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북한의 대중·대러 외교를 두고 중국과 러시아의 경쟁심을 이용해 국익을 추구한다고 평가합니다. 과거에는 북한의 외교 전략을 두고 ‘등거리 외교’라고 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 중국과 소련이 갈등을 빚자 양국 사이에서 줄타기식으로 외교를 하며 중국, 소련 두 나라에서 이익을 얻어냈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이런 견해로는 북한 외교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 외교는 틀어쥐는 외교, 장악하는 외교입니다. 그런데 상대를 장악하는 방법이 미국처럼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압박하고 위협하는 게 아닙니다. 기본은 상대의 마음을 장악하는 방법입니다.
북한의 정치철학은 모든 사업을 ‘사람과의 사업’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사람과의 사업’의 본질은 ‘사상과의 사업’, ‘마음과의 사업’이라고 합니다. 즉, 북한은 모든 사업을 할 때 사람의 마음을 장악하는 걸 가장 중요하게 여깁니다.
이는 외교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등거리 외교, 거래하듯 하는 상호주의 외교는 계산기를 두드리는 외교로 마음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러시아의 마음을 얻은 외교
현재 북한과 가장 친한 나라는 러시아입니다. 국제 사회에는 우호국, 형제국을 자처하는 관계가 많지만 북러처럼 가까운 관계는 없습니다. 두 나라는 마치 한 몸처럼 움직입니다. 두 나라가 이렇게 된 과정을 외부에서는 다 알 수 없으므로 파편적으로 드러난 사실만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북러관계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가장 분명히 드러낸 건 북한의 쿠르스크 파병입니다.
2024년 8월 6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쿠르스크주를 침공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이 크게 변했습니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서방의 지원을 받아 최정예 부대와 가장 좋은 무기들을 집중해 공격했고, 러시아는 동부전선에서 함부로 부대를 빼 쿠르스크에 투입할 수 없어서 난감한 처지가 됐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순식간에 서울시 면적의 2배를 점령했습니다. 러시아는 극동지역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던 해병대까지 긴급 투입하며 우크라이나군의 진격을 막아야 했습니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북한이 먼저 파병을 제안했습니다.
2025년 4월 27일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입장문을 발표해 “김정은 동지께서는 조성된 전황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 사이에 체결된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의 제4조 발동에 해당된다는 분석과 판단에 근거하여 우리 무력의 참전을 결정하고 러시아 측에 통보하시었으며 합의에 따라 공화국 무력 전투구분대들에 러시아 무력과의 협동 밑에 우크라이나 신나치 강점자들을 격멸 소탕하고 쿠르스크지역을 해방할 데 대한 조선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명령을 하달하시었다”라고 하여 파병 경위를 설명했습니다.
미국 정보기관도 쿠르스크 파병은 러시아의 요청이 아닌 북한의 제안으로 시작됐다고 파악했습니다. 2024년 12월 23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보 당국자들을 인용해 북한군 파병이 북한의 제안이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제안을 신속하게 수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북한은 북러 사이의 조약에 따라 파병했을 뿐 그에 따른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026년 4월 26일 평양에서 진행된 ‘해외군사작전 전투위훈기념관’ 준공식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연설을 통해 “대가를 바라지 않는 희생, 보수를 바라지 않는 헌신, 이것이 우리 군대의 충실성의 높이에 대한 정의로 될 것”이라고 하여 파병 대가를 받지 않았음을 드러냈습니다. 위에 언급한 뉴욕타임스 보도에서도 미국 관리들은 북한이 파병 대가를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북한은 대규모 건설장이나 수해 복구와 같이 시급한 공사 현장에 군대를 자주 파견합니다. 그러면 지역 주민들은 군인이 자신을 위해 어려운 공사를 맡아 한다며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돼지도 잡고 닭도 잡아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건설을 맡은 군인들은 이런 지역 주민의 지원을 절대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군대가 주민에게 절대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게 철저한 규율입니다. 이런 규율이 쿠르스크 파병에도 적용되었을 것입니다.
쿠르스크 전장에서 북한군은 러시아군보다 더 잘 싸웠고 더 희생적이었다고 합니다.
에이피(AP)통신은 2025년 1월 12일 자 보도에서 “북한군과 교전해 본 우크라이나 군인은 북한군이 러시아군보다 더 전문적이고 잘 훈련되었으며 매우 체계적이라고 밝혔다”라고 했습니다. 미국 NPR은 6월 16일 자 보도에서 우크라이나 제8특전연대 병사의 증언을 소개했는데 그는 “북한군은 러시아군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고 신체적으로 준비된 상태였다”, “러시아군에게서 관찰한 것보다 훨씬 더 규율적인 전투 방식이었다”, “북한 군인이 목숨을 걸고 들판에서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러시아군이 그러는 걸 본 적이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북한군에 관한 정보를 청취한 유용원 국힘당 의원은 “우크라이나 특수작전군은 북한군 5명이 러시아군 10명 전투력과 맞먹을 정도로 높은 전투력을 보유했다고 평가했다”라고 전했습니다.
미국 NK 인사이더의 2025년 1월 보도에는 북한군 장교 시신에서 발견한 문서 「94려단 전투경험과 교훈」의 내용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북한군이 러시아군과 협동작전을 하다가 러시아 측의 정찰 정보가 부실해서 피해를 본 사례, 부상자 후송을 맡은 러시아 측에서 후송차를 너무 늦게 보내 부상자가 사망한 사례가 나옵니다. 하지만 북한군은 러시아군을 탓하지 않고 끝까지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한편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부상한 러시아 군인 수백 명에게 북한 요양소와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또 전사한 병사의 자녀를 송도원 국제소년단야영소에 초대했습니다. 당시 북한 주재 러시아 대사였던 고 알렉산드르 마체고라는 “우리가 북한 친구들에게 일부 비용이라도 보상하겠다고 제안했을 때 그들은 진심으로 기분 상해하며 다시는 그러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라고 얘기했습니다.
이런 전반의 사례를 놓고 보면 북한이 정신적, 도덕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러시아보다 우위에 있어 보입니다.
아마 러시아는 북한의 이런 모습에 감탄하고 감동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이렇게 북한은 러시아의 마음을 얻어 북러관계를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2025년 5월 29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는 기자회견에서 “북한과의 관계는 훨씬 더 일찍 오늘날처럼 구축되고 확립될 수 있었다”라고 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북한과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다만 오랜 시간 우리는 북한이 고립에 빠졌을 때 그저 확립된 규칙(제재)을 따라 행동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된 일이었다”라고 반성했습니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대북 제재에 동참한 걸 반성한 것입니다.
러시아는 대국이고 국민의 다수를 구성하는 슬라브 민족은 자존심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러시아의 핵심 인사가 공개적으로, 세계 면전에서 반성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쿠르스크 전투에서 희생적으로 싸운 북한에 감복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외교의 기본이 이해관계를 따지는 게 아니라 진정을 나누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게 상대 국가를 감복하게 하는 요인일 것입니다. 이건 경쟁과 줄다리기로 점철된 외교와 질적으로 다른 모습입니다.
중국의 마음을 사로잡다
흔히 북중관계를 혈맹관계라고 부르지만 양국 관계가 항상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2006년 10월 14일 미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을 통과시킬 때 중국은 미국 편에 섰습니다. 중국은 아예 북한의 핵시험을 두고 북한이 ‘제멋대로’ 행동한다며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중국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2013년 2월 12일 북한의 3차 핵시험 직후 중국공산당 기관지는 사설을 통해 북한을 비판했고 중국 정부는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2015년에는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박근혜를 초대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옆에 세우기도 했습니다.
2015년 12월 모란봉악단의 중국 공연 취소 사건은 당시 북중관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당시 중국은 공연 배경 화면에서 핵, 미사일을 빼라고 요구했고 현송월 단장이 “토씨 하나도 고칠 수 없다”라며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전격적으로 철수해 버렸습니다.
2017년 5월 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개인 명의 논평 「조중관계의 기둥을 찍어버리는 무모한 언행을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에서 “조중[북중]관계의 ‘붉은 선(레드라인)’을 우리가 넘어선 것이 아니라 중국이 난폭하게 짓밟으며 서슴없이 넘어서고 있다”라고 중국을 맹비난했습니다. 북한 관영매체가 직접 ‘중국’ 국명을 거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북미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되자 중국은 다급해졌습니다. 미국이 북미정상회담을 추진한 목적이 북한을 미국 쪽으로 당겨서 중국을 고립하려는 것이라고 간파했기 때문입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소련을 고립한 헨리 키신저 전략, 이이제이 전략의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전부터 중국을 최대 경쟁국으로 여기고 무너뜨리려고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트럼프 1기 때인 2020년 7월 23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장관이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기념도서관에서 ‘공산주의 중국과 자유세계의 미래’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 이런 구상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당시 폼페이오 장관은 중국을 독재국가로 규정하고 “중국이라는 새로운 독재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우리가 중국을 바꾸지 않으면 중국이 우리를 바꿀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생결단의 자세로 중국을 붕괴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후건 경남대학교 교수는 2018년 5월 28일과 10월 17일 자 프레시안 기고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조선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고 조선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을 짰으며 더 구체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북한과 국교 정상화를 하고 북한이 절실히 필요한 경제 지원을 해주고 북한을 미국 편으로 만들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과 당시의 미중관계는 상당히 달랐습니다. 당시는 중국이 미국 앞에서 숨죽이며 기어다녔습니다. 이를 흔히 도광양회(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어둠 속에서 인내하며 실력을 기른다는 뜻)라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까지도 미국과 손을 잡고 대중 압박에 동참하면 중국 처지에서는 큰일이 됩니다. 중국은 대만은 물론 인도, 베트남과도 군사적 긴장 상태에 있기 때문에 북한까지 중국과 대치하면 중국에 치명타가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세계관으로는 미국의 이이제이 전략에 따라가면서 국익을 챙기는 게 최선일 것입니다. 1970년대 핑퐁외교 때도 미국이 중국을 끌어당겨 소련을 고립하려 하자 여기에 놀아나 이익을 챙기고 소련을 견제했습니다. 그렇게 미국과 긴밀해지다가 결국 자본주의 경제 제도를 도입해 개혁·개방까지 했습니다. 중국은 자기가 이런 길을 걸었으니 북한도 똑같은 판단을 할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내심 엄청난 긴장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북미정상회담 직전에 북중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시진핑 주석과 중국 국민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다행이라며 안도하고 기쁨과 환희를 느꼈을 것입니다. 당시에 중국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엄청나게 환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년 9월 3일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시진핑 주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가장 가까운 자리로 안내하고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여러 나라의 정상이 행사에 참석했지만 시진핑 주석이 별도의 만찬을 준비한 정상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유일했습니다. 언론은 국빈 방문에 준하는 파격적 예우라고 평가했습니다.
한국일보는 2025년 9월 5일 자 보도 「“中 열병식 빅 이벤트의 최대 승자는 김정은”」을 통해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이라는 빅 외교 이벤트의 최대 승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라는 평가가 쏟아진다”라고 소개했습니다. CNN 방송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중심에 섰다”라고 했으며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정치적 승리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중국은 대국 의식에 보통 찌든 나라가 아닙니다. 중화사상이라는 것도 중국을 세계의 중심, 문명의 중심으로 보고 주변 민족을 오랑캐로 간주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자국의 주요 행사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최대 승자”로 만들었습니다. 2020년 11월 25일에는 중국 국무원 자문위원인 스인훙 인민대 교수가 “동북아 정세에서 확실한 한 가지는 가장 중요한 운영자가 그 어떤 대국도 아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라는 점”이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킨 적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거래 관계, 잔머리를 써서 두 나라를 이간질하거나 경쟁을 시키는 관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북한이 중국과 시진핑 주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북중관계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습니다. 중국 처지에서는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중국도 북한을 따라 배워 미국에 강경하게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도광양회에서 분발유위(떨쳐 일어나 적극적으로 분발하여 할 일을 해낸다), 전랑외교(늑대 전사 외교, 공격적이고 강압적인 외교)로 기조를 바꿨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작년에 미국이 관세 공격을 하자 중국도 똑같이 맞대응한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마음을 사로잡으면 관계를 주도한다
이처럼 북한은 중국, 러시아의 마음을 사로잡아 관계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사로잡으면 관계를 주도할 수 있습니다.
지금 북중·북러 관계를 보면 북한이 이끌고 움직인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수 있습니다. 중국 전승절의 주인공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고 세계가 인정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중국이나 러시아가 북한을 이끈다고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은 북한이라는 작은 나라가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초강대국을 이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중국이나 러시아가 지원해서 북한이 발전했다는 식의 근거 없는 악선전으로 현실을 숨기려 합니다.
북중·북러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분석하는 것은 국제질서와 지역 정세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한 탐구 과정의 일환입니다. 누구를 치켜세운다거나 점수를 더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북중·북러 관계는 북한이 주장하는 사상에 기초해서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석이 아니면 해석이 안 됩니다.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