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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불러대는 민주당, 노무현의 정치를 하고 있는가

이수영 시민기자

tndudfl1566@nate.com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스마트AI경영학과 연구교수이자 국제법·과학기술혁신정책 전문가다. ITU 전문위원,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 최연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정책과 입법연구소 의장을 맡고 있다. 중앙정부·지자체·공공기관 자문을 수행했으며 대한민국인재상, 대통령표창, 법제처장표창, 과기정통부 장관표창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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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정당

  • 입력 2026.08.29 19:45

  • 수정 2026.08.30 03:29

  • 댓글 4

[청년과 민주당, 그리고 노무현 ③ 끝]

구호로만 '노무현 정신', 시민 불편하게 만들어

정치인은 지지자에 “아닙니다” 말할 수 있어야

정치적 유산, 말로 계승되지 않고 행동으로 계승

민주당 브랜드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자산으로

오늘 민주당이 원칙과 상식의 정당인지 증명을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1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앞에 놓은 형사소송법 개정안. 사진=김용민 의원 페이스북

민주당에서 노무현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선거 때마다 그의 이름이 등장하고, 5월이 되면 봉하마을이 정치의 중심이 되고, 연설에서는 ‘사람 사는 세상’이 반복된다. 그리고 빠지지 않는 말이 있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오히려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무엇을 계승한다는 것인가. 노무현의 이름인가. 노무현의 이미지인가. 노무현의 지지층인가. 아니면 노무현이 실제 정치에서 감당했던 원칙과 선택인가. 이 질문들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노무현을 기억하는 것과 노무현을 계승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좋은 사람’으로만 기억하면 중요한 것을 놓친다 노무현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종종 그를 지나치게 아름답게 기억한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 상고 출신 변호사. 인권변호사. 지역주의에 도전한 정치인. 그리고 대통령. 물론 모두 중요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노무현의 정치가 설명되지 않는다.

노무현은 꽤 자주 자신의 지지층을 불편하게 만든 정치인이었다. 그의 선택에는 늘 논쟁이 따라붙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그랬고, 이라크 파병이 그랬고, 부동산 정책도 그랬다. 정치적 타협도 지지자들에게는 때때로 배신처럼 보였다. 그는 모든 순간에 옳았던 정치인이 아니다. 오히려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선택을 많이 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을 정치철학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논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노무현에게 정치는 ‘편을 드는 기술’이 아니었다

오늘날 정당정치에서 정치인은 끊임없이 계산한다. 당원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지율은 어떤가. 온라인 반응은 어떤가. 다음 선거에 도움이 되는가. 상대방에게 공격받을 가능성은 없는가. 물론 정치에서 이런 계산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그러나 계산이 정치의 전부가 되는 순간 정치인은 지도자가 아니라 여론의 추종자가 된다. 노무현의 정치가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는 적어도 자신이 옳다고 판단한 정치적 방향을 놓고 지지층과 충돌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무현을 좋아했던 사람들조차 그의 모든 선택에 동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노무현 정치의 특징이었다.

지지자에게 박수받는 것과 국가를 위해 필요한 선택을 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정치에서 말하는 리더십이다. 여기서 영국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생각을 가져와볼 필요가 있다. 밀은 다수의 의견이 언제나 진실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경계했다. 다수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억압하면 사회 전체의 사고능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정당정치에 적용하면 꽤 불편한 결론에 도달한다.

당원 다수가 원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지지자들이 좋아하는 정책이 항상 좋은 정책인 것도 아니다. 온라인에서 가장 많은 박수를 받는 말이 가장 필요한 말인 것도 아니다. 정치인은 때때로 지지자에게 “아닙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은 정치조직이 아니라 거대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된다.

 

노무현 대통령이 1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있다. 2007.1.16 연합뉴스

정치인의 용기는 ‘반대편을 공격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정치에서 용기라는 말을 너무 쉽게 사용한다. 상대 정당을 강하게 공격하면 용기 있다고 한다. 정부를 비판하면 소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어려운 용기는 다른 곳에 있다. 자기편에게 반대하는 것. 지지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말을 하는 것. 당 지도부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손해가 되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면 공개적으로 수정하는 것. 이것이 훨씬 어렵다.

상대방을 공격하면 박수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자기편을 비판하면 박수를 잃을 수 있다. 그래서 정치인의 진짜 소신은 적 앞에서가 아니라 자기편 앞에서 시험된다. 노무현이 남긴 것은 ‘정답’이 아니라 ‘태도’다

여기서 노무현을 지나치게 신격화해서는 안 된다. 노무현이 했던 모든 정책을 오늘날 민주당이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2000년대의 대한민국과 2026년의 대한민국은 완전히 다르다. 경제구조도 달라졌고, 노동시장도 달라졌고, 기술도 달라졌고, 청년의 삶도 달라졌다. 따라서 노무현의 정책을 복사하는 것은 계승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계승해야 하는가. 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권력을 대하는 태도. 정치를 대하는 태도. 국민을 대하는 태도. 자기편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자신의 실패를 대하는 태도. 정치철학은 정책 목록보다 이런 태도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

소크라테스에게 중요한 철학적 태도는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정말 옳은가?” “내가 정의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 정의인가?” 이 질문을 정치에 가져오면 상당히 불편해진다. 정치인은 자신이 옳다고 확신해야 하는 직업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가장 위험한 정치인은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일 수 있다.

자신의 정책이 옳다고 믿는 것과, 자신의 정책만 옳다고 믿는 것은 다르다. 자신의 정당이 필요하다고 믿는 것과, 자신의 정당은 비판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는 것은 다르다. 자신의 지지층을 존중하는 것과, 지지층의 모든 판단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 노무현을 계승한다는 말 역시 이 질문 앞에 서야 한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정치가 정말 우리가 말하는 정치와 같은가?” 노무현의 ‘지역주의 극복’은 현재에도 유효한가? 노무현의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지역주의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 불리한 지역에서 끊임없이 도전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으로 상당한 손해를 감수했다.

오늘날 지역주의가 과거와 동일한 형태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주의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정당은 여전히 지역별 정치적 계산을 한다. 후보 공천도 지역구의 정치적 유불리를 고려한다. 정치인 역시 자신이 어느 지역에서 표를 얻을 수 있는지를 계산한다.

그렇다면 노무현이 남긴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인은 지역의 표를 따라가는 사람인가,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사람인가. 이 차이는 상당히 크다. 정치인이 유권자의 현재 욕망만 따라간다면 선거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가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정치의 역할은 때로 사람들에게 박수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아직 생각하지 못한 방향을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권위주의적 리더’와 다른 정치문화를 만들려고 했다. 노무현 정치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권위의 문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본질적으로 엄청난 권력을 갖는다. 그 권력은 사람을 쉽게 취하게 만든다. 그러나 민주주의에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국민 위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다.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다. 이것은 매우 단순하지만 중요한 원칙이다. 정치인은 국민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다. 국민에게 권한을 빌린 사람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은 더 쉽게 질문받아야 한다. 더 많이 비판받아야 한다. 더 투명해야 한다. 더 책임져야 한다. 노무현을 계승하는 정당이라면 바로 이 원칙을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한다. 정치적 유산은 말로 계승되지 않는다. 행동으로 계승된다.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생태문화공원에서 노무현 대통령 15주기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2024.5.23

노무현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특히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있다. 정치인의 사과다. 정치인은 사과를 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과하면 정치적 약점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은 대개 설명한다. 해명한다. 반박한다. 상대방의 잘못을 이야기한다. 맥락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것은 때때로 그 모든 설명보다 간단하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정치에서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책임정치의 출발은 바로 그 문장이다. 실패를 인정한다고 해서 정치인이 무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이 더 위험하다. 노무현을 ‘정치적 성인’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나는 오히려 민주당이 노무현을 지나치게 성역화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무현도 정치인이었다. 정책적 오류가 있었고, 정치적 판단의 한계도 있었고, 비판받아야 할 결정도 있었다. 그를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의 정치철학도 살아남는다.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정치적 성인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 사람의 철학은 죽는다. 그저 기념물이 되기 때문이다.

노무현을 정말 계승하고 싶다면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노무현도 틀릴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더 중요한 질문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민주당에게 필요한 것은 ‘노무현의 복제’가 아니다 2026년 민주당이 노무현 시대의 정책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년이 원하는 것도 과거의 복원이 아니다. 지금의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AI 시대의 일자리다. 주거 문제다. 교육 문제다. 노동시장의 변화다. 기술과 산업의 변화다. 지역소멸이다. 기후위기다. 그리고 새로운 국제질서다.

노무현 시대에는 없었던 수많은 문제가 등장했다. 따라서 노무현의 정책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질문은 복원할 수 있다. 권력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정치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정당은 국민보다 먼저인가. 지지층은 항상 옳은가. 정치인은 잘못을 인정할 수 있는가. 그리고 정치적 이익보다 국가적 이익을 우선할 수 있는가.

청년에게 ‘노무현 정신’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이 부분도 중요하다. 20대와 30대에게 “노무현을 무조건 존경해야 한다.”라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청년은 특정 정치인을 존경해야 할 의무가 없다. 노무현을 비판해도 된다.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그가 한국 정치에 던졌던 질문을 한번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그 질문이 오늘날에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주당 역시 청년에게 노무현을 설명하기 전에 자신이 노무현의 질문을 얼마나 감당하고 있는지 먼저 설명해야 한다.

결국 ‘노무현 정신’은 민주당을 위한 말이 아니다. 나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다. 노무현 정신은 민주당의 소유물이 아니다. 노무현을 좋아하는 사람만의 것도 아니다. 특정 정당의 선거 슬로건으로 독점될 수도 없다. 원칙과 상식, 권력의 책임, 지역주의 극복, 대화와 타협,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정치. 이런 가치들은 민주당만의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의 가치다.

그래서 오히려 민주당이 노무현을 독점하려 할수록 노무현의 의미는 작아진다. 노무현을 민주당의 브랜드에서 꺼내 한국 민주주의의 자산으로 돌려놓는 것이 진정한 계승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다. 노무현의 사진을 더 많이 걸 필요 없다. 새로운 슬로건을 만들 필요도 없다. ‘노무현 정신 계승위원회’를 하나 더 만들 필요도 없다.

대신 정치의 일상에서 보여주면 된다. 자기편을 비판할 것. 잘못을 인정할 것. 상대방의 옳은 말을 인정할 것. 당론보다 국가적 이익을 고민할 것. 지지층에게도 필요한 말을 할 것. 선거에 일정부분 불리하더라도 원칙을 지킬 것. 그리고 무엇보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국민보다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노무현의 이름보다 어려운 것은 노무현의 질문이다 노무현을 기억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노무현처럼 질문하는 것은 어렵다. 노무현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쉽다. 그러나 노무현처럼 자신의 선택을 설명하고 책임지는 것은 어렵다.

노무현을 추모하는 것도 쉽다. 그러나 노무현처럼 자신의 정치적 지지층과 충돌할 각오를 하는 것은 어렵다. 그래서 나는 민주당이 정말 노무현을 계승하고 싶다면, 노무현의 이름을 더 많이 부르지 않았으면 한다. 대신 스스로에게 더 많이 물었으면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권력을 사용하는가. 우리가 주장하는 원칙은 우리에게도 적용되는가. 우리는 국민에게 설명하고 있는가, 아니면 지지층에게 박수받고 있는가. 우리는 틀렸을 때 인정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굳이 “노무현 정신”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

사람들이 먼저 노무현을 회상하고, 알아볼 것이다. 노무현은 과거가 아니라 하나의 기준이다. 나는 노무현을 민주당의 과거로만 보고 싶지 않다. 그를 정치적 성인으로 만들고 싶지도 않다. 오히려 민주당을 평가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보고 싶다. 노무현이 옳았기 때문에 민주당이 옳다는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노무현을 계승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노무현이 강조했던 원칙을 민주당 자신에게 적용해보자는 것이다. 그 기준 앞에서 민주당이 통과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 통과하지 못한다면 고치면 된다. 그것이 정치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다.

노무현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노무현을 닮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노무현이라면 불편해했을 정치적 행동을, 우리도 불편해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지금 민주당에 필요한 ‘노무현 정신’의 최소한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청년이 민주당에게 원하는 것도 거창한 것이 아닐 것이다.

과거를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다. 현재를 증명하라는 것이다. 노무현의 이름으로 표를 달라고 하기 전에, 오늘의 민주당이 원칙과 상식의 정당인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그 증명이 끝났을 때 비로소, “우리는 노무현 정신을 계승합니다.”라는 말도 다시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수영(36) 시민기자는 대학에서 국제법을 공부했으며, 국제법·과학기술혁신 정책 전문가로 현재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OCU) 스마트AI경영학과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문위원과 한국인터넷거버넌스포럼(Kr-IGF) 위원장으로 일하며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정책 자문 및 평가에 참여해 왔다. 지난 10여 년 일자리와 복지 등 전통적인 청년정책에서 출발해 청년의 사회참여와 권리, 미래교육과 과학기술, 글로벌 성장에 이르기까지 청년세대가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정책과 거버넌스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수영 시민기자 tndudfl1566@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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