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잠수함 충돌이냐 좌초냐 결함이냐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4/04/21 [11:15]  최종편집: ⓒ 자주민보
 
▲ 쿵 소리가 나면서 배가 이상해졌다는 세월호 탑승 학생의 카톡문자     © 자주민보


필자가 사건 발생 3일째 잠수함 충돌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초기 구조 시간은 지났고 이제 에어 포켓에 살아 있을 학생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사고 원인 파악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잠수함 충돌이라면 구멍이 아래나 옆에 뚫렸을 것이기 때문에 당시 배 앞부분을 지탱하고 있는 공기주머니 주변에 대한 수색에 집중하는 것이 당연하고 잠수함 충돌이 아니라 급회전에 따른 전복이라면 세월호 전반적 영역에 칸칸에 다 공기주머니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동시에 입체적인 구조활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본인은 선박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상식적인 선에서 이 정도로 생각하고 구조를 더 잘하기 위해 사고 원인 파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당시에 정부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세월호는 전혀 암초가 없는 허가된 안전한 항로를 운항했다고 했기에 충돌이 있었다면 그것이 고래가 아니라면 잠수함밖에 더 있겠는가라는 주장을 편 것이다.

그런데 신상철 대표가 사건 직후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항로를 정밀 분석한 결과 다도해 군도 사이 지름길로 세월호가 들어갔다고 했다. 그렇다면 배의 바닥이 바다 바닥이나 암초에 얼마든지 충돌했을 가능성이 있게 된다. 좌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그런 위험한 항로로 배가 들어갈 수 있게 허락한 정부도 엄중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지금도 세월호는 허가된 안전한 항로로 운항했으며 배의 정비불량과 미숙한 운전으로 침몰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합동수사본부의 발표도 일관되게 이런 방향으로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어떤 충돌도 없었으며 배를 급선회할 만한 위험한 정황이 조성된 것도 아님이 선장과 항해사 등 선원들 조사에서 밝혀졌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침몰 직전 학생들이 카톡으로 보낸 자료를 보면 배의 앞쪽에서 쿵하는 충격을 받고 배가 위험에 빠졌다는 주장을 한 두 명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앞쪽이라면 짐이 실려있는 공간도 아니기에 컨데이너가 떨어진 소리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16일 모든 방송사에서는 이런 증언을 토대로 좌초에 의한 침몰로 보도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배의 앞 쪽 선실에 있다가 구조된 한 승객은 배의 앞쪽에서 뭔가에 긁히는 큰 소리를 들었다고도 말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그곳은 암초가 없는 안전한 항로라고만 하니 그러면 충돌할 구조물이란 잠수함밖에 없지 않냐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었다.

신상철 대표 말대로 늦게 출발한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세월호를 조수가 빠르고 주변에 섬이 산재해 있는 낮은 바다 지름길로 운항했다면 바다 바닥과의 충돌이나 암초와의 좌초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판단된다.

 
▲ 단원고 상황판에 연락두절이라는 최초 상황발생 시간이 정부발표보다 훨씬 빠른 8시 10분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성남시장 트위터     © 자주민보


특히 지금 단원고 상황판에 세월호와 연락두절이라는 최초 상황발생 보고가 정부가 발표한 8시 50분보다 훨씬 빠른 8시 10분으로 적혀있어 그전에 뭔가 사건이 발생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배를 건져서 정밀 조사를 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어떻게든 배의 옆이나 아래에 구멍이 뚫려 있지 않는 침몰이라면 지금 선실 앞부분만이 아니라 배의 후미에도 잠수부를 보내 혹시 그곳에 형성되어 있을 공기주머니에 생존자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다.

어쨌든 정부에서 사고원인을 알고도 선박 안전운항지도과실 등 잘못을 숨기기 위해 사고 원인을 정확히 밝히기를 꺼려했다면 그에 따른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왜 사건 초기 달랑 해경 헬기 두 대만으로 구조활동을 펴면서도 산림청과 119구조헬기 10여대는 물론 미군의 구조 지원마저 거부하며 현장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만 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이런 이해못할 행동도 자신들의 과실을 숨기기 위한 것은 아니었는지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 떠나서 정부에서는 항적기록과 선장과 선원들 대부분이 생존해 있는 조건에서 사고 원인이 급선회에 따른 복원력 상실이라고 발표하면서 그 급선회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밝히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조타기가 멋대로 핑핑 돌아버렸다는 조타수의 말을 믿고 잠자코 있으라는 것이 정말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묻고 싶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해당 관계자들은 솔직하게 사건의 진상을 공개하고 그에 맞는 구조활동을 펴야 할 것이다.
초보적인 양심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이제는 사건의 진실을 빨리 공개해야 할 것이다.

공기주머니가 형성된 선실 어딘가에서 추위와 공포로 떨고 있을지도 모를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것이 비단 나만의 심정일까. 

전 국민은 지금 그 아이들만 생각하면 비통함을 금할 수 없다. 고문도 이런 고문은 없지 않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결코 쉽게 빨리 끝나면 안되겠지…

 
 
 
  번호 4928  글쓴이 아고라  조회 163  누리 5 (5,0, 1:0:0)  등록일 2014-4-21 11:16 대문 0
 
 
 
 

 

결코 쉽게 빨리 끝나면 안되겠지…
(WWW.SURPRISE.OR.KR / 아고라 / 2014-04-21)

 

 

현재 사건으로 누군가…

어느 조직과 그들은 죵히…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겠지…

 

결코 쉽게 빨리 끝나면 안되겠지….

간첩 조작극…

무인기 조작극…

남X준 삭제 건…

조용히 이대로 묻혀질 때까지…

 

블랙홀처럼,

불리한 모든 이슈들이

깨끗이 잊혀질 때까지…

결코 빨리 끝나면 안되겠지….

 

그들이 3일 동안 숨죽이며 한 일…

.

.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492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사고를 사건으로 키우지 말라 - 세월호 침몰을 둘러싼 의문점

 
 
  번호 52999  글쓴이 서프 (seop8)  조회 35  누리 0 (0,0, 0:0:0)  등록일 2014-4-19 16:23 대문 0
 

 

 
 
 

 

사고를 사건으로 키우지 말라 - 세월호 침몰을 둘러싼 의문점
(WWW.SURPRISE.OR.KR / 신상철 / 2014-04-19)


지방의 일정을 소화하던 중 세월호의 사고소식을 접하고 핸드폰을 통해 기사를 검색하는 가운데 언론사들과 인터뷰를 하여야 했고, 또한 선수가 가라앉는 상황에서 긴급하게 최우선적으로 챙겨야 할 사안에 집중하느라 사고의 첫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 볼 여유가 부족하였었습니다.

그런 중, 첫 글을 통해 알파잠수기술공사 이종인 대표가 보유한 다이빙벨(Diving Bell)에 대해 소개를 하고, 정부와 관계자들은 이종인 대표께 조언을 구하라 외쳤던 글이 무려 5만명 이상의 조회를 올리고, 오늘 이종인 대표가 사고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돕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소 늦기는 하였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세월호는 완전히 엎어져 전복되었기 때문에 승객들이 있었던 침실 구획 대부분에서 에어포켓(Air Pocket)이 양호하게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책본부에서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생존자에 대한 구조의 의지가 있는지 심각하게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거론되고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이번 사건의 흐름을 추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사건이든 최초에 보도되거나 목격된 내용 속에 가장 중요한 사건의 단초가 담겨있는 법입니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훤히 밝은 주간이고 사람이 살고 있는 섬에 인접한 곳이어서 지역민을 포함 목격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사건의 실체적 모습을 잘 조명하고 있습니다.


1. “세월호 선장, 아침 07:20분경 구조요청을 했다”?

이 내용은 아고라에 남해상에 사는 촌부라고 자신을 소개한 <진모>라는 분께서 올린 글인데, 그 내용의 사실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1) 세월호 선장은 왜? 아침 7시경에 해경에 구조신호를 보냈을까?
(2) KBS는 누구에게 취재를 하여 이러한 내용을 보도한 것일까?
(3) 그럼에도 해경에서는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4) KBS는 왜 이 보도내용을 삭제해 버렸을까?

세월호 선장, 아침 07:20분경 구조요청을 했다

4월 16일 진도 해상에 침몰한 세월호의 선장은 아침 7시 20분경 또는 그 이전에 이미 "구조 요청"을 했습니다. 8시 58분이 아니라.

저는 제 목에 칼이 들어오더라도 이 말은 꼭 해야겠습니다. 제가 선장의 가족이나 지인 아니냐구요? 천만에..! 세월호 선장과는 일면식도 없는 그저 남해상에 사는 촌부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제 아침 7시 20분경 TV뉴스에서 분명히 "인천에서 출항, 제주도로 가는 배가 진도 해상에서 주변 어선과 해경에 '구조 신호'를 보내왔다."라는 요지의 앵커의 말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화면에 나오는 배 사진을 보고 이미 해경이 도착한 것으로 판단, 날이 밝았고 해경도 도착했으니 아무 문제 없겠구나 생각하고 한 점 의구심도 없이 제 볼 일 보러 집을 나섰습니다. 제가 집을 나선 시간이 정확히 아침 7시 30분이었습니다.

그 때 뉴스에서 "세월호"라는 배 이름은 제가 흘려들었는지 정확히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라는 말은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 인천에서도 제주도로 가는 배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제가 안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남쪽에서는 남해 제주간 항로 때문에 서로들 다툼이 심하기 때문에 인천에서도 제주도로 여객선이 다닌다는 말은 제가 흘려들을 수가 없는 말이었습니다.

아침 7시 30분 집을 나서서 TV를 전혀 못 보다가 점심 때인 12시 30분경, 볼일 보러 들른 가게의 TV에서 아직도 구조중이라는 뉴스를 보고 굉장히 의아했습니다.

구조요청을 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도 구조중이라니? 내가 몇 시쯤에 "구조요청" 뉴스를 봤는지 생각을 안 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집을 나선 후, 오전중에는 TV를 전혀 볼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TV를 볼 수 있었던 곳은 집 뿐인데 그렇다면 시간은?

분명히 내가 집을 나서기 전, 7시 30분 이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젯밤에 아침 7시 TV 뉴스들을 검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군데 볼 수 없는 곳이 있더군요.

KBS2 TV 아침 7시에서 8시까지 하는 "굿모닝 대한민국(2부)" 그런데, 딱 이 뉴스만 "저작권 관계로 다시보기가 중단" 되었답니다.

왜 그럴까요?

"세월호 선장은 아침 7시 20분 이전에 관매도(병풍도)로 피항하면서 "구조요청"을 보냈다." 라고 말하는 나를 '병신'으로 만들어 놓겠다 이런 얘기겠지요.

인천에서 제주로 가는 세월호의 원래 항로는 관매도 훨씬 바깥 쪽입니다. 확대하면 아래와 같고 원래의 항로는 관매도 쪽 섬들이 많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선, 그물, 통발들이 쫙 깔린 섬쪽으로 그 큰 배를 몰고 다닐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호 선장은 관매도쪽으로 배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아침 7시 20분경 이미 주변배와 해경에 "구조신호"를 보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배는 정상항로를 운행 중 이미 어떤 문제가 발생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항구가 있는 섬쪽, 관매도 쪽으로 피항한 것이지요. 그리고 세월호 선장과 승객들(잠이 드신 분들은 빼고)은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증거라고 할까요.. 어제 올라 온 뉴스 중에 달린 댓글입니다.

<사고 나서 거의 한시간 반정도 되는 시간 동안 배 한 척도 구하러 오지 않았다.> 라고 구조되신 분이 JTBC에서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출처 : http://m.bbs1.agora.media.daum.net/gaia/do/mobile/debate/read?bbsId=D115&articleId=2691051


2. “사고선박 아침 8시 전부터 해상에 서 있었다”?

[연합뉴스]“사고선박 아침 8시 전부터 해상에 서 있었다”

어민 증언, 최초 신고시각과 1시간 이상 차이

(진도=연합뉴스) 여운창 기자 =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 발생 시각과 신고 시각 사이에 1시간 이상 격차가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현지 어민들로부터 신고 시각 1시간여 전부터 사고 선박이 바다에 정지해 있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조난신고가 사고 발생보다 1시간 이상 늦어졌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또 이로 인해 구조작업도 지체돼 인명피해를 키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날 목포해경 상황실에 접수된 최초 사고 신고 시각은 오전 8시 58분. 이 신고는 사고선박 승무원이 직접한 것이 아니라 승객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가족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고 시각이 오전 8시 58분이라면 사고 발생 시각은 이보다 더 이전으로 추정되지만 해경측은 사고선박으로부터 직접 받은 조난신고는 없었다고 밝혔다. 사고 선박이 해경에 조난신고를 하지 않은 점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특히 세월호가 최초 신고 1시간여 전부터 사고해역에 서 있었다는 목격담도 나오고 있다.

사고 인근 해역에 거주하며 구조작업에도 출동했던 한 어민은 "바다로 미역을 따러 나가는 시간이 아침 6시 30분이니 내가 바다에서 그 배를 본 것이 아마 7시에서 7시 30분쯤이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하얀 배가 가만히 있기에 왜 그러나 싶고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그외 별다른 특이점이 안보여 그냥 마을로 돌아왔는데 도착하자마자 9시 좀 넘어서 마을이장이 구조작업에 동참해달라는 방송을 했다"고 전했다.

이 어민의 말대로라면 사고선박은 현장에서 모종의 상황이 발생한 후 1시간여 동안 머물러 있었고 이 어민이 현장을 떠난 뒤인 오전 8시 30분께를 전후해 기울기 시작한 것으로 보여진다.

출처 : http://www.yonhapnews.co.kr/society/2014/04/16/0701000000AKR20140416154700054.HTML?template=2085

해경이 공식적으로 구조요청을 접수한 시간이 8시 58분이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선박 승무원이 신고한 것이 아니라, 승객의 가족이 신고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 세월호는 항해중이 아니라 정지해 있었다고 합니다.

(1) 세월호는 무슨 이유로 한 시간 가량 정지해 있었을까? 
(2) 사고 선박이 해경에 구조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나?


3. 전날 밤 군산 앞을 통과하며 'Bottom Touch' 가능성

위의 두 사례, 16일 07:20 경 해경에 구조요청을 했다는 사실과 08:00 이전부터 세월호가 해상에 떠 있었다는 사실은 현재까지 메이저 언론에서 거의 다루지 않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는 반면, 그것을 목격하고 경험한 분들의 증언은 허구라고 생각하기엔 지나치게 구체적이고 사실적이어서, 세월호가 겪은 사고의 원인에서 결코 배제하 수 없는 것입니다. 위에 사례들에 더하여 다음의 기사 또한 세월호가 겪었을 또 다른 시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진도 여객선침몰]구조자 "전날 밤 1차례 좌로 기울어"

"암초 사고 후 운행하다 사고" 주장

【진도=뉴시스】배동민 기자 = 16일 오전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한 세월호가 전날 밤 암초에 부딪친 뒤 운항을 계속하던 중 사고가 난 것 같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구조자 서희진(54)씨는 이날 오후 전남 진도군 진도읍 실내체육관에서 여객선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 15일 오후 10시30분에서 11시 사이 전북 군산 인근 바다를 지나던 배가 왼쪽으로 15도 정도 기울었다"고 밝혔다.

서씨는 "무슨 일이 있나싶어 밖으로 나가 확인했지만 파도는 잔잔했다"며 "배가 크게 흔들릴 정도의 기상 상황이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서씨는 객실로 돌아와 잠이 들었으며 다음날인 이날 오전 7시께 일어나 식당에서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그는 "식사를 마치고 객실에 들어가 쉬고 있는데 오전 8시30분께 갑자기 배가 왼쪽으로 확 넘어갔다"며 "45도 가량 기울어진 배가 이미 빙빙 돌며 침몰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서씨는 "전날 밤 휘청거렸던 방향과 같은 쪽으로 배가 넘어갔다"며 "사고 당시 '쾅'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서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월호는 전날 저녁 이미 암초 등에 걸려 선체 일부가 파손된 상태에서 계속 운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해경에 최초 구조 신고가 접수된 오전 8시58분, 소방본부에 접수된 8시52분 이전부터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종된 아들과 이날 오전 8시30분께 전화통화를 했다는 한 어머니도 "아이가 배가 자꾸 움직여서 머리가 어지럽다고 해 배멀미를 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시간 뒤 '선생님이 구명조끼를 입고 배 위로 올라가라 했다. 이따 전화하겠다'는 통화가 마지막이었다"며 "그 때까지 아이의 목소리에서 위급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자신에게 어떤 위험이 닥친지 몰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사고 사실조차 모른 채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뒤늦게 대피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는 게 가족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서씨는 "배가 가라앉는 중이었다면 '가만 있으라'는 방송 대신 물 속으로 뛰어들도록 안내해야 했다"며 "이해할 수 없는 대처였다"고 말했다.

출처 : 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40416_0012860845&cID=10202&pID=10200


4. 해경 사고접수 8:58분, 그런데 8:10분에 학교는 비상상황 ?

안산 단원고 교무실의 비상상황게시판에 기록된 내용

목포해경 상황실에서는 8:58분 최초로 사고를 접수했다고 하는데, 안산 단원고교에는 제주해경으로부터 8:10분에 배와 전화가 안된다며 연락이 왔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목표든 제주든 사고 접수가 되면 상호 공동 대처해야 하는 것 아닌가?
(2) 제주에서 세월호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3) 수 백명 여객을 태운 여객선과 해경이 통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가?
(4) 세월호는 왜 그 시간 통신을 꺼놓고 있었나? 
(5) 제주해경이 학교로 전화를 걸기전 누구로부터 어떤 신고를 받았나? 
(6) 학교에서는 배와 연락이 안된다는 8:10부터 8:50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나?


5. 우회전 급선회와 화물쏠임이 침몰의 주 원인이다?

급선회와 화물쏠림이 침몰의 주 원인이 되려면, 그것은 갑판상의 화물(20 피트 컨테이너)의 고박(Lashing, 화물을 고정시키는 행위)상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선박의 안정성(GM확보)의 문제와 화물을 싣고, 발라스팅으로 균형을 잡는 등의 문제는 전적으로 1등항해사 고유업무입니다.

선장 진술의 사실관계를 따져보기 위해 사고직전 세월호가 어떤 루트를 어떤 속도로 항해하고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회당시 회전으로 인해 선체에 미치게 될 원심력을 가늠해 보는데 중요한 단초가 됩니다. 다음 항적자료는 뉴시스를 통해 보도된 내용에 기초한 것입니다.

세월호는 08:45분경 동남쪽으로 항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08:48 무슨 이유인지 우현으로 선회합니다. 그리고 급격히 속도가 줄어들고 결국 정지합니다. 이후 북쪽을 향해 조류에 떠밀려 올라갑니다. 이 부분이 바로 선장이 진술하는 바, 3항사에게 항해를 맡겨 운행하다가 해당 지점에서 급속히 우회전을 하는 바람에 선체가 좌현으로 기울어졌다는 것입니다.

위 자료에서 <항해중>일 때의 속도를 계산해 보았습니다. 급선회 지점에 접근하기 직전 3분 36초간 진행한 거리가 555m입니다. 시속 약 9km(대략 4노트)라는 얘긴데.. 그 정도 속도면 그냥 조류에 표류하는 정도의 속도 밖에 되지 않을 만큼 저속입니다. 아무리 우현전타(hard starboard)를 했다고 해도 급격한 쏠림 현상이 발생할만큼 강한 원심력을 유발시키기엔 부족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 상황에서 화물이 좌현쪽으로 급격히 쏠렸다면, 고박(Lashing)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결국 선장의 진술은 세월호가 침몰에 이르게 된 과정가운데 마지막 나타난 현상만을 이야기 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선체가 전복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일련의 과정을 생략하고 최종적으로 나타난 현상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진술이며, 사실과 진실을 호도하고 축소하는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세월호가 전복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과정상의 문제는, GM(Gravity Moment)의 문제, 즉 선박의 안정성(Stability)의 문제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1) 1등항해사가 화물을 어떻게 실었는지의 문제, 
(2) 출항전 GM계산의 결과가 얼마였는지 여부, 
(3) 화물에 대한 고박(Lashing)을 철저히 했는지 여부, 
(4) 저수심 통과를 위해 Ballast 조절을 했는지 여부, 
(5) 승선인원을 늘이기 위한 선실개조의 근거 계산 등을 따져봐야 한다는 얘깁니다. 

세월호 침몰사고에서 가장 크게 부각될 수밖에 없는 문제가 바로 안정성(Stability)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GM(Gravity Moment)라는 용어를 숱하게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에 관하여는 다음에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6. 사고에 이르게 된 과정까지의 추론

위의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목격자 및 경험자들의 증언을 통해 구성한 것이므로 주관적일 수 있겠으나, 그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을 감안할 때 세월호 사고의 퍼즐에서 결코 배제할 수 없는 중요한 단서들임에 분명합니다. 

위의 사실들을 종합하여 가상해 본 <추론>입니다.

1. 세월호가 인천을 출항한 후 남쪽으로 항해하며 군산앞바다를 통과하던 중 어느 지점에선가 경미한 Bottom Touch(암초에 살짝 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2. 선교의 항해당직자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고, 인지하였으나 당장 문제가 될만큼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배를 멈추지 않고 계속 항해를 한다.

3. 그러나 Bottom Touch로 인해 발생한 선체 좌현 선저부의 찢어진 틈새로 많은 양은 아니지만 해수가 유입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선체가 서서히 좌측으로 기울어진다.

4. 선체가 좌현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인지한 항해사는 그 사실을 선장에게 보고하자, 선교(Bridge)에 올라온 선장은 캄캄한 밤에 운행을 정지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일단 선체의 기울어짐을 바로 잡기위한 발라스팅(Ballasting, 발라스트 탱크에 해수를 넣거나 빼는 방식으로 배의 균형을 조절하는 것)을 지시한다.

5. 새벽에 날이 밝자 진도 인근 해역에 도달한 세월호 선장은 침수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보고받고 일단 수심이 깊은 외해가 아닌 섬과 섬사이의 안전한 지점으로 이동할 것을 지시한다.

6. 맹골수로 부근 적정한 지점에 엔진을 정지하고 상황을 판단하던 선장은 7:00를 전후하여 해경에 '구조요청'을 보내고, 그 사실이 KBS에 보도가 된다.

7. 세월호 선장은 선체의 문제와 해경에 구조요청을 했다는 사실을 본사에 보고한다.

8. 보고를 받은 본사에서는 난리가 난다. 본사와 선박간 긴급한 교신이 오고가는 동안, 본사에서는 <해경에 구조를 요청할 정도의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하여 그 요청을 취소시키고 방송사에 전화하여 오보이니 기사를 내려달라고 요청하고, KBS는 기사자체를 삭제한다.

9. 본사에서는 몇 시간만 더 항해하면 제주에 도착할 수 있으니, 일단 항해를 하라고 지시하고 선장은 기울어진 선체를 발라스팅을 통해 조절하면서 운항을 다시 시작한다.

10. 문제는 발라스팅에서 발생한다. 좌현으로 기울어진 배를 바로 잡으려면 우측 발라스트 탱크에 해수를 넣거나, 좌측 발라스트 탱크에서 해수를 배출하는 방법을 써야 하는데, 우측 탱크에 해수를 넣는 것이 한계에 다다르자, 좌측 탱크에서 해수를 배출하는 방법으로 선체를 균형을 잡게 된다.

11. 그렇게 되자, 가뜩이나 상부갑판에 화물을 많이 실어 선체의 안정도가 급격히 낮아진 상태에서 좌현 하부에 있는 발라스트 탱크에서 해수가 배출되는만큼 선체 안정도에 문제가 발생하여 선체가 안정되지 않고 좌우로 기울거나, 조선(操船, Steering, 선박을 운전하는 것)이 잘 되지 않는 상태에 이른다.

12. 그러나 선체의 하중이 더 커지는만큼 좌현하부의 손상부로 유입되는 해수는 더 많아지고, 더 이상 발라스팅으로 선체의 균형을 잡을 수 없는 한계상황에 도달한 세월호는 사고지점에 이르러 선박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선수가 틀어지는 현상이 발생하자 당황한 항해사는 그것을 바로잡기 위해 급격히 타를 우현으로 전타하라는 명령을 조타수에게 내린다.

13. 그러자 갑판 상부의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게 되고, 고박(Lashing)상태가 불량한 일부 화물들은 흔들리면서 옆의 화물을 치게 되면서 결국 화물들이 "쿵"하는 소리와 함께 좌현 현측으로 미끌어져 부딪게 되고, 그 충격은 더욱 선체를 좌측으로 기울어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신상철

 

 
http://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eoprang&uid=5299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부는 살인마"... 실종자 가족들, 청와대로 행진

 
특별취재팀  
진도 : 취재 - 이주빈 강성관 선대식 소중한, 사진 - 권우성 유성호 기자  
안산 : 김시연 최지용 기자
총괄 : 최경준 기자  
편집 : 홍현진 장지혜 기자

[2신 보강 : 20일 오전 10시 23분]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실종자 가족 행진 가로막는 경찰 '세월호 침몰사건' 5일째인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의 더딘 구조작업에 항의하며 진도대교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이를 막고 있다. 이날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에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청와대 행진을 계획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실종자 가족 "경찰 왜 가로 막냐" '세월호 침몰사고' 5일째인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서 경찰이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 가족의 행진을 저지하자, 한 실종자 가족이 "길을 열어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이날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에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청와대 행진을 계획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진도대교가 놓인 지 30년이 지났지만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에게 진도는 여전히 고립된 섬이었다. 

20일 오전 1시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 100여 명이 더딘 수색작업에 항의하며 도보 행진에 나섰지만 진도에서 육지로 넘어가는 진도대교를 2km 앞두고 경찰에 막혔다. 이들은 도보 행진을 하며 "마지막 믿을 건 대통령"이라며 "청와대로 가자"고 외쳤다. 

경찰은 오전 7시께 4개 중대 35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 왕복 4차선 도로를 막았다. 약 6시간을 걸어 온 실종자 가족들은 "우리가 죄인이냐" "내 자식 구해달라고 내 발로 가겠다는 게 왜 막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경찰 측은 "교통사고 문제 등 (실종자 가족들에게) 진도대교가 위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종자 가족과 경찰은 오전 7시께부터 약 1시간 동안 거세게 충돌했다. 100여 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경찰 병력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경찰이 배치되지 않은 곳으로 돌아 들어가려 시도했지만 경찰에 번번히 막혔다.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실종자 가족 채증하는 경찰 '세월호 침몰사건' 5일째인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의 더딘 구조작업에 항의하며 진도대교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행진을 벌이자, 경찰이 이를 막고 채증을 하고 있다. 이날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우리가 범죄자이냐"며 "청와대에서 시켰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이들은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에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청와대 행진을 계획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무릎 꿇고 청와대 행진 요구하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 '세월호 침몰사건' 5일째인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서 경찰이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 가족의 행진을 저지하자, 한 실종자 가족이 무릎을 꿇고 "길을 열어 달라"며 애원하고 있다. 이날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의 무기력한 대응에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청와대 행진을 계획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일부 실종자 가족은 경찰 병력을 뚫어 경찰과 거친 몸싸움을 하기도 했다. 이후 잠시 소강상태에 있다가 오전 10시께 실종자 가족은 또다시 경찰에 거칠게 항의했다. 

단원고 학생의 학부모인 이금희씨는 "내 딸 얼굴 못 알아보기 전에 어서 바다에서 건져달라"며 "이렇게 (막으러 나온 경찰만큼) 많은 숫자를 바다에 풀었으면 이미 우리 딸을 살렸을 것"이라고 울부짖었다. 

단원고 학생의 이모인 길옥보씨도 "왜 수색이 더딘지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대통령)을 만나러 가겠다는데 왜 길을 막냐"며 "정부는 수색할 땐 굼뜨더니 이런 곳엔 빨리도 나온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실종자 가족이 "내 딸", "내 아들"을 찾으며 울부짖자 일부 경찰은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경찰에 도보 행진이 막히자 실종자 가족들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불러달라"고 요구했다. 현장에 나온 경찰은 오전 10시 현재 "총리실 관계자와 취했지만 이곳에 직접 오긴 어려운 상황이다"고 말했다. 

특히 단원고 학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학교 다녔던 안산까지 걸어가겠다는데 왜 길을 막나, 막으려면 청와대 앞이나 막아라"며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 땅을 걷겠다는데 왜 막나, 우리가 폭도냐"고 항의했다.

한편 실종자 가족들은 경찰로부터 이날 오전 10시 30분에 정홍원 총리와 면담을 약속받고 오전 10시 20분경 차량을 이용해 체육관으로 돌아갔다. 

[1신 : 20일 오전 7시 7분]
청와대행 가로막는 경찰과 몸싸움... 정홍원 총리 차량 포위 

 
기사 관련 사진
▲ 세월호 실종자 가족, 청와대로 행진 '세월호 침몰사건' 닷새째인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의 더딘 구조작업에 항의하며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날 100여 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는 살인마", "아들, 딸 살려내라"고 외쳤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차에 갇힌 정홍원 총리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정부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20일 새벽 실종자 가족 일부가 "청와대로 가자"며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을 한 정홍원 국무총리가 돌아가지 못한 채 3시간 가까이 차안에 머무르며 항의를 받았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20일 새벽 세월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청와대에 가겠다면서 도보 행진에 나섰다. 이들은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진도대교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13km가량 걸으면서 "정부는 살인마", "아들딸 살려내라"고 외쳤다.

앞서 경찰이 청와대로 가겠다는 실종자 가족들을 막는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또한 이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들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탄 차량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3시간가량 둘러쌌다. 가족들은 정 총리에게 "바다 속에 있는 우리 아이 시신이라도 꺼내 달라, 추운 곳에서 울고 있다", "대화를 하자면서 왜 문 닫고 나오지 않느냐"고 외쳤다.

침몰 5일째 생존자 없어... 실종자 가족 '분노 폭발'

실종자 가족들의 말을 종합하면, 19일 오후 11시 30분께 가족들 사이에서는 "청와대로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실종자 가족 송아무개(46)씨는 "세월호가 침몰한 지 5일을 맞는 상황에서 구조는 더디고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나오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자세하게 설명해주지도 않았다"며 "지금까지 쌓였던 분노가 폭발해 '청와대로 가서 대통령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듣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밝혔다. 

실종자 가족 수백여 명은 20일 0시를 전후해 진도실내체육관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경찰이 이를 막아섰다. 이인선 경찰청 차장은 "대통령을 만나는 데도 절차가 있다"면서 "실종자 가족들의 입장을 이해하지만, 법을 준수해야 하는 경찰의 입장도 있다"고 밝혔다. 

실종자 가족과 경찰의 대치가 이어지자, 오전 2시께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사태 수습을 위해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총리를 데려오라"고 요구했고, 곧 정홍원 국무총리가 가족들 앞에 섰다. 실종자 가족들은 "생존자를 어떻게 구출하겠느냐"고 물었고, 정홍원 총리는 "기술적인 문제는 모른다",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가족들은 정 총리에게 "세월호가 침몰된 지 5일 됐는데 아직도 방법을 모르느냐"고 따졌다. 
 
기사 관련 사진
▲ 청와대로 향하는 실종자 가족 "정부는 살인마" '세월호 침몰사건' 5일째인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군내면에서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정부의 더딘 구조작업에 항의하며 청와대 방향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이날 100여 명의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는 살인마", "아들, 딸 살려내라"고 외쳤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실종자 가족에 둘러싸인 정홍원 총리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정부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20일 새벽 실종자 가족 일부가 "청와대로 가자"며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을 한 정홍원 국무총리가 돌아가지 못한 채 3시간 가까이 차안에 머무르며 항의를 받았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기사 관련 사진
▲ 총리 구출 나선 경찰들 '세월호 침몰사고'에 대한 정부 대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20일 새벽 실종자 가족 일부가 "청와대로 가겠다"며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출발했다. 이 과정에서 실종자 가족들과 면담 한 정홍원 국무총리가 돌아가지 못한 채 몇시간째 차안에 갇혀 있자 경찰들이 투입되고 있다. 가족들의 항의로 경찰은 곧 철수하고 큰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오전 3시 30분께 정 총리가 가족들과의 면담을 끝내고 차량에 탑승하자, 가족들은 차량을 막아섰다. 이들은 차량을 둘러싸고 "우리 아이들을 살려내라"고 외쳤다. 정 총리는 차 안에서 미동 없이 자리를 지켰다. 대치는 3시가량 이어졌고, 가족들은 오전 6시께 차량에서 물러섰다. 

이런 가운데 실종자 가족 100여 명은 경찰 저지선을 뚫고 도로를 따라 진도대교 방향으로 걸었다. 비가 흩뿌리는 가운데, 이들은 담요와 우비를 쓰고 행진을 이어갔다. 일부 가족은 건강상의 문제로 구급차에 호송되기도 했다. 실종자 가족들이 13km를 걸어 진도대교를 2km 앞둔 곳에 다다르자, 경찰은 "위험하다"며 행진을 막아섰다. 실종자 가족들은 경찰에 거세게 항의했다.

실종된 안산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인 김아무개(42)씨는 "아무리 튼튼한 아이라도, 어떻게 5일 동안 배안에서 생존할 수 있겠느냐"면서 "1분 1초가 급한데, 정부는 아이들을 구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정부와의 소통 채널이 없다, 가족들은 정부가 어떻게 구조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이게 정부냐"고 비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18대 대선은 3.15 능가하는 총체적 부정선거"

 
1500명, 서울 청계광장서 'Again 4.19 민주회복 촛불' 들어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4.19  21:39:06
트위터 페이스북
   
▲ 사월혁명회 정동익 상임의장과 회원들이 단상에 올랐다.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지난 18대 대선은 누가 봐도 (54년전) 3.15 부정선거를 능가하는 총체적인 관권 부정선거였다."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은 4월혁명 54주년인 1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Again 4.19 민주회복 촛불집회'에서 "우리 국민들이 목숨 바쳐 이룩한 민주주의가 부정으로 당선된 박근혜에 의해서 무참히 유린되고 있는 현실 앞에 4.19 영령들을 뵐 낯이 없었다"며 이같이 비판했다.

그는 "그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특검을 실시하라는 국민들의 최소한의 요구마저 1년이 넘도록 철저하게 외면해왔다"면서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 정권을 이 기회에 퇴진시키는 것만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살리고 이 나라의 정의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이번에 우리가 관권부정선거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앞으로 모든 선거는 하나마나하게 될 것이다. 우리 민주주의는 영영 소생할 수 없다"며 "가짜 대통령 밑에서 대대손손 무릎꿇고 살기를 원하는 국민이 이 자리에 한 사람이라도 있느냐"고 되물었다.

최갑수 서울대 교수도 "4.19가 어떻게 터진 줄 아는가? (이승만 독재정권의) 관권부정선거로 터졌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4월혁명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에 준 영향이 엄청나게 크다"고 강조했다.

"1950년대 늙은 이승만, 젊은 김일성 이게 한반도를 규정하는 기본 구도였다. 남한은 희망이 없는 나라였다. 절망을 돌파한 것이 4월혁명이었다. 4월혁명은 남한과 북한의 관계에서 남한에 희망이 있음을 깨우쳐준 것이다. 동아시아의 지각을 변동시켰다. 그 4월혁명을 밑천 삼아서 유신을 뚫고 5월 광주를 뚫고 1987년에 6월항쟁을 일으켰다.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 박석운 국정원시국회의 공동대표(왼쪽).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그는 "그러나 지금 우리는 어디에 와 있나. 이 봄에 우리의 꽃봉오리들을 저 바다에 처넣었다. 이 봄에 혁명을 해도 모자랄 우리가 꽃과 같은 생명을 바다에 넣었다. 망가져도 이렇게 망가질 수가 없다. 선장이 선장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누구도 자기의 주인이 아닌 사회가 됐다"며 "여러분 우리 다시 힘을 내야 한다"고 호소했다.

'남재준 파면, 특검실시'를 요구하며 청계광장에서 22일째 단식 중인 박석운 국정원시국회의 공동대표는 "대선개입에서 간첩조작까지 엄청난 범죄행위가 밝혀지고 있음에도 아무도 책임지는 자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에 선거조작하던 조직과 사람들 그대로 있는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부정선거 안할 것인가"고 지적했다. "그런데 야당들 뭐하고 있나? 손놓고 있다. 언론은 권력의 주구가 되고 정권의 시녀가 돼서 해야 될 보도 안하고 권력이 발표하는 것은 침소봉대해서 국민들 기만하고 있다"며 "결국 주권자인 국민이 나설 수 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이날 집회는 박근용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의 사회로 오후 6시 10분께 시작됐다. 참가자들 상당수는 주최 측이 미리 고지한 대로 '세월호' 실종자들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검은 옷을 입고 나왔다. 단체 깃발도 내리고 흰색과 노란색 깃발을 올렸다.

   
▲ 1,500여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세월호' 실종자들의 생환을 염원하는 손피켓을 들었다. 앞줄 오른쪽 두번째 최갑수 교수.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1,500여 참가자들은 집회 시작과 함께 '떠나와서' 노래에 맞춰 '무사생환을 염원합니다'는 글씨가 새겨진 손피켓을 들어올렸다.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진도 앞바다를 향해 "아이들아 살아와라"고 외쳤다. 정부를 향해 "아이들을 살려내라"고 촉구했다.

강다복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은 "차가운 물 속에서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생떼같은 자식들 생각에 목이 멘다. 슬프다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슬픔이다. 아프다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다"라고 했다.

강 회장은 "그 많은 우리 아이들이 실종돼 있는 상황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구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정부의 무능한 대처에 가족들과 이를 지켜보는 많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국민의 생명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의 늑장대응과 무능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누가 이런 정부를 믿고 생명을 맡기겠나"고 질타했다.

윤희숙 한국청년연대 상임대표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의 '대국민호소문'을 읽으며 아픔을 공유했다.

약 50분 간 계속된 이날 집회는 '4.19합창단'의 '동지를 위하여' 합창으로 막을 내렸다. 이어 참가자들은 종로 방면으로 '촛불평화대행진'을 전개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주민보 탄압은 북 객관적 소통 방해하는 저열한 술책

이병진교수 “민족분단 고착하려는 몽니” 편지
 
편집국 
기사입력: 2014/04/20 [06:16]  최종편집: ⓒ 자주민보
 
 

전 오산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병진 교수가 서울시가 자주민보를 상대로 낸 ‘자주민보등록취소 심판청구’에 대한 의견을 보내왔다.

이병진 교수는 편지글에서 해외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볼 수 있는 북의 언론인데 북에 대한 보도를 막으려는 것은 북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소통을 방해하려는 저열한 술책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자주민보 탄압은 분단을 고착시키려는 지배계급의 몽니라며 날카롭게 비판했다.(편집부) 

이병진 교수의 글 전문을 게재한다.   

보도 기사를 통해서 <자주민보> 폐간 행정 소송 소식을 들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재판이 열린다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힘든 상황에서 기사를 쓰시는데 재판 준비도 하셔야 하니 얼마나 마음고생이 크시겠습니까!

<자주민보> 필진의 한 사람으로서 저 역시 재판 승리를 위해서 응원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자주민보>에 대한 탄압은 북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소통을 방해하려는 저열한 술책이에요.

남북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상대방에 대해서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끔 자유로운 기사 작성과 사실 보도가 중요하지요.

해외에서는 아무 제약 없이 접하는 북의 매체인데, 그런 보도들을 틀어 막겠다는 것은 진부한(낡은) 짓이지요.

민족 분단을 고착하려는 지배 계급의 몽니로밖에 달리 해석할 수 없습니다.

한편, 보수세력이 <자주민보>를 폐간하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증거 아닐까요?

이번 재판을 계기로 자주민보가 더 알려지고 신뢰받는 언론사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저도 더 좋은 기사를 써 독자님들의 지지와 신뢰를 쌓는 데 노력하겠습니다.

자주민보 때문에 북의 공식입장들이 왜곡되지 않고 보도가 된다는 것은 남북관계 발전과 신뢰형성에 중요한 이바지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정부 기관의 보도통제로 한번 걸러져서 발표되는 북의 공식보도들은 부분적으로 인용 보도를 하는 것이어서 전체적인 흐름과 맥락을 왜곡하는 게 많습니다.

우리가 북의 매체에 직접 접근할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는 제한적일지라도, 자주민보의 보도를 통해서 '진실'을 접하게 됩니다.

이런 차원에서 저는 자주민보가 민족의 단합과 화합에 이바지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더구다나, 현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종북 이데올로기 공세로, 남과 북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 자주민보가 폐간된다면 우리 국민들의 건전한 여론 형성은 퇴행하겠죠. 그런 점이 걱정됩니다.

자주민보의 진정성과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들을 시민들과 더 넓게 공감할 수 있도록 좋은 기사들을 작성하여 이번 폐간 압박을 힘있게 짓 부셔가길 바랍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다 할 것입니다.

저는 인도와 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전문적인 기사를 작성하여 독자층을 더욱 넓혀 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자주민보가 실력과 능력까지 갖춘 권위가 있는 언론사로 발전하는데 이바지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힘내시길 바랄게요.

그동안 보수언론의 보도에 익숙한 분들이 자주민보의 기사들을 보시면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서 불편해 하시고 종북신문(언론)이라고 공격 하는 것 같은데, 북이 곧 망하지도 않고 점점 핵 무력을 강화하면서 경제까지 발전한다면 자주민보가 진실을 보도했다고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꼭 북이 핵무장을 해야 되고 성공하라고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제 경험과 지식에 근거할 때 북의 체제는 매우 공고하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북의 주장이 단순히 '선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북의 사정을 객관적으로 보도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친북 또는 종북으로 탄압하는 일은 옳지 못한 입니다.

이번 자주민보 폐간 탄압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연대 투쟁 전선을 만들어 자주, 민주, 통일, 논의를 확대하고 힘을 모으는 자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종북 딱지 놀음 때문에 민족의 생존과 안위가 걸린 중차대한 자주, 평화, 통일 논의가 위축돼있는데 온전히 목소리를 내는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겠습니다.

자주민보의 독자이자 책임 있는 필진의 한 사람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폐간을 반대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이병진 올림

                                                       2014년 4월 8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獨 권위지 FAZ, 세월호 사고 박근혜에 치명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주 민주 통일 금자탑 이루고 말 것

조영건 전교수
 
조영건 교수 
기사입력: 2014/04/19 [16:00]  최종편집: ⓒ 자주민보
 
 
본 기사는 조영건 전 교수가 진보정치에 기고한 글을 퍼온 것입나다.
 
4.19 혁명은 사대보수 부패특권의 일백년 철옹성을 깨뜨린 민중혁명의 전취물이었다. 자주 민주주의의 민중적 염원을 신생독립의 통일주권국가 수립으로 민족역사의 새 지평, 국민 단합의 무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었던 해방 국면은 격랑과 노도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분단과 독재가 초래된 좌절의 또 다른 비극의 분기점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일본 제국주의를 대체한 새로운 패자 미국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고 이것에 의존한 통치 세력은 참으로 국민 대중에게 거칠고 사나운 전제적 폭력이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공화제의 헌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자유당 이승만 정권의 독재는 전세기적 폭압이었다. 명목상의 삼권 분립에도 불구하고 입법부 국회는 발췌개헌, 사사오입, 삼선개헌, 종신권력의 법제적 추인으로 정부의 시녀에 지나지 않았다. 경찰‧검찰 권력과 차별되지 않는 사법부도 정권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한 횡포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냉전 반공 매카시즘으로 독립투사를 빨갱이로 두드려 잡았던 일제 통치 시기의 관료를 그대로 민주주의 압살에 써먹었던 친일파 지배구도의 연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 조영건 이사장(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안경 쓴 이, 당시 서울대 법대생)이 1960년 4월 19일 오후 2시 서울 경무대 앞에서 시위중 총에 맞은 중학생을 부축해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혁명의 좌절과 역사의 반동
 
2차대전을 종결한 전승 강대국의 동아시아 새 질서는 전쟁범죄자 일본 대신, 식민의 고통을 받은 한반도를 갈라 쪼개 먹는 것이었다. 소위 미국의 마샬 플랜이란 것으로 일본에게는 경제를 복구하는 구제정책, 한국에는 미공법 480호에 의한 잉여농산물 처리장으로 농업을 망치고 산업을 지체시키고 심지어는 정부 재정도 밀가루와 원면 원조물지라는 것을 대충자금으로 대체하는 자립경제를 망쳐먹는 형국이었다. 절대적 빈곤, 만성적 실업의 악순환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는 민생고가 이승만 정권의 말기적 현상이었다. 멸공 북진통일의 그 엄혹한 공포 속에서도 국민은 평화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진보당 조봉암 대통령 후보에게 사실상 압도적 투표를 던졌다. 그래서 이승만은 정치적 대항마를 죽여 버렸다. 그것은 정적을 제거하는 정치적 모략의 사법살인이었다. 민중의 고통과 국민의 불만은 쌓여갔고 저항을 누르는 전가의 보도는 국가보안법이었다. 그리고 경향신문 폐간을 자행한 언론 탄압이었다. 끝내 대통령 선거가 종신권력의 차단과 독재정권의 종언으로 다가왔다.  부정선거 음모, 불법 투개표 진행, 가짜 당선의 조작이 국민 항거의 활화산으로 터졌다. 그것이 1960년 3.15 대통령 부정선거의 진상이었다.
 
4.19 혁명은 오랜 민중 저항의 축적력을 바탕이 됐다. 2.28 대구 학생데모, 3.15 마산 시민항쟁, 김주열의 눈에 최루탄을 쏜 시체가 바다에서 인양되는 것을 기폭으로 재연한 4.11 2차 마산시민봉기 그리고 들불로 전국으로 확산된 국민궐기의 정점은 경무대 권부로 진격한 4.19혁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계엄이 선포되고 광화문에 군대 탱크가 포진되고도 시민 항쟁을 제압할 수 없었다. 4.25 대학교수단 시위가 이어지고 드디어 4월26일 이승만이 하야라는 이름으로 권좌에서 쫓겨난다.
 
독립투사로, 국부로 치장돼 미주로부터 건너와 완벽한 지도자로 각색되었던 그 카리스마의 이승만이 역사에서 퇴출될 것을 세계도, 국내에서도 감히 상상할 수 있었으랴. 그러나 역사의 심판은 엄정했고 민중의 위력은 막강했다. 이승만 후계자로 무리수를 두어 부통령으로 만들었던 이기붕과 그 일가는 권총 자살로 패가망신하고 자유당은 산산이 해체되었다. 이어 대한노총 어용조직이 무너지고 민주노조의 싹이 돋았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토호권력 척결의 농촌 농민 운동 부활이 전개되었다. 반민특위로 좌절된 친일파 척결의 새로운 시도가 가동되고 민주주의 민중의 의지는 자주와 통일의 정방향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4.19 혁명의 민주주의 전취물은 또 다른 사대 수구 기득 보수 특권 정치집단이 걷어먹고 말았다. 혁명의 주체 세력과 대체 권력의 이반, 이것이 혁명의 좌절과 역사의 반동을 가져오는 아킬레스건이다.
 
4.19 혁명은 1차적으로 신구파 보수야당 민주당의 집권 정쟁으로 혼란에 빠진다. 이어 2차적으로 친일세력 친미질서 분단반공 군사독재의 5.16 쿠데타로 좌절되고 말았다. 그것을 일컬어 미완의 4.19 혁명이라 한다.
 
우리의 헌법질서는 자주 민주 통일
 
프랑스 대혁명이 공화제 시민권력을 인류사에 헌정하고도 테르미도르 반동과 나폴레옹 독재정권의 등장으로 귀결되고 다시 빈 국제 반동질서로 고착되었던 혁명의 전진과 반동의 역사적 경험칙과 다를 바 없다. 나치 점령 치하 레지스탕스로 투옥되었던 역사학자 르 페브르가 감옥에서 써낸 프랑스대혁명사란 세기적 저작은 삼부회 귀족혁명, 국민회의 시민혁명, 노동자혁명, 농민혁명의 네 단계로 혁명의 주체세력과 지속적 발전단계를 서술하고 있다. 우리 4.19 혁명도 1960년 4.19로부터 1961년 5.16까지 13개월 동안 역동적이고 발전적이었다. 그리고 그 진수는 자주 민주 통일이었다. 그날의 성취는 우리 현행 헌법에도 그대로 명시되어 있으며 이 질서와 가치를 거역하는 그 어떤 것도 역사에서 패배하고 소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추동될 수 있었던 것은 혁명 주체 세력의 정치조직 결성과 역할에 기인한다.  시민혁명의 중심 역할을 했던 정치적 주도 세력인 국민의회의 오른쪽 자리가 온건파 지롱드당, 왼쪽이 급진파 자코뱅당, 이것이 좌우익의 기원이다. 냉전분단 고착의 통치술로 좌우대립, 이데올로기 대립의 확대재생산, 일제 식민통치의 유산을 그대로 연장한 언필칭 좌익이니 종북이니하며 정치적 도구로 통치의 술수로 써먹는 것은 역사 구태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4.19 혁명의 통한의 장은 당시 혁명주체 민중을 껴안는 조직적 정치 세력이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그래서 반세기가 지나도록 이렇게 미완의 4.19 혁명을 현재적 역사 과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자 농민의 민중적 조직의 성장, 그리고 그것을 결집하는 진보적 정치세력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길고 험난한 투쟁을 거쳐 전진하고 있는 4.19 정신을 담지하고 있는 불굴의 정치세력이자 진성 진보정당이다. 오늘의 진보당은 민중승리 민주주의 승리의 확실한 대들보다. 계속되는 4.19 혁명, 현재 진행형의 4.19 혁명은 내란음모 조작 정당해산 시도 그리고 온갖 물리적, 법적 탄압을 박차고 전진하는 진보당의 투쟁 속에서 기필코 자주적 평화통일 민주주의 민중승리의 금자탑을 이룩하고야 말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CNN, 세월호 물속의 어떤 물체와 부딪혔을 가능성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4/19 10:17
  • 수정일
    2014/04/19 10:1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월혁명 정신으로 제2의 유신독재 끝장내겠다"

 
 

사월혁명회, 제23회 사월혁명상 시상식 및 4월혁명 54주년 행사 개최
이승현 기자  |  shlee@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4.18  18:59:11
트위터 페이스북
   
▲ 사월혁명회(상임의장 정동익)가 수여하는 제23회 사월혁명상 수상자로'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선정됐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월혁명회(상임의장 정동익)가 수여하는 제23회 사월혁명상 수상자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이 선정됐다. 시상식이 1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열렸다.

사월혁명회는 민변이 지난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한 진상규명에 적극 나섰으며, 서울시공무원 간첩 조작사건 변론과정에서 정보기관의 증거조작 사실을 명백하게 폭로하는 등 불철주야 헌신적인 활동을 해 왔다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 장주영 민변 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시현 사월혁명회 이사장으로부터 상을 받은 장주영 민변 회장은 "민변과 회원들의 지속적인 활동을 기대하고 격려하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며 "민주주의가 회복과 국민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되는 민주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맡은 바 책무를 다 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장주영 회장은 "민변은 아직도 정확한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정보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활동을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며 "공안통치와 노동탄압의 중단을 외치는 활동도 계속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갑을 관계로 상징되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권익향상 활동도 지속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장 회장은 특히 "지난 18대 대선은 현대판 3.15부정선거를 방불케 하는 사건"이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4.19혁명과 5.18민주혁명, 6월항쟁을 통해 피와 땀으로 이룩해 온 이땅의 민주주의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며 "국민들과 소통하면서 지속적인 활동을 계속해 나간다며 언젠가는 다시 우리가 일어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사월혁명상 시상식과 함께 4월혁명 54주년 행사도 함께 열렸다.

사월혁명회는 이날 발표한 '4월혁명 정신으로 유신독재 끝장내자'라는 제목의 4월혁명 54주년 선언문에서 박근혜 정권을 '제2의 유신독재 정권'이라고 칭하고 '불법 관권 부정선거인 지난 18대 대통령선거 원천무효'를 선언했다.

또한 '국가기관을 부정선거에 동원한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수사'와 '부정 관권 부정선거로 집권한 박근혜 정권의 즉각 퇴진'을 촉구했다.

이문상 공동의장이 낭독한 선언문에서 사월혁명회는 "지금 우리 사회는 백주에 공안탄압과 여론조작이 횡행하는 암흑시대로 전락했다"며 "4월혁명 54주년을 맞는 오늘 우리는 국민들이 목숨바쳐 이룩한 민주주의가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는 현실앞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서 "박 정권은 민주주의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공약을 파기하고 민생 복지마저 파탄내어 벼랑끝에 몰린 서민들의 죽음이 잇따르고 있"을 뿐 아니라 "평화·통일의 이정표인 6.15, 10.4공동선언을 부정하고 허황된 통일논의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월혁명회는 "이제 박근혜 정권이 저지르는 폭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직 박근혜 정권의 퇴진밖에 없음이 분명해졌다"고 선언했다.

   
▲ 왼쪽부터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임방규 전 통일광장 대표,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연대사를 위해 마이크를 잡은 임방규 전 통일광장 대표는 "4.19 당시의 주력인 학생운동의 지도자들이 이제 80줄에 접어든 노인이 됐다"며 감회롭게 운을 뗀 후 "흐뭇한 생애를 보냈다고 회고할 수 있도록 젊은 시절 가졌던 불의에 대한 분노와 정의를 향한 열정을 늘 간직하자"고 참석자들에게 덕담을 건넸다.

임방규 전 대표는 더불어 "정신과 육체는 하나이면서도 서로 다른 고유의 특징이 있다"며 "정신은 육체와 달리 노쇠하지 않는다. 수양과 투쟁을 통해 더욱 빛나는 것이 정신이다"라고 참가자들에게 4월혁명 정신을 되새길 것을 주문했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4월 19일 '4.19혁명정신 계승 민중대회'를 10만 촛불대행진으로 떨쳐 나서 5.18과 6.10항쟁으로 이어지는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박근혜 정권 퇴진 투쟁에 나서겠다고 보고했다.

또 4월 25~26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일본의 집단적자위권을 인정하고 군사대국화를 용인하며, 한·미·일 군사동맹 강화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민족의 자주권과 평화, 통일을 위한 투쟁을 벌여나가겠다고 말했다.

4.19혁명 54주년을 맞아 청년.학생들의 결의도 이어졌다.

윤희숙 한국청년연대 상임대표는 미리 준비한 결의문에서 "54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도 4.19혁명 당시와 다를 바 없다"며 "청년들이 앞장서서 선거조작, 내란조작, 간첩조작 책임자를 처벌하고 민주주의를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다.

장민규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 의장도 "지난 1년은 헌법유린, 국기문란, 민주주의 파괴의 날들이었"으며, "송파 세모녀의 비보 등 빈곤으로 인한 자살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고 있"는 등 민생 파탄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장민규 의장은 "학자금 대출로 인한 대학생 신용불량자가 현재 3만명을 넘었고" "대학구조조정 학과통폐합으로 인해 학과가 사라지고 있다"며 현재 대학생들이 처한 현실을 고발했다.

장 의장은 "4.19 혁명을 만들었던 것도 학생들이었듯이 민주주의와 민생회복을 위해 다시 한번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설 것"이라고 결의를 밝혔다.

1부 행사는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장의 인사말로 시작해 이천재 범민련 고문의 힘찬 만세삼창으로 마무리됐다.

   
▲ 4월혁명 54주년 행사는 이천재 범민련 고문의 힘하게 선창하고 참가자들이 함께 한 만세삼창으로 이어졌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2부순서로 '4.19혁명과 혁명정신'을 주제로 한 박찬승 한양대학교 교수의 특별강연이 진행됐다.

박 교수는 강연에서 4.19혁명의 바탕에 깔려있는 혁명정신을 3.15부정선거가 국민의 주권을 부정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에 저항해 봉기한 '민주주의', 이승만 정권 치하에서 언론, 집회, 결사 등의 자유가 침해되어 온 것에 저항하여 봉기한 '자유주의', 이승만 정권의 독재가 근본적으로 분단의 질곡으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고 분단을 청산하기위해 민족통일 운동을 추진한 '민족주의'라고 정리했다.

박 교수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민족주의' 등을 차례대로 설명한 후 미숙하고 추상적인 인식수준에 머물렀다는 한계도 동시에 짚었다.

그러나 이것은 4.19혁명 당시가 해방으로부터 15년밖에 되지 않았고, 한국전쟁 종전으로부터 7년밖에 되지 않았으며, 미·소간의 냉전이 진행중인 시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대적인 한계'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세월호 미스터리 투성이, 꽝 소리 정체는?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4/19 09:45
  • 수정일
    2014/04/19 09:4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급격한 ‘변침’ 상식밖, 갑자기 속도 늦춘 이유는? 7시40분 큰 충격 증언도
 
육근성 | 2014-04-18 13:22:0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최악의 사고다. 실종자 가족들은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몸부림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며 이번 침몰사고에 대한 의구심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미스터리 투성이다. 조난 사실 신고 시각, 사고 당시 선내 상황, 선장의 대처, 승무원들의 탈출 과정, 사고원인, 항로 이탈과 과속 여부, 선체 결함과 불법 증축 논란, 구조작업이 늦어진 까닭, 조기에 선내 진입통로 확보조차 못한 이유 등등 의문점이 널려 있다. 최대 미스터리는 무엇일까. 다섯 가지를 꼽을 수 있겠다. 

●수상한 선장, 수사당국은 일체 함구

선장 이모씨. 휴가간 원래 선장 신모씨를 대신해 운항했다. 선사측은 이씨가 “동일 노선을 반복해 항해한 베테랑이라서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구조 작업이 벌어지며 가장 먼저 눈에 띤 건 선장 이씨가 배에서 탈출하는 장면. 수백 명을 배안에 둔 채 제일 먼저 빠져나온 것이다. 정상적인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 이럴 수 없다. 

선장의 수상한 행동에 대해 해경이 충분한 조사를 했을 터, 하지만 아무런 설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선장뿐 아니라 항해사 등 승무원들도 조사를 받았다. 또 생존자들의 증언도 있다. 이쯤이면 사고 원인의 ‘얼개’가 충분히 그려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함구다. 사고원인을 당장 발표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배가 기우는데도 왜 학생들에게 제자리를 지키라고 했는지, 왜 선장이 수백명 승객을 버리고 제일 먼저 탈출을 시도했는지, 왜 배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는지 정도는 국민들에게 알려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알려진 사실만 가지고 퍼즐을 맞추다보면 퍼득 이런 생각이 든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사고가 발생한 걸까. 충분히 구조될 수 있었던 인명들이었다. 무엇이 이들을 죽음의 상황으로 내몬 걸까. 수사당국이 입수한 정보를 누군가의 입맛에 맞도록 가공하고 있는 건 아닐 런지.

●구명보트 작동 안했나, 못했나?

길이 20m 이상 선박이면 ‘구명벌(둥근 구조용 보트)’이라고 불리는 구난장비를 의무적으로 탑재해야 한다. 세월호에도 승객 900명을 대피시킬 수 있는 구명보트가 장착돼 있었다. 잠금레버를 푸는 등 간단한 조작만으로 자동 사출돼 펼쳐진다. 

지붕까지 달린 구명보트에는 식수, 비상식량, 응급의약품, 자체 동력까지 탑재할 수 있어 위난을 당한 승객들에게 최후의 생존수단이 된다.  

세월호의 구명보트는 단 한 개만 작동했다. 배가 기울어 거반이 물에 잠길 때까지 3개가 바다에 떨어졌지만 펴진 건 단 하나. 좌현에 있던 12개의 구명보트는 아예 그대로 배에 묶인 채 바다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배가 급히 기울고 물아 차오르는데도 선장과 승무원들은 구명보트를 작동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그대로 있어 달라”는 안내방송만 했을 뿐이다. 왜 그랬을까. 선박과 항해에 대해 지식이 전혀 없는 이들도 위급할 때 구명보트를 펴야 한다는 것쯤은 안다. 

안한 걸까, 못한 걸까. 선장과 승무원들이 구명보트 작동방법을 몰랐을 리 없다. 안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구명보트를 작동시켰다면 280명 실종자 수는 반으로, 아니 그 이상까지 줄었을 것이다. 분통이 터진다.  

세월호는 지난 2월 10일 한국선급과 선박안전기술공단에서 안전검사를 받았다. 판정결과는 ‘양호’. 황당할 뿐이다. 

●왜 큰 배가 순식간에 기울어졌을까? 

전장 145m, 선폭 22m, 배수량 6835톤, 정원 921명의 대형여객선이다. 이렇게 큰 배가 좌현이 기울기 시작한 뒤 2시간 20분 만에 완전히 침몰한 것이다. 해경은 세월호가 무리하게 항로를 변경(변침變針)했기 때문에 침몰한 것 같다는 얘기를 흘린다. 

급격한 변침으로 원심력이 생겨 배가 기울며 선내에 물이 차 침몰했다는 얘기다. 항로를 완만하게 바꿨더라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인가. 변침이 대형여객선의 침몰 원인라는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질뿐더러, 병풍도를 지나 제주도로 가던 세월호가 급격히 변침을 시도할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 일자 두 가지 이유를 보탰다.

먼저 세월호에 실린 화물. 180대 차량과 화물 1100톤이 결박된 채 실려 있었다. 급격한 변침으로 좌현이 기울자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세월호가 급격히 복원력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또 세월호의 구조변경도 변침과 맞물리면서 침몰에 영향을 줬을 거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객실 구조변경으로 239톤이 늘어난 것이 침몰을 부채질 했다는 얘기다. 

변침에 의한 침몰이 맞는 걸까? 어떤 충격에 의해 배기 기울기 시작한 건 아닐까?

●사고 시각과 ‘꽝’ 소리... 해경 주장과 다르다 

사고 발생 시각도 미스터리다. 8시 52분이 아니라 이보다 1시간 이상 앞선 오전 7시 40분이라는 증언이 있다. 세월호 보일러실 승무원 전모씨는 “오전 7시 40분께 업무를 마치고 업무일지를 쓰던 중 갑자기 배가 기울었다”며 “창문이 박살나고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릴 정도”였다고 말했다. 

전씨의 증언에 신빙성을 보태는 목격자도 있다. 주변 어민들은 ‘세월호가 항로에 1시간 가량 서 있었다’고 주장했다. 사고가 알려진 시각보다 적어도 1시간 전에 발생했다는 사실을 방증해 주는 대목이다. 

구조된 승객들은 “‘꽝’하는 소리가 난 뒤 좌현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 증언은 ‘급격한 변침에 의해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기울기 시작한 것’이라는 해경의 주장과 상충된다. 

해경의 주장대로라면 배가 먼저 기운 뒤에 ‘꽝’소리가 났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승객들의 주장은 ‘꽝’소리가 먼저이고 그 뒤 배가 기울었다고 증언했다. 변침에 의한 게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급격한 변침 '상식밖', 갑자기 속도 늦춘 이유는?

선박자동식별장치(AIS)의 항적 분석 결과에 그 답이 있을 수 있다. 박진수 해양대 교수는 AIS 분석을 통해 변침 시점 배의 속도가 17~18노트 였던 것이 그 후 갑자기 5~6노트로 급격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밝혀 냈다. 그 원인으로 “앞에 나타난 장애물을 피하려고 변침과 동시에 엔진 회전을 줄여 속도를 떨어뜨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고 지점에 암초는 없었다. 무엇을 피하려 한 걸까. 아니면 무엇에 부딪히면서 급격한 변침이 발생한 건 아닐까. 항해전문가들은 “20도 이상 급선회하는 건 위험상황으로 흔치 않다”고 말한다. 왜 세월호는 90도 변침을 시도한 걸까. 

급박한 상황에서 엔진회전수(RPM)을 크게 줄인 이유도 궁금하다. 일부 해양전문가들은 “무언가 충돌해서 속도가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꽝’ 소리가 난 뒤 배가 기울었다는 승객들의 증언과 “7시 40분 경 창문이 박살나고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릴 정도”의 충격이 있었다는 승무원 전씨의 증언은 해경의 설명과 완전히 대립된다. 

엄청난 참사에 국민은 패닉 상태다. 분노와 탄식을 가눌 길 없어 가슴을 쓸어내릴 뿐이다. 졸지에 자식과 남편, 아내, 형제를 잃게된 이들의 절절한 눈물을 생각해서라도 이번 만큼은 한점 의혹없이 모든 것을 밝혀야 한다. 책임은 박근혜 정부에게 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30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세월호 참사” 왜 국가안보실이 컨트롤타워인가

 
김원식 재미언론인 
기사입력: 2014/04/19 [09:08]  최종편집: ⓒ 자주민보


 

청와대는 지난 16일 진도 여객선 침몰 대형 참사가 발생하자 보도자료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오전 진도 인근에서 발생한 여객선 침몰사고와 관련해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즉각적인 보고를 받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어 "현재 청와대는 김장수 안보실장이 위기관리센터에서 사고와 구조현황을 파악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관련 상황을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습니다"고 전했습니다.

일부 언론들도 "박근혜 대통령은 사고가 발생한 지난 16일부터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으로부터 현장 및 구조 상황에 대해 실시간으로 보고를 받으며 상황을 챙기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특히, "김장수 안보실장이 위기관리센터로 자리를 옮겨 사고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군과 경찰의 구조 현황을 파악하는 동시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한편 관련 상황을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워낙 국가적인 대형 참사가 발생하다 보니 단 한 명의 실종자를 구하는 것이 다급한 마당에 정부가 국가 안보에 관한 최고의 컨트롤타워를 동원해 상황을 지휘하고 있는 이러한 현실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관련 법률이나 시행령을 위반한 월권행위입니다. '국가안보실'의 존재 이유는 "국가안보실은 국가안보에 관한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한다"고 명확히 해당 법령에도 규정되어 있습니다. 

위기관리센터 역시 국가 안보에 관한 위기를 관리하는 것으로 "위기관리센터장은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외교부 소속 외무공무원 또는 통일부 소속 공무원이나 이에 상응하는 국방부 소속 현역장교 또는 국가정보원 직원으로 대체하여 충원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청와대의 국가안보실은 전쟁, 테러 등 긴급한 국가안보와 관련하여 국방부 등 관련 부처의 공무원을 차출하여 이러한 안보 위기 상황에 관해 총괄적인 컨트롤타워 기능을 하는 기구입니다. 안전행정부 공무원을 명시적인 차출 규정으로 두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점입니다.


늑장 대응, 사고 수습 혼란 등 모든 책임을 '국가안보실'은 질 수 있나?

우리 정부는 국가적인 중대 재난 사태와 관련하여 안전행정부 장관을 수장으로 하는 '중앙대책본부'를 가동하게 법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대책본부에 안전행정부 소속 공무원 등 관련 공무원들을 차출하여 재난사태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대형 여객선 침몰 대형 참사에서는 이보다도 결국 '국가안보실'을 상위 컨트롤타워로 하여 모든 상황을 보고하고 지휘하게끔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번 참사의 구조 과정에서도 특히, 해군 특수 잠수 요원 등 국방부가 관할하는 군인이 많이 투입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는 협조 사항으로 반드시 '국가안보실'이 이번 대형 여객선 침몰 참사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는 데 대한 명분이 될 수는 없습니다. 중앙대책본부 등 관련 기관에서도 얼마든지 국방부가 관할하는 육해공군 등의 인력 파견과 협조를 요구할 수 있는 장치가 구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국가 안보를 총괄하는 국가안보실이 총괄 컨트롤타워로 나서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청와대는 선전했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사건 발생 초기 실종자 숫자도 제대로 집계가 안 되는 등 총괄적인 재난 사태 대응력 부족 등 난맥상의 모습만 보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번 대형 참사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고 원인을 포함한 늑장 구조 등 모든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밝혀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면 관련 법률에 따라 조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즉 정부의 신속한 대응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 책임은 국가의 안보를 총괄하는 김장수 청와대 안보실장이 책임을 져야 하는지 아니면 질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대형 참사이지만 여객선 침몰이라는 사건이 과연 국가 안보와 관련이 있는지도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대테러 사건도 아닌 여객선 침몰에 '국가안보실'이 지휘하는 나라는 없다

다시 말해 테러 등 국가 안보와 관련성이 없는 사건에서 왜 국가안보실이 나서야 하며 총괄적인 지휘를 해야 하는지도 의문입니다. 

미국이나 다른 국가에서 테러와 관련이 없는 대형 사고에 국가안보회의(NSC) 같은 대통령 보좌 기구가 전면에 나서 상황을 총괄적으로 진두 지휘한 사례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해당 정부가 행정부 등 관련 기관들의 무능함을 사전에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지난번 고위급 회담을 비롯해 이번에 발생한 무인기 사건에 이르기까지 철두철미하게 우리의 관련 행정 기관인 통일부와 외교부를 무시하며 "김장수 안보실장 나오라"며 아예 구체적인 실명을 거론해 가면서까지 비아냥을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허수아비에 불과한 통일부와 외교부를 상대하기 싫다는 그들의 행동과 주장이 실질 행정 기관에 대한 무례를 넘어 실권자(?)를 직접 상대하겠다는 오만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왜 남북한 간의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도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는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안전행정부를 비롯하여 국가 내부의 중대 재난 사태와 관련하며 엄연히 관련 법률에서 규정한 기관들이 있음에도 대통령령으로 다시 신설된 '국가안보실'이 해당 신설 규정에도 맞지 않게 이러한 재난 사태를 총괄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인지가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월권행위가 과연 재난 사고에 대한 효율적인 대응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일인지 논란이 될 소지가 충분히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국가안보실'은 국가의 안보에 관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업무를 총괄하는 기구이지 모든 행정기관을 지휘 감독하는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01&table=newyork&uid=6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민 여러분 도와주세요” 실종자 가족들 호소문 발표

 

등록 : 2014.04.18 09:47수정 : 2014.04.18 11:41

툴바메뉴

기사공유하기

보내기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3일째인 18일 오전 실종자 가족 대표가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서 ‘실종 가족 호소문’ 발표를 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후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뉴스를 통해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 모두 구조됐다는 발표를 듣고 아이들을 보러 현장에 도착했지만 실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정부의 신속한 구조와 정확한 정보전달을 호소했다.【진도=뉴시스】

실종자 가족들 “상황 책임지고 전달·지시하는 사람 없어”
“구조작업 투입 인력과 장비도 정부가 거짓말해” 주장

세월호 침몰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의 부실한 대처에 분노해 국민에게 직접 전달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모여 있는 실종자 가족들은 18일 오전 발표한 호소문에서 “현 시점에서 진행되는 행태가 너무 분한 나머지 국민들께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합니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16일 낮 12시쯤 전원 구출이라는 소리를 듣고 아이들을 보러 이곳에 도착했지만 실상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도 실내체육관 비상상황실에 와보니 책임있게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관계자가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상황실도 없었다”고 성토했다.

 

가족들은 이어 “우리가 알고 싶은건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안인데 누구 하나 책임지고 말하는 사람도, 지시를 내려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또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차가운 물속에서 소리치고 있었을 것”이라며 “민간 잠수부 동원해 지원 요청했지만 배도 못띄우게 하고 진입을 아예 막았다. 흥분한 우리는 소동피고 난리쳐서 책임질수 있는 사람 보내달라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또 “어제 현장을 방문했는데 (구조)인원은 200명도 안됐고, 헬기 두대, 군함 두 척, 경비정 두 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구조대원 8명이 구조작업을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인원투입 555명, 헬기 121대, 배 169척을 투입했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가족들은 “우리 아이들을 살릴 수 있도록 다시한번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십시오”라며 호소문을 끝맺었다.  

 

온라인뉴스팀

 

<여객선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 대국민 호소문 전문>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한 나머지 국민들께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합니다.

 

4월 16일 오전 9시께 사고가 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뉴스를 통해 진행 상황을 지켜보다가 낮 12시쯤 모두 구조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을 보러 도착했지만 실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생존자 82명, 학생 74명, 교사 3명, 일반인 5명이 도착한 시각인 오후 5시 30분께 실내체육관 상황실에 와보니 책임을 지고 상황을 정확히 판단해주는 관계자가 아무도 없고 상황실도 꾸려지지 않았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현재 진행되는 상황인데 누구하나 책임지고 말하는 사람이 없고 지시를 내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아이들은 살려달라고 차가운 물속에서 소리치고 있었을 것이다.

 

학부모 대책위를 꾸려 오후 7시쯤 팽목항과 실내체육관 2곳으로 나누어 사고 현장을 방문하고자 했는데 민간 잠수부를 동행해 자원을 요청했지만 배도 못 띄우게 하고 진입을 아예 막았다.

 

흥분한 저희들은 소동을 피우고 난리를 피워서 책임지는 사람을 보내달고 했는데 대답이 없었다.

 

오후 10시 넘어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고 구조는 없었다. 계속된 요청에도 17일 오전 1시께 다시 한다고 전달받았지만 조류가 심하다, 생명이 위협받는다고 얼버무렸다.

 

군과 경찰은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한다. 학부모와 민간 잠수부는 오열했지만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일 현장을 방문했는데 인원은 200명도 안 됐다. 헬기는 단 2대, 배는 군함 2척, 해양경비정 2척, 특수부대 보트 6대, 민간 구조대원 8명이 구조 작업 중이었다.

 

그러나 오전 9시 정부는 인원 555명, 헬기 121대, 배 69척으로 아이들을 구출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국민 여러분, 이게 진정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아이들을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이전 이미지다음 이미지

세월호 침몰

(진도=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17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 사고선박 주변에서 모 여학생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이 발견됐다. 가방 안에는 학생의 명찰, 화장품, MP3 재생기, 약통, 교통카드 등이 들어 있었다. 2014.4.17

세월호 침몰

진도 팽목항에서 한 스님이 기도를 하고 있다. 2014-04-18/로이터

세월호 침몰

진도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이 얼굴을 가리고 눈물 짓고 있있다. /2014-04-08 로이터

세월호 침몰

진도 팽목항에서 한 스님이 기도를 하고 있다. 2014-04-18/로이터

세월호 침몰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이틀째인 17일 저녁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열린 ‘세월호 실종자 무사귀환 기원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소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여객선 침몰 사고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는 바램이 전 국민들에게 확산되고 있다. 뉴스1

세월호 침몰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저녁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단원고 1·3학년 학생들과 학부모 등 인근 학교 학부모 수백여 명이 참석해 촛불 기원제를 열고 있다.이들은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한 손에는 촛불 대신 스마트폰 후레쉬를, 한 손에는 ‘배고프지? 엄마랑 밥 먹자’란 글귀가 적힌 종이를 들고 실종자 학생들의 전원 무사귀환을 기원했다.뉴스1

세월호 침몰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저녁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단원고 1·3학년 학생들과 학부모 등 인근 학교 학부모 수백여 명이 참석해 촛불 기원제를 열고 있다.이들은 비가 오는 가운데에서도 한 손에는 촛불 대신 스마트폰 후레쉬를, 한 손에는 ‘배고프지? 엄마랑 밥 먹자’란 글귀가 적힌 종이를 들고 실종자 학생들의 전원 무사귀환을 기원했다.뉴스1

세월호 침몰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전남 진도 해상 침몰 여객선에서 실종된 학생들을 위한 안산시민 촛불 기도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눈물로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전남 진도 해상 침몰 여객선에서 실종된 학생들을 위한 안산시민 촛불 기도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17일 밤 경기 안산 단원고에서 한 시민이 촛불을 들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침몰

여객선 침몰 이틀째인 17일, 안산 단원고 실종학생 가족들이 모여있는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가족들 위로하기 위해 방문하자 가족들이 참았던 눈물을 터트리며 오열하고 있다. 뉴시스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상황실에서 학부모 등이 통화를 하고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상황실에서 학부모 등이 통화를 하고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상황실에서 학부모 등이 통화를 하고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상황실에서 학부모 등이 통화를 하고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세월호 침몰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남동리 팽목항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비가 오는데 오가고 있다.진도/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세월호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후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희비가 갈리는 소식이 들릴때 마다 울부짖고 있다.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월호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후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희비가 갈리는 소식이 들릴때 마다 울부짖고 있다.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월호 침몰

사고 이틀째인 17일 오후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희비가 갈리는 소식이 들릴때 마다 울부짖고 있다. 진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팽목항의 모습/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4월 16일 팽목항에 앉아있는 생존자의 모습/ 이종근 기자

세월호 침몰

17일 오전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상황실이 마련된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애타게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진도/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글귀가 게시판에 적혀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세월호 침몰

세월호 침몰 참사 이틀째인 17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교실에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글귀가 게시판에 적혀 있다. 안산/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세월호 침몰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7번째 사망자 박영인 군의 어머니가 17일 오전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오열하고 있다. 진도/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세월호 침몰

(진도=연합뉴스) 특별취재팀 = 17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 사고선박 주변에서 모 여학생 것으로 추정되는 가방이 발견됐다. 가방 안에는 학생의 명찰, 화장품, MP3 재생기, 약통, 교통카드 등이 들어 있었다. 2014.4.17

세월호 침몰

진도 팽목항에서 한 스님이 기도를 하고 있다. 2014-04-18/로이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모두들 돌아와줘, 기다릴게”...안산 단원고를 밝힌 500여명의 염원

안산=김백겸 기자  발행시간 2014-04-18 00:06:02 최종수정 2014-04-18 07:26:33

17일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는 전날 전남 진도 인근 해안에서 침몰한 ‘세월호’에 탑승한 학생들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염원이 모였다.

이날 오후 8시 30분 단원고 운동장에는 세월호 실종 학생들의 선·후배와 다른 학교 친구들, 시민 등 500여명이 모여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이들은 행사를 시작하기 1시간 전부터 학교에 모여들었다. 친구끼리 만나 실종 학생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감정에 북받쳐 오열하다 실신하는 학생도 있었다.

단원고 학생들, 세월호 생존자 우리가 구해줄께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 중 진도에서 침몰 사고를 당한 2학년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이들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1시간가량 운동장에 그대로 서서 ‘모두들 돌아와줘, 기다릴게’, ‘희망 잃지 마’, ‘배고프지? 엄마랑 밥 먹자’, ‘너희들 미소가 그립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구해줄게’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무사귀환을 염원했다. 참가자들이 펼쳐든 무사귀환 메시지에는 그리운 친구들의 이름이 적혀 있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자신이 들고 있는 메시지 뒤에 핸드폰 불빛을 비춰 마치 작은 은하수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우산이나 우비도 없이 쌀쌀한 날씨에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으면서 자리를 지키는 학생도 많았다.

학생들은 1시간 뒤 학교 건물로 올라오자 참아왔던 감정을 쏟아내듯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열하는 친구에게 울지 말라고 다독이면서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보였다.

세월호 생존자 구조, 단원고 500여명의 기원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 중 진도에서 침몰 사고를 당한 2학년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실종된 김진희·강부정 양의 무사귀환을 염원하던 한 여학생은 “중학교 때부터 친해져서 고등학교가 달라졌어도 매일 만났다”며 “친구들이 보고 싶다. 무사히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이 학생은 ‘희망을 잃지 마’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단원고 옆 단원중학교 학생들도 선배들이 무사하길 기원했다. 단원중 3학년인 한 남학생은 “자주 축구를 같이 하면서 잘 놀아 주던 형이 실종됐다”며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학년 4반 박정훈 군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다는 노승리(16) 군은 “축구나 농구 등 운동을 같이 하던 친한 형”이라고 박 군을 소개하며 “제발 다 살아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러면서 “공기가 남아있는 공간인 에어포켓에 사람이 있다고 한다”고 희망을 놓지 않았다.

단원고 행정실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애들이 이런 것을 계획하다니 잘했고 기특하다”며 “아이들이 구조될 때까지 계속 이어질 것 같고 그때까지 학교에서도 지원할 것 같다”고 말했다.

안산시 와동에서 온 백모(37) 씨는 학생들이 운동장에 서 있는 동안 주변에서 촛불을 들고 마음을 함께 했다. 백씨는 “아이들을 보면서 짠하다”며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단원고 전교회장의 이름으로 올라온 “이번 일로 우리가 후배들을 위해서 의미 있는 일을 하려고 다 같이 마음을 모아서 메시지를 전달해볼까 한다.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이것인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이 SNS를 통해 퍼지면서 이번 행사가 이뤄졌다.

앞서 이날 단원고에서는 오후 8시 실종된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위한 ‘안산시민 촛불 기도회도 열렸다.

세월호 생존자 우리에게 돌아와줘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수학여행 중 세월호 침몰 사고를 당한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안산단원고
안산단원고 학생 등 500여명이 세월호 침몰로 실종된 친구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메시지를 종이에 적어 간절한 마음을 나타내고 있다.ⓒ민중의소리
세월호 생존자 구조 기원하는 단원고 학생들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 중 진도에서 침몰 사고를 당한 2학년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보고싶어 돌아와 단원고에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 중 진도에서 침몰 사고를 당한 2학년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보고 싶은 단원고 학생들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 500여명이 '돌아와줘,보고싶어,배고프지,기다릴께' 등이 적힌 종이를 들고 수학여행 중 세월호 침몰 사고를 당한 학생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구조 위한 눈물의 촛불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연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 무사귀환 촉구 촛불기도회에서 한 참가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양지웅 기자
눈물의 촛불 기도, 세월호 생존자 구해주세요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연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 무사귀환 촉구 촛불기도회에서 한 아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구조 기원하는 아이들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연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 무사귀환 촉구 촛불기도회에서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위해 기도하는 안산 시민들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촛불 기도회를 열고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안산시민 촛불 기도회, 세월호 생존자를 위해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촛불 기도회를 열고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생존자 구조 기도하는 시민들의 촛불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촛불 기도회를 열고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월호 사고자들을 위한 촛불
17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안산시민들이 촛불 기도회를 열고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19 저녁6시 청계광장에서 정부를 성토하자!

 
국정원비리, 세월호 고교생도 못구하는 이 정부는 뭐하는 정부?
 
이호두 기자
기사입력: 2014/04/18 [01:29]  최종편집: ⓒ 자주민보
 
 
 
못살겠다, 갈아보자-! 어게인419
민중혁명으로 부정부패 대통령 이승만을 몰아내었던 1960년 4월19일.
그날을 기념하며 또다시 모인다. 
사월혁명회 등 시민사회단체는 19일 오후 6시 청계광장 소라탑에서 대규모 국민대회를 개최해 현정권의 관권 부정선거와 오바마 방한 반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 등을 규탄할 계획이다.
 
시민단체는 한 인사는 "최근 대한민국은 박근혜 정부의 부도덕함과 더불에 무능함을 여실히 경험중"이라며 "대선 부정, 국정원 사태로 이미 그 정통성이 흔들리고 있었던 박근혜 정부는, 이번 세월호 진도 침몰사고에 대처에서도 무능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 피해자 가족들로 부터 터져 나오고 있지 않느냐"며 분노를 표했다.
 
  
 
▲ 함께 모여 이 정부를 성토합시다, 어게인 419     © 이호두 기자

박근혜 퇴진 운동을 벌이고 있는 백은종 편집인(현 서울의소리 www.amn.kr)은 
 
"박근혜는 이명박근혜라는 별명처럼 자본의 대변자였던 이명박과 한몸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부정선거로 당선되었다는 정통성부터 인정받지 못한 귀태와도 같은 정권입니다."라며 "박정권이 탄생한 이후로 대한민국은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었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북풍이 불고 장난감 비행기가 날고 이제는 어린 학생들을 태운 배마저 뒤집혀 꽃다운 청춘들이 구조도 받지 못한채 차가운 바다속에 갇혔습니다. 세모녀 대변되는 극빈자 층은 늘어만 가는데 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9200억이나 퍼준답니다.그 돈으로 어서 바닷속에 갇힌 우리 아이들같은 학생들이나 먼저 구해주십시요."라고 항변했다.
그는 "이 정권이 한게 무엇이냐"며 "그들이 바다밑바닥에서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 말고 지금 한게 무엇입니까? 우리는 분노해야 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외치고 소리치고 나와서 국민의 무서운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 핸드폰으로 입진보한다면 박근혜가 무서워하겠습니까? 큰소리로 외쳐서 목소리가 청와대까지 들리도록 소리지르십시요!"라고 호소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