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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의 현장을 가다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의 현장을 가다

정현환 2015. 04. 27
조회수 2 추천수 0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가 중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한국과 중국은 작년부터 협조했다. 우리 (중국) 중앙정부는 이일에 대해 대단히 중시하고 있으며, 우리 인민들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국 측 에게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깊은 감사를 표하고 싶다.”< 더우위페이(竇玉沛) 민정부 부부장>

 2015년 3월 20일. 65년 전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눴던 한국과 중국은 중국 인민지원군 전사자의 유해를 함께 들었다. 주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가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함에 오성홍기를 덮으며, 백승주 국방부 차관 등이 유해 68구를 배웅했다. 그동안 북한을 거쳐 송환됐던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중국측에 직접 인도되었다. 한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의 상흔’이라는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향하는 긴 여정에 첫발을 내딛었다. 유해발굴에서 송환까지, 그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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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홍기(五星紅旗)에 덮인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를 가슴에 품고 있는 중국 인민해방군(人民解放軍) 의장대의 모습.  (사진/ 정현환 기자)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의 배경

 

 2013년 3월 29일 당시 중국을 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류옌둥(劉延東) 중국 부총리 겸 국무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정전 60주년을 맞아 중국 전사자 유해 360구를 송환 하겠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박근혜 대통령의 제안으로, 1년뒤인 2014년 3월 한국은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437구를 처음으로 중국측에 송환했다. 작년 송환 이후 2015년 3월 20일에도 1년 동안 발굴된 인민지원군 유해 68구를 중국측에 건넸다. 국방부는 이번 유해를 송환하며 “분단 70주년을 맞아 과거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양국 관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렇게 송환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랴오닝성 선양의 ‘항미원조(抗美援朝, 한국전쟁을 일컫는 중국 정부의 공식 명칭) 열사능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앞으로도 한국 정부는 매년 4월 5일 청명절(淸明節, 중국에서 조상의 묘를 참배하고 제사를 지내는 날)에 중국에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를 정기적으로 인도할 예정이다. 

 

60년간 타국에 묻혔던 중국 전사자 유해는 총 403구

 

 2013년 중국을 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은 방중 나흘째되는 날 베이징(北京) 칭화대학(淸華大學) 환영간담회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칭화대 학생들 앞에서 중국 방문을 “심신지려(心信之旅, 마음과 믿음을 쌓아가는 여정)”라고 표현했다. 박 대통령은 앞으로 “한·중 두 국가가 우의를 다지는 방안이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이 유해들이 이제는 유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류옌둥(劉延東) 부총리는 “비가 떨어지는 것처럼 멀리 가더라도 반드시 조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중국 속담을 언급하며 박 대통령에 감사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의 제안은 곧바로 시진핑 주석에게 보고 됐다.
  곧이어 청와대는 정전협정 이후 지난 1997년까지 한국전쟁 때 전사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가 403구가 발굴됐다”면서, 그동안 43구를 UN군 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중국 측에 송환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송환되지 않은 360구는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지에 북한군 유해와 함께 임시로 매장했다”고 언급했다.


우여곡절을 겪었던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송환은 엄밀히 말하면 한국이 처리할 문제가 아니다. 유해 송환 문제는 전쟁협정 당사자들 간의 문제이다. 그런데 한국은 한국전쟁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가 아니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송환은 정전협정 당사자인 UN군사령부와 북한의 군사정전위원회(이하 군정위)가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이러한 사실은 1981년에서 1997년까지 중국군 전사자 유해가 송환된 과정을 보면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이 기간 동안 중국측에 반환된 43구의 유해는 작년과 올해에 중국에 직접 송환된 것과 달리 북한을 거쳐 돌아갔다. 한·중 간의 사안으로 논의된 것이 아니라 군정위와 판문점에서 열린 장성급 회담을 통해 송환됐을 뿐이다. 이번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를 송환하는 과정에 참여한 국방부 관계자도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송환은 군정위를 통해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언급했다.


 유해송환 이후 중국 분위기

 

  3월20일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가 중국 본토로 송환된 다음날인 21일 유해는 중국 선양 열사능원(抗美援朝烈士陵園) 지원군 열사기념광장(志願軍烈士紀念廣場)에서 안장됐다. 민정부, 해방군 총정치부, 선양전구부대(瀋陽戰區部隊) 군 지휘관들을 비롯하여 한국전쟁에 참전 했던 노병(老兵)과 참전 용사들과 초·중학교 학생 400여 명이 참석했다. 
 현지 언론매체는 이날의 분위기를 생생히 전했는데, 작년 제1차 한중 유해송환 현장에 참석했던 사업가 장웨이(張偉) 씨는 중국 정부 외문국(外文局) 산하 인민화보(人民畵報)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인민지원군의 후손이라고 밝히며, “자기 가족의 유골도 이처럼 정중하게 대해주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남방일보>(南方日報)는 사설에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발굴 작업에 한국측의 성의에 감사”를 전했고, 중국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 산하 인민왕(人民網)은 “최근 중·한 양국의 전략적 소통이 원활해지고 정치적 상호신뢰가 한층 강화되었으며 두 번에 걸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가 순조롭게 귀환해 안장된 것은 양국이 여러 분야에서 밀접하게 협력하는 좋은 관계임을 보여 준다”고 논평했다.
 더욱이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과 관련된 현지의 뜨거운 분위기는 중국 언론뿐만 아니라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번 유해 송환을 지켜본 중국인들은 조국으로 돌아오는 유해에 애도를 표하면서 “한국측의 선의와 진지하고 세심한 배려에 만족과 감사”를 드러냈다. 특히, 중국의 한 네티즌(아이디: 一枝梅)은 “중·한 양국이 이제 역사의 짐을 벗었다”고 언급하며, “이번 일의 의미가 남다르고, 한국의 조치에 경의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은 중국 지도층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다. 치더쉐(齊德學) 군사과학원 전 군사역사 연구부 부원장은 “인도주의 정신을 잘 보여준 것으로 중국인과 한국인 모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매우 감동적인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번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을 지켜본 감동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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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0일 중국으로 송환된 유해는 21일 중국 선양 열사능원(抗美援朝烈士陵園) 지원군열사기념광장(志願軍烈士紀念廣場)에 안장됐다. 60여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전우에게 묵념하는 중국 인민지원군 노병(老兵)의 모습. (사진출처: 바이두) 


경색된 '남·북관계'가 되레 유해송환을 이끌어
 
  현재 남과 북의 관계는 악화일로(惡化一路)로 치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 MB 정권에서 발생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으로 최악을 맞이했으며, 현 정부까지 이어져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러한 경색된 남과 북의 관계는 현재 그동안 역대 남측 정부와 북측이 불편한 관계 속에서 물밑으로 이루어졌던 인도적 제안마저 거부하고 있는 실정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남과 북의 관계는 남쪽이 중국이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북한의 소통 부재와 대화 단절의 태도는 중국과 경제적·정치적 관계를 긴밀하게 구축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과 2011년부터 중국 인민지원군의 유해를 중국으로 송환하는 사업(해외열사기념시설 보호 관리 업무)을 펼치고 있는 중국에게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엔사의 동의하에 한국과 중국은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 송환을 두고 긴밀한 교섭을 펼쳤다. 양쪽은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60여 년간 타지에 매장되어 있던 유해를 인도적 차원에서 교환하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2014년 중국 인민지원군의 유해 437구가 중국으로 가게 되었다.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을 통해 ‘광복군’ 표지석 설치

 

 1940년대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에 광복군이 있었다. 광복군은 과거 중국의 시안(西安)에주둔지를 두고 활동했었다. 광복군은 시안의 창안구(長安區)와 두취진(杜曲鎭) 두 곳에 주둔하며 조국 광복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두 곳이 무관심으로 인해 방치되고 있었다. 이에 박근혜 정부는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을 통해 이 두 곳에 광복군 표지석 설치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3월 29일 산시성(陝西省)의 자오정융(趙正永) 당서기, 러우친젠(婁勤儉) 성장과 만난 자리에서 “시안(西安)에 있는 광복군 주둔지가 있었던 곳에 표지석을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다. 2009년부터 추진해온 정부주도의 사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앞으로 남은 과제

 

 앞서 말했듯 한국은 정전협정 서명 당사국은 아니다. 이는 앞으로도 한국이 두 차례에 걸친 송환과정에서처럼 중국 인민지원군의 유해가 발굴되고 송환되는 문제에 있어 계속 UN군사령부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는 의미이다. 
 현재 해외에 묻힌 중국 전사자의 숫자는 11만 5217구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중 99%에 이르는 11만 4000여구가 한반도에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앞으로도 유해발굴 사업은 계속 진행될 예정인데, 유해가 발굴 때마다 UN군사령부의 동의를 언제까지 얻을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더욱이 지금의 중국 인민지원군 유해송환은 현재 남북관계가 경색되는 반면 한중관계가 밀접해지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하지만 앞으로 세 국가의 관계가 어떻게 바뀔지 장담할 수 없다. 정치·외교적 차원을 넘어 인도적 차원에서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지 남한과 중국 그리고 북한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나아가 한국정부는 지금보다 더 큰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 현재 북한은 남북회담 등을 통해 북한 내 남한군 유해 송환에 합의했으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실행하고 있지 않다. 명백한 합의 불이행이다. 따라서 앞으로 남쪽도 북쪽에 묻힌 군 유해를 송환받아야 한다.
 정부는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중국 전사자 유해송환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를 통해 남한은 중국정부의 신뢰와 협조를 얻어,  한반도 이북지역에 매장된 국군의 유해송환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미국은 북한과 경색된 외교관계에서도 96년부터 220여구의 미군 추정 유해를 발굴했던 일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표면적으로는 북미관계가 단절된 상태였지만 직접 미 국방부 산하 미군 전쟁포로, 실종자 확인 합동사령부 (JPAC, Joint Prisoner of War/Missing in Action Accounting Command)가 북한으로 건너가 북측으로부터 미군 전사자의 유해와 유품을 미 본토로 송환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유해송환에 대한 규범이 전무한 실정이다. 하루라도 빨리 한국전쟁 전사자에 대한 예우와 기준을 마련하고 기존 제도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 바친 이들에 대해 적절한 보상마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글/정현환, 유원 기자 dondevoy8612@naver.com , bittersweet04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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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대 등록금 환불 뉴스가 조선일보에 없는 이유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4/27 10:21
  • 수정일
    2015/04/27 10:2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동기의 신문비평] 조간 1면을 강타한 네팔 지진, 현지 상황 심각…국제사회 구호 손길
민동기 기자  |  media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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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7  07:11:52
수정 2015.04.27  07: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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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신문 1면은?

네팔 지진 소식이 1면을 장식했습니다. 머리기사와 사진 대부분이 네팔 지진 소식입니다. <‘세계의 지붕’이 무너졌다>(경향) <울고 있는 네팔 모든 것이 무너졌다> <네팔 강진 8000명 사상 통곡의 땅>(조선일보) <폐허 속 “살려주세요” … 네팔의 절규>(한겨레) 등 제목에서 현지의 처참한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발 빠르게 현지에 특파원을 파견해 르포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번 대지진으로 한국인 3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여행 중인 50대 부부가 낙석에 맞아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네팔을 방문 중인 한국인 관광객은 최대 1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사관은 현지 민박업체와 여행사 등을 통해 이들의 피해 여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동아일보는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아 가족들이 대사관으로 행방을 문의해온 여행객 60여 명 가운데 20여 명은 아직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 한겨레 2015년 4월27일자 1면

2. ‘성완종 파문’은 오늘도 주요 소식이네.

검찰은 경남기업 측이 빼돌린 성완종 전 회장의 다이어리(일정표) 등을 일부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은 증거인멸에 가담한 혐의로 이용기 경남기업 부장을 26일 구속했습니다. 지난 25일 구속된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와 이 부장은 성 전 회장 다이어리 등 일부 자료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최근 압수수색에서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계열사 대여금으로 조성한 비자금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고 보도했습니다. 검찰은 최근 성 전 회장의 측근 자택 장롱 속에 감춰져 있던 대여금 관련 비자금 자료를 한 박스 분량 확보해 분석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3. 서울신문이 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 관련한 기사를 실었는데 흥미롭다.

기사 제목이 <‘성완종 금배지’ 시절 민원 대부로 통했다>입니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을 통해 국회의원이 된 성 전 회장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은 지난해 6월까지 만 2년간 의정 활동을 했습니다. 서울신문이 성 전 회장이 2년간 참석했던 국회 정무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특위 및 소위원회와 국정감사 등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총 94건의 회의록 발언을 전수 분석했습니다.

성 전 회장은 국회 정무위에서 ‘건설업계 민원의 대부’와 같은 역할을 자임했습니다. 그가 2012~2013년 열린 정무위에서 집중적으로 제기했던 정책은 건설업계에 대한 대출 및 보증 확대였습니다. 이 기간은 성 전 회장이 오너였던 경남기업의 자본잠식 개시 시점(2012년 6월), 3차 워크아웃(2013년 10월), 채권단에 대한 긴급자금 2000여억원 대출 요구 시점(2014년 6월)과 맞물립니다.

4. 정치면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귀국 소식이 많이 실렸다.

경향신문은 ‘머리 아픈 귀국길’(4면)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1) ‘성완종 리스트’를 수습해야 하고 (2) 이완구 총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합니다. (3) 표류하는 국정과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해야겠지요. 조선일보는 여권의 한 관계자 말을 인용해 “성완종 파문과 이완구 총리 사퇴와 관련해 어떤 식으로든 박 대통령의 사과가 필요하다는 건의가 다수 올라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사과할 수도 있다는 발언으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어떤 형태로든 대통령의 사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5. 이완구 총리도 사과한다는 얘기가 있지?

이 총리는 ‘성완종 리스트’ 파문에 휩싸여 지난 20일 사의를 밝힌 이후 26일까지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사실상 사의를 수용한 상태라 빠르면 순방 귀국일인 27일이나 28일 박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임사를 통해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논란을 일으키고 불명예 퇴진하는 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밝힐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6.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의 재산증가와 관련한 소식도 보이네.

한국일보 1면 보도입니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8명의 정치인 중 한명인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의 현금성 자산이 2012년 3억원, 2013년 5억원 등 2년에 걸쳐 8억원이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국일보가 대선 직후인 2012년과 2013년 2년치 홍 의원의 재산신고 내역을 확인한 결과, 의원 임기를 시작한지 7개월 만에 약 3억원이 순수하게 증가. 2013년에도 예금이 5억여원이 늘었다고 신고했습니다.

   
▲ 한국일보 2015년 4월27일자 5면

홍 의원은 당시 부친이 설립한 경민대 총장직에서 내려와 학교에서 별도의 급여를 받지 않았습니다. 홍 의원은 포천 아프리카예술박물관 구입 등으로 100억원이 넘는 빚을 져 연간 수억원에 달하는 이자도 부담해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예금이 불어난 ‘또 다른’ 수입원이 무엇인지에 의혹이 증폭되는 대목입니다. 성완종 전 회장은 숨지기 직전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2012년 대선 때 홍문종은 본부장을 맡았는데, 제가 한 2억 정도 현금으로 줘서 조직을 관리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홍 의원에게 수 차례 전화를 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고 합니다.

7. 오늘 사회면에는 수원대가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송경근 부장판사)는 수원대 학생 채종국씨 등 50명이 학교법인 고운학원, 이인수 수원대 총장, 최서원 수원대 이사장을 상대로 낸 등록금 환불 소송에서 “2013년 이전 입학한 학생 44명에게 학년당 30만원씩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2013년 7월15일 수원대 학생 88명은 등록금이 교육 및 실습비로 쓰이지 않고 사용처가 불분명한 적립금으로 누적돼 피해를 봤다며 1인당 100만~400만원의 등록금을 반환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재판부가 등록금으로 적립금을 과도하게 쌓으면서 실험·실습 등 교육서비스는 부실하게 한 사립대학은 학생들에게 등록금 일부를 환불해줘야 한다고 판결했는데요, 과도한 적립금을 축적한 사립대학을 중심으로 유사한 소송이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 경향신문 2015년 4월27일자 10면

관심을 모으는 건, 오늘 조선일보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겁니다. 왜일까요? 정확한 이유는 조선일보만 알겠지요. 하지만 몇 가지 ‘정황’은 추론이 가능합니다. 우선 조선일보와 수원대의 ‘특수 관계’입니다.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차남 정오씨는 수원대 이인수 총장과 고운학원 최서원 이사장의 딸 주연씨와 부부지간입니다. 고운학원은 대학발전기금으로 TV조선에 50억 원을 출자한 뒤 2011년 이 사실이 드러나자 ‘2018년까지 매각’ 계획을 밝히도 했습니다. 현재 TV조선 주식은 수원대가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의 ‘정황’이 있습니다. 수원대가 2011년 조선일보 종합편성채널 TV조선 출범 당시 수억 원의 대학발전기금을 재단회계로 처리해 TV조선에 50억 원을 출자했습니다. 당시 감사원이 수원대에 “대학발전기금 전액을 교비회계로 되돌려 놓아라”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만약 이런 점들이 고려됐다면 조선일보의 침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 국가인권위원회가 도마에 오른 이유는?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18일 열린 세월호 1주기 추모집회에서 차벽과 캡사이신 최루액 등을 동원한 과잉진압 논란을 빚은 경찰에 대해 ‘경찰력 남용을 자제하라’는 내용의 위원장 성명을 준비했다가 보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겨레가 보도한 내용입니다.

△헌법에서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 보장 △경찰력 남용 자제 등을 뼈대로 한 위원장 성명을 내는 방안이 논의됐고, ‘집회 참가자들도 폭력을 자제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초안이 작성됐습니다. 하지만 일부 인권위원이 ‘집회의 불법성’을 문제 삼으면서 성명이 보류됐다고 합니다. 보수화한 인권위원 구성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9. 국세청 간부들 성매매 사건과 관련해 돈을 댄 회계법인 있었다고?

조선일보(10면) 보도입니다. 지난달 2일 국세청 간부 2명이 서울 강남의 룸살롱 여종업원들과 성매매를 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들이 당시 국내 유명 회계법인 임원과 함께 룸살롱에서 술을 먹었으며 술값과 성매매 비용을 회계법인 임원이 계산했던 것으로 26일 알려졌습니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서울 수서경찰서는 해당 룸살롱에 대한 계좌 추적 영장을 발부받아 사건 당일 이 업소의 카드 매출 전표를 전수(全數) 조사했습니다. 회계법인 임원 2명이 국세청 간부 2명과 술자리를 갖고 이들의 2차 성매매 비용을 계산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10. 삼성이 ‘이재용 승계’를 연내에 마무리 한다고?

동아일보(1면) 보도입니다. 삼성그룹이 연내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승계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 짓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5월 이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데다 최근 해외 기관투자가 및 기업 간 거래(B2B) 파트너사들이 ‘경영권 안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승계 방안으로는 삼성 사장단협의회에서 경영 상황을 고려해 승계를 공식 건의하거나 사회 원로 및 외국인투자가들이 공식 요청하는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11. ‘이한열 운동화’가 복원된다고?

1987년 6월9일 전두환 정권 규탄 시위에 나섰다가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가 복원됩니다. 26일 이한열기념사업회에 따르면 근·현대 미술품 복원 전문가인 김겸 박사(47)는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을 당시 신은 운동화를 복원 중입니다. 기념사업회는 오는 6월9일까지 운동화 복원을 마치고 다시 전시할 계획입니다.

※ 이 글은 CBS <뉴스로 여는 아침 김덕기입니다>(매주 월요일~토요일 오전 6시 10분부터 7시까지 / 98.1 MHz)에서 방송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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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묻는다…"'남영동 1985' 봤나?"

 
[정치경영연구소의 '自由人'] 정지영 "세월호, 역사적 트라우마로 남기 전 치유해야"
 
 

<남부군>·<하얀 전쟁>·<부러진 화살>·<남영동 1985>·<천안함 프로젝트>·<영화판> 등 모두 우리 시대의 모순과 사회의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회적 성찰을 시대적 화두로 던진 작품들이다. 

곧 칠순이 되는 평생을 영화인으로 살아온 노련한 노장(老壯) 감독 정지영. 그의 깊은 사회적 성찰이 담긴 메시지는 작품 발표와 동시에, 공론과 토론의 장을 오갔다. 이것이 그가 관객과 대화하는 방식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하자.' 이게 영화를 만드는 기본적인 나의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영화가 상영된 후 공론이 일고 토론이 발생하면, 너무 기분이 좋다. 좋게 말하면 토론이고 나쁘게 말하면 논란인데, 논란이 되는 주제 대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그냥 묻어두는 것보다는 들춰내서 토론의 장을 펼치는 게 맞다고 본다." 

누군가에게는 '빨갱이 감독'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는 이 괴물 같은 질병을 오히려 '그러려니…' 받아치며 근본적인 문제는 '분단이 가져온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현재 한국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지 않는다. 이 모든 딜레마가 분단 모순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중략)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 글로벌시대에도 불구하고 한쪽으로는 민족문제를 화두로 삼아야 하는 나라, 분단 모순으로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이 왜곡된 비정상적인 나라이자 불행한 나라다. 분단 모순만 극복하면 한국은 아마도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났는데도,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것은 분명 정치의 문제다. 영화인으로 세월호 동조 단식에도 앞장섰던 정지영 감독은 곪아버린 정치, 움직이지 않는 정치권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은 정치권이 해줘야 하는 일 아닌가. 그래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모두 비판할 수밖에 없다. 그들 모두 은연중에 세월호가 침몰할 수밖에 없었다고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 엄청난 비극을 눈감고 묻어버리면 상처는 곪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썩은 채로 도려낼 생각인가. 언제든 곪아 터질 상처를 왜 이렇게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고름을 째 내고 치료해야 하는데, 지금 권력자들은 이를 감추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온 국민에게 역사적 트라우마로 남기 전, 빨리 치유해야 한다."

 

 

▲ 정지영 감독. ⓒ프레시안(최형락)

 


- <부러진 화살>·<남영동 1985>·<영화판> 등 최근 작품은 패기 있는 젊은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정지영' 하면 젊은 느낌이다. 그런데 곧 칠순이 된다니, 조금 놀랐다.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

사회고발 성격의 영화라 젊게 느껴져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결론을 말하자면 내가 젊기 때문이다.(웃음) 곰곰이 생각해보고 점검한 결과 그렇다. 나쁘게 말하면, 철이 늦게 든 거다. 다른 사람들이 나이 오십(理順)에 깨달을 것을 나는 지금 깨닫는다. 이 말은 세상을 보고 이해하는 눈이 늦다는 것이다. 내게 지금 사십 대 후반 정도의 안목과 깊이밖에 없기 때문에 영화가 젊을 수밖에 없다. 지식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어떤 것(하나의 사건)을 통해 실체를 알고 난 후에 의미를 깨달아 온전하게 내 것이 되는 시간이 항상 늦다.

- 반전이다.(웃음) 충북 청주에서 아버지가 사촌 형에게 내준 헌책방의 책을 다른 곳에 몰래 팔아넘겨 영화를 보러 다녔을 정도로 '영화에 미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고 들었다. 소년이자 청년 정지영은 어떤 학생이었나.

학창 시절, 무척 한심했다. 아버지가 대학교수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를 설득해 전문 서적을 판 돈으로 영화를 보러 다녔다. 한마디로, 전문 지식을 팔아서 오락을 취한 것이다. 얼마나 한심한 짓인가. 그 덕분에 나는 영화감독이 됐지만….(웃음) 분명 나쁜 짓이었다. 당시 중학생이 영화를 본다고 얼마나 깊게 봤겠는가. 예쁜 여배우 보고 재밌는 이야기 들으려고, 영화를 본 거다. 도둑질이었지 뭐….(웃음)

- 1946년 출생이다. 6.25한국전쟁에 대한 기억이 있나? 

기억은 거의 없고 생각나는 몇몇 장면이 있다. 청주에 살 때였는데, 밖에서 총소리와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놀라서 마루로 나갔는데, 한두 살 많던 옆집 아이가 밖에 나가기에, 내가 '어디를 가느냐?'라고 물었더니 '총탄을 주우러 간다'고 했다. '난 무서운데, 쟤는 참 용감하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전쟁 중에 청주보다 더 시골인 옥천으로 피난을 갔는데, 동네 아이들이 내가 도시에서 왔다고 나를 따라다니며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며 놀리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난 애들하고 어울릴 생각에, 대답도 잘해주고 했었다. 그리고 시골 밤이 무척 무서웠던 기억, 밤마다 누나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줬던 기억이 있다. 전쟁에 관한 이야기, 피난 여정에 관한 이야기 등 자세한 건 나중에 들었다.  

- 언제부터 영화감독의 꿈을 꾸었는지, 계기가 있었는지?  

사실 영화는 재미로 봤고, 중학교 때 나름 문학소년이었다. 집이 책방을 해서 이것저것 주워서 읽다 보니 그렇게 됐다. 처음에는 추리소설 위주로 보다가 중학교 3학년 때 본격 문학을 접했다. 가장 쉽게 접근한 것이 신구문화사에서 나온 <세계전후문제작품집>(1962~1963)으로, 전후(戰後) 주목할 만한 작품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1권에서 7권까지는 한국·미국·불란서(프랑스)·영국·독일·남북구(남북극)·일본 편이었고, 8권과 9권은 각각 한국과 세계의 시를, 10권은 세계의 희곡(시나리오)을 모아놓은 책이었다. 이 책을 보면서 인간과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운 것 같다. 

특히 한국 편에는 당대의 한국 작가 중단편이 실려 있었다. 그때 이범선(1920~1982)의 <오발탄>(1959년 10월 <현대문학>에 발표됨)을 읽었다. 후에 영화잡지에 실린 오발탄 시나리오를 우연히 봤다. 원작이 단편소설이었기 때문에 시나리오에는 에피소드가 더 많이 들어가고 등장인물도 추가돼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들어졌다. 참 재밌었다. 하지만 영화 <오발탄>(오현목 감독, 김진규·최무룡 주연)은 1961년 4월 13일 개봉됐지만, 5.16쿠데타가 발생하면서 상영이 금지됐다. 어렸지만, '정부에서 싫어하는 영화도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2년 뒤,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영화가 재상영됐다. 그때 <오발탄>을 보면서 이전까지 재미로만 봤던 영화를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됐다.  

<오발탄>을 보기 전에는 영화를 그냥 봤는데(see), 이후 영화를 처음으로 읽었다(read). 소재가 시나리오를 거쳐 영상으로 펼쳐지는 과정을 보면서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영화감독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전까지는 습작용으로 소설도 쓰고, 그림도 즐겨 그리고, 노래도 한 번 들으면 쉽게 익히고 해서 그런 쪽에 자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역시 종합예술인이 맞아' 라고 합리화하면서 영화감독이 되기로 했다.(웃음) 고등학교 1학년 때 그런 다짐을 했고,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리지 않은 채 왔다. 

- '영화는 종합예술'이고 '영화인은 종합예술가'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한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압축적으로 담아낼 수 있는 눈(시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발탄>을 비롯해 사회와 세상을 보는 관점에 영향을 준 특별한 사건이 있는가.  

우선 <오발탄>의 영향이 크다. <오발탄>은 당시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온 한 가족의 비극적인 삶을 다룬 것으로, 전후 서울의 풍경을 그린 영화였다. 거기에 인간 실존의 의미를 질문으로 던졌다. 제목의 '오발탄'은 주인공 스스로 자신을 '신의 오발탄이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스스로를 잘못 태어난 존재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범선 작가는, 당시 기독교 계통의 고등학교 교사였는데 결국 해고됐다고 한다. 당시 박정희 정권에서 문제 삼은 것은 주인공(계리사 사무실 서기 송철호)의 어머니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매일 밤 "가자! 가자!"라고 외친 부분이었는데, 정권의 반(反)공산주의적 시각이 <오발탄> 상영을 금지한 것이다. 그 말이 '북한이 더 좋다'라는 뜻이 아닐 텐데…. 이렇게 협소한 시각으로 작품을 봐서는 안 된다. 

이런 전후 작품이 나의 청소년 시절을 좌우했다. 비단 한국 전후 작품뿐 아니라, 세계대전 이후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전후시대라는 것은 전쟁으로 자기가 생각하던 모든 가치가 무너진 시대를 말한다. 반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되는 반어적인 세상이기도 하다. 전복적·반어적 가치를 얘기하는 작품이다 보니, 인간과 사회에 대해 얼마나 냉소적이겠는가. 그 때문에 인간애(愛), 즉 부모와 자식 간 사랑이나 친구 사이의 우정 같은 살가운 것보다는 이념과 사회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시대적 환경 속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1998년 <까> 이후로 13년 만에 <부러진 화살>(2011)로 복귀해 쾌거를 거뒀다. 그동안 제작비 등의 문제로 준비하던 영화가 좌초되거나 실패했다고도 하던데, 어려운 시간이 있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13년 동안 무척 고생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계속 영화 준비를 한 시간이었다. 님 웨일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아리랑>의 시나리오를 쓰느라, 8년 이상 많은 시간을 보냈다(명필름이 제작을 맡았으나, 2007년 결국 중단됐다). 중국 혁명기를 그린 작품이라 중국 정부의 검열에 신경을 써야 했다. 주인공 김산이 조선독립을 위해 중국에 건너가 혁명의 과정에 휩쓸리다 연안(延安)으로 와서 중국 공산당을 위해 활동했는데, 간첩으로 몰리면서 북한 공산당에게 처형당하는 이야기다. 사후 50년이 지난 1980년대에 사면복권이 됐지만, 이런 주인공을 그리다 보니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엄청난 제작비도 부담이었고, 그래서 보류했다. 그 뒤에도 작품 하나를 하려다 잘 안됐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 <부러진 화살>을 만들게 됐다. 

물론 경제적 고생은 했다. 그런데 이런 고생은 평생을 해온 것이라, 익숙하다. 익숙한 고생.(웃음) 그냥 견뎌왔던 것이지, 특별히 엄청난 고통과 쓰라림은 없었다.  

- 영화 제작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는지? 

한 번도 없다. 어떤 사람은 영화를 찍다 실패하거나 그 실패가 계속되면 '영화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실패했어도 그렇게 크게 좌절하지 않았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다음에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좋은 일이 생겼다고 크게 기뻐하지도, 슬픈 일이 생겼다고 크게 슬퍼하지도 않는 편이다.  

- 빨치산의 나약한 인간적인 면모를 그려낸 <남부군>(1990),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다룬 <하얀 전쟁>(1992), 사법부와 일반 국민의 관계를 들여다본 <부러진 화살>, 한국의 영화산업을 파헤친 <영화판>(2011), 엄혹한 군사독재시절 민주화 운동가들에 대한 고문을 고발한 <남영동 1985>(2012) 등 모두 사회적 성찰을 담은 메시지로 시대적 화두를 던졌다. 또한 논쟁도 불러왔다. 그만큼 관객들을 자극한 것이다. 이런 토론의 장을 실제로 기대했었는지? 

영화를 만들 때는 항상 많은 관객이 봐주기를 기대하며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스스로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그러면 안 된다. 자기의 고집스러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이해해 주지 않아도 자기 나름의 방법대로 작업해야 한다. 예술가는 그런 면에서 관객이 자신을 이해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너무 쉽게 이해하면 자존심이 상한다. 

그런데 나는 반대다. 영화를 만들면서 항상 '이렇게 찍으면 관객이 잘 모를 텐데? 이렇게 하면 관객이 이해하지 못할 텐데…'라며 점검한다. 항상 관객을 의식하며 영화를 제작한다. 이다. 이 말은 되도록 영화를 통해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가 영화에서 던진 이야기, 질문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논하고 싶다. 

'영화를 보면서 이야기하자.' 이게 영화를 만드는 기본적인 나의 목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영화가 상영된 후 공론이 일고 토론이 발생하면, 너무 기분이 좋다. 좋게 말하면 토론이고 나쁘게 말하면 논란인데, 논란이 되는 주제 대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침묵하고 있었던 중요한 가치의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그냥 묻어두는 것보다는 들춰내서 토론의 장을 펼치는 게 맞다고 본다.  

- 그러나 영화 <남부군>,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2013) 등의 작품에 대해서는 호불호(好不好)를 분명히 하며, '빨갱이' 감독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념 논리가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 혹은 '종북'이라고 비난받을 때 마음이 어떤지, 또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하다. 

영화는 일단 자기가 만들고 나면, 이후에는 자기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관객은 각자 자기 삶과 철학으로 영화를 보기 때문에 만든 사람과 똑같이 볼 수 없는 게 당연하다. <남부군>에 대해 좌(左) 쪽에서는 빨치산을 나약한 휴머니스트로 그렸다고 비판했고, 우(右) 쪽에서는 빨갱이를 미화했다고 손가락질했다. 각자 자신의 시각으로 영화를 보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이 우리 사회를 더욱 생산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한국 사회가 가진 특징이다. 

현재 한국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지 않는다. 이 모든 딜레마가 분단 모순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 대한민국. 글로벌시대에도 불구하고 한쪽으로는 민족문제를 화두로 삼아야 하는 나라, 분단 모순으로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인식이 왜곡된 비정상적인 나라이자 불행한 나라다. 분단 모순만 극복하면 한국은 아마도 훌륭한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흥행의 실패가 영화의 성패를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흥행에 실패하면, 관객과 소통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함께 작업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한계 등 수많은 감정이 교차할 텐데 어떻게 처리하는 편인가.  

반성해야지.(웃음) 내가 할 수 없는 마케팅과 영업 등을 제외하고, 내가 한 일 중에서 무엇을 잘못했나 면밀히 살피고 반성한다. 반성하다 보면 뭐가 나온다. 물론 그 반성 전에 같이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기대에 못 미쳐 미안하단 말부터 전한다.  

- 혹시 대표적인 반성작이 있나.  

<남영동 1985>.(웃음) 극장에서 100만 명만 봤으면 하고 바랐다. 그 이상은 욕심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만큼 보기 힘든 영화였기 때문이다. 당시 2012년 대통령 선거도 있는 정치의 계절이어서 조금 기대를 했는데, 그 기대에 못 미쳤다. '전 국민이 봐야 할 영화'라는 입소문이 났지만, 관객수가 33만여 명에 그쳤다(2015년 4월 22일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누적 관객수 334,619명). 개봉한 다음에 반성하면서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남영동 1985>를 보다가 나간 사람들이 많았다고 하더라. 영화가 지나치게 끔찍했던 것이다. 고문 장면을 찍을 때 관객들이 고문당하는 느낌을 받게 하려고 했는데, 그게 너무 지나쳤던 것 같다. '관객의 감정을 계산하면서 고문 장면을 배치했어야 했구나' 생각했다.  

- 2012년 11월 <남영동 1985>을 개봉하면서 여러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후보가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어떤 바람이 있었던 건가.  

영화 개봉 당시가 대선 직전이었다. 그래서 <남영동 1985>를 보고, 박근혜 후보가 무슨 이야기를 할지 궁금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기 아버지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지 않나. 물론 영화의 배경은 전두환 정권이지만, 박정희 정권 이야기도 나온다. '군사독재'라는 이름으로 벌어진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프레시안(최형락)


- 배우가 극악무도한 악인이나 비극적인 상황에 처한 인물을 연기는 경우, 감독이 민감한 사회문제를 주제로 하는 영화를 제작할 경우 후유증이 상당할 것 같다. 영화를 찍고 난 이후에 어떻게 회복하는 편인가? 

실제로 <남영동 1985>를 제작한 뒤 아팠다. 영화 촬영 당시 배우와 스태프 모두 고통스러워했다. 그 고통이 내게 돌아온 복수인 양 정말 많이 아팠다. <남영동 1985>를 찍을 때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안 피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매일 저녁, 술을 마셨다. 정신적으로 힘든 것뿐만 아니라 몸도 아팠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도 몸과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 얼마 동안이나?  

몇 개월을 끙끙대다 실제로 몸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까지 했다. 나만 그랬겠나. 박원상 씨와 이경영 씨도 오랫동안 힘들어 했다. 고문 피해자 역을 한 박원상 씨보다 가해자 역할을 한 이경영 씨가 더 힘들어 했다. 연기라고 해도 그 후유증이 정말 컸던 모양이다.  

- 2005년 10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다양성 협약'이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된 이후, 한국의 스크린쿼터는 다른 나라들이 문화 정책의 모범으로 삼는 제도가 됐다. 그러나 한미FTA가 진행되면서 스크린쿼터 폐지 논란이 일었다. 당시 범(凡) 영화인들이 반대 투쟁을 벌였고, 배우 안성기 씨와 함께 스크린쿼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영화인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였지만, 일부에서는 '밥그릇 챙기기'라는 오해와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다.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 투쟁이 만약 밥그릇 챙기기였다면, 더 치열했어야 했다. 물론 영화인들에게는 스크린쿼터가 축소되면, 그만큼 설 자리가 없어졌을 테니 생존권의 문제이기도 했다. 밥그릇 챙기기라고 비판한 이들을 그래서 바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밥은 먹고 살아야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물론 '어떤 배우는 외국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라는 식으로 비판하는 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당시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를 비판한 사람들은 대중의 여론을 자기식으로 환기시키려고 여러 가지 수를 썼다. 그런 노력의 연장선에서 '벤츠 타고 양담배 피우는 배우들,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생존권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한국의 영화 문화가 없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집요하게 싸웠던 것이다. 물론 지금은 스크린쿼터가 반으로 뚝 잘렸지만, 투쟁 과정에서 한국 영화인의 의식은 상당히 고양됐고 사명감까지 갖추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 밑바탕에서 오늘날의 한국 영화가 나온 것이라고 본다. 만약 그런 영화사적 과정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한국 영화가 세계시장에서 이렇게까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긍지를 가지고 당시 싸움을 종종 되돌아본다. 

-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2013년 8월 언론시사회에서 "'천안함'은 우리 사회 '소통의 단절'을 담았다"고 했지만, 천안함 유가족과 해군 장교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는 등 상영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무엇이었나.  

국가가 어떤 사안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국민은 그것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천안함 프로젝트>나 <다이빙 벨>(안해룡·이상호 감독, 2014)의 소재가 된 사건들은 의문투성이 문제가 너무 많다. 해명을 못 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 모르지만, 국민들에게 속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과 소통을 못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의심할 수밖에 없다. 몇몇 사람만 의아해 하는 것도 아니고, 전 국민이 의문을 가진 것 아닌가.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정부에 친화적인 사람들을 향해 '저 새끼들은 빨갱이들이다'라고 말하며 편 가르기를 한다. 정부를 비판한다고 빨갱이인가? 물론 대다수의 국민은 그 말에 부화뇌동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냥 있는 것이다. '그러려니…' 한다.  

- 영화 제작에 있어, 지금까지 대기업(거대 자본)과 작업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다. 상업 영화로 흥행해서 소위 '천만 관객'을 넘어보고 싶은 유혹 같은 것은 없었나.  

'천만 관객을 넘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거대 자본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생각은 있다. 그게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이 가는 길이다. 기회가 된다면,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기업 또는 거대 자본과 작업을 해봐야 문제가 발생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아닌가. 하지만 내가 '천만 관객' 영화를 만드는 일은 죽을 때까지 없을 것 같다. '왜 꼭 관객이 천만 명이 되어야 하지? 내가 선택한 작품은 '천만 관객'은 아닐 것이다'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그런데 최근 <삼별초>라는 작품을 구상하면서 이 정도 영화면 '천만 관객'쯤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까?' 하고 머리를 굴려보니, 내용 자체가 천만 명이 들것 같다는 자신감이 든다. 나도 '천만 관객' 감독이 되려나? 생각하니, 재미있다.(웃음) 

- 대기업의 투자를 받을 기회가 없었던 것인가.  

2008년 <이리> 이후, 13년 만에 <부러진 화살>을 제작했다. <부러진 화살>은 처음부터 대기업과 만나기 힘든 작품이었다. 사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는데, 대한민국 대기업이 투자하겠는가. 다음으로 만든 영화가 <남영동 1985>인데, 이 역시 뻔하지 않나. 다행히 <부러진 화살>의 흥행(2015년 4월 22일 영화진흥위원회 제공 누적 관객수 346만여 명. 역대 흥행 순위 102위)으로 돈을 빌리기는 쉬웠지만, 처음부터 저예산으로 만든 작품이다.  

- 2012년 12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영화계가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편되다 보니 신인 감독들이 스타만 캐스팅해오면 돈을 준다"며 "조금 더 뜸을 들인다면 좋은 재목이 될 수 있는 씨앗들을 너무 일찍 사장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기업이 본인과 같은 또래의 노장 감독은 "감각이 늙었다며 기회를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아무리 대기업이 과학과 통계를 바탕으로 (영화의 투자와 흥행을) 예상한다고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기본적으로 나이 많은 감독을 만나기 꺼린다. 힘은 자기들이 갖고 있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 노장 감독에게는 그 힘을 마음대로 행사하지 못하니 불편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이 든 감독들은 감각이 낡았다고 핑계를 댄다. 

대기업의 투자 기준은 좋은 시나리오와 감독이 아니라, '출연 배우가 누구냐?'이다. 그래서 A급 배우를 섭외하려고 노력한다. A급 배우란, 인기 있는 배우를 말한다. A급 배우가 캐스팅된 시나리오라면, 시나리오와 감독이 B급이라도 대기업은 투자를 한다. 이게 대한민국 대기업이 가진 영화에 대한 투자 안목이다. 영화의 성공 가능성을 배우에 의존하는 것이다. 사실 영화계가 이런 투자 행태에 좌우되는 한, 한국 영화의 미래는 밝지 않다. A급 배우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시나리오와 새로운 소재로 승부수를 띄우는 최소한의 도전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독립영화로 성공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진모영 감독, 2014)는 확률상 만분의 일이 될까 말까 하기 때문에 도전할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 지난해 전체 영화산업 매출이 2조276억 원, 극장 입장권 매출액이 1조6641억 원으로 해마다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2014년 개봉한 영화만 217편이다. 그런데 스크린을 통해 상영된 영화 중 눈에 띄는 건 몇 편에 불과하다. 영화산업은 성장하는데, 반대로 실패하는 영화도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평생 영화를 제작해온 감독으로, 한국 영화시장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대기업이 한국 영화산업을 이끌어가는 시스템, 소위 수직 계열화된 구조가 문제다. 이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한국 영화는 위기를 겪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이 투자한 영화 외에 다른 영화는 상영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가게가 문을 안 여는데, 관객이 어떤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나. CJ, 롯데 등 대기업은 투자만 하고 제작하지 못 하게 해야 한다. 영화 상영과 배급도 분리해야 한다. 자기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작품을 발로 차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 영화인 또한 넓은 의미에서 노동자이다. 그런데 상품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 작품 또는 노동자들은 실로 처참한 대우를 받고 있다. 영화계에 가장 보장받아야 하는 노동권과 노동환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최근 전국영화산업노조도 생기면서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노조 간에 표준계약서가 만들어졌다. 영화계가 노동면에서 상당히 발전되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 다만 영화계 일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인 것은 사실이다. 촬영 스텝들을 월급을 주며 데리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영화계 노동자들이 일이 없을 때 생계를 보장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게 가장 중요한 문제 같다. 물론 영화를 하고 싶어서 이 업계에 들어온 것이지만,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제도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영화 산업이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

- 지난해 8월 세월호 특별법 제정 동조 단식을 하면서 "침묵은 공범이다"라고 했다. 특히 정지영 감독뿐 아니라, 많은 영화인이 참여했다. 그런데 일간베스트의 폭식 투쟁 같은 상반된 일도 벌어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봤나.  

현재 한국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지 않는다. 이 모든 딜레마가 '분단 모순'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면, 한국이 정상적인 사회가 될 것이라고 본다. 힘들더라도, 그 모순을 넘어서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에서는 이것을 이용하려고만 한다. 이 사회의 모순을 극복하는 것은 정치권이 해줘야 하는 일 아닌가. 그래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모두 비판할 수밖에 없다. 그들 모두 은연중에 세월호가 침몰할 수밖에 없었다고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 엄청난 비극을 눈감고 묻어버리면 상처는 곪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썩은 채로 도려낼 생각인가. 언제든 곪아 터질 상처를 왜 이렇게 방치하는지 모르겠다. 고름을 째 내고 치료해야 하는데, 지금 권력자들은 이를 감추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온 국민에게 역사적 트라우마로 남기 전, 빨리 치유해야 한다. 

- 새로운 진보 정치세력화를 선언한 국민모임 공동대표다. 정치 참여에는 지금까지 다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자기의 정치적 안정만을 위해 행동하는 기존 정치권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정치에 참여한다기보다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된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야당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자극을 주기 위한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회의원 배지 하나에 전전긍긍하면서 개인을 위해서 정치하는 기존 정치인의 모습이 너무 한심하다. 새누리당이나 새정치민주연합 모두 이미 보수당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가진 정책 현안은 다 보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세력이 미약하지만 정의당, 노동당 등 진보 쪽에서 규합해서 새로운 세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재 대한민국은 절름발이다. 한쪽 날개로 간신히 날고 있다. 세계에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나. 절름발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새정치민주연합과 같은 보수 야당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보야당이 있어야 한다. 
 

ⓒ프레시안(최형락)


- 1976년 서른 살에 조감독으로 시작해 약 40년 동안 영화인의 삶을 살아왔다. 기쁜 적도 좌절했던 적도 있었을 텐데, 무엇이 '정지영'을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고 생각하나.  

철이 늦게 든 것?(웃음) 뭘, 잘 모른다. 가장의 책임감 같은 것을 좀 알면, 집이 힘들 때 '영화를 그만둬야 하나?'라고 생각할 법도 한데, 난 아무리 배고파도 영화가 아니면 할 게 없다. 이런 철없음이 지금의 나를 지탱해온 것 아닐까? 나쁘게 말하면, 이기적인 거다. 영화를 하고 싶으니까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영화가 아니고선, 할 수 있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물론 1987년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외침 속에 '직선제개헌 1천만 명 서명운동'에 동참한 뒤, 당분간은 영화를 못할 것 같아서 아내에게 '포장마차나 해볼까?'라고 말했던 적은 있다.(웃음) 물론 6.29민주화선언으로 금방 풀렸지만…. 사회적 여건이 그랬기 때문에 다른 일을 해볼까 했던 거지, 개인적으로 영화 외에 다른 것을 해볼 생각은 안 했다. 무모한 거지.(웃음) 

- 정지영에게 영화란? 

기본적으로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영화가 아니겠나. 나는 태생적으로 혼자 생각하고, 혼자 꿈꾸는 사람이 못 된다. 혼자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보기도 했는데,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안 되더라. 뭔가를 떠올리면,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밥그릇의 수단으로 영화를 선택한 것이다.(웃음)  

-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기본적으로 나보다 젊은 후배들에게 '어떻게 살아라' 하고 충고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각자 자기가 스스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데, 마치 어떤 정답이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그래도 정 말을 하라면, 이렇게 사는 게 유리한 것 같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적어도 청년이라면 '내가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먼저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왜냐하면 대개 비극은 자신은 '어떻게' 살고 싶은데, 자신의 직업이 그 '어떻게'를 뒷받침해 주지 않아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먼저 어떻게 살까를 정하면, 저절로 그렇게 살기 위해서 무엇이 되어야겠다는 결정을 하기가 쉽고, 대부분 그게 가장 본인에게 맞는 직업이든 일이든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 치고, 부자로 살기를 원하면서 정치인이 되기를 꿈꾸는 사람은 없을 것 아닌가. 만약 그렇게 살려면, 부정부패해야 하고 감옥에 가야 할 테니 말이다.(웃음) 자유롭게 살고 싶은 사람은 공무원이나 평범한 직장인이 될 꿈을 버려야 한다. 

- 정지영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문학적이나 철학적인 의미에서의 자유 말고, 정치·사회적으로 쓰는 자유가 그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의미를 상당히 퇴색시키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자유민주주의 국가·자유시장경제·신자유주의 하는 말들이다. 사실 이런 말은 자유를 엄청나게 구속한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이 체제에서 이것을 부정하는 모든 사람은 빨갱이가 되는 것 아닌가. 자유시장경제도 마찬가지다. 엄밀히 말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시장을 장악한 놈이 주인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 대부분은 그 시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도 실질적인 자유를 얼마나 많이 구속하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워서 이긴 놈이 최고가 된다는 건데, 처음부터 힘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이길 수 있다는 건가. 이런 의미에서 자유라는 말은 달갑게 인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유인'이라고 하면 달라진다. 참 근사한 단어다. 

'자유인'이라는 것은 주관적인 내가 객관적인 나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때다. 내가 나 스스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과 같다. 예수나 석가가 그런 자유인의 경지에 올랐던 사람일 텐데, 우리는 그 경지가 불가능하고(웃음), 죽을 때까지 그 경지를 향해 가는 것이 아닐까? 우리 삶이란 자기라는 객체를 자기라는 주체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인, 그런 자유인을 희망하면서 죽어가는 것 같다. 

이 연재는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정치경영연구소의 기획, 취재, 집필에 의해 진행됩니다. 인터뷰 및 정리는 비례대표제포럼 손어진 간사와 정치경영연구소 조경일 연구원이 담당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를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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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민주인사 빅토르 우고 히혼, 기자회견장 찾아 연대·지지발언

  • [사회] 국제민주인사 빅토르 우고 히혼, 기자회견장 찾아 연대·지지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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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오후2시30분부터 시작된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의 남대문경찰서에 대한 불법폭력연행, 강제날인거부보복구속영장청구, 성추행만행 규탄기자회견이 밤샘 기자회견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후8시20분 기자회견 사회자는 지난 24일부터 벌어진 경찰의 표현의자유탄압, 불법폭력연행, 성추행, 인권유린 사실을 구체적으로 폭로했다. 
     
    사회자는 <지난 24일 코리아연대회원 2명이 박근혜<정권>을 규탄하는 유인물과 현수막을 들고 있다가 불법체포됐고, 불법체포된 회원들을 석방하라고 규탄하는 남대문서앞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코리아연대회원 20여명을 무차별적으로 폭력해산시키고, 그중 4명을 불법폭력연행했다. 이과정에서 한 여성회원은 성추행을 당했고, 한 여성회원은 도둑으로 몰렸다. 뿐만아니라 남대문경찰서앞에서의 불법폭력연행을 항의하는 기자회견과 항의방문하는 과정에서 성추행피해자를 포함한 4명의 대표단과 언론사기자가 불법폭력연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주호회원은 48시간을 채우고 석방됐지만 박비호회원은 석방되지 못했다. 경찰은 폭력적으로 강제날인을 자행했음에도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또 경찰의 폭력성과 야만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며 <강서경찰서 여경 5명을 포함한 10명의 경찰이 불법폭력연행당한 성추행피해자에게 물리력을 동원해 강제로 지문날인을 시도했고, 그 여성은 완강히 저항하다가 실신했다. 천인공노할 만행>이라고 준렬히 단죄했다.
     
    코리아연대에 따르면 변호사는 박비호회원에 대한 구속영장창구에 대해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구속될 사항이 아닌데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이건 당연히 기각될 것이라 예상된다. 사실 영정실질심사가 열릴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라고 전했다. 
     
    오는 27일부터 30일까지 기독교회관에서 열리는 민주국제포럼에 참가하기 위해 남코리아를 방문한 에콰도르 인권위원회운영위원인 빅토르 우고 히혼(Víctor Hugo Jijón)이 늦은 시간임에도 기자회견장을 직접 찾아와 코리아연대회원들을 비롯한 기자회견참가자들을 격려하고 연대를 표했으며 지지발언을 했다.
     
    그는 <남코리아의 민주주의가 어떤 상황인지 이번 공권력탄압으로 알게 됐다.>며 <남코리아의 헌법은 모르지만 민주주의의 헌법은 안다. 그기준에 따르면 경찰과 정부가 한 행동은 전혀 민주주의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시민이 들고 있는 전단에 폭탄이 있는가?>라고 반문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시민들의 정당한 권리다.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시민이 아니라 정부이고 경찰이다. 법이 법대로 지켜지지 않을때는 시민들의 요구로 바꿔야 한다.>고 국제수준의 민주주의·인권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가의 안보는 시민들을 연행한다고 지켜지지 않는다. 남코리아의 이런 현실에는 국가테러주의가 엿보인다. 멀쩡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드는 것이 테러가 아니고 뭔가>라고 꼬집고 <진정한 민주주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경찰과 정부는 시민과 대화를 해야 하며 폭력연행해서는 안된다. 모든 연행자들을 석방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코리아연대회원은 <남대문경찰서의 행태는 몰상식하고 비인격적>이라며 <<세월>호유가족들도 짐승같이 끌어내고, 우리쌀을 지키겠다고 하는 농민들도 짐승같이 끌어내고,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려다 불법폭력연행된 두청년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민들도 짐승같이 끌어냈다.>고 통렬하게 성토했다.
     
    이어 <수많은 부정부패정치인들은 가만히 놔두면서 정권에 비판하는 시민들만 왜 탄압하는가.>라며 <연행자들이 석방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단호히 말했다.
     
    사회자는 <변관수남대문경찰서장, 최호열강서경찰서장, 구은수서울지방경찰청장, 강신명경찰청장은 불법폭력연행과 성추행만행, 강제지문날인강요 등 만행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코리아연대는 기자회견과 침묵연좌농성을 반복하며 박비호회원이 석방될 때까지 밤새 투쟁할 것이며 불법·폭력·성추행·강제지문날인·인권유린을 자행한 경찰의 책임자들인 변관수·최호열·구은수·강신명에게 법적·사회적 책임을 반드시 물을 계획임을 재차 강조했다.
     
    한편 지난 25일 새벽 박주호·박비호회원 석방을 촉구하다 불법폭력연행돼 중랑경찰서로 이송된 코리아연대 양고은공동대표와 코리아연대회원 2명, 진보노동뉴스기자 1명이 밤11시20분경 석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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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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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대지진 사망자 2500명 넘어... 이틀째 강력 여진

 

에베레스트 산에 수백 명 고립... 등반객 구조 작업 난항

15.04.27 09:12l최종 업데이트 15.04.27 09:2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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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지진이 발생한 네팔의 에베레스트 산 눈사태 피해를 보도하는 CNN 뉴스 갈무리.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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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이 규모 7.8의 강진에 이어 이틀째 규모 6.7의 강한 여진이 이어지고 있어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복구 작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네팔 내무부는 27일(한국 시각) 현재 사망자 수가 최소 2430명, 부상자 수가 5900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인도 53명, 중국 17명, 방글라데시 3명 등 주변국에서도 사망자가 속출했다.

전문가 "여진 지속 가능성 높아... 눈사태 위험 가중"

이미 수도 카트만두 중심부와 인근 지역의 건물, 가옥 등이 무너졌고,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주민들은 차가운 길거리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국제 사회가 지원에 나섰지만, 카트만두 국제공항이 사실상 폐쇄되고 도로, 통신, 전기 등이 끊기면서 도움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실정이다. 

네팔 구조 당국은 열악한 여건에서도 곡괭이, 삽, 맨손 등으로 건물 잔해를 치워가며 실종자를 찾고 있다. 하지만 워낙 무너진 건물이 많고 어린 아이 피해자도 많아 갈수록 사망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CNN은 지질 전문가를 인용해 "경험적으로 이 같은 대지진 이후 30시간 동안 여진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히말라야 산맥의 눈사태로 등반객이 휩쓸리거나 마을 전체가 파묻혀 피해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네팔 산악협회에 따르면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에서 눈사태에 휘말려 지금까지 17명이 사망하고 61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지진 당시 에베레스트 주변에 외국인 등반객 400여 명을 포함해 최소 1천 명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에베레스트에서 구글 임원인 댄 프레딘버그 이사가 다른 직원 3명과 함께 등반하다가 숨졌고, 일본 NHK에 따르면 일본인 등반객 2명도 눈사태에 휩쓸려 남성 1명이 숨지고 여성 1명이 다쳤다. 

아직도 에베레스트에 등반객 수백 명이 고립돼 있어 네팔 당국이 헬기를 동원해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AP는 한국인 1명도 에베레스트에서 구조되어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보도했으나 정부 발표가 없어 한국인이 맞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앞서 정부는 카트만두 북쪽 어퍼 트리슐리 지역에서 근무하던 한국인 건설 업체 직원 1명과 카트만두 북쪽 샤브로베시를 여행하던 50대 부부 등 모두 한국인 부상자는 3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아직 사망자는 없으나 여행객 남편은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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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엔 인도지원조정국(OCHA)가 발표한 네팔 대지진 지역별 강도.
ⓒ 유엔 인도지원조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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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성명을 통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 문화유산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네팔 정부와 국민에 깊은 애도와 위로의 뜻을 표명한다"며 "이번 피해가 조속히 복구되어 네팔 국민이 충격과 슬픔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기를 기원하고 해외긴급구호대 파견 등 추가 지원 방안을 적극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지난해 4월 칠레 북부 해안에서 발생한 규모 8.2 지진 이후 가장 강력하며, 네팔에서는 1934년 카트만두 동부를 강타해 1만 7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던 규모 8.1 지진 이후 81년 만에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BBC는 "네팔은 세계에서 가장 활발한 지진 지역 가운데 하나"라며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의 충돌로 생겨낸 히말라야 산맥에서 보듯 두 지각판이 만나는 곳이라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날 우려가 크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진의 규모도 7.8로 높았지만, 진원의 깊이가 10~15km 정도로 얕아 지표면에 가해지는 충격이 컸고, 대부분 건물이 벽돌로 허술하게 지어진 데다가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라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이미 지진 전문가들은 2010년 3월 30만 명이 목숨을 잃은 아이티 대지진에 이어 다음 피해 지역은 네팔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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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적 기자회견·항의방문에 경찰 불법·폭력·성추행 자행 ... 코리아연대 <강신명 사퇴, 연행자 석방>

  • [사회] 평화적 기자회견·항의방문에 경찰 불법·폭력·성추행 자행 ... 코리아연대 〈강신명 사퇴, 연행자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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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대문경찰서에서 성추행당한 여성이 오늘 서울시경에 의해 연행되고 부상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병원행119를 부르지 않는 등 경찰의 불법·폭력·성추행·인권유린이 극에 달했다.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목정평(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등은 25일 오전11시 서울지방경찰청앞에서 어제(24일) 벌어진 남대문경찰서의 불법·폭력·성추행을 규탄하며 모든 연행자석방을 촉구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열었다. 
     
    목정평 백광모목사는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이러한 현실을 강력히 항의하고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세계적으로 선진국이고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라고 자랑하고 있지만 실상은 시민의 권리가, 정치적 자유가 무차별적으로 탄압받고 있다>고 규탄하고, <남대문경찰서와 여타 다른 경찰서에 연행된 사람들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당시 경찰의 성추행과 폭력연행, 불법채증이 벌어진 남대문경찰서 앞 규탄기자회견에 참석한 코리아연대 이민경회원은 <통행을 막고 있다는 이유로 연좌했던 시민들을 경찰이 모두 폭력적으로 경찰서밖으로 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여성 3명이 손목과 발목 등을 다쳐 구급차에 실려갔다. 더더욱 가관인 것은 나를 도둑으로 몰았다. 여경이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을 내가 가지고 있다며 도둑으로 몰았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여경의 핸드폰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여경의 핸드폰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한 경찰은 전혀 사과한마디 없었다.>고 증언했다. 
     
    경찰로부터 성추행피해를 당한 피해자 박OO씨는 <남성경찰들이 여성들을 둘러싸고 손으로 밀치고 어깨로 짓누르며 신체적 접촉했고, 여경들은 무차별적으로 우리를 끌고 가면서 발목을 짓밟았다.  여경은 나를 끌어내리는데 바지안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아예 속옷안으로 집어넣었다.>며 수치심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울먹였다. 
     
    이날 4월27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민주국제포럼에 참가한 국제민주인사들도 기자회견에 동참해 남코리아의 후진적 인권실태에 대해 발언했다. 
     
    세네갈 진보경제학자 뎀바 무싸 뎀벨레(Demba Moussa Dembélé)는 <외국에서 보기에 남코리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괜찮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어제와 오늘 본 상황을 보면 절대 그렇다고 말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세네갈뿐 아니라 전세계 어느 국가에서도 평화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는 경우는 없다.>며 <표현의 자유, 집회의 자유는 민주주의국가의 시민으로서 보호받아야할 권리>라고 강조하고, <남코리아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실태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기여하겠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여러분들의 활동을 진심으로 지지하고 격려한다.>고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에콰도르 인권위원회운영위원인 빅토르 우고 히혼(Víctor Hugo Jijón)은 <유인물을 소지한 학생들을 경찰이 폭력적으로 연행하고, 그것을 규탄하는 남코리아의 현실을 봤다.>며 <국제적인 기준으로 봤을때 표현의 자유는 당연히 보호받아야할 권리로, 유인물을 뿌릴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자유주의경제위기 이후 첫번째 피해자는 학생들과 시민, 노동자들이다. 그것을 조금 더 개선시키겟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당하며, 전세계민중들이 단결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투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어제 있었던 노동자총파업은 노동자들의 권리를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학생으로서, 시민으로서 노동자와의 연대를 표시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라며 개탄하고 <국가는 시민들의 목소를 듣지 않고 있다. 노동자, 학생, 시민에 대한 탄압을 멈춰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속해서 <며칠후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민주국제포럼이 시작되는데 포럼기간 다른나라 석학들과 지식인들과 남코리아현실을 공유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목정평 박승렬상임대표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기자회견이 끝난 12시경 항의방문대표단은 <폭력연행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 <폭력연행 사과하고 연행자를 석방하라!>, <폭력경찰 물러나라>라고 외치며 항의서한을 구은수서울지방경찰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경찰청입구로 향했다. 
     
    하지만 서울지방경찰청은 경찰병력을 동원해 항의방문대표단을 막아섰고,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에 대해 항의방문대표단은 격렬하게 저항하며 경찰청건물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폭력적으로 대표단을 밀어부쳐 전날 성추행당한 피해자가 돌이 있는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질 정도였다.
     
    항의방문대표단은 서울경찰청입구앞에서 진입이 막히자 그 자리에 연좌하고 계속 항의서한전달을 요구했다. 
     
    12시20분경 여경이 배치, 대표단을 둘러싸고 해산을 위협했고, 경찰은 국민의 정당한 권리인 평화적인 항의서한전달을 <불법집회>라고 매도하며 해산경고방송으로 위대표단을 위협했다.
     
    12시44분경 수십명의 경찰이 배치되더니 항의방문대표단 4명의 사지를 들어 폭력연행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범인체포과정처럼 엎드려있는 여성의 허리를 무릎으로 누르거나 마치 범인을 제압하기 위해 목을 조르는 것처럼 무리한 압박을 가했다.
     
    여성항의대표단들중 일부는 신발이 벗겨졌으며 남성경찰들이 지켜보고 카메라로 채증하는 도중에 상의까지 일부 벗겨질 정도로 인권유린사태가 벌어졌다.
     
    이과정에서 대표단중 한명인 이민경코리아연대회원의 안경이 부서졌고 이후 이민경회원은 이동되는 경찰버스안에서 구토증상까지 보였다. 소식을 들은 한 전문의는 뇌손상가능성을 제기했다. 
     
    다른 여성대표단은 손을 삐어 크게 부어올랐고 멍까지 들었다.
     
    전날 경찰에 의해 성추행을 당한 박OO씨가 연행되는 과정에서 경찰에 의해 수차례 머리와 몸을 바닥에 부딪혔고 항의대표단 김대봉단장은 팔이 꺾였으며 평소 좋지 않던 허리에 심한 충격이 가해져 통증을 호소했다.
     
    구토증상을 보이는 등 항의방문대표단은 고통과 통증을 호소하며 전문가소견에 의한 뇌손상가능성까지 제기됐는데도 경찰은 병원으로의 후송을 여러차례 호소하는 연행자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강서경찰서로 계속 이송해 인권유린이 심각하게 자행되고 있다.
     
    어제 남대문경찰서앞에서의 평화적인 기자회견에 진보노동뉴스기자가 연행됐고, 오늘은 21세기대학뉴스기자 1명이 불법적으로 폭력연행되며 언론탄압사태까지 벌어졌다.
     
    현재 24일 <표현의자유>를 행사하려다 불법연행된 박주호, 박비호 회원을 비롯해 남대문경찰서앞에서 평화적인 기자회견에서 불법폭력연행된 4명의 코리아연대회원, 25일 서울지방경찰청앞에서의 평화적인 항의방문에서 불법폭력연행된 대표단 4명과 기자 1명 등 총 11명이 연행된 상황이다.
     
    생중계<농성팟>(http://www.raur.co/livepodcast/255282)을 통해 기자회견과 이후 항의서한전달과정에서의 경찰의 불법·폭력·성추행·인권유린실태가 그대로 생방송됐고 이후에도 생중계를 들을 수 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강신명경찰청장은 불법·폭력·추행에 대해 즉각 사퇴로 책임지며 모든 연행자를 석방하라!

     

    민주노총총파업 이후 행진과정에서 박근혜<정권>퇴진하라는 전단지를 배포하려다 경찰에 의해 영장없이 현행범으로 체포된 박주호·박비호 두명의 코리아연대 회원이 남대문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코리아연대는 저녁8시, 남대문경찰서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하였다. 이후 항의방문단은 남대문경찰서장면담을 요구했지만 경찰은 오히려 불법집회를 벌였다며 방패로 막고 면담을 거부하였으며,이에 코리아연대는 서장면담이 이뤄질 때까지 경찰서 진입을 막고 있는 방패앞에서 연좌하여 밤샘노숙농성을 이어갔다.

     

    이후 새벽3시경, 경찰은 밤샘노숙연좌농성을 하던 코리아연대항의방문단을 기습적으로 침탈하였다. 이 과정에서 4명의 회원이 불법적으로·폭력적으로 연행되었다. 변관수남대문경찰서장의 면담을 기다리며 밤샘노숙농성을 하며 모여있던 코리아연대 항의방문단에 대하여 경찰은 미란다원칙도 고지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둘러싸고 연행하였다. 사지가 들려나가고, 이를 저항하는 과정에서 3명의 코리아연대 회원들이 무릎·발목·손가락 등에 부상을 입고 앰블런스에 실려갈 정도로 심각한 폭력도 발생하였다. 뿐만 아니라 앞선 대치상황에서도 경찰이 항의방문단대표 4명을 강제로 끌어내리는 것을 막아나선 한 여대생은 경찰의 군화발에 짓밟히며 경찰서입구 계단에서 굴러 부상을 입는 심각한 폭력과 경찰이 잃어버린 자신의 핸드폰을 찾는다며 가방을 함부로 뒤지며 도둑으로 모는 만행을 저질렀다.

     

    더욱 천인공노할 일은 이 과정에서 여성회원들에게 성적수치심을 유발시킬 수 있는 심각한 성추행이 자행되었다는 점이다.

    한 여경은 여성회원의 속옷에 임의로 손을 넣는 명백한 성추행을 저질렀고 그 과정을 남자경찰들이 지켜보았다. 또한 앞서 남대문경찰서 현관입구에서 격렬한 몸싸움 과정에서도 남성전경들이 여성회원들 몸에 손을 대는 성추행도 발생하였다. 뿐만 아니라 연행과정에서도 여성회원의 바지가 벗겨지는 위험에 처하는 등 경찰과의 마찰과정내내 성추행이 이어졌다.

     

    어제·오늘 코리아연대는 1박2일 노숙농성이라는 완강한 투쟁으로 2명의 연행에 이어 4명의 추가연행이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남대문경찰서는 불법·폭력·성추행의 극단을 보여주며 박근혜<정권>의 말단충견조직으로서 추악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우리는 그 책임자인 강신명경찰청장의 사퇴와 더불어 다시는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엄격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연행자를 당장 석방하라. 만약 이를 거부한다면 강신명경찰청장은 그에 따른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분명히 밝힌다. 남대문서의 불법·폭력·추행에 대하여 일일이 법적책임을 물을 것이며, 나아가 이 심각한 인권유린의 현장에 대하여 국제적으로 폭로하고, 문제제기를 할 것을 엄숙히 선언한다.

     

    불법·폭력·추행경찰을 처벌하고 강신명경찰청장 물러나라!

    변관수남대문서서장 처벌하고 구은수서울경찰청장 징계하라!

    표현의자유 보장하고 모든 연행자를 석방하라!

    성완종 불법정치자금 박근혜부터 퇴진하라!

     

    2015년 4월25일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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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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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우야”… 홍준표와 우병우는 ‘특수관계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4/26 08:44
  • 수정일
    2015/04/26 08: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등록 :2015-04-25 11:28수정 :2015-04-25 14:08

 

왼쪽부터 홍준표 지사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진 연합/ 한겨레 김정효 기자
‘잘나가던’ 홍 검사가 우 수석 장인 도운 인연으로
검찰 선후배 떠나 사석에서 이름 부르는 막역한 사이
곤궁에 처한 지금, ‘병우야’라고 부른다면…
홍준표 경남지사는 평소 “병우야!”라고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을 부른다. 새까만 검찰 후배여서만이 아니다. 안면만 트면 ‘형님, 동생’ 하는 홍 지사의 붙임성 좋은 기질 때문도 아니다. 우 수석도 홍 지사에겐 어렵게 대한다고 한다. 두 사람을 ‘특수관계’로 엮어준 매듭은 우병우 수석의 장인 이상달(2008년 작고) 전 정강중기·건설 회장이었다.

 

 

이씨는 경기도 화성에 있는 기흥컨트리클럽의 대주주였다. 기흥골프장은 퇴직 경찰관의 모임인 경우회가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사업권을 따내 이상달씨의 자본을 가지고 만든 골프장이다. 사업권을 경우회에 내줬는데 골프장 지분의 과반이 이씨와 그 지인들에게 넘어간 것으로 드러나자 경우회 간부들이 수사를 받게 됐다. 전직 경찰총수 등 고위직들이 줄줄이 연루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3년 5월부터 7월까지 이인섭 전 경찰청장과 옥기진 전 치안감 등 전직 경찰 수뇌부 5명이 이상달씨에게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씨에게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그런데 검찰은 지병이 악화해 수감생활을 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이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이씨의 나이가 54살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이례적이다. 이 사건을 서울지검 특수3부가 맡았는데 정홍원 전 총리가 당시 특수3부장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상달씨는 기흥골프장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 검찰 수사와 골프장 인수 과정에서 이씨에게 음으로 양으로 많은 도움을 준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지금의 홍준표 지사였다. 홍 지사는 이런 사실을 주변 지인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고 한다. 홍 지사가 이씨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도움을 줬는지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그 무렵 홍지사가 무척 ‘잘 나가던 검사’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상달씨가 서울지검 수사를 받는 등 어려움을 겪던 1993년 홍 지사는 서울지검 강력부 검사로 재직하며 한참 성가를 높이고 있었다. 돈을 받고 슬롯머신 업자에 대한 내사를 무마해줬다는 혐의로 검찰 상사이던 이건개 당시 대전고검장을 구속 기소한 것도 그 시절이었다.

 

 

어쨌거나 어려운 시절에 도움을 받은 이상달씨로선 홍 지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사람일 것이다. 홍 지사에게 두고두고 은공을 갚아야 하는 장인의 처지를 둘째 사위 우병우 검사도 모를 리 없었을 거다. 홍 지사가 기흥골프장에서 파격적 대우를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였을지도 모른다.

 

 

지난 3월26일 공직자윤리위원회 발표를 보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이 409억 2599만원의 재산을 신고해 정부 고위 공직자 가운데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 비해 12억여원이 줄었지만 고위공직자 1825명 가운데 재산 1위엔 변동이 없었다. 본인과 부인이 보유한 채권이 166억9000여만원, 예금이 166억7000여만원이었다. 그런데 우 수석의 실제 재산은 이보다 훨씬 더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부인이 보유한 기흥골프장 지분 때문이다. 기흥골프장은 현재 (주)삼남개발이 운영하고 있다. 삼남개발의 모회사는 (주)에스디엔제이홀딩스다. 이상달씨가 2008년 사망하자 부인과 네 명의 딸이 각각 20%씩 에스디엔제이홀딩스 지분을 물려받았다. 이에 따라 우 수석의 부인도 에스디엔제이홀딩스의 주식 2200주(자본금의 20%)를 보유하게 됐다. 에스디엔제이홀딩스의 액면가는 5500만원에 불과하지만 토지를 포함한 자산총액은 1967억원에 이른다. 우 수석 부인의 지분을 액면가가 아니라 자산총액으로 따지면 어마어마한 재산이 되는 것이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함께 우병우 민정수석도 수사에서 손을 떼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새누리당에서도 민정수석 교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한겨레티브이(TV)> ‘정치 토크 돌직구’에 출연해 ‘실패한 기획사정 수사’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물어 우병우 민정수석을 경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도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를 독립적으로 수사하려면 우 수석의 직무를 정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정수석이 어떤 형태로든 검찰 수사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우 수석이 홍 지사와 특수한 인연으로 묶인 사이란 점을 감안하면 수사의 객관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아질 수 있다.

 

 

홍준표 지사는 지금 매우 곤궁한 처지에 몰려 있다. 언제 검찰 소환장이 날아들지 모르는 상황이다. ‘병우야, 이번엔 니가 나를 좀 도와줘야 하겠다’며 우 수석의 전화번호를 누르고싶은 심정이 굴뚝같을 것이다. 1993년 서울지검 강력부 홍준표 검사는 자신이 구속한 박철언 국민당 의원에 대한 뇌물혐의 마지막 재판에서 이런 말을 했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오른 결과 밀랍 날개가 녹아 처참하게 추락하는 이카로스의 최후를 피고인에게서 본다.” 홍 지사야말로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아오른 이카로스의 운명에 가까워지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홍 지사를 바라보는 우병우 수석의 심경도 복잡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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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서구을, 정치 바꾸는 기폭제 될 것인가?

 
 
[격전지 르뽀] 4.29재보선, 광주 서구을을 가다 - ①
 
임두만 | 2015-04-25 10:04:4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4.29재보선 사전투표일을 하루 앞둔 23일, 광주 서구을의 현지 분위기 탐색에 나섰다. 11시에 자동차가 서초IC를 빠져나왔는데 광주 도착은 오후 4시가 넘어서였다. 도중에 휴게소 2번 들르고 점심먹고 하느라 게으름을 피웠더니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하지만 이 또한 ‘기자정신’이 발동, 호남행 자동차들이 많이 쉬는 휴게소에서 귀동냥으로 광주 소식을 들어야 한다는 계획이었는데, 그 계획은 잘 들어맞았다. 생각보다 수확이 좋았다. 곳곳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은 거의가 선거 얘기였다.

그중 중년남자들 4~5명이 둘러앉은 자리에서 나온 얘기들…

“아따…이번에는 바꿔야 한당게”
“그르케해서 야당이 힘이 빠져불믄 여당 견제는 짠당가”

“시방 야당이 야당이당가. 여당 2중대여”
“아따…”

“그래도 정권교체를 할라믄…”
‘정권교체? 이대로 야당이라믄 절대로 못하네“

“그라믄 천정배가 한당가?”
“천정배가 못해도 야당 체질을 바꿀 수는 있어“

“그래서 어느 세월에?”
“천정배가 으째서…”

“그려도 여론 지지율이…”
“아따…문재인도 사시, 천정배도 사시, 문재인은 대통령 비서실장만 했재”

“그람…천정배는 국회의원 4선에다 법무장관했는데 깜으로 치면 문재인하고 뭐시 달러?”
“하기사…언제 광주선거가 전국적 관심을 끌기나 했어?”

“그라제…그것만도 천정배 공이여”
“그람. 후보들이 경쟁하믄 투표할 때 고를 재미라도 있응게”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들을 기억 속에 저장하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해서 서울에서 광주를 5시간 넘게 달려서 광주에 도착한 것이다.

그리고 각 후보들의 선거 캠프가 모여 있는 풍금 사거리 부근에 숙소를 잡고 자동차를 주차시킨 뒤 본격적인 여론탐방을 위해 이른 저녁시간이지만 근처 식당에 들렀다.

“아따 시끄러서 장사도 안 되요. 언능 선거가 끝나부러야재”

이행심(56 가명)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식당 아주머니의 선거에 대한 반응이었다. 서구을 유권자인데 선거를 할지말지는 그날 가 봐야 알겠단다. 그 유권자는 여당도 야당도 무소속도 관심이 없는 무관심 층이었다. 그런데 다른 자리에서 술좌석을 갖던 일행의 대화가 들렸다.

“그란디 권노갑 일행이 노인정에서 쫓겨났다는디?”
“뭐시? 으째서?”

“노인정 노인들이 ‘여그는 뭐하러 오요? 여그 온다는 것이 그동안 잘못했당 것 아니요? 그랑게 선거 때 여그 올 생각하지 말고 평소에 잘하라고 하씨요’라고 말하며 권노갑 일행에게 면박을 줬다잖어”

“그려? 그말은 맞재. 노인들이 바른말 했구만”
“그래서 권노갑씨가 유세차에 오르기는 했는디…마이크 유세는 안 하고 인사만 했당게”

이 광경은 기자도 목격한 사실이다. 선거구 가운데서 가장 번화한 사거리는 풍암동과 금호동을 잇는 대로 사거리라 하여 ‘풍금사거리’로 부르는 교차로에 새정치민주연합 공천을 받은 조영택 후보의 유세차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권노갑 새정치연합 고문 일행이 도착했다.

▲새정치민주연합 권노갑 고문,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옥두 전 의원 등이 조영택 후보 유세현장에 도착,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휴대전화로 촬영… 임두만 
▲유세차에 오른 권노갑 고문, 임채정 전 국회의장, 김옥두 전 의원…하지만 이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지가 않다. 그 내막은 바로 유세차에 오기 전 노인정 방문에서 환영받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리므로 알게되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유세단을 이끄는 연사는 계속 권노갑 등 동교동계 원로들이 선거지원차 내려와서 노인정을 돌고 있으므로 곧 도착한다는 말로 청중들을 붙잡았다.

사실 청중이라고 해야 선거관계인(홍보팀 등)이고 일반 청중들은 바삐 걸음을 움직이고 있었으므로 거의 없었다고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유세 바람잡이는 “탈당은 김대중 정신이 아닙니다”를 외치며 “하나될 때 이길 수 있습니다”의 구호를 뒤따라 외치는 등 천정배 후보의 탈당지적에 온 힘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권노갑씨 일행이 유세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식당 손님들 말 그대로 권노갑 고문은 유세차에 오르긴 했으나 마이크를 잡지 않았다. 이들은 그 얘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상징적인 사건 하나에서 광주 서구을의 민심은 상당부분 파악되었다. 다음 회는 기자가 직접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선거 이야기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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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강진 사망자 1천500명 넘어..."81년만에 최악 참사"

 
게시됨: 업데이트됨: 
NEPAL
 
 
 

업데이트 : 2015년 4월26일 01:20 (기사 대체)

인도·방글라·중국 등서도 사상자 속출…에베레스트 산사태로 10명 사망 
주네팔 대사관 "현지 공사현장 한국인 직원 1명 부상"

네팔 수도 카트만두 인근에서 25일 오전 11시56분(현지시간) 규모 7.9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해 1천500명 이상 사망하고 3천명 이상 다쳤다.

이번 지진은 1934년 카트만두 동부 대지진으로 1만여명이 사망한 이후 최악의 참사다.

아직 구호 작업이 완료되지 않아 사상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dpa통신은 네팔 정부 관계자를 인용, 수도 카트만두를 비롯해 네팔 전역에서 확인된 사망자가 1천457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또 34명이 사망한 인도를 비롯해 중국 12명, 방글라데시 2명 등 네팔과 국경을 접한 지역에서도 사망 피해가 잇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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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트만두서 81㎞ 떨어진 람중서 발생…카트만두 큰 피해

이날 지진은 정오 직전 수도 카트만두에서 북서쪽으로 81km, 대표적 휴양·관광도시인 포카라에서는 동쪽으로 68km 떨어진 람중 지역에서 발생했다. 진원의 깊이는 약 11km로 얕은 편이다.

첫 지진이 발생한 이후 2시간 30분여 동안 14차례의 여진도 이어졌다.

전체 희생자의 절반 정도는 수도 카트만두를 포함해 진원 부근인 카트만두 계곡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옛 왕궁과 수백년된 사원 등 오래된 건물 상당수가 붕괴했으며 도로, 통신망도 여러곳에서 단절됐다.

1832년 세워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카트만두의 '랜드마크' 다라하라(빔센) 타워는 이번 지진에 완전히 무너졌다.

9층 62m 높이인 이 타워는 8층에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이곳에서만 180명이 매몰돼 사망했다.

네팔을 대표하는 에베레스트산도 지진 피해를 당했다.

눈사태가 일어나면서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있던 10명이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했다고 네팔 관광청 관계자는 전했다. 현재 에베레스트 산에 고립된 등반객도 상당수로 알려졌다.

네팔과 이웃한 인도에서도 북동부 비하르 주와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등에서 36명이 사망했다. 웨스트벵골 주의 한 학교에는 계단이 무너지면서 학생 40여명이 다쳤다고 인도 NDTV는 전했다.

중국에서도 네팔과 가까운 시짱(西藏·티베트) 등에서 12명이 사망했으며 방글라데시에서도 2명이 숨졌다.

nepal

지진으로 쓰러진 카투만두 건물들



◇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 한국인 직원 1명 부상

한국인은 네팔 현지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한국 기업 직원 1명도 다친 것으로 파악됐다.

주네팔 한국대사관은 카트만두 북쪽 70㎞에 있는 어퍼 트리슐리 지역에서 수력발전소 건설 공사에 참여한 K건설 사무소가 지진에 일부 부서지면서 한국인 직원 1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이 직원은 얼굴에 상처를 입었으나 큰 부상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네팔에는 현재 우리 국민 약 650명이 체류하고 있으며 여행객 다수도 방문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네팔 주재 한국 대사관은 카트만두 등 지역에 있는 대부분 교민은 인명 피해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면서 현지 민박업체와 여행사 등을 통해 관광객 피해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카트만두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최진석 사장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지진으로 건물 담장 일부가 부서지고 찬장이 쓰러졌다"며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직원들과 마당에 나와 있다"고 말했다.'

◇ 인도,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긴급 구호 지원

인도 정부는 자국도 30여명의 사망자가 났지만 더 큰 피해를 본 네팔을 돕기 위해 공군 수송기 등 4대에 의약품 등을 실어 구호인력과 함께 네팔에 보냈다.

미국도 구호팀과 함께 100만 달러 상당의 구호물자를 지원하기로 했다.

중국도 40명의 국제구조대를 파견하기로 했으며 러시아도 50명의 재난전문 구조대원이 네팔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끝냈다고 밝혔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나와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도 네팔 구호활동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지진은 1934년 네팔 대지진 이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네팔에서는 지난 1934년 카트만두 동부를 강타한 규모 8.0 이상 최악의 강진으로 1만700명의 사망자가 났으며 1988년에도 동부 지역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발생해 720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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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is photo provided by Guna Raj Luitel, an injured woman is carried just after an earthquake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powerful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ollapsing houses, leveling centuries-old temples and cutting open roads in the worst temblor in the Himalayan nation in over 80 years. (Guna Raj Luitel via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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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is photo provided by Guna Raj Luitel, people walk next to ruble after an earthquake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powerful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ollapsing houses, leveling centuries-old temples and cutting open roads in the worst temblor in the Himalayan nation in over 80 years. (Guna Raj Luitel via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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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group of people gather outdoors on a street as an earthquake hits Kathmandu city,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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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jured people receive treatment outside the Medicare Hospital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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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palese people huddle together outside the Medicare Hospital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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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 injured child receives treatment outside Medicare Hospital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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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ople walk past damage caused by an earthquake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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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 man walks past damage caused by an earthquake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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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man carries a dog and walks past damage caused by an earthquake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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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ople gather in an intersection near a damaged building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Tashi Sher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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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group of people gather outdoors as an earthquake hits Kathmandu city,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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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building stands damaged after an earthquake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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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unteers help with rescue work at the site of a building that collapsed after an earthquake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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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 Injured person receives treatment outside the Medicare Hospital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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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unteers help with rescue work at the site of a building that collapsed after an earthquake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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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tients wait at the parking lot of Norvic International Hospital after an earthquake hit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powerful,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ollapsing houses, leveling centuries-old temples and cutting open roads in the worst temblor in the Himalayan nation in over 80 years. (AP Photo/Binaj Gurubachar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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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 injured child lies on the ground outside the Medicare Hospital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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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lunteers help with rescue work at the site of a building that collapsed after an earthquake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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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scuers clear the debris at Durbar Sqaure after an earthquake in Kathmandu, Nepal, Saturday, April 25, 2015. A strong magnitude-7.9 earthquake shook Nepal's capital and the densely populated Kathmandu Valley before noon Saturday, causing extensive damage with toppled walls and collapsed buildings, officials said. (AP Photo/ Niranjan Shrest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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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이 두렵나"... '근혜장벽' 거두지 않은 경찰

 

[최종신] 세월호 추모제, '평화 해산'... "시행령 폐기 않으면 5월 1일 철야행진"

15.04.25 12:29l최종 업데이트 15.04.25 22:01l

 

 

[특별취재팀] 
취재 : 김시연 선대식 / 사진 : 권우성 이희훈 
동영상 : 김윤상 박정호 최인성 곽승희 강신우 송규호 박소영
편집 : 김도균 박혜경 김지현 / SNS : 박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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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로 만든 리본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16연대와 4.16가족협의회 주최로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렸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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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16연대와 4.16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린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아직 세월호에 사람이 있다'는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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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에서 유가족들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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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최종신 : 25일 오후 8시 12분]
경찰, 광화문 광장 북쪽에 폴리스라인 설치... '장벽' 쌓을 준비

평화로운 행진 끝에 광화문 광장에 모인 이들의 손엔 촛불 뿐이었지만 경찰은 끝내 '근혜 장벽'을 거두지 않았다. 경찰이 지키려는 대상이 국민이 아닌, 청와대와 한국에 있지도 않은 박근혜 대통령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25일 오후 서울 동서남북 각 방향에서 출발해 거리를 누빈 세월호 추모 행진단 2000여 명은 광화문 분향소에 이르러 5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2시간 넘게 이어진 거리 행진동안 경찰과 충돌은커녕 심각한 교통 체증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동안 경찰 차벽이 시민과 경찰 사이에서 불필요한 충돌과 장시간 교통 체증 원인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4·16가족협의회와 4월16일의약속연대(4·16연대)에서 이날 오후 6시 광화문 광장에서 범국민 추모제를 시작하기에 앞서 평화 행진을 택한 것도 자신들을 '폭력 시위자'로 매도하는 경찰과 일부 보수 언론에 일침을 가할 목적이었다. 

이들은 약속대로 이날 오후 7시 40분쯤 행사를 마치고 평화롭게 해산했다. 하지만 경찰은 광화문 광장 북쪽에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는 한편 곳곳에 경찰 버스와 경력을 대기시켜 놓고 언제라도 '장벽'을 쌓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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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16연대와 4.16가족협의회 주최로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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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진 대비해 벽설치한 경찰 25일 열린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범국민 추모문화제가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가운데 경찰 병력이 행진을 대비해 벽을 설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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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에서 유가족들이 슬픈 표정으로 앉아 연설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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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16연대와 4.16가족협의회 주최로 열린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에서 유가족과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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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4.16연대와 4.16가족협의회 주최로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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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4·16연대 공동운영위원장은 "우린 오늘처럼 평화롭게 진실을 밝히려고 하지만 우리가 목소리를 조금 높이는 순간 (경찰의 에스코트가) 차벽과 물대포, 캡사이신(최루액)으로 변할 것"이라면서 "저들이 차벽으로 가로막고 우리가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은 진실을 밝히려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마음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명선 세월호가족대책위 운영위원장도 "경찰은 우리를 폭력 집단이라고 호도하고 고립시키려고 했다"라면서 "시민들을 연행하고 가족을 폭행하고 기본 윤리조차 지키지 못하는 경찰과 정부, 대통령은 더는 우리 물음에 답하지 않을 것 같다"라고 꼬집었다. 

전 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들어온다면 쓰레기 같은 시행령 폐기하고 세월호 진상 규명하고 후손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기본적인 권리를 만든다고 답해야 한다"라면서 "답변이 없다면 오는 5월 1일에는 청와대로 발걸음을 옮겨 박 대통령에게 답변을 듣도록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노동절인 오는 5월 1일과 2일 이틀동안 이어지는 '철야 행동'에 동참해 달라고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전날 총파업을 함께 한 최종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도 "5월 1일 노동절에 10만 명이 모일 텐데 박 대통령이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을 폐기하지 않고 수정만 해 통과시키면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1박 2일 투쟁에 함께할 것"이라고 동참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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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역을 출발한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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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역을 출발한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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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대입구를 출발한 세월호참사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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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역을 출발한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들이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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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25일 오후 6시 10분] 
'고3도 나왔어요' 시민 2천명 세월호 추모 평화행진


세월호 추모 행진단 앞을 가로막는 장벽은 없었다. 

25일 오후 5시쯤 용산역부터 2시간동안 행진을 벌인 남쪽 행진단 600여 명을 시작으로, 서울 각 지역에서 출발한 세월호 추모 행진단이 속속 광화문 광장으로 집결하고 있다. 이날 오후 3시쯤 청량리역, 홍대 앞, 용산역, 청량리역, 성신여대역 등 4군데에서 출발한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은 모두 2000여 명에 달했다. 

출발 당시 1000여 명 정도였던 참가자들은 행진 중반을 거치며 2배 가까이 불었다. 홍대 앞에서 출발한 서쪽 행진단이 700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남쪽 용산역 참가자가 600여 명, 북쪽 성신여대가 450여 명, 동쪽 청량리역이 350여 명 정도였다. 

이들은 서울 주요 도로에서 차로 1차선만 차지한 채 행진해 차량 흐름도 크게 방해하지 않았다. 경찰은 애초 지역별로 200~300명 정도 참가를 예상하고 인도 행진을 유도하려다 참가자가 불어나자 뒤늦게 차량 통제 요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1시간여 가까이 행진단이 방치되다시피하면서 차량과 뒤엉켜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행진은 특별한 주도자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다. 세월호 유가족과 일부 시민들은 4.16연대가 예고한 대로 '침묵 행진'을 벌였지만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시행령 폐기하라" "감추는 자가 범인이다" 구호를 함께 외쳤다. 일부 학생들은 거리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며 동참을 호소했다. 

이날 행진에는 사제복을 입은 천주교 신부와 수녀, 원불교 교무 등 종교인을 비롯해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홍대앞에서 출발한 서쪽 행진단에는 단원고 희생자 또래인 '고3' 학생들도 상당수 끼어 있었다. 권민아, 신현재, 이채영 학생은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는 것보다 유가족들 마음을 (위로하고), 철저한 대응을 하지 못한 정부의 무책한 행동을 밝히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우리 참여가 보탬이 될 거라 생각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고3도 나왔어요'란 팻말을 들고 행진한 이윤형군은 "나도 동생이 있는 형인데 (세월호 진상이) 지금 안 밝혀지지 않으면 (세월호 같은 사고가) 또 일어날 수 있다"면서 "지금 안 일어나게 해야 더는 얘들이 안 죽을 것 같아 나왔다"고 밝혔다. 

행진을 마친 참가자들은 광화문 분향소에서 헌화와 분향을 마친 뒤 오후 6시부터 광화문 중앙 광장에서 열리는 세월호 범국민 추모 문화제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날 오후 서울시청 광장에서 공적연금강화 국민대회 참가자 일부도 추모 문화제에 결합할 예정이다. 이날 국민대회엔 전국공무원노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한 '공적연금강화 공동투쟁본부'와 시민 등 4만여 명이 참가했다. 

[1신 보강 : 25일 낮 12시 55분]
"추모할 권리 찾겠다"... 동서남북서 '세월호 침묵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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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역을 출발한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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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용산역을 출발한 세월호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 특별법 대통령령 폐기 촉구 범국민추모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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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추모할 권리가 있다."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이 다시 거리에 나선다. 공권력에 빼앗긴 추모할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다. 

선 행진, 후 문화제. '4월 16일의 약속 국민연대(아래 4.16연대)'는 25일 오후 서울 동서남북에서 광화문 분향소까지 '썩은 정권, 시행령 폐기 4.25 진실과 추모 행진'을 진행한 뒤 광화문 광장에서 추모 문화제를 열기로 했다.

선 행진 후 문화제... 동서남북서 광화문 집결

광화문 광장이나 서울시청 광장에 모여 대규모 추모 문화제를 연 뒤 청와대나 광화문 분향소로 행진을 시도했던 지금까지 행사와 순서가 다르다.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은 이날 오후 3시 청량리역 광장, 홍대 정문 앞, 용산역 광장, 성신여대입구역 CGV 앞 등 서울 지역 4곳에 먼저 모여 광화문 광장까지 행진한다. 이들은 오후 5시쯤 광화문 분향소에 모여 희생자 영정에 헌화와 분향을 마친 뒤 오후 6시부터 광화문 중앙광장에서 범국민 추모 문화제를 진행한다.

경찰은 지금까지 세월호 가족과 시민들의 평화로운 추모 행진조차 6중 차벽으로 가로막고 캡사이신과 물대포로 시민을 공격했다. 지난 4월 11일 시민 수천 명이 자정 넘도록 청와대 앞까지 행진을 시도했지만 경찰의 차벽을 넘지 못했고, 세월호 참사 1주기인 4월 16일에는 광화문 분향소로 향하는 수 만의 추모 행렬마저 막았다. 지난 4월 18일엔 광화문 앞에 고립돼 있던 세월호 유가족들이 경찰 차벽을 뚫고 광화문 광장에 모여든 시민들과 만나기도 했다.  

4.16연대는 이날 시민들에게 추모할 권리가 있음을 밝히는 의미로 '침묵 행진'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추모 행진 참가자들에게도 작업복, 가운, 교복 등 자신을 나타낼 수 있는 옷을 입고 노란리본, 노란 팔찌, 노란 손수건 등 4.16 추모 상징물, 침묵과 저항을 표현하는 마스크 등을 착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광화문 분향소까지 평화 행진... 경찰 차벽으로 막으면 완강히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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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참사 합동분향소에 부모와 아이들이 헌화한 뒤 고개숙여 묵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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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세월호참사 합동분향소에 아빠와 함께 온 어린이가 헌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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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겹겹이 설치된 '근혜산성' 세월호참사 1주기를 맞아 18일 오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특조위 시행령 폐지와 세월호 인양을 촉구하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유가족들이 농성중인 광화문앞으로 행진을 시작한 가운데, 경찰이 바리케이드를 겹겹이 설치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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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연대는 지난 23일 호소문에서 "25일에는 추모할 우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평화적인 추모 행진에 나선다"면서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 4월 16일에도, 18일에도 하지 못한 헌화와 분향의 추모의식을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론의 질타를 당하고 있는 경찰은 차벽을 세울 수 없다"면서 "만약 다시 경찰이 차벽을 세운다면 그 차벽 앞에서 완강한 저항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24일 민주노총 총파업에 동참했던 4.16연대는 박근혜 대통령 귀국과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차관회의 상정에 맞춰 오는 5월 1일 노동절 1박 2일 '철야 행동'도 예고했다. 이날 동쪽 행진은 청량리역 광장을 출발해 경동시장 사거리, 제기동역,  신설동역, 동묘앞역, 동대문역, 종로5가역,  종각역(보신각)을 거쳐 광화문광장에 도착한다. 

서쪽 행진은 홍대 정문을 출발해 산울림소극장, 창천동삼거리, 신촌역, 이대역, 아현역, 서대문역을 거친다.

남쪽 행진은 용산역 앞을 출발해 용산우체국. 삼각지역, 남영삼거리, 숙대입구역, 청파동입구 교차로, 서울역, 남대문, 한국은행, 서울시청을 거친다.

마지막으로 북쪽 행진은 성신여대입구 역(CGV) 앞을 출발해 한성대입구역, 혜화동로터리,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이화사거리, 원남동사거리, 안국역을 거쳐 광화문 광장에 합류할 예정이다. 

4.16참사국민대책회의 관계자는 "평화로운 행진을 막는 건 위헌, 위법인데도 경찰은 지금까지 차벽까지 동원해 심하게 막았다"면서 "오늘 서울 동서남북에서 모여 광화문 분향소에 추모하러 가는 합법적인 행진까지 막는다면 경찰 스스로 위법성을 드러내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4.16연대는 이날 추모 문화제 이후 추가 행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이날 주한 미국 대사관 주변을 비롯해 광화문 광장 곳곳에 경찰 버스와 경력을 대기시켜놓고 언제라도 차벽을 쌓을 기세다. 

오마이TV는 이날 세월호 추모 행진과 추모 문화제 전 과정을 생중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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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을 향한 국민 행진' 포스터
ⓒ 4.16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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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선자금 의혹, 이렇게 가려지고 있다

 
 
빛의 속도로 이뤄지는 본말전도, 동원된 다양한 꼼수들
 
육근성 | 2015-04-24 14:29:2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줄기가 곁가지로, 곁가지가 줄기로 대체된다. ‘성완종 리스트’가 가리키는 것은 이완구나 홍준표, 김기춘이 아니다. 이들은 곁가지다. ‘리스트’가 가리키는 핵심은 2012년 대선 당시 친박 3인방(홍문종-유정복-유병수)이 ‘검은돈’을 받았다는 대선자금 의혹이다.


뒷전으로 밀려난 대선자금 의혹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 직능총괄본부장이었던 허태열 전 비서실장에게 7억원을, 2012년 대선 당시 홍문종 의원과 서병수 시장에게 각각 2억 원씩을, 유정복 시장에게 3억을 줬다는 망인의 폭로는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폭탄의 ‘뇌관’이다. 불법대선자금 의혹으로 번질 경우 박근혜 정권의 정통성이 뿌리째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새 ‘친박 3인방 의혹’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 자리를 ‘이완구 3천만 원’과 ‘홍준표 1억 원’, ‘김기춘 10만 달러’가 대신한다. 언론들은 ‘이완구-홍준표-김기춘’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여당은 ‘성완종 특별사면 비리’가 노무현 정부의 소행이라며 맞불 작전에 나선다. 이러면서 본말 전도 현상이 빠르게 진행된 것이다. 곁가지가 줄기를 밀어내는 형국이다.

포털에 등장하는 기사 개수를 세어보면 ‘이완구-홍준표’ 관련 기사가 대선자금 의혹(홍문종-허태열 등)에 비해 수십 배나 많다.(뉴스타파 조사/4.9~4.20) 사안의 중요성이나 주고받은 액수에 비추어 봐도 후자가 전자보다 훨씬 비중이 커야 하건만, 며칠 사이에 거꾸로 뒤집힌 것이다.


신속한 본말전도… 곁가지가 줄기, 줄기가 곁가지

부여·청양 재선거에 출마한 이완구 총리에게 건넸다는 3천만 원,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홍준표 지사에게 줬다는 1억 원, 2006년 박 대통령을 수행해 독일에 갈 때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게 여비조로 제공했다는 10만 달러, 이런 것들이 전면에 등장하면서 불법대선자금 의혹은 뒷전으로 밀린 상태다.

지난 대선에서 ‘친박 3인방’의 역할은 컸다. 실질적으로 이들이 ‘박근혜 당선’을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문종 의원의 캠프 직책은 조직총괄본부장. 전국을 지역단위로 나눠 ‘중앙->광역시도->시군구->읍면동’에 이르는 피라미드식 조직을 구성해 선거를 관리했다. 당시 언론들은 홍 의원이 주도한 조직총괄본부가 719개 단체를 영입했으며, 60만 명에 달하는 소속인원을 거느린 거대조직이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본부에는 상근직원만 200명이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정복 인천시장의 당시 직책은 직능총괄본부장. 전국단위의 노조, 운수조합, 버스조합, 택시조합, 비용사협회, 요식업 단체 등등 직업·업종별 조직을 활용해 박근혜 후보의 지지지층을 확보해 나가는 역할을 했다. 많은 돈을 뿌려야 하는 자리다. “직능 분야의 조직을 관리하기 위해 1,000억 원이 필요했다”는 얘기도 있다. 당시 박근혜 캠프 관계자가 언론에게 한 말이니 상당한 신빙성을 부여해도 좋을 듯하다.


많은 돈 필요했을 홍문종-유정복-서병수

서병수 부산시장의 당시 직책은 당무조정본부장. 선거자금과 보급품 조달 등 캠프 살림을 총괄하는 자리였다. 새누리당 사무총장을 겸하고 있었으니 당과 캠프의 살림을 모두 도맡아 관리한 셈이다. 선거자금에 대한 공식적 책임자이기도 했다.

선관위가 규정하는 선거운동 범위를 지키면서 대규모 조직을 동원·관리하는 건 불가능하다. 선관위에 신고할 수 없는 지출이 많이 발생했을 거라는 얘기다. 회계 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거액의 자금을 외부에서 당겨쓰지 않고는 대선 같은 큰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뉴스타파>가 당시 박근혜 캠프 출입기자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보통 먹으면 한 2만원 3만원 짜리 먹었으니까 100만 원은 최소 넘어갔을 것 같은데요. 그걸 거의 정기적으로 자주 했으니까 액수가 꽤 돼죠? 저희가 농담으로 이걸 어떻게 신고하냐고, 이거 걸리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그냥 하하하 웃고 대답 안 했던 것 같아요.”


치부 감추기 위해 동원되는 꼼수들

언론은 ‘이완구-홍준표-김기춘 의혹’에 집중하고, 새누리당은 ‘성완종 특별사면’을 노무현 정부가 주도했다며 비리 의혹을 제기한다. 대통령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완전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이번 의혹을 ‘정치권 전반’의 문제로 확대함으로써 논지를 희석시키려 한다. 법무부장관은 전 정권 비리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검찰은 ‘이완구와 홍준표가 먼저 소환대상’이라고 말한다.

이러는 이유는 뻔하다. ‘성완종 리스트’가 2012년 박근혜 대선캠프 불법자금 의혹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 일차 목표일 것이다. 또 불가피하게 대선자금 수사로 이어질 경우 ‘우리만 당하지 않겠다’는 게 그 다음일 터, ‘야당도 불법자금 받았다’는 근거를 찾아내 맞불 작전을 펴서라도 최소한 ‘비기기 게임’으로 몰아가겠다는 꿍꿍이다.

조그만 꼬리로 큰 몸통을 가리려 하고, 작은 곁가지로 굵은 줄기를 대신하려 하고, 사소한 것으로 중요한 것을 덮으려 한다. 치부를 감추기 위한 다양한 꼼수가 펼쳐지고 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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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대에 날개 달아줄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자위대에 날개 달아줄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2015. 04. 24
조회수 57 추천수 0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 라인) 개정이 임박했다. 지난해 이미 그 내용이 공개됐으나, 26일로 예정된 아베 총리의 방미에서 최종 확정된다. 이번 협력지침 개정에서는 우주 분야와 해양 감시 분야의 협력에 관한 내용도 담겨 있다. 우주 분야에서 의심스러운 위성 등을 탐지하는 우주 상황 모니터링(SSA)의 정보 공유가 명기될 예정이다. 미일이 해양 진출뿐만 아니라 위성 공격무기(ASAT) 등의 개발에 협력하려는 것은 우주에서의 활동을 추진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억지력 향상을 꾀하고 있는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미일의 가이드라인 개정은 동북아시아 정세를 반영한다. 1978년 가이드라인이 처음 만들어지기 직전에는 인도차이나반도가 공산화됐다. 이에 일본 뿐 아니라 미국 역시 공산화 도미노에 대한 안보우려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1997년 2차 개정 3년 전에는 김일성 주석 사망에 뒤따른 한반도 전쟁위기가 있었다. 북핵 개발의혹도 불거지면서 미·일은 가이드라인에 한반도 유사시를 주의 깊게 다뤘다. 2015년 현재 두드러진 변화는 중국의 부상과 중일갈등이다. 
  이 가이드라인 개정은 미·일 안보조약을 바탕으로 변화된 국제정세에 일본 자위대와 미군의 대응방향이 담겨있다. 그간의 행적을 단순히 반영하기도 하고 선제적으로 앞으로 취할 지침을 담고 있기도 하다. 2번 개정될 때마다 자위대의 활동범위는 조금씩 넓어졌고 미국과 일본은 군사적으로 일체화됐다. 이에 국내·외의 반발이 있었으며 이번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이번에 일본은 미국 후방지원을 보다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길을 더욱 과감하게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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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

 

 자위대, 전세계 누비게 되나?

 

  미·일 방위협력지침 2차 개정은 ‘중국의 부상’이라는 거대한 변화에 대응해 자위대가 전 세계를 무대로 미국을 더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이 뼈대를 이루고 있다. 현재 미·일은 지난해 10월3일 발표한 ‘미·일 방위협력지침의 개정에 관한 중간보고’를 발표하며 미·일 방위협력지침 대강의 내용을 밝혔다. “(미·일) 동맹은 아시아·태평양과 ‘이것을 넘어서는 지역’에 대한 긍정적인 공헌을 계속하는 국제적 협력의 기반”, “미·일 양국의 전략적 목표와 이익은 완전히 일치하며 아시아·태평양과 ‘그것을 넘어서는 지역’의 이익이 된다”라고 되어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되어있는 현행 가이드라인에 비교해 보면 미·일이 군사적으로 한 몸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선 이번 개정에서 미·일은 ‘주변사태’란 개념을 삭제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개정에서 미·일은 ‘주변사태’ 개념을 삭제하고 대신 자위대가 미국에 대한 지원을 넓힐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을 넣기로 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1997년 개정된 현행 미·일 방위협력지침에서는 일본 주변의 안보상황을 3단계로 나누고 각각 경우에 미·일이 어떤 역할을 맡는지 정하고 있다. ‘평소’, 일본이 공격을 받고 있는 ‘일본 유사사태’, 한반도와 대만의 유사사태를 뜻하는 ‘주변사태’ 등 3단계마다 미·일의 대응이 다르게 규정되어 있다. 
  주변사태라는 지역 제한이 사라지면 이론적으로 자위대는 중동이나 우크라이나 등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이것이 일본의 동맹국이 공격을 받으면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집단적 자위권’을 뒷받침하는 조항이 된다. 다시 말하면 이 지침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요한 근거가 된다. 그런 면에서 미·일 가이드 라인에서 주변사태 규정이 사라진다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와 관련해 <마이니치신문>은 지난해 10월1일 복수의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일본정부가) 현행 주변사태법(1999년 입법)을 폐지하고, 전 세계를 범위로 미국을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을 제정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변 사태법은 ‘무기와 탄약의 제공’, ‘발진 준비 중인 전투기 등에 대한 급유’ 등을 금지하고 있다. 여당인 자민당·공명당은 내부협의를 통해 이를 허용하는 쪽으로 가고 잇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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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

 

 일본은 왜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는가?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들어서 장기간 정체했다. 같은 기간, 중국은 10배 이상 성장해  2010년 일본을 누르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의 자리를 차지하며 이른바 ‘G2시대’를 열었다. 이제 한국 뿐 아니라 아세안 국가들의 제1교역국은 중국이다. 중국 역시 그동안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증강했다. 이에 자극받은 일본은 일본 군사력을 제약하는 갖가지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갖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한편 미국은 2008년 경제 위기, 10년 가까이 진행된 ‘테러와의 전쟁’이 실패로 끝난 이후 더 절실하게 동맹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했다. 미국은 이에 따라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도입을 일관되게 지지해왔다. 다시 말하면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미국의 전략의 일환이기도 한 셈이다. 결국 일본 군사대국화, 보통국가화 욕망에 미국이 맞장구를 쳐주는 셈이다. 
 이번 개정이 반영하고 있는 핵심적 정세변화는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일 공조다. 지난해 7월 초 아베 내각의 각의 결정 수정안에는 ‘일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으로 국민의 생명과 자유 등이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이 있을’ 경우 자위대는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범위의 구체적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 중에는 중국과의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을 상정한 ‘낙도 지역 불법행위 대응 등도 있다. 또 ‘한반도 유사시 피난하는 일본인 등 민간인을 수송하는 미국 항공기와 함선을 자위대가 호위하는 상황, 공해상에서 미국 함선이 공격받거나 미국을 겨냥한 탄도미사일이 발사되면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중동 해상무역로 기뢰 제거 활동 등도 포함됐다.                 
  한·미·일이 하나로 묶이는 미사일방어체계(MD·Missile Defense) 구축을 위해서도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갖는 문제는 중요하다. 이를테면 일본이 미군 기지로 향하는 북한 또는 중국의 탄도미사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거나 요격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 자체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미국의 아시아 전략과 MD 전략은 한 몸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1997년 1차 개정을 이 같은 흐름의 시발로 보기도 한다. 일본은 1990년 발발한 걸프전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은 걸프전에 130억 달러를 지원했지만 국제사회에서 거의 인정받지 못했다. 국제적 분쟁에 개입할 수 없는 일본의 군사·정치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순간이었다. 일본은 UN 분담금 비율 12%로 미국 다음으로 분담금을 많이 내는 국가지만 UN 상임이사국도 아니며 정식군대를 갖추지도 못한 상태다. 다시 말하면 걸프전에서의 쓰라린 경험이 일본의 ‘보통국가화’ 움직임을 추인했다는 것이다. 1997년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한 이후 일본의 행보는 거침없었다. 2001년 일본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일 발발하자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이지스함을 인도양에 파견했고 2004년 이라크전쟁이 발발할 때도 자위대를 파견했다. 2004년부터는 MD를 실전배치하며 군사적으로 미국과 더더욱 가까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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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미·일 동맹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미·일 동맹에 말려들어가는 한국

 

 미국과 일본은 한국을 군사동맹에 끌어들이고 있다. 4월 초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일본을 방문했다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양국에서 3국간 군사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동시에 일본은 한·일 군사 당국이 연료와 탄약 등 군수품을 상호 간에 융통할 수 있는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까지 요구할 전망이다. 한국 국방부는 “추진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복수의 일본 언론들은 4월12일 일본 정부가 5월 한일 국방장관 회담을 성사시키고 한국에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요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12일 “미·일 양국 정부는 미군에 대한 자위대의 지원을 확대하도록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하는 것을 지렛대 삼아 한국과 방위협력도 심화시킬 방침”이라며 “일본은 5월 한국과 국방장관 회담을 실현시켜 자위대와 한국군이 연료 등을 ‘상호융통’해주는 상호군수지원협정 체결을 위한 땅 고르기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일본은 미국에 대한 후방지원 범위를 넓혀 지금까지 금지되었던 ‘탄약’ 지원도 가능하게 하는 한편 미국 뿐 아니라 타국군에 대한 지원의 길도 열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한반도 유사사태가 발생하면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군수지원을 할 여지를 열어두려는 것이다. <니혼게이자신문>은 이와 관련해 “일본은 (양국 간) 안보협력 가운데 상호군사지원협정 체결을 우선과제로 보고 있다. 이것이 없으면 한국군에 대한 후방지원이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 "현재로서는 한일간 (과거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사안들도 있고 해서 추진하지 않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한일 국방장관 회담이 성사되면 일본이 상호군사지원협정 체결 문제를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 언론이 언급한 5월 한일국방장관회의는 5월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아시아안전보장회의’(샹그릴라 회의)로  얼마남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4월26일 미국을 방문한다. 그는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타결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대해 의견 조정을 거의 마무리 지었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4월8일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일본이 이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전에 공헌하기 위해 더 적극적인 역할을 다하려는 노력을 환영하고 지지한다”라고 밝혔다. 
  카터 국방장관은 4월10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한·미·일 삼국 미사일 방어체계(MD) 통합의 중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한민구 국방장관 역시 북한 핵·미사일 억제를 위해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을 표했다. 
한·미·일 군사동맹은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일 간의 군사협정이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정보공유약정 체결을 불과 사흘 앞두고 일방적으로 그 내용을 발표했다. 일본과의 군사협력이라는 중대한 사안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노력은 없었다. 한·일간에 상호군수지원협정, 그리고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이 불러올 군사적 파장에 우리 국방부는 현명히 대처할 수 있을까.

이규정 기자 okeygu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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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학교 차별.탄압 중단하라"

 
시민사회, 다음달 1일까지 '재일동포 인권주간' 선포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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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4  13: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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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당연필' 등으로 구성된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은 24일 정오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재일동포 인권주간'을 선포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재일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정부의 고교무상화 배제 등 차별정책에 대해 국내 시민사회단체들이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중단을 촉구했다.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고 국내 여론 확산을 위해 '재일동포 인권주간'을 선포했다.

'몽당연필', '지구촌동포연대KIN',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등 시민사회로 구성된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은 24일 정오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재일동포 인권주간' 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정태효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분단 70년, 광복 70년, 한.일수교 50년이지만 일본정부의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을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태효 공동대표는 "우리는 일본정부의 차별정책과 일본사회의 혐한시위 등을 그냥 목도할 수 없다. 끝나지 않은 일본정부의 차별정책을 폭로하기 위해 나섰다"며 "해방 이후 아픈 역사를 가진 재일동포들에 대한 차별을 멈출 것"을 촉구했다.

배덕호 '지구촌동포연대(KIN)' 대표는 "일본 내 조선학교는 70여 개이다. 이들은 모두 고교무상화에서 배제됐다"며 "해방 70년이다. 식민지배를 사과하지 않고 우리학교를 차별하는 것을 수수방관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해효 '몽당연필' 대표도 "우리가 이렇게 나선 것은 잊혀진 것들을 다시 기억해내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의 작은 행동이 진정한 평화와 화해, 역사를 바로잡는 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우리동포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이날 기자회견에는 10여 명이 참가했으며, 손미희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가 낭독한 기자회견문에서 이들은 "일본정부는 식민지배의 과거를 반성하고 우리 동포들에 대한 차별과 탄압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한 지 70년이 지났지만, 재일동포들에게 있어 일본의 차별은 끝나지 않았다"며 "혐한시위는 빈번해지고, 조선학교를 다니는 우리 아이들에 대한 교육적 차별, 물리적 폭력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한국정부는 재일 동포와 조선학교에 대한 일본정부의 차별과 박해에 대해 항의하거나 인권보호를 위해 노력하기는 커녕 '조선'국적자들의 입국을 가로막고 교류를 통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동포들이 우리말, 우리글을 지켜내기 위해 일본당국의 조선학교 폐교 조치에 저항해 맞서 싸웠던 1948년 4월 24일 '한신 교육투쟁의 날', 수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굴함없이 민족교육을 지켜온 동포들과 연대하기 위해 오늘 우리는 재일동포인권주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 선포 기자회견에 참가한 권해효 '몽당연필' 대표(왼쪽)와 손미희 '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다음달 1일까지 진행되는 '재일동포 인권주간'은 이날 선포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홍보 캠페인(25, 26일), △'재일조선학교의 차별과 고통-조선학교에도 배울 권리를' 순회강연(27~30일), △<우리학교>(29일), <항로>(30일) 영화상영, △'재일동포 차별반대, 고교무상화 적용 요구' 금요행동(5월1일) 등 행사로 이어진다.

특히, 순회강연에는 하세가와 '고교무상화에서 조선학교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 대표, 사노 미치오 호센대학 교수 등이 연사로 나선다.

이번 '재일동포 인권주간'은 지난 1948년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일본 오사카 효고현에서 벌어진 '한신 교육투쟁의 날'을 맞아 재일동포와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문제를 국내 여론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당시 '한신 교육투쟁'에서 김태일 조선고등학교 학생이 일본 경찰이 쏜 총을 맞아 사망했으며, 1백만여 명이 참가, 3천여 명이 구속되고 150명 부상, 2명이 사망했다.

 

   
▲ '재일동포 인권주간' 웹 포스터. [자료제공-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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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물대포 등장... 경찰, 교통혼잡 유도했나?

 
[기사수정 : 24일 오후 10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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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선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범어네거리에 모인 가운데 경찰이 불법 집회라며 물대포를 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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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파업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을 향해 경찰이 캡사이신을 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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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도 처음으로 물대포가 등장했다. 경찰은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선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캡사이신(최루액)을 살포했다. 이들의 대치로 범어네거리의 교통이 한 시간가량 마비됐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소속 조합원들은 노동시장 구조개악 반대와 공적연금 개악반대, 최저임금 1만 원 쟁취 등을 내걸고 24일 오후 2시부터 거리행진을 한 뒤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범어네거리에서 이들의 행진을 막았고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3000여 명은 3시 20분부터 경찰과 대치하면서 도로가 완전히 마비됐다. 경찰은 이들의 행진이 불법집회라며 해산하라는 방송을 계속해서 내보냈다.

경찰이 일부 노동자들을 에워싸자 다른 노동자들이 경찰을 에워싸고 비켜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경찰이 행진을 막았다며 당초 장소인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이 아닌 범어네거리에서 결의대회를 갖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3시 40분부터 "해산하지 않으면 물대포와 캡사이신을 살포하겠다"는 방송을 하고 3시 49분에는 "해산하지 않으면 불법집회 혐의로 체포하겠다"는 3차 경고방송을 내보냈다. 이에 맞서 민주노총 대구본부는 "경찰이 오히려 행진을 막고 있다"며 길을 열어줄 것을 요구했다.

민중의례를 마친 후, 세월호 참사 당시 구조된 안산 단원고 학생의 아버지 장동원씨가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 경찰이 물대포를 살포했다. 도로에 앉아 있던 노동자들은 황급히 일어나 물대포를 피하려 했지만 무장한 경찰이 압박하면서 물대포를 쏘아대자 허둥대기도 했다.

"정당한 총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하더니 평화행진을 폭력으로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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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파업 투쟁에 참가한 노동자들이 24일 오후 범어네거리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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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선 대구지역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24일 오후 2시부부터 반월당에서 범어네거리까지 행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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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서는 경찰과 노조원들의 충돌이 빚어지면서 경찰이 캡사이신을 살포하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들에게도 캡사이신이 살포됐다. 흥분한 노동자들은 "폭력경찰 물러가라"라고 구호를 외쳤고 일부 참가자들은 "근거리에서 물대포를 쏘는 것은 살인행위"라며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과 노동자들이 뒤엉키면서 범어네거리 일대는 아수라장이 됐다. 교통경찰의 신호에 따라 범어네거리로 진입하던 차량 한 대를 흥분한 일부 노동자들이 막다가 차량 앞 유리가 파손되기도 했다. 

약 40분 후 경찰이 물러나면서 결의대회는 다시 시작됐다. 다시 마이크를 잡은 장동원씨는 "국민 600만 명이 서명해 특별법을 만들었지만 정부가 다 뜯어고쳐 누더기가 됐다"며 "우리는 돈도 필요없고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우리의 아이들이 죽어야 했는지 알고 싶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임성열 민주노총 대구본부장은 "정당한 총파업을 불법으로 매도하더니 평화로운 행진을 경찰이 물대포와 폭력으로 막아섰다"며 "총파업은 오늘 하루가 아닌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 본부장은 이어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의 진실을 감추려 하는 것은 진실이 밝혀지면 정권이 무너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며 "대통령을 찬탈한 정권, 무능한 박근혜 정부를 퇴진시키자"고 힘주어 말했다.

임성열 본부장의 발언을 끝으로 범어네거리에서의 결의대회는 1시간 만에 끝이 났다. 하지만 경찰과의 대치로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한 시민은 "경찰이 길을 터주었으면 이렇게 혼잡스럽지 않았을 텐데 일부러 빌미를 만들어주는 것 같다"며 "시위 참가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있는데 물대포를 쏘고 최루액을 살포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경찰 "불법점거 주최 측과 주동자들, 검거해 처벌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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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파업 결의대회에 나선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이 24일 오후 반월당에서 범어네거리까지 행진하는 도중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하는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자 한 시민이 유인물을 받아 유심히 읽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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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 비방 유인물과 퇴진을 촉구하는 유인물들이 총파업 참가자들에 의해 24일 오후 길거리에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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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날 총파업에 참여한 노동자들은 반월당네거리와 경대병원역, 수성교 옆 둔치, 대구노동청, 대구상공회의소 등에서 동시다발로 거리행진을 벌였다. 노동자들은 행진을 하면서 "진실을 인양하라", "최저임금 1만 원으로" 등의 구호를 외치고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요구하는 전단지를 뿌렸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하는 유인물이 지하철역과 도로에 뿌려지기도 했다. 

경찰은 이날 14개 중대 1000여 명을 동원해 민주노총의 결의대회에 대비했으나 노동자들과의 충돌로 1명의 경찰관이 오른쪽 눈 부위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어 범어네거리를 불법 점거한 부분에 대해 검거전담반을 구성해 주최 측과 주동자들을 검거하고 처벌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이어 물대포는 대구에서 처음 사용했고 캡사이신은 지난 2013년 공무원노조 집회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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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차 앞유리에 끼워진 박근혜정권 퇴진촉구 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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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표현의자유> 행사한 시민 불법폭력연행... 석방하라>

코리아연대, <경찰, <표현의자유> 행사한 시민 불법폭력연행... 석방하라>

 

 

코리아연대(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는 경찰이 박주호, 박비호 두회원을 불법폭력연행한 것에 대해 남대문경찰서앞에서 저녁8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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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호, 박비호 회원은 민주노총총파업대회에서 <성완종 불법정치자금 박근혜도 수사하라!>, <부정선거 부패비리 박근혜<정권> 퇴진하라!> 전단지를 배포하려다 경찰에 의해 영장 없이 현행범으로 강제연행됐고, 남대문경찰서로 이송됐다.

 

현재 두회원은 인정심문까지 거부하며 묵비단식투쟁을 완강히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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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폭력연행규탄 기자회견에서 김병동코리아연대공동대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수십명의 경찰이 건물안에서 평화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려는 시민을 강제로 끌어내 폭력연행할 수 있느냐>며 <그것도 모자라 영장청구없이 불법적으로 핸드폰을 압수해갔다>고 분노했다.

 

이어 <정말 경찰이 책임을 다하려면 국민의 입장에서 권익을 생각하고 권리를 다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라며 <성완종게이트로 청와대는 비리와 뇌물로 범벅이 돼 있다. 오히려 그것을 규탄하고 비판하는 시민들을 가두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고 묻고 <남대문경찰서장은 즉각 연행한 시민을 석방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반미주적이고 반인권적인 행태를 알려나가는 것뿐아니라 석방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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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호·박비호회원과 면회를 진행한 정우철회원은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이렇게 억압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공화국인가?>라고 되묻고, <합법적인 시위과정에서 현수막과 전단지 살포를 위해 문이 열려 있는 건물을 올라갔을 뿐인데, 바로 수십명의 경찰이 와서 불법연행했다. 경찰은 현행범운운하며 가방을 뒤지고 집회와 시위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무엇이 불법인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려는 것이 불법인가? 표현을 탄압하는 박근혜<정권>과 남대문경찰서가 바로 불법>이라며 즉각 석방을 요구했다.

 

 

진영하회원은 <코리아연대회원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잡아가둔 것인가?> 묻고, <현행범이라고 한다. 집시법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코리아연대회원은 표현의 자유를 행사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계속해서 <건조물침입이라고 하는데 회원들이 잠긴문 뜯고 들어갔는가? 아니면 담넘어 들어갔는가? 누구나 출입이 가능한 열려진 공간에 들어간 것>이라며 <불법관권선거로 당선된 박<정권>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민중생존권을 파탄냈다. 경찰이 수사해야할 것은 박<정권>임에도 오히려 불법정권 박<정권>퇴진하라는 시민을 잡아가뒀다>고 비난하면서 <즉각 석방하지 않으면 불법폭력연행에 맞서 석방될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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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경회원은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던 시민을 경찰은 폭력적으로 연행하고, 연행자들을 석방하라는 정당한 요구를 불법적으로 채증하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경찰의 모습>이라며 <가장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박<대통령>이다. 이 <정권>은 가만히 두면서 누구를 잡아가두는가. 연행자 석방될 때까지 이 자리에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외쳤다.

 

기자회견후 항의방문단은 <코리아연대 박주호, 박비호 회원에 대한 불법폭력연행에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남대문경찰서의 최고책임자인 변관수경찰서장을 만나 조목조목 따져 물을 것>이라고 서장면담을 요구했다.

 

하지만 경찰은 오히려 불법집회를 벌였다며 항의방문단이 경찰서안으로 들어가는 것조차 방패를 앞세워 막고 면담을 거부했다.

 

불법채증에 대해 항의방문단은 관련규정을 읽어주며 불법채증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지만 이것조차 묵살하며 불법채증을 계속 했다.

 

항의방문단은 <정당한 국민의 권리를 행사하러 왔다. 문 열어달라, 공공기관의 시민출입을 이렇게 막는 것이 불법아닌가, 시민이 민원이 있어 들어가겠다는데 방패로 막는 경찰서는 처음봤다>며 항의했지만 경찰은 시민의 정당한 목소리를 철저히 묵살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통일애국인사 양원진선생의 규탄발언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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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진선생은 <도덕적으로 보면 박<정권>이 가장 잘못됐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시민들의 면담요구에 경찰서장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시민을 경찰서에 들여보내지 않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며 개탄했다.

 

이어 <6.25전쟁이 일어나고 130만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누가 책임졌는가? 책임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책임자는 그냥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 책임자가 아니>라고 꼬집고, 경찰서장부터 국민을 하늘같이 여기고 소통하며 봉사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하며, <우리는 끝까지 지켜보겠다. 경찰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따라 우리도 행동할 것이다, 지켜보겠다>고 석방을 촉구했다.

 

항의방문단은 <경찰이 길을 터 줄때까지 이 자리에 있겠다>며 연좌시위중에 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전문이다.

 

 

불법연행 규탄한다! 연행자를 당장 석방하라!

 

오늘 4.24민주노총총파업집회에 참여한 3명의 청년이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연행되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종로 YMCA건물과 서울시청 을지로별관 옥상에서 박<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귀가 쓰인 <코리아연대>·<민주노총 총파업을 응원하는 사람들> 명의의 전단이 뿌려졌다.

 

경찰은 전단살포자 중 3명을 현장에서 붙잡아 종로경찰서와 남대문경찰서로 연행하였다. 경찰은 주거침입 등의 혐의를 씌우고 있지만 정작 수사를 해야 할 대상은 <성완종게이트>에서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박근혜가 되어야 한다.

 

특히 경찰은 이 과정에서 영장 제시없이 불법적으로 핸드폰을 압수하였다. 이는 명백한 불법인 만큼 그 경찰도 당장 연행하고 처벌해야 할 것이다. 다시 돌려줬다고 하지만 이미 불법을 저지른 사실을 없애버릴 수는 없다.

 

우리는 경찰의 이같은 불법적인 연행과 불법적인 핸드폰압수를 강력히 규탄하면서 당장 모든 연행자를 석방하지 않을 경우 더 큰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임을 엄숙히 경고한다.

 

 

정의로운 모든 연행자를 당장 석방하라!

영장제시없이 불법적인 핸드폰을 압수한 경찰을 처벌하라!

성완종 불법정치자금 박근혜부터 수사하라!

 

2015년 4월24일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코리아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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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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