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나 인터뷰 섭외를 받으면 질문지가 온다.
"어떻게 넘어오셨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가족은 어떻게 됐어요?"
질문지를 받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여기에 성실히 답하고 나면 내 이야기는 정해진 모양의 그릇에 담기게 된다. 내가 요즘 무슨 고민을 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어떤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지 묻는 질문은 종이에 없다.
북한 인권은 지난 30여 년 동안 거의 하나의 형식으로만 전달되어 왔다. 무대는 바뀌었다. 1990년대에는 기자회견장이었고, 2000년대에는 국제회의장이었고, 2010년대 이후로는 방송 스튜디오였다.
그런데 골격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겪은 사람이 나와서 겪은 일을 말하고 보여주는 형식이다. 증언은 이 운동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국제사회를 움직인 힘이었다. 그런데 같은 형식이 어떤 자리에서는 역사의 기록이 되고 어떤 자리에서는 한 회분의 콘텐츠로 소비된다. 이 글은 그 갈림길을 따라가 본다.
제네바와 서울
2013년 3월 21일 유엔인권이사회는 결의안 22/13호를 채택해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설치했다. 47개 이사국 중 어느 나라도 표결을 요구하지 않았다. 조사위원회 설치 결의안 가운데 처음으로 투표 없이 통과된 사례다.
COI는 그해 7월부터 서울과 도쿄, 런던, 워싱턴에서 공개 청문회를 열었다. 80명 이상의 탈북민과 전문가가 공개 증언했고, 북에 남겨진 가족의 안전 등을 고려해 240여 건의 비공개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 조사 결과는 372쪽 분량의 보고서로 2014년 2월 17일 공개됐다.
이 보고서는 북한의 인권 침해가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하다며 국제법상 반인도범죄로 규정했다. 용기 내어 증언해 준 사람들의 힘이 만들어 낸 결과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공적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국제사회가 북한 인권을 다루는 방식은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비슷한 시기 한국의 안방에서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2011년 12월 1일 종합편성채널 네 곳이 동시에 개국했고, 사흘 뒤 북향민이 출연하는 토크 프로그램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가 첫 방송을 했다.
무대에서 출연자들은 굶주림과 탈출과 이별을 이야기했다. 방청석은 울었고, 다음 주에는 다른 출연자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 프로그램은 종편 최장수 기록을 세우며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제네바의 청문회장과 서울의 스튜디오에서 말해진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굶주림, 수용소, 국경, 헤어진 가족. 한쪽의 말은 반인도 범죄를 입증하는 증거가 되었고, 다른 쪽의 말은 일요일 밤 편성표를 채웠다.
한국에서도 노력이 있었다. 2016년 북한인권법이 제정됐고, 통일부 산하에 북한 인권 기록센터가 만들어졌다. 이 센터는 하나원에 입소한 북향민들을 면담해 인권 침해 사례를 기록해 왔다. 2017년부터 2025년까지 4001명을 면담 조사했다. 조사 방식과 내용의 차이가 있더라도 증언자 수로만 보면 COI보다 열 배 많다.
유엔 보고서와 텔레비전 예능이 다른 것은 당연하다. 미국 의회나 영국 의회와는 달리 한국 국회에서 북한인권 증언을 지속적이고 제도적으로 듣는 자리는 충분히 마련되지 못했다.
북한 인권 단체들이 증언 행사와 캠페인으로 꾸준히 자리를 만들어 왔지만, 그 자리에 오는 사람은 대개 이미 관심을 가진 이들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인권 이야기가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닿는 가장 넓은 문은 예능 스튜디오였다.
수요가 만들어낸 증언의 변주곡들
종편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프로그램의 이력에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2011년 12월, 첫 방송 때 이 프로그램은 시사교양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북향민 출연자들이 이산가족이나 실향민 출신의 일반 주민들을 찾아가 인터뷰를 하며 삶을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 몇 개월 뒤 젊은 여성 출연자들을 앞세운 <미녀들의 수다> 포맷으로 개편되면서 예능으로 옮겨 갔다. 카테고리가 바뀌자, 무대에 서는 사람도 자리도 함께 바뀌었다. '탈북 미녀'라는 말도 이때 본격적으로 전파됐다.
북한 이야기를 하는 젊은 여성 출연자들이 등장하면서 시청률이 높아졌고, 비슷한 프로그램이 다른 채널에서도 뒤따랐다.
국제무대에서 증언이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증언이든, 북향민들이 북한 인권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면서 이는 북한 체제의 실패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고, 북한의 인권탄압 실상을 알리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북향민들의 증언이 쏟아지며 무대도 많아졌고, 증언에 대한 수요도 늘었다. 개인의 경험에 의존한 증언이 여러 무대를 통해 반복되면서 부풀려지거나 과장되는 설명이 더해졌다. 개인의 경험이 북한 전체의 모습처럼 일반화되기도 했다.
그렇다고 과장된 증언을 모두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들이 겪어온 삶에는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사람의 증언을 북한 전체의 모습으로 이해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확증편향이 생긴다. 한 사람의 경험은 북한 사회를 이루는 100개의 퍼즐 조각 중 한 조각일 뿐이다.
같은 증언도 여러 번 반복하고 나면 이상한 일이 생긴다. 이야기가 매끄러워진다. 어느 대목에서 사람들이 숨을 죽이는지, 어디서 말을 멈춰야 효과가 좋은지를 몸이 먼저 안다. 고통의 경험이 다듬어지고 각색되어 대중 앞에 전시된다.
한 사람 증언의 무게
북한에서의 인권침해 참상을 증언한 사람은 여럿이었지만, 그중 신동혁씨의 증언 번복 사건이 유독 크게 받아들여졌다.
그는 2015년 1월 자신이 수용소에서 겪은 일과 관련한 증언 일부가 사실과 다르다고 인정했다. 이후 고문 시기와 가족의 처형 장소 등에 대해서도 일부 내용을 정정했다. 그는 수용소에서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이 너무 고통스러워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었다고 말했다.
당시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 측은 신씨의 일부 증언에 오류가 있더라도 보고서의 결론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COI 보고서 발표 직후부터 보고서가 조작된 것이라며 비난해 왔고, 이 일을 기존 주장을 뒷받침할 호재로 활용했다. 당사자 사회 안에서도 자극적인 거짓 증언이 진짜 증언까지 의심받게 만든다는 우려가 나왔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의 기억은 시간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기억에 시간적 오차가 있을 수 있다. 증언 시장이 부풀림을 유도하기도 한다. 더 참혹한 이야기에 더 큰 무대가 주어지면서, 담백했던 증언에 드라마적 요소가 가미되고 이야기는 조금씩 세지는 쪽으로 흐른다. 이 과정에서 의도적인 과장이나 조작도 발생한다. 이것은 다르다. 증언을 과장하고 왜곡하는 것은 결국 공동체에 피해를 준다.
나는 북향민 증언에서 두 가지를 본다. 하나는 우리가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해 왔는가이다. 우리는 그에게 생애 가장 참혹한 기억을 수백 번 반복하기를 요구했다. 사람의 기억이 그런 반복을 견디도록 만들어져 있던가. 더구나 말하는 사람 자신이 그 기억에 대한 죄책감까지 안고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다른 하나는 화자와 청자가 있는 이 운동의 생태계다. 2015년 한 사람의 증언이 흔들리자 운동 전체가 함께 흔들렸다. 그만큼 이 운동의 무게가 몇몇 증언자의 어깨에 실려 있었다는 뜻이다. 몇몇 증언자들은 스타로 부상했다.
여전히 무대에서는 거짓되거나 과장된 이야기가 재생산되고 있다. 이미 시장이 형성돼 있다. 출연자가 있고 시청률은 높다. 고통의 문화산업이 형성돼 있다.
관심으로 포장된 동정의 시선
무대 위 증언이 청자에게 일으키는 첫 감정은 연민이다. 방청석의 눈물도 시청자의 눈물도 진심이다. 방송이 끝난 뒤 후원 계좌로 모이는 성금도 진심이다. 나는 그 진심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그 진심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눈물을 흘린 시청자에게 무대 위 그 사람은 어떤 존재로 남을까. 도와야 할 사람. 안쓰러운 사람. 저런 일을 겪고도 살아남은 사람. 다 따뜻한 마음이다. 그런데 이 목록에 좀처럼 들어가지 않는 항목들이 있다. 함께 일할 동료. 조언을 구할 선배. 같은 문제로 목소리를 낼 이웃.
연민을 깎아내리려는 게 아니다. 연민에서 시작된 후원이 사람을 살렸고 제도를 만들기도 했다. 문제는 연민 말고는 아무 관계도 맺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함께 일해 본 적도, 무언가를 같이 만들어 본 적도 없이 안타까워하는 마음만 오갈 때 그 마음은 상대를 도움이 필요한 자리에 붙박아 둔다.
실제로 설문조사를 하면 북향민을 직장동료나 배우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응답은 낮다. 2022년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향민에 대한 포용 온도는 40.3점으로, 외국인 거주민의 44.6점보다 낮았다. 어떠한 관계로도 엮이고 싶지 않다는 응답은 북향민이 22.2%로 외국인의 두 배를 상회했다.
직장동료나 배우자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응답 역시 낮았다. 고통의 서사가 예능의 소재로 소비되는 동안에도, 정작 현실의 삶터에서 그들을 곁에 두려는 마음의 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는 셈이다.
반복되는 연민에는 유효기간도 있다. 같은 이야기, 같은 톤, 같은 구도가 되풀이되는 사이 보는 사람은 지친다. 피로는 무관심이 아니라 자기방어다. 매번 강한 감정을 요구받는 사람은 어느 순간 자신을 지키려고 채널을 돌린다. 눈물로 시작한 관계가 외면으로 끝나는 것이다.
카메라가 꺼진 다음
증언과 짝을 이루는 또 하나의 이야기 형식이 있다. 구원의 서사다. 위험한 여정, 극적인 탈출, 그리고 자유의 품에 안기는 결말. 이 형식은 모금에 특히 효과적이었고 실제로 많은 동참을 확보하고 구출을 가능하게 했다. 다만 이 이야기에는 특징이 하나 있다. 이야기가 한국 도착에서 끝난다는 것이다. 카메라는 인천공항 도착에서 꺼진다. 그리고 사람의 삶은 정확히 거기서 시작된다.
카메라가 꺼진 다음의 시간은 통계나 사건을 다루는 뉴스에서나 확인된다. 2025년 기준 북향민의 실업률은 5.4%로 일반 국민의 2.8%보다 높고, 직장 근속 기간은 절반 수준에 그친다. 북한이탈주민의 자살 관련 지표도 일반 국민보다 높다. 2025년 국정감사에서는 북한이탈주민의 자살률이 일반 국민보다 약 4배 높다는 자료가 공개됐다.
숫자보다 무거운 장면도 있다. 언론에 성공 사례로 소개됐던 북향민이 어느 날 백골이 되어 1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된 일이 있었다. 굶어 죽지 않으려고 목숨 걸고 국경을 넘은 모자가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굶어 죽은 일도 있었다. 카메라가 켜졌을 때 그들은 성공 사례였고 자유를 찾은 사람이었다. 꺼진 뒤에는 고립되지 않기 위해 분투한다.
숫자로 잡히지 않는 것들도 있다. 이력서에서 북한 출신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정체성 지우기, 아이 학교에 부모 출신을 어디까지 말할지 고민하는 순간, 명절에 갈 곳이 없어 텅 빈 도시를 걷는 시간. 이런 시간은 통계에도 방송에도 없다.
스스로 말하기 시작한 사람들
말할 권한을 자기가 갖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권한이 있어도 증언을 필요로 하는 시장(market)이 같은 것을 요구하면 나오는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다른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유튜브 등에서는 북향민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채널이 늘고 있다. 스스로 말하는 채널이라고 자유로운 건 아니다. 조회수는 자극적인 것을 보상한다. 북한의 충격적인 이야기가 더 잘 팔리는 건 유튜브에서도 마찬가지다. 질문지가 사라진 자리를 알고리즘이 채우기도 한다.
출연료 받고 나가는 방송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증언의 소비가 작동된다. 탈북의 경험, 고통의 경험을 스스로 상품으로 내놓는 것이다. 이걸 비판만 하는 건 옳지 않다.
북한에 대한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몇몇 유튜버를 제외하면 대부분은 자기 PR(홍보)의 콘텐츠라 이 또한 고통을 승리로 승화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고통의 기억을 고통스럽게 말해야만 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고통스럽게 증언하면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모두가 고통스러우니까.
그러면 무엇을 다르게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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