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의 해법은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자본에 세금을 매기는 것인데 이것은 돈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시키는 실비오 게젤의 해법과 혼동될 수 있다. 하지만 이 둘은 분명히 다르다.
피케티의 해법은 r>g 라는 부등식에서 시작한다. 민간자본수익률이 소득·생산의 성장률을 웃돈다는 것. 그래서 인위적인 방법, 즉 과세를 통해 이 불균형을 보상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피케티는 왜 위와 같은 부등식이 나오는지 살펴보지 않았다. 위와 같은 부등식이 나오게 만드는 경제질서의 결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돈이 왜 제대로 순환하지 않고 쌓여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자본이자는 돈의 액면가가 불변하기 때문에 생긴다. 재화는 전부 정기적으로 낡고 닳고 썩고 유행이 지나는데 돈 홀로 그 액면가가 불변하기에, 이 둘은 결코 동일한 포지션에서 교환될 수가 없고, 재화는 돈에 기본이자라는 조공을 바쳐야 한다. 모든 실물자본과 상품을 생산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쓰려면 이 기본이자를 돈에 바쳐야 하고, 그래서 모든 상품과 실물자본의 가격은 이 기본이자를 포함한다.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대로 돈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여 돈이 기본이자를 낳지 못하게 하면 자본으로 얻는 소득이 노동으로 얻는 소득을 넘을 수가 없다. 아니 넘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자본으로 얻는 소득은 결국 0 이 된다. 이게 진정한 해법이다. 불로소득이 만들어진 다음 환수하는 것보다 불로소득이 애초에 만들어지지 않는 시스템이 낫다.
피케티는 <21세기자본> 54쪽에서 말한다.
이른바 자본소득의 일정부분은 기업가의 노동에 대한 보상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런 노동 역시 우리는 분명히 다른 형태의 노동과 같은 방식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보다시피, 피케티는 자본이자를 인정한다. 자본주의의 급소를 공격하지 않고 우회한다는 것.
기업가 소득은 기업경영을 통한 근로소득과 가진 돈의 이자로 불리는 불로소득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인정해야 하지만 후자는 부정해야 한다. 불로소득은 필연적으로 근로소득을 약탈하는 것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피케티는 결국 불로소득의 원천은 안 건드린다. 반면, 실비오 게젤은 불로소득의 원천을 개혁한다. 피케티 방법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며, 이것이 내가 피케티의 손을 들어줄 수가 없는 이유다.
또, 피케티의 방법은 경제시스템 결함이 낳는 다른 사회문제들을 한번에 해결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기존 결함이 낳는 사회악은 빈부격차 뿐 아니라 환경파괴·범죄·전쟁·문화파괴 등 아주 다양한 방향으로 증식해가고 있는데, 피케티의 해법은 문제의 뿌리를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그 뿌리에서 파생된 다른 문제를 다룰 수가 없다. 심지어 소득불평등조차도 완전하게 해결되지 못한다. 피케티의 해법에 따르면, 자본가들한테 누진적인 자본세를 통해 세금을 걷은 다음에 그것을 재분배해야 한다. 그 분배과정은 정치라고 하는 인위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진다. 정치는 알다시피 수많은 개인 사이의 다툼, 수많은 집단 사이의 투쟁이다. 많이 가져가는 사람도 있고 적게 가져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더 많은 열매를 차지하느냐는 더 많은 정치적 영향력, 커넥션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렸을 것이다. 이 과정은 지금의 정치처럼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그 누구도 만족할 수 없다. 경제주체는 전부 아귀처럼 "자본세로 거둬들인 돈"에 달려들어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어치우려 들 것이다.
또, 피케티의 해법은 나라마다 다른 세부기준을 통일하는데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들 것이다. 각 나라는 그 나라만의 특수성이 있다. 그걸 무시하고 통일된 과세기준을 들이미는 건 반발을 살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은 나라별 빈부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 가난한 나라의 자본과 부자나라의 자본에 똑같이 세금을 매기면 어떻게 될까? 더 좋은 나라로 자본이 이탈하지 않을까? 이것도 부자나라에서 걷은 세금을 가난한 나라한테 갖다줘서 해결할 수 있을까? 부자나라 국민들이 여기에 동의할 수 있을까?
우파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피케티라는 풍선을 띄워놓고 사람들이 그걸 보게 하자. 자기들이 얼마나 실현불가능한 목표를 이루려고 하는지 보여주고 좌절시키자. 그리고 피케티가 고백한 "자본에 대한 긍정"은 기존 경제질서의 결함을 감추는데 활용하자."
이와 같이 피케티는 양의 탈을 쓴 늑대이며, 아군처럼 보이는 트로이의 목마다.
기존경제질서의 근본적인 결함인 "땅사유권"과 "액면가가 불변하는 돈"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경제담론도 무의미하다. 이것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담스미스·맑스·케인즈·하이에크·밀턴프리드먼 모두 정답이 아니다. 그런 것들을 적당히 섞어 만든 칵테일요법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왜? 땅과 돈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실비오 게젤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토지제도와 화폐제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사회운동은 근본적인 해법을 추구해야 한다. 비슷해보이는 어떤 것과도 타협하면 안된다.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는 경제시스템의 근본적인 결함을 바로잡아 소득불평등 뿐 아니라 모든 사회악을 동시에 해결한다. 실비오 게젤의 개혁은 임의적인 개입 없이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는 자연스러운 방법을 제공하며, 그것으로 모든 복잡한 시스템을 일소한다. 피케티 해법의 전제가 되는 국제공조는 자연스러운 경제질서를 만드는 최종단계(국제통화협회)에서도 필요하다. 하지만 더 심플하다. 바꿔야 할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전세계 정부 세제를 하나하나 개혁하느라 진땀 뺄 시간에 각 나라 정부가 게젤이 제시한 대로 땅과 돈을 개혁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제무역에 쓰는 국제통화(IVA)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 끝난다. 기존 경제질서의 결함이 만들어내는 부작용을 보상하려고 덧붙여야 하고 유지할 수 밖에 없었던 수백 수천 수만의 어리석은 제도들이 전부 폐기될 것이다. 수요와 공급은 일치하게 되고 불로소득은 제로가 되어 그 결과 나라별 지역별 개인별 빈부격차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다. 자유경쟁은 공정해지기 때문에 남아있는 격차에 대해 아무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피케티는 "부의 불평등"에 대한 의미있는 담론의 불쏘시개로 써야 한다. 다시 말해 피케티를 계기로 하여 실비오 게젤을 발견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