~~ 고추장도 넣지 않고 그냥 참기름만 뿌리고 비빈것 같은데 맛있다.^^ 아마도 밥이 잘 되어서가 아닐까? ㅋ 내 공기를 다 비우고 나서 옆사람것까지 빼앗아 먹었는데도 배가 안부르다. 난, 오곡밥 귀신이기 때문에....너무너무 맛있었다. 

 

밥을 다 먹어가니 슬슬 노래방 얘기가 나온다. 아까 공원에서 한잔씩 걸치고 온 터라 다들 불콰해진 모습인데 노래방에 가자고 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  다들 합의하에 노래방엘 갔다. 나와 대표도 빠질순 없지...노래방에 가면 마이크 놓지 않는 사람들 분명히 있다. 열씨미 노래를 부르는 주민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즐겁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니 웬지 마음이 알싸 하면서 안쓰럽더라. 한평 쪽방에 사는 사람들이지만 이들도 보통사람들과 똑같은 정서를 가지고 있고, 똑같은 욕심을 가지고 있고 똑같이 울고 웃는다.  다른점이 있다면 이 사람들은 이러한 문화생활 기회가 현저하게 적고, 그 문화생활의 내용이나 방식이 일반사람들과 많이 다르다는 것. 가끔 쪽방에 순회차 가보면 상대적으로 넓은 방 한켠에 모여 카드를 친다. 고스톱도 치고...근데, 100원짜리가 아니더라.  좀 놀라기도 했는데 대표는 그것이 이 사람들의 '놀이'이고 '문화'라고 한다. 물론 그것으로 문제가 발생되는 일은 자주 없었다.

 

행사라는 명목하게 보낸 하루였지만 이곳의 하루는 늘 행사나 다름없이 다이나믹 하다. 그래서 특별할것도 없는 하루일지 모르지만 웬지 오늘 하루는 기운이 빠진 날이었다. 그래도 정월대보름인데 즐겁게 놀고 웃으면서 1년동안 하고 싶은 일, 또는 해야 할 일을 조근조근 나누고 평탄하게 보낼수는 없었나? 조금만 비위가 거슬리면 들고 일어나야하는 모습들이 아직도 나는 보기가 불편하다. 그리고 마음이 안좋고 답답하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마지막 장식으로 덧붙이면, 점점 중독이 되어 가는 듯한 느낌. 무엇에 중독이냐고? 그건 말하나마나 뻔한거지...'알콜'! ^^ 그리고, '일'. 엊그제 명함 새로 찍었는데, 거기에 사무국장/ '사회복지사' 라고 찍었다(대표가 그렇게 찍으라고 해서). 그렇다. 나는 사회복지사다. 일선의 관성화된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고, 그들을 위해 나의 모든것을 내 놓을 각오를 하는 민간사회복지사.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너무너무 재미 있다. 힘들어도 재미 있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늘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물론, 나의 최우 목적은 더 큰 싸움을 위한 거지만...ㅋㅋ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