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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도 가난한 나날들...

   가난한 단체에 와서 일하다 보니 그동안 내가 알고 있던 가난한 생활이란게 참 허상이었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  10평 남짓한 사무실이 있다는게 정말 신기할 정도로 일할 공간은 있다. 그곳을 채우고 있는 많은 집기들, 역시 산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주워 왔거나 또는 기증 받았거나 남이 쓰던 것을 가지고 온 것들이다. 아침에 출근하면 각종 소식지와 신문이 책상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끼인 체납 고지서들!   도무지 한두개가 아니어서 구분하기도 쉽지 않다. 하루는 전기세가 밀린 고지서가 있고, 하루는 가스비가 밀린 고지서가 있고, 자동차 과태료가 있고...이것들은 기한내에 내지 않으면 낼때까지 오니까 내 책상서랍에는 고지서들 외에 보이는게 별로 없다.  심지어 한달 전부터 끊긴 인터넷 전화는 정말 해도해도 너무할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하며 살고 있을 정도..  거기다 덧붙여서 이렇게 가난한 곳에서 내가 8개월여 버티며 밥은 안굶고 일을 하고 있다는건 정말 믿기 어려운 사실이기도 하다. 나같이 인내심 부족하고 배고픈거 제일 못참고, 졸린건 고문이라고 생각하는 애가...거기다 철까지 없으니 두말하면 무엇하리~ 

 

   한낮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오늘은 시간이 좀 생겨서 사랑방 소개글이 실린 잡지(복지동향-원고청탁이 들어와서 내가 썼다. ㅋ) 하나를 보고 있는데 못보던 남자 분이 들어 오신다. 난 상담하러 오신 분인가 했더니....아니나 다를까 밀린 신문값 받으러 왔단다. 그게 얼만고 하니 자그마치 십육만원이랜다!  에혀~~ 그럼 그렇지...어떻게 신문값이 이 정도로 밀릴정도로 안낼 수 있지? 내가 이 곳에 오기전부터 안냈다는 얘긴데...신문값 받으러 온 사람한테 정말 뭐라 말을해야 좋을지 모르겠더라. 그리고 후원하는 차원에서 신문좀 넣어 주면 안되냐고 했더니 그건 신문보급소에서 하는 차원이 아니란다. 후원을 받으려면 한겨레신문에 직접 얘기해 보라고...쩝~  그러겠다고 하고 일단 수중에 있는 돈3만원을 털어서 줬다. 나머지는 돈이 들어 오는대로 입금하겠노라고 하고...

   

   이제는 이력이 날만도 한데 여전히 나는 적응이 안된다. 도대체 얼마나 더 가난하게 살고 얼마나 더 가난하게 일해야 적응이 될까?  어떤 날은 스파게티가 무지하게 먹고 싶어서 대표를 조르기도 하고(그럴때마다 번번히 거절당하고 "만들어서 먹어라~!"는 말을 듣기 일쑤지만..) 밥값 아끼려고 매일 사무실에서 밥해먹는게 지겹기도 하여 사먹고 싶을때가 많아도 늘 언감생심일 뿐이다.   사실, 가난이라는게 고작 하고 싶은거 몇개 못하고 먹고 싶은거 몇개 못먹고 사는걸로 다 설명할 수는 없는 일이다...지난 토요일(8월 22일) 한겨레 신문에 책 소개하는 란에 보니, 작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본 작가인데, 책 제목은 '빈곤론' 이었고, 부제가 "궁핍의 공포, 그것이 빈곤이다."라고 하는게 눈에 띄었다. 마저마저! 라고 하면서 무릎을 치면서 읽어 내려 갔던 그 서평은 너무나도 가난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었으며 이 가난은 결코 개인적인 무능함으로 인해 오는 가난이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의 부재에서 오는 가난이고 동시에 그것을 깨트리기 위해서는 계급의식을 가지고 언제나 싸워나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불현듯 든 생각은 내가 느끼는 이 가난의 체감 온도와 이곳에서 몇십년씩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체감온도는 과연 얼마나 비슷할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전히 나는 빈곤한 현장에서 일할만한 사람하고는 '거리'가 있는 사람임이 분명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 슬프디 슬픈 현실을 알게 된 날이었다. 거기다 대표가 늘 말하듯이 언제까지 니가 몸담고 있는 현장에 대해서 투덜거리기만 할거냐는 비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란걸 아프게 인정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ㅠㅠ 

  

   진짜로 황당했던 일은 한두달 전, 체납된 전기세 때문에 전기를 끊으러 한전에서 사람이 나왔을 때이다. 보기에도 위협스러운 팬치를 들고서 지금 당장 돈을 내지 않으면 전기를 끊겠다고 엄포를 놓는 모습을 보고서는 정말 깜짝 놀랐다. 웬만하면 소리라도 지르면서 가난한 단체를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전기를 끊겠다고 협박하는게 말이되느냐고 따지기라고 할텐데 이런일은 난생 처음이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기도 했다.  마침 사무실에는 나 밖에 없었고... 전기 끊어지면 촛불 켜고 지내면 되고, 최소한의 전기는 주게끔 되어 있으니 걱정 말라고 큰소리 치던 대표는 그날따라 없었다.  개똥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나는 이날 비로서, 빈곤이란것은 그리고 가난하게 산다는것은 그냥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무서운 것이기도 하구나를 처음으로 알게 된 날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서 겪은 끔찍한 일을 언제든지 주민들이 겪을 일이라고 생각하니 차라리 내가 겪는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차피 주민들은 대부분 아픈 사람들이거나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 이기 때문에 어떤 위협적인 상황이 닥쳤을때 나보다는 힘이 없을게 분명하니까...

 

   내가 잘나서 이렇게 용기있는 생각을 하게 된건 아닌것 같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고 죄없이 남에게 피해 안주고 살려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거나 힘 없다고 함부로 무시 하는건 가난한 생활을 못견디는것 보다 더 참을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건지 모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내가 얼만큼 용감한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적어도 여기 있는 주민들에게 가난한 사람도 인간임을 인정받고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 만큼은 알려야 하는게 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스파게티가 무지하게 먹고 싶은걸 참으면서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걸지도... 이만하면 철든거 아닌가??? (알아주든 말든~ 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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