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책과 삶]열심히 일하는 자와 중독자의 차이▲일 중독 벗어나기…강수돌|메이데이
어린 시절 책상 앞이나 교실 앞 급훈란에, 공중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도 볼 수 있던 글들이다. 가정과 학교, 회사와 공장, 사회와 언론에서 귀가 닳도록 들어왔고 내면화된 이 말들 속에 우리를 ‘일중독자’로 만든 씨앗이 있었다면 좀 불순한 생각일까.
이 책은 한국사회의 성공신화를 써온 수많은 ‘유능한’ ‘짱’들에게 ‘불편한’ 또는 ‘불순한’ 책이 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겐 ‘반가운’ 책일지도 모르겠지만.
경영학과 교수인 저자는 “개인과 가정은 물론 조직과 사회 차원에서의 ‘불감증’을 학문적으로 고발하고자 책을 냈다”고 대담하게 말한다. 그는 경영관리학적 접근에서 일중독은 예방하거나 치유하기보다는 조장하거나 관리할 대상 정도이기 때문에 일중독 문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정신심리학적 분석과 정치경제학적인 분석을 병행하는 것이다. 일중독은 불충분한 성취에 대한 두려움, 무능의 탄로에 대한 두려움, 몰락에의 두려움 등 자기 내면의 두려움들을 정면돌파하기보다 그것을 숨기고, 억누르려는 태도에서 나온다. 일중독은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한다. 이는 모든 중독 메커니즘에 적용되지만 일중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칭찬과 포상의 방법으로 더욱 조장되기 때문에 그 마취 효과는 다른 어떤 중독증보다 위력적이며 근본 치유도 어렵다.
저자는 한국·미국·일본·독일 4개국 노동자 비교연구를 통해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다. 어릴 때부터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채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부모와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채 자란 경우, 점수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린다는 성과주의적 삶의 태도를 반복하며 자란 경우, 한국과 같이 전형적인 일과 삶의 불균형 상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주5일제와 같은 법과 제도의 변화만으로 일중독 문제 해결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어릴 때부터 솔직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자신이나 주위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하지 않는다면 일과 삶의 균형은 물론 진정한 삶의 질 향상도 어렵다”는 것이다.
독일 신경정신과 의사 페터 베르거는 일중독자와 열심히 일하는 건강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을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미뤄버릴 수 있는가 여부”라고 했다. 바쁜 일을 중단하고도 금단현상을 보이지 않는다면 당신은 열심히 일하는 건강한 사람이다. 1만2000원
〈손제민기자〉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