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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9/02
    나-모순된 존재(7)
    곰탱이
  2. 2006/08/22
    호치민과 보 우옌 지압의 영향.
    곰탱이
  3. 2006/08/21
    처음 불질을 하면서...(8)
    곰탱이

나-모순된 존재

좀전에 연구실에서 강의 준비하면서 책을 읽다가

연구실 밖에 나가 담배 한 대 피우던 참이었다.

(연구실은 내 이름으로 된 연구실이 아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프로젝트에

선정된 여러 선배들이 학교로부터 배정받은 연구실인데,

이 선배들이 학교에 거의 나오지 않아서 자리 지킴이로 나와서

공부하는 곳이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재잘거리면서 엄청 모여드는 것이었다.

왜 그런가 봤더니 연구실이 속해 있는 문과대 건물에서 아이들의 한자 능력 검정 시험이 있는 것이었다. 교회 차량에서 내린 아이들은 교회 선생님(?, 요즘은 교회에서도 아이들을 모으기 위해 한자도 가르치는 모양인가?)이 나눠 주는 수험표를 들고 고사장 안으로 하나둘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가 한자의 뜻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 능력을 측정한다고 저 난리들인지... 학부모의 교육열(?)이 눈물겹기까지 하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좀더 좋은 곳에 취직을 해서 생존경쟁에 밀리지 않고 먹고살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심정이란 오죽할까...

그런데도 한 사람의 교육자로서 안타깝고 씁쓸한 느낌은 어쩔 수가 없다.

이건 사교육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문제를 넘어서서(그렇다고 사교육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학교와 집이라는 사회의 모든 영역(아이들에게는 학교와 집은 거의 대부분의 인간 관계를 맺는 곳이 아닌가 한다)에서 자본주의의 세례를 받는다는 것, 그래서 아이들의 미래뿐만 아니라 현재 인간해방, 여성해방, 노동해방 등의 해방을 꿈꾸는 사람들의 미래도 불투명해 보인다는 것이 너무 서글프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또한 서글프고 자괴감이 생기게 만드는 것은 그 아이들이 앞으로 나의 밥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1월에 고3 수능이 끝나면 빛을 갚기 위해 돈을 벌러 이러한 사교육 시장으로 가야 하는 처지다. 사실상 대부분의 시간 강사들이 적게는 기백만 원에서 기천만 원의 빛을 지고 살아서 어쩔 수 없이 사교육 시장으로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사교육 시장으로 안 나가려면 정규직 교수가 되는 길밖엔 없는데, 이게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도 더 어렵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정규직 노동자가 되는 것만큼이나 말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체제 아래 먹고사는 것과 관련해서 나타나는 내 존재의 실존적(?) 모순이 나타나는 형태이다. 비단 나뿐만이 그러랴.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디서부터 이 모순의 매듭을 풀어야 할 것인가?

 

이 모순을 풀어야 하는 과제가 나의 업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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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과 보 우옌 지압의 영향.

아래의 글은 <작은책>(2006.9월호)에 썼던 글 중의 일부분이다. 호치민과 보 우옌 지압의 전략 전술론을 통해서 반자본의 전략을 어떻게 기획할 것인가를 고민해 보면서 썼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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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치민과 보 우옌 지압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

 

호치민과 보 우옌 지압은 베트남의 민족해방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베트남을 자본주의와는 다른 사회, 즉 사회주의 사회로 이끈 민족지도자이자 빛나는 사회주의자들이다. 이들 사상의 중심에는 두 가지 원리가 핵심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나는 민족해방의 원리이고, 다른 하나는 민족해방의 원리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인민 전쟁의 전략 전술 원리이다.

 

- 민족해방의 원리

먼저 민족해방의 원리란 사회를 발전시키고 역사를 진보시키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생산력의 발전을 방해하는 낡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생산력의 발전을 꾀하며 사회를 질적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으로서 민족의 문제가 중요한 문제로 등장했다. 민족 이데올로기로 탄생한 자본주의 생산 체제가 제국주의로 변하면서 더 이상의 생산력 발전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런데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새로운 생산력의 발전을 위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다시금 민족 이데올로기가 중요한 것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제국주의는 베트남과 같이 발전되지 못한 나라들을 식민지로 삼음으로써 생산력의 발전을 꾀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피식민지 민족(국가)들에게 민족해방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민족 이데올로기는 제국주의 생산 체제를 극복, 지양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고, 이런 의미에서 베트남 민족해방전쟁은 제3세계에서 제국주의의 억압과 착취의 체제를 해체하고

새로운 생산 체제로의 전환을 꾀했던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베트남 민족해방전쟁은 제국주의, 특히 미 제국주의의 세계적 패권을 약화시키고 제3세계의 이데올로기인 자주 자립 평화 협력의 정신을 드높인 새로운 전쟁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전쟁은 자본주의 식의 대량소비전 보복전 협박전 등의 전쟁보다는 체제 사이의 평화공존과 상호협력이 훨씬 더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미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냉전과 대결보다는 상호협력과 우호관계로 만들어 나갔다.

그런데 베트남과 같은 제3세계의 민족 이데올로기는 자본의 민족 이데올로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왜냐하면 제3세계의 민족해방의 원리는 맑스?레닌주의의 전략 전술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맑스?레닌주의는 생산력이 떨어지는 것을 막고 사회를 계속 발전시키기 위한 새로운 원리로서 제국주의를 극복하고 사회주의 생산 체제의 건설을 제시했다. 정치?경제?사회 구조가 제국주의와 결탁된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체제를 해체하고 민족자주 세력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프롤레타리아를 중심으로 여러 계층의 강고한 연대와 투쟁이 강조된다. 그러므로 민족해방투쟁의 승리는 맑스?레닌주의에 충실한 투쟁 속에서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족해방의 원리는 인민전쟁으로 나타난다. 인민전쟁은 장기전이다. 장기전을 위해서는 지속적인 인적?물적 자원의 공급이 필수적이다. 이런 인적?물적 자원을 안정적이고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기 위해서는 진지가 필요하다. 진지가 없거나 진지로부터 보급이 끊어진 전쟁은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것은 동의를 바탕으로 한 사람들 사이의 민주적 관계의 확립이다. 이러한 관계의 확립은 베트남에서 노동자, 농민, 그리고 지식인 등 각계각층의 연합체로서의 ‘민족해방전선’의 결성으로 나타났다.

 

- 진지전과 동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적 관계

동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적 관계를 통해 진지를 구축해야만 장기전을 치를 수 있고 결국에는 승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 호치민과 보 우옌 지압이 우리에게 보여 주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 베트남에서 민주적 관계를 통한 진지 구축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베트남 민중 사이에 ‘민족해방’이라는 공통적인 절절한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수탈과 억압과 착취는 베트남 민중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이었으며, 제국주의의 수탈과 억압과 착취로부터의 해방은 베트남 민중들 각각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공통적 과제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우리들 각각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공통적인 과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만 하지 않을까? 아마도 그 과제는 인간답게 먹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인간답게 먹고 살아갈 수 있기 위한 기획이 현실적으로 어떻게 나타나야 하는 것일까? 물론 베트남에서는 민족해방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인민전쟁이었다. 이 민족해방은 식민지 정부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청원하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식민지 민중 자신들의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이는 호치민이 “정부가 현 상황을 변화시켜 주기를 기대하다가는 아마 평생 기다리기만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속에 잘 나타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민전쟁은 자본의 제국주의 전쟁과는 질적으로 다른 방식과 성격을 띠는 것이었다. 자본의 제국주의 전쟁은 대량소비의 물량전의 방식이며 공격적이고 속전속결이 주요 전법인 반면에 인민전쟁은 방어적이며 장기전의 형식을 띠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답게 먹고 살아갈 수 있는 방식에 있어서 돈을 많이 벌어서 많은 소비를 통해 먹고 사는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을 기획하고 현실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자본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요구한다면, 그것은 아무 쓸모없는 일이 될 것이다. 자본은 결코 이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요구를 한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자본에게 요구하는 양상을 띠게 될 것이며, 이는 개별적 투쟁의 양상으로 나타남으로써 진지 없는 게릴라전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그리고 그 싸움은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오늘날 우리나라의 노조운동의 형태가 바로 이러한 형태를 띠고 있다.

자본주의 삶의 양식의 기초는 무한한 적대적 경쟁이다. 이러한 적대적 경쟁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해체하지 않고서는 어떤 투쟁도 패배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민주적 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적대적 경쟁의 삶의 양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삶의 양식을 기획해야 한다. 그 새로운 삶의 양식은 연대의 삶의 양식이어야 한다. 맑스의 말마따나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대”에 기초한 삶의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삶의 양식의 기획을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 인민전쟁의 전략 전술 : 게릴라 전

베트남 민족해방전쟁에서의 기본적 전략 전술은 게릴라전이었다. 이 게릴라전을 통해서 베트남은 제국주의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였고 사회주의를 건설하였다. 베트남의 게릴라전은 제국주의에, 특히 미 제국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동서냉전 종식과 9·11사태 이후 미국의 군사 정치적 판단과 결정에 중요한 고려 요소로 여전히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과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2003년 3-5월 사이 이라크와의 전쟁에서도 베트남 전쟁 때 얻은 긍정?부정적 전투 경험과 전략 전술을 적절히 활용했다고 한다. 미국은 베트남의 게릴라 전략 전술 때문에 베트남 전쟁에서 패한 쓰라린 경험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때 교훈으로 이용함으로써 과거의 패배를 만회하고자 했다.

베트남의 게릴라전은 세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하기 위하여 모든 전투를 치고 빠지는 게릴라전의 형태를 띤다. 두 번째, 진지구축을 통해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정규군을 창설한다. 이때에는 게릴라전이 아니라 정규군 사이의 전투가 이루어진다. 세 번째, 가장 약하다고 생각되는 지역의 대규모 공세를 취한다. 그리하여 적의 전투력이 그 지역에 집중되었을 때, 전 국민이 전 국토에서 전면적인 게릴라전을 펼치게 된다. 이렇게 될 때 적은 혼란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전쟁에서 패배하게 된다. 이러한 가장 좋은 예는 프랑스와의 디엔 비엔 푸 전투이며, 미국을 상대로 한 구정 공세이다.

이러한 게릴라전의 형태를 오늘날 노동운동 진영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진보 운동 진영에서의 싸움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 과제일 것이다. 첫 단계에서 새로운 삶의 양식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의 진지를 구축하고 방어하기 위해서 자본의 공세에 어떤 게릴라전의 형태를 취할 것인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두 번째 단계로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정규군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단계에서는 현재의 조건에서 자본의 가장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선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일은 어떻게 진지를 구축할 것인가, 즉 어떻게 새로운 삶의 양식을 구체적으로 기획할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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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불질을 하면서...

이제사 겨우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를 만들기까지 꽤나 고민을 많이 했다.

나처럼 게으른 놈이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을지 말이다.

이젠 일단 이 고민에서 빠져 나왔으니,

어떻게 하면 이 블로그를 통해서

성숙해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배워 나가야겠다.

 

사실 이 블로그를 어떻게 운영해 나가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블로그 만드는 것을 결심한 것은 해미 님의 <어느 노조 위원장 님의 화병>이라는

포스트를 보고 나서였다.

맨 밑에 나온 증상들 중에 하나만 해당되도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했는데,

난 해당되는 게 한 5개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정말 병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병들지 말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래야 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 텐데...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고 있는 시간강사이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대가 필요한 것인데...

 

이제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연대를 통해서 많이 배우면서

즐겁게 살고자 한다.

어찌 될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진보넷 블로거들에게서

비판과 격려를 받았으면 좋겠다.

*^^*...

 

덧글 : 블로그를 만들었으니, 스머프 님이 제일 좋아하실까?

ㅎㅎㅎ...

이젠 눈팅 그만!

그리고 변변찮은 덧글에 따뜻하게 말을 건네 주신 모든 블로거들께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열심히 불질해 보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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