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국정원 ‘협조자’ 김 씨의 ‘자살’이 암시하는 것

 

<칼럼> 장대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장대현  |  tongil@tongil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3.10  07:01:20
트위터 페이스북

장대현(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그는 왜 갑자기 자살을 택했나?

국민의 눈과 귀를 장악한 공중파와 수구보수언론이 꽁꽁 숨겨서 그렇지, 사실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조작하기 위해 중국의 정부공문을 3건이나 위조했다가 그 중국정부에 덜컥 들켜버린 사건은 국정원의 그 넓은 ‘오지랖’으로도 다 덮을 수 없는 광폭의 문제, 국제적 사태다.

“한국 검찰이 제출한 위조공문은 중국 기관의 공문과 도장을 위조한 형사범죄 혐의를 받게 되며, 중국은 법에 따라 조사를 진행할 것이다. 범죄 피의자에 대한 형사책임을 규명하고자 하니 위조문서의 상세한 출처를 제공해 달라.” 2월 13일 주한중국대사관이 우리나라 서울고등법원에 제출한 ‘사실조회서’다.

공문이 위조된 사실을 알리는 ‘외교문서’를 전하면서 그걸 위조한 자를 찾아내라는 창검을 우리정부에 겨눈 것이다. 이걸 무슨 수로 덮는단 말인가? 하여 저들은 중국에 내밀 재물, 그 ‘꼬리’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협조자’ 김 씨는 자기가 서걱, 식칼에 베이는 비운의 꼬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을까? 분식집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는 데 국정원에서 ‘봉급’까지 받는 ‘고정 협조자’가 그 정도 이치를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서울 오는 비행기에 선뜻 오른 것은 나름 무기를 비장했다는 뜻일 터. 그가 검찰 조사(‘수사’가 아니라 ‘진상조사’였다)에서 견지한 입장은 대략 두 갈래였다.

첫째는 ‘비장의 무기’를 적절히 과시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김 씨는 검찰 조사에서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문서를 구하기 힘들다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국정원측에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검찰, 국정원 직원들 사법처리 겨냥’ 한국일보 3월 8일 기사 인용)> 국정원이 주범, 자기는 종범이니 검찰이 칼을 빼면 국정원을 먼저 찌르게 된다는 식이다.

또 있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과 오래 관계를 맺어온 김 씨가 상당히 많은 양의 진술을 했다”면서 “충격적인 내용의 진술도 있다”고 밝혔다. ‘첫 문건엔 1000만원 준 국정원, 두 번째엔 지급 안 해... 왜?’ 동아일보 3월 8일 기사 인용)>. 자기를 건드리면 내부 고발자로 확, 변신할 수 있다는 투다.

둘째는 국정원의 거짓말에 장단을 맞춰 그럴싸하게 포장해주는 것이다. <김 씨가 입국하기 전 국정원이 그와 말을 맞췄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정원은 지난달 문건 위조 의혹이 불거지자 “선양총영사관을 통해 정식으로 발급받았다”(2월 16일)고 밝혔다. 그러다 같은 달 25일 검찰 진상조사팀에 보낸 답변서에서 “제3의 직원이 제3의 협조자를 통해 중국 측으로부터 입수했고 선양총영사관의 이모 영사는 이를 검찰에 전달만 했다”고 말을 바꿨다. 김 씨도 처음에는 “현지인을 통해 싼허 세관 측으로부터 입수한 것”이라고 국정원의 입장을 반영한 진술을 했다. (‘국정원이 간첩 증거조작 지시했다면 국보법 처벌’ 중앙일보 3월 8일 기사 인용)>.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철썩 같이 믿었던 검찰이 다른 데도 아닌 국정원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 즉 자신의 진술을 다 뭉개며 공격 자세로 돌변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검찰이 김 씨의 통화 기록과 금전 거래 명세 등을 제시하자 2, 3차 조사에선 “중국에 있는 A 씨로부터 B 씨를 소개받았고 돈을 얼마간 줬더니 문건을 가져왔다”고 말을 바꿨다. 문서에 쓰인 내용을 누가 작성했는지에 대한 진술도 “위조한 사람이 만들어 왔다”에서 “내가 문구를 써줬다”로 달라졌다. (위 동아일보 3월 8일 같은 기사 인용)>

협조자 김 씨는 이제 기로에 섰다. “(실체를 알 수 없는 - 아니, 가상의) A 씨와 B 씨가 꼬리가 되어 (가공으로) 잘리는 것”으로 조사가 마무리 될 것인가, 아니면 “꼼짝 없이, 자기 자신이 꼬리가 되어 (정말) 잘리는 것”으로 조사의 방향이 잡힐 것인가?

<검찰은 이처럼 김 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자 마지막 3차 조사에선 “문서를 누구에게 부탁해 위조했는지 정확히 확인해 줄 것”을 요구하며 김 씨를 귀가시켰다.(위 동아일보 3월 8일 같은 기사 인용)>

막다른 골목으로 떠밀린 김 씨는 “국정원이 시켜서 한 일”이라거나 “자기도 잘 모르는 A 씨, B 씨가 최종적인 위조 범죄자다” 등 위 기사에서 검찰이 말하는 “오락가락 진술”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여기서 검찰이 “국정원의 누가 사주했는지”로 조사 방향을 틀었다면 김 씨의 자살 급선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은 다른 말은 다 못 들은 척, 쾅쾅 대못을 박는다. “다음 조사에서는 문서를 위조한 자를 밝혀라” 끌어다 댈 실존인물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위 기사처럼 김 씨는 벌써 진술을 하지 않았나. “내가 문구를 써줬다”고.

꼬리를 자르면 피가 튄다!

<검찰에서 세 차례 조사받은 그는 지난 5일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하기 앞서 아들들에게 남긴 유서에서 “대한민국 국정원에서 받아야 할 금액이 있다”고 했다. 이어 “2개월 봉급 300X2=600만원,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과 수고비”를 거론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는 “지금 국정원은 ‘국조원’(국가조작원)입니다. ‘국민생활보호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맞게 운영하세요”라고 적었다.(‘간첩사건 증거 조작, 몸통 제대로 밝혀야’ 중앙일보 3월 8일 기사 인용)>

협조자 김 씨는 세 번째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오후 영등포의 한 모텔에서 오른쪽 목을 칼로 긋고 그 피로 ‘진실’을 알리는 글을 모텔 벽에 적은 다음 침대에 쓰러져 사경을 헤매다 발견되었다.

충격적 사건이 ‘날 것’ 그대로 전파를 타면서 그의 주장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국민이 아는 만큼 언론도 ‘아는 체’를 하느라, 갑자기 호들갑이다.

<앞서 김 씨는 검찰에서 “국정원 직원의 요청으로 싼허세관 공문을 위조해 넘겨줬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어제(7일) 검찰이 그간의 진상조사 체제에서 수사 체제로 공식 전환한 것도 범죄 혐의가 포착된 데 따른 것이다. (위 중앙일보 같은 기사 인용)> 또는 <국정원이 “몰랐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김씨를 위조의 단독범으로 만들어 ‘꼬리 자르기’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이다. (‘국정원이 간첩 증거조작 지시했다면 국보법 처벌’ 중앙일보 3월 8일 기사 인용)> 등이 다 그런 하품 나는 기사들이다.

헷갈리지 말자. 검찰이 조사를 수사로 전환하고, 무슨 큰 발견이라도 한 양 “국정원의 꼬리 자르기”를 지적한 시점은 김 씨에 대한 세 차례 조사를 마친 때가 아니다.

언론이 전하는 것처럼, 그가 검찰에서 “국정원이 시켜서 한 것”임을 누누이 진술했어도 검찰은 귀를 닫았다. 대신 “문서를 위조한 자가 누구인지” 색출하는데 집중, 김 씨를 정조준했다. 그랬던 검찰이 갑자기 왜 회전문을 탄 것일까?

피가 튀었기 때문이다. 꼬리를 자르려다 얼굴에 피범벅을 하기 싫으면 칼을 내려놓으라, 이것이 김 씨가 자살(시도)을 통해 전달 또는 쟁취하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원세훈도 김용판처럼 곧 무죄 판결 되겠구나, 암시를 받을 수 있다.

<최근 퇴임 1년을 맞은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이 기념사업회 설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5일 알려졌다... 기념재단이 설립되면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에 따라 일정 부분 국고가 지원된다.(연합뉴스 3월 5일 기사인용)>

업적도 없고, 인기는 더욱 없고, 오직 비리혐의로 떡칠이 된 전직 대통령, 그러나 거기도 건드리면 피가 튄다. 몸통도 꼬리도 구별이나 차별 말고 모두 싸안고 가면, 행여 꼬리에 작은 상처라도 날까, 노심초사 오히려 더욱 챙기는 깨알 지도력으로 계속 가면, 그럼 무사할까?

간첩조작사건의 본질은 지방선거 조작

<국정원이 왜 이렇게 무리를 하며 유 씨한테 간첩 혐의를 씌우려 했는지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의문도 커지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규정해 박원순 서울시장을 흠집 내려고 증거를 조작하면서까지 유 씨를 옭아매려 했다는 분석이 많다. (돈 주고 공문서 위조·진술 짜깁기... 국정원 ‘총체적 조작극’ 한겨레 3월 8일 기사 인용)>

그랬다. 뚜, ‘경고’는 벌써 1년 전에 울렸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치적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여당.정부기관.민간단체.학계를 총동원해 박 시장을 ‘제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국가정보원의 내부 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이 나왔다... 또한 학부모 단체, 경총.전경련, 저명 교수.논객, 언론 사설.칼럼, 자유청년연합.어버이연합 등 범보수진영 등 민간단체로 하여금 비난 여론을 조성하게 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박원순 시장 제압’ 국정원 문건 입수‘ 한겨레 2013년 5월 15일 기사 인용)>

문건의 진위 여부는 아직 분명히 가려지지 않았다.(검찰은 2013년 10월 7일, 이에 대한 민주당의 고발을 각하했다) 그러나 그 경고가 현실로 나타난 것만은 분명하다.

<국정원이 지난해 1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발표하자 ‘서울시’라는 말이 붙은 것만으로도 박원순 서울시장은 표적이 됐다. 보수 성향 단체들은 서울시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시장을 성토했다. 시의회에서도 새누리당 측은 “간첩에게 공무원 지위를 유지시켜줬고, 탈북자들의 개인정보가 유출됐으니 박 시장이 책임져야 한다”고 추궁했다. 당시 구속된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 유우성씨가 임용된 것은 박 시장 취임 이전 오세훈 전 시장 시절인 2011년 6월이었지만 공세는 계속 이어졌다. (‘박원순.정보기관 끈질긴 악연... 선거 앞두고 '긴장감'’ 뉴스1 2월 25일 기사 인용)>

밑 빠진 독에 또다시 물을 부어서야

국정원과 검찰이 유우성 씨 2심 재판부에 제출한 문제의 그 조작된 증거는 판결을 뒤집고도 남을 가장 핵심적인 사안이었다.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유우성 씨가 곧 있을 2심에서 유죄를 받는다면 저들의 악착같은 의지나 압도적인 화력을 볼 때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는 치명상을 입는다. 그리고 수도권의 야권 후보들도 강력한 유탄을 맞는다. 영남은 더욱 상처가 크다. 이것보다 더 정교하고 더 확실한 선거 개입, 선거 조작이 또 어디 있을까?

김 빼고, 초 치고, 지지고 볶고, 공갈빵에 꽃 장식까지, 6월 지방선거를 자기들 입맛대로 요리하려는 권력기관의 주방 장악 시나리오가 한 참 전에 벌써 시작되었고, 요사이 더욱 열기를 뿜는 중이다, 이것이 김 씨 자살(시도)의 두 번째 암시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쳐 만들기로 한 통합신당 지지율이 새누리당 지지율을 앞질렀다는 첫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4일 주간 <일요신문> 인터넷판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2~3일 이틀간 전국 성인 2천명을 대상으로 정당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통합신당이 43.8%의 지지도를 기록해 43.3%의 지지도를 기록한 새누리당을 오차범위 내인 0.5%p 앞섰다. 무당층은 8.7%로 나타났다. (뷰스앤뉴스 3월 4일 기사 인용)>

야권 표 분산, 어부지리가 사라지고 ‘1 : 1 구도’가 점차 가열 될수록 ‘유혹’은 하늘에 닿을 것이며, 지난 대선 관권부정선거를 쓱쓱 문질러 지우는 것을 보며 ‘용기’는 땅을 가득 채울 것이다.

선거를 주무르던 장관을 선거 직전, 후보로 차출한 것은 선거관리 사무에 종사하는 모든 공무원에게 은밀히 통하는 칼을 뽑은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 후보의 입을 빌려 잘 되기를 바란다, 공개 지지, 공식 응원한 것은 여당 후보 모두가 잘 되기를 바란다, 대놓고 선거 운동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청와대 비서관이 여당 출마희망자들을 면접, “나가라, 말라”하는 세상에서 무슨 선거 공정성을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지난 대선은 밑 빠진 독이었다. 수리를 하지 못했으니, 이번 지방선거 역시 밑 빠진 독이다. 이 봄이 가기 전 특검을 시작하자.

특검이라도 움직여야, 관련자들이 거기 불려 다니는 정도라도 되어야, 선거 공정성의 불씨를 살릴 수 있다.

이 봄에 특검? 막연하지만은 않다. 겨울을 난 촛불이 아지랑이를 따라 넘실대지 않는가.
 

장대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

6.15남측위원회 공동집행위원장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집행위원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국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음을 인정한 ‘QDR 2014’

현실변화 따라가지 못한 ‘2014 QDR’
 
한호석의 개벽예감 <104>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4/03/10 [10:08]  최종편집: ⓒ 자주민보
 
 

미국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음을 인정한 ‘QDR 2014’
 
▲ <사진 1> 지난 3월 4일 미국 국방부는 2014년판 '4개년 국방검토(QDR)'라는 제목의 군사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런데 이 군사보고서는 조선인민군의 군사력에 대처하지 못하는 미국군의 역량한계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미국 안에서도 이번에 발표한 '2014 QDR'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들린다. 미국이 군사패권을 틀어쥐었던 한 시대가 이제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음을 예감할 수 있다.
지난 3월 4일 미국 국방부는 2014년판 ‘4개년 국방검토(Quadrennial Defense Review)’라는 제목의 군사보고서를 내놓았다. 이 군사보고서를 이 글에서는 ‘국방검토’로 약칭한다. 미국 국방부는 ‘국방검토’에서 미국의 군사전략 전반을 논했고, 군사부문 자원투입의 우선순위에 대해 언급했다. <사진 1>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 국방부는 ‘국방검토’라는 이름을 붙인 군사보고서를 4년마다 한 차례씩 발표한다. 

미국 국방부가 ‘국방검토’를 4년 만에 다시 펴낸 목적은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국방전략을 제시하고, 세계를 지도하는 미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합동군사력의 균형을 조절하고, 내부경비지출을 통제하고, 전체 자원군의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키려는 것”이다. 

미국 국방부는 ‘국방검토’에서 미국의 3대 군사전략을 아래와 같이 논하였다.

첫째, “미국 본토에 대한 (적대세력의) 공격을 억제하고 격퇴하며, (적대세력의) 가능한 공격과 자연재해로부터 오는 영향을 완화하는 ‘미국 본토 방어전략’이다.”

둘째, “지역안보를 유지하고, 적국을 억지하고, 동맹국과 우호국을 지원하고, 안보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는 ‘세계 안보 유지전략’이다.”

셋째, “적국의 공격을 패퇴시키고, 테러조직을 분쇄, 파괴하고, 인도적 지원과 재난구호를 시행하는 ‘무력 투입 및 결정적 승리의 전략’이다.” 

위에 열거한 3대 군사전략에서 주목하는 것은, 현 시기 미국 국방부가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전략을 무엇보다 우선시하고 중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방검토’를 읽어보면, 미국 국방부는 군사전략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작전방침에서도 미국 본토 방어문제를 우선시하고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방검토’에 따르면, 현 시기 미국의 3대 작전방침은 아래와 같다.

첫째,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작전방침

둘째, 지속적이고 분배적인 반테러작전을 시행하는 작전방침

셋째, 전진배치 및 교전을 통해 여러 지역에서 적대세력의 공격을 패퇴시키고 동맹국을 지원하는 작전방침

미국 국방부가 미국 본토 방어문제를 자기의 군사전략 및 작전방침에서 각각 첫 자리에 앉힌 것은, 1991년 냉전 종식 이후 처음 드러내 보인 변모된 모습이다. 미국은 지난 냉전시기 미국 본토가 소련군의 핵공격을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위협에 대처하여 미국 본토 방어문제를 중시한 바 있었다.  

그런데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이 종식된 때로부터 23년이 지난 오늘, 미국 국방부가 미국 본토 방어문제를 심각하게 다시 거론할 만큼 두려워하는 ‘최대 적수’는 어느 나라일까? 미국 국방부는 외부에 공개하는 문서에서 자기들에게 불리한 내용에 대해 명시적으로 서술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서술하는 관행을 따르는데, 이번에 발표된 ‘국방검토’에서도 예외는 없었다. 미국 국방부는 ‘국방검토’에서 미국의 본토 방어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하면서도 미국에게 그처럼 두려운 존재로 부상한 ‘최대 적수’가 어느 나라인지 명시적으로 서술하지 않았다. 

그러나 미국 국방부는 미국의 본토 방어문제를 거론하는 대목이 아닌 다른 서술부분에서 미국의 ‘최대 적수’가 어느 나라인지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서술부분을 옮겨 적으면 이렇다. “북의 장거리미사일과 대량파괴무기 프로그램, 특히 국제적 의무를 위반하면서 핵무기를 추구하는 것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직접적이고 가중되는 위협으로 된다.”

여기 옮겨 적은 위의 문장은 미국 국방부가 북을 미국의 ‘최대 적수’로 여기고 있음을 말해준다. ‘국방검토’에서 미국 국방부는 핵무력을 보유한 북이 미국에게 “직접적이고 가중되는 위협”을 주는 ‘최대 적수’라고 시인한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만한 사실은, 미국 국방부가 4년 전에 펴낸 ‘2010년판 국방검토’에서는 북의 핵무력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는 ‘2010년판 국방검토’에서 한반도 군사상황을 언급하면서 주한미국군과 한미연합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화하는 문제만 언급하였을 뿐이다. 그 대목을 옮겨 적으면 이렇다. “미국은 지역적 및 세계적 범위에서 방위협력을 위한 장기적 능력을 강화하고, 동맹국의 억지력과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더욱 적합하고 유연한 미국군과 한미연합군의 준비태세를 발전시킬 것이다.” ‘2010년판 국방검토’와 ‘2014년판 국방검토’를 비교해보면, 북의 핵무력으로부터 미국이 위협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줄곧 은폐해오던 미국 국방부가 이번에 펴낸 ‘국방검토’에서 처음으로 그 위협에 대해 언급하였음이 드러난다.  

미국의 정보은폐와 언론의 왜곡보도 때문에 세상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북의 핵무력 건설사를 다시 살펴보면, 미국이 북의 핵무력에 대해 직접적인 위협을 처음 느끼기 시작한 충격시점은 2003년 9월 초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미국과 영국에서 나온 몇몇 자료들을 보면, 2003년 9월 초에 미국은 북이 사거리가 15,000km로 추산되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였음을 파악하였고, 2003년 9월 9일 북의 건국 55주년 군사행진을 며칠 앞두고 대형트럭에 연결된 차량견인운반대에 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5기가 실려 있는 모습을 미국군 정찰위성이 촬영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차량견인운반대에 실려 있었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 5기는 수직갱배치 대륙간탄도미사일 목성-3호였다. 이에 관해서는 2013년 10월 1일 <자주민보>에 발표한 나의 글 ‘4대에 걸쳐 진보한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13929

이처럼 미국은 이미 2003년 9월 초에 북의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정찰위성 영상자료를 통해 파악하고 북의 핵무력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였으면서도 그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며 관련 정보를 은폐하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뒤에 나온 ‘2014년판 국방검토’에서 미국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미국은 북의 핵무력이 미국 본토에 대한 “직접적이고 가중되는 위협”이라는 사실을 11년 만에 결국 시인하였던 것이다. 미국은 지난 11년 동안 북의 핵무력을 직접적인 위협요인으로 느껴왔으면서도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북의 핵무력에 관련된 정보를 은폐해왔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은폐술책이 통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2012년 4월 15일 북이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road-mobile ICBM) 화성-13호를 군사행진에 등장시켰기 때문이다. 

2012년 4월 15일 북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화성-13호를 처음 공개하였지만, 그로부터 11년 전인 2003년 9월 초부터 북의 핵무력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하였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 근본적인 변화는 한반도 정세를 뒤바꿔놓은 것이고, 미국의 국가안보전략을 뒤바꿔놓은 것이고, 북미관계를 뒤바꿔놓은 것이고, 동북아시아 군사상황을 뒤바꿔놓은 것이다. 

11년 시간격차를 두고 각각 등장한 북의 수직갱배치 대륙간탄도미사일 목성-3호 5기와 도로이동식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 6기는 정세와 역량관계에서 발생한 근본적인 변화요인이며, 북의 핵무력 건설은 ‘지각변동’의 마지막 단계다. 

북의 핵무력에 의해 이처럼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났는데도, 북의 핵무력에 대한 미국의 정보은폐와 언론의 왜곡보도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은 엄청난 변화충격을 느끼지 못하였다.  

 
미국 본토 방어책을 마련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2014 QDR’

북의 핵무력에 대처해야 하는 미국은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공격위험으로부터 미국 본토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방어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 발표된 ‘국방검토’에 따르면, 미국 본토 방어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상배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다. 

그 미사일방어체계와 관련하여 ‘국방검토’에서 눈길을 끄는 문장을 옮겨 적으면 이렇다. “미국은 지상배치 요격체계를 30개에서 44개로 더 늘리고, 감시능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일본과 협력하여 제2 감시레이더를 일본 영토에 설치하는 중인데, 이것은 북이 발사한 미사일에 대한 조기경보 및 추적능력을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이 문장만 읽으면, 미국의 지상배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가 제법 위력적인 것처럼 생각되기 쉽고, 미국이 미사일방어력을 꽤 증강시키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 <사진 2> 2013년 1월 26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해안에서 탄도미사일 요격체를 발사하는 장면이다. 당시 미국 국방장관 척 헤이글은 이 지상배치 요격미사일 발사에 성공함으로써 인민군 전략군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3호를 막아낼 능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큰 소리를 쳤지만, 그것은 그냥 말 뿐이다. '2014 QDR'은 미국이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대한 요격능력을 갖지 못했음을 사실상 시인하였다.     © 자주민보

그러나 미국의 지상배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는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상황을 감시, 추적하는 능력밖에 갖지 못했으며, 미국이 북의 핵무력에 대처하기 위해 다급하게 요구한 미국 본토 방어책은 없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미국은 북의 핵무력에 대처하여 미국 본토의 안전을 수호하기 위한 방어책을 시급히 마련하고 싶지만 마련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미국이 서둘러 구축한 지상배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는 미국 본토를 향해 날아가는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단 한 발도 막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 앞에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는 무용지물이다. <사진 2>에서 보는 것처럼, 공중요격실험에서 성공했다고 떠들썩하게 선전해온 미국의 미사일방어력은 원래 그런 수준밖에 안 된다. 

위에 인용한 문장은 미국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또 다른 문장으로 이어진다. “대륙간탄도미사일 위협에 대처하여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미사일방어체계를 오는 2020년까지 건설할 것이다.” 미국이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막아낼 지상배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를 오는 2020년까지 건설할 예정이라고 밝힌 이 문장은,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막아낼 미국 본토 방어책을 마련하지 못했음을 자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인용문도 미국의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를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20년에 가도 미국은 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막아낼 미사일방어체계를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2020년이 아니라 2120년에 가도 미국은 북의 핵무력에 대처할 미사일방어체계를 끝내 완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미국이 북의 핵무력에 대처할 미사일방어체계를 개발하는 동안 북도 그에 대응하여 미사일방어체계를 무력화할 더 강력한 핵무력을 건설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북이 자력갱생의 노력으로 획득한 최신 과학기술성과를 총동원하여 경제건설과 핵무력 건설의 병진노선을 추진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군사기술을 놓고 맞붙은 북과 미국의 사활적인 대결에서 시간은 결코 미국의 편이 아니다.


한반도 전쟁에서 통하지 않을 미국군의 ‘원-플러스 교리’ 

미국 국방부는 적대세력을 억제하지 못했을 경우 어떻게 군사적으로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국방검토’에서 언급하였다. 적대세력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 미국의 군사적 대응이란 적대세력과의 전쟁을 뜻하므로, ‘국방검토’에서 미국 국방부는 그런 경우에 대비한 전쟁교리(war doctrine)를 서술한 것이다. 이번에 ‘국방검토’에 서술된, 미국의 전쟁교리에 관한 두 가지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대규모의 다단계 작전으로 지역의 적대세력을 패퇴시킨다.

둘째, 두 적대세력이 두 지역에서 동시에 공격하는 경우, 제2 공격자의 목적추구를 저지하거나 또는 그런 공격행위에 따른 엄청난 대가를 치르도록 만든다.

척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처럼, 위에 인용한 두 가지 서술내용 가운데 첫 번째 것은 미국의 대북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에 관한 언급이고, 두 번째 것은 미국의 ‘원-플러스 교리(one-plus doctrine)’에 관한 언급이다. 

미국이 말하는 ‘원-플러스 교리’는, 두 지역에서 전쟁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게 된 미국이 한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억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2011년까지만 해도 미국은 두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한다는 이른바 ‘2개 전쟁 교리(two-war doctrine)’를 유지했으나, 2012년 1월 5일에 발표한 ‘미국의 세계 지도력을 유지하며: 21세기 국방의 우선순위(Sustaining U.S. Global Leadership: Priorities for 21st Century Defense)’라는 문서에서 ‘2개 전쟁 교리’를 포기하였음을 밝힌 바 있다. 

2012년에 채택된 ‘원-플러스 교리’에서 말하는 미국의 전면전 교전상대는 북이며, 미국의 대북전쟁계획인 ‘작전계획 5027’은 ‘원-플러스 교리’가 상정한 전쟁을 수행하는 작전계획이다. 또한 ‘원-플러스 교리’가 말해주는 것처럼, 미국이 북과 전쟁하면서 그와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게 억지하려는 대상은 이란이슬람공화국이다.  

그러나 미국이 2012년 1월 5일 공식 발표한 ‘원-플러스 교리’는 그것이 발표된 때로부터 불과 석 달 뒤인 4월 15일에 사실상 무효화되었다. 왜냐하면, 북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핵무력을 바로 그 날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작전계획 5027’ 자체가 종말을 고하였기 때문이다. 북의 미국 본토 타격력 앞에서 속수무책이 된 미국은 자기의 새로운 전쟁교리마저 효력이 정지되는 그야말로 최악의 사태를 겪었던 것이다.  

 
▲ <사진 3> 2014년 1월 29일 미국 텍사스주 포트 후드 군사기지를 민간항공기편으로 출발한 미국 육군 제1대대, 제12기갑연대 병력 800명이 경기도 오산공군기지에 도착한 장면이다. 한반도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미국은 이처럼 대규모 증원군을 한반도 전선에 투입하려는 전쟁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근본적으로 변화된 한반도 군사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전쟁계획이다. 대규모 증원군이 미국 본토에서 출발하기도 전에 한반도 전쟁은 단숨에 끝날 것이다. 미국군은 72시간 안에 끝날 인민군의 초단기속결전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미국 국방부가 이번에 발표한 '2014 QDR'에서 미국군이 넘지 못할 역량한계를 엿볼 수 있다.     © 자주민보


<사진 3>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이 ‘작전계획 5027’에 따라 대규모 증원군을 한반도 전선에 투입하는 시차별 다단계 작전으로 북과 장기총력전을 벌이겠노라고 호언장담하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다. 왜냐하면, 핵무력을 각각 보유한 북과 미국이 전선에서 밀고 밀리며 대규모의 다단계 작전을 전개하는 식의 장기총력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핵무력을 보유한 두 나라 가운데 어느 한 쪽이 전쟁을 개시하기 전에, 전쟁징후를 간파한 다른 쪽이 먼저 치명적인 핵공격으로 상대를 굴복시킬 것이므로, “대규모의 다단계 작전”에 따른 장기총력전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위와 같은 맥락을 이해하면, 미국 국방부가 이번에 발표한 ‘국방검토’에서 언급한 ‘원-플러스 교리’는 실현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원-플러스 교리’는 아직 핵무력을 보유하지 못한 이란이슬람공화국을 미국이 공격하는 페르시아만 전쟁에서는 혹시 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핵무력을 보유한 북과 미국이 맞붙을 한반도 전쟁에서는 전혀 통할 수 없다. 

북은 핵무력을 보유하지 못했고, 미국만 일찌감치 핵무력을 보유했던 지난 핵무력 불균형 시대에 한반도 전쟁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6.25전쟁이나 베트남전쟁처럼 “대규모의 다단계 작전”으로 밀고 밀리는 장기총력전으로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한반도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그것은 6.25전쟁이나 베트남전쟁이 아닐 것이고 이라크전쟁이나 아프가니스탄전쟁은 더욱 아닐 것이다. 만일 한반도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오랜 기간 동안 “대규모의 다단계 작전”이 전개되는 낡은 양상의 장기총력전이 아니라, 어느 한 쪽이 전쟁징후를 노출하지 않고 선제기습타격으로 순식간에 상대를 제압함으로써 전쟁피해를 최소화한 가운데 끝나는 전혀 새로운 양상의 초단기속결전일 것이다. 북의 핵무력 보유가 한반도 전쟁양상을 장기총력전에서 초단기속결전으로 전환시켰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문제는, 인민군의 초단기속결전에 맞설 새로운 전쟁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미국군이 대규모의 다단계 작전을 전개하는 ‘원-플러스 교리’와 ‘작전계획 5027’에 아직도 구태의연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군이 지난 2월 24일에 시작하여 오는 4월 18일까지 계속하는 ‘키 리졸브-독수리’ 대북전쟁연습은 ‘원-플러스 교리’와 ‘작전계획 5027’에 따른 대규모의 다단계 작전 시나리오를 시차별로 연습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시에 미국군이 핵추진잠수함에서 발사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로 선제기습타격을 개시하고, 매우 긴 시간에 걸쳐 대규모 증원군을 한반도 전선에 집결시켜 원산만 상륙과 평양 진격을 감행하겠다는 ‘작전계획 5027’로는 인민군의 초단기속결전에 맞설 수 없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전쟁위기를 격화시킨 가운데 미국이 강행하고 있는 ‘키리졸브-독수리’ 대북전쟁연습은, 미국군이 한반도 군사상황의 변화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낡은 전쟁전략에 의존하며 역량한계를 노출하고 있는 것이다.   


동해에서 벌어진 인민군 전략군과 미국 해군의 교전연습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 동해에서는 조선인민군 전략군과 미국 해군이 선제기습타격과 선별정밀타격을 상정한 치열한 교전연습을 계속하였다. 보도통제로 시야를 차단당한 이 땅의 국민들은 무감각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그 교전연습으로 일촉즉발의 전쟁위기는 더욱 격화되었다. 

이번에 북은 미국군과 한국군의 대북전쟁연습에 대응하기 위해 인민군 전략군부대들을 동원하여 2월 21일, 2월 27일, 3월 3일, 3월 4일에 방사포와 미사일 같은 강력한 화력타격수단들을 동해로 연속 발사하였다. 인민군 전략군부대들의 화력타격연습에서 나타난 두 가지 양상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이번에 인민군 전략군이 실시한 화력타격연습에서 나타난 특징은, 사전징후를 노출하지 않은 선제기습타격능력이다. <조선일보> 2014년 3월 4일 보도에 따르면, “그 동안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사전에 항행금지구역을 선포하거나 이동식 발사대가 왕래하는 등 한미정보당국이 사전에 탐지할 수 있는 ‘징후’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달 27일과 3일에 이뤄진 발사는 사전징후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인민군 전략군이 사전징후를 노출하지 않는 선제기습타격능력을 갖추었다는 사실에 대해 미국 군부도 인정하였다. 2014년 3월 6일 미국 국방장관실이 작성하여 연방의회에 제출한 연례보고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관련된 군사 및 안보 상황전개(Military and Security Developments Involving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에서 북이 “경고를 거의 드러내지 않거나 전혀 드러내지 않고(with little or no warning)” 공격을 개시할 수 있다고 언급하였는데, 이것은 인민군 전략군이 사전징후를 노출하지 않는 선제기습타격능력을 갖추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둘째, 이번에 인민군 전략군이 실시한 화력타격연습에서 나타난 특징은, 타격대상을 선별하여 오차 없이 타격하는 선별정밀타격능력이다. 인민군 전략군은 화력타격연습을 실시하면서, 항공기와 선박에 대한 항행금지구역을 사전에 선포하지 않고 북측 어선들의 해상조업을 통제하였을 뿐이다.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국군은 인민군 전략군이 방사포와 미사일을 여러 날에 걸쳐 동해로 연속 발사하면서도 항행금지구역을 사전에 선포하지 않은 것이 동해를 지나가는 항공기와 선박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위험한 행위라고 비난하였지만, 인민군 전략군의 해명은 전혀 다르다. 인민군 전략군은 지난 3월 5일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로케트 발사 전 과정을 과학적으로 계산하고 비행궤도와 목표수역에 대한 사전안전대책까지 빈틈없이 세운 데 기초하여 진행된 우리 전략군 화력단위들의 이번 훈련”은 “일찌기 있어 본 적이 없는 최상 수준의 명중확률을 과시”하였으며, “국제항해질서와 생태환경에 사소한 영향도 줌이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밝혔다.  

위의 두 가지 사실을 생각하면, 인민군 전략군은 선제기습타격능력과 선별정밀타격능력을 모두 갖춘 것으로 보인다. 지정된 타격대상을 선별적 정밀타격으로 단숨에 제거해야 전쟁피해가 확산되지 않을 것이므로, 인민군 전략군은 그처럼 선제기습타격과 선별정밀타격을 분리하지 않는 것이다. 인민군 전략군은 이번에 한미연합군의 대북전쟁연습에 대응한 화력타격연습에서 현대전의 승패를 가를 두 가지 결정적인 작전능력인 선제기습타격능력과 선별정밀타격능력을 과시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인민군의 이러한 작전적 의도를 뒤늦게 알게 된 미국군은 태평양잠수함대 소속 핵추진잠수함 콜럼버스호(USS Columbus)와 7함대 지휘함 블루리지(USS Blue Ridge)호를 지난 3월 3일 오전 부산항에 급파하였다. 

 
▲ <사진 4> 지난 3월 3일 미국 태평양잠수함대 소속 핵추진잠수함 콜럼버스호가 한반도에 긴급출동하여 부산항에 정박하는 장면이다. 지난해 3월 22일에는 핵추진잠수함 샤이엔호가 부산항에 출현하였다. 이처럼 미국은 해마다 실시하는 대북전쟁연습에 핵추진잠수함을 동원하고 있는데, 핵추진잠수함을 해마다 한반도 수역에 긴급출동시키는 까닭은 해수면 아래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북을 향해 발사하는 선제기습타격능력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월 27일 인민군 반항공군이 발사한 최신형 지대공미사일 번개-6호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300km 이상 먼 거리에서 공중격파할 수 있다. 미국 해군 핵추진잠수함의 선제기습타격은 인민군 반항공군의 강력한 방공망을 뚫지 못하는 것이다. 군사전략균형은 미국군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졌다     © 자주민보


<사진 4>에서 보는 것처럼, 부산항에 긴급출동한 콜럼버스호는 만재배수량이 6,927t인 핵추진잠수함이다. 시속 37km로 잠항하는 이 핵추진잠수함은 533mm 어뢰, 사거리 3,100km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사거리 130km 하푼 대함미사일, 기뢰로 무장하였다. 콜럼버스호는 지난 2월 19일 모항인 진주항-힉컴 합동기지(Joint Base Pear-Harbor Hickam)에서 출항하여 동중국해를 돌아다니다가 그 날 부산항에 갑자기 출현하였다. 

미국이 핵추진잠수함 콜럼버스호를 대북전쟁연습에 급파한 것은, 인민군 전략군의 화력타격연습에 맞서려는 긴급대응조치로 생각된다. 전시에 콜럼버스호는 해수면 아래서 불시에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선제기습타격을 시행할 것인데, 이번에 긴급출동은 미국이 북을 겨냥한 선제기습타격능력을 갖추었음을 보여준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전시에 핵추진잠수함 콜럼버스호가 해수면 아래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기습적으로 발사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외기권으로 치솟은 거대한 포물선을 그리며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탄도미사일과 달리, 지표면 또는 해수면 위로 일정 고도를 유지하며 수평비행을 하는 순항미사일의 비행속도는 시속 900km밖에 되지 않아 방공망에 걸려 요격당하기 쉬운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그런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은 최첨단 수준의 지대공미사일로 무장한 인민군 반항공군의 먼 거리 요격을 피하지 못한다. 이를테면, 지난 2월 27일 인민군 반항공군이 사거리가 400km인 최신형 지대공미사일 번개-6호 4발을 강원도 안변군 깃대령에서 발사하여 발사원점으로부터 약 300km 떨어진 동해 상공에서 공중이동표적을 격파하였는데, 순항미사일은 물론 그보다 훨씬 더 빠른 초음속으로 비행하는 탄도미사일도 번개-6호의 요격을 피하지 못한다. 

미국군이 인민군의 선제기습타격과 선별정밀타격에 맞설 방도는 핵추진잠수함에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선제기습타격밖에 없지만, 순항미사일을 발사하는 선제기습타격은 인민군 반항공군의 번개-6호가 구축한 강력한 방공망을 뚫지 못하는 것이다. 이번에 동해에서 벌어진 인민군 전략군과 미국 해군의 교전연습에서 미국 해군이 핵추진잠수함까지 긴급출동시켰는데도 사실상 판정패를 당하였다고 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서른다섯에 목숨까지 끊었건만, 회사는 기어이...

[손배소에 가로막힌 노동3권 ④] 쌍용차·한진중공업 파업관련 소송

14.03.09 20:34l최종 업데이트 14.03.09 20:34l

 

 

쌍용차와 한진중공업. 두 회사를 떠올리면 정리해고, 파업과 같은 아픈 단어가 연상된다. 두 회사는 닮은 점이 많다. 회사의 정리해고, 구조조정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잘려나갔다. 이에 반발, 노조가 점거파업을 했다. 투쟁 과정에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한 가지 더 있다. 사측은 파업 손배청구를 했고 법원은 노조에게 수십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어떤 근거로 그런 판결이 나온 걸까.   

한진중 노조 "듣지도 보지도 못한 158억" 소송 당한 까닭
 
기사 관련 사진
▲  2012년 12월 21일 오후 열린 '한진중공업 복직자 최강서 열사 경과와 대책' 기자회견 모습.
ⓒ 정민규

관련사진보기


"민주노조 사수하라. 손해배상 철회하라. 태어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돈 158억. 죽어라 밀어내는 한진 악질자본."

2011년 2월 한진중공업에서 정리해고 되었다가 이듬해 11월 일터로 돌아온 최강서(당시 35세)씨는 재입사 3시간만에 무기한 강제휴업을 당한다. 노조의 조직차장이었던 그는 2012년 12월 21일 노조 대회의실에서 목숨을 끊는다. 그는 손배소 철회를 유서로 남겼지만, 사측은 2014년 1월 기어이 판결을 받아내고 만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왜 소송을 당했을까. 부산 영도구 소재 한진중공업은 경영상태 악화 등을 이유로 2009년부터 정리해고를 시도했다가 노조의 반발로 잠정 중단했다. 이듬해인 2010년 사측은 노조에 400명 감축계획을 통보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노조는 임단협 성실교섭과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그해 12월 영도조선소 점거파업에 돌입한다. 사측은 이에 맞서 2011년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이하 지회)와 채길용 당시 지회장 등 11명을 상대로 손배소를 제기했다(사측은 애초 청구액 51억여 원으로 제소했다가 도중에 158억 원으로 늘렸고, 2011년 12월에는 지회를 제외한 개인에 대한 소송은 취하했다). 

법원(부산지법 7민사부, 재판장 성금석 부장)은 지난 1월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사측의 청구액 158억 원 중 59억 원을 노조가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의 판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측의 정리해고는 적법, 노조의 파업은 불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재판부는 2008년경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한진중공업이 심각한 경영난을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사실을 인정해준다. 또한 정리해고가 ▲긴박상 경영상 필요에 의해서 이뤄졌으며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였으며 ▲공정한 기준에 따라 대상자를 선정하고 ▲근로자 대표와 성실하게 협의를 하는 등 요건을 모두 갖추어 적법하다고 보았다. 

반면, 노조의 파업은 목적이나 수단 모두 정당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노조가 경영주체의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인 정리해고 자체를 반대하기 위하여 파업에 나아갔다고 할 것이므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경영권을 상당히 '존중'하는 기존 대법원의 판례를 그대로 수용한 결과다. 

파업의 수단에 대해서도 "영도조선소에 대한 관리지배를 배제한 전면적, 배타적 점거로써 폭력이나 파괴행위를 수반하는 등 반사회성을 띤 행위"라고 보았다.  

한진중 노조 59억 배상 판결은 1심에서 확정

이에 대해 지회는 "2010년 당시 파업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합원 총회를 거쳐 실시한 합법파업"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노조는 파업의 목적에 대해서도 "임단협 교섭과 관련된 조합원들의 처우개선이 주목적이었다"고 반박했다. 노조는 "단체협약 갱신 교섭을 하는 자리에 회사가 일방적인 구조조정안을 의제로 들고 교섭을 계속적으로 요구하며 교섭을 해태하였다"며 "부득이하게 파업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단체협약 및 임금협약 체결에 대한 이견이 파업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하더라도, 주된 목적은 정리해고를 반대하고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노조가 조선소를 점거하면서 선박건조에 차질을 빚었다고 사측이 청구한 금액 중 선박이동비용, 장비임차료, 도장비용 등 사외작업비용, 지체상금(납기일 지연 비용) 등 74억 원을 손해액으로 산정했다. 이중 회사의 책임을 일부 인정하여 80%인 59억 원을 노조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지회는 판결 직후 항소장을 제출했으나, 인지대를 납부하라는 법원의 명령에 응하지 않아서 항소장이 각하된 상태다. 따라서 1심 판결은 확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이후가 문제다. 

노사는 최강서 조합원 사망이후인 2013년 2월 22일 쌍방 민형사사건 취하 등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합의서에는 파업손배소 사건에 대해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별도의 회의록을 통해 "회사가 제기한 158억 손해배상 청구소송(1억 소송건 포함)은 확정판결 이후에 지회와 반드시 합의하여 처리한다"는 합의사항을 남겼다. 

지회 쪽은 이를 사측이 사실상 소송을 철회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박성호 지회장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회사 쪽 책임자를 만났는데 회사는 항소를 하지 않고, 자신의 임기동안 (판결에 따른 강제) 집행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박 지회장은 "항소심에서 불법파업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지 못한 아쉬움은 남지만, 최종적으로 금속노조와 상의해서 소송을 일단락짓기로 결론내렸다"고 덧붙였다.   

한진중 손배사건은 확정된 판결 자체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어서 노사합의에 대한 효력을 놓고 논란의 여지도 있다.

법원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파업은 경영권 침해... 불법"   
 
기사 관련 사진
▲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지난해 11월 27일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차 공장 정문 앞에서 정부와 사측의 부당한 손해배상청구소송 철회와 복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2009년 4월 쌍용자동차는 2646명의 인력구조조정안을 발표한다. 노조는 그해 5월 21일부터 77일간 평택공장을 점거하고 이른바 옥쇄파업에 들어간다. 노조는 사측이 정리해고를 합리화하기 위해 회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하며 형사고발까지 했다. 그 와중에도 1666명이 희망퇴직 등으로 회사를 나갔고, 980명이 정리해고됐다. 

그해 8월 6일 노사는 합의를 통해 정리해고자들을 무급휴직, 희망퇴직, 영업직 전환 등으로 처리했다. 최종 정리해고 대상자는 159명이었다. 2009년 구조조정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질환 등으로 사망한 노동자와 노동자의 가족은 24명이나 된다.      

사측은 파업의 책임을 물어 금속노조와 쌍용차지부 간부 등 140명을 상대로 50억~100억원 대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1심 법원(수원지법 평택지원 제1민사부 재판장 이인형 부장)이 인정한 배상액은 33억 원이다. 

사측과는 별도로 국가도 손배소에 가세했다. 파업진압시 장비파손, 경찰관 부상 등의 손해를 입었다며 노조 측을 상대로 제소한 것이다. 법원은 대부분의 손해액을 인정, 위자료를 포함 14억 원 배상판결을 내렸다. 최근 이슈가 된 '노란봉투 캠페인' 등에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배상금이 47억 원으로 알려진 것은 두 사건의 금액을 합했기 때문이다.   

쌍용차 파업판결도 한진중공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파업목적과 방법에서 정당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났다. 특히 재판부는 "옥쇄파업의 주된 목적은 정리해고에 관한 사측의 권한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자체가 경영권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또한 방법에 있어서도 "적법한 절차를 거부한 상태에서 고도의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평택공장 내 생산시설을 전면적, 배타적으로 점거하는 등 그 정당성의 한계를 벗어났다"며 "어느 모로 보나 명백한 불법파업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회사의 손해액을 공헌이익(영업이익+고정비) 상당액으로 계산했다. 쉽게 말해 파업기간 동안 자동차 판매로 얻을 수 있었던 영업이익과 고정비(조업중단 여부와 관계없이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차임, 제세공과금, 감가상각비, 보험료 등)를 합한 금액을 손해액으로 산정했다. 

파업주도자·참가자·지원자 110명, 33억 배상책임
기사 관련 사진

노조 측은 "공헌이익이 아닌 실손해를 기준으로 산정해야 하고, 파업으로 판매에도 차질이 생겼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가 산정한 손해액은 55억 원이다. 다만 경영악화에 사측이 막중한 책임이 있고 쌍용차 회생절차가 개시되어 파업이 없더라도 영업손실을 피하기 어려웠던 점을 참작, 60%는 노조가 40%는 사측이 책임지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함으로써 33억 원의 배상액이 나오게 되었다.   

피고 140명 중에서 배상책임이 인정된 사람은 110명이다. 이들은 ▲파업을 주도한 지부 간부 ▲공장 점거파업에 참가한 조합원 ▲파업을 지원하거나 공장을 점거한 금속노조 간부 ▲ 공장에 들어간 민주노총, 사회단체 간부 등이다. 재판부는 이들 모두가 공동으로 33억 원의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여기엔 국가가 청구한 14억 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 사건은 양측이 항소를 제기해 서울고법에서 2심이 진행될 예정이다. 

해고무효 소송 승소했는데, 해고반대 파업은 불법이라니

파업손배소 판결로 두 사건 모두 목적과 방법에서 정당성이 없는 불법파업이 되고 말았다. 특히 정리해고는 파업의 사유로 삼을 수 없는, 그야말로 성역이다. 현행 판례대로라면 임금인상 파업은 근로조건 개선사항으로 합법이지만, 근로자격을 박탈하는 정리해고 반대파업은 불법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런데 지난 2월 7일 서울고법(제2민사부 재판장 조해현 부장)에서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판결이 나왔다. 쌍용차 정리해고가 무효라는 2심 판결이다. 해고무효소송에서 "사측이 구조조정의 근거로 삼은 검토보고서의 재무제표에 유형자산손상차손이 과다계상되었다"는 노조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이다. 

법원은 ▲인원삭감의 필요성과 규모의 합리성을 사측이 입증하지 못해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다고 단정할 수 없고  ▲해고회피노력을 다하지 않아 정리해고의 실질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한 마디로 "정리해고의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부당해고로서 무효"라는 것이다. 쌍용차 파업손배소 재판부가 "구조조정 방침이 불순한 의도로 추진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한 것과 사뭇 다른 결론이다. 

노조원 중에는 파업손배소의 피고이자, 해고무효소송의 원고인 이들이 상당수 있다.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 이창근씨는 이 인원을 약 40명으로 추정했다. 이씨는 최근 기자와 한 전화통화를 통해 "정리해고 자체가 무효라는 판결이기 때문에 그 후에 발생한 문제는 회사의 귀책사유로 볼 수 있게 된 중요한 변화"라며 "파업 손배소송에서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해고무효소송에서 승소하고도 해고 반대 파업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수십 억 원을 물어줘야 하는, 기이한 현실과 맞서고 있다. 
태그:파업손배소, 한진중, 쌍용차 태그입력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국정원, 비정상의 극치…시치미 뗀다고 국민이 믿을까"

'사면초가' 남재준…<조선>도 "남재준 과잉 신념 탓"

 

곽재훈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3.10 11:10:24

 

 

 

 

 

 

국가정보원 등에 의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후폭풍이 남재준 국정원장을 정면 겨냥하고 있다. 야당은 물론 '보수세력의 바이블'로 불리는 조선일보마저 남 원장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아울러 사건 발생 이후 침묵을 이어가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입장 표명 요구도 거세졌다.
 
민주당-조선일보 한목소리 낸 사연은…
 
민주당 김한길 대표는 10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원이 이렇게까지 망가진 것에 국민들이 경악하고 있다. 여기에는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경계도 없다"며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럼에도 진정한 자기 반성이나 책임지는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며 "국정원은 박근혜 정부의 '비정상성'을 극명하게 대표적으로 상징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표는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라며 "이쯤 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엄벌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개혁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김 대표는 "김진태 검찰총장이 신속·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지만 국정원에 동조한 의혹이 있는 검찰의 수사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할 것"이라며 "특검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날 통합신당 창당추진단 공동단장을 맡은 안철수 의원과 특검 도입을 요구하는 공동 회견을 했었다. (☞관련기사 보기)
 
김 대표가 '국정원에 대한 국민의 경악에는 진보·보수 이념의 경계도 없다'고 한 부분은 이날자 <조선일보> 사설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은 '남재준 국정원장이 책임져야' 제하 사설에서 "아직 국정원이 위조를 지시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면서도 "설사 위조를 지시하지 않았다고 해도 책임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주한 중국대사관의 '위조' 주장 이후 국정원이 계속 뻗대기를 해온 것을 거론하며 "거짓말이거나 무능이다. 국정원이 그동안 내세워 온 '50년 대공수사 노하우'의 실상이 이것이라니 정말 충격적"이라고 비난했다. "(남 원장의) 과잉 신념은 국가의 위기까지 부를 수 있다"며 "국정원 관련 모든 문제의 바탕에는 무절제한 신념이 어른거리고 있다"고도 했다. 
 
신문은 "남 원장이 문서 위조를 몰랐다면 다른 누구보다 앞장서서 문서 검증을 지시했어야 한다"며 "유(우성) 씨가 실제 간첩이라면 남 원장과 국정원이 놓아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간첩이 아니라면 무고한 사람에게 엄청난 누명을 씌운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남 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순리"라고 지적했다. 
 
신문은 이날 1면 머릿기사에서는 국정원 소속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이인철 주 선양(瀋陽)총영사관 영사가 허룽(和龍)시에 가보지도 않고 '가짜 영사확인서'를 만들어 보냈다면서, 이 영사가 검찰에서 "처음에는 확인서 작성을 거부했지만 본부(국정원) 측의 거듭된 지시로 어쩔 수 없이 가짜 확인서를 만들어 보내 줬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이날 <한겨레>는 자살을 시도했던 조선족 동포 김모 씨가 올해 1월 중국 칭다오(靑島)시에서 중국 변호사와 만나, 유 씨의 출입경기록 문건을 보여주며 '중국 상급기관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겠냐'고 물었다고 당시 동석했던 재중동포의 말을 빌어 전했다. 이 동포는 "김 씨가 그때 서류를 들고 왔는데 그게 (두께가) 한 1cm쯤 됐다. 복사본인지 뭔지 도장도 있었던 거 같다"고 신문에 말했다. 
 
이는 김 씨가 싼허(三合)세관에서 발급받았다고 위조한 것으로 알려진 '출입경기록 정황에 대한 회신(회신)' 문건 외에 다른 문서 위조에도 관여했을 정황이다. 검찰이 국정원에서 건네받아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문서 가운데는, 김 씨가 칭다오에서 중국 변호사에게 문의했다는 내용과 정확히 같은 내용의 문서가 있다. 허룽시 공안국이 발급했다며 법원에 낸 '출입경기록 발급 사실확인서(확인서)'다. 
 
국정원 '송구하다' 보도자료, 오히려 뭇매
 
국정원이 전날 "세간에 물의를 일으켜 송구하다"는 보도자료룰 낸 것은 오히려 역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정원은 일요일인 전날 밤 입장을 내어 "국정원은 재판 진행 과정에서 증거를 보강하기 위해 3건의 문서를 중국 내 협조자로부터 입수하여 검찰에 제출했다"며 "하지만 현재 이 문서들의 위조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어 저희 국정원으로서도 매우 당혹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국정원은 "국정원은 조속히 검찰에서 진실 여부가 밝혀지도록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며 "수사 결과 위법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 관련자는 반드시 엄벌에 처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계기를 통해 거듭나는 국정원이 되겠다. 다시 한 번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나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국정원은 휴일 밤 늦게 이메일을 보내서 국민에게 '송구스럽다'고 밝혔지만 진정성을 찾아보기엔 너무도 부족하다. 문서 위조 자체에 대해 인정하거나 사과 한 마디 없었다"고 비판했다. 전 원내대표는 "휴일 밤늦게 형식적 사과문으로 하려는 꼼수가 통할 리 없다"며 "남 원장은 책임지고 사퇴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 개혁과 개과천선은 남재준 사퇴와 특검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같은 당 신경민 최고위원도 "국정원이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한 듯 하다"고 혀를 찼다. 신 최고위원은 "국정원은 처음에는 진본이라고 주장하다가, 진본이라고 믿었다고 하면서 책임을 넘기고 있다"며 "찌질해도 너무도 찌질한 국정원"이라고 꼬집었다. 신 최고위원은 "만기친람하는 청와대와 대통령이 긴급 현안이 나오면 침묵하는지 모르겠다"며 "공부하는 학생이 아는 문제만 골라서 답할 수 없듯, 대통령은 질문을 피하거나 할 수 없다"고 했다. 양승조 최고위원도 "국격 떨어뜨린 남 원장을 즉각 해임하라"고 거들었다. 
 
정의당 천호선 대표는 "조작을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어제 국정원이 도둑처럼 사과문을 발표했다"며 "하지만 문서 위조 그 자체를 인정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마치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있다. 이를 믿을 국민이 있을까 의문"이라고 했다. 천 대표는 "국정원 수장 남재준 원장과 황교안 법무장관은 즉시 사퇴해야 한다"며 여당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은 증거조작이 명백해진 이상, 그간 국정원을 비호하고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발언까지 했던 것에 대해 사죄하고 이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에 협조해야 할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여당에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날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유기준 최고위원은 기존 여당의 입장과 똑같이 "정치공세로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야당을 공박하면서도 "간첩혐의는 간첩혐의, 증거조작은 증거조작"이라며 "이번 사건은 간첩혐의와 증거조작이다. (각각의) 잘잘못을 엄중히 따지면 된다"고 했다. 이혜훈 최고위원도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검찰은 국민적 의혹이 단 한 점도 남지 않게 철저히, 공정히 수사하지 않으면 검찰의 신뢰는 물론 대한민국 정부의 신뢰도 산산조각 날 수밖에 없다는 사즉생의 각오로 임해야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의 특검 주장을 수용하지 않는 선에서 나름대로 최대 수위의 방어를 한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미투데이 보내기 요즘 보내기 C로그 보내기 구글 북마크

 곽재훈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인민군 원혼이라도 좋은 곳으로 가야지

등록 : 2014.03.07 19:20수정 : 2014.03.09 11:39

툴바메뉴

기사공유하기

보내기
 
지난 2월27일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신당(神堂)에서 김금화 만신을 만났다. 최근 영화 <만신>의 개봉으로 시사회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한 그는 이날 감기에 걸려 목소리가 갈라지면서도 차분하게 인터뷰에 응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이진순의 열림 / 만신 김금화

오래전 그의 굿을 본 적이 있다. 십수 해 전 다큐멘터리 방송작가로 일하던 때, 후배 작가 하나가 그의 굿판에서 며칠째 진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몇몇 동료들과 작당해서 “우리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고 밤길을 달려갔다. 경기도 인근이라 만만하게 생각하고 길을 나섰는데 내비게이터도 없던 시절 막상 시골로 들어서니 이 길이 저 길 같고 사방이 똑같아 천지분간을 하기가 어려웠다. 도깨비에 홀린 듯 논두렁 사이를 헤매다가 문득 발견한 불빛들. 검은 들판에 흘러 퍼지던 장구와 피리, 제금 소리…. 그 빛과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에 그가 있었다. 형형색색 나부끼는 깃발과 무신도(巫神圖) 앞에서 쾌자 자락을 펄럭이며 춤을 추던 김금화.

 

무당의 작두타기가 그냥 바닥에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사람 키를 훨씬 뛰어넘는 높이에 정성스레 차린 칠성단을 딛고 올라서는 거라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칠성단에 작두를 타러 오르던 그의 하얀 종아리가 기억에 선명하다. 작두타기가 서커스 기예를 보듯 흥미진진할 줄 알았는데 이상스레 처연하고 서러웠다. 칼날 위를 기어가는 달팽이처럼, 가장 여린 마음으로 세상의 극심한 고통을 감싸 안는 게 무당의 업이란 뜻일까.

 

최근 그를 소재로 한 영화 <만신>이 개봉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래전 묻어두었던 질문들이 새삼 떠올랐다. 그는 왜 무당이 되었을까. 그에게 무업이란 무엇일까. 하고많은 무당 가운데 왜 김금화, 그에게만 나라만신이란 별칭이 붙은 걸까. 지난달 27일 서울 이문동 신당(神堂)에서 김금화 만신을 만났다. 

 

 

철물이굿 2박3일, 대동굿 5박6일 
짧아도 하룻밤 하룻낮 걸리지만 
어려서부터 해와 안 잊어버렸어 
미신타파한다며 하도 못 하게 해 
안 하고 넘어가는 대목 생겼지만 

죽은 사람 한풀이하는 게 업인데 
적군묘지의 중공군과 북한군들 
제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다들 좋은 곳 가라고 굿한 거지 
그래야 우리나라도 평안할 거고
 

 

 

열두살 무렵에 찾아온 ‘무병’과 시집살이

 

-요즘 영화 시사회 때문에 바쁘시다고 들었다.

 

“어제도 용산에 다녀왔는데 시사회장에서 (굿)공연도 하고…. 요즘 그렇게 다니느라고 아주 피곤하다. 영화는 보셨나?”

 

 

내가 봤다고 하자 대뜸 영화가 어떻더냐며 감상평을 물어왔다.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한 영화이니만큼 좋은 반응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그는 배우 류현경, 문소리 등과 함께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직접 출연한다.

 

 

-키가 무척 크시던데. 극 중에서 다른 여배우들하고 나란히 섰을 때도 전혀 밀리지 않더라. 실례지만 키가 몇이신지?

 

“1미터 67인가? 몰라….”

 

-옛날 미스코리아들보다 더 큰 키다.

 

“그래서인가, 호주를 갔는데 시장님도 오고 무슨 행사가 크게 있었어. 많은 사람들이 쫙 모여 있고 나는 하얀 한복을 입고 서 있는데, 나보다 작은 사람들도 있더라고. 거참 이상하다 했지.”

 

-훤칠한 키에 평생 변함없이 군살 없는 몸매, 무당에게 이런 수려한 용모는 복인가 업인가?

 

“업은 아니지…. 그렇게 외국 나가서 무대 많이 서고 한국에서도 무대 많이 섰는데, 내 키가 쪼그매봐, 땅딸보처럼 쪼그매가지고 거기서 춤을 추고 맴돌고 그러면…. 팍 꺼져서 눈에 얼른 띄지도 않겠지.”

 

-키나 용모는 어머니나 외가 쪽을 닮으신 건가?

 

“어머님이 작은 키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크지도 않았다. 그보다는 어려서부터 (무당)춤을 많이 춰서 그런 것 같애. 자꾸 뛰니까 (성장판에) 자극이 돼서 더 큰 것 같아.”

 

 

김금화는 1931년 황해도 연백에서 김택근과 이음전 사이 5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아들을 학수고대하던 집안에선 어린 그를, 남동생이 어깨너머에서 들여다보고 있다는 뜻의 “넘세”라는 아명으로 불렀다. 넘세는 열두살 무렵부터 이상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나무나 돌을 보고 얘기를 건네고 같이 놀던 친구한테 “네 아버지는 일찍 가시갔다”는 말을 내뱉곤 했다. 무병(巫病)이었다. 정신대 모집을 피하느라 열네살 어린 나이에 시집을 갔지만 시어머니 구박과 매질로 상태는 더 나빠졌다. 굶주림에 개밥을 주워 먹기도 하고 장티푸스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결국 매질을 참지 못해 시집 뒷간의 바자울 썩은 틈으로 기어서 도망 나왔다. 그의 나이 17살이었다. 얼마 후 외할머니 김천일로부터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되었다. 손녀에게 무업을 물려주지 않으려 마지막 순간까지 안간힘 쓰던 김천일은, “만신이 된다는 건 뭇사람들이 참지 못하는 고통을 숱하게 참아내는 것”이라며 눈물로 금화의 앞길을 열어주었다.

 

 

-시어머니는 혹시나 그 이후에 혼백으로라도 접하신 적이 있나?

 

“더러…. 꿈에 만나 본다든가, 굿을 할 때 (혼백으로) 만나 본다든가.”

 

-시어머니 혼령을 접하니 어떻던가? 용서가 되던가?

 

“그분이 뉘우쳤지. 당신이 잘못했다고…. 그래도 ‘그 덕에 네가 훌륭하게 잘 커서 잘되고 있다’고 하셨고, 나도 ‘내가 어려서 부족한 게 많았다’고 얘기하고….”

 

-어려서부터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 큰무당이 되려면 이런 시련을 반드시 거쳐야 하나? 평탄하게 살면 무당이 못 되나?

 

“그럼. 만신이 되려고 그런 시련을 먼저 겪는 거다. 신령이 선택을 해서 신이 시키는 공부다.”

 

-뭘 배우라는 공부인가?

 

“아프고 힘들고 괴롭고 외로운 걸 다 겪어봐야 남을 이해할 수 있는 거다. 그래야 참다운 마음이 가득하게 생기는 거고. 절에서 수행, 수행 하는데 이런 게 다 수행이다.”

 

-고생을 한다고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성격 자체가 비뚤어진 사람이 만신이 되면 좀 나아지긴 해도 100% 다 바르게 되는 건 아니다. 남한테 악담하고 심술 내고 이런 사람은, 만신이 돼도 그런 근성을 다 버리진 못한단 말이지. 치성 불공드려서 돈이 좀 들어왔어도 어떤 철없는 사람은 남자 만나서 술 먹고 돈 다 뿌리는 사람이 있지. 반면에 어떤 사람은 뉘우치고 깨치면서 아 이건 감사하다,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나. 어려운 사람을 도와준다든가, 쌀을 사준다든가, 그렇게 수행하는 맘으로 살지.”

 

-만신이 어떻게 마음을 쓰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만신을 통해서 들어오는 신도 달라지나?

 

“그렇다. 착한 마음을 가지고 바른 마음을 가지고 남한테 가슴 아프게 안 하면 그게 복을 짓는 거다. 복을 지어야 복을 받는 거지. 남 나쁘게 해코지하고 가슴 아프게 하면 복을 받을 수가 없는 거야.”

 

자신을 갈고닦으며, 사람들이 서로 복을 베풀도록 권하고, 화해와 용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무당은 여느 종교의 사제와 다를 바 없다.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한국학)는 “무속을 미신이나 사이비 종교로 규정짓는 시각은 자기 종교의 시각으로만 보는 제국주의적 발상”이라고 지적하며 “무교는 한국인의 가장 고유한 종교”라고 주장한다. 도올 김용옥도 무속문화가 우리 예술의 원류이고 종교의 원점이었음을 강조하면서 “김금화는 그런 우리 문화의 대맥을 이은 마지막 진짜”라고 헌사를 바친 바 있다. 그러나 김금화가 살아온 세월 동안 무속은 늘 터부와 멸시, 조롱의 대상이었다. 일제는 조선의 무속전통을 미개하고 야만적인 것으로 폄하했고, 해방 후 유입된 기독교와 서구문명은 무속을 사이비 종교로, 새마을운동은 뿌리 뽑아야 할 미신의 잔재로 규정했다.

 

 

※ 클릭하시면 확대됩니다.

 

 

“굿을 따라갔더니 영화가 나오더라”

 

-다른 종교에 경전이 있다면 무속에서는 무가(巫歌)가 있다. 굿에 따라 며칠씩 계속되는 경우도 있는데 가장 긴 판소리보다도 그 사설이 길다. 그 많은 무가를 어떻게 다 외시나? 나이 들면 잊어버리지 않나?

 

“어려서 외운 거라서, 컴퓨터 입력되듯이 (기억에 새겨져) 있다. 사실 더러 잊어버리는 무가도 있는데, 옛날처럼 다 부르지를 않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다. 옛날에 가정집 굿 중에서 철물이굿(철 따라 하는 황해도 재수굿)은 2박3일, 대동굿(마을의 안녕을 비는 동제)은 5박6일, 짧은 것도 하룻밤 하룻낮이 걸리는데, 쭉 해오면 안 잊어버릴 걸, 새마을운동 때 하도 못 하게 하고 미신 타파한다고 경찰에서 나오고 하다 보니 원래 예식을 줄여서 안 하고 넘어가는 대목이 생긴다.”

 

 

1995년 김금화는 전통 무가들이 더 이상 사라지지 않도록 자신이 행해 온 6개 굿의 준비 절차와 순서, 내용, 무가와 무구 목록까지 총망라하는 <김금화의 무가집>을 발간했다. 내림굿의 “만세받이” 중 한 대목을 인용하여 <검으나 따에 만신, 희나 백성의 노래>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배연신굿, 대동굿, 진오귀굿(지노귀굿)을 포함해 모두 430여쪽에 이르는 전통 굿의 생생한 복원이자 재현 매뉴얼이다. 이전까지 굿에 대한 설명이나 해설은 민속학자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왔다. 김금화 무가집은 무당에 의해 직접 편찬된 첫 번째 무속백과인 셈이다.

 

 

-예전에 화가 천경자 선생이 “굿을 한다고 해서 따라갔더니 영화가 나오더라”고 했다던데, 정말로 굿에는 다양한 극적 요소들이 섞여 있는 것 같다.

 

“굿이 처음에는 경건하고, 중반까지 엄숙하게 가다가, 중반 지나면 하나의 연희처럼 웃고 떠들고 어우러진다. 모두 거리감 없이 허심탄회하게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게 굿이야.”

 

-무속의 원리로 친다면, 그런 과정을 통해서 무당의 접신 체험을 관객하고 공유하는 건가?

 

“그렇지. 마음을 하나로 모으고, 거기 와서 스트레스도 풀고, 옛날에는 무슨 춤추는 데가 있나 영화관이 있나. 뭐 어쩌다 서커스나 말광대 뭐 그런 거 일년에 한두번 보기도 힘든데, 그런 굿은 자주 볼 수 있었거든. 마을굿 한번 한다 하면 한 7~8개월 전부터 준비를 했지.”

 

-대규모 라이브 공연팀의 준비 과정이랑 비슷한 모양이다.

 

“굿이 마을 전체의 제사고 잔치야. 마을 남자들이 일편단심 마음을 모아가지고 정성 들여 최선을 다했다. 그때는 주인이 굿의 전체 과정을 뚜르르 꿰고 다 알아서 준비했는데 이제는 만신이 굿 준비도 일일이 해줘야 되고, 그렇게 바뀌었다고.”

 

-요즘 사람들이야 별로 굿을 본 적 없으니까.

 

“그때는 정말 양반이었지. 며칠 굿하고 나서 주인이 ‘만신, 돈 얼마나 나왔나 봅시다!’ 그래. 이게 별비(공연 과정에서 구경꾼으로부터 받은 돈) 나온 게 얼마냐 그 소리야. 그럼 그간 장구에 매달아놨던 거, 자루에 놨던 거, 다 꺼내놓으면, 같이 세어 보는 거야. 그래서 ‘돈 많이 나왔네. 보별(의뢰인이 주는 목돈) 좀 적게 줘도 되겠네’ 하거나, 아님 ‘적게 나왔으니 더 줘야 되겠네’ 그러면 더 주고. 사람들이 아주 순수했어.”

 

 

무(巫)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춤추는 사람”을 형상화한 글자다. 무당은 하늘의 소리를 땅의 사람들에게 전하고 사람들의 기원을 하늘에 고한다. 그 수단은 춤과 노래. 일반적으로 굿은 주변의 잡귀 잡신을 물리치는 ‘부정거리’로 시작하는데, 굿이 거의 끝날 때쯤엔 물리쳤던 잡귀 잡신들마저 다시 불러들여 푸짐한 음식을 대접하는 ‘뒷전거리’로 끝을 맺는다. 춤과 노래로 하늘과 소통하고, 푸짐한 음식으로 잡귀마저 달래는 한국의 굿에는, 박멸해야 할 사탄이나 봉인해두어야 할 악령은 없다. 억울하고 한 맺혀서 배회하는 불쌍한 원혼들만 있을 뿐. 그들은 위로와 연민의 대상이지, 배척과 적대의 대상이 아니다. 김금화는 박정희의 영혼을 위해서도 제를 올리고 김일성의 넋을 받아 공수(혼령이 전하는 말)를 하기도 한다. 천안함 희생자를 위해서 사비를 털어 제를 올린 것처럼, 6·25 때 전사한 북한군을 위해서도 정성을 다해 제를 올린다.

 

 

-나라만신이라고 불리시는데, 특히 전쟁이나 분단으로 인해 고통받은 넋들을 위로하는 나라굿을 많이 하셨다. 1998년 임진각에서 한 통일기원 굿이나 1996년의 윤이상 진혼제 같은 건, 아무 만신이나 쉽게 마음을 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왜 이런 굿을 시작하셨나?

 

“1996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한국민속제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벽돌담 깨뜨린 베를린 담장에 장구하고 방울 부채 가지고 가서 나도 굿을 한 거리 했다. 한국 무당이 가서 빵 놓고 우유 놓고 포도주도 없이 물 떠놓고 기원했지. 여기 있는 영혼들도 언어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지만 여기서 그냥 떠돌고 헤매지 말고 잘 위로받아서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그리고 그 담장에 매달려서 벽돌을 깨뜨리고 통일을 이룬 그 국민들 기를 받아가지고 와서 우리나라 통일에 보탬이 되고 싶었다. 우리 동향민들, 인천에 주로 거주하던 황해도 이북 사람들하고 뜻을 모아 추렴하고 굿을 한 게 1998년 <통일이여 오라> 굿이다. 그때 불교인이나 천주교, 개신교인 제반 종교인들도 많이 모였어. 내가 작두를 타고 높이 올라가 ‘우리 모두 국민들 마음으로, 통일이여 오라를 외칩시다!’ 하면서 선창을 하니까 자기 종교가 뭐든 너나없이 모두 같이 손들어 ‘통일이여 오라!’를 외쳤다고.”

 

-임진각에서 김일성의 넋과 접신을 하고, 파주 적군묘에서 북한군 영혼을 위로하는 굿을 하기도 하셨다. 세속적인 기준으로 보면 정치적으로 지탄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이런 일을 벌이는 게 두렵지 않으셨나?

 

“개인적으로 두려울 게 뭐 있겠나. 우리는 영혼을 달래고 죽은 사람들을 위로해서 한풀이하는 게 업인데. 중공군이며 북한군이며 제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억울한 죽음을 당한 영혼들 어서 당신의 나라로 돌아가라, 원 풀고 한풀이해라, 하면 좋지 뭐. 진주엠비시 의뢰로 죽은 빨치산을 위한 진혼굿을 지리산에 가서 한 적도 있어. 우린 만신이니까 죽은 사람들 위로하고 그 사람들 좋은 곳으로 보내는 게 목적이잖아. 나라의 잘못으로 전쟁에 참여했지, 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한 것도 아니고. 우리 군인들이나 그 사람들이나 나라에 목숨을 바친 사람들이 무슨 죄가 있냐고. 그러니까 마음 풀고 배들 고픈데 많지 않은 음식이라도 받아가지고 좋은 곳으로 가라, 그런 의미에서 한 거지. 그래야 우리나라도 평안할 거 아니냐고.”

 

 

신의 도움으로 평화통일 굿이나 해보자

 

-누가 거액을 주고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 가족들이 애걸복걸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사비까지 들여가며 이런 대형 굿을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리는 신하고 대화하면서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니까, 그 한 많아 떠도는 영혼들 원 풀어서 자기 가족한테 보내든가 좋은 하늘나라로 보내든가 하면 그 영혼들도 고마워하지 않겠냐고. 우리가 이북 사람이니까 언제나 그저 바라는 건, 삼팔선 빗장 빼고 문 확 열어서 마음대로 오고 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거고, 실향민들이 고향을 간절히 그리고 가족들 만나고 싶어하니까 판문점에 8월이나 정월달 되면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천지신명의 도움으로, 조상의 힘으로라도, 빨리 통일을 평화롭게 앞당겼으면 그런 마음으로 하는 거야.”

 

-80년대 이후 무속의 예술적·종교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인정해 준 지식인들이 대개 진보적 학자들이었는데 그들과의 교유가 민족통일에 대해 그런 생각을 하게 한 건 아닌가?

 

“그건 아니야. 옛날에 대동굿이 많았잖아. 대동굿은 마을굿인데, 나라굿이라고 못할 게 뭐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거지. 특히 내가 고향이 이북이니까, 정말 신의 도움으로 험한 일 없이 평화통일 굿이나 해보자. 천재지변이 없고, 나라에 험한 일 없이 전쟁도 없고, 만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게 만신이 해야 할 의무라고.”

 

-신령님들은 전쟁을 반대하나?

 

“환영하지 않지.”

 

-어떤 종교 지도자들은 종교를 위해서라도 전쟁을 해야 한다고….

 

“그건 수양이 덜된 거지. 신당 앞에 꽃이 있는 것도 평화를 상징하는 거야.”

 

김금화의 평화를 위한 기도는 신통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나라만신 김금화의 간절한 기구는 오늘도 이어진다.

 

“검으나 따에 희나 백성/ 극히 보살펴 잘 도와줄 때/ 정한 마음으로 원수가 있거든/ 내리 사랑하고 잘 도와주어라./ 불리러 가요 외기러 가요/ 닫은 문을 열러 갈 제 나를 따라 오너라/ 나를 따라올 제/ 험하고 머나먼 길이어라…”(황해도 내림굿, ‘만세받이’ 중에서)

 

녹취 김혜영(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탈핵의 봄을 기다려요~

 

8일 서울광장에서 후쿠시마 사고 3주기 시민문화제 열려
문양효숙 기자  |  free_flying@catholic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3.08  18:18:4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3주기 시민문화제에 참가한 수도자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8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3주기를 맞아 핵발전소 없는 사회를 염원하는 시민문화제가 열렸다.

천주교창조보전연대, 서울환경운동연합, 녹색당, 핵 없는 세상, 에너지정의행동, 두레생협연합회 등 40여 개 단체가 참가해 배지 만들기, 콩초 만들기, 태양광 발전기 충전 등 다양한 체험 마당을 열었고, 6개 출판사가 <체르노빌의 봄>, <후쿠시마 이후의 삶> 등 탈핵 관련 서적을 전시, 판매했다.

밀양 주민 구미현 씨는 무대에 올라 “봄이 왔는데 밀양은 여전히 겨울이다. 공사가 재개된 뒤 지난 6개월 동안 많은 분이 폭력과 불법적 공권력에 저항하다 다치고 구속됐다”며 밀양의 절박함을 호소했다. 구 씨는 “밀양 송전탑 52기 중 현재 11기가 올라갔지만 우리는 송전탑을 인정할 수 없다. 우리는 오늘도 새벽에 산을 오르고 거리로 나서며 이미 들어선 송전탑을 다시 뽑을 때까지 이 부도덕한 정권과 부도덕한 기업 한전에 굴하지 않고 싸울 것”이라며 결의를 밝혔다. 밀양 ‘할매’들은 이날 청계광장에서 열린 제30회 3.8여성대회에서 여성운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3주기 시민문화제에서 밀양 주민 구미현 씨가 발언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얼마 전 일본 핵발전소 사고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온 그린피스 기후 에너지팀 장다울 씨는 “더 이상 밖에서 아이들과 산책할 수 없는 세 아이의 어머니, 자기 손으로 기른 소를 다 죽여야 했던 목축업자, 후쿠시마 발전소가 위치한 곳의 시장, 30년 간 유기농업을 했으나 더 이상 수확을 할 수 없는 농민들을 만났다”면서 “3년이 지난 지금 후쿠시마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어떤 정부도 이런 사고를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며 피해는 인근 주민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남는다”고 말했다.

이날 문화제에는 특별히 일본 후쿠시마에서 온 탈핵운동가 2명이 직접 참석해 핵발전소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후쿠시마 지원 사람문화네트워크’ 사무국장 군지 마유미 씨는 “지난 1월 일본 현지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밀양을 포함해 4개 지역을 돌며 한국의 상황도 매우 위험한 상황이란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마유미 씨는 “쓰나미 이후 피난 생활의 고립감으로 인한 자살 등 간접적인 죽음이 재난 당시의 직접적인 죽음을 넘어서고 있다”며 “후쿠시마 사고의 피해는 오히려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만약 한국의 동해 쪽에 있는 핵발전소가 가동된다면 바로 한국도 위험 지역이 된다. 한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우리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화제를 마친 시민 300여 명은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를 돌아 다시 서울광장까지 행진을 벌였다.

   
▲ 천주교창조보전연대가 준비한 배지 만들기 체험마당에서 어린이들이 탈핵 배지를 만들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3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이한철 밴드가 공연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문화제를 마친 시민들이 을지로 방향으로 행진을 벌이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문양효숙 기자
   
ⓒ문양효숙 기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문양효숙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쫓겨난 대통령 덕에 한국이 잘산다? "결코 아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30> 해방과 분단, 열다섯 번째 마당

김덕련 기자,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3.09 01:32:07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른바 진보 세력 안에서도 부박한 담론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역사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절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러한 생각으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를 이어간다.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은 한국 현대사 연구를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매달 서 이사장을 찾아가 한국 현대사에 관한 생각을 듣고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네 번째 이야기 주제는 해방과 분단이다. <편집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한국전쟁, 첫 번째 마당] "공산군 물리친 이승만의 공? 잘한 게 없다"
[한국전쟁, 두 번째 마당] "북한, 전면전은 못할 것…한국전쟁 공포 때문"
[한국전쟁, 세 번째 마당] 박정희 살린 6.25? "전쟁 덕 톡톡히 봤다"
[친일파, 첫 번째 마당] "뉴라이트·이승만, '용서받지 못할 자' 비호" 
[친일파, 두 번째 마당] 박정희 '은밀한 과거'는 어떻게 비밀이 됐나
[친일파, 세 번째 마당] "일본군 박정희, 반성은 없었다…유신은 필연"
[친일파, 네 번째 마당] "박정희 한 사람 덕에 경제 발전? 저열하다"
[친일파, 다섯 번째 마당] '반역자 미화' 뉴라이트, 힘 싣는 여당…"두렵다"
[학살, 첫 번째 마당] "수십만 죽이고 30년 넘게 침묵…참 무서운 한국"
[학살, 두 번째 마당] "군, 총·수류탄으로 주민 학살 후 시신 소각"
[학살, 세 번째 마당] 고마운 미국? "한국인들 죽이거나 학살 방조"
[학살, 네 번째 마당] "애가 부모에게 수류탄 던졌다"? 무서운 이승만
[학살, 다섯 번째 마당] 일본도로 국민 목 친 학살자가 이순신과 동급?
[학살, 여섯 번째 마당] "좌익이 영광에서 5만6000명 학살? 그건 아니다"
[학살, 일곱 번째 마당] 박정희 세력은 왜 합동 묘지를 파헤쳐야 했나
[해방·분단, 첫 번째 마당] "일본은 곧 망한다"…그들은 비밀을 알고 있었다
[해방·분단, 두 번째 마당] 자유는 미국이 준 선물? 그들은 점령군이었다
[해방·분단, 세 번째 마당] 한국 '최고의 혁명가'가 친일파? "극우, 참 비열하다"
[해방·분단, 네 번째 마당] 일본도 차마 못한 그 일 감행한 미국…한국 '폭발'
[해방·분단, 다섯 번째 마당] 반역자에서 애국자로…역사를 바꾼 신분 세탁
[해방·분단, 여섯 번째 마당] 나라 판 좌익? 김일성 '엉터리 신년사'의 비밀
[해방·분단, 일곱 번째 마당] 12번 테러와 암살도 '정의로운 바보'를 못 꺾었다
[해방·분단, 여덟 번째 마당] 북한, 남측 인사에게 '전쟁 안 하겠다' 다짐?

[해방·분단, 아홉 번째 마당] 한국의 친미는 어쩌다 미국을 들이받았나

[해방·분단, 열 번째 마당] 북한은 왜 전면전의 유혹에 빠져들었나

[해방·분단, 열한 번째 마당] '<지슬> 사람들'이 폭도? "극우, 터무니없다"

[해방·분단, 열두 번째 마당] 박정희 정권은 어쩌다 일본에 퇴짜 맞았나 

[해방·분단, 열세 번째 마당] 두 번 쫓겨난 대통령 띄워 북한 무너뜨린다?

[해방·분단, 열네 번째 마당] 한국은 왜 '쓰레기통'이라는 조롱을 당해야 했나

프레시안 : 농지 개혁 문제를 짚었으면 한다. 많은 연구가 이뤄진 주제이자, 그럼에도 의견이 매우 엇갈린 사안이다. 일각에서는 '<해방 전후사의 인식>으로 대표되는 진보 학계가 북한의 토지 개혁은 긍정적으로, 남한의 농지 개혁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아니냐'고 공격하기도 한다. 어떻게 보나. 토지 개혁과 농지 개혁, 이렇게 용어가 다른 것도 눈에 들어온다.

 

서중석 : 이 부분도 왜곡과 일방적인 주장이 많다. 기초적인 자료나 증언을 제대로 살피지 않고 말하는 경우가 뉴라이트뿐만 아니라 진보 세력 가운데에도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먼저 농지 개혁과 토지 개혁, 왜 용어가 다른가? (1948년) 조봉암의 농림부에서 처음에 만든 건 토지 개혁안이었다. 국회에서 구체화하면서 농지 개혁 법안이 됐다. 무슨 차이가 있냐. 국회에서 만든 농지 개혁안을 보면 과수원이라든가 염전이 빠져 있다. 모든 토지가 들어간 게 아니다. 그래서 (일부) 대토지 소유자들이 (농지 개혁 대상 토지를) 염전으로 바꿔버려 나중에 문제가 생기고 그런다. 모든 토지가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농지 개혁안이라고 부르는 게 더 맞다.

 

농지 개혁에 대해 차이가 나는 주장이 참 많았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이전에 진보 세력이라고 할까, 이승만 정권을 비판하는 세력은 '사실상 농지 개혁이 참 잘못된 것이다.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지주 중심으로 된 것이다'라는 주장을 많이 했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1권에서도 아무개 교수가 그런 주장을 했다. 그런데 장상환(경상대 교수) 씨가 학위 논문을 통해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연구를 하고 현지를 답사해 증언을 채록하면서, 그런 주장들은 진보 세력에서 많이 없어졌다. 지금은 진보 세력 가운데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가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해방 전후사의 인식> 1권은 1979년에 나왔다. 장상환 교수가 농지 문제에 대해 쓴 박사 학위 논문이 나온 건 1995년이다. <편집자>)

 

프레시안 : 농지 개혁은 산업화의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와 함께 국외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서중석 : 외국 학자 중엔 '농지 개혁은 미국 공로'(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해외 학자들이 제일 궁금하게 여긴 건 도대체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 대만, 싱가포르, 홍콩), 그전에 일본, 그리고 나중에 중화인민공화국 같은 데가 어떻게 엄청난 경제 발전을 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한때는 일본이 2위, 지금은 중국이 2위 이렇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이냐에 대한 여러 연구가 있었다.

 

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토지 개혁이다. 일본은 패전 이후에야 토지 개혁을 했고 중국은 1950년대 초에 토지 개혁을 했다. 대만도 장개석(장제스) 정권이 토지 개혁을 했고 한국도 농지 개혁을 했다. 그러니 네 지역에서 이 점이 아주 공통적인 것이다.

 

(이와 달리) 중남미와 필리핀 등 동남아 일부 국가가 그렇게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도, 그리고 한때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것 같다가 왜 1960년대 이후에 저렇게 뒤처져 '네 마리' 용과 일본, 중국과는 비교가 안 되게 되었는가. 이 지역들이 전부 토지 개혁이 안 됐다. 예컨대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이 토지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됐는데, 그걸 할 수가 없었다. 마닐라 외곽에 가봐라. '성주'들이 있는데 (토지 개혁을) 어떻게 하겠나.

 

그런데 이(런 점에 주목한 외국) 사람들은 '대만이건 일본이건 (토지 개혁의 동력은) 미국의 압력이다. 한국(의 농지 개혁)도 미국의 압력 때문에 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미국의 압력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 됐다는 점은 수긍할 수 있으나 대만의 경우 어디까지를 미국의 압력으로 봐야 하는지 (의문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 그런 주장이 과연 맞겠는가?

 

한국인들은 처음부터 토지 개혁을 친일파 처단과 함께 열망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군정은 (전면적인 토지 개혁을) 끝내 못했다. 정부 수립 직전에 와서야 (미군정은) 귀속 농지, 그러니까 일본인이 소유했던 토지에 한해서만 소작농에게 토지를 줬다. 아주 부분적으로, 그것도 마지막에 와서야 한 것이다. (미국이) 이승만 정부에 압력을 넣은 건 사실이지만 (농지 개혁 문제에서) 미국의 적극적 역할을 인정하기는 참 어렵다. 이런 점을 생각해야 한다.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 서중석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프레시안(최형락)

 

 

산업화 기반 마련한 농지 개혁, 이승만이 주도? "결코 아니다"

 

프레시안 :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각하려는 이들은 '농지 개혁은 이승만의 공'이라는 주장을 편다. 이승만이 조봉암을 중용해 농지 개혁안을 만들게 하고 관철시킨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승만이 지주 대신 농민과 손잡는 진보적인 선택을 했다는 시각도 있다. 더 나아가, 이승만이 농지 개혁 등을 통해 산업화를 앞당겼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승만이 산업화의 터전을 마련하고, 박정희가 그걸 기반으로 급속한 산업화를 이뤘다는 논리다.

 

서중석 : 농지 개혁이 이승만 대통령의 공로인가? 한때 뉴라이트 정치학자가 이 점과 관련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그러면서 소장파 정치학자들이 이 부분을 굉장히 주장하더라. 나하고도 토론을 많이 했다. 이승만이 농지 개혁을 주도한 게 결코 아니다. 그걸 1996년 내 책(<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2>)에서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저들은) '1952년 8.5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이 많은 지지를 받았다. 농지 개혁을 했기 때문에 농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은 것이다'라는 걸 근거로 내세운다. 그러면 농지 개혁을 (시작)한 직후에 치러진 (1950년) 5.30선거에서도 이승만 지지 세력인 (대한)국민당이 약진했어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5.30선거에서) 중도파 민족주의자와 무소속이 대약진했고 민국당(한민당의 후신)하고 국민당은 추풍낙엽처럼 쪼르륵 떨어졌다고 당시 사람들이 모두 쓰고 있지 않나. (저들의 이야기는) 이런 사실과도 너무나 어긋나는 주장이다.

 

(저들은) 1952년 선거만 가지고 주로 이야기한다. 그런데, 대다수 국민이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함태영이란 분이,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지냈고 자유당 2인자이던 이범석을 상당히 큰 표 차로 누르고 부통령이 된 게 뭘 의미하는 것이겠나. 이 선거가 얼마나 심한 부정 선거였는지를 단적으로 얘기해주는 거다. 내가 이런 구체적인 걸 얘기하는데도 안 통하더라. (그런 주장을 하는) 정치학자들이 기본적인 자료를 많이 봐가면서 얘기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참 많이 들더라. 방송 같은 데 나와서 그런 주장을 하는 걸 볼 때마다, 그런 걸 많이 느꼈다.

 

프레시안 : 해방 후 농지 개혁은 시대의 대세였다.

 

서중석 : (1948년) 5.10선거에 입후보한 거의 모든 후보가 토지 개혁을 하겠다고 했다. (그걸 공약하는 것이) 제일 쉬운 것 아니겠나. 당시 농민이 많았고 그 농민에게 표를 얻어야 했다. 그러니까 토지 개혁을 하는 건 확실했다. 사실 대한노총(한국노총의 전신)과 쌍생아라고 볼 수 있는 대한독립촉성농민총연맹(대한농총)에서도 '(농민은 1년 수확량의) 25퍼센트를 5년간 지불하면 된다'는 상당히 농민적인 토지 개혁안을 주장했다. 좌파 쪽에서 '무상 몰수, 무상 분배'를 많이 주장하는데, 이것에 맞서려면 자신들도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안을 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대한노총 위원장을 지내는 전진한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조봉암을 초대 내각의 농림부 장관으로 임명한 데는 이 대통령이 한민당을 견제하려는 뜻이 분명히 들어 있었다. 토지 문제로 견제하려는 면도 있지만, 조봉암이 무소속계를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조봉암과 윤석구(체신부 장관)가 무소속계로 입각하는데, 억센 한민당을 누르려 무소속계를 상당히 대우해준 셈이다.

 

문제는 한민당도 토지 개혁을 반대한 게 아니(라는 거)다. 한민당이 만들어질 때부터 '토지 개혁을 언젠가는 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방안이 다른 거였다. 문제의 핵심은 농민적이냐 아니냐, 이거였다. 이 대통령(과 농지 개혁의 관계를 볼 때)도 농민적으로 하려고 했느냐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하려 했느냐, 이걸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농지 개혁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조봉암과 이승만은 어떤 모습을 보였나.

 

서중석 : 조봉암은 전국을 참 열심히 돌면서 농민들에게 얘기를 들었다. 이게 나중에 두 차례에 걸친 대선에서 조봉암이 지지를 받는 제일 큰 힘 중 하나였다. (1948년 11월 시안을 만들고) 1949년 1월 24일 국무회의에 농림부 안을 내놓는데, 농민들이 (1년 수확량의) 20퍼센트씩 6년 동안, 총 120퍼센트를 상환하고 지주한테는 150퍼센트를 보상한다는 아주 농민적인 것이었다. (150퍼센트와 120퍼센트의) 차액(30퍼센트) 계산은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돼 있었다. 대지주 토지는 체감 매상(을 고려하고), 그리고 3년 거치를 한 다음에 (지주에게) 지대증권으로 지불(해 귀속 기업체를 불하받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현물하곤 큰 차이가 난다. 귀속 기업체 매각 문제 같은 것까지 고려한 것이었다.

 

이런 걸 종합적으로 제시했지만, 바로 이 대통령 지시에 의해 일축된다. 그러면서 한민당 쪽과 연결된 감찰위원회에서 농림부 장관 관사 수리비 같은 걸 들고나와서 '조봉암을 처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거 나중에 (1심, 2심, 3심) 모두 무죄 판결 받는다. 한민당 측은 토지 문제가 아니라도 조봉암에 대해 강한 반감을 갖고 있었다. 시쳇말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다.

 

조봉암은 이 일 이전부터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양곡 매입 문제 등에서 여러 가지로 따돌림을 당했다. 그래서 (1949년) 2월 21일에 대통령 권고로 사표를 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를 볼 때 (이승만이) 조봉암을 기용한 의미가 무엇이냐, 이 점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프레시안 : 조봉암이 사임한 후엔 소장파 국회의원들이 농지 개혁안을 놓고 이승만 정부 및 한민당(민국당)에 맞섰다.

 

서중석 : 국회에서 소장파를 중심으로 활발히 논의해 1949년 봄에 '상환액 125퍼센트, 보상액 150퍼센트'로 하는 걸 볼 수 있다. 조봉암 안과 큰 차이가 안 난다. 그런데 이승만 정부 쪽에선 이걸 돌려보내려 하다가, 국회가 폐회 중이라는 이유를 달아서 이게 소멸됐다고 통보했다. 그러자 1949년 6월에 국회에선 즉각 재석 153, 가 97, 부 19라는 압도적 표 차이로 원래 법안을 가결해 버린다. 반민법(을 둘러싼 국회와 이승만의 줄다리기)과 비슷한 거다. 이승만 정권은 (이 법안을) 실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또 실시를 안 한다. 미국 국무부에서 이때 이승만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 그때 국무부 관계자가 이런 얘기를 한다. '이걸 즉각 시행하지 않는 것은 지주 때문이다.'

 

 

▲ 2012년 제헌절에 남산에 있는 자유총연맹 광장(서울시 중구 장충동)에서 이승만 동상 너머로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승만 동상은 본래 1956년 남산에 세워졌으나, 1960년 4월혁명 때 시민들의 손에 철거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자유총연맹은 2011년 남산에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연합뉴스

▲ 2012년 제헌절에 남산에 있는 자유총연맹 광장(서울시 중구 장충동)에서 이승만 동상 너머로 대형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승만 동상은 본래 1956년 남산에 세워졌으나, 1960년 4월혁명 때 시민들의 손에 철거됐다. 이승만 전 대통령을 높게 평가하는 자유총연맹은 2011년 남산에 다시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연합뉴스

 

 

농민 숨통 조인 현물세와 저곡가 정책

 

프레시안 : 농지 개혁이 시행된 시점을 두고도 논란이 많았다.

 

서중석 : 한국전쟁 이전에 시행됐는가, 이걸 갖고도 학계에서 수십 년간 논쟁했다. 도대체가 농지 개혁 실시처럼 자명해 보이는 게 없는 것이 왜 이렇게 제대로 정리가 안 됐느냐, 이것도 예전부터 참 의문이었다. 우리 연구가 실증적인 게 약하다는 점도 작용했고, (그와 별개로 상황 자체가) 애매한 게 많았다. 특히 농지 개혁 관련 자료가 전쟁 때문에 거의 다 없어진 모양이다. 논산 등에 약간 남은 것 빼고는 없는 점도 (이 문제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논쟁이 벌어지는 데) 영향을 준 것 같다.

 

어쨌든 '만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농지 개혁이 불완전하게나마 시행되지 않았으면 북한에서 와서 북한식으로 토지 개혁을 하는 거니까 엄청나게 양상이 달랐을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학자들이 꽤 많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이승만 정부가 농지 개혁을 하게 되느냐.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이 나고 김구가 암살당하면서 아주 힘없는 국회가 되지 않나. 1950년 1월에 이승만 정부에서 개정 법률안을 내세운다. (상환액과 보상액을) 150퍼센트로 통일해 제시한다. 이게 언제부터 시행됐느냐? 그에 대해선 자료가 불확실하다. 그러나 (1950년) 4월부터 일정하게 시행되는 것으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시행된 것이다. (전쟁 전에 농지 개혁 작업을 시작하지 못했다면) 전쟁 때 어떻게 됐겠나.

 

(1980년대까지 농지 개혁에 관한 통설은 '한국전쟁 전 법적 준비 완료, 전쟁 중 본격 실시'였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일부 경제학자와 정치학자 등을 중심으로 '한국전쟁 이전 시행 완료'를 주장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승만의 강력한 의지가 이를 가능하게 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1950년 10월 23일 이승만 전 대통령 본인이 "농지 개혁 법안을 우선 실시해야 될 것"이라고 했다. 첫 단계(분배예정통지서 발급)를 밟던 중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중단된 농지 개혁을 다시 실시하라는 뜻이었다. 이와 더불어 살펴볼 건, 재실시 지시 직전인 1950년 10월 초 이 전 대통령이 농지 개혁을 1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가 한 달도 안 돼 뒤집었다는 연구 결과다. 1년 연기했다면 농지 개혁 자체가 폐기될 위험성이 있었다는 말이다. 이 전 대통령이 농지 개혁 자체를 반대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와 반대로 농민에게 유리한 형태의 농지 개혁을 적극 추진했다고 주장하는 건 무리임을 보여주는 대목 중 하나다. <편집자>)

 

그런데 문제는 또 거기에 있지 않다. 이게 참 한국 역사의 특이한 점인데, (농지 개혁이) 한국전쟁 전에 실질적으로 시행될 수밖에 없는 점이 있었다.

 

프레시안 : 그게 무엇인가.

 

서중석 : 방매(放賣)라는 것이다. 5.10선거에서 다들 토지 개혁을 하겠다고 했고, 국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안건으로 논의되지 않았나. (소장파가 힘을 잃기 전까지) 소장파를 중심으로 국회 분위기가 얼마나 좋았나. 그러니 지주들이 겁이 나서 막 팔아넘기기 시작했다.

 

이것도 장상환 씨가 실증 연구를 했다. 유인호 교수가 1979년에 쓴 논문에도 나오는데, 소작지 144만7000정보(남한 경지의 65퍼센트) 가운데 방매가 이뤄지면서 1949년 6월까지 남은 토지가 83만 정보였다. 이것도 이후에 계속 판다. (농지 개혁법이 시행되기) 그 이전에 실질적으로 거의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 역사의 굉장한 묘미라고 할까, 아주 중요한 것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정의(감) 같은 게 많이 작용한 것이다.

 

프레시안 : 상황이 그러한데도 예전에 '농지 개혁에 문제가 많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서중석 : 그건 (농지 개혁 후에도) 농민이 못살았기 때문이고, 소작농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가. 전쟁이 일어나니까 아주 심한 인플레 때문에도 농민한테 전쟁 부담이 많이 넘어갔다. 다른 데서 전쟁 재정을 염출할 마땅한 방법이 없었던 이 대통령이 제일 손쉬운 농민에게 많이 부담시킨 거다. 대표적인 것이 (임시)토지수득세였다. 수세 등을 빼고 (임시)토지수득세를 상당히 많이 (그것도 현물로) 부담시켰다. 이게 전쟁 비용으로 많이 활용됐다. 심지어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이후에도 없어지지 않았다. (관련 기사 : '제2 새마을운동' 찬가 속 '이등 국민'들의 절규)

 

현물세, 이게 아주 무서운 것이었다. 자유당도 이걸 없애겠다고 선거 때 이야기했다. 농민의 지지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승만 정부 말기까지 없어지지 않았다. 그 이후에 없어졌다. 이승만 정권이 재정 문제를 쉽게 풀고자 농민들에게 부담을 씌운 거다.

 

프레시안 : 저곡가 정책도 농민을 괴롭혔다.

 

서중석 : 그렇다. 그건 박정희 정부도 마찬가지다. 1950년대, 1960년대에 아주 심한 저곡가 정책을 쓴다. 미국에서 PL480호에 의해 얼마나 많은 잉여 농산물을 한국에 주나. 이런 것들이 (농산물 가격을 폭락시켜) 농촌을 아주 곤궁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뿐만 아니라 농민들이 당시에 너무나 가난했다. 봄만 되면 춘궁기라고 해서 산과 들을 헤매는 사람이 내가 어렸을 때 꽤 많았다. 이런 사람들의 상당수가 상환액을 갚지 못했다. 상환액이 많은 게 아님에도 이걸 갚지 못하는 농민이 또 생겨났다. 악순환이었다. 여기에 다른 이유도 가세해 농민들이 또 소작농을 하기 시작했다. ('농지 개혁이 잘못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데에는) 이런 것들이 작용했다.

 

그리고 일부 진보 세력이 주장한 것처럼 북한의 토지 개혁이 정말 농민적인가? 난 이 문제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본다. 토지 개혁은 북한의 지주들이 북한에서 살아가는 걸 굉장히 어렵게 만들었다. 무상 몰수였을 뿐만 아니라 거주지를 바꾸게 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대거 월남을 해버렸다. 북한에 대해 얼마나 강한 적개심을 가졌겠나. 이 사람들이 내려올 때 토지 문서를 많이 가지고 왔다. 북한이 망하면 다시 찾겠다는 것이다. 무서운 거다. 토지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급속한 토지 개혁을 통해) 북한 농민들에게 속 시원한 지지를 받을 수 있어서 북한 정권으로선 좋았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좀 더 크게 전망을 하고 한국의 통일 정부 수립 문제를 생각할 때 이건 문제가 분명히 있었다고 본다.

역사학자 서중석의 진단
▲ "박근혜는 유신의 허깨비가 결코 아니었다"
▲ "박정희 신드롬, 박근혜가 지울 수도 있다"
▲ "<조선> 말대로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빨갱이"

해방 후 교육열과 이승만 정부, 그리고 평준화

 

프레시안 : 다른 문제를 짚었으면 한다. 일각에선 이 전 대통령이 의무 교육을 확대한 공적은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서중석 : 이승만 대통령이 다른 건 다 잘못했어도 교육은 잘한 것 아니냐고 뉴라이트뿐 아니라 다른 일각에서도 주장한다. 전혀 어긋난 것만은 아니다.

 

(그런데) 뉴라이트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펴는 주장 중 하나가 일본이 한국에 상당히 많은 교육을 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방 후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데 일제 때 교육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지 않느냐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데, 이것도 너무 자료를 안 보고 하는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일본 쪽 자료를 제대로 봤느냐 하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어떤 점에서 그러한가.

 

서중석 : 예컨대 일제 때 초등학교 교육이란 걸 한국인이 얼마나 받았나를 보자. 일본은 1911년에 적령 아동의 98.1퍼센트가 받았다. 전 세계에서 제일 높은 수준이었다. 서유럽보다 높았다고 볼 수 있다. 이게 일본이 부국강병을 이루는 데 얼마나 큰 역할을 했겠느냐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때 한국은 1.7퍼센트였다. 3.1운동 때 '배워야 한다'며 열화와 같은 민족적 교육열이 일었는데 이때도 3.9퍼센트(1919년)밖에 안 됐다. 한국인들이 새로 서당, 사립학교를 만들었는데도 1929년 적령 아동이 초등학교를 다니는 비율은 18.6퍼센트로 조선총독부 자료에 나온다. 1930년대 전반까지도 얼마 안 된다. 그러나 일제가 대규모의 새로운 전쟁을 일으키고 한국인을 거기에 대거 끌어들일 필요가 생기는 1930년대 후반 들어 그 비율이 늘어난다. 교육을 못 받은 사람을 어떻게 징용할 수 있겠나. 그래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인 학령 아동의 보통학교 취학률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에 30.8퍼센트, 진주만 기습 이듬해인 1942년에 54.5퍼센트를 기록한다. <편집자>)

 

그런데 일제 시기 전체에 걸쳐 중등 교육은 너무나도 낮은 수준에 있었다. 한국인이 다니는 학교는 이름도 고등보통학교라고 폄하했다. 한국에 와 있던 일본인 숫자가 한국인 전체의 60분의 1이거나 많아봤자 1930년대 이후 30분의 1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중등학교에 다닌 숫자가 1910년대에는 일본인이 더 많았고 1920년대엔 거의 엇비슷하다. 1930년대에 가면 한국인이 조금 더 많기는 하다. 이건 얼마만큼 한국인 교육을 억제했느냐(를 잘 보여준다). 한국인들이 그렇게 교육 기회를 달라고 조선총독부에 요구했는데도 잘 안됐다.

 

고등교육은 더 심했다. 1920년대 전반기에 민립대 기성회도 만들고 하면서 싸웠는데도, 일제 시대 내내 한국엔 단 하나의 대학(경성제국대학)밖에 없었다. 일본도 중국도 그때 얼마나 대학이 많았나. 더욱이 그 경성제국대학조차 뽑는 수가 불과 몇 백 명밖에 안 됐고, 그중 조선인이 들어가는 숫자도 20퍼센트 수준이었다. 그렇게 적게 뽑았다. 얼마만큼 고등교육을 억제했느냐를 단적으로 얘기해준다.

 

프레시안 : 해방 후 교육열이 엄청나게 팽창했다.

 

서중석 : 그렇다. 특히 1950년대, 1960년대에 (교육열이) 강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사회가 굉장히 평준화된 것과 관련 있다. 해방 이전엔 한국인의 무권리 사회였다. 일제가 직접 통치했을 뿐만 아니라 요직을 다 차지하고 중요 경제도 다 장악하면서 한국 양반이 저절로 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해방 직후 엄청난 사회 혁명, 시민 혁명, 정치 혁명이 일어나면서 지주, 부르주아가 꼼짝 못하는 상황이 됐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평준화가 급속히 이뤄졌다. 아까 이야기한 농지 개혁이 뭔가. 그나마 남아 있던 지주들의 힘을 마저 뺏는 것이었다. 전쟁 와중에 머슴을 했던 사람들이 큰소리쳤다는 말이 의미하듯이 세상이 많이 달라지고 평준화가 아주 강해졌다. 전 세계에서 이만큼 평준화가 잘된 나라도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까 교육을 잘 받는 게 더 중요해진 거다.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은 정실 사회적인 측면이 강하다. '얼마나 지역적으로 같은가. 교육 받은 곳이 같은가', 이런 정실이 많이 작용했고 '어쨌든 좋은 대학 나오면 이 사회에서 쉽게 남을 앞지를 수 있다', 이런 게 대두한 것이다. 그러면서 중학교, 고등학교도 1류, 2류가 생겼다. 도시마다 다 그러다시피 했는데 심지어 초등학교조차 1류, 2류가 생기지 않았나.

 

그런 속에서 전쟁 후에 특히 베이비붐이 막 일어나고 하니까 이승만 정부도 초등학교 같은 것을 많이 세울 수밖에 없었다. 예산이 빠듯한데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난 (이승만 정부가 교육에) 그 정도는 기여했다고 본다. 그만큼 큰 교육열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었던 것이지만 하여튼 노력은 좀 한 것이다,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서른한 번째 편도 조만간 발행됩니다.

페이스북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미투데이 보내기 요즘 보내기 C로그 보내기 구글 북마크

 김덕련 기자,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윤여준.이상돈.이철희 토크쇼..."박근혜? 박정희 정권이다"

윤여준 "안철수 거짓말, 농담이었다"

[현장] 윤여준.이상돈.이철희 토크쇼..."박근혜? 박정희 정권이다"

14.03.08 20:34l최종 업데이트 14.03.08 20:34l

 

 

기사 관련 사진
▲ 생각에 잠긴 윤여준 공동위원장 윤여준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이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정치연합 당사에서 경기도지사 출마선언을한 김상곤 전 경기도 교육감이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과 면담을 시작하자 회의실에서 나와 생각에 잠겨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농담이었다. 내가 농담 잘 하지 않나. 일단 좀 지켜볼것이다. 아직 창당 준비 중이지 않나. 향후 거취는 창당과정에서 민주당의 진정성을 지켜본 뒤에 결정할 것이다."

'안철수 거짓말' 발언으로 정가를 긴장시킨 윤여준 새정치연합 공동운영위원장단 의장이 8일 오후 한 정치토크쇼에 참석해 "그냥 농담한 것"이라며 "일단 좀 지켜볼 것이다. 아직 창당이 준비 중이지 않나"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도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2014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한국여성대회에 참석해 "조금 과장된 것 같다"고 일축했다. 안위원장은 "지금도 (윤 의장과) 말씀을 나누고 있다"며 "윤 의장님의 말씀을 한번 또 들어보시자"고 말했다. 

앞서 윤 의장은 전날 몇몇 기자들과 만나 안 의원이 민주당과 전격 통합선언을 한 데 대해 강한 배신감을 토로하면서 "이 자(안 위원장)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다"며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 아카데미상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의장은 "이거(창당 방식)만 결정되면 떠난다. 싱가포르로 놀러 갈 생각"이라며 안 위원장과의 결별을 시사하기도 했다.

정치권에 윤 의장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안철수-윤여준 결별설'이 나돌자, 두 사람은 창당 전 불필요한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한 듯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전날 발언에 이어 8일 오후에 열린 정치토크쇼에서 윤 의장이 한 발 더 나간 발언을 하지 않겠냐는 전망도 나왔지만 윤 의장은 발언에 상당히 신중을 기하는 태도를 보였다. 

박근혜정권 1년 '기대 이하'

윤여준 새정치연합 의장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등 진보·보수를 대표하는 논객들이 모여 대한민국 대통령들에 대한 날선 비판을 내놓았다. 여기에는 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도 포함됐다. 이들은 8일 오후 서울시청 대강당에서 정치토크쇼 '당신들보다'를 열고, 박근혜 정권 1년에 대해 '기대 이하'라고 평했다. 

세 명이 공저한 <누가 해도 당신들보다 낫겠다> 출간기념으로 마련된 이번 토크쇼는 이철희 연구소장의 진행으로 약 2시간 동안 계속됐다. 
 
기사 관련 사진
▲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왼쪽)와 윤여준 새정치연합 의장(가운데),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등은 8일 오후 서울시청 대강당에서 정치토크쇼 '당신들보다'를 열고, 박근혜 정권 1년에 대해 '기대 이하'라고 평했다.
ⓒ 유성애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대통령, 국민을 '동원' 대상으로 보는 시대착오적 리더십"

이상돈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캠프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을 맡는 등 박근혜 정권 창출 '1등 공신'으로 뽑힌다. 그런 그도 토크쇼에서는 "대선 캠프에서는 난상토론을 벌이는 등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에, (박 대통령이) 지금 같은 리더십을 보이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크게 보면 아직도 우리는 박정희 정권을 살고 있다"면서, "박 대통령이 인혁당 사건 등 부친의 어두운 부분을 털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이제라도 후보시절 약속했던 쌍용차 국정조사를 실시하고 MBC 해직기자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정희 정권의 과오를 인정하고 현재진행형인 문제를 살피는 것이 국정 지지도를 높일 방법이라는 설명이었다.

윤여준 새정치연합 의장도 "박정희 모델이 아직도 있는 건 맞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 "철저히 권위주의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박 대통령은 국민을 '동의'를 구할 대상이 아니라 '동원'할 대상으로 보고, 국가만 따르라며 '대추종'을 요구하고 있다"며 "부친이 남긴 숙제는 민주주의의 심화·발전인데도 박 대통령은 오히려 거꾸로 돌아가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새정치연합 신당 창당 놓고 의견 갈려

이들은 그러나 약 세 달 앞으로 다가온 6·4 지방선거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특히 지난 주 민주당과 신당 창당에 합의한 안철수 새정치연합 중앙운영위원장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다. 이 교수는 "소위 '안철수 약발'은 떨어져가고 있다"고 한 반면 윤 의장은 "선거는 변수가 많기 때문에 아직 결과는 모른다", 지금도 바뀌어가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이 교수는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에게 있어 자칫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도 있다며 "민주당에서 안 의원이 무엇을 하겠나, 선거는 결과로 얘기하는 거라 지면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당을 만들어놓고 기초의원도 안 내겠다는데 그러면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안 의원에 대해 "현실정치를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에 윤 의장은 "자꾸 현실을 거론하시는데 이게 대통령 선거도 아니지 않냐"며 반대 뜻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정치인을 못 내도 (합당이 아니라) 끝까지 갔다면, 정당투표를 통해 정치적 자산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합당 결정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를 바탕으로 다가올 총선을 준비했다면 한국 정치를 바꾸는 단초가 될 수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이철희 연구소장은 "흔히들 '꼴통보수'와 '깡통진보'가 있다고들 말하는데 저는 둘 다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가올 2017년 대선은 누가 더 진정으로 변화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며 토크쇼를 마무리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한국 노년층 자살 최근 4배 증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4/03/09 11:57
  • 수정일
    2014/03/09 11:5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미 국방부 “북한 화성 13호 미국 본토 타격 가능”

미 국방부 보고서, 북 장성택 처형에도 내부 변화 없는 것으로 판단…
 
김원식 재미언론인 
기사입력: 2014/03/09 [00:23]  최종편집: ⓒ 자주민보
 
 
 

 

미국 국방부가 최근 실전 배치된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화성 13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성공적으로 개발되었다면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또한, "최근 북한 장성택 숙청과 처형이 북한의 국방 정책이나 내부 안정에는 큰 변화를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 5일(미국 현지시각), 미 의회에 제출한 '북한의 군사안보 동향'이라는 제목의 연례 보고서를 통해 "(북한) 김정은이 지난해 12월 그의 강력한 고모부였던 장성택을 숙청하고 처형하기로 한 결정은 가까운 장래에 국방 정책과 (북한) 내부 안정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 같지 않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이 보고서에서 "장성택은 4성 장군이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었지만 군에 대한 실질적인 통제력은 거의 없었다"면서도 하지만 "그의 부재는 경제면에 있어서 영향을 줄 것이다, 그는 (특히) 중국과의 외화나 투자 유치에 관해 여러 고위급 주도권을 맡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 미 국방부 보고서에 실린 '장성택 숙청' 관련 부분 
 

 

이어 "장성택은 김정은에 대해 다소 실용적인 (조언을 하는) 참모(adviser)로 여겨졌지만, 2013년에는 2012년에 비해 공식 석상 등장 횟수가 50%나 떨어지는 등 2013년부터 영향력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미 국방부는 "그의 아버지(김정일) 시대부터 노동당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선임(senior) 관료(장성택)를 제거했다는 것은 김정은의 권력 확립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러한) 갑작스럽고 잔인한 숙청은 파벌 형성이나 김정은에 대한 강력한 도전을 용납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체제 엘리트 계층에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 지도자들, 핵 프로그램을 생존·주권 위한 억제능력으로 파악"

 

한편, 미 국방부는 보고서에서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은 정치적인 강제력(coercion)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북한 지도자들은 국제사회와의 관계 정상화는 배제하고 이러한 프로그램을 (자신들의) 생존과 주권 그리고 타당성 등의 목적에 본질적으로 필요한 신뢰할 수 있는 억제 능력으로 보고 있으며 강력한 군사적 위협과 행동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한 "북한은 여전히 중요한 외교적 경제적 후원자인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나 핵 프로그램을 강압적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것에 대해 중국이 불만이나 화를 내는 것을 (북한은) 인식하고 있지만, 북한 체제는 중국이 지역 안정에 최우선으로 이해를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북한을 심각하게 제재하거나 외교·경제적인 관계를 단절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 보고서에 실린 '북한 탄도미사일 능력' 도표 
 

 

이 보고서는 또한, 종류별로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수준과 역량에 관해 구체적인 평가를 적시했다. 특히, "북한은 화성 13호(KN-08)로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2012년과 2013년에 군사 퍼레이드를 실시했다"며 "만약 성공적으로 디자인되고 개발된 것이라면 이는 미국 대륙의 많은 부분에 도달할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작동 시 결점과 디자인을 수정하는 등 여러 번의 발사 테스트를 요구하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라며 "화성 13호는 비행 시험을 하지 않은 관계로 무기 시스템으로서의 현재의 신뢰성은 낮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보고서는 이 밖에도 북한의 휴대전화 가입 상황 등과 관련해 "북한의 3G 네트워크 회사인 '고려링크'의 가입자 수가 2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어 "가입자가 점점 작은 도시나 시골로 확대되기 시작하고는 있지만, 휴대폰 사용자는 주로 평양의 고위 관료와 그들의 가족으로 이뤄져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부분의 휴대폰은 북한 당국이 인터넷 사용을 금지하고 있어서 국내 전화로만 사용된다"며 "(하지만) 세계의 인터넷(WWW)과는 분리된 자체 국내 인트라넷(intranet)에는 접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인트라넷은 (북한) 정부가 승인한 <조선중앙통신>이나 북한 선전 매체인 '우리민족끼리' 등의 누리집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1&table=newyork&uid=57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윤여준 “안철수 이 자가 얼마나 거짓말했는지 알아야겠다”

심혜리 기자 grace@kyunghyang.com

 

                                                                                                                       입력 : 2014-03-08 06:00:02수정 : 2014-03-08 09:53:28

ㆍ경향신문 인터뷰서 격정 토로

새정치연합 윤여준 의장(75·사진)이 민주당과 통합신당 창당을 전격 합의한 안철수 의원에 대해 강한 배신감을 보였다. 윤 의장은 안 의원이 공식라인인 공동위원장들을 배제한 채 주변의 소수 측근들과 통합 논의를 해온 것으로 추측했다.

윤 의장은 7일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이 자(안철수 의원)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아야겠다”고 원색적으로 얘기했다. 가슴에 쌓인 울화가 많은 듯했다.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 “아카데미상을 줘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몇 시간 만에 통합합의 안 믿겨… 창당 방식만 결정되면 떠날 것”
“안철수,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 아카데미상을 줘야 한다” 비판

 

 

-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의 통합신당 합의를 사전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나.“이해가 안된다. 그동안 내가 모르는 무슨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밤에 앉아 몇 시간 만에 그렇게 합의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동안 얘기가 쭉 진행돼왔거나 신당 창당 논의의 프로세스가 있었을 것이다.”

- 밀실 논의가 있었다는 얘기인가.

“내가 왜 여기에(통합 논의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관심이 있느냐면, 이게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알아야 이 자(안 의원)가 나한테 얼마나 거짓말을 했는지 알 수 있다.”

- 김한길 대표와 둘이서만 얘기를 나눠온 것 아닌가.

“아닐 거다. 그랬을 리가 없다. 일이 그렇게 안된다. 하아(한숨), 나한테 그렇게 수도 없이 새 정치를 다짐하더니… 연기력이 많이 늘었다. 아카데미상을 줘야 한다.”

- 새정치연합의 창당 작업 잘 진행되고 있나.

“창당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부족하니까 이제 막 실행위원들을 집어넣는 모양이던데. 당초에 만들었던 실행위원들이 형편없는 놈들이 많다고 해서 안 의원이 화내고 배제하고 그랬는데. 그 사람들을 다시 다 집어넣어서 시·도당 발기인을 만들고 있다.” 

- 내부 주요 인사들이 떠나고 있는데.

“이태규 새정치기획팀장 가버렸지, 윤석규 전략기획팀장 떠났지, 실무책임자였던 김성식 실무단장 갔지. 가장 중요한 소프트웨어가 다 떠났다. 당장 창당 협상 작업을 해야 하는데 페이퍼 하나 만들 사람이 없다. 아, 정말 뭐. 내가 실무를 할 수도 없고….”

- 윤 의장도 떠날 생각인가.
 

“(안 의원 본인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그러고 남보고 약속 안 지킨다고 그런다. 이거(창당 방식)만 결정되면 떠난다.싱가포르로 놀러 갈 생각이다. 내가 창당 때까지 쭈그리고 앉아 있을 이유가 뭐 있나. 멋쩍게 창당대회에 앉아 있으라고?”

윤 의장은 통합 선언 이후 새정치연합 공동위원장 회의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혼자 휴대전화만 만지작거린다고 한다. 사실상 태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정수기 뺨치는 나무, 대장균 99% 제거

조홍섭 2014. 03. 07
조회수 5423 추천수 0
 

해마다 160만 수인성 질병 사망하는 개도국…값싸고 안전한 정수 기대

MIT 연구진 고안, 나뭇가지 그대로 정수기 활용…생나무만 효과 한계

 

zy6.jpg» 스트로브잣나무 헛물관 벽에 있는 여과막에 붙잡힌 세균(초록색 입자)의 주사현미경 사진. 사진=이 등 <플로스 원> 

 

깨끗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고 기초적인 하수처리를 하지 못해 생기는 설사병 탓에 해마다 세계에서 사망하는 사람은 무려 160만명에 이른다고 세계보건기구(WHO)는 밝힌다. 이들의 90%는 5살 이하의 어린이이며 거의 개발도상국에 산다.
 

따라서 안전한 식수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일은 개도국에서는 최우선 과제의 하나이다. 무엇보다 우선 필요한 것은 각종 감염병을 일으키는 세균, 바이러스, 원생동물 등을 제거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염소나 자외선 소독, 끓이기, 모래나 여과 막을 이용한 정수 방법이 제안돼 있지만 비용이 많이 들거나 유지관리가 힘든 어려움이 있었다. 가난한 주민들이 자기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로 쉽게 만들고, 별다른 유지관리 기술이 필요 없으면서도 친환경적인 정수 방법은 없을까.
 

zy1.jpg» 나무 정수기의 얼개. 왼쪽은 속씨식물 오른쪽은 겉씨식물이다. 물(푸른 선)은 물관 또는 헛물관 벽에 난 작은 구멍을 통과하면서 그곳의 여과막에서 세균이 걸러진다. 그림=이 등 <플로스 원>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연구진이 이런 요건을 갖춘 적정기술을 내놓았다. 이정호 이 대학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생 등 연구진은 최근 온라인 공개학술지 <플로스 원>에 실린 논문을 통해 ‘나무 정수기’가 세균을 거의 완벽하게 제거하는 등 뛰어난 정수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이 주목한 것은 나무였다. 나무가 뿌리에서 가지로 물을 빨아올리는 것에서 값싸고 효율적인 정수기의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미국의 세쿼이어 거목은 키가 112m이다. 이보다 큰 나무가 없는 이유는 더는 물을 빨아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란 설명이 정설이다.
 

나뭇잎에서 증산작용을 할 때 수증기를 내보내면서 생기는 마이너스의 압력이 뿌리가 물을 흡수하는 원동력이다. 뿌리에서 잎으로 물을 전달하는 곳은 나무껍질 바로 밑의 옅은 색의 무른 목질부(변재)이다.
 

변재에는 기다란 죽은 세포가 죽 이어진 물관 또는 헛물관이 분포하는데, 이들이 파이프라인처럼 물을 운반한다. 연구에 참여한 로히트 카르니크 교수는 미국 전국 공공 라디오(NPR)와의 인터뷰에서 나무의 물관에서 정수기를 떠올린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무에 가장 중요한 건 물관에 공기방울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겁니다. 만일 기포가 관을 막는다면 뿌리의 물은 잎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맙니다. 그래서 기포를 제거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물관 옆에 나 있는 작은 구멍과 그곳의 여과막이 그런 구실을 합니다.

 

나무의 물관에는 애초에 정수기 여과막이 설치돼 있으니 그것을 통째로 정수장치로 이용한다면 여과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나무는 물관에 나 있는 나노(10억분의 1m) 크기의 구멍이 막히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물을 통과시키는 해결책을 진화과정에서 이미 마련해 둔 터이다.
 

zy2.jpg» 스트로브잣나무 헛물관의 단면과 길이 모습. 사진=이 등 <플로스 원>

 

zy3.jpg» 여과가 이뤄지는 헛물관 벽의 작은 구멍. 사진=이 등 <플로스 원>  

 

연구진은 북아메리카에서 자라는 소나무의 일종인 스트로브잣나무를 재료로 써 실험을 했다. 이 나무의 헛물관 벽에 난 작은 구멍은 수 나노~500나노m 크기여서 미생물을 거르기에 적당했다.
 

실험방법은 중학교 과학실험처럼 단순했다. 나뭇가지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껍질을 벗긴 뒤 플라스틱 튜브에 꽂았다. 빈틈은 접착제로 메웠다.
 

그런 다음 통 위에 약간의 압력을 가하면서 물을 부었다. 압력에 밀린 물이 나뭇가지를 통과했다. 물감을 푼 물을 넣었더니 2~3㎜를 지나지 못하고 모두 걸러졌다. 세균으로 한 실험에서는 99.9%가 제거됐다.
 

pinefilter.jpg» 헛물관 벽의 구멍에 난 여과막에 걸러진 세균(초록색 입자)의 모습. 사진=이 등 <플로스 원>

 

정수기로서 가능성이 있으려면 쓸 만한 유량이 걸러져야 한다. 실험에서는 약 4㎝ 폭의 나뭇가지를 필터로 썼을 때 하루에 4ℓ의 물을 정수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한 사람이 쓰기에 충분한 양이다.
 

연구진은 실용적으로는 면적 10㎠, 두께 0.5㎝의 나무 필터 200개를 1ℓ 들이 통에 채운 뒤 0.7~3.5m 높이에 매달아 필요한 압력을 가하면 된다고 제안했다. 단, 필터용 나무는 매주 갈아줘야 하지만 장치는 몇 년은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논문에서 밝혔다.

 

zy4.jpg» 나무 정수기를 만드는 방법. 그림=이 등 <플로스 원>
 

이 ‘나무 정수기’의 한계는 생나무만 정수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마른 나무를 쓰면 물관의 막이 망가져 전혀 정수효과를 내지 않는다. 연구진은 “편리한 마른 나무로도 여과를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다음 연구 과제”라고 밝혔다.
 

재료로 쓴 스트로브잣나무를 해당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로 대체하는 연구도 필요하다. 겉씨식물은 속씨식물보다 물관 속 구멍이 많아 정수 효율이 높은 반면 속씨식물은 물관 내 구멍이 더 작아 아주 작은 바이러스를 제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Boutilier MSH, Lee J, Chambers V, Venkatesh V, Karnik R (2014) Water Filtration Using Plant Xylem. PLoS ONE 9(2): e89934. doi:10.1371/journal.pone.0089934

 

조홍섭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반북적이고 정략적인 그리하여 반통일적인

<분석과전망> 박근혜의 통일드라이브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한성 
기사입력: 2014/03/08 [00:42]  최종편집: ⓒ 자주민보
 
 


1.화려하게 구사되는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

박근혜정부가 구사하고 있는 통일드라이브의 양상이 대단히 화려하다. 이번에는 많은 사람들의 눈이 3월 3일 제5회 아시안 리더쉽 컨퍼런스가 열리는 신라호텔로 쏠렸다. 

“북한이 핵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국제사회의 신뢰를 채워나가고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면, 남북한 모두가 행복한 통일시대를 열어갈 수 있을 것”

박근혜 대통령이 아시안 리더쉽 컨퍼런스에서 한 인사말의 한 구절이다. 한반도 통일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단순한 분단 상태의 극복을 넘어 한반도와 동북아 그리고 세계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게 되는 것”이라는 규정까지 내놨다. 

1월 6일 박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에서부터 시작된 통일드라이브였다. 뭇 사람들의 관심을 촉발시켰던 통일대박론은 2월 말 이산가족 상봉과 결부되면서 보다 대중적인 호응을 끌어냈다.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는 더 이어졌다. 2월 25일 취임1주년 기념행사에서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 발족을 선언하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했다. 박근혜정부의 통일에 대한 화두가 단순히 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을 확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였다. 

박 대통령의 통일에 대한 강조는 외교부 장관 그리고 통일부 장관에게로 그대로 전이되었다. 아시안 리더쉽 컨퍼런스에서 만찬사를 한 윤병세 외교장관은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이 분단의 유산을 또 다른 세대에 물려주지 않고자 한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가 검증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함께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라고 밝히면서였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통일에 대한 강조는 같은 날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통일부 45주년 기념식에서 나왔다. 류 장관은 “대통령께서 화두를 아주 세게 던졌다”며 “그런 화두가 단순히 대통령만 갖고 있는 화두가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그동안 못 봤거나 보지 않으려 했거나 외면했던 것들이 우리 사회 저변에 흐르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그 흐름을 정교하게 전략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통일부의 몫이라면서 한 말이다. 

박대통령이 앞장을 서고 그 뒤에 외교.통일부 장관들이 나서서 ‘통일 대박론’을 띄우며, 통일준비위원회 발족 등 발 빠른 행보에 나서고 있는 데에서 사람들이 확인하게 되는 것은 통일에 대해 박대통령이 갖고 있는 강한 의지였다.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여기저기에서 제기되는 것은 따라서 통일드라이브가 일으키고 있는 파고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2.박근혜정부의 반북적이고 정략적인 통일드라이브는 반통일적인 것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는 두 가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가 반북적인 기조 하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박대통령의 통일구상은 북핵 폐기를 전제로 하고 있다. ‘통일대박론’을 주창했던 올 신년기자회견과 ‘통일준비위원회’ 발족을 천명했던 취임 1주년 기념행사 그리고 아시안 리더쉽 컨퍼런스에서 인사말 등에는 북핵 폐기가 단골 메뉴처럼 등장한다.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의 본질적 성격과 관련하여 박대통령이 북핵폐기를 언급하는 것만큼 중요한 대목은 없다. 

북핵은 본질에 있어서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다. 북의 주장에 따르면 북미간의 문제이다. 북을 핵으로 위협하려는 것에 맞서서 핵으로 자위권을 확보하겠다는 논리를 북은 내세우고 있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접근을 해도 북핵문제는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다.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6자회담이 구성되어 전 세계적인 의제가 되었던 것도 현 시기 6자회담 당사국들이 6자회담을 재개하려는 갖은 노력을 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를 정확히 반영해준다. 

북핵 폐기를 통일문제와 무조건적이고 직접적으로 연동시키고 있는 박대통령의 인식이 자칫 비현실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치경제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등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나라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 그리고 세계의 새로운 질서에서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은 둘 다 핵강국이다. 그리고 군국주의화의 속도를 날로 높여가고 있는 일본 또한 높은 핵실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열강들 속에 자리하고 있다고 하는 것 그리고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 등을 중심으로 접근하게 되면 핵에 대한 관점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북핵 폐기 문제와 통일문제를 직접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연동시키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로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무조건적인 북핵 폐기를 바라는 미국의 요구에 우리정부가 충실할 때 뿐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역시 통일과 관련해서 반북적인 입장과 태도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아시안 리더쉽 컨퍼런스 만찬사에서 윤 장관은 “북한의 변화야말로 실질적인 평화 정착의 핵심”이라며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변화를 유도해 내기 위해 국제사회와 긴밀히 협조해 나갈 것이며, 그 과정에서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대북 인도적 지원도 꾸준히 시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북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데에서 확인되듯이 윤장관의 반북 기조는 극히 노골적인 수준으로까지 올라가 있다. 

박대통령에서 장관들에 이르기까지 통일을 강조하면서 반북을 기조로 삼는 것은 통일의 상대인 북에 대한 공격적인 입장에 다름 아니다. 이는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가 반북적 통일드라이브라는 것을 보여준다.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가 어떤 배경이나 정치적 의도에서 나오고 있는지에 대해 추론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크게 세 가지 정도로 대별된다. 

당장에는, 지난 대선과 관련해 관권부정선거 의혹 등으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정략이라는 것이 그 하나이다. 아직까지도 전국 곳곳에서는 <국정원 시국회의>가 주도하는 촛불투쟁이 여전히 힘 있게 진행되고 있다. 

또 하나는 6.4지방선거 승리를 도모하기 위해서 벌이는 선거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 복지담론을 선점해 많은 정치적 이익을 가져갔던 것과 같은 차원에서 민주.진보 진영의 어젠다인 통일담론에 대한 선점기도라는 것이다. 

보수정권이 장기집권 프로젝트를 치밀하게 가동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반북을 기조로 해서 정권을 연명해왔던 분단정권이 정세흐름을 타서는 통일을 화두로 삼아 정권연장을 기한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가 반북적인 통일드라이브에서 더 나아가 정략적인 통일드라이브라는 것을 보여준다. 

박대통령의 통일드라이브가 전반적으로 통일문제를 반북적이고 정략적으로 접근한데 기초하여 만들어지고 구사되고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으로 된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가 극히 반북적이고 정략적이라고 해서 반통일적이기까지 할 것인가? 

조국통일원칙에서 그 답을 찾아야한다. 조국통일원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개인이 만들어낸 것 또한 아니었다. 오랫동안 조국을 통일하려는 지난한 노력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것은 오직 민족이 실천과 지혜에 기초하여 만들어낸 것이었다. 1972년 7월 4일 남과 북이 합의한 7.4남북공동성명을 통해 수립하고 천명한 조국통일원칙이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 그것이다. 박근혜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에 적시되어있는 내용이다. 박근혜정부의 반북적이고 정략적인 통일드라이브를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틀이 이 조국통일원칙이다. 

박근혜정부의 반북적이고 정략적인 통일드라이브는 권력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점에서 민족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민족대단결의 원칙과 정면에서 충돌한다. 

결국, 박근혜정부의 반북적이고 정략적인 통일드라이브는 반통일적인 것이다. 

  

3. 박근혜정부의 반북적이고 정략적인 통일드라이브는 통일적인 행보로 전환될 수 있을 것

박근혜정부의 반북적이고 정략적인 통일드라이브가 반통일적인 것이라는 것은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조국통일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천착하고 결정적으로는 정세를 고려하면 실천적으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이 결론이다. 

과거, 북은 박정희 정부와 통일을 위해서 합작을 했었다. 북이 ‘파쇼정권’이라고 규정했던 박정희 정부였었다. 그때 7.4남북공동성명이 나왔다. 5.18광주항쟁과 결부하여 살인마정권이라고 규정했던 노태우 정부와도 합작을 해서는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상호 간에 정권의 성격이 어떻든 상관없이 민족문제 통일문제는 다 대상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이만큼이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북미대결전의 현주소와 관련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해야하는 현상이 하나 있다. 북이 미국의 한미연합군사훈련인 ‘키 리졸브’ 훈련이 벌어지는 와중에 우리정부와 함께 이산가족상봉사업을 진행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고 말았지만 미국의 군사훈련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사실, 획기적인 사건이다. 북은 이때껏 한미군사훈련 기간에는 일체의 대남 접촉을 하지 않았다. 미국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우리정부에 대해서도 비난의 강도를 한껏 높이면서 단절을 쳤던 것이다. 일종의 관례처럼 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북은 이번에 그걸 깼다. 미국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도 높은 비난의 날을 들이댔지만 우리정부에 대해서는 비난을 거두어 들이고 대신 이산가족상봉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는 데에 힘을 넣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면 자신감의 표현으로 평가될 만 했다. 당장의 현안과 결부시켜보게 되면 남북관계를 어떻게 해서든지 개선시키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것이 다 일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전에 남북 간의 수많은 합의문들이 종이쪼가리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 북미대결전의 격화와 밀접하고 직접적인 관련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곳이 북이다. 북이 남북개선사업에 그 어느 때보다도 힘을 넣는 것은 따라서 남북관계를 규정짓는 결정적 측면인 북미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반증으로 된다. 

현 시기에 내다보이는 북미관계의 긍정적인 전망이란 북미대결전이 종식국면으로 진입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북미대결전 관련 전문가들이 북미대결전이 종식국면에 빠른 속도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 시작한 것은 북이 핵경제병진노선을 국가발전전략으로 정립한 2013년부터였다. 

북이 사실상 핵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은 북이 말하는 미국의 핵침략에 대한 자위권을 갖게 된다는 것을 뛰어넘어 국제정치적으로 사변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 ‘핵 확산 위협’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북이 쥐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 구체적으로는 핵을 통해 세계패권을 유지하고 반미국가들을 통제해왔던 미국의 패권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문제인 것이다. 결국 북의 핵경제병진노선은 북미대결전을 종식국면으로 진입시키는 사실상 동력이 되는 것이다. 

북미대결전이 종식국면으로 진입하는 과정은 북미관계에서의 힘의 관계가 획기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동반하게 된다. 북미간의 역관계 변화는 한미관계 나아가서 남북관계의 역관계까지 변동시키게 된다. 그리고 3자 사이의 역관계 변화는 종국적으로 통일문제와 결부되게 된다. 72년 수립된 조국통일원칙은 애초에 북미관계 한미관계 그리고 남북관계에서 역관계 변화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북미 간 한미 간 그리고 남북 간의 역 관계가 계통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원칙은 제대로 작동되지도 관철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가 구사되는 시기가 북미대결전이 팽팽하게 전개되는 시기가 아니라 종식국면으로 진입하는 무렵이라는 것은 따라서 매우 각별한 의미를 띠게 된다. 북미 한미 남북 사이의 역관계가 변화함에 따라 조국통일원칙이 규정성을 갖고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에 작동하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조국통일원칙이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에 규정성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에 섞여있는 반북성과 정략성을 통일지향성으로 전변시켜내는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정부는 이미 강조하고 있듯이 남북관계개선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것이면 된다. 어떤 의도에서 나왔는지도 상관이 없다.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는 이후에 계속 수 많은 내용을 생산해내게 될 것이다. 예컨대 DMZ 평화공원이 있다. 유라시아 철도연결 사업도 있다. 9월에는 인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북에서 대규모 선수단이 오게 될 것이고 이를 박근혜정부는 민족적 축제를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이를 전후로 자연스럽게 부각될 수 있는 것이 정상회담일 것이다. 

위에서도 확인했듯이 우리민족의 통일과 관련되어 형성되어있는 객관적 정치지형은 통일문제에 있어서 남북관계개선을 제외한 나머지 문제는 북미대결전에 따라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자주통일진영의 임무 및 역할과 직접적으로 결부되어져야하는 것이다. 

예컨대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에 섞여 있는 반북적이고 정략적인 요소들이 통일적인 행보로 변화발전되자면 북미대결전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자주통일진영 또한 결정적으로 역할을 하게 될 것인 것이다. 현 시기, 자주통일진영에서 정세발전을 예견하면서 보다 대중적이고 보다 위력적인 자주통일운동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 북미대결전의 발전 그리고 박근혜정부의 통일드라이브만큼이나 주목받는 이유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내가 쓰지 않았다, 조선족 김씨가 썼다"

'법정에 제출된 증인 진술서도 조작' 증언

[인터뷰] 검찰이 진술서 제출하고 증인 신청했던 조선족 L씨14.03.08 01:49l최종 업데이트 14.03.08 02:06l이병한(han) 박소희(sost) 

기사 관련 사진
▲  중국동포 L씨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국정원 협조자 김아무개씨를 만났을 당시 작성된 진술서. 중국에서 출입경업무를 약 5년 정도 했던 L씨는 지난해 12월 18일 '검찰친구' 세 명과 함께 나온 김씨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해줬지만 김씨가 대신 작성한 진술서는 전혀 다르게 쓰여있었다. L씨는 7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소학교(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던 김씨를 믿고 내용은 확인하지 않은 채 지장까지 찍어줬다"고 했다.
ⓒ 오마이뉴스

관련사진보기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중요 증인의 진술서도 조작됐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진술서는 간첩 혐의로 재판을 받는 유우성씨 변호인 측의 주장을 탄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진술서의 작성자로서 날인을 한 중국동포 L씨는 "진술서는 내가 쓰지 않았고, 내용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특히 이 진술서 조작에도 이미 중국 공문서를 조작하는데 관여해 검찰 조사를 받은 직후 자살을 시도한 조선족 김아무개(61)씨가 깊숙이 개입돼 있었다.

이에 따라 이번 사건에서 조작으로 판명됐거나 의혹이 제기된 문서는 유우성씨의 중국-북한 출입경기록(출-입-출-입 기록 문서) 관련 공문서 3개에 더해 증인 진술서까지 모두 4개로 늘어났다. 처음에 제출된 중국-북한 출입경 기록의 조작 사실을 감추기 위해 연이어 조작이 벌어진 형국이다.

<오마이뉴스>는 7일 오후 이번 사건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채택된 중국동포 L씨와 약 1시간 전화로 인터뷰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열린 유우성씨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지만 나오지 않은 인물이다. 검찰은 아직 그에 대한 증인 신청을 철회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그는 "내가 증인으로 채택됐는지도, 그날(2월 28일) 재판이 열렸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재판부에 제출된 진술서 내용 부정하는 증인

L씨가 법정에 증인으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검찰은 이미 지난 1월 3일 그가 자필로 쓴 진술서라며 재판부에 제출한 상태다. 펜을 사용해 중국어로 적은 4페이지짜리 진술서에는 그의 지장까지 찍혀있다. 하지만 그는 "이 진술서는 내가 쓰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문제의 진술서에 대해 조선족 김씨가 쓴 것이고, 그를 믿고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 지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어찌 된 일일까?

유우성씨가 2006년 5월 사용한 중국-북한 통행증은 '을종'이었다. 변호인 측은 여러 번 왕래가 가능한 '갑종'과 달리 '을종' 통행증은 발급일로부터 30일 이내에 1회만 출입이 가능하다는 중국 싼허(삼합)변방검사참 명의의 '정황설명서'(2013년 11월 26일자)를 근거로 두 차례 중국과 북한을 오갔다는 검찰 측 문서(출-입-출-입)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유씨가 두 번째 북한을 방문했을 때 보위부에 포섭돼 간첩이 됐다고 주장해온 검찰은 출-입-출-입 문서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L씨의 진술서를 제출했다. 핵심은 '을종'은 원칙적으로 한번만 오갈 수 있지만, 중국 변방대대를 직접 방문해 현장에서 요청하면 여러 번 왕래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족인 L씨는 약 5년간 중국 길림성 집안시 변방검사참에서 검사원으로 일했기 때문에 중국 출입경 업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진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변방검사창에서는 '을'종도 유효기간 내 여러 번 왕복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합니다. '갑'종 통행증을 발급받으려면 매우 어렵기 때문에, 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을'종 통행증을 선호합니다. 왜냐하면 '을'종 통행증은 발급 받기가 매우 쉽고, 역시 여러 번 왕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L씨 진술서 한글 번역본)

또 진술서에는 "출입경 기록은 오류나 누락이 발생할 수는 있으나 출입국 상황이 없는 기록이 생성될 수는 없다"며 출-입-출-입으로 기록된 검찰 측 문서를 지지하는 발언도 적혀있다.

하지만 L씨는 인터뷰에서 전혀 다르게 이야기했다. 그의 말은 오히려 변호인 측의 주장과 일치했다. 그는 "을종 통행증은 한 번밖에 출입할 수 없다, 한번이고 한달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또 그는 "'출입경 상황이 없는 기록이 생성될 수 없다'는 진술서 내용대로 말한 적도 없다"며 "그냥 '기록이 잘못 쓰일 수도 있다'고만 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조선족 김씨)을 믿고 내용도 안 본 채 지장 찍었다"

L씨는 진술서를 쓴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자살을 시도했던 조선족 김씨라고 말했다. 유우성씨와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그는 김씨는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김씨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김씨는 소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는 "(김씨는) 나중에 학교 교장선생님도 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한동네에 같이 살았고, 한국으로 들어오기 위해 시험을 볼 때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한국에 들어온 이후 한동안 왕래가 없다가 지난해 12월 김씨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12월 18일 만났을 때 김씨가 중국 출입경 업무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했고, 위에서 밝힌대로 설명하자 한글로 진술서를 써달라고 했다. 하지만 한글에 서툰 L씨가 힘들어하자 김씨가 '그럼 내가 쓸게'라며 쓰기 시작했고, 김씨 역시 서툴기는 마찬가지여서 결국 중국어로 다시 썼다. 그는 이 문서에 지장을 찍었다고 말했다. '내용을 확인해보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안 봤다, 그냥 '선생님이 어디 쓰려나보다' 했다"면서 "선생님을 믿고 찍었다"고 말했다.

김씨가 L씨를 만날 때 세 명이 같이 왔다고 한다. 그는 "선생님이 '이 사람들 내 친구다, 검찰인데 서울에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때 한 명이 전화번호를 알려줬는데, 시작번호가 요즘 드문 016이었다. 이 번호로 한 차례 전화도 걸려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당시에는 (검찰이라고 해서) 다른 생각 안 하고 믿었는데, 지금은 그들이 정말 검찰인지 의문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 예정이었는데 나오지 않았다'는 질문에 "2월 28일이요? 연락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12월에 만났을 때 선생님이 무슨 일인지는 말 안 하고 그냥 '증인 찾고 어쩌고' 하길래 내가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나가냐'고 했다"고 말했다. 더는 증인 요청이 없었다는 게 그의 증언이다.

그는 검찰측에서 '대동 증인' 형식으로 신청됐다. '대동 증인'이란 신청한 당사자가 데리고 나올 수 있을 때 취하는 형식으로 일반적인 증인 채택 절차와 달리 소환장이 발부되지 않는다.

유우성씨 사건 전개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던 그는 갑자기 '선생님' 김씨 뉴스가 나오기 시작해 매우 당황스럽고 갑갑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정말 선생님으로서 존경했는데 '왜 그러셨지' 싶었다"면서 "그 서류(진술서)를 그렇게 쓰실 줄은 정말 생각도 안 했다"고 말했다.

유씨 변호인은 "아무리 지장이 찍혔다 하더라도 본인이 직접 쓴 진술서와 다른 사람이 쓰는 진술 조서는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하물며 말한 내용과는 전혀 다르게 쓴 문서를 마치 진술서로 둔갑해 제출한 것은 전형적인 재판부 기망행위"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김씨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지난해 12월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검찰'이라는 세 명과 나왔다"

 
기사 관련 사진
▲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위조 의혹과 관련, 피고인 유우성씨의 출입경 기록 위조 또는 변조 과정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난 국가정보원 '협조자' 조선족 김아무개씨가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에서 수술을 마치고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지고 있다. 김씨는 지난 5일 새벽 검찰의 세번째 조사를 받고 돌아간 뒤 같은날 오후 6시께 자신이 머물던 서울 영등포의 한 모텔에서 자살을 시도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 검찰이 제출한 진술서가 진짜인가.
"지난해 12월 18일 김 선생님을 만났을 때 출입경 업무 관련해서 설명은 했다. 하지만 이 진술서는 내가 쓰지 않았다. 선생님이 대신 썼다. 출입경 업무 설명 들은 다음에 이것(진술서) 좀 써달라고 했는데, 내가 한국말을 잘 모르잖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그럼 내가 쓸게' 했다가 자신도 한글을 잘 모르니까 그냥 중국어로 썼다. 그게 이렇게(가짜 서류가) 됐다."

- 하지만 진술서에 지장이 찍혀 있다. 내용은 확인해 보지 않았나. 
"안 봤다. 나는 그냥 '선생님이 어디 쓰려나 보다' 했다. 선생님을 믿고 찍었다."

- 그때 말한 것과 진술서 내용이 어떻게 다르다는 이야기인가.
"친척 방문용으로 쓰이는 을종 통행증의 유효기간은 한 달이다. 그 안에 한 번 나갔다 올 수 있다. 만약 일이 있어서 다시 나가야 하면 새로 서류를 내야 한다. 또 '출입경 상황이 없는 기록이 생성될 수 없다'는 진술서 내용대로 말한 적도 없다. '기록이 잘못 쓰일 수도 있다'는 정도만 했다."

- 김씨와 어떤 사이여서 그렇게 믿은 건가. 
"한국으로 치면 초등학교인 소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이다. 그 분은 나중에 학교 교장선생님까지 했고, 한동네에 같이 산 적도 있다. 근데 내가 18살 이후 군대에서 일하면서부터 전혀 연락할 일이 없었다. 또 중국이 얼마나 크고 넓나? 집에 하루 올 때도 기차 타고 몇 날 며칠을 가야 하는데…. 7~8년 전인가 중국에서 한국에 나오려고 시험을 보러 갔다. 거기에 선생님이 계셔서 시험 전날 선생님 댁에서 하루 자고, 다음날 선생님이 자기 차로 시험 장소까지 데려다주셨다. 그때 보고는 연락이 없다가 지난해 12월 전화가 왔다. 한국에 자주 오는데, 내 친척들이 한국에 많으니까 그쪽으로 연락처를 알아봤다더라. 그래서 만났다."

- 만나기 전에 김씨가 국정원이나 검찰 쪽하고 관련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는가. 
"그런 얘기는 전혀 안 했고 '검찰하고 친구인데 뭘 좀 물어볼게 있으니까 같이 만나자'고 했다. '네가 변방(국경 주변)에서 일해서 아니까 설명 좀 해달라'고. 내가 일종의 무장경찰이었는데, 변방에서 근무하면서 변방검사참(출입국관리소)에 4~5년쯤 있었다. 만나서는 지금 얘기한 것처럼 설명했다. 또 (진술서는) 선생님이 뭣 좀 쓰려고 하나 보다 해서 자세히도 안 봤다. 한 40분 정도 만나서 얘기하고, (진술서) 쓰고 나니까 (선생님이) '알았다, 나 빨리 서울에 가야 한다'고 했다."

- 서울에서 만난 게 아니었나. 
"아니다. 내가 지금 서울 밖에 있는데 찾아왔다."

"증인출석? 전혀 연락 없었다"

- 2월 28일 공판에 증인으로 나오기로 하지 않았나. 왜 불출석했나. 
"2월 28일이요? 연락이 전혀 없었다. 그날 당일에도 (법원이나 검찰 쪽에서) 아무 연락이 없었다. 12월에 만났을 때 선생님이 무슨 일인지는 말 안 하고 그냥 '증인 찾고 어쩌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법정에 증인으로) 나가냐'고 했다. 그러니까 또 시간이 언제 언제라고 하기에 안 된다고 했다. 그때 집(중국)에 들어가야 한다고. 2010년 말에 발급받은 비자가 3년짜리인데 만기돼서 1월 9일 중국에 갔다가 재발급 받고, 가족과 친척들 만난 뒤 1월 15일에 (한국으로) 나왔다."

- 그럼 유우성이란 이름이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건가. 
"모른다. 이 일 자체를 오늘(7일) 알았다. 한국말을 잘 몰라서 평소에 텔레비전을 잘 안 본다. 또 일을 밤늦게 마치니까 집에 오면 바로 잔다. 선생님 일도 그렇고 다 오늘에야 알았다. '아 그때 쓴 게 그랬구나, 근데 내가 이렇게 얘기했는데 왜 다르게 쓰셨지?' 했고…. 중국에 있을 때 한 번 선생님과 같이 만났던 '검찰'에게 전화가 오긴 했다."

- 12월에 김씨와 같이 만났던?
"그렇다. 그때 세 명이 왔는데 이름이나 신분 같은 건 얘기를 안 하더라. 또 선생님이 '이 사람들 내 친구다, 검찰인데 서울에 있다'고 하니까 뭐 다른 생각 안 하고 믿었다. 그런데 (현재로선) 그 세 명이 정말 검찰인지에 의문이 많죠. (당시엔) 선생님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랬지…."

- 중국에 있을 때 그 '검찰'이랑은 어떻게 통화했나. 
"12월에 만났을 때 한 명이 '제 번호인데 연락하자'고 해서 저장해뒀다. 그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았더니 '언제 한국에 오냐'고 묻더라. 늦게 나간다고 했더니 '알겠습니다' 하고 끊었다. 이후로는 전혀 연락이 없어서 그냥 나한테 볼 일은 끝났구나 생각했다."

- 변호인 쪽에선 출입경기록을 발급할 권한이 중국 길림성 옌볜(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국에만 있다고 했다. 하지만 검찰이 국정원에서 받아서 법원에 제출한 유우성씨의 출입경기록 발급기관은 허룽(화룡)시 공안국, 출입경기록 정황설명서는 싼허(삼합)변방검사참이었다. 가능한 일인가.
"원칙적으로 주 공안국에서만 출입경기록 발급이 가능하다. 만약에 싼허변방검사참에서 출입경기록을 발급하려면 상급기관에서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한다. 또 그쪽에서 변방검사참으로 '발급해주라'고 지시를 내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못한다. 본인 기록이어도 안 되는데, 당사자가 아닌 사람이 와서 발급받는 일은 더 힘들다."

- 돈을 주고 출입경기록을 위조할 수도 있는지. 
"돈이 귀신이라고… 돈이 있으면 뭐 사람들도 다 그렇지 않나. 하지만 출입경기록 위조는 절차가 몹시 까다롭기 때문에 (위조는) 매우 어려운 편이다."

- 김씨 만날 때부터 오늘까지 관련 상황을 전혀 몰랐던 터라 많이 놀랐겠다. 
"오히려 기자가 이렇게 상황을 설명해줘서 고맙다. 나도 갑갑하다. '김 선생님이 자살하려고 했다, 유씨가 어떻다'고 하는데 내가 뭘 알아야 얘기를 하지 않겠나. 얼핏 듣기론 선생님이 돈도 받았다던데, 그 분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내가 정말 선생님으로서 존경했는데 이야기 듣고 '아니 왜 그러셨지' 싶었다. 그래도 그 서류를 그렇게 쓰실 줄은 정말 생각도 안 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통합신당, '제3지대 신당' 창당 후 민주당 흡수 통합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3/08 09:45
  • 수정일
    2014/03/08 09:4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 새정치연합 요구 대폭 수용…"신당은 새 정치가 중심" 못 박아

선명수 기자, 곽재훈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3.07 18:36:39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통합 신당의 창당 방식으로 '선(先) 제3지대 신당 창당'-'후(後) 민주당과 합당'하기로 7일 최종 합의했다.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일부 세력이 제3지대 신당을 먼저 창당한 뒤, 여기에 '잔류 민주당'이 합당하기로 한 것인데, "신당을 중심으로 민주당과 합당"한다고 합의문에 명시하는 등 새정치연합 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 새정치연합 안철수 중앙운영위원장은 이날 국회에서 회동을 갖고 이 같이 합의했다고 박광온 민주당 대변인과 금태섭 새정치연합 대변인이 전했다.

 

우선 제3지대 신당의 추진단장(창당준비위원장)은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위원장이 공동으로 맡기로 했다.

 

다만 구체적인 창당 방식에 있어선 새정치연합 쪽의 요구를 대폭 수용했다. 앞서 창당의 주도권을 놓고 기 싸움을 벌이던 양측은 "제3지대 신당은 새 정치의 가치가 중심이 되는 정당으로 만든다"고 명시했다. 새정치연합 쪽에서 "신당이 '도로 민주당'이 될 수 있다"며 거듭 불만을 피력해옴에 따라 '새 정치'를 전면에 못 박은 셈이다.

 

또 "제 3지대 신당이 창당되는 즉시 신당을 중심으로 민주당과 합당"키로 했다. 새정치연합과 민주당의 일부 세력이 공동 발기인 자격으로 참여해 제3지대 신당을 만들면, 민주당이 정당을 유지한 상태에서 이 신당에 들어오는 '흡수 합당' 방식이다. 

 

양측 대변인은 "'신당을 중심으로 민주당과 합당한다'는 것이 사실상 '흡수 합당'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문구 그대로 해석해 달라"며 말을 아꼈지만, 사실상 새정치연합의 요구대로 합의된 셈이다.

 

앞서 민주당은 두 세력의 통합 방식으로 새정치연합이 자체 창당을 마무리한 뒤 민주당과 '당 대 당' 통합을 하는 쪽을 주장해 왔지만, 새정치연합은 민주당의 일부가 선도 탈당해 신당을 창당한 뒤 잔류 민주당이 신당에 합류하는 '흡수 합당'을 주장해 왔다. 

 

특히 통합 방식 조율 과정에서 안철수 의원이 민주당을 향해 "기득권을 내려놓으라"고 압박하며 일각에선 통합 결렬 가능성까지 언급하는 등 신당의 '법통'이 민주당 쪽에 기우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 반응을 보여왔다.

 

결국 애초 새정치연합이 요구해온 '선(先) 민주당 해산'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에 따라, 민주당이 '당 대 당 통합' 요구를 철회하고 제3지대 신당으로의 '흡수 통합' 쪽으로 합의를 마무리 지은 셈이다.

 

민주당이 새정치연합 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한 것은 양측 간 줄다리기로 교착 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국민적 피로도가 높아지는 등 통합 '컨벤션 효과'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양측은 창당준비위원회 산하에 새정치연합 쪽에서 요구해온 '새정치비전위원회'를 두고, 내주부터 새 정치를 위한 혁신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또 창당준비위원회 산하에 정강정책 분과와 당헌당규 분과, 총무조직 분과, 정무기획 분과 등 필요한 조직을 양측 동수로 구성하고 공동 창당준비위원장이 관장하기로 했다.

 

양측의 이 같은 합의에 따라, 그동안 교착 상태에 빠졌던 통합 야당 창당 작업은 다시 본궤도에 오르게 됐다. 다만 신당의 당명과 관련해선 양측의 이견이 팽팽함에 따라 향후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새정치연합 측은 신당명으로 '새정치미래연합'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민주당은 당명에 '민주'를 꼭 넣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페이스북 보내기 트위터 보내기 미투데이 보내기 요즘 보내기 C로그 보내기 구글 북마크

 선명수 기자, 곽재훈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