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구조조정 이후 대공장에는 비정규직을 배경으로 정규직노조와 회사 간에 안정적인 노사관계가 구축되었다. 이런 대공장 노사관계에 있어 가장 큰 변수로 꼽히고 있는 것이 완성차 공장에서 주간연속2교대제 도입과 복수노조 허용이다. 과연 이러한 변수들이 고착된 것처럼보이는 대공장 질서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현실은 주간연속2교대제와 복수노조 허용이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의 종속성을 강화하고 대공장과 여타 부분의 이질성를 더욱 강화하는 것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 속에서 대공장은 점차 광범위한 저임금·불안정 노동자들의 바다에 떠있는 고립된 섬이 되어가고 있다. [편집자]
연재순서
⑴ 대공장 노조운동은 아직도 노동계급운동의 중심인가?
⑵ 복수노조와 주간연속2교대제는 대공장 운동질서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 것인가?
⑶ 사회주의자들은 어떠한 방향을 취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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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신경영전략과 98년과 99년의 구조조정을 거치며 2000년대 들어 대공장에는 협력적 노사관계와 산업평화가 구축되었다. 대부분의 조선사업장에는 어용노조가 들어섰으며 겉보기에는 여전히 소위 민주노조가 건재하고 있는 완성차 대공장들의 경우도 실제로는 노사협의회에 기초한 일상적 합의구조를 통해 산업평화가 유지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그나마 형식적으로 진행되던 임·단협 투쟁조차 쟁의절차 없이 마무리되는 일이 대세가 되고 있다.
이 속에서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은 비정규직노동자들과 관련 중소업체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성을 누리고 있다. 이는 대공장 내부의 고용형태가 나날이 다양화되는 가운데 가장 큰 균질적인 집단으로서 대공장 정규직이 공장 전체의 대표자로 기능하며 공장질서의 통제자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대공장이 다시 노동계급 운동의 전위로 서기 위해서는 이런 체제가 깨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지금의 대공장 질서에, 특히 자동차 대공장에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몇 가지 변수들이 등장하고 있다. 바로 복수노조 도입과 주간연속2교대제를 비롯한 근무형태의 변경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변화들이 기존 대공장 질서에 어떤 영향을 불러올 것인가?
제조업의 축소
현대자동차는 곧 주간연속2교대제를 실행 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스코를 중심으로 철강 산업에서는 작년 말 근무형태가 4조 3교대제에서 4조 2교대제로 바뀌었다. 철강 산업의 경우는 8시간 3교대를 12시간 2교대로 변경하는 것이고, 자동차 산업의 경우 10시간(법정노동시간 8시간과 잔업 2시간)+10시간 교대제를 8시간+8시간, 혹은 8시간+9시간으로 바꾸는 것이다.
출처 : 한겨레신문
이렇게 근무형태를 변경하면 법정노동시간은 변동이 없지만 제조업에서 일상화된 잔업이 없어지기 때문에 노동시간이 실질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정규직노동자들의 고용을 더욱 안정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러한 제조업에서 노동시간의 단축은 세계적 차원에서 제조업의 축소라는 배경 아래에서 등장하고 있다. 흔히 ‘탈산업화’라고 불리는 제조업의 축소현상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사회주의자들은 대개 이런 양상을 부정하거나 무시해왔다.
앙드레 고르 등에 의해 좌파 내에서 탈산업화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하던 1980년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이론가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크리스 하먼은 「‘신중간계급’과 사회주의 정치 (1983)」,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투표하는가? (1985)」, 「경기침체 이후의 노동자계급 (1986)」등의 논문을 통해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제조업과 전통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산업 노동자들의 주도성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했다.1)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폴 켈록은 이런 논지를 확대시켜 1987년 <국제사회주의 (International Socialism)>에 기고한 「과연 노동자계급에게 안녕을 고할 것인가 (Goodbye to the working class?)」2)라는 논문에서 UN 자료에 근거해 전통적인 산업 프롤레타리아트가 세계적 차원에서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폴 켈록에 따르면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전통적인 제조업 노동자들이 다소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남한, 대만, 싱가폴, 터키, 이란,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등 제 3세계 국가들에서 더 큰 규모로 증가되었다. 1971년에서 1982년 사이 북미와 서유럽에서는 6.5%의 산업고용의 감소가 있었지만 세계적인 규모에서는 산업 고용이 14.1%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들도 인정했듯이 1970년대 이후 북미와 서유럽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제조업 비중이 뚜렷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산업 노동자들의 사회적 비중이 줄어듦에 따라 산업 노동자들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고 있던 좌파 정당들도 약화되었다. 사민당과 공산당 등 유럽의 좌파 정당들은 중간계급 동맹노선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러한 노선은 대개 이 정당들의 탈계급화와 우익화로 귀결되었다.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이론가들이 세계적인 차원에서 탈산업화가 아니라 산업의 확대와 이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이러한 탈산업화론이 노동당을 비롯한 좌파 정당들의 우경화 경향의 기초가 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당한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세계적인 차원에서 제조업 비중의 축소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이 명확해 지고 있다. 2003년 미국 알리안스 자산관리(Alliance Capital Management LP)의 경제전문가들이 세계 20대 경제국 고용 동향을 분석한 결과 1995~2002년까지 제조업분야에서 줄어든 일자리가 2200만여 개에 달해 11%가 넘는 감소폭을 기록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기간 미국의 제조업 고용은 11.3% 하락했으며 일본은 16.1% 하락했다.
그런데 제조업 고용의 축소는 선진국만의 현상이 아니었다. 신흥공업국이라고 불리는 브라질과 중국 역시 각기 19.9%, 15.3%나 제조업 일자리가 감소했다. 폴 켈록이 산업 노동자 증가의 대표적인 예로 제시한 남한에서 제조업 일자리는 11.6% 감소했다. 예외적으로 멕시코와 같은 경우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과 환율 평가절하 등에 힘입어 같은 기간 제조업 고용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이 역시 2000년대 들어서는 증가율이 크게 둔화되었다고 한다. 이런 결과는 사회주의노동자당 이론가들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창출의 진원지라고 주장한 신흥 산업국에서도 90년대 이후 제조업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제러미 러프킨은 『노동의 종말 (The End of Work, 1995)』이란 책을 통해 생산성의 향상으로 말미암아 제조업 뿐 아니라 모든 산업에서 전통적인 인간 노동이 소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극단적인 주장의 옳고 그름은 일단 차치하더라도 세계적으로 총고용, 특히 제조업 고용이 줄어들고 있음은 명확한 사실이다. 또한 이러한 현상의 주된 원인이 기술혁신으로 말미암은 생산성의 향상에 있음도 분명하다.
현재의 제조업은 산업자본주의의 등장 이후 농업이 그러했던 것처럼 사회적 생산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농업 생산성의 향상이 산업자본주의가 나타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듯이 제조업 생산성 향상으로부터 생겨난 사회적 여력은 새로운 사회적 필요들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사회적 필요에 대응하는 일자리는 흔히 우리가 서비스 산업이라고 부르는 영역에서 창출되고 있다. 그리고 서비스 산업 부분에서 창출되는 일자리는 대부분 저임금과 불안정 고용에 처해있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대량으로 창출되고 있다면 이는 제조업 부분이 아니라 산업구성의 변화와 함께 확대되고 있는 비제조업·서비스 분야에서 등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동자들은 일상적인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고통 받고 있으며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서 강력한 사회 불만 세력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조직된 노동운동이 아니라 급진적인 개인이나 시민으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 산업재편에 살아남고 대부분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대공장 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높은 노동조건을 확보하고 점차 보수적인 집단이 되고 있다.
남한에서 제조업 고용의 감소
남한 제조업의 비중은 아직 다른 산업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남한 경제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GDP의 27.9%로 미국 12.6%, 일본 20.2%, 독일 22.7%보다 높다. 현재 세계 제조업 생산에서 남한이 차지하는 위치는 미국, 중국,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 7위에 올라있다. 수치로만 볼 때 남한은 여전히 강력한 산업 국가이며 북미와 서유럽 국가들처럼 탈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남한의 제조업 역시 90년대 중후반을 정점으로 그 비중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다. 1991년에는 500만 명이었던 제조업 취업자 수는 작년 402만 명으로 전체 취업자의 16.9%에 불과했다.
서구의 선진자본주의 국가, 특히 유럽에서는 탈산업화의 진행과 함께 안정적인 제조업 일자리가 점차 줄어들면서 8·90년대 들어 노동시간단축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노동시간의 단축은 대개 고용불안의 확대에 따른 일자리 나누기라는 명목으로 제기되었지만 실제로는 조직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유연화 도입이 교환되는 양태로 나타났다. 그 결과 안정된 일자리의 창출 효과는 미미했으며 비제조업·서비스 분야에서 고용이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들이 늘어났다.
남한에서도 지난 2002년 주5일제가 도입되며 법정노동시간이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었다. 이 역시 다른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일자리 나누기라는 명복으로 추진되었지만 실제로는 중소제조업의 해외이전과 레저·관광 등 서비스 산업으로 국내 산업구조 전환을 유도하고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주5일제를 명분으로 탄력적 노동시간제의 확대와 법정휴무일의 축소, 유급휴가의 무급휴가로의 대체 등 노동유연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근로기준법이 개악되었다.
구조조정과 주5일제 도입을 거치며 남한 제조업은 섬유산업 등 중소제조업이 퇴출되고 자동차·조선·철강·전자 등 소위 수출 대자본의 주력 업종과 그 연관 분야를 중심으로 남게 되었다. 이들 분야에서 남한 자본은 세계적인 초국적 독과점체제의 최상층부에 진입했으며 지난 20년 동안 호황을 누려왔다.
하지만 막대한 이윤창출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남한의 수출대자본은 국내 설비투자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 2000년대 들어 대기업은 설비투자는 대부분 해외에 집중되고 있으며 남아도는 돈은 사내유보금으로 쌓아두고 있다. 현대·기아 자동차의 경우 IMF 이후 국내 생산능력은 확충하지 않고 해외공장 신설에 주력했으며 국내 공장에 대해서는 모듈화·플랫폼 통합 등 합리화 공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해외 생산의 규모는 꾸준히 늘어 2010년을 기점으로 해외생산이 국내생산을 앞지르게 되었다. 반면 국내 공장의 고용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이로 인해 정규직노동자들의 고용은 거의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으나 90년대 이후 지속적인 증가세를 보였던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수가 2000년대 중반을 정점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만 명에 육박하던 사내하청노동자 수는 현재 6000명 정도에 불과하다. 울산공장 만큼 폭이 크진 않지만 다른 완성차 사업장에서도 하청노동자들의 수는 조금씩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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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울산공장 1차 하청 수와 직영대비 비율 추이
(출처 : 금속노조 정책연구보고서, 금속노조 비정규노동자 조직화 전략에 대한 진단과 대안 연구) |
대규모 제조업의 해외 진출은 자동차 산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조선 산업의 경우 한진중공업, STX조선 등 중위권 조선업체들을 중심으로 해외진출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빅에 70만 평 규모의 대규모 조선소를 설립했으며 STX조선은 중국에 100만 평 규모의 조선소를 설립했다. ‘빅3’라는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블록공장과 선박수리 조선소를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에 건설했고 상대적으로 해외 투자에 소극적인 현대중공업도 2006년 중국 상하이에 지주회사를 설립했다. 대표적인 철강업체인 포스코 역시 중국, 인도, 브라질에 진출해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그 결과 수출제조업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고용은 답보상태에 있으며 탈산업화와 산업공동화는 남한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의 고용을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4) 자동차를 비롯해 제조업에서 근무형태 변경이 논의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주간연속 2교대제의 제기 배경
자동차 산업에서 주간연속2교대제는 애초에 정규직노조의 요구였다. 98년 IMF 사태가 나고 구조조정의 위기에 처한 현대자동차 정규직노동자들은 근무형태를 종전의 주야맞교대에서 주간연속교대제로 바꿈으로써 노동시간을 줄이고 고용을 보장받으려 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99년 이후 자동차 산업이 다시 호황에 접어들고 비정규직 증가에 기반한 일상적 합의구조가 형성되면서 굳이 근무형태 변경을 논의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들어 사측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주간연속2교대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현대차 노사는 2005년 단협을 통해 2009년 1월1일부터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으며, 2006년에는 교대제 변경과 연계한 월급제 시행을 합의했다. 2008년 단협에서는 ‘8+8시간’ 체제로 가는 과도기로 ‘8+9시간’체제에 합의해 주간연속2교대제가 곧 시행될 것처럼 보였다.
주간연속2교대제에 대한 사측의 태도가 변한 것은 구조조정 이후 형성된 산업평화 체제가 2000년대 중반 들어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앞선 연재에서 지적 했듯이 자동차뿐 아니라 남한의 주요 수출제조업이 갖고 있는 경쟁력의 대부분은 사내하도급과 연관 중소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현대·기아자동차가 정규직의 총고용과 높은 임금을 유지하면서도 세계시장에서 경쟁우위에 설 수 있는 것은 사내하청 제도와 부품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초과착취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다. 남한 제조업 특유의 사내하청 제도는 고용유연성 뿐 아니라 커다란 임금 차별을 수반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고용과 노동조건이 상당히 개선되었다고 하는 1차 하청노동자의 경우에도 임금은 여전히 정규직의 60% 수준에 불과하다.
또한 플랫폼 통합·모듈화와 함께 현대모비스처럼 현대자본이 직접 설립한 대형 모듈회사가 등장하면서 종래의 1차 부품업체 상당수가 모듈회사에 부품을 공급하는 2차 업체로 전락했다. 그 결과 부품업체에 대한 완성차 자본의 지배력은 훨씬 강화되었고 부품업체의 저임금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현대모비스는 전국에 산재한 12개의 공장 대부분이 완성차 공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면서 직서열 방식(완성차 생산순서에 맞춰 부품을 차례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모듈을 공급하고 있다. 특히 울산·서산·아산·이화공장 등 대다수 공장에서 생산라인 전부 혹은 대부분이 사내하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저임금과 높은 노동 강도로 악명을 떨치고 있다.
대형 모듈업체에 종속되지 않은 소수의 1차 부품업체들은 완성차 노동자들에 육박하는 노동조건을 갖고 있지만 대형 모듈업체에 종속된 2차 부품업체들로 갈수록 노동조건은 급격히 떨어진다. 실제로 자동차 산업의 2차 부품업체들의 경우 완성차 공장의 1차 하청노동자보다도 임금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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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 업체별 임금수준
(출처 : 금속노조 정책연구보고서, 금속노조 비정규노동자 조직화 전략에 대한 진단과 대안 연구) |
수출 제조업의 대자본들은 이런 체제를 통해 정규직에게는 고용보장과 고임금을 선사하고 산업평화를 유지하면서 높은 이윤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와 철강 산업을 중심으로 사내하도급의 불법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되기 시작했다. 근대 노동법에서 일반적으로 순수한 인력파견은 중간업체에 의한 이중착취의 위험성 때문에 최근까지 금지되어 왔다. 90년대 들어와서야 세계적으로 노동유연화가 강제되며 부분적으로 허용되는 추세이다. 남한 역시 98년 노동법 개악으로 파견법이 도입되며 일부 직종에서 인력파견이 허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인력파견 역시 엄격한 제한을 두고 사용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공장제도의 형성과정 자체가 선대제 같은 전자본주적인 유제들을 정리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공장 생산라인에서 인력파견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최근에야 제조업에서도 인력파견이 조금씩 도입되고 있으나 이 역시 임금조건 등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에서는 파견법이 도입되기 전부터, 길게는 70년대 대공장 형성 초기부터 사내하청이라는 이름의 불법 인력파견이 조선·자동차·철강 등 주요 제조업체에 공공연히 존재해 왔다.
본래 하청관계란 어떤 사업자(원청)가 수행해야할 일의 일부를 다른 업자(하청)에게 완성·납품하도록 하는 계약관계를 의미한다. 사내하청이란 이러한 하청관계가 원청 작업장 내부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내하청은 사실 인력파견과 구별되지 않는 위장된 인력파견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원칙적으로 하청과 인력파견의 근본적인 차이는 생산수단의 소유여부로 판명되기 때문에 사내하청이 불법성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청노동이 원청업체가 빌려주는 설비와 자재를 가지고 수행되는 외양을 띤다.
그래서 사내하청이 불법 파견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원청업체에 의한 근로감독이 명확해야 한다. 하청문제가 가장 심각한 조선 산업의 경우 오히려 하청의 비율이 워낙 높고 하청노동자들이 독립적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불법파견 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동차와 철강 등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 원청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작업을 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았기 때문에 불법 판정이 내려질 소지가 많았다.
이로 인해 2003년 자동차와 철강 등 사내하청이 많은 사업장에서 광범위하게 불법파견 진정이 들어갔고 정규직화 쟁취를 위한 하청노조의 건설이 급증했다. 2003~5년 사이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광범위하게 벌어졌으며 이는 상당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투쟁이 패배하면서 하청노조들이 거의 유명무실화되었지만 이후 적어도 1차 하청노동자들에 있어서는 고용이 보장되고 노동조건이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
수년 동안의 호황으로 정규직의 임금이 상당히 높아졌고 1차 하청 역시 이전처럼 무조건 저임금을 강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착취구조를 재편성할 필요성이 등장했다. 이러한 필요에 부합하고 있는 것이 주간연속2교대제 통한 노동시간단축이다. 따라서 주간연속2교대제 논의를 노조가 먼저 제기한 것은 사실이지만 철저히 자본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주간연속 2교대제가 불러올 결과
현재 대공장 임금체제는 노동시간에 연동되어 있기 때문에 현행 임금체계로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시행했을 경우 임금이 크게 줄 수밖에 없다. 비록 노조 측에서 “노동시간 연장, 임금삭감, 노동강도 강화 없는 주간연속2교대제”라는 소위 ‘3무원칙’을 내걸긴 했지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임금보전이었다. 때문에 현대차 노조는 주간연속2교대제와 함께 월급제 전환을 요구했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고 물량이 축소되면서 고환율로 해외생산의 증가도 잠시 답보상태에 놓였다. 여기에 현대차 노조집행부의 사퇴 등 돌발 상황이 불거지면서 현대자본은 노동시간단축에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였고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은 수년 째 지연되었다. 이 사이 노동조합이 애초에 내세웠던 3무원칙은 사실상 유야무야되었다.
그러나 세계 경제위기와 함께 생산 감소가 예상되면서 자동차 산업에서 주간연속2교대제도 빠르게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자동차에서는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기아차 노조선거에서는 모든 후보들이 주간연속2교대제 실시를 주요한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이미 3무원칙을 제기하는 후보는 아무도 없었다.
완성차 대공장의 정규직노동자들은 이미 상당한 고령으로 40대 중후반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십여 년 간 호황이 계속되고 임금이 꾸준히 오른 덕분에 이들은 집도 장만하고 자식 교육 문제도 일정정도 해결한 상태이다. 주택 대출금도 대부분 상환했고 회사에서 무상으로 받은 주식은 착실하게 올랐다. 반면 고령화에 따라 야간노동은 더욱 고통스러워지고 있으며 공장을 그만 둘 경우 새로운 일을 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임금에 대한 욕구보다는 고용안정에 대한 욕망이 강하다.
대다수의 정규직노동자들은 임금이 상당히 삭감될지라도 퇴직할 때까지 고용안정을 보장받고 힘든 야간근무를 안 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때문에 정규직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주간연속2교대제를 비롯한 근무형태 변경은 ‘상생(相生)’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웬만큼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정규직노동자들이 주간연속2교대제 사안을 가지고 투쟁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주간연속2교대제는 대공장 정규직 이외의 부분에서 구조조정의 기제로 작용할 것이다. 교대제 형태 변경에 따라 완성차 공장의 생산 시스템이 변하면 당연히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과 완성차 라인에 직서열된 모듈업체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주간연속2교대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완성차 공장과 모듈화에 종속되지 않은 1차 부품업체들 뿐이다.
주간연속2교대제 문제로 투쟁이 벌어진 유성기업은 자동차엔진의 핵심부품인 피스톤링과 실린더라이너 등을 생산해서 현대·기아, GM대우, 르노삼성 등 완성차 공장에 납품하는 회사이다. 완성차 업체보다 앞서 주간연속 2교대제를 체결해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는 두원정공은 디젤엔진에 장착되는 펌프를 독점적으로 생산하여 완성차 공장에 납품하는 회사이다. 주간연속2교대제가 논의되고 있는 만도, 한라공조, 케피코 등 다른 부품업체들도 대개 마찬가지다. 이런 사업장들은 노동조건이 완성차에 육박하고 노조 조직률도 높은 편이다.
이들 업체들은 모듈업체와 달리 직서열된 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완성차공장의 근무형태 변경에 직접 영향을 받진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 사업장의 경우, 완성차 공장과 비슷한 노동조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조의 요구로 주간연속2교대제가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성기업의 예에서 보듯이 이들 사업장에서도 주간연속2교대제는 노조탄압의 기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조지도부가 강성인 유성기업의 경우 주간연속2교대제 전환 시 노동조건 합의 기준이 높아지는 선례를 막기 위해 완성차 자본이 노조탄압을 직접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보다 큰 문제는 사내하청을 비롯해서 노조가 없거나 취약한 저임금 업체들이다. 교섭력이 약한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임금 및 노동조건은 주간연속 2교대제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대형 모듈업체에 부품을 납품하고 있는 소규모 부품업체들 역시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 그렇지만 이들은 주간연속2교대제 논의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주간연속2교대제가 불러온 자동차 산업의 구조조정은 정규직과 일부 1차 부품업체 정규직노동자들에게 고용보장을 대가로 임금에 대한 일정한 양보를 받아내는 한편 이를 기준으로 사내 비정규직과 하위 생산계열에 있는 부품업체 노동자들에 대해 인원정리와 저임금을 강요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주간연속2교대제가 불러올 이러한 결과에 맞서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이 과연 사활을 건 투쟁을 펼칠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낮다. 유성기업 투쟁에 대해서도 완성차 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다.
노동정책의 변화와 복수노조
박정희 군사정권의 등장 이후 남한 노동법은 노동자들의 단결권·단체행동권을 제한하여 노조설립을 어렵게 하는 대신 개별 노동자의 권리를 근로기준법을 통해 비교적 높은 수준으로 보장하는 형태를 취해왔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집단적인 투쟁이 가로막혀 있는데 근로기준법이 아무리 잘 만들어졌어도 지켜질 리 없었다. 때문에 남한 노동운동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전태일 열사의 외침에서 시작되었다.
노동법이 가진 반노조적 성격은 유신체제와 신군부 정권을 거치며 산별노조가 법적으로 금지되는 등 더욱 강화되었다. 하지만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약진한 민주노조 운동은 이러한 반노조 입법들을 힘으로 무효화시켰다. 민주노조 진영은 불법화된 민주노조 운동을 합법화시키고 정치활동 금지 등 여러가지 제약을 없앨 것을 요구했다. 그로 인해 민주화 이후 노동법 개정 흐름은 잠시 동안 이미 강력한 현실 세력으로 떠오른 민주노조 운동을 합법화·제도화하는 방향을 취했다.
하지만 정부의 노동정책은 90년대 들어 당시 세계적인 추세에 발맞추어 노동유연화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민주노조 운동의 합법화·제도화 요구와 정부의 노동유연화 제도화 요구는 98년 노사정 합의를 통해 맞바꿔졌다.
2000년대 들어 노동유연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제조업을 축소하고 서비스 산업의 확대를 유도하는 정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서 2010년 사이에 남한의 제조업 고용은 100만 명이 줄고 서비스업 고용은 770만 명이 늘었다. 이는 90년대 이후 새롭게 창출되는 일자리가 대부분 서비스업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앞서 지적한 대로 노동시간 단축은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주5일제 도입과 비슷한 시기에 논의되기 시작한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은 변화된 상황에 대처하는 노동정책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은 노동유연화를 더욱 강화하고 새롭게 창출되는 산업에 노조설립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그 골자는 기존의 노조 중심의 노사관계를 노사협의회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이후 벌어진 노동법 개악과 복수노조 도입 등 노동정책의 기본방향은 정권의 교체와 무관하게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을 따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2009년 12월 민주노총을 배제한 노사정위원회에서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실시가 합의되었고 같은 달 국회에서 통과되었는데, 이명박 정권에서 추진된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 노동법 개악과 복수노조 허용은 모두 노사관계로드맵의 기본 방향에 따라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노사협의회의 역할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통과되자 민주노총은 부랴부랴 정부가 후속논의를 위해 구성한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이하 ‘근심위')참여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2010년 4월3일 일방적으로 ‘근로시간면제자’라는 개념을 만들어 이들의 활동시간과 내용, 그리고 인원까지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타임오프 매뉴얼을 배포했는데, ‘근로시간면제자’는 기존에 노조가 자율적으로 선출했던 ‘노조전임자’와는 달리 노사 간의 합의를 통해 선정해야 하고 그 이외의 노조전임자를 둘 수 있으나 노조 자체의 재정을 통해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었다. 민주노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메이데이 새벽 근심위는 타임오프제를 기습적으로 처리했다.
이런 변화 역시 대공장과 여타 부분에 다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대공장 노조관료들은 애초부터 타임오프제 반대 투쟁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자본과의 개별적인 합의를 통해 편법으로 빠져나갈 수단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기아차 노조관료들은 처음부터 MB정권의 노동운동 탄압과 타임오프에 반대하는 금속노조 총파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혀 총파업을 무력화시키는 데 크게 공헌했다.
결국 타임오프제 투쟁의 대리전이라던 기아차 임·단협에서 기아차 노조관료들은 수당을 신설하는 편법을 통해 전임자 임금을 보전받기로 사측과 합의하고 투쟁전선에서 빠져나갔다. 이런 예는 대공장에서 자본 역시 노조와 직접적인 충돌보다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소규모 노조들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로 노조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졌다.
복수노조 역시 마찬가지다. 97년 노사정 합의에 의해 통과된 복수노조 허용은 오랫동안 시행이 미루어져 오다가 올해부터 시행되었다. 본래 복수노조 허용은 민주노조 진영의 오랜 요구였다. 남한에서 복수노조 금지는 5·16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독재 정권이 1963년 노동법 개악을 통해 도입한 것으로 그 목적은 어용노조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민주노조 운동은 어용노조가 이미 존재하는 사업장에서 민주노조 건설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폐지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5)
하지만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르고 대다수 대규모 사업장에서 민주노총 산하 노조가 안착된 지금 복수노조를 둘러싼 노자간의 이해는 뒤바켰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복수노조 허용을 내세워 근기법 개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특히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제기된 교섭창구 단일화는 자율적으로 교섭창구가 단일화 되지 않거나 과반수 노조가 없을 경우 조합원 수에 비례해서 공동교섭대표단을 꾸리고 조합원 수가 10% 미만인 노조는 공동교섭 대표단에서 제외되게 되어있다. 때문에 소규모 노조는 설립되더라도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이 보장되기 어렵다.
복수노조 시행은 중소사업장에서 과반수를 조직하지 못한 소수 노조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하다. 반면 대공장의 경우 복수노조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기존 노조가 교섭권을 잃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미 조합원의 대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대공장 노조관료들의 입장에서 교섭창구 단일화는 오히려 쌍수를 들고 반길 일이다. 복수노조 허용과 교섭창구 단일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대형노조만이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받는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공장에서도 복수노조 허용에 의한 어용노조의 등장 가능성은 자본에 대한 종속성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미 대공장에서 실제로 많은 사안이 노사협의회를 통해 처리되고 있다. 지난 연재에서 지적했듯이 이러한 체제는 대공장에서 일상적인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평화를 유지하는 주요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역으로 노조관료들이 노사협의회를 이용해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경우도 많다. 일례로 지난 6월말 한진중공업 노조가 파업을 접을 때 채길용 집행부는 직권조인 형식을 피하기 위해 노조가 아니라 노사협의회 대표 자격으로 사측과 합의했다. 노조전임자 문제 역시 노사협의회를 통해 각종 위원을 확대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기 때문에 대공장에서 노사협의회의 역할은 갈수록 강화될 것이다. 6)
문제는 노조가 없는 신규사업장들에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복수노조 허용 이후 새롭게 건설된 노조들은 대부분 어용노조로 나타나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 이후 건설된 신규노조의 70% 정도가 친사용자 성향의 노조로 알려져 있다. 신규사업장에서 노조를 설립한다 해도 여러 노조 중의 하나에 불과할 경우가 많아진 것이다. 이런 노조 난립 상황에서 신생노조가 노조로서 제기능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렇게 될수록 노조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사측과 교섭은 노사협의회를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 질 것이다. 결국 복수노조 허용을 구실로 강행된 노동법 개악은 무노조 사업장에서 노조설립을 원천적으로 가로 막고 노사협의회를 통해 노동자들의 불만을 포섭할 의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청노동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작년 말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이 벌어지며 다시 사내하청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자 정부는 올해 7월18일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데 이어 9월9일에는 비정규직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역시 비정규직종합대책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상 사내하청 문제가 중심이 된 대책이었다. 여기서 핵심적인 대목은 불법파견으로 확인될 경우 사용기간과 관계없이 직접접고용하도록 하는 것을 의무화하여 1차 하청에 대한 부분적 정규직화 허용을 암시한 것과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에 대한 원청 자본의 책임성을 강화하여 그동안 일체 부정해온 원청사용자성을 부분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울러 원사업주는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존중하고 노사협의회 또는 간담회를 통해 하도급 근로자 대표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했다”고 못박음으로써 원청 자본과의 교섭창구는 노사협의회를 통할 것을 명확히 했다.
지금처럼 하청노조가 원청과 교섭권을 확보받지 못하고 노조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와중에서 하청노동자들 역시 노조를 설립하거나 노조활동을 하기보다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원청과 대화를 시도하려들 것이다.
조직 노동운동 중심의 대응이 가진 문제점
이러한 노사관계의 변화에 대해 조직노동운동 중심의 대응이 가진 문제점은 작년 전임자 축소를 비롯한 노동법 개악 투쟁의 패배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복수노조 허용과 교섭권 창구단일화,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분리될 수 없이 한 덩어리로 제기된 것이지만, 대공장 정규직노조를 중심으로한 조직 노동운동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을 뿐 정면으로 투쟁전선을 설치하지 않았다.
복수노조 도입과 교섭창구 단일화, 타임오프제는 힘없는 소규모 노조에 치명적인 것이다. 하지만 금속노조 관료들과 활동가들은 이들 사업장의 투쟁을 조직하려는 시도보다는 대공장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노동법 개악 반대 투쟁은 결국 대공장 노조관료들의 임금을 보전하는 투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섭창구 단일화반대에 대해 대공장 노조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여기에 결합하여 기아차 단협을 노동법 개악에 있어 전국적인 노자 대리전이라고 주장했던 정치세력들은 이런 결과에 대해 침묵했다. 오히려 <노동전선>은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전선이 붕괴된 상황에서 기아자동차지부의 타임오프저지 투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말로 기아차노조에 면죄부를 주었다. 심지어 기아차에서 활동하는 다함께 회원은 <레프트21>에 기고한 글에서 “타임오프제를 현장에서 무력화”시켰다고까지 평가했다.
이러한 정규직 중심 노선의 문제는 주간연속2교대제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노동운동의 전투적 분파들이 제기하고 있는 “노동자 살리는 주간연속2교대제”와 같은 슬로건이 그러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노동자 살리는 주간연속2교대제” 따위는 없다. 완성차공장의 주간연속2교대제는 완성차 정규직과 일부 1차 부품업체를 제외한 자동차 산업의 여타 노동자들에게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조직된 완성차 정규직과 1차 납품업체에 대해서는 노동시간 단축과 고용보장이 임금의 하락과 교환될 것이다. 정부의 비정규직종합 대책 등을 볼 때 고용이 어느 정도 보장되고 있는 1차 하청 역시 노동조건을 일정 방어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전혀 조직화되어 있지 않은 2·3차 하청과 단기계약직, 모듈공장과 2차 부품업체에 대해 더 큰 폭의 임금하락과 노동강도 강화 뿐 아니라 인원정리가 자행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공장 정규직과 1차 하청은 생산의 필수적인 핵심으로 놓아두고 외부환경 변화에 의한 생산량의 변동에 따라 2·3차 하청노동자, 단기계약직, 훈련생 등으로 인원을 조정하는 체계가 등장할 것이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자동차 대공장에서는 이들을 중심으로 인원조정이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한 현장조직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완성차와 1차 납품업체의 정규직과 1차하청과 나머지 노동자들의 임금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대부분의 노동운동 단체들은 ‘올바른’ 주간연속2교대제의 쟁취를 위해 완성차 노동자들과 하청노동자들과 부품업체 노동자들로 구성된 공동투쟁체를 만들 것을 제기하고 있다. 이런 주장은 기본적으로 과거 대공장에서 하청노동자들의 원·하청 공동투쟁 요구와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과거 비정규직투쟁에서 나타났던 원·하청연대 기구들은 경험적으로 볼 때 거의 예외 없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정규직의 통제기구로 기능했을 뿐이었다는 사실은 망각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는 언제나 항상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의 이해에 의해 희생되었다. 만약 완성차, 하청노동자, 부품사 공투체가 성사된다하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규직노동자들이 자신의 이해를 버리고 하청노동자와 부품업체 노동자들의 이해를 주장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일 것이다.
결국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는 더 이상 대공장 정규직운동을 전술의 주체로 놓아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실현되지 않을뿐더러 설사 실현된다 해도 그다지 바람직한 결과를 낳기 어려우며 정규직 운동질서에 대한 환상만을 불어넣을 뿐이다.
정규직 중심의 공장질서를 해치지 않는한 복수노조 허용과 노사협의회로 유도는 정규직의 이해에 맞아 떨어지는 면이 있으며, 금속노조와 대공장 노조관료들의 소위 1사1조직 정책은 총자본이 취하는 방향에 사실상 영합하고 있다. 금속노조의 1사1조직은 하청노동자들의 독자적 투쟁역량을 파괴하는 효과를 내고 있을 뿐 아니라 노조로 조직되거나 조직가능성이 높은 어느 정도 고용이 안정된 1차 하청노동자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아자동차 2차 하청노동자로 일하다 해고된 이동우 조합원의 문제(기획 대담 기사 참조)에서도 나타나듯이 금속노조와 정규직 지부는 2·3차 하청노동자들의 문제를 조직적으로 받아 안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노동자들은 공장질서로부터 배제된 채, 금속노조의 개별조합원으로만 인정되고 있다. 때문에 대공장노조는 이들에 대한 아무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현행 금속노조의 1사1조직 방침은 자본의 포섭논리에 곧바로 대응하고 있다.
제조업 대공장 운동의 미래
제조업의 축소가 대세라면 이후 제조업 대공장 운동의 전망은 어떠할 것인가? 대부분의 산업 국가에서 대공장 노동자들은 이미 사회적인 다수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의 산업 국가들에서 제조업과 공장이 완전히 폐지되거나 이전되는 일도 상상하기는 어렵다.
70년대 이후 가장 극적으로 탈산업화 양상을 보인 곳은 영국과 미국이었다. 이들 나라에서 1970년대 초반 35%정도에 달했던 제조업 고용비중은 현재 10% 남짓한 수준에 불과하다. 80년대 이들 나라에서 진행된 산업 구조조정은 상당히 폭력적인 과정을 수반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대공장 노조들은 격렬한 저항보다는 자본의 공격을 순순히 내면화하고 다수 조합원들의 고용을 보장받는 길을 취했다.
장하준이 지적한 대로 제조업은 생산성이 높고 파생효과가 크기 때문에 제조업이 해외로 완전히 이전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분업에 대한 고전파 경제학자들의 생각과 달리 대부분의 국가에서 농업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미국과 영국만 해도 모두 여전히 제조업 대국으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 같은 경우는 아직도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제조업이 유지되고 있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오히려 제조업의 중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남한 역시 90년대 이후 꾸준히 산업재편에 대한 논의가 되고 있지만 대안은 마땅치 않다. 2000년대 초반에 NT, BT, IT에 대한 말만 무성하다가 결국 별다른 결과를 내지 못했다. 최근 들어 MB정권은 유전, 원전, 시스템 반도체로 중심 산업을 이동할 것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리 현실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결국 내수산업의 부양을 위해 전통적인 토목·건설 사업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아파트, 골프장 건설, 4대강 사업 등 토목·건설 사업의 활성화는 경제적으로 단기적인 부양효과를 낼 수는 있겠지만 장기적인 산업재편의 방향이 될 수는 없다.
결국 여전히 수출제조업의 역할은 클 수밖에 없다. 남한에서 대공장 인원은 서서히 축소되며 일정 수준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중공업처럼 오히려 국내 설비를 늘리고 있는 경우도 있다. 남한 자본은 장기적으로 국내 정규직 고용을 자연 축소하면서 효율화될 가능성이 높다. 기존의 조직된 대공장노조에 대해서는 전면적인 공격이 이루어지기 보다는 야금야금 권리를 축소시키며 다수의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경향과 함께 대공장 핵심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들 국가에서 새롭게 창출되는 비제조업·서비스 분야의 고용은 대부분 저임금·비정규직으로 고착되는 반면 조직되거나 잠재적으로 조직화 가능성이 높은 대공장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고용안정과 상대적 고임금으로 포섭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중공업은 어용노조가 들어선지 이미 십 년이 흘렀지만 정규직노동자들이 특별한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징후는 포착되지 않는다. 노동강도가 강화되고 산재가 빈발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고임금과 고용보장을 확약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현대중공업 선거에서 소위 민주노조 연합이 32%밖에 득표하지 못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국제적인 경험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다. 80년대 공격에 대해 서구 대공장 노동자들은 수세적인 태도를 취했다. 유럽과 북미에서 대공장에 기반한 전통적인 노동자운동의 보수적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는 징표는 무수히 많다. 사민주의 정권의 우경화는 중간계급의 우경화의 결과라기보다는 전통적인 노동계급 자체의 우경화 결과일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에서는 90년대 말 노동자본가(worker capitalists)라는 단어가 등장했는데, 이는 주식을 보유하면서 자본가 같은 의식과 정치성향을 갖게 된 노동자를 일컫는 말이었다. 계급적으로는 노동자이면서도 분배보다 성장위주의 정책에 관심을 보이며 사회복지예산을 늘리기 보다는 자본이득세 감면이나 노동생산성 향상 등 자본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에 찬성하는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남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공장노동자들이 주식과 부동산투자로 재테크를 하고 연대투쟁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이면서 대공장 노동자들이 소(小)자산가화 되었다는 주장이 학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고립된 기득권의 섬
지금으로 볼 때 대공장 현장으로부터 그 자체의 고착화된 질서를 깨는 투쟁이 분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주간연속2교대제와 복수노조는 오히려 이를 더욱 강화시킬 기제가 될 것 가능성이 높다. 반면 노조로 자신의 권리를 방어하기 어려워진 90%의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따라서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과 나머지 90%의 노동자 간에 이질성과 차이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다.
급속히 사회적 영향력을 잃고 있는 조직 노동운동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90%의 이해를 대변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에 나서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대공장 정규직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 노동운동은 오히려 이런 노동자들의 투쟁에 장애물로 나타나는 일이 더 많았다. 정규직의 이해 혹은 기존 조직의 안정성 문제와 부딪쳤을 때, 조직된 10%의 이해는 나머지 90%의 이해를 버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속에서 조선·자동차·철강 등 소수의 대공장 정규직 부분은 광범위한 저임금 비제조업 노동자와 내부의 비정규직 및 중소제조업 노동자들 사이에서 소수의 특권층, 기득권을 가진 고립된 섬으로 남을 것이며 이 양상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 <각주>
1) 이 논문들은 1989년 『변화하는 노동계급 (The Changing Working Class)』이라는 제목으로 묶여 출판되었다. 남함에서는 같은 책이 갈무리에서 『오늘날의 노동자계급 (1994)』이라는 제목으로, 책갈피에서 『노동자계급에게 안녕을 말할 것인가 (2001)』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있다.
2) 이 논문은 『오늘날의 노동자계급(갈무리)』에만 수록되어 있다.
3) 현대차 아산공장과 전주공장은 2000년대 중반 하청노동자들의 수가 각기 1000여 명과 1200여 명으로 추산되었으나 2010년에는 878명과 905명으로 집계되었다.
4)결과적으로 이러한 위기의식은 2000년대 중반 그 동안 미루어져 오던 대공장의 산별노조 전환으로 나타났다. 산별론자들이 주장해온 금속산업 전체노동자들의 단결보다 자본의 해외이전 추진으로 인한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산별전환의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5)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민주노조 운동진영의 복수노조 금지 폐지 요구에 대해 당시 한국노총은 다음과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복수노조의 허용은 우리와 같은 기업별 체제하에서는 노동조합의 단결력과 교섭력을 더욱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수많은 어용노조를 출현시켜 노동자 상호간의 적대행위와 단체교섭 대표권을 둘러싼 조직분규를 격화시키고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를 합법적으로 가능케 하여 노사관계의 불안정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1988)
6) 장기적으로 정부정책은 노사협의회에서 노조의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노사관계로드맵은 노사협의회 대표자를 노조가 지정하는 현행 방식에서 직접 선출로 바꿀 것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복수노조나 전임자 금지의 문제처럼 자본과 개별적 합의로 노조의 권리를 보장받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노조와 충돌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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