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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서도 집에서도 “쉬면 불안해” 강박관념 |
일중독 벗어나기/ 강수돌 지음 / 메이데이 |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
‘W씨는 서울에 사는 30대 회사원. 그는 휴일이 전혀 반갑지 않다. 일주일 동안 노동에 시달리느라 심신이 피곤하지만 ‘서울랜드라도 가자’는 부인과 아들의 제안이 메아리나 귀찮은 소리로 들릴 뿐이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은 못다한 채 남겨놓은 회사일뿐이다. 점심 식사를 마친 그는 마침내 회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그의 유일한 변명이다….’
주변에서 어렵잖게 볼 수 있는 일중독 사례다. 그러나 이는 일에 중독된 개인의 일면일 뿐, 병적으로 중독된 이들의 증상은 보다 다양하고 총체적이다. 1인당 연간 2380시간 노동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22개국 평균인 연간 1701시간보다 40%나 많은 노동시간, 직장인 2명 중 1명(51.2%)이 자신을 일중독자라고 생각함, 직장인의 62.1%는 집에 가도 회사 걱정으로 스트레스 받음, 연간 산재 사고 8만8000여건으로 OECD 가입국 중 최고 산재율… 따위의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다. 일중독이 비단 개인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신간‘일중독 벗어나기’도 일중독이 개인 문제라고 보고, 여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실용서가 아니다. 만성 피로, 높은 스트레스, 산업재해와 과로사, 공황장애나 과로자살 등 직장인이 처한 현실의 중심에 일중독이 가로 놓여 있다는 것, 일중독은 개인 문제를 넘어 심각한 사회 문제라는 것,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 등에 대해 학문적으로 고발하는 것이다. 책은 ‘일중독이 무엇인가’를 묻고 대답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책에 따르면 일중독은 일이 삶에서 지배적 비중을 차지하면서 자기 일은 물론, 다른 사람과 병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갈수록 더 많은 일을 하거나 성과를 내야 만족할 수 있으며, 그 일을 중단하는 경우에는 견디기 어려운 불안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병적인 상황으로 정의된다. 알코올, 도박, 마약 등 중독과 다름없는 병적인 상황이면서도 일중독이 더 위험한 것은 일중독자는 ‘성실한 사람’ ‘모범적인 사람’따위로 칭찬하고 포상하기 때문에 더욱 은폐되고 조장되는 특수성이 있다는 점이다. 일중독 이론의 접근 방법에서 신경생리학·경영관리학적인 접근을 넘어, 정신분석학· 정치경제학적인 접근 방법의 통합이 필요한 이유다. “정치경제학적 접근을 확장하면, 자본주의는 일중독뿐 아니라 소비중독을 먹고 산다. 한편으로는 열심히 일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열심히 구매하고 소비하는 인간이 자본주의에 가장 적합한 인간상이다. 따라서 가정, 학교, 군대, 직장, 언론 등 모든 삶의 공간에서 근면 성실한 인간을 가장 훌륭한 인간으로 칭송함과 동시에 광고와 유행에 민감한 소비자로 살도록 체계적으로 교육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식민지와 미 군정기, 6·25전쟁과 성장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를 관통하면서 일중독을 더욱 조장하고 상호 학습하는 악순환을 지속해왔다. 한국, 일본, 미국, 독일의 4개국 비교연구에서 한국인의 일중독이 가장 심각한 것으로 조사된 점도 이와 관계가 없지 않다. 진보와 보수에 관계 없이 지배적인 경제 성장이나 발전 지상주의, 성과주의, 경쟁력주의도 그 결과물이다. 중고생의 야간 자율학습만 해도 일중독과 관련한 일종의 사회적 유전자를 만드는 것으로 평가된다. 밤늦게까지 도서관에 남아 대단한 진리 탐구라도 하듯이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되면, 마침내 주말이나 휴일에 집에서 놀기가 두려워지는 사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가. 저자에 따르면 일중독을 개인적 차원에서만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일중독을 조장하는 사회구조, 즉 지나친 성과주의에 기초한 관리구조와 기업문화, 생활문화, 삶의 패턴 등을 근원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 한 이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위한 한 대안으로 현재 경쟁력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구조 조정 프로그램을 삶의 질 중심으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역시…, 비현실적이고, 꿈 같은 이야기로 보이는가. 이런 독자들을 예상한 듯 저자는 말한다. 몸과 정신이 서서히 썩어가는데도 일의 굴레에 매인 이웃을 상상해보라. 매일 과로사 사망자가 몇명씩 나오고 매시간 산재 사고가 10건 이상씩 발생하는데도 ‘별 이상 없다’거나 ‘경제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자’며 무감각하게 일에 매몰된 ‘집단 불감증’이 말이 되는가. 책을 쓴 저자는 돈의 학문 대신 삶의 학문을, 죽은 이론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실천을 추구하는 고려대 교수로, 재작년 봄부터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 신안1리 이장으로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삶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종락기자 jrkim@munhwa.com ‘일중독’ 체크리스트 20 1. 가족이나 다른 무엇보다 일만 생각하면 마음이 들뜨는가. 2. 업무에 몰입하면 에너지가 솟아오르는가. 3. 잠잘 때나 주말, 휴가 때 종종 업무 생각을 하는가. 4. 업무에 기꺼이 최선을 다하며, 다른 사람과 업무 관련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가. 5. 일하는 시간 기준, 매주 40시간 이상 일하는가. 6. 취미활동을 수익사업으로 전환하려 노력하는가. 7. 자신의 업무 수행 결과에 전적으로 책임지려 하는가. 8. 업무 때문에 약속시간을 못 지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가. 9. 업무 걱정 때문에 별도 체크를 종종 하는가. 10. 일할 때 기한을 짧게 잡았다가 막판에 급히 서두르는가. 11. 본인이 좋아하기만 하면 일을 오래 해도 상관없는가. 12. 직장동료가 업무 이외의 것을 더 우선시하면 화가 치미는가. 13.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실직하거나 탈락할까봐 걱정되는가. 14. 현재의 일이 순조로운데도 미래에 대해 늘 걱정하는가. 15. 업무뿐 아니라, 놀이나 게임에서도 승부욕이 강한가. 16. 하던 일을 중지당할 때 방해 받는 느낌을 자주 받는가. 17. 직장생활로 가정생활이나 여타 인간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한가. 18. 운전할 때나 잠자리 등에서 업무에 대해 종종 생각하는가. 19. 식사 중에도 일처리를 하는 편인가. 20. 돈이면 인생의 문제를 대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가. *세계적 조직인 ‘익명의 일중독자 모임’에서 제공한 본 설문에서 3항목 이상 ‘그렇다’고 응답하면, 일중독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설문에 ‘그렇다’고 응답하고서도 일중독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일중독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현실을 웅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사 게재 일자 2007-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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