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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부분(HYPHEN)을 해체하기 : 맑스주의-페미니즘 그룹 1-5에 관한 레포트 2

** 맑스주의 페미니즘 : “분리된 영역들”을 넘어서기 **

 

 

2년 전에 아주 흥미로운 원고가 맑스주의-페미니즘 “전위 운동 단체” 사이에서 회람되기 시작했다. 그 원고는 Gayle Rubin의 “여성의 교환”(The Traffic in Women)이었는데, 우리가 우리 고유의 순수한 맑스주의-페미니즘 방법론이라 부를 수 있었던 분석 양식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내가 루빈의 논문을 찬양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루빈의 논문은 맑스주의-페미니즘 이론 성장의 한 지표였다. 그 논문은 『자본』의 각 권에서 확실하게 여성을 위치시키고자 하는, 또는 “개인”을 낱낱이 파헤쳐지는 (그리고 억압 받는) 존재로 꾸밈없이 묘사함으로써 그 개인을 정치화시키려는 우리의 열망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전에 우리가 성취할 수 있었던 것보다 좀 더 풍부하고 좀 더 완전한 분석적 접근의 시작을 알리는 전조가 되었다.

 

Rubin은 “섹스-젠더(sex-gender)의 정치학”을 제안하면서, 섹슈얼리티와 젠더, 그리고 이 두 가지가 재생산되는 친족-가족 구조들이 “그 자체 사회적 생산물이라는” 점, 이런 것들이 역사적으로 결정된 관계들로, 다시 말해서 물질적 생산, 부, 교환, 권력과 지배뿐만 아니라 감정과 감성 모두를 직접적으로 아우르는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우리에게 진지하게 제시하였다. 다음으로 이러한 것을 통해 다음과 같은 좀 더 분석적인 통찰을 할 수 있었다. 그러한 통찰은 “생산”과 “재생산”, 노동과 가족이 달과 태양 또는 부엌과 가게처럼 멀리 떨어져 있기는커녕, 실제로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는 양식들, 즉 서로 반향되고 동일한 사회적, 신체적 그리고 심리적 공간들 속에서 자주 발생하는 양식들이다. 이러한 점은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우리들 대다수가 여전히 “분리된 영역들”(생산, “공적인 삶”, 사무실 등의 남성 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재생산”, “사적인 삶”, 가정 등의 “여성의 장소”)이라는 모델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377) 분리된 영역이라는 모델이 현실을 왜곡하고 있으며, 그 모델이 어느 모로 보나 “남자”(male)와 “여자”(female)라는 자체의 의미만큼이나 동일한 의미의 이데올로기 구성물임을 알아가고 있다. 재생산과 친족 관계, 또는 가족은 역사적으로 결정된 자신만의 고유한 생산물, 물질적 기술, 조직 방식 그리고 관력 관계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재생산과 친족 관계 그 자체는 필연적으로 사회의 생산관계 그리고 국가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들은 모든 시기마다 자신의 관계를 재형성한다. 이러한 이론의 진전(나는 이러한 용어가 아주 거창한 용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이 가지고 있는 하나의 함축적 의미는 가부장제를 분석하고 정치경제학(이 정치경제학이 자본주의, 전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 경제학이건 간에)을 분석하는 이 두 가지의 일이 결코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맑스주의-페미니즘 분석 양식을 발전시키는 바로 그러한 과정은 필연적으로 맑스주의 변증법을 심화시킬 것이며 세계를 바라보고 반영하는 분석 방식을 풍부하게 할 것이다.

 

이러한 맑스주의-페미니즘 진영에서 자칭 나의 역할은 이러한 과정이 이미 어떻게 어떤 영역에서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당신과 공유하는 것이다. 나는 맑스주의-페미니즘 이론과 방법론이 더 이상 단순한 희망(또는 “불행한 결혼”)이 결코 되지 않을 것이라는 커다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우리들 자신만의 토론 그룹뿐만 우리의 저작 활동 속에서 우리는 그러한 이론을 진지하게 정치적이고도 지적인 기획으로 만들고자 서로를 북돋았다. 우리가 이러한 지점에 서 있음을 보았을 때, 나에게는 우리가 이미 네 가지 비판적인 관계들을 분석하기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런 관계들 속에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생산과 재생산 사이의 역동적 상호연관성이 구체적이고도 역사적으로 상세한 방식으로 표면에 떠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관계들은 다음과 같다 :

 

(1) 친족 관계 또는 가족, 그리고 계급 구조. 나는 가족과 친족 체계 둘 다 가족 바깥에 있는 사회적 관계들을 반영하고 그 관계들을 재형성하는 데 보탬이 되는 다양한 방식들을 맘에 두고 있다.

 

(2) 재생산 수단들(특히 섹슈얼리티와 아이 출산)에 대한 통제와 남자 권력(male power) 사이의 관계. 이것은 아이 출산과 섹슈얼리티의 물질적 조건과 기술들에 대한 통제가 자부장적 지배와 자본주의/제국주의 지배의 중요한 수단이며, 따라서 사회주의 페미니즘 투쟁의 중요한 대상이라는 사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점점 커져 가고 있음을 나타낸다.

 

(378) (3) 가부장적, 또는 남자 지상주의자, 이데올로기와 국가, 국가의 형태와 그 합법성 사이의 관계. 엥겔스가 보여 주었던 것처럼, 가부장제와 국가 조직 형태 사이의 일치를 보여 주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우리는 가부장제가 어떻게 국가 권력을 승인하였는지 알아가기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것은 고대와 현대 부르주아 국가들을 정당화하는 주요한 것으로서 “이중적 노동 기준”(double standard), 여성혐오주의자들이 말하는 타락의 금기, 모성 숭배와 같은 그러한 지배적인 반여성적 이데올로기 기능들을 수반하고 있다.

 

(4) 이러한 모든 것과 여성의 의식 사이 그리고 여성의 의식과 혁명적 변화 사이의 관계. 우리가 여성의 실제적 조건들을 이해하면 할수록, 물론 우리는 여성이 그러한 조건들을 변형시키기 위해 그리고 그 내부의 혁명적 운동들을 변환시키기 위해 행동하는 특수한 방식들을 점점 더 이해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모든 관계들을 분석하거나 또는 그러한 관계들을 어떠한 식으로든 상세하게 묘사할 시간이 없다.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를 처음의 두 가지 영역으로 이끌어 나갔던 최근 몇몇 지적 작업의 예들을 제시하는 것이며 따라서 세 번째와 네 번째 영역에 관한 짤막한 몇몇 생각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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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의 지시란다...

오늘 학교에 왔더니 웃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울지도 못할 일이 떡 하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학교 중앙 도서관에 있는 교수 개인 열람실을 한 달씩 끊어서 이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한 달 동안은 그 열람실이 나의 개인 연구실쯤 되는 셈이다.

그런데 열람실에 들어왔더니, 열람실 책상을 누가 자기 멋대로 정리(?)해 두었다.

그리고 책상 머리 앞에 정말로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메모 한 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내용인즉슨 다음과 같다.

 

"퇴실 시에는 자리를 항상 깨끗하게 정돈하여 주십시요.

윗분에게 지적 받았읍니다.

0층 담당

11/11(수) 000 차장"

 

참으로 예의 없는 글 하며...

글고 차장씩이나 되는 사람이 나한테 지적 받았다고 하는 소리나...

그리고 그 잘나신 높은 양반이 강사의 개인 열람실을 보구서 자기 맘에 안 들게 정리되었다고

와서 한마디 하신 거 보면, 참으로 할 일 없으신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하도 어이가 없고 열도 받아서 그 메모 들고 내려가서 한마디 하고 싶더라만...

괜히 열 받을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관뒀다.

치우는 건 내가 치우는 것도 아니고, 윗분에게 한소리 듣는 것도 내가 아니니까...

 

그런데 발상이 너무나 어이없다...

책상 정리가 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차장씩이나 되는 사람을 불러서 한소리를 하는 것도 그렇고,

책상정리까지 간섭한다는 것도 그렇고...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옛날 박통 시절에 머리 길다고 경찰이 가위 들고 서서 머리를 싹둑 자르는 등의

그 무식한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하여간 골때리는 일이다, 한마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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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부분(HYPHEN)을 해체하기 : 맑스주의-페미니즘 그룹 1-5에 관한 레포트 1

여기에 옮겨 놓은 글은 이전에 옮겨 놓은 글이 속해 있는 같은 책 <자본주의 가부장제와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입장>에 속해 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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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3) # 연결 부분(HYPHEN)을 해체하기 : 맑스주의-페미니즘 그룹 1-5에 관한 레포트 #

 

 

- Rosalind Petchesky -

 

 

이 “리포트”(이 논문이 담겨 있는 책을 말하는 것 같음-옮긴이)에 딸려 있는 이 논문은 “맑스주의-페미니즘 그룹 1”이라 부르는 집단의 생각과 이 집단의 4년 간 상호교류를 통해 나타난 생산물이다. “M-F 1”은 1973년 여성의 비공식적인 네트워크로 형성되었는데, 다른 것들은 제외하더라도 이들 중 많은 급진적 학문 단체들이 원칙적으로 의료, 조직적인 사무원들 또는 여러 다른 분야로 편성된 공동체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옮긴이) 그것은 결코 하나의 “조직”이 아니었다. 하물며 오늘날에도 조직화하지 않지만, “운동”을 표방한다. 고작해야 그것은 개인의 정치적 경향의 구조적 표현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혼자 또는 우리의 개별적 가족, 공동체, 대학, 사무실, 그리고 연구소 등으로 고립된 작은 그룹으로 연구하면서도, 맑스주의와 페미니즘 사이의 긴장에 압도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4년 동안 1년에 수차례 모임을 가졌는데, 이때 우리의 다양하면서도 공동의 상황들을 서로 모여 반추해 보고 비교해 보며 분석하면서, 우리의 생각들과 실천들을 종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좀 더 현실화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M-F 1 구성원들이 여러 분산된 (374) 장소(New York, New Haven, Hartford, Buffalo, western Massachusetts, Boston, Washington, D. C.)에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고, 다양한 정치적 구조 속에서 연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공동의 조직된 활동을 수행하거나 하나의 그룹으로서 전략을 짤 수 있다는 것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우리의 활동은 폭넓은 주제를 둘러싸고 주말의 오랜 시간 동안 강도 높은 토론으로 이루어지는 등의 주로 이론적인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이러한 주제들은 여성과 노동조합, 모성, 빅토리아 시기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재정 위기와 그것이 여성에게 미치는 영향, 섹슈얼리티와 정신분석 이론, 건강관리와 인구 조절 정책들에서의 인종차별주의, 페미니즘과 문화, 페미니즘 운동의 확립과 같은 것인데, 이는 우리가 집중해서 연구하자고 약속한 좀 더 공식적인 주제들의 작은 샘플에 지나지 않는다. 덧붙여서 우리는 매주 주말 토론회의 정규 부분으로서 좀 더 “개인적인” 특성을 지닌 주제들, 즉 남성, 섹슈얼리티, 주거 환경, 노동, 화폐 그리고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우리의 감정들에 대한 토론 시간을 많이 가졌다. 분명하게, “무거운” 주제와 개인적(“부드러운”) 주제 사이의 이러한 분리는 끊임없이 우리 의식 내에서 이분법이 작동하고 있음을, 그리고 우리 모두가 확고하게 믿고 있는 개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사이의 연관성을 끊임없이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무능력을 보여 주고 있다. 이론, 개인의 경험과 의식 그리고 조직화의 전략들을 우리의 토론 속에서 결합시켜 보고자 하는 열망은 여전히 우리의 명백하고도 절박한 과제로 남아 있다.

 

M-F 1은 집단적인 저술 기획의 형태로 논문을 쓴다는 것에 대해 말을 아꼈고, 그 논문 작업을 천천히 진행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이론적 작업을 끊임없이 부지런하게 노트(수고)의 형태로 그리고 우리의 집단적 생각들이 우리 구성원 개인 모두의 저술 활동, 교육 활동, 그리고 정치적 실천에 결합되어 들어갈 수 있는 미묘하고도 무수한 방식으로 정리하였다. 아마도 우리 공동 작업의 가장 구체적인 생산물은 지난 3년 동안 맑스주의-페미니즘 그룹 2,3,4와 지금의 5 그룹을 형성시킨 것이었다. 우리의 자매 그룹들이 함께 해 왔던 안락과 열정, 사실상 열망을 통해 우리는 순수한 맑스주의-페미니즘 정치학의 발전이 아주 필요하며, 이를 이 그룹들이 출현했던 도시들(처음에는 New York과 Boston)의 많은 여성들이 공유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지금 (375) 약 175명의 여성들이 구성원으로 속해 있는 집합체이다. 1977년 3월 19일, 우리들 중 대략 70명이 Barnard 대학에서 하루 종일 회의를 했던 최초 모임 기간에 우리의 저술 방식과 맑스주의-페미니즘을 하나의 전망으로 그리고 하나의 가능한 운동으로서 바라보는 우리의 시험적인 생각들을 공유하기 위하여 모였다. 이 회의에서, 앞으로 적절한 저술 활동 분야로서 가장 관심을 이끌었던 단일한 정치적 이슈는 재생산의 정치학이었으며, 또한 특히 불임수술 남용에 저항하여 진행했던 캠페인이었다. 이러한 이슈는 성, 인정 그리고 계급 문제들을 통합시킬 수 있는 광범위한 잠재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운동과 제3세계, 반제국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혁명 운동들 사이를 연결하는 결정적인 다리를 세울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좀 더 일반적으로, 승리의 과정을 고취하였던 신중한 희망의 정신이, 즉 우리 개인적인 삶의 모순과 같이 우리 정치학의 애매모호함들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자각이 있었다. 이러한 정신은 M-F 2의 여성대변인인 Mary Bailey의 말에 등장하는 모두에게 잘 포착되어 있다 :

 

 

“맑스주의자-페미니스트로서 우리는 날뛰는 말 위에 두 발로 서 있다. 우리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즉 이 연결 부분(hyphen)을 해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맑스주의나 페미니즘의 통찰에 의해 진행되는 혁명이 우리가 원하는 혁명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그룹으로서 우리의 고유한 실천은 그러한 혁명의 형식주의적인 몇몇 측면을 뺀 모든 것을 서술하는 것이다. 종종 이러한 모든 것은 우리의 페미니스트 자매들에 대하여 우리가 맑스주의자이며 또한 우리의 맑스주의자 형제들에 대하여 우리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바로 지금……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험은 우리가 이러한 연결 부분을 받아들이려 하고, 자명한 것으로서 거부감 없이 그 연결 부분에 안주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그 연결 부분은 하나의 기획(a project)이 되는 것 대신에 (연결되는 두 부분 중의-옮긴이) 한 부분(a counter)으로 되거나 하나의 암호(a cipher)가 될 것이다. 그 연결 부분은 경제 쇠퇴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얻거나 보존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틈새시장 중에서 우리가 비꼬았던 그 안락한 지위를 찾기 위한 한 방법으로, 우리의 남은 삶을 규정하기 위한 한 방법으로 사용될 것이다. 이러한 것을 방지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고정된 규정으로는 살아가지 않으려고 하는 우리 삶의 모순들. 이러한 시도를 굉장히 어렵고,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과정으로 만들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모순들. 이 두 조항들 사이에 끼어드는 것은 모든 수준에서의 욕구이다. 즉 소망으로서의 연결 부분이다(Hyphen as wish). 우리는 그 연결 부분의 속삭임을 들었다.”

 

 

(376) 다음의 논문은 내가 회의에서 했던 이야기들을 확장시켜 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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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가 잘 작동 안 된다면, so... [펌글 기사]

“자본주의 잘 작동” 11%뿐… BBC, 주요 27개국 국민 여론조사

“규제·개혁으로 풀어야” 51%

경향신문 | 김향미기자 | 입력 2009.11.09 18:19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주요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시행된 여론조사 결과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우려가 매우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BBC방송이 주요 27개국 성인 2만9033명을 대상으로 지난 6월19일부터 10월13일까지 진행해 9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장경제를 주축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응답은 11%에 불과했다. 시장경제가 잘 작동하고 있다는 응답이 20%를 넘은 국가는 미국(25%)과 파키스탄(21%) 등 2개국뿐이었다.

전체 응답자 중 51%는 현재 자본주의의 문제를 더 많은 규제와 개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답변했다. 또 응답자의 23%는 자본주의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으며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이 같이 답변한 비율은 프랑스 43%, 멕시코 38%, 브라질 35%로 나타났다. 27개국 중 15개국에서 과반수의 응답자는 정부가 주요 산업을 소유하거나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옛 소련의 몰락에 대한 응답 비율은 국가별 차이가 두드러졌다. 미국이 81%로 옛 소련의 몰락을 지지하는 의견이 가장 많았고 이어 독일(79%), 영국(76%) 등 서방국가에서 지지 의견이 우세했다. 반면 '잘못된 일'이라는 답변이 러시아에서는 61%를 차지했고, 우크라이나(54%)에서도 다수를 차지했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옛 소련의 해체가 '잘못된 일'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2%, '잘 모르겠다'고 답한 응답자는 24%로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옛 소련의 몰락을 지지하는 의견은 54%였다.

27개국 중 22개국의 67%가 정부가 부(富)를 좀 더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이번 여론조사를 시행한 영국 BBC 글로벌스캔 대표인 도그 밀러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자본주의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이번 여론조사는 지난 1년간 금융위기로 자본주의가 폭풍우를 맞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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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재탕했다구 벌 받았나봐...ㅠ...

작년 거 재탕했다구 벌 받았나봐...ㅠ...

오늘 몸이 으슬으슬 춥다...

아침에 도서관 교수 열람실에 히터 안 틀어줘서 떨었더니만...

 

그래서 도서관 알바 학생한테 히터 좀 어떻게 안 되겠냐고 물었더니,

학교 담당자한테 전화하더니만, 연방 예, 예만 하더니 나에게 그쪽 얘기를 전한다...

- 오늘 시운전했는데, 시운전 끝나서 히터 못 넣어주고 낼부터 넣어준대요...

그 알바 학생 디게 미안해 하더라...

미안할 것까진 없는데...

학교 지들 오늘 한 번도 히터 넣어준 적 없으면서!!!

히터 시운전해서 넣었다는 투로 말하는 거 하고...

에이, 빌어먹을 놈의 학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뭐 이런 게 생각나더라...

 

안 그래도 추워서 떨리는데 차별이란 말을 쓰니 더욱 춥구나...

거시기하다...

 

지금은 생도에 있다.

여기는 학생회관에 있는 거라 히터를 틀어놓아서 그나마 따뜻하다...

중앙도서관에 있었으면 동태에다 혹시 신종 뭐시기까지....

 

사실 몸이 안 좋은 것은 지지난 주부터였다...

근데 지난 주에 <야자> 하면서 무리하게 달렸더니...

그만 탈이 나고 몸 상태가 더욱 안 좋아졌다...

지금 입꼬리에 염증이 생겨서 입을 벌릴 때마다 아프다...

사실 염증 생긴 건 한 일주일 된다...

 

지금 겨울 운동복 후드 모자 쓰고 있다...

덜덜 떨려서...

근데 집에 갈 일이 까마득하다...

자전거 가져왔는데...

왜 가져 왔을까 후회막급이다...

눈 딱 감구 타구 가야지 별 수 있나...

 

오늘은 집에 불 좀 넣고 12시간 정도 자야겠다...

한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참, 물 끓여서 뜨겁게 마셔야겠다...

 

살살 갈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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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의 마지막 날에...(재탕) ㅋㅋ...

10월의 마지막 밤 - 이용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를 남긴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 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 가요..
한 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

 

 

  

 

작년 이 날에 올렸던 걸 왜 올리느냐?!

이유가 없다^^ ㅋㅋㅋ

10월의 마지막 날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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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성별 직무 분리 7.

결 론

 

 

노동시장에서 현재 여성의 지위와 성별로 분리된 직무라는 현 제도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사이의 오랜 상호작용 과정의 결과물이다. 나는 이러한 과정 곳곳에 있는 남자 노동자들의 행위를 강조해 왔는데, 왜냐하면 나는 그러한 강조가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성의 종속이 끝이 나고 남성이 계급 억압과 착취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하게 되는 이 두 경우에 남성들은 (노동시장과 가정에서의) 노동 분업에서 차지하고 있는 자신들의 매력적인 지위를 포기하도록 압력을 받을 것이다. 자본가들은 사실상 여성을 남자 노동자들을 자르기 위한 비숙련의 저임금 노동자로 사용해 왔다. 그런데 여전히 이것은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 즉 남성들 사이의 위계질서로 이루어져 있고 남성을 복수심으로 가득 찬 자신으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가부장제 사회에 의해 남성들이 선택되고 그 사회를 남성들이 지지하는 경우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가부장제 위에서 성장하였다. 가부장적 자본주의는 전형적으로 계급화된 사회이다. 피지배 계급 남성들이 자유롭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이 가부장적 자본주의에 의해 선택되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고 자신들의 가부장적 이익들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여성들이 자유롭게 된다면, 여성들은 가부장적 권력과 자본주의 사회 조직에 대항하여 반드시 투쟁할 것이다.

 

성별 노동 분업과 남자 지배(male domination) 이 둘이 그렇게 오랫동안 존속해 왔기 때문에, (231) 이 둘을 뿌리 뽑기란 아주 어려울 것이며, 전자(성별 노동 분업)를 제거하지 않고 후자(남자 지배)를 뿌리 뽑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지금 거의 풀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남자 지배를 끝장내기 위해서는 성별 노동 분업 자체를 제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사회와 문화의 모든 수준에서의 아주 기본적인 변화들은 여성 해방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논문에서, 나는 성별 직무 분리의 유지가 여성 지위의 핵심적인 뿌리라는 점을 말해 왔고, 또한 성별 직무 분리의 유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사회 제도들의 폭넓은 작동들을 고찰해 왔다. 그러나 그러한 노동 분업의 결과는 매우 깊숙이 잠재의식 수준으로까지 내려간다. 잠재의식은 사회 제도들의 세세한 기반들 [또는 요소들]을 형성하지만 그 다음에는 그러한 사회 제도들에 의해 강제되는 행동 양상들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내가 이 논문에서 다루었던 거시적 현상들뿐만 아니라 미시적 현상들도 탐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남성이 유사한 사회 계급의 여성에게 결코 종속될 수 없다는 아주 뿌리 깊은 행동 규칙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규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장소는, 바텐더가 자율적인 상황을 인정할 수 있을 때까지 웨이트리스가 바텐더에게 주문을 전달할 때 어려움을 겪는 레스토랑이다. 또한 경영진과 관련하여, 그 장소는 여성 경영진들이 그녀들의 지위상 다른 사람들과 거의 접촉이 없고 적은 인원의 직원들을 관리할 때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보일 수 있는 곳에서도 나타난다. 그리고 산업 노동자와 관련하여, 여자 공장 감독관이 결코 남자 생산직 노동자의 일을 성공적으로 바로 잡을 수 없는 곳에서도 나타난다. 또한 다른 성과 동일시되는 것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규칙으로서, 여성과 남성은 (제각각) 여성적인 것이 아닌 것 또는 남성적인 것이 아닌 어떠한 것도 결코 행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남자 경영진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남성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 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관계의 표시로서 남자 비서들과 종종 악수를 한다.

 

다음으로 좀 더 깊은 수준에서, 우리는 잠재의식, 즉 이러한 행동규칙들이 어떻게 내면화되고 어떻게 개인의 인격 구조로부터 탈피하게 되는지를 고찰해야만 한다. 이런 측면에서, 즉 개인의 인격 형성이라는 측면에서 생물학적 성 차이에 기초한, 사회적으로 강제된 인간의 차별인 젠더의 생성을 고찰하고자 하는 여러 시도가 있었다. 현실에 대한 유물론적 해석은 물론 젠더 생성이 (232) 현존하는 성별 노동 분업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제시하며, 또한 변증법적 과정 속에서 바로 그러한 노동 분업 자체를 강화한다. 내 생각에, 이러한 성별 노동 분업이 깊숙하게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들 사이에서 사회적으로 강제된 젠더 차이를, 그리하여 성별 노동 분업 자체를 뿌리 뽑을 때까지 우리는 성적으로 질서지워진 직무 분리를 뿌리 뽑을 수 없을 것이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둘 다를 공격하면서 우리는 폭넓은 사회 제도들 그리고 우리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습관들 둘 다를 변화시키는 방법들을 찾아야만 한다. 이것은 멀고 험난한 투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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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거시기한...

요즘 대학 4학년들은 죽을 맛이란다...

이런 게 어디 한두 해였냐마는...

올해는 작년보다 취직하기가 더 어렵단다...

이건 대학 4학년 남학생의 이야기이다.

잘 나간다는 경영학과 학생의...

 

그런데 그 남학생이 한마디 더 덧붙이기를,

 

-그래도 남학생은 어찌 어찌 비비면 되는데,

여학생들은 우리보다 더 심해요.

요즘 4학년 여학생들 사이에 이런 말이 나돈대요.

<최고의 스펙은 남자이다!>

 

이게 지금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나타내는 말이다.

남자가 최고의 스펙이라니...

 

이런 참으로 거시기 거시기 같은!!!

 

엠비, 니가 대한민국을 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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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성별 직무 분리 6.

여성은 식민지 시대에서부터 인쇄업의 식자공으로 고용되었다. 식자공은 숙련된 기술을 요하는 직업이었지만 힘든 일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Abbott는 그 직업에서 남성의 질투 원인을 그 직업이 여성에게 “딱맞는” 직업이었다는 사실로 보았다. 여하튼 남자 노동조합들은 애초부터 여성 고용에 대하여 적대적인 것처럼 보였다. 1854년 전국 인쇄 노동조합(the National Typographical Union)은 “결의를 통하여 여자 식자공들의 고용을 촉진”하려고 하지 않았다. Baker는 남자 노동조합들이 소녀들로 하여금 직업 교육을 받지 못하도록 하였으며, 그리하여 여성은 그들이 노조 가입이 안 된 상점에서 또는 파업 파괴자로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을 배웠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1869년, 전국 인쇄 노동조합이 소속돼 있던 전국 노동조합(National Labor Union)의 연차 총회에서 Susan B. Anthony의 좌석 배치를 둘러싸고 싸움이 발생하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여성 식자공들을 파업 파괴자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렇게 했고 그것을 인정하였는데, 왜냐하면 그 여성 식자공들은 다른 방법으로는 결코 그 직업의 일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1870년 인쇄 노조는 (227) New York 시의 여성 노동조합 지부를 계획하였다. 전국 인쇄 노동조합의 서기장과 맘먹는 지위에 있었던 이 지부의 지부장 Augusta Lewis는 여성의 노동조합이 아주 오랫동안 버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여성 조합원들이 남성 조합원들을 지지하였지만, 남성 조합원들은 여성 조합원들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자 식자공들이 남성 조합원들에 게 대우 받는 것보다 ‘쥐새끼 같은 변절자’(rat)로 불리는 현장 주임, 인쇄업자들, 고용주들에 의해 더 정당하게 대우 받고 있다는 것이 여자 식자공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 여성 노동조합 지부는 1878년에 사실상 날개를 접었다.

 

분명하게, 이러한 지지의 전반적인 부족은 남성의 관점이 성공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1910년에 Abbott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다른 직종 노동조합의 간부들이 직종 노동조합의 통제가 여성의 고용을 검토하거나 방지하는 데 있어서 성공적인 것일 수 있는 방법의 사례로서 인쇄업자의 정책을 자주 언급한다.” 인쇄노조는 여성을 지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성의 임금 규모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강하게 지지하였다. 숙련된 기술이 떨어졌던 여성들은 동일 임금을 요구할 수도 없었고 받을 것이라는 기대도 할 수 없었다.

 

노동조합들은 사용인 보호법이 여성들에게 전혀 적용되지 않는 여러 방식으로 여성들을 배제시켰다. 이와 관련하여 노동조합들은 여성 노동, 특히 기혼 여성 노동에 관한 압도적인 사회적 정서(이러한 노동은 원칙적으로 완전히 제거되어야 할 사회적 악으로 여겨졌다)와 여성들이 조직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 노동자들이 극심하게 착취 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회적 페미니스트들”(social Feminists)과 여타의 페미니스트들의 강한 관심에 많이 기대었다. 사회적 페미니스트들은 매력적인 직업으로부터 여성을 배제시키자고 주장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전략은 이러한 배제의 길을 포장하는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노동하는 여성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들은 하나의 성으로서 여성이 남성보다 약하며 보다 많은 보호를 필요로 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략은 1908년 뮬러 대 오리건 주 사건에서(in 1908 in Muller v. Oregon)(여성의 노동시간을 규제할 수 있는 주권을 확인한 이 판결은 지난 반세기 동안에 나온 대부분의 주 및 전국적 사회복지 입법의 사법적 근거가 되었다-옮긴이)성공적이었는데, 이때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여성의 최대노동시간 법률을 확정하였다 :

 

 

“두 성은 신체 구조의 측면에서, 특히 끊임없이 일했을 때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노동의 능력 면에서, 미래의 인간의 행복한 삶에 미치는 원기왕성한 건강의 영향이라는 측면에서, 완전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자기 의존이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생존을 위한 투쟁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이러한 차이는 (228) 법률에서의 차이를 정당화하며 그녀에게 달려 있는 여러 짐들을 보상하도록 하는 것의 토대가 된다.”

 

 

1916년 번팅 대 오리건 사건에서(In 1916 in Bunting v. Oregon) Brandeis는 사실상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의 최대노동시간 법률에 대한 주장을 잘 펼치기 위하여 장시간 노동의 악영향에 관한 동일한 데이터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Muller 이후에 여성을 위한 법률들이 뒤이어 제정됐던 방식대로, Bunting 이후에 남성의 최대노동시간 법률은 뒤이어 제정되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노동조합들은 여성을 위해서 사용인 보호법 제도를 지속적으로 지지하였지만, 남성을 위해서는 그 제도를 지지하지 않았다. 오로지 여성만을 위해 더 선호되었던 전략은 (여성 노동자의-옮긴이) 조직화보다는 오히려 사용인 보호법 제도였다.

 

이러한 법률들의 효과는 그 법률들의 적은 적용범위와 불충분한 집행 때문에 제한적이었지만, 그러한 제한에도 불구하고 인쇄업과 같이 야간 노동과 장시간 노동이 필수적인 직업들에서 여성은 사실상 배제되었다. 그 법률들이 “땀을 흘리는”(sweated) 직종에서 여성을 보호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남성의 직종들”에서 일을 하려고 시도하기 시작했던 여성들은 그 시도를 접어야 했다. 이러한 여성들 몇몇은 성공적으로 저항하였지만, 그 투쟁은 오늘날 아직도 대다수 똑같은 양상으로 행해지고 있다. Ann C. Hill이 주장했던 것처럼, 이 법률들의 효과는 신체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이 법률들은 노동자로서 여성의 “소외된” 지위를 확고히 하였다.

 

영국과 미국의 임금 노동력의 발전에 관한 위의 논쟁을 통하여, 나는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영역을 제한하는 남자 노동자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내가 남성의 역할을 강조하였지만, 그렇다고 고용주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시장 분리 이론과 관련한 최근 저작은 고용주의 역할을 조명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이 모델에 따라서, 분리를 만들어 내는 한 메커니즘은 자본가의 필연적인 음모적 행위는 아니지만, 의식적인 행위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더욱 분열시키기 위하여 노동자들 사이의 현재 분열 상태를 더욱 더 악화시키는 쪽으로,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단결을 더욱 더 약화시키고 그 계급의 교섭력을 점점 더 감소시키는 쪽으로 행위한다. 내부적으로 복잡한 직무 구조들의 생성은 그 자체 이러한 시도 중의 일부분이다. 사실, 전 범위에 걸친 다양한 수준의 직무들은 (229)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두 계급 본성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이러한 모델은 첫째, 성별 분리가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 내재하는 노동시장 분리의 한 측면이라는 사실, 그리고 둘째, 자본가들은 의식적으로 성별 분리를 심화시키려고 한다는 사실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앞의 분석이 (자본주의와 그 이전 시대의 전면에 등장하는) 성별 직무 분리의 끊임없는(초역사적-옮긴이) 본성을 강조하였을 때, 자본가들의 행위가 남자 노동자들의 그러한 대응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면에서 결정적인 것일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남자 노동자들은 여성의 노동시장에 대한 참여를 제한시키는 수단이 되었다. 남자 노동조합들은 초기 길드의 태도와 정책을 수행하였고, 남자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거둬들였다. 자본가들은 성별 직무 분리를 이어받았지만, 꽤 자주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이 분리를 이용하였다. 자본가들이 경험 많고 숙련된 남성을 값싼 여성으로 대체시킬 수 있다면, 그러면 자본가들에게 더욱 더 좋은 것이다. 자본가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함으로써 노동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자본가들에게 좋은 것이다. 또는 그것이 실패해서, 그러한 지위 차이를 남성들에게 보상해 주는 데 이용하고, 가부장적 이익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남성들의 충성을 살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좋은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행위가 성별 분리 내에 있는 현재의 남성다움을 설명하는 데 중요하다고 할지라도, 노동시장 분리 이론은 자본가의 역할을 과도하게 강조하고 있으며 분리를 지속시키는 노동자들 자신의 행위를 무시한다. 좀 더 매력적인 직무에 종사하는 그러한 노동자들은 그 직무와 그 직무가 주는 물질적 보상, 그리고 그 직무가 주는 본래적인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행동한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통하여 위계적이고 평행선을 긋는(즉 분리되어 있지만 동등하지 않는) 직무 구조들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참여해 왔다. 아마도 성별 직무 분리를 제도화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서 자본가와 남성 노동자들이 가지는 상대적 중요성은 서로 다른 시기에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로 이행하던 시기에 자본가들은 성별 직무 구성을 변화시킬 능력이 꽤 있는 것처럼 보였다 - 손으로 짜는 대부분의 직기를 남성들이 다루었지만, 여성들이 짰던 동력 직기를 갖춘 공장으로 천을 짜는 작업이 이전되었을 때, 그리고 여성이 초기 제니 방적기와 수력에 의한 틀(water frame)을 사용하였지만 뮬 방적 작업이 남자 기사로부터 시작되었을 때 말이다.

 

(230) 산업화가 진보하고 조건들이 다소간 안정되었을 때, 남자 노동조합들은 세력이 늘어났고 때때로 남자의 영역을 유지하거나 확장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르치는 일이나 사무직 일과 같은 노동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남으로써 발생한 사회적 또는 경제적 이 필요가 압도적이던 시기에, 남자 자본가들은 남자 노동자들을 제압할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경제적 변화의 시기에, 자본가들의 행위는 성별로 분리된 노동력을 변화시키거나 제도화시키는 데 좀 더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 반면에 노동자들은 방어적인 싸움을 하였다. 다른 시기에 남자 노동자들은 성별로 분리된 직무들을 유지시키는 데 좀 더 중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 노동자들은 값싼 여자 노동의 잠식을 막아내거나 또는 그 없애버릴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자신의 성의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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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성별 직무 분리 5.

그러나 세계1차 대전은 여성의 기대를 높였으며, 여성의 일이 단지 일시적이었을 뿐이라고 남자 노동조합들이 단언하였지만 여성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장소로 되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이유로는 임금 외에, 특히 남편이 전쟁에 나갔던 기혼 여성이 가족 크기에 따라 정부 수당을 받았기 때문이다. Rathbone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앞으로 문제의 해결은 의심스러우며 어렵게 된다. 또한……계급 적대와 성 적대(sex antagonism)라는 달갑지 않은 것들이 시작될 수 있다.……특히 여성에게 자본가에 의해 고용되거나 또는 직종별 노동조합에 의해 박해 받거나 억압 당하는 선택지가 제공되는 것처럼 보인다. 비참한 선택지이다.” 그녀는 전쟁 후에도 지속적인 (222) 수당 지급을 권한다. 왜냐하면 그 수당은 가족들이 남성의 임금에 의존하지 않게끔 해 줄 것이며, 가정에 머물러 있던 여성이 자신의 일에 대한 임금을 받을 수 있게 할 것이며, 그리고 남성과 여성 모두 “생존에 필요한”(required) 임금이 서로 다르지 않을 것임에 따라 여성이 노동시장에서 남성과 완전히 동등해질 수 있도록 할 것이기 때문이다. 1918년 경, Fawcett 역시 현실 가능한 목표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생각했다. 노동시장에서의 진보는 남성 임금을 내리지 않게 하면서도 동일 임금을 요구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녀가 말했던 주요 장애물은 남자 노동조합이었고 사회적 관습이었다. 둘 다 여성 직종이 초만원 상태가 되게 하였다.

 

1922년 F. Y. Edgeworth는 Fawcett의 직무 분리와 초만원 모델을 정식화하였다; 성별 직무 분리는 남성 임금이 더 많도록 허용하며 강제적으로 여성 임금을 우리가 그렇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적게 만드는 여성 직종 분야들이 초만원 사태를 이루도록 하는 원인이 된다. Edgeworth는 남자 노동조합들이 이런 초만원 사태의 주요 원인이었다는 점에 동의하였다. 그는 남성이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이득을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 결과, 여성이 남성보다 남성과 동일하게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여성이 남성에게 보조금을 지급 방을 수도 있기 때문에, 여성의 참여가 임금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그는 노동시장에서의 동등한 경쟁이 독신 여성 대 독신 남성의 경우에서조차 낮은 임금을 낳을 것인데, 왜냐하면 여성이 최상의 효율을 내기 위해서 음식을 20% 덜 먹기 때문이라고 제시하였던 것 같다. 이 마지막과 관련하여, Edgeworth는 많은 사람이 언급하고 있었던 사실, 즉 여성의 삶의 표준이 남성보다 낮다는 것과 여성이 더 적은 임금으로도 일할 용의가 있다는 사실을 정말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Edgeworth는 여성 노동의 제한들을 제거해야 하지만, 자유로운 경쟁이 위에서 제기한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남성의 임금을 끌어 내리기 때문에 남성과 가족은 늘어나는 여성의 참여로 인해 그들이 잃어버린 부분을 보상 받아야 한다는 것을 결론으로 삼았다.

 

영국 문헌이 저임금에 대하여 주되게 설명하는 부분은 성별 직무 분리이며, 또한 저임금과 현재 성별 분리 둘 다 상호 의존적인 관계들 속에 있음을 설명한다 : (1) 남자 노동조합의 배타적 정책들, (2) 가족에 대한 남성의 금전적 책임감, (3) 국가 보조금과 낮은 여성의 삶의 표준 때문에 낮은 임금으로 여성에게 일을 시키려는 의지 (그리고 더 많은 임금을 받을 수 없는 여성의 무능력), 그리고 (4) (223) 여성의 교육과 기술 부족. 영국의 역사적 문헌은 성별 직무 분리가 근본적으로 가부장적이며, 꽤 오래되었고, 근절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아마도 위계적인 조직 구성에 대한 엄청난 지식으로부터 나온) 노동조합을 조직하는 남성의 능력은 직무 분리를 유지하고 노동을 가사일로부터 구별하는 것을 유지하는 남성 능력의 핵심으로 나타난다.

 

미국의 경험으로 눈을 돌리면, 첫째 직무의 성별 구성 변화를 살펴볼 수 있고, 둘째 더 많은 노동조합의 역할, 특히 사용인 보호법 제도(또는 무역 보호법, protective legislation)를 확립하는 데 있어서의 역할을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미국 문헌, 특히 Edith Abbott와 Elizabeth Baker의 저작들은 직무의 성 변화를 강조하고 있으며, 또한 영국 문헌과 대조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으로서 기술에 좀 더 강하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의 상황은 영국의 상황과 달랐다. 첫째, 식민지 농장 가족 내에서의 노동 분업은, 남성이 들판에서 일하고 여성이 집에서 제품들을 생산한다는 점을 포함해서, 아마도 좀 더 엄격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초기 방직 공장은 New England에서 일했던 젊은 독신 여성들을 고용했다(가족노동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걸 피하기 위한 그리고 농업에 필요한 남성 노동을 유지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이루어졌는데, 아마도 필요에 의해서인 것 같다). 그러나 후자(농업에 필요한 남성 노동 유지-옮긴이)의 변화는 경제를 이끌어가는 요소로서 농업에 대한 제조업의 완전한 지배 그리고 이민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셋째, 노동(labor)의 부족과 식민지와 미개척 분야인 아메리카에서의 지독한 궁핍은 비전통적으로 가족 울타리 밖의 생활을 추구하던 여성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하였다. 식민지의 여성은 넓고 다양한 직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넷째, 노동의 부족은 19세기와 20세기에 여러 가지 면에서 지속적으로 여성을 선호하도록 하였다. 다섯째, 새로운 이민자 그룹들의 지속적인 유입은 극단적으로 이질적인 노동력(labor force), 즉 다양한 기술 수준과 조직적 발전 그리고 엄청난 적대감을 내재한 노동력이 만들어졌다.

 

성별 고용 구성의 주요 변화는 부츠와 신발 제조, 방직 제조, 교육, 담배 제조, 그리고 사무직 분야에서 일어났다. 방직 부분을 제외한 이 모든 분야에서, (224) 변화의 방향은 좀 더 여성 쪽으로 향하였다. 새로운 직업들은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개방되었지만, 몇몇 예외가 있다고 할지라도 남성이 그 직업들 거의 모두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전화 교환 업무, 타이핑은 여성의 직무가 되었다.

 

여성 고용 증대의 모든 경우에서 이러한 증대는 서비스직과 생산직에 대한 수요의 가파른 상승에 의하여 부분적으로 강조되었다. 1700년대 말과 1800년대 초 동안에, 전쟁, 엄청난 수의 노예, 일반적인 인구 팽창, 그리고 미개척지로의 이주로 인해 기성 부츠에 대한 국내 수요가 늘어났다. 공교육이 보급된 만큼 남북전쟁 전후로 교사에 대한 수요도 빠르게 증대하였다. 기계로 만든 값싼 담배의 수요도 19세기 말에 빠르게 늘어났다. 사무직 노동자 수의 증가 변화는 사업이 점점 더 커지고 보다 많은 경영관리, 유통, 운송, 마케팅 그리고 교통수단을 요구하면서 좀 더 중앙 집중화되었던 시기인 1890년과 193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여러 경우에 여성으로의 방향 전환은 생산량을 증대시킬 수 있었고 노동자에게 요구되었던 기술력을 종종 감소시켰던 기술 혁신을 동반하였다. 1800년 경 부츠 제조업자와 신발 제조업자는 여성들이 집에서 윗옷을 바느질할 수 있도록 하는 노동 분업을 고안해 냈다. 1850년대에 재봉틀이 공장의 부츠와 신발 제조에 적용되었다. 1870년대에 핸드 번칭(hand bunching)보다는 나무로 된 틀(wooden molds)을 사용함으로써 담배 제조과정을 단순화시켰고, 1880년대에 기계를 들여왔다. 또한 사무직에서, 타이프라이터는 사무 노동의 생산성을 엄청나게 증가시켰다. 방직업에 도입된 기계, 즉 뮬 정방기는 전통적으로 남자에 의해 작동되었다. 남자 노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여성을 배제시켰던 인쇄 직종에서 노동조합은 새로운 주조 식자기(리노타이프, linotype)분야에 인원을 늘리기를 고집하였다.

 

노동 과정을 세부적으로 분리하고, 일을 단순화시키며, 또한 기계를 도입하려는 주된 목적은 생산성을 끌어올리고, 값을 싸게 하고, 노동 과정에 대한 관리 통제를 늘리려는 데 있다. 노동 과정을 세분화를 통해 보통 중요하지 않은 일의 부문에 미숙련 노동을 사용할 수 있었다. 노동력을 값싸게 하고 (225) 노동 통제를 좀 더 강화시키는 것은 과학적 경영관리 뒤에 숨어 있는 원동력이었고 노동을 재조직화하려는 초기의 노력이었다. 기계는 이러한 과정의 조력자였지 원동력이 아니었다. 기계, 미숙련 노동 그리고 여성 노동자는 대개 공존하였다.

 

엄청난 수요와 기술적 변화에 덧붙여, 종종 일상적인 노동력 공급 부족은 노동력 변화에 영향을 주었다. 방직업 분야에서, 예를 들면, 1840년대 New England 농장의 젊은 여성들은 가르치는 일과 같이 중산층 여성을 위한 새로운 직업 기회들에 이끌렸다. 제조 공장의 그녀들 일자리는 이민자들이 대신했다. 부츠와 신발 부문에서 늘어난 수요는 잘 훈련되고 숙련된 신발 제조자들이 감당할 수 없었다. 또한 사무직에서, 고등 교육을 받은 남자들의 공급은 그 수요 증대와 맞지 않았다. 게다가, 사무직에서 특히 직무 구조 속에서 발생한 변화는 남성들에게 매력을 끌지 못했으며-사무직의 직무들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았다-반면에 여성의 기회는 다른 쪽에서의 기회와 비교해서 유리한 것이었다.

 

담배 제조는 남자 노동조합들이 참여하는 산업의 노동력 구성에서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성 변화에 대한 남자 노동조합들의 반대와 그 반대가 일어났던 형태에 관한 예를 충분히 제공한다. 담배 제조는Connecticut주와 여러 다른 곳의 농장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아주 거친 담배를 만들었고 그 담배를 마을 가게에서 거래했던 무렵인 1800년 이전에 가정 산업(home industry)이었다. 초기 공장들은 여성을 고용했지만, 경쟁력 있는 유럽의 고급 담배 제조 기술을 가진 남자 이민자들에 의해 대체되었다. 1860년 경 담배 제조 부문에서 여성 고용은 겨우 9%였다. 남성들로의 이러한 교체는 여성들로의 교체에 뒤이어 나타난 것인데, 남성들의 반대는 없었다. 1869년, 나무로 된 틀(the wooden mold)이 도입되었고, 그리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담배 공장에서 숙련된 노동자였던) 보헤미안 이민 여성들이 고용되었다. 담배 회사의 보유 재산으로 된 보헤미안 여성들은 나이 어린 소녀들이 (그리고 이후에 보헤미안 여성들의 남편들이) 나무로 된 틀을 사용할 수 있었던 노동 분업을 완성시켰다. 1873년 초 담배 제조 국제 노동조합(the Cigarmakers International Union)은 요란스럽게 (예를 들어, 1894년 New York에서 사실상 금지되었던) 부업(home work)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1880년대 말 기계가 (226) 공장 안으로 도입되었고, 여성은 파업 파괴자로 이용되었다. 노동조합은 사용인 보호법 제도(또는 무역 보호법, protective legislation)로 돌아섰다.

 

담배 제조 국제 노동조합(the Cigarmakers International Union)의 여성에 대한 태도는 잘해봤자 애매모호한 것이었다. 이 노동조합은 1864년에 여성들을 배제시켰지만, 1867년에는 여성들을 받아들였다. 1875년 이 노동조합은 지역 분회가 여성을 배제하지 못하도록 하였지만 이것을 어기는 분회에 대해 명백하게 결코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1878년 Baltimore 분회는 이 노동조합 위원장인 Adolph Strasser에게 다음과 같이 썼다 : “우리는 여성이 어떤 능력, 즉 다발로 묶는 능력(bunch maker), 압연기를 다룰 줄 아는 능력(roller)이건 또는 그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건 간에, 조합 설립 초기부터 여성 노동 도입 운동에 맞서 투쟁해 왔다.” 이러한 애매모호함들이 국가 내 지역들의 분쟁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Strasser 스스로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였다 : “우리는 결코 여성들을 직업전선에서 쫓아낼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성의 하루 노동량을 공장법에 따라 제한할 수 있다. 18세 미만의 어떤 소녀도 하루 8시간 이상 일할 수 없다. 모든 연장노동(overwork)은 금지되어야 한다.……”

여성은 미숙련 노동자들이기 때문에, 이것을 본질적으로 여성에 대한 악의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미숙련에 대한 숙련의 두려움이다. 하지만 남자 노동조합들은 여성의 기술을 부정하였으며, 동시에 그 기술을 어린 남자 소년들에게 제공하였다. 이러한 것은 인쇄업의 경우에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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