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러운 경제질서>와 맨큐

칼럼

먹고 사는데 바쁜 소시민이 평범해보이는 일상 속에서 진실을 포착할 때가 있다. 그 때 우리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갈대숲으로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가슴 속에 담긴 말을 쏟아낸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 그레고리 맨큐는 그 중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다음은 맨큐가 뉴욕타임즈라는 갈대밭에서 실비오 게젤을 언급한 대목이다.

맨큐의 뉴욕타임즈 기고문 (한글기사)

하지만 맨큐의 언급은 불완전했으며(국제통화협회·공짜땅개혁은 빼먹었다.1) 겁쟁이처럼 진부한 기존경제담론으로 뒷걸음질쳤다.(FRB한테 인플레 조장을 권고했다. 맨큐는 결과적으로 게젤 이론을 완전히 왜곡해버렸다.) 학생들은 맨큐의 언급 속에 숨어있는 "실비오 게젤"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맨큐의 강의를 땡땡이치고 월가를 점령하기에 바빴다.

자, 이제 말해보자. 무엇이 바뀌었는가? 뭘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피켓들고 목소리만 높이면 문제가 해결될까? 경제시스템의 근본적인 결함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다람쥐 쳇바퀴만 돌릴 것이다.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가 다룬 "경제안정의 바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모든 사회운동은 그야말로 헛짓이 될 것이다. 그건 그냥 기계적인 반작용 그 이상이 아니다. 움직이기 전에 생각해야 한다. 사회운동의 방향은 다시 조정되어야 한다.

기존 사회운동의 문제의식은 옳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려는 방법은 효과가 없다. 우리는 지금 모래 위에 성을 쌓는 어린이와 같다. 지금까지 시도했던 모든 조치들은 대증요법이다. 돈과 땅의 결함을 바로잡지 않는 한, 그것들이 몰고 올 경제위기·혁명·하이퍼인플레의 쓰나미는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가짜 평화"를 집어삼킬 것이다.

돈은 교환매개물로 도입됐지만 그 액면가가 불변하므로 이자를 낳고 그 본래의 기능은 억제되고 주기적으로 경제흐름을 마비시킨다. 땅은 인류 모두의 것이지만 사유권을 인정함으로써 악조건에서 경제활동할 때 배어나오는 수많은 갈등이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그런 고통과 분열이 초래한 비극들은 영화·드라마로 만들어져 후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집단마스터베이션도구로 활용될 뿐, 그 어떤 의미있는 교훈도 주지 못하고 있다. "돈을 모아두자"라든지 "우리도 힘을 길러야 돼", 이건 교훈이 아니라 반작용이다. 개인이 돈을 모아두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돈의 순환이 더 억제되는 꼴이니 경제위기는 더 일찍 찾아올 것 아닌가? 한 나라가 군비를 늘리면 다른 나라도 군비를 늘릴테니 전쟁은 더 크게 터질 것 아닌가?2 이런 식으로 진부한 세상은 계속된다.

이런 진부한 세상을 끝장내려면 이자와 지대를 끝장내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돈이 이자를 낳는 것, 땅이 지대를 낳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다. 그건 공기처럼 당연하게 느껴져서 그걸 바꿔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건 관습이 아니라 개선이 필요한 사회제도임이 분명하다.

돈이 이자를 낳지 않고 상품처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되면 수요가 공급의 뒤꽁무니를 바짝 추격하여 수급불균형이 해소될 것 아닌가? 그러면 케인즈처럼 인위적으로 유효수요를 창출할 필요도 없고 하이에크처럼 상태를 방치하여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키려고 기형적으로 변형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땅사유권이 폐지되고 지대가 공동체로 환원되어 모두의 복리에 쓰이면 땅을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어 개인·지역·국가·민족·종교 사이에 쌓아올린 벽이 무너질 것 아닌가? 그러면 사회갈등을 억제하는데 필요했던 복잡한 제도와 문화가 폐기되고 그런 시스템을 감당하는데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들이 제로가 될 것이다.

맨큐는 갈대밭3에서 속삭여야 했다. 그가 주류경제학자라는 걸 감안할 때 그건 어쩔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4 하지만 우리는 이제 갈대밭에서 나와야 한다. 실비오 게젤의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The Natural Economic Order>에 담긴 진실은 거리에서 광장에서 시장에서 학교에서 인터넷에서 더 크게 더 힘차게 울려퍼져야 한다. 진실이 이 시스템을 모두 뒤덮어버릴 때까지 멈추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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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엄밀히 말하면 "마이너스금리"라는 표현도 달갑지 않다. 이건 어쨌거나 이자라는 표현을 남겨두니까. 게젤도 <자연스러운 경제질서> V 로빈슨크루소 이야기에서 우화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음의 이자"를 부정한다. 따라서 게젤의 공짜돈개혁에 대한 올바른 표현은 "돈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한다."가 되어야 한다. 이런 표현은 이 개혁의 본질을 드러내므로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 기존경제질서에서 한 개인의 이익과 집단의 이익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한 민족의 이익과 다른 민족의 이익도 그러하다.텍스트로 돌아가기
  3. 세계적인 유력지 뉴욕타임즈를 갈대밭에 비유한 건 무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맨큐의 소심함은 뉴욕타임즈를 갈대밭으로 만들어버리고도 남았다.텍스트로 돌아가기
  4. 맨큐가 있는 그대로 까발렸다면 다음과 같이 얘기할 것이다. "기존 경제시스템으로 계속 버티면서 뭔가 개선해보려고 하는 건 미친 짓이야. 땅과 돈을 개혁해야 해. 그리고 미국 달러화를 기축통화 자리에서 내쫓고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국제통화협회로 민주적이고 공정한 국제무역의 기초부터 다시 세워야지." 미국 달러 기축통화제를 무너뜨리면 미국의 패권도 무너진다.(정확히 말하면 미국 거대자본가의 패권이 무너진다.) 바로 이 지점이 주류경제학이 여태껏 결코 건드리지 못했던 성역이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2014/09/26 22:19 2014/09/2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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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17/01/14 01:24 URL EDIT REPLY
그렇군요 근데 왜 개혁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에 왜 주의 하라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알게 된다면 어떤 문제라도 생기나요? 그리고 문장상으론 돈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인 것 같은데 그래도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묻겠습니다 1번 각주에 "이런 표현"이라는 말이 가리키는 것은 무엇 입니까? 마이너스 금리인가요 아니면 돈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인가요?
$low | 2017/01/22 23:00 URL EDIT
게젤의 공짜돈 개혁은 '돈 액면가를 정기적으로 감가상각하는 것'이 맞는 표현입니다. '마이너스 금리'라는 표현은 게젤과 상관 없습니다. 그것은 왜곡이니 주의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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