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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화장실에서 읽은 유난히 가슴에 와닿은 기사가 있어서 여기 옮겨본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끝난 뒤 시작된 장애인 올림픽에 대해 관심을 가진 한국 사람은 과연 몇 %나 될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난 아테네 올림픽 때 보였던 요란함에 비하면 수치상 채 십분의 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십분의 일도 과한 수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은 그저 어느 먼 나라의 풍문처럼 슬쩍 사람들을 스쳤다가 가뭇없이 사라져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장애인 올림픽이 한창이었을 때 어떤 선수가 어느 종목에 출전하여 얼마만큼의 성적을 거두었는지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면, 체조선수 양태영의 ‘빼앗긴 금메달’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정은 아직 건재하다. 언론매체들은 여전히 양태영 선수의 ‘금 되찾기’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의 대다수 국민들은 폴 햄이 하루빨리 ‘대오각성’하여 괜한 집착을 버리고 원래 주인인 양태영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길 바란다. 허나 달리 생각해 보면, 양태영의 잃어버린 금메달에 대한 무수한 한국 사람들의 바람 또한 집착이 아닐까. 물론 ‘공정한 평가’라는 그럴 듯한 명분이 있지만, 내 눈엔 그 명분의 이면에 도사린 금메달 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보일 뿐이다.
까짓거, 백보 양보해서 금메달에 목숨 거는 한국 사람들의 그 특별한 열정을 일단 긍정해 보기로 하자. 그래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금메달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과도한 열정은 그 종류에 따라 매우 ‘선택적’으로 발휘되기 때문이다. 똑같이 금으로 만든 메달이어도 그냥 올림픽과 장애인 올림픽에서 딴 것은 다른 취급을 받는다. 전자는 ‘핫’한 대접을 받지만, 후자는 ‘쿨’한 대접을 받는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 한개와 장애인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 열개를 가지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 보라고 하면, 대다수의 한국사람들은 전자를 택할 게 틀림없다. 한국인들의 이러한 선택적인 열정으로 인해 장애인 올림픽에서 흘린 땀의 무게는 한없이 가벼워지고 만다.
지난 9월25일, 대광고 학생 강의석이 46일 동안의 금식을 풀었다. 학내 종교 선택의 자유를 주장한 고등학생 강의석의 외침은, 그러나 지극히 외로운 것이기도 했을 것이다. 언론이 가끔 그의 고독한 외침에 귀 기울여주는 ‘척’했을 뿐이고, 그나마 시민단체와 일부의 사람들이 그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을 뿐, 학내 종교 선택권을 얻기 위한 강의석의 노력은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 그저 ‘강 건너 불 구경’하는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이 한 고교생의 외침에 그렇게 ‘쿨’한 관전법을 구사하지만 않았어도, 강의석이 46일 동안 그렇게 쫄쫄 굶어가며 죽을 고생을 할 필요까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추석 연휴의 와중에, 러시아의 테니스 선수 마리아 샤라포바가 ‘국빈’ 대접을 받으며 한국에 왔다. 이 ‘팔등신 미녀’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훑어보는 한국사람들의 시선이 ‘후끈 달아오르는’ 사이, 아테네 장애인 올림픽이 폐막되었다는 소식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만 들려왔다.
이렇듯, 한국사회에서 구사되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간극은 너무도 크다. 분명 그 까마득한 틈이 서서히 좁혀져 갈 때에야 이 나라에서 외로운 사람들의 숫자도 점점 줄어갈 것이다. 순진한 사회적 상상력일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그렇게 믿고 싶다.
이휘현 자유기고가
한겨레신문, '야! 한국사회', 2004.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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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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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정말 와닿는 글이군요예전에 신문서 보니깐 장애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연금으로 한달에 30만원정도밖에 받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특히 최저생계비를 지원받고 있던 장애인들은 그것마저 중단된다고 합니다
장애인올림픽 메달리스트가 올림픽 메달리스트보다 많게..아니 적어도 그들과 동등하게 연금혜택을 받아야 하는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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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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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님 말씀에 동감!! 그래두 그나마 언론에서 떠들어대자, 앞으로는 비장애인메달리스트들과 동등하게 보상해주고, 기존에 주던 사회 보장 성격의 생계비도 깎지 않고 준다고 하더라구요..부가 정보
스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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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 말씀에 공감하면서 저는 강의석군의 외로운 싸움에 가슴이 너무나 아팠답니다. 사실, 저도 학부때 억지로 강요 받은 채플이라는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게 꽤 부당하다고 생각 했었거든요. 그런데, 고등학생이 저렇게 무서운 싸움을 하고 있는데 눈길주는 사람이 없었을까를 보면서 참으로 가슴이 아팠답니다. 그리고 강의석군의 놀라운 투지에 찬사를 금할 수 없었고요...솔직히 불쌍하기도 했어요..몸무게 빠진거 보고서는.. 무려 20Kg이 넘게 빠졌으니 원...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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