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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호][Focus] 세계를 점령하라

  • 분류
    The FocuS
  • 등록일
    2011/11/17 20:48
  • 수정일
    2011/11/18 14:20
  • 글쓴이
    사노신
  • 응답 RSS

 세계 자본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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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초 미국에서 시작된 “월가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세계를 뒤흔들었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십 여 명의 젊은이들에 의해 시작된 이 운동은 불과 몇 주 만에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마침내 지난 달 10월15일에는 이 운동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세계 수십 개 국에서 지지 집회를 벌이며 국제적인 운동으로 발전했다. 남한에서도 이날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각종 퍼포먼스와 집회가 개최되어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북미와 유럽에서 참여가 커


국제적인 동조시위를 호소한 15october.net에 따르면 10월15일 하루 82개국 1000개 이상의 도시에서 시위에 동참했다고 한다. 특히 자본주의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북미와 유럽에서 호응도가 높았다.

미국에서는 뉴욕, 워싱턴 보스턴, 필라델피아,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마이애미, 시애틀 등 100여 개 도시에서 동조시위가 벌어졌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도 5천여 명이 집회에 참여했다.

경제위기가 심각한 유럽에서는 더 큰 규모로 시위가 벌어졌다. 이탈리아 로마에서는 20만 여명이 거리로 나왔다. 독일에서도 베를린에 4만 명, 금융 중심지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 청사 앞에 8천명이 모였다. 영국 런던에서 5천여 명,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6천여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
유럽과 북미 등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 대중적인 저항운동은 80년대 침체기에 빠졌다가 90년대 후반 반세계화 투쟁이 활성화되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99년 시애틀 투쟁으로 절정에 올랐던 반세계화투쟁은 2001년 9·11 사태를 계기로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다. 테러 방지를 명목으로 각국 정부가 취한 여러 조치들은 사실상 반정부 운동을 겨냥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세계를 강타한 이후 경제 불안이 계속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대중투쟁이 세계 곳곳에서 다시 일어나고 있다. 그리스, 프랑스, 영국 등에서 긴축재정의 직격탄을 맞은 공공 노동자 등 전통적인 노동계급도 투쟁에 나섰지만 무엇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은 미래가 불안해진 젊은 층의 참여였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튀니지, 카이로 등 중동 민주화 투쟁 역시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어난 투쟁이었다. 중동 민주화 투쟁에서 나타난 소셜네트워크를 통한 소통, 광장을 점거해서 토론을 통해 투쟁 방향을 결정하는 방식은 유럽으로 번져나갔고, 급기야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인 미국 월스트리트로, 그리고 월스트리트에서 세계로 다시 퍼져나가고 있다.
 

남한과 아시아는 아직


남한에서도 10월15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여의도를 점령하라-금융수탈 1%에 저항하는 99%”라는 집회를 개최하여 금융 중심가인 여의도를 점거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는 미리 불법 집회를 엄단하겠다고 선언하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언론의 관심도 뜨거웠다.

하지만 실제로 15일 여의도 금융위원회 앞에 모인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취재를 위해 온 기자들이 더 많을 정도였다. 저녁에 도심에서 열린 “서울을 점거하라 국제 공동 행동의 날” 집회에도 천 여 명이 참석했다고 하나 주로 시민단체들과 운동단체들 중심이었고 북미나 유럽처럼 대중의 자발적인 참여가 나타났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일본, 대만, 홍콩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시위가 있었으나 남한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이는 남한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아직 북미와 유럽만큼 심각한 위기를 겪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간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과로 유럽과 북미의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복지축소와 중간층 몰락으로 사회구성원의 다수가 빈곤과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융위기 이후 불어 닥친 재정위기는 유럽 국가들에게 더 강력한 긴축정책을 강요하여 대중의 삶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특히 비싼 돈을 들여 고등교육을 받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하고 빚에 허덕이는 20대 청년층은 교육예산의 삭감과 일자리 감소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월스트리트 투쟁이 시작되기 한 달 전인 8월6일 영국 런던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사망자가 발생한 것에 항의하는 지역 주민들은 시위는 약탈과 방화 등 폭력 사태로 변화되어 며칠 동안이나 계속됐다. 유럽 최강국 중의 하나인 영국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지금 유럽의 사회적 불만이 얼마나 심각하게 쌓여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예는 지금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들에서 대중의 불만이 사소한 계기로도 쉽게 폭발할 수 있는 지경에 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중동 민주화 투쟁을 촉발시킨 것도 금융위기로 촉발된 사회경제적 위기 때문이었다. 튀니지와 카이로에서 투쟁의 발발은 잘 알려진 대로 물가폭등, 경기침체로 인한 생존권 하락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그러나 남한과 같은 경우는 힘들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살만한 편이다. 미국, 유럽, 일본 등에 비하면 재정도 건전한 편이라 아직은 위기에 대처할 정책 여력이 있다. 당장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유럽 국가들처럼 상황이 절박하지 않다.

남한에서도 지난 2008년에 벌어진 촛불투쟁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내내 계속된 양극화로 쌓여온 사회·경제적 불만의 분출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남한에서는 여전히 정치체제의 개선이나 집권세력의 교체를 통해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촛불, 희망버스, 광장 점거


그러나 최근 벌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운동과 남한의 운동은 공통점이 분명히 있다. 전통적인 산업 노동자운동의 붕괴 속에서 새로운 주체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밀집도와 단결성이 높은 대공장 노동자들에 비해 무력하게 여겨졌던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이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이하 ‘SNS')를 매개로 자발적으로 시위를 조직하고 참여하는 모습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는 중동 민주화 투쟁을 비롯해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위력을 발휘했다.

이런 경험은 사실 남한에서 선도적으로 나타났다. 2008년 촛불투쟁은 이러한 새로운 양상이 처음으로 나타난 최초의 투쟁이었다. SNS는 아니지만 아고라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이전에 운동에 동참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대거 촛불투쟁에 참여했다.

발전된 매체를 통해 투쟁은 즉시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되었고 이는 투쟁의 저변을 더욱 확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촛불투쟁이 가라앉은 이후에도 이런 운동의 양상은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거쳐 희망버스 운동으로 진화해 나갔다.

한진중공업 투쟁의 경우 이슈 자체는 정리해고 반대라는 노동자 운동의 이슈였지만 주체는 전혀 다르게 구성되었다. 전통적인 노동자투쟁이라는 의미에서 한진중공업 투쟁은 끝난 투쟁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공장의 내부 동력은 소진 된 상태였으며 노조 스스로도 거의 포기한 투쟁이었다. 그러나 희망버스를 통한 사회적 연대는 이 투쟁은 계속 이어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새로운 주체들의 등장을 통해 전통적인 이슈도 함께 살아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유럽과 북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들은 남한의 촛불투쟁처럼 처음에는 평화적이고 축제적 성격이 컸다. 하지만 이런 집회 문화를 굳이 걱정하지 않더라도 대중의 투쟁이 지속된다면 공권력의 탄압은 강화되고 시위 역시 더욱 급진화되는 패턴을 밟을 수밖에 없다. 2008년 촛불투쟁에서도 초기에 폭력을 반대하던 시위대가 공권력의 탄압이 강화되자 스스로 방어수단을 모색하는 것까지 나아갔던 전례가 있다.

이미 월스트리트 점령운동은 오클랜드에서 지역 시민들이 참가하는 총파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투쟁이 확대되면서 공권력의 대응은 더욱 폭력적이 되고 있으며 이에 맞선 시위대의 대항폭력도 거세어지고 있다.

초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던 부르주아 언론들은 폭력, 성범죄 등 부정적인 양상을 강조한 기사들을 쏟아내며 본격적으로 이 운동에 대해 이데올로기 공세를 퍼붓고 있다. 축제는 끝나고 전쟁이 다가오고 있느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운동들이 가지고 있는 한계는 비교적 명확하다. 1%를 반대하는 99%라고 하지만 사실 이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아직 고학력 청년층이다. 남한의 소위 ‘무당파’ 시민들처럼 이들의 계급적 성격은 명확하지 않으며 이들이 내걸고 있는 요구들도 정치적으로 불명확하다.

예를 들어 남한에서 국제연대를 조직하고 있는 99% 행동위원회는 “금융통제, 금융정책 실패에 따른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 금융피해 보상” 등 자유주의적 요구를 내걸었다. 물론 남한에서 이 운동을 주도한 것이 시민운동 단체들이라는 점을 감안해야겠지만, 유럽과 북미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본주의를 반대한다는 추상적인 구호만 있지 구체적인 요구나 청사진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 투쟁이 실제로 체제를 극복하는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광범위한 저임금, 불안정 노동자들로 확대되어야 한다. 이들이야 말로 현재 사회 다수를 이루는 가장 큰 불만세력이며 가장 분노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계층의 참여가 그렇게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이해를 대변하고 끌어들일 구체적인 요구들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운동세력 자체의 이질성과 구심력 부재로 말미암아 아직 그러한 데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약점들 때문에 지금 현재의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 자체는 촛불투쟁처럼 일정시기가 되면 가라앉거나 얼마 뒤 있을 대통령 선거 캠페인으로 흡수되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운동이 새로운 투쟁의 시대를 여는 역사적 이정표가 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점점 심화되는 경제위기 상황은 이와 유사한 운동들을 계속 탄생시킬 것이고 더욱 급진화 시켜 나갈 것이다. 이는 남한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나 환상, 혹은 이전과 똑같은 요구를 공장점거에서 광장점거로 바꾸어 제기하는 구태의연함을 넘어 이런 투쟁의 시대를 대비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이태영 (picollo@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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