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을 내도 국내 언론엔 한 줄도 보도 안 되자 '비장한 결단'
전두환 정권, 병원에 강제 이송…음식 냄새 피우고 망명 권유
광주민주화운동이 '광주사태'로 불리던 시절, YS는 군인들이 상도동 자택 부근 길목을 100여 미터 앞에서부터 막는 삼엄한 가택연금 속에서도 비상계엄 해제 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몰래 밖으로 전해 외신에 보도되도록 하고, 집으로 찾아온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전두환의 만행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도 밝혔지만 국내 언론에는 한 글자도 보도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1983년 5·18 3주년을 앞두고 뭔가 비장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무렵 마하트마 간디의 저서를 읽으며 비폭력 무저항 단식투쟁에 천착하게 된 YS는 정확히 5월 18일을 기해 '단식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무기한 곡기를 끊는 투쟁에 돌입했다.
"국민 여러분! 나의 단식은 5·17 군사쿠데타에 의하여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파괴·부정당함은 물론,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백 수천 명의 민주시민이 광주에서 무참히 살상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한 자책과 참회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며, 비극적인 광주사태로 목숨을 잃은 영혼과 거기서 희생된 민주시민들과 그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에 동참하는 기회이며, 동시에 반민주적인 독재 권력의 강화와 인권 유린 및 정치적인 탄압에 대한 항의와 규탄의 표시입니다. 또한 나의 단식은 앞으로 우리가 전개해야 할 민주화 투쟁은 생명을 건 투쟁이어야 하며, 생명을 건 투쟁만이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알리면서 나의 투쟁 결의를 굳건히 다지기 위한 것입니다."
YS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 성명서 내용을 전화로 외국 언론기관에 직접 낭독해줬고 유수의 통신사인 AP, UPI, 로이터, AFP, 교토통신 등이 이 사실을 일제히 세계에 타전했다. 단식 8일차인 5월 25일이 되자 전두환 정권의 당국자와 경찰 간부 등이 찾아와 단식 중지 및 병원 치료를 권했다. YS가 이를 물리치자 경찰 수십 명이 들이닥쳐 YS를 완력으로 구급차에 태워 서울대병원 12층 병동에 강제 이송하고 다른 환자들은 전부 퇴거시켰다. 당시 병원에서 측정한 YS의 체중은 61kg으로 평상시 70kg보다 벌써 9kg가량이 줄어있었지만 YS는 일체의 음식과 의료행위를 거부한 채 단식을 지속했다. 민정당 권익현 사무총장이 병실로 찾아와 전두환의 제안이라며 연금 해제와 해외 망명을 권하기도 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제12일(5월 29일). 원래 단식을 하려면 식사량을 단계적으로 줄여 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관장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과정 없이 곧바로 단식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고통이 심해졌다. 이날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복통이 엄습해 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온몸을 구르며 비명을 참으려 해도 되지 않았다. 머리까지 깨지는 듯 아파오고 온몸에 진땀이 나며 기력이 빠졌다. (…) 전두환 정권은 내가 단식을 중단하도록 온갖 수단을 다 썼다. 불고기, 생선 등 맛있는 음식상을 차려와 내 병상 앞에 갖다 놓고 냄새를 풍기도록 했다. 나는 '그따위 비열한 짓 하지 말고 당장 가져가라!'고 고함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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