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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가 위태로운 ‘또 다른’ 이유

주요섭의 살림정치

JYS@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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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지지율, 부동산과 주식 때문만일까

메가 프로젝트 광풍과 ‘K-황금시대’ 실용주의

무얼 하려는지 성찰 없으면 “영성 없는 진보”

“무엇이 중한디?”묻고 주민의 미래 그려봐야

'황금의 실용주의'를 ‘생명의 실용주의'로 전환

생태계 포함 이재명 정부 ‘실용주의 2.0’ 고대

이재명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 마그 재단에서 열린 뤼미에르 서밋의 영화·영상 관련 라운드 테이블에 입장하고 있다. 2026.9.7. 연합뉴스

나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를 지지한다. 이념보다 삶을 앞세우고, 진보와 보수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는 한국정치의 새로운 흐름을 응원한다. 지난해 나는 이재명 정부 출범을 앞두고 그의 탈이념과 실용주의를 환영하면서, 동시에 「이재명 신문명시대의 ’정신‘은 무엇인가?」를 묻는 글을 쓰기도 했다. 얼마 전에 기고한 「유시민의 ‘필연’과 ‘정화’가 위태로운 이유」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논의하기도 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이재명의 실용주의가 매우 위태로워 보인다. 지지율 하락 때문만이 아니다.

추락하는 지지율, 부동산과 주식 때문만일까?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추락하고 있다. 9월 7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7.4%로 취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8주 연속 하락이다. 앞서 9월 4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지지율은 40%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고, 부정평가는 51%까지 올라섰다. 다른 조사에서는 부정평가가 처음으로 60%대에 진입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조사기관마다 수치는 다르지만 추세는 같다.

부동산 세제 정책의 혼선과 경제·민생 문제, 인사 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전해진다. 김승원·용혜인 두 장관 후보자의 인선을 둘러싼 논란이 진행 중이고, 공소취소와 연임 개헌을 둘러싼 논란, 경찰의 부실수사 논란까지 겹쳤다. 6개 부처를 바꾸는 개각 카드를 꺼냈지만 하락세를 꺾지 못했다. 오히려 역풍이 불고 있다.

부동산 문제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주가 폭락 때문에 국민들의 마음이 돌아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최근의 지지율 하락을 말끔하게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다른 무엇인가가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부동산도, 인사도, 개헌 논란도, 따로 보면 각각의 사안이다. 그러나 겹쳐 놓고 보면 하나의 물음이 수면으로 올라온다. 이 정부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려 하는가에 대한 신뢰의 균열이다. 경제적 성과가 흔들리자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숨은 민심이 표현된 것 아닐까.

이재명 정부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해왔다. 경제를 성장시키고, 주가를 올리고, AI 강국을 만들고, 산업을 키우겠다고 했다. 모두 중요하다. 정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정치는 문제해결의 기술만은 아니다. 국민은 정부에 '무엇을 할 것인가'만 묻지 않는다. '어디로 갈 것인가'도 동시에 묻는다. 마음속으로는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 것인가'를 묻는다. 성과가 좋을 때는 이런 질문이 잘 들리지 않는다. 경제가 성장하고 주가가 오르면 성과 자체가 ‘성공 서사’가 된다. 그러나 성과가 흔들리는 순간 질문은 다시 돌아온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재명 정부는 지금 이 질문 앞에 서 있는 것 아닐까?

 

더불어민주당 3대 메가프로젝트 지원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한병도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위원들이 11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건설 중인 반도체 팹을 둘러본 뒤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8.11.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메가 프로젝트 광풍과 ‘황금’의 실용주의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 이후 ‘K-황금시대’라는 말이 새로운 정치적 구호로 등장했다. 김민석 대표는 당선 수락 연설에서 K-황금시대의 사명을 이야기했다. 앞서 당권 도전을 시사하면서는 코스피 1만, 글로벌 AI 허브, 한류 열풍 등을 그 시대의 징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물론 그가 말하는 황금시대가 단순히 돈이 많은 나라를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에서 2001년의 ‘부자 되세요’를 떠올린다. IMF 외환위기의 상처 속에서 한국 사회를 휩쓸었던 부자의 열망 말이다. 그리고 ‘실용정부’를 표방하며 ‘4대강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던 이명박 정부가 떠오른다. 두 정부가 같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재명 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정치적 출발점도 다르고, 정책 방향도 매우 다르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의 ‘메가 프로젝트’와 ‘황금론’은 문득 이명박정부를 떠올리게 한다.

최근 발표된 메가 프로젝트가 특히 그렇다. 정부는 지난 6월 29일 반도체, 피지컬 AI, AI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초격차 산업강국으로의 대도약을 강조하며 청와대에 직할 담당관을 두고 직접 사업을 챙기겠다고 밝혔다. 세계적인 AI 경쟁 속 이니셔티브의 필요성은 물론 인정한다. 수도권에 집중된 산업을 지역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취지도 이해한다. 그러나 산업적 필요가 인정된다고 해서 사업의 규모와 입지, 속도까지 저절로 정당화될 수 있을까.

특히 광주·전남에서 메가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광풍(狂風)’이다. 오랫동안 산업화에서 소외된 지역의 박탈감과 폭발적 성장에 대한 기대가 결합하면서, 지역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민주당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진보당 전남광주시당은 지난 8월 26일 반도체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800조 원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를 지역경제의 패러다임을 바꿀 기회로 평가했다. 물론 추가 원전 없는 RE100, 주 4일제 노동, 수익의 국민 배분 등 단서를 붙이기는 했다.

영화의 대사처럼 “뭐가 중한디?”라고 물어야 할 것 같은데, 질문이 들리지 않는다. 물음표가 보이지 않는다. 상상하기도 어려운 천문학적 투자를 통해 만들려는 지역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그 지역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산업의 성과와 함께 생태와 생명과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지,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하는 과정에 얼마나 실질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거대 산업단지와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는 것 말고 다른 발전의 길은 없는지 질문과 토론을 들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3대 메가프로젝트 지원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한병도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위원들이 11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건설 중인 반도체 팹을 둘러본 뒤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8.11.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영성 없는 진보”

몇 년 전 철학자 김상봉은 「영성 없는 진보—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생각함」이라는 글을 발표한 바 있다. 이후 같은 제목의 책도 출간됐다. ‘진보와 영성’이라니, 놀랄 일이었다. 반가웠다. 진보의 위기를 영성의 문제로 진단하는 철학자가 있다니.

김상봉의 진단은 단순하지 않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독재 권력을 타도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이후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서는 충분한 지혜를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판과 부정의 능력은 있었지만 새로운 세계를 형성하는 능력은 부족했다는 말이다. 김상봉은 더 나아가 그 근저에 ‘영성의 상실’이 있다고 진단한다.

김상봉에게 영성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사랑의 마음, 그리고 전체성에 대한 믿음과 연결된다. 나는 그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했다(물론, 영성에 대한 이해가 같을 수는 없다. 할 이야기가 적지 않다.) 진보의 언어는 왜 ‘정책과 제도’, ‘권리와 이해관계’, ‘성장과 분배’로만 채워지게 되었을까? 진보는 왜 인간의 고통과 사랑, 아름다움과 영성에 대해 점점 말하지 않게 되었을까?

지난 9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의 시민사회 초청 간담회를 보면서 다시 ‘영성 없는 진보’를 떠올렸다. 청와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실무책임자 중심으로 참석자를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시민사회에도 세대교체가 필요하고, 원로나 명망가 몇 사람을 불러놓고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하는 낡은 방식에서 벗어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참석자 명단과 의제를 보면서 무언가 허전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영성 없는 실용’이라고나 할까. ‘현장의 소리’를 듣는 것과 ‘마음의 소리’, 혹은 ‘시대의 소리’를 듣는 것은 다르다. 물론 대통령이 시민사회의 의견을 경청한 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다만 ‘정책’을 이야기할 사람과 더불어 ‘시대’를 이야기할 사람은 없었는지, ‘현안’을 말할 사람과 더불어 ‘마음’을 말할 사람은 없었는지 질문이 남는다.

 

이재명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 마그 재단에서 국제 영화·영상 정상회의 '뤼미에르 서밋' 개막식 후 열린 영화인과의 대화에서 손팻말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이번 행사는 서밋에 초청받은 한국 감독 및 배우들과의 간담회다. 오른쪽부터 김도연, 설경구, 전도연 배우, 이 대통령, 이창동, 정주리 감독, 김민영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콘텐츠 총괄 부사장, 안현모 사회자. 2026.9.7. 연합뉴스

‘생명’의 실용주의

그렇다면 ‘황금’의 실용주의를 넘어서는 길은 무엇일까. 물론 실용주의를 버리자는 것이 아니다. 황금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황금만능’의 실용주의를 성찰하자는 것이다. 오히려 실용주의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예컨대, ‘생명’의 실용주의가 그것이다. 이때 ‘생명’은 ‘생명체’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것을 살아 있게 하는 힘으로서의 ‘생명력’이다(나는 이미 앞에서 언급한 「이재명 신문명시대의 정신은 무엇인가?」와 함께 「신성장주의의 폭주, 각비의 생명운동」에서 ‘생명’의 실용주의를 논의한 바 있다.)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흥미롭다. 나에겐 그의 사상이 곧 ‘생명’의 실용주의다. 제임스에게 실용주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어떤 관념(이념)이 참인지 아닌지는 그 자체로 판단할 수 없다. 그 관념이 우리의 삶에서 실제로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그가 즐겨 쓴 말로 하면 그 관념의 '현금가치(cash value)'가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 쓸모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현금가치'라는 말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은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현금’, 곧 ‘황금’이 되어버렸다. 실용주의의 이름으로 실용주의를 배반하고 있는 셈이다.

제임스가 중시한 것은 추상적인 관념보다 실제로 인간의 살아있는 경험이었다. 그의 ‘급진적(근본적 radical) 경험론’은 개별적인 사물뿐 아니라 그것들 사이의 관계 역시 또 하나의 경험적 현실이라고 보았다. 전통적 경험론이 인식하는 주체(나)와 인식되는 객체(대상)를 엄격히 구분하고 '관계'나 '연결성'은 주체의 정신적 작용으로 보았으나, 급진적 경험론은 주체와 객체가 나누어지기 이전의 관계와 흐름에 대한 경험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이렇다. '사물'도 현실이지만, '관계'도 현실이다. '경제적 성과'도 현실이지만, 그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변화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도 현실이다. '주가'도 현실이지만, 사람들의 ‘불안’도 현실이다. 산업의 생산성도 현실이지만,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의 지속성 및 지속불가능성도 현실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신비 체험과 영적 경험을 실증적으로 진지하게 다룬 철학자이기도 했다. 실용주의의 창시자가 영성을 비과학적인 것으로 밀어내지 않고 오히려 경험의 정당한 일부로 존중했다는 사실은, 앞서 김상봉이 말한 '영성 없는 진보'와 실용주의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명‘의 실용주의란 실용주의를 버리고 영성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실용주의가 잃어버린 더 깊고 넓은 실용주의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실용주의 2.0'을 고대한다

나는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한 단계 진화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실용주의 2.0’이다.

실용주의 2.0은 기존의 실용주의를 뒤집어 엎는 것이 아니다. 경제를 잘 운영하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실용주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다만 삶과 세계의 ‘경험적 현실’의 지평을 넓히자는 것이다.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그러나 무엇을 위한 성장인지 물어야 한다. AI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 AI와의 관계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야 한다. 메가 프로젝트가 필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업의 규모와 속도만이 아니라 그 사업이 만들어낼 삶과 지역과 생태계의 변화, 그리고 다른 미래의 가능성까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정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메가 프로젝트에 관한 (공청회장이 아닌) 공론장이 열려야 한다. 인간만의 공론장이 아니라, 비-인간 존재와 함께하는 ‘생태공론장’이면 더욱 좋겠다. 투자액과 일자리 숫자만이 아니라 전력과 물, 생태계와 공동체, 노동과 생활의 변화까지 함께 논의해야 한다.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가 서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경험과 다른 지식이 만나 문제 자체를 재설정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문화와 예술을 콘텐츠 산업으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 아름다움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새롭게 경험하는 매체로 여기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청와대로 초청해야 할 사람들도 달라질 것이다. 경제학자와 관료와 정책 전문가뿐 아니라 시인과 음악가, 종교인과 생태학자, 농부와 오래된 시민운동가와 만나야 한다.

 

주요섭 (사)밝은마을 생명사상연구소대표

대통령에게 좋은 정책을 제안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대통령의 생각을 흔들어놓을 사람도 필요하다. 영혼의 지도자를 만나야 한다. 때로는 아무런 정책 제안도 하지 않는 사람과 몇 시간 동안 삶과 죽음, 자연과 인간, 아름다움과 고통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어렵다면, 여당 대표라도 그래야 한다. 문학과 예술, 돌봄과 영성, 생태와 생명이 정치의 액세서리일 수 없다. 아니다. 메가 프로젝트의 광풍 속 요즘이라면, ‘액세서리’라도 되어야 할 것 같다.

이재명의 실용주의가 위태로운 이유는 ‘실용주의’ 때문이 아니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이 ‘황금’이라는 도구적 목적에 꼼짝없이 붙잡혔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 2.0을 고대한다.

주요섭의 살림정치 JYS@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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