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평범한 경제학책이 아니다. ‘세상에 두루 퍼진 모든 악의 근원에 대한 심오한 탐구’라고 할까? 빈곤·범죄·전쟁·환경파괴·경제위기·부정부패...이 모든 악의 근원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상 수많은 성인과 천재들이 사회악을 없애려고 많은 것을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역사를 보면 세상은 어느 시대나 크게 다르지 않다. 테크놀로지에서 몇 가지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을 뿐 삶의 모습은 본질적으로 다를 게 없다. 여전히 인류는 비슷한 문제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악의 근원을 잘못 짚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같은 미로를 헤맨다.
하지만 악의 근원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그것은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처럼 너무 당연해 보여서 눈에 띄지 않았다. 악의 근원은 늘 우리 곁에 있다. 장을 볼 때도, 택시를 탈 때도, 미용실이나 병원에 갈 때도, 선물을 사거나 아이들을 학원에 보낼 때도 우리는 그걸 '사용'하고 그 위에 '서' 있다. 그래, 모든 악은 바로 돈(화폐제도)과 땅(토지제도)에 뿌리박고 있다. 그것을 실비오 게젤은 1916년 이 책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통해 발표한다.
돈은 재화를 교환하는 매개물이다. 하지만 지금의 돈은 그 액면가가 불변하는 반면에 그 돈과 교환되어야 할 재화는 낡고 닳고 썩고 보관료가 드는 등 그것을 보유하는데 비용이 꾸준히 소모되기 때문에, 돈과 상품은 대등한 관계에서 교환되지 못하고 돈은 상품과 교환될 때 “이자”라는 조공을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자를 받지 못하면 교환에 제공되지 않아서 경제를 마비시키고 그에 따라 갖가지 사회악을 낳는다.
매일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뉴스를 보자. 그 무엇 하나 돈과 관련없는 게 없다. 그 모든 사건과 사고는 우연이 아니며 철저한 인과관계 속에서 증식하고 있다. 그 인과의 연쇄를 추적하다 보면 우리는 언제나 돈과 만나게 된다. 돈이 낳는 기본이자가 상품과 실물자본의 생산을 제한하여 대중을 프롤레타리아로 전락시키고 우리 시대의 비극을 양산한다. 모든 비극의 배후에 서 있는 연출자, 그게 바로 돈이다. 따라서 우리는 돈의 결함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돈은 사람이 만들었지만 그 돈이 다시 사람들의 삶을 어떤 형태로 빚어내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돈을 바꿔야 한다. 돈을 개선해야 한다. 돈은 수단이 되어야 하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이 목표는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려는 도덕심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대로 돈의 액면가를 규칙적으로 감가상각하여 재화가 가진 소멸성을 돈에 더하는 것으로만 가능할 것이다.
땅은 어떠한가? 땅사유권은 노동자들이 이룬 진보의 열매를 흡수하여 그 노동대가를 그런 진보가 없는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수준으로 줄여버린다. 땅을 둘러싼 투쟁은 사람과 사람, 나라와 나라를 반목하게 하고 범죄와 전쟁의 씨앗이 된다. 땅사유권을 폐지하고 지대가 모두의 것이 되어야만 그 싸움은 비로소 멈출 것이다.
이 책을 번역한 목적은 상아탑에서 지식인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리스트에 하나를 더하려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유익한 사회운동을 유도하여 앞으로 닥칠 모든 사회적 비극에서 사람들을 지키려는 것이다. 경제질서의 결함을 바로잡아서, 병든 경제질서로 말미암은 사회악 일체를 자연스럽게 퇴축시키려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경제질서>가 만들어낼 파도는 모든 악을 쓸어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