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실용주의
그렇다면 ‘황금’의 실용주의를 넘어서는 길은 무엇일까. 물론 실용주의를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황금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황금만능’의 실용주의를 성찰하자는 것이다. 오히려 실용주의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예컨대, ‘생명’의 실용주의가 그것이다. 이때 ‘생명’은 ‘생명체’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것을 살아 있게 하는 힘으로서의 ‘생명력’이다(나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이재명 신문명시대의 정신은 무엇인가?」와 함께 「신성장주의의 폭주, 각비의 생명운동」에서 ‘생명’의 실용주의를 논의한 바 있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흥미롭다. 나에겐 그의 사상이 곧 ‘생명’의 실용주의다. 제임스에게 실용주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어떤 관념(이념)이 참인지 아닌지는 그 자체로 판단할 수 없다. 그 관념이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그가 즐겨 쓴 말로 하면 그 관념의 '현금가치(cash value)'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현금가치'라는 말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은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현금’, 곧 ‘황금’이 되어버렸다. 실용주의의 이름으로 실용주의를 배반하고 있는 셈이다.
제임스가 중시한 것은 추상적인 관념보다 실제로 인간의 살아있는 경험이었다. 그의 ‘급진적(근본적 radical) 경험론’은 개별적인 사물뿐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관계 역시 또 하나의 경험적 현실이라고 보았다. 전통적 경험론이 인식하는 주체(나)와 인식되는 객체(대상)를 엄격히 구분하고 '관계'나 '연결성'은 주체의 정신적 작용으로 보았으나, 급진적 경험론은 주체와 객체가 나누어지기 이전의 관계와 흐름에 대한 경험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이렇다. '사물'도 현실이지만, '관계'도 현실이다. '경제적 성과'도 현실이지만, 그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현실이다. '주가'도 현실이지만, 사람들의 ‘불안’도 현실이다. 산업의 생산성도 현실이지만,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의 지속성 및 지속불가능성도 현실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신비 체험과 영적 경험을 실증적으로 진지하게 다룬 철학자이기도 했다. 실용주의의 창시자가 영성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경험의 정당한 일부로 존중했다는 사실은, 앞서 김상봉이 말한 '영성 없는 진보'와 실용주의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명‘의 실용주의란 실용주의를 버리고 영성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실용주의가 잃어버린 더 깊고 넓은 실용주의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실용주의 2.0'을 고대한다
나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한 단계 진화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실용주의 2.0’이다.
실용주의 2.0은 기존의 실용주의를 뒤집어 엎는 것이 아니다. 경제를 잘 운영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실용주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삶과 세계의 ‘경험적 현실’의 지평을 넓히자는 것이다.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 물어야 한다. AI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AI와의 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메가 프로젝트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업의 규모와 속도만이 아니라 그 사업이 만들어낼 삶과 지역과 생태계의 변화, 그리고 다른 미래의 가능성까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정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메가 프로젝트에 관한 (공청회장이 아닌) 공론장이 열려야 한다. 인간만의 공론장이 아니라, 비-인간 존재와 함께하는 ‘생태공론장’이면 더욱 좋겠다. 투자액과 일자리 숫자만이 아니라 전력과 물, 생태계와 공동체, 노동과 생활의 변화까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다른 지식이 만나 문제 자체를 재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문화와 예술을 콘텐츠 산업으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경험하는 매체로 여기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청와대로 초청해야 할 사람들도 달라질 것이다. 경제학자와 관료와 정책 전문가뿐 아니라 시인과 음악가, 종교인과 생태학자, 농부와 오래된 시민운동가와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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