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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미국 대법원의 노동계급 여성에 대한 공격

미국 대법원의 노동계급 여성에 대한 공격 :

오직 노동계급의 투쟁만이 여성의 출산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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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의 번복은 노동하는 여성의 출산 자유에 대한 자본주의 계급전쟁의 가장 최근의 공격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위기와 미국 자본가계급이 점점 더 여성 노동자를 착취할 새로운 노동자를 만들고, 필요하다면 제국주의 경쟁자들에게 던져줄 새로운 총알받이로 보는 세계적인 전쟁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노동계급 여성을 억압받는 임금 노예의 상태로 더욱 종속시키기 위해 이른바 '전통적인' 가치를 다시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지배계급 자유주의자들은 이 판결을 모든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묘사하려 하지만, 이는 부르주아 여성이 아니라 노동계급 여성에게 주로 영향을 미친다. 매우 반동적인 임신 중지 반대법이 있는 국가에서도 부르주아 여성은 여전히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임신 중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적은 임금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휘발유와 식료품 같은 기본적인 상품의 가격 상승으로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익명의 유출자 덕분에 대법원이 로(Roe) 판결을 언제 번복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한 일이 발생한 후 거의 두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평소와 같이 무의미하고 공허한 가짜 연대의 트위터를 보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민주당은 로(Roe) 판결이 번복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는 현재 11월의 선거에서 노동자의 투표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민주당에 투표하면,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범한 게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민주당은 출산의 자유를 위한 여성 노동자의 투쟁에 실제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노동자 여성들을 목 졸라 죽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관리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는 여성 노동자와 모든 노동자의 분노가 민주당과 협동하는 기계로 다시 유입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2020년에 경찰의 인종차별적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을 저질렀던 일을 지금 그들이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우리의 투쟁은 공화당이나 정부의 어느 한 부처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투쟁은 지배계급의 모든 정당,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착취당하는 노동과 억압된 삶 덕분에 사는 이 성차별적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모든 정당에 대항하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적인 계급인 남성, 여성, 그리고 모든 성별과 성적 정체성을 가진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삶과 노동에 기생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조직적이고 원칙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

 

투표함이 아닌 직장과 거리에서 투쟁하자! 성차별적 자본주의 체제가 그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곳, 그들의 이윤을 타격하자! 착취당하고 무급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없다면, 이 체제는 중단될 것이다!

 

단순히 체제를 중단시키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그것을 전복해야 하며, 모든 노동자가 여성 노동자 억압의 악몽을 끝내기 위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오직 자본주의를 전복한 세계에서만 여성 노동자가 모든 것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 즉 자기 몸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다. 모든 성별의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에 맞서 함께 투쟁해야 하며, 스스로 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 국가를 전 세계적으로 전복할 목적으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전체 계급을 혁명적으로 이끌고 안내하기 위한 국제 혁명조직을 건설하는 것은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에 달려 있다.

 

국제주의노동자그룹(Internationalist Workers' Group)은 노동계급의 미래 정당을 건설하고 세계 노동자평의회 체제를 위한 자본주의 전복에 헌신하는 혁명적 노동계급 정치조직인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미국 지부이다.

 

2022년 6월 25일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이 글은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에 대한 대응으로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과 지지자들이 시위 중에 배포한 전단이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6-25/scotus-attacks-working-class-women-only-a-struggle-by-our-class-can-sec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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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폭탄 - 자본 축적의 위기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다

난방비 폭탄 - 자본 축적의 위기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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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에너지 파동은 자본 축적 위기의 또 다른 모습

 

북극권의 초강력 한파에 이은 난방비 폭탄이 북반구의 겨울을 덮쳤다. 환경위기, 기후위기의 도미노는 물가상승과 맞물려 에너지 가격 폭등을 더욱더 부추기고 있다. 에너지 가격 폭등 원인으로 지목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기보다는 자본 위기의 산물이었다. 그런데도 세계 지배계급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산업 적자라는 명분으로 가격 폭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윤석열 정권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공공요금 인상을 예외 없이 진행하고 있다.

 

난방비 폭등에 책임 있는 정부와 부르주아 정치권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책임회피를 위한 네 탓 공방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는 지배계급이 에너지 자원과 환경/기후위기에 대한 원인진단과 대책을 내놓을 능력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은 오로지 생존과 축적에만 관심을 둔다. 2000년대 이후 지속된 세계 경제 대공황을 대자본은 오히려 집적과 집중의 기회로 이용했고, 노동계급에는 노동강도 강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임금 감소, 생계비 위기의 고통을 떠넘겼다. 따라서 자본 축적 위기를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과 착취로 해결하려는 지배계급에 에너지 자원에 대한 근본 대책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전 세계적인 환경/기후 위기는 자본 축적 위기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인플레이션, 실질임금 하락과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의 단적인 사례가 난방비 폭등이다. 난방비 폭등으로 드러난 국내 LNG 직도입 자본(GS에너지, SK E&S, 포스코에너지, 한화에너지, 발전사 등)은 천문학적인 영업 이익과 당기 순이익을 올렸지만, 노동계급은 삼중의 고통 속에서 추운 겨울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

 

앞서 말했듯이 난방비 폭등은 노동계급에는 재앙이지만, 자본에는 이윤 창출 기회이기도 하다. 에너지 자원의 폭등 현상은 환경/기후위기가 일반화된 자본주의 쇠퇴기에 언제든 나타난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지배계급은 이러한 자본 축적의 지속적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계급전쟁을 선포하며 선제공격을 하고 있다.

 

에너지 위기에 맞닥뜨린 지배계급은 얄팍한 땜질 처방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면서도 본질에서는 자본 축적의 기회를 창출하고 보장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윤석열 정권의 에너지 빈곤 가구에 에너지 바우처 지원 확대와 민주당의 횡재세 논의 모두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생색내기 처방이다. 특히 윤석열 정권은 에너지 위기가 핵발전에 대한 저투자에서 기인한다며, 핵발전 확대안을 제시했다. 이것은 기후위기와 에너지 자원에 대한 자본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이다.

 

이처럼 지배계급은 자본주의 이윤 추구 체제에서 비롯된 환경/기후위기 상황에서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위기를 이윤 창출 기회로 활용하는 데에만 몰두한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자본축적과정이 위기라는 점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작용하는 자본구성의 고도화와 평균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자본 축적 과정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그 결과 에너지 대란에서 나타나듯 이윤을 위한 자본주의 생산과 사회의 기본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생산의 근본적 필요성 사이의 모순은 더욱 격렬해진다.

 

앞으로도 빈번하게 발생할 에너지 대란에서 이윤이 목적인 생산체제에서 국가와 자본에 대책을 요구한다고 해결책이 나올 리는 없다. 그것은 오직 자본 운동을 정지시키고 파괴해야 가능하다. 에너지 가격통제와 에너지산업 국유화, 공공주도의 재생에너지 전환 요구 또한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공주도는 자본 주도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려는 목표가 아닌 체제 내에서의 국유화와 가격통제는 철저하게 자본주의 방식으로 작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착취 체제를 전복하지 않고서는 환경/기후위기, 에너지 대란과 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코뮤니즘만이 인류와 지구를 구할 수 있다.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대공황, 팬데믹, 제국주의 전쟁, 기후위기 속에서 자본 축적의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면서 노동자들은 난방비 폭등과 물가 폭등으로 실질임금 감소와 생계비 위기의 고통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대자본에 대한 세금은 인하해주면서 복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산은 삭감했다. 자본가 정권은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자본 위기에 대한 비용을 치르기를 거부할 때마다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잉여노동을 착취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자본이 더 많은 잉여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경쟁으로 전쟁, 환경 파괴와 기후위기를 일으키면서도 모든 위기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려 공격에 나서는 것이다. 지배계급이 계급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제 노동계급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원인인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서기 위해 계급을 조직하고 싸워야 한다. 현재의 모든 위기는 자본이 초래한 위기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에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국가를 넘어 노동계급의 국제연대로, 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닌 사회적 필요에 의한 생산을 건설해야 한다.

 

난방비 폭탄, 물가 폭등, 실질 임금감소, 생계비 위기, 복지 축소, 노동강도 강화, 노동자 운동 공격... 이 모든 것을 계급전쟁이라고 부르자! 이제 노동계급이 이 전쟁에서 반격할 때이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정치와 선거에 의지하지 말고 독립적 조직인 파업위원회, 대중집회, 노동자평의회를 구성해 반격해야 한다.

 

난방비 폭탄: 자본주의가 원인이다!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생존권 투쟁 전면화!

노동자 희생이 아닌 자본가계급과의 계급전쟁으로!

 

2023년 2월 14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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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재앙의 이름은 자본주의다 - 오직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연대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재앙의 이름은 자본주의다 - 오직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연대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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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우리는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에 대한 튀르키예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그룹」 동지들의 성명서를 소개한다. 끔찍한 재앙 앞에서 신속하게 대응하고, 이 "자연적" 재앙의 본질과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와 투쟁을 호소한 동지들에 경의를 표한다.

 

 

지난 2월 6일 카흐라만 마라슈(Maraş)에서 발생해 이웃 지방과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의 파괴적인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미 언론은 만 명 이상의 사람이 잔해 아래에서 사망했고, 수만 명이 부상했고, 만 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이틀 사이에 일부 도시와의 통신이 끊겼다. 도로, 다리, 공항이 파괴되었고, 이스켄데룬(Iskenderun) 항구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지역에서 전기, 수도, 천연가스 연결이 끊겼다. 지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재 혹독한 겨울 환경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다. 튀르키예의 군사 점령하에 있는 시리아의 지진 지역에서도 매우 심각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연달아 발생한 두 차례의 대지진은 확실히 이례적이다. 그러나 지배계급과 그 정당들의 주장과는 달리 지진으로 인한 파괴가 정상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야당과 집권 자본가정당 모두의 "국민 통합"에 대한 역겨운 요구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자본주의와 국가가 이 파괴의 주범이다.

 

1.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으로서 지진 지역에서 집을 잃고, 부상당하고, 친척을 잃은 사람들과 행동으로 모든 종류의 연대를 보여줄 것을 알고 있다. 수백 명의 광산 노동자들이 이미 지진 지역에서 수색 및 구조 활동에 자원하여 참여했다. 이미 전 세계에서 생존자들을 돕기 위해 노동자들과 수색 구조대가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인 이 연대는 필수적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서로를 제외하고는 믿을 사람이 없다. 우리는 지배계급과 국가로부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계급적 단결을 통해서만 해방을 기대할 수 있다.

 

2. 튀르키예의 과거 지진 경험은 자본의 사회적 재생산을 목표로 발전한 도시화의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의 증거이다. 지진 부적합 건설, 사람들이 지진 지역의 다층 건물과 인구 밀집 도시에 밀려드는 유일한 이유는 수도의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20년 전(마르마라 지역)에 발생한 괴뢰크(Gölcük) 지진과 뒤체(Düzce) 지진 이후, 이번 지진은 국가가 취한 모든 '조치'의 미흡과 지배계급이 흘린 악어의 눈물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이 지진과 그 영향은 이미 국가의 존재 이유가 빈곤층과 프롤레타리아 인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임을 고통스럽게 증명하고 있다.

 

3.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왜 재난이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자체 생산 인프라를 파괴하는 데도 영구적이고 견고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는 것일까? 자본주의하에서 건물, 도로, 댐, 항만, 요컨대 인프라 투자는 일반적으로 영속성이나 인간의 필요를 염두에 두고 건설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인프라 투자는 국가가 하든 민간 기업이 하든 수익성과 임금노동 체제의 지속을 목표로 구축된다. 밀집된 인구는 살기 힘든 도시로 몰려든다. 지진이 없더라도 기껏해야 100년을 버틸 수 있는 건강에 해로운 콘크리트 건물들이 도시와 농촌을 가득 채운다. 지난 40년 동안의 끔찍한 자본주의 도시화는 튀르키예 전역의 도시와 마을까지도 그러한 콘크리트 무덤으로 만들었다. 잉여가치 생산에 기초한 자본주의 체제는 가능한 한 많은 살아있는 노동력,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고용하고 고정 자본 투자, 즉 인프라를 최소한으로 유지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건설은 지속적인 활동이며, 건물의 영속성, 환경과의 조화, 인간의 필요에 대한 반응은 완전히 무시된다. 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약한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선진 서구 자본주의의 규칙이다. 자본과 국가의 유일한 사회적 목표는 계속 증가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를 영구화하는 것이다.

 

4. 자본주의 질서는 자신의 착취 질서를 재생산할 수 있는 해결책조차 내놓을 처지가 못 된다. "자연" 재해 앞에서 자본은 무모할 뿐만 아니라 무기력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국가의 통제하에 있는 구호 조직들의 조정 부족과 긴급 구호 분배에 대한 국가의 무능력에서도 이러한 무력감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영향이 더 깊은 튀르키예와 같은 나라뿐만 아니라 2년 전 홍수 앞에서 무력했던 독일이나 인프라 투자를 소홀히 하여 홍수로 도로와 다리가 무너진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중심 국가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5. 부르주아 야당의 일부 분파가 국가가 지진 피해자를 "돕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은 국가의 본질에 대한 기만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국가는 구호 기관이 아니다. 국가는 소수 착취 계급의 집단적 폭력 기구이다. 국가는 자본의 이익을 보호한다. 확실히, 재난 지역에서의 혼란의 통치는 지배계급의 약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본 자체의 재생산을 방해하기 때문에, 국가는 최소한의 "지원"을 조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최소한의 지원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재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무엇이든, 그 주요 기능은 프롤레타리아트를 통제하고 국가 자본의 이익을 위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쟁하는 것이다. 국가는 자본 축적을 돕는 이념적, 물리적인 기계이며, 노동자들을 치명적인 콘크리트 관(棺)집으로 밀어 넣고, 재난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는 상황의 수호자이다.

 

6. 우리가 최근 몇 년 동안 경험하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받은 감염병, 기근, 전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그 순간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진 단층선과 가능한 규모는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 모든 재앙에 책임이 있는 주체는 자본주의와 민족국가, 즉 잉여가치와 임금노동의 착취를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고 군국주의-민족주의 경쟁을 심화시키며 인류의 존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기존의 지배계급 전체이다. 자본주의가 계속 지배하고, 인류가 민족국가와 계급으로 계속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재앙은 계속 일어날 것이며, 점점 더 치명적이고 파괴적이며 빈번해질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고갈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징후이다. 전 세계적으로 지배계급은 인류를 전쟁, 끔찍하고 살기 힘든 도시, 기아와 기근, 거대한 세계 기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마라슈와 그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은 지배계급이 인류에게 제공할 긍정적인 미래가 없다는 마지막 구체적이고 고통스러운 증거이다. 그러나 이것이 비관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번 지진에서 우리 계급이 보여주고 앞으로 보여줄 연대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재앙이 참혹한 것은 해결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아직 세상을 바꾸고 자본의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와 지구의 자원은 우리를 재난으로부터 보호할 영구적이고 안전한 주거지와 정착지를 건설하기에 충분하다. 이를 향한 길은 해방을 위해 세계의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 자신감을 키워 부패한 자본가계급으로부터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세계적인 투쟁에 참여할 때 열릴 것이다.

 

2023년 2월 8일

튀르키예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그룹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310/name-disaster-capitalism-only-proletarian-class-solidarity-can-sav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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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국가 통합을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의 선전

국가 통합을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의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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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은 반동적인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나 자유주의적인 가디언(Guardian)의 기사에서든, 가장 우파적인 토리당 정치인이나 가장 좌파적인 노동조합 지도자 입에서 나오든, 국가 통합의 '서비스'에서 '의무, 희생, 회복력'의 중요성을 거듭 반복하면서 부르주아지 전체가 선전의 광란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신호였다. 캔터베리 대주교부터 지역 교구장에 이르기까지 영국 교회는 같은 곡조로 노래하고 있다. 대중의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사람, 지배계급과 특권적인 관계를 맺고 있거나 그러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 즉 학자, 소설가, 역사가, 예술가, 배우, 스포츠맨, 신문 칼럼니스트들은 이 열흘간 긴 슬픔의 카니발에 그들 자신의 작은 공헌을 추가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겉치레만큼 독립심이 강한 마음이 아니라 왕실의 제복을 입은 보병만큼이나 멍청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의 눈사태는 계급의식이 있는 노동자에게 유익한 교훈을 준다. 많은 부차적인 분열과 갈등에도 노동계급의 이해관계가 없는 국가 방위에 직면하여 지배계급과 국가기구의 모든 부분, 좌파와 우파, 자유주의자와 포퓰리스트, 왕당파와 노동조합주의자들이 하나로 뭉친다.

 

이 캠페인을 노동계급 타파를 위한 클럽으로 활용하는 것은 여왕 사망이 발표된 직후 현재 영국의 파업 물결에 관여하고 있는 3개의 노동조합인 RMT(철도), CWU(우편)과 TSSA(교통)가 국가 애도 기간 계획된 파업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한 직후에 강조되었다. RMT의 "급진적" 지도자인 믹 린치(Mick Lynch)는 “RMT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전국에서 동참한다. 9월 15일과 17일에 계획된 철도 파업은 중단한다. 우리는 그녀의 가족, 친구, 그리고 나라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의 총지도부인 TUC(노동조합 총연맹)는 파업을 조정하는 척하려던 회의를 10월이나 11월로 연기했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터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한 이래로 위기 시에 국가 통합에 대한 존중이 노동조합의 특징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계급투쟁의 '중단'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노동당은 항상 우파에서 좌파로 입헌군주에 충성을 맹세해왔다.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다른 좌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야당인 노동당 전 좌파 지도자 제러미 코빈은 2017년 "군주제 폐지는 자신의 의제가 아니다"라고 선언했고, 며칠 전 여왕에 대한 공식적인 조공을 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나타났다.

 

부르주아지는 위기에서 이익을 얻을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며 찬송가와 설교, 행렬, 경례, 감동적인 조공 등으로 투쟁적 노동계급이 국익, 즉 이윤과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중요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주입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이 사회가 기반을 두고 있는 계급 분열을 감추기 위해 이 캠페인을 사용하려고 하는 반면, 그것은 또한 영국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포퓰리즘 부상과 브렉시트 재앙으로 증폭된 제국주의적 입장의 깊은 균열 중 일부를 덮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대한 위협과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관계가 붕괴될 위기에 직면하여, 애도 주간의 침울한 의식은 여왕의 관이 에든버러(Edinburgh) 거리를 행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새로운 왕의 첫 번째 임무는 북아일랜드의 힐스버러(Hillsborough)성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 부르주아지, 즉 영국과 치명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의 지배계급인 그들은 왜 이 애도의 가면을 쓰고 조기를 게양하는 가장무도회에 참가하는 것일까? 심지어 블라디미르 푸틴조차 애도를 표했다.

 

여왕은 영국의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계급의 적인 프롤레타리아와 맞서는 모든 부르주아지의 세계 자본주의 전반을 위해 국가의 연속성, 안정성, 지속성을 대표했다는 것이 그 답이다. 그녀와 영국 왕실은 모든 곳에서 부르주아지 질서의 인간적이고 친근한 겉모습이었으며, 식민지 잔학 행위, 제국주의 대학살, 파괴적인 경제 위기, 노동 대중의 착취와 빈곤화를 "국가 공동체"에 대한 단결과 봉사의 이름으로 모호하지만 조용히 정당화했다.

 

세계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에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는 근본적인 부르주아지 질서와 연속성의 존재로 상징되었는데, 이는 현재의 생산 방식이 어떻든 간에 계속 생존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세계 자본주의 불안정성이 깊어지고, 모든 수준에서 재앙의 눈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상징한다.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봉건적 잔재

 

영국 혁명 당시 영국 부르주아지가 집권했을 때 절대왕정의 대표이자 옹호자였던 찰스 1세 국왕은 1649년 혁명적 의회 의원들에 의해 참수되었다. 그러나 상승기의 영국 부르주아지는 완전히 새로운 국가기구를 통해 그 통치가 유지되고 안정화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군주제는 귀족들의 오랜 외교적, 정치적, 군사적 경험과 함께 다시 가져와야 했지만, 이번에는 헌법에 따르는 부르주아지 의회에 복종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만일 부르주아 국가가 자본주의 지배계급 이익을 위해 통치한다면 그것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 등장해야 하며, 현실에서처럼 비교적 최근에 폭력적인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라, 항상 태초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가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사회가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쟁 계급의 이익보다 높은 것으로 보여야 한다. 착취당하고 학살당한 사람들에게 착취자와 전쟁 숭배자는 그렇게 보여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는 당신과 나처럼 살과 피가 있고 인간의 감정을 가진 가족으로 보여야 한다[1]. 이러한 군주제와 같은 봉건 제도의 보존이 중요한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정한 현금 지급"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임금 노예제는 착취당하는 사람들조차도 국가 가족의 일부라는 환상에 의해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입헌군주제는 3세기가 넘는 동안 이러한 가부장적 통합의 외관을 완성해 왔다. 그러나 세계 자본주의 모순은 겉모습조차 새로울 게 없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에 대해 아첨하는 논객들은 그녀의 후계자들이 그녀의 통치에 대한 환상을 재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웨일즈의 왕자로서 항상 정치에 개입하는 경향이 있었던 새 왕은 부르주아지 특정 부분에서 인기가 있었던 적이 없기에 정치적 분열을 넘어 통합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재 국가 통합의 축제는 제국주의 영국이 열렬한 선수인, 우크라이나의 자본주의 간 대학살이 모든 국방과 애국심에 대한 위선과 시대착오를 드러냈을 때 열리게 된다. 미래는 국익이 없는 계급, 국제적 계급, 즉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달려 있다.

 

2022. 09. 15

코모(Como)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주>

[1] 그러나 우리는 국가 통합의 자본주의 종교가 사상과 감정 조작에만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빨랐다. 런던과 에든버러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군주제를 폐지하라" "나의 왕이 아니다."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던 시위대 2명이 체포되었다. 거리 시위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2022년 경찰·범죄·양형 및 법원법이 체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발동되었다.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249/capitalist-propaganda-service-national-unity-workers-have-no-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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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볼셰비키 중 가장 비타협적인 인물: 가브릴 미아스니코프, 「노동자 그룹」과 러시아혁명의 퇴보Ⅱ

볼셰비키 중 가장 비타협적인 인물:

가브릴 미아스니코프, 「노동자 그룹」과 러시아혁명의 퇴보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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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가브릴이 볼셰비키 당에서 제명되면서 「노동자 그룹」은 연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중앙위원회에서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그리고 스탈린의 제명을 요구했다. (아브리치, 「레닌에 대한 볼셰비키 반대파」) 레닌이 없을 때, 「노동자 그룹」이 비판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가장 열심히 움직인 사람들은 트로츠키와 지노비예프였다. 그들이 선동한 피해망상으로 인해 가브릴은 체포되어 독일로 추방되었다.

 

그런데도, 당은 「노동자 그룹」 선언문 사본이 러시아 전역, 그리고 심지어 국제적으로 배포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소그룹은 성장하기 시작했다. 불과 몇 달 만에 거의 300명에 달하는 성원은 거의 대부분 당을 떠난 '고참 볼셰비키'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여전히 생산에 종사하는 노동자였다. 「노동자 그룹」은 주로 공장에 기반을 두고 있었고, 그들은 점점 더 자주 발생하는 노동자들의 저항적인 파업 물결에 동조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아있는 「노동자 반대파」 일부가 파업에 참여했지만, 선동에 관여한 가장 중요한 조직은 「노동자 그룹」이었다고 아이작 도이처(Isaac Deutscher)는 지적한다. 어느 순간, 그들은 크렘린에 있는 모든 붉은 군대 수비대의 충성심을 얻었고, 정부는 즉시 스몰렌스크(Smolensk)로 옮겼다.(아브리치, 「레닌에 대한 볼셰비키 반대파」) 다른 분파들과는 달리, 「노동자 그룹」은 볼셰비키 당의 지도력을 획득할 수 없고, 러시아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전략을 세웠다. 회원 자격은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볼셰비키당의 반체제 인사들도 두 조직에서 '이중 카드'로 허용되었다. 박살난 다른 반대파들과 달리, 「노동자 그룹」은 볼셰비키와 함께 지하에서 차르에 대항하는 그동안의 투쟁에서 얻은 성원들의 많은 경험을 이용했다. 공개적인 행동과 비밀스러운 행동이 혼합되어 GPU에 의해서 탄압을 받았던, 공개 그룹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

 

반체제 유고슬라비아 코뮤니스트인 실리가(Ciliga)는 「노동자 그룹」과 그들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제1 인터내셔널의 맑스 표어인 "노동자 해방은 노동자 자신의 과업이어야 한다."라는 강령의 기초가 된 「노동자 그룹」은 '당의 독재'라는 레닌주의 개념과 혁명이 쇠퇴하는 초기에 레닌이 창안한 관료적인 생산조직에 전쟁을 선포했다. 레닌주의 노선에 맞서 그들은 공장 그룹을 시작으로 대중 스스로 생산을 조직할 것을 요구했다. 정치적으로 「노동자 그룹」은 노동자의 권력과 당의 통제를 요구했다. 이 나라의 진정한 정치지도자들은 당이 자신의 이익을 옹호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면 어떤 정당에서든, 심지어 코뮤니스트당에서도 권력을 철회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레닌, 또한: 실리가)“

 

독일 망명기간 동안, 미아스니코프는 KAPD와 접촉했고, 그들은 「노동자 그룹」과 독일 코뮤니스트좌파 둘 다 많은 문제에 대해서 비슷한 견해를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코민테른이 승인한 KPD의 좌파와도 접촉이 이루어졌다. 그는 심지어 KPD의 아카디 매슬로우(Arkady Maslow)를 「노동자 그룹」 외국 지국에 가입하도록 설득하려고까지 했다. 매슬로는 거절했지만, KAPD와 KPD의 좌파 모두 러시아에서 금지되었음에도 미래 「노동자 그룹」의 문학을 출판하는 것을 돕는데 동의했다.

 

1923년 초 독일에서 미아스니코프와 함께, N.V. 쿠즈네초프(Kuznetsov)는 「노동자 그룹」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그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옛 「노동자 반대파」들과 많은 모임을 가졌다. 독일에서, 미아스니코프는 쿠즈네초프에게 반대파가 승리하고자 하는 것은 그의 이전 동맹인 실라피크노프(Shylapiknov)가 약하다는 것 그리고 이때쯤이면, 반체제 노동자 그룹 성원들을 당 지도부로 넘겨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경고했다. (「알렉산더 슐라프니코프, 1885–1937: 늙은 볼셰비키의 삶」, 바바라 알렌) 쿠즈네쵸프는 또한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를 영입하려고 시도했지만,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사람을 엄밀히 영입하는 데는 거의 운이 없었다. 이것은 또한 아마도 GPU에 의한 매우 강도 높은 보안 감시로 인해 강화되었을 것이다.

 

그 해에, 대규모 파업의 새로운 물결이 러시아의 산업 중심지를 강타했고, 「노동자 그룹」은 정치적 자유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를 선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서, 볼셰비키당은 이들을 "반(反)코뮤니스트"로 규정하고 GPU에 이들을 진압하라고 명령했다. 트로츠키는 「노동자 그룹」의 일부 성원들과 개인적으로 서신을 주고받았음에도 공식적으로는 이것을 받아들였다. GPU가 「노동자 그룹」 지도자를 확인하게 되면, 그들은 체포되거나 자동으로 해고되었고 당과 노동조합에서 쫓겨났다.

 

이에 대응하여, 공장 노동자들과 심지어 지역당 지부의 평당원들에 이르기까지 종종 항의하곤 했다. 사이먼 피라니(Simon Pirani)가 얘기한 바와 같이, GPU 탄압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이즈음에 항의하는 것조차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 노동운동가, 무소속 그리고 반대파 사람들은 가끔 체포되어서 고문을 당했다. 보기를 들어 보면, 1921년 그가 처형되기 전에 아나키스트 파냐 바론(Fanya Baron)은 좌파 사회혁명당, 멘셰비키 좌파, 그리고 독립적인 활동가들과 함께 부티르키(Butyrki)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그 죄수들은 노동운동 내부에서 선동한 죄로 모두 체포되었다. 죄수들은 독방에 감금되어 구타당했다. 여자들은 남자 일반 범죄자들과 함께 수용되었다. 특히 끔찍한 고문 중 하나는 죄수들을 알몸으로 벗기고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구덩이' 외부에 두고, 찬물을 부어 영하의 온도에서 밤새 방치하는 관행이었다. 유령 처형대는 또 하나의 일반적인 고문 기술이었다. 체포된 노동운동가들의 수가 천문학적은 아니었지만, 그러한 협박이 노동계급의 저항을 막는 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 그룹」은 모집뿐만 아니라 가장 용감하고 계급 의식적인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은 파업을 지원하고 참여했다는 이유로 이미 추방된 모스크바 공장의 수백 명의 코뮤니스트당원과 같은 그룹을 조직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은 당 지도부에 의해 다시 대중들에게 던져진 계급의식적 노동자였다. 만약 당이 노동자들을 조직하지 않는다면, 「노동자 그룹」은 그들을 조직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노동자 그룹」은 러시아계 미국인 악기 공장, 고스몰로코(Gosmoloko) 유제품 공장, 바우만(Bauman)의 옥티아브르(Oktiabr) 엔지니어링 공장, 모스크바 중포 공장 등 산업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사이먼 피라니, 「퇴보한 러시아혁명, 1920-24」)

 

 

미아스니코프는 결국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1923년 후반에 그는 지노비예프에게 러시아에서 그의 존재가 용인될 수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연락했다. 그는 안전을 보장받았지만,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GPU에 체포됐다. GPU 책임자인 "아이언 펠릭스(Iron Felix)" 제르진스키(Dzerzhinsky)는 개인적으로 미아스니코프스의 체포를 감독하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9월 28일 「노동자 그룹」 회원 28명도 체포되었다. 이들 중 14명은 국외로 추방되었고, 나머지 14명은 징계를 받았다. 쿠즈네초프를 포함하여 그 나라에서 추방된 사람들 대부분은 조직의 지도부를 구성했다. GPU의 최종적인 탄압은 「노동자 그룹」이 모스크바에서 하루 총파업과 대규모 시위를 촉구하면서 촉발되었다. 그들은 1917년의 급진적 입장으로의 복귀를 요구하며 레닌의 초상화가 그려진 거대한 깃발을 휘날리며 행진을 이끌 계획이었다.

 

미아스니코프가 납치된 다음 날, 슐라니코프는 일상적인 방문을 위해 그의 아파트에 들렀고, 누가 나타날지 기다리고 있던 여러 GPU 요원들에 의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알렌, 「알렉산더 슐라니코프, 1885–1937: 오래된 볼셰비키의 삶」) 그는 며칠 후에 풀려났지만, 훨씬 더 어두운 운명이 미아스니코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번 구금되었고 즉시 단식 투쟁을 선언했다. 열흘 만에 GPU는 강제로 음식을 먹여서 그의 항의를 약화시켰다. 미아스니코프는 동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최근에 들어서야 「프라우다(Pravda)」가 폴란드에서 그러한 대우를 가장 야만적이고 터무니없는 절차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폴란드 부르주아계급만을 지칭하는 것 같다. 그러나 톰스크(Tomsk)에서 이를 적용하면 이는 분노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코뮤니스트 문화의 꽃이다.”라고 말했다. 단식투쟁 13일째 되는 날, GPU는 새벽 2시에 그를 침대에서 끌어냈다. 그들은 그를 곧바로 정신병원으로 데려갔고, 그곳에서 그는 정권에 대한 정치적 반대 때문에 '미쳤다'라고 판정되었다.

 

"사실, 그러한 행위는 폴란드의 파시스트도 실행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직 그렇게 멀리 가지 않았지만, 여기서 좌우명은 다음과 같다. 누구든 항의하는 자는 미쳤고 미친 자들에 속한다! 특히 그가 노동계급이고 20년 동안 코뮤니스트였을 때 말이다. 파시스트는 이러한 종류의 프롤레타리아 윤리에 대해 아직 무르익지 않은 것 같다.” (러시아 교도소에서 온 편지에서 인용)

 

반대 의견을 표명하는 전술은 정권이 더 권위주의적이 되면서 소련에서 번성하게 될 것이다.

 

역사학자 폴 아브리히(Paul Avrich)와 사이먼 피라니(Simon Pirani)에 따르면, 이것은 「노동자 그룹」의 붕괴였다. 그러나 반대라는 것을 제시하는 증거가 있다. 「노동자 그룹」은 케이트 루마노바(Kate Rumanova)가 운영하는 망명 지부를 수년간 유지했다. 1924년, GPU는 모스크바에서 금지되고 불법화되었던, 「노동자 그룹」의 구성원들과 만나 토론한 한 무리의 붉은 군대 병사들을 체포했다. (헤베스, 「1920년 이후 러시아 코뮤니스트좌파」) 헤베스(Hebbes) 또한 1924년 「노동자 그룹」과 관련된 많은 사건을 열거한다. 11월 7일 모스크바에서 참가자들이 모두 체포된 시위도 여기에 포함된다. 12월 8일, 이 그룹은 11명의 조직원이 혐의 없이 체포되어, 우랄에서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알리는 전단을 발행했다. 그들은 체포의 이유를 공개하고, 공개적으로 재판을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12월 27일, 「노동자 그룹」 성원들은 GPU 감시하에 챠르딘스크(Tshardynsk)로 추방되었다. 다수의 붉은 군대 병사들이 NEP를 '새로운 프롤레타리아트 착취‘(「노동자 그룹」 슬로건)라고 부르는 문서를 만들어 탄압받는 노동자 그룹과의 연대를 선언한 “음모”를 꾸민 혐의로 GPU에 체포되었다. 이 그룹은 해산되었고 반체제 인사들은 스몰렌스크(Smolensk)로 이주해야 했다.

 

1928년 「노동자 그룹」은 모스크바에서 지하 회의를 열 수 있었다. 살아남은 성원들은 사프로노프(Sapronov: 민주중앙집중주의 그룹 전 회원)가 이끄는 이른바 15인조가 입안한 안을 표결에 부쳤다. 이 제안은 15개 그룹의 성원들과 「노동자 그룹」, 그리고 남아 있는 소수의 「노동자 반대파」들이 (「노동자 그룹」의 모든 입장과 매우 유사함) 공통 강령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러시아 코뮤니스트당을 결성할 것을 제안했다. 결의안은 채택되지 않았지만, 회의는 「노동자 그룹」의 중앙 지국을 "구소련 코뮤니스트당 조직국"(올리버, 「볼셰비키 좌파와 노동자 권력」)으로 바꾸기로 합의했다. 이 회의 이후 러시아 밖에서 온 「노동자 그룹」 문서들이 구소련 코뮤니스트당을 언급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생각할 때, 비록 참가자의 수가 매우 적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이 회의가 실제로 열렸다고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이 그룹은 1930년까지 노동자의 권력으로 가는 길과 KAPD 및 영국의 실비아 팽크허스트가 만든 '노동자 전함(Workers Dreadnaught)의 두 신문에 실렸던 많은 기사를 출판하는 데 성공했다.

 

실리가(Ciliga)에 따르면, 북극권 북쪽에 위치하고 유럽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추정되는 석탄 채굴 도시 보르쿠타(Vorkuta)의 감옥에 있었던 「노동자 그룹」 운동가들의 증거도 있었다. 「노동자 그룹」, 민주 중앙파, 트로츠키주의자들 등 25명의 개인이 「노동자 그룹」이 제시한 강령을 중심으로 연합하여 1933-37년 사이에 「좌파 코뮤니스트 연합」을 결성했다. 15인의 강령은 테르미도르(Thermidor: 프랑스 혁명력의 제11월; 7월 19일-8월 17일) 전야에 맑스주의 철학자 칼 코르쉬 조직의 「코뮤니스트 폴리틱」이 국제적으로 출판하였다. (올리버, 「볼셰비키 좌파와 노동자 권력」)

 

「노동자 그룹」이 1923년부터 지하에 계속 존재했다고 해도, 가장 두드러진 저항을 한 '반대파'는 트로츠키와 「좌익 반대파」였다. 1923년에 결성된 「좌익 반대파」는 평회원을 영입하는 데 몇 년이 걸렸는데, 이것은 대부분 이전의 반대파, 해체되고 나서 남은 반체제 노동자들, 그리고 관료주의에 불만을 품은 트로츠키 같은 사람들이 연합한 것이었다. 1926년 「좌익 반대파」는 카메네프, 지노비예프와 함께 연합 반대파를 결성했다. 26년 말, 트로츠키는 카메네프와 함께 정치국에서 추방되었고, 1927년 트로츠키, 지노비예프와 8,000명의 다른 반대파 당원들이 코뮤니스트당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1929년에 트로츠키는 소련에서 추방되었다.

 

「좌익 반대파」가 결집했을 때, 정권의 권위주의적 성격에 반대하는 실질적인 저항을 하는 창구는 기본적으로 막혀 있었다. 「좌익 반대파」는 약간의 저항을 했는데, 1929년 트로츠키가 소련에서 추방된 후에는 관료들이 당을 숙청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좌익 반대파」 지도부는 주로 당내에서 지배적인 경향에 도전했는데, 미아스니코프가 보기에는 이는 사실상 점점 더 반(反)혁명적인 정권에 대한 거의 소극적인 지지로 보였다. 확실히, 그는 큰 차이를 보지 못했다. 「최근의 속임수」 서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논박했다.

 

“83인의 강령(트로츠키주의자와 지노비예프주의자)은 ‘일국 사회주의 건설론’을 비판하고, 산업성장률이 9%인 스탈린의 5개년 계획 대신 20% 성장을 목표로 하는 국제주의 5개년 계획을 제안한다. 20% 산업생산의 증가는 국제주의이고, 9% 증가는 '작은 민족주의 정신의 전형적인 보수주의’로 보일 것이다.” (미아스니코프, 「최근의 속임수」)

 

「좌익 반대파」 자체는 분열되었고, '사회주의 축적'이라는 형태를 중심으로 한 내부 논쟁이 있었다. 부하린과 이른바 "우익 반대파"는 농업의 잉여가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시장 메커니즘을 사용해야 하고 보다 꾸준한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좌파는 대규모 집 산화와 대량의 중공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탈린의 "중앙" 분파는 관료주의와 '소비에트' 정권에 대한 통제를 공고히 하면서 두 입장 사이에서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스탈린이 마침내 당에 대한 중앙의 통제권을 공고히 하고 집단화를 강요했을 때, 다수의 초기 트로츠키주의자들을 포함한 많은 코뮤니스트는 정권을 지지하는 태도로 돌아갔다. 「노동자 그룹」과 같은 초기 코뮤니스트좌파와는 달리 소련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명확한 분석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소련이 어떤 면에서 여전히 혁명적이라고 믿고 있었다.

 

「좌익 반대파」가 흥망성쇠 하는 동안, 미아스니코프는 망명지에 묶여 있었다. 1927년, 그는 정치 활동을 자제한다는 조건으로 망명지에서 풀려났다. 항상 비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던 그는 풀려난 즉시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 그러다 GPU에 다시 체포될 것이라는 제보를 받고 아마도 한밤중에 서류 가방만 가지고 도망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가브릴은 이른바 '마지막 유고'(NKVD와의 인터뷰 녹취록)에서 그가 투옥 말기에 작성해서 몰래 가지고 나온 새로운 정권 전복 소책자를 출판했다는 이유로 「노동자 그룹」 중앙본부가 그에게 해외로 탈출할 것을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론적으로, 그는 그룹의 새로운 국제 대표 역할을 맡았다. 그는 「노동자 그룹」 문서를 물이 새지 않는 서류 가방에 넣고, 한밤중에 강을 헤엄쳐 건너서 국경을 넘었다. 그는 탈출하여 페르시아로 향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계속해서 경찰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어느 날 그는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고, 당국은 그가 가지고 온 서류 대부분을 소련 경찰에 넘겼다. 그는 몇 가지를 간신히 건질 수 있었지만, 이것들도 결국 KGB가 그의 아파트를 급습하여 탈취해 갔다.

 

미아스니코프의 '마지막 유고'를 번역한 말콤 아치볼드(Malcolm Archibald)에 따르면, 탈취된 문서에는 "현대 러시아 계급에 관한 것", "VKP[코뮤니스트총연합당(볼셰비키)]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간략한 비평", 그리고 코민테른 이론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지노비예프, 부하린과 서신 왕래 그리고 소린(Sorin)이 「노동자 그룹」에서 쓴 책에 대한 답장도 있었다. 결국 「노동자 그룹」의 다큐멘터리 같은 역사의 많은 부분이 없어졌다. 그의 자서전, 그가 왜 로마노프 왕자를 죽였는지에 관한 장서, "청산주의와 맑스주의", 그리고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와 패배, 또는 10월을 배신한 사람"과 같은 다른 책들은 번역되지 않은 체 KGB 기록 보관소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터키로 가는 길을 찾은 미아스니코프는 편지로 다른 러시아 망명자들과 연락하려고 노력하면서 몇 년 동안 가난하게 살았다. 1929년 그는 아들인 레프 세도프(Lev Sedov)를 통해 트로츠키와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가브릴과 트로츠키는 만나게 되었고 트로츠키는 그가 프랑스에 가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돈을 빌려주었다. 미아스니코프는 "최근의 속임수"라는 새로운 소책자를 트로츠키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는 소련은 국가 자본주의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그는 트로츠키에게 서문을 써달라고 부탁했지만, 트로츠키는 이를 거절했다. 그 후 트로츠키는 다시는 미아스니코프와 정치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사실 트로츠키는 「노동자 그룹」을 파괴하는 것을 지원했을 뿐만 아니라 제11차 당 대회에서 미아스니코프를 비난하는 '검찰 역할'을 맡았었다. 이 시점에서 두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은 스탈린에 대한 증오와 코민테른 좌파에 대한 그들의 견해였다.

 

그들의 반대 기간, 미아스니코프와 트로츠키는 한 가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진정한 혁명 활동을 하기 위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설립. 1930년, 미아스니코프와 「노동자 그룹」에서 남아 있던 활동가들은 새로운 "코뮤니스트 노동자 인터내셔널"을 꿈꿨다. 이것은 제3의 강령에 굴복하지 않았던 모든 혁명적 코뮤니스트 인자들을 통합하려는 의도였다. 「노동자 그룹」과 그들의 인터내셔널은 소련을 국가 자본주의로 보게 될 것이고, 그들은 '또 다른 11월'에 프롤레타리아가 소련을 전복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동시에 다소 모순되는 방식으로, 미아스니코프는 소련에 개혁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다른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독립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소련을 "퇴보한 노동자 국가"로 이해한 것을 전제로 해서, 새로운 제4 인터내셔널을 설립한 사람은 트로츠키였다.

 

트로츠키가 도와준 몇 파운드는 미아스니코프가 터키에서 탈출할 때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도움이 해외에서 있었다. 독일에서는 그를 지원하기 위한, 맑스주의 철학자 칼 코르쉬가 이끄는 위원회가 설립되었다. 그들은 그가 독일에서 거주할 수 있는 집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독일정부는 그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프랑스 CGT 건설노조 위원장 루이스 셀리에(Louise Sellier)가 프랑스 정부에 탄원서를 제출해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다.

 

가브릴은 간신히 파리에 정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는 아나키스트 신문인 "로브리에 코뮤니스트(L'Ouvrier Communiste)"의 편집자인 프라우도모(Proudhommeaux)와 접촉했다. 프라우도모는 그를 다른 아나키스트 지굴레프- 이리닌( Zhigulev-Irinin)에게 소개해 주었고, 그는 그를 위해서 창문 닦는 일을 알선해 주었다. 지굴레프-이리닌은 또한 그의 논문 "노동의 목소리"에 미아스니코프스의 글 중 일부를 발표했다. 그들은 개인적인 문제로 사이가 틀어졌고(이리닌은 프랑스 비밀 경호국에서 일했던 것으로 보인다), 가브릴은 금속공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생디칼리스트 CGTU의 성원이 되었다. 그리고 종종 아나코 생디칼리스트 단체와 행사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코뮤니스트 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했다. 미아스니코프는 볼셰비키 정치(보기를 들어 노동자 국가 개념에 대한 일관된 옹호)를 분명히 유지했기 때문에 아나코 생디칼리스트가 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이제 안정된 장소에서 거주하고 또 일하면서, 그는 현재 이름이 바뀐 코뮤니스노동자당 국제 서기국을 운영하는 역할을 잠시 맡았지만, 러시아의 모든 반대 세력이 무너지면서, 그 그룹은 다시는 지속되지 못했다. 그는 1931년에 "최근의 속임수" 원고를 완성했다. 그 소책자에는 많은 새로운 통찰이 담겨 있었다. 소련을 국가 자본주의 체제라고 묘사한 것 외에도, 미아스니코프는 1920년 볼셰비키당의 제8차 당 대회에서 노동계급이 권력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볼셰비키가 9차에 이르러서는, 관료주의적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노동 농민감시단의 설립이 그러한 보기 중 하나였다. 부패를 억제한다는 의도였지만, 대신에 새로운 사찰단은 노동자와 농민들에게 새로운 권력을 행사하고 자기 자신의 잇속만을 챙겼다. 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다른 많은 코뮤니스트가 규정한 바와 같이, 적어도 '1인 경영'의 시행은 더 큰 문제가 되었다. 미아스니코프는 비록 그가 실제로 헤어지는 데는 몇 년(그리고 실제로는 추방)이 걸렸지만, 이것이 볼셰비키당과 영구적으로 결별하는 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침내, 그는 인민위원회의 설립이 실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그 당시에 그것이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모든 러시아 소비에트 행정부 위에 조직을 설립하는 것은, 혁명의 퇴보 기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된 국가 전체에 권력을 이양했다.

 

 

흥미롭게도, 미아스니코프와 「노동자 그룹」은, 아마도 러시아의 다른 코뮤니스트좌파 세력과 그들의 결합으로 인하여, 많은 문제에 대해서 그들의 태도를 바꾸었다. 그들은 여전히 소비에트가 생산을 통제해야 한다고 믿었지만, 협동조합에 맡겨진 분배를 통제해서는 안 되고 또한, 노동조합에는 "일반적으로 노동자와 농민 감시관이 행사하는 국가 관료적 통제 기구의 기능"이 할당되어야 한다. 게다가, 인민위원회는 "부르주아 국가 내각의 먹지 사본"이었기 때문에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34년, 탄압은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 미아스니코프는 프랑스 경찰에 체포되어 '프랑스 내정에 간섭한'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출국 명령을 받았지만, CGT의 비서가 개입하여 판결을 뒤집을 수 있었다. 그 후 몇 년 동안 그는 직장을 들락날락했고, 정비공으로서 그리고 직물 염색공장에서 다양한 일을 했다. 이 기간에 그는 사회주의 과도기, 러시아 혁명, 그리고 그의 고향에서 노동 운동의 역사에 관한 많은 저작을 완성했다.

 

독일의 점령기 동안, 가브릴은 직장에서 체포되었다. 아마도, 그는 자기 아들들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 소련 대사관에 갔을 것이지만, 파시스트들과 싸우기 위해 붉은 군대에 입대하려고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러한 일은 생기지 않았고 그는 게슈타포의 감시 아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독일 점령지역이 아닌 곳으로 탈출했고, 그곳에서 그는 프랑스 경찰에 의해 즉시 체포되었다! 그들은 1941년에 명령을 받았는데도 그가 나라를 떠나지 않았다고 비난했고, 그런 다음 그가 법적으로 사면되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에는, 그들은 그를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다. 그는 1943년 8월에 탈출하기 전까지, 툴루즈(Toulouse)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있었다. 그는 나치 정권으로부터 해방될 때까지 파리에서 숨어 지냈다.

 

프랑스에서 지내는 동안 가브릴은 빅토르 세르주(Victor Serge)와 루스 피셔(Ruth Fischer)와 같은 다른 코뮤니스트 망명자들과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재혼했다. 그러나 미아스니코프 생의 마지막은 비극적이었다. 1946년에 그는 당국에 의해 다시 소련으로 유인되었다. 그러나 그가 납치되었을 수도 있다. 그가 유혹을 받았다면, 그의 전처인 다이아 그리고르예브나(Daia Grigor'evna)와 그의 아들(Miasnikov)을 만나겠다는 약속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아들들은 이미 2차 세계대전에서 붉은 군대를 위해 싸우다가 사망한 상태였다. 아들이 사망한 후 그의 전처는 신경이 쇠약해져서 정신병원에서 지내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천천히 회복하고 있었다.

 

미아스니코프는 친구들에게 그가 프랑스를 떠나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즉시 체포되어 악명 높은 부티르키(Butyrki) 교도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코뮤니스트좌파 가브릴 미아스니코프의 마지막 유언”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던 유언을 했다.” 소련 당국은 미아스니코프와 별거 중인 러시아인 아내에게 그가 소련으로 돌아왔다고 알렸고 그녀는 감옥에 있는 그를 방문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그가 1946년 11월 16일, 소련 당국에 의해, 총에 맞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도착했는데, 남편을 보기 위해서 도착하기 하루 전에 그는 살해당했다.

 

「노동자 그룹」에 대한 성찰

 

「러시아 코뮤니스트당」의 「노동자 그룹」이 그들이 직면한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아있는 프롤레타리아계급에 일관되게 의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미아스니코프와 「노동자 그룹」에 있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아무리 작더라도 역사에서 행동하는 세력으로 남아 있었고 행동을 통해 사회 환경을 재편할 수 있었다. 「노동자 그룹」은 그 계급 구성 때문에 이러한 맑스주의적 개념에 매우 열렬히 헌신했을 가능성이 크다. 철저하게 노동계급에 기반을 둔, 그들은 지식인들과 관료들이 말하는 혁명적 진정성에 대한 추상적인 보증을 믿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최근의 속임수’ 전반에 걸쳐있는 미아스니코프가 비판한 많은 부분은 의미 있는 민주주의 개혁으로부터 자신을 은폐하기 위해 관료가 "비판과 자아비판"을 정확히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것을 겨냥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 그룹」이 그렇게 철저하게 계급에 기반을 둔 것은 의식의 발전을 통해서가 아니었다. 차라리 가브릴 미아스니코프와 같은 주요 인물들에게서 목소리를 찾은 것은 노동계급 자체 내에서 저항이 더 거세어지게 되는 자발적인 산물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렇게 많은 탄압을 받은 조직인 「노동자 그룹」이 체카/GPU를 적절하게 비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결국 1931년 소책자 "최근의 속임수"의 8가지 프로그램 일부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비밀 기관을 없애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GPU에 대한 비판은 비밀경찰의 지배에 도전하는 다른 조직들에 비해 다소 약했다. 보기를 들면, 내무부의 고위 관리로서 그의 짧은 재직 기간 동안 좌파 사회혁명당의 듀쿄브스키(Dukhovsky)는 체카를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계급적 기원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에 바탕을 둔 사람들을 처벌하는 체카의 방법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프롤레타리아트 정의는 여전히 개인의 범죄(파버, 스탈린주의 이전,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흥망성쇠)를 해결하기 위해 그것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체카의 처형을 승인한 위원회 일부로서, 그는 종종 볼셰비키 지도자들의 의지에 반하는 결정에 찬성하는 투표를 했다. 체카는 소비에트가 아니라, 중앙 정부에 의해 임명되었고 억압 기구를 노동계급 보다 우선시했다. 체카에 부여된 독립적 권력은 비슷한 역할을 했던, 우크라이나 저항군의 콘트라즈베다(Kontrrazvedka)와 비교가 된다. 콘트라즈베카의 행동이 통제 불능이 되자, 소비에트 평의회는 그들을 개혁했다. 그리고 역할의 제한을 요구했으며 이러한 개혁은 즉시 실행되었다. (「러시아 내전의 네스터 마크노」, 마이클 말렛) 비록 이 개혁이 우크라이나 좌안(左岸)에서만 시행되어, 러시아와는 다른 규모였지만, 그런데도 억압적인 기관들이 정당했을 수도 있고 실제로, 불가피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구조와 한계의 측면에서도 여전히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늘날 노동계급은 볼셰비키 정권 초기 또는 테르미도르 기간 노동자들의 탄압을 에어브러시로 이용하지 않는다. 미아스니코프와 같은 투사에 의해 확인된 초기 실수를 무시하는 것은 미래의 사회주의 실험이 의심할 여지없이 직면하게 될 어려운 질문을 회피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야만주의로 여전히 황폐한 세상에서 새로운 사회주의 시도는 적어도 고립과 침해의 기간과 싸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혁명이 국제적 날개를 펼칠 때까지 무엇을 고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과거를 연구하면서 우리는 일어날 수 있었던 반(反)혁명뿐만 아니라 과거 반혁명도 비판하지 않으려고 한다. 가브릴 미아스니코프와 「노동자 그룹」의 이야기는 우리가 끌어낼 수 있는 이야기 중 하나다. 그것은 노동계급 자체인 볼셰비키당이 처음으로 무기를 휘두른 지점에서 강요된 새로운 국가 자본주의 체제가 된 것에 대한 노동계급의 많은 반대 중 하나였다. <끝>

 

2021년 9월 12일

Tommy Lawson

옮긴이 : 이명수

 

 

참고문헌

 

책:

「스탈린주의 이전, 소련 민주주의의 흥망성쇠」, 사무엘 파버

「알렉산더 슐랴프니코프, 1885년-1937년: 볼셰비키의 삶」, 바바라 알렌

「레닌 하의 레닌주의」, 마르셀 리프만

「작업장의 단두대」, G.P 막시모프

「노동자평의회」, 안톤 판네쿡

「1920-24년 러시아혁명」, 사이먼 피라니

「무장을 한 예언자」, 아이작 도이처

「크론슈타트」, 레닌, 트로츠키 외

「레닌; 그리고」, 안톤 실리가

「러시아혁명의 아나키스트」, 폴 아브리치

「급진적 전통」, 리처드 곰빈

「러시아혁명」, 로자 룩셈부르크

「러시아 내전 속 네스토르 마흐노」, 미하엘 말레

「혁명가의 회고록」, 빅토르 세르게

「러시아 교도소 국제 정치범 위원회로부터 온 편지」

 

기사:

‘볼셰비키 좌파와 노동자 권력’, 미셸 올리버

‘레닌의 유아적 무질서’, 프란츠 펨페르트

‘레닌에 대한 볼셰비키의 반대파’, 폴 아브리치

‘코뮤니스트’ 1918년 4월 2일자

‘1920년 이후 러시아의 코뮤니스트 좌파’, 이안 헤베스

 

미아스니코프 원본 저작:

「같은 길, 유일한 다른 방법」, 1920년 12월

「러시아 코뮤니스트당 노동자 그룹 선언」, 1923년 2월

「코뮤니스트당 국제노동자 연서 초안」, 1930년 3월,

「최근의 속임수」, 1930년 10월

「좌파 코뮤니스트 가브릴 미아스니코프의 최후의 유언」, 1945년

「22인의 호소」, 슐리아프니코프, 콜론타이, 미아스니코프 등, 1922년

 

<출처>

http://libcom.org/history/most-intransigent-bolsheviks-gavril-miasnikov-workers-group-degeneration-russian-revolut

 

 

<이전 글> 

볼셰비키 중 가장 비타협적인 인물 : 가브릴 미아스니코프(Miasnikov), 「노동자 그룹」과 러시아혁명의 퇴보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2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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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숨을 참다 “코로나 시대의 우리 일”」을 읽고

「숨을 참다 “코로나 시대의 우리 일”」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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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걸리면 안 돼.’ 엄마는 한동안 이 말을 달고 살았다. 코로나는 바이러스인데 그게 개인의 의지로 되는 거냐고 입바른 소리를 하면, 엄마는 짐짓 심각해져서 ‘걸리면 회사 못 다녀’라고 했다. 회사는 안 다녀도 그만이지만 동료들에게 ‘죄인’ 될 것이 더 무섭다는 말 또한 잊지 않았다. 100여 명이 같은 공간에서 하루 8시간 이상 붙어 앉아 있으면서도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어떤 긍정에서 나오는 믿음일까. 동료들에게 “민폐”가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두려움이 면역력을 높이고 있는 걸까“

 

“혜숙 씨는 지금까지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문자를 서너 차례 받았다. 그때마다 상담사들은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가야 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런 연락이 꼭 금요일이나 주말에만 오는 것이다.”

 

“누구는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었고, 운 좋게(?) 살아남은 누군가는 일이 너무 많았다. 일곱 명이 하던 수업을 혼자 떠맡다 보니 10개 수업을 연달아 하면서 쉬는 시간조차 사라졌다. ... 아이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네버엔딩 스케줄’ 때문에 졸 때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이 더 줄어들까 봐 전전긍긍하는 원장을 보면 힘들다는 말조차 꺼내기 어려웠다. 해고보다는 과로가 나았으니까” (책속에서)

 

이 책이 나온 시기만 해도 하루 수천 명 단위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한 시기였지만, 글을 쓰는 현재는 오미크론 변종바이러스 확산으로 연일 수십만 명이 확진되고 있고, 2022년 4월 20일 누적 확진자는 1,600만 명을, 누적 사망자는 2만 명을 넘겼다.

 

더구나 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마저 코로나 확진 판정을 목격하면서 나 또한 너무나 자연스럽게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내가 느꼈던 감정은 신문이나 일반 매스컴을 통해 우리 사회가 코로나를 통해 특히 사회적 약자가 고통을 받고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숨을 참다 “코로나 시대 우리일”」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여러 분야의 사회적 약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 이주 노동자, 장애인, 프리랜서, 영세자영업자를 비롯해 코로나19 재앙을 직접 맞닥뜨린 현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르포형식으로 당사자들이 느끼는 고통과 수많은 어려움을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고 실감 나게 표현했기에 아직 읽어보지 못한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장기화한 자본주의 경제 위기 속에서 맞이한 코로나19 재앙은 사회적 약자의 삶을 더욱더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또한 코로나19 시대를 거치면서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점점 더 벌어져 자본주의 모순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은 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11편의 글로 담았고, 마지막에는 현장 분석을 통해 코로나 시대에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유럽 복지국가가 현재 코로나 극복을 위해 실행하는 정책을 비교 분석하면서 일부 대안까지 제시해 주면서 마무리한다.

 

 

물론 대안 문제에 있어서 나와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코로나 시대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근본적인 대안은 자본주의 체제 문제로 접근할 수밖에 없는데, 그러한 본질적인 문제가 빠졌기 때문이다. 르포형식이라서 생생한 현실 전달이 탁월하지만, 코로나19 발생의 근본 원인과 체제의 문제를 좀 더 다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왜냐하면 코로나19 발생의 원인이 기후 위기, 환경 문제 등 자본주의 이윤 체제에 있다면, 그 피해 또한 가장 취약하고 착취가 심한 곳에서 커지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책을 내는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장 분석”에서는 나름 몇몇 사회문제를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글을 통해 코로나 발생과 노동 현실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수치와 표를 통해 좀 더 객관적 분석을 시도하고, 일부 서구 복지국가 정책을 우리 사회에 도입하자는 방향 제시가 현 정부의 무능과 위선을 폭로해주는 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라서, 노동자의 피해와 희생이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만큼 더욱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에서 다룬 이야기는 더 다양하고 깊은 내용으로 후속 작업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나는 코로나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도 결국은 “자본주의 철폐”라는 대명제에서부터 구체적으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자체를 폐지하지 않고는 현재의 코로나로 고통 받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들이 겪고 있는 이 지옥 같은 벼랑 끝 고통은 어느 것 하나도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2022년 4월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 ┃ 이민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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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코뮤니즘, 김일성주의, 자유주의

코뮤니즘, 김일성주의,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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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장은 "문재인 (전)대통령이 신영복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면 확실하게 김일성주의자입니다."라며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 김문수의 발언은 많은 논란을 일으키며 민주당과 노동단체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 비판의 핵심은 김일성주의라는 과대 표현과 반공에 매몰되어 노동조합을 부정하는 극우 유튜버인 김문수가 사용자 측과 노동자 측의 주장을 중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2015년에도 김문수와 같은 논란이 국회에서 있었다.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문재인 대표는 공산주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변형된 공산주의자”라고 말했다. 이에 코뮤니스트 오세철 동지는 “문재인, 노무현은 공산주의자와 거리가 먼 사람들이며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개혁을 통해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자유주의자”로 규정한다.1)

 

자유주의는 반(反)봉건 부르주아 해방이념으로서 부르주아들이 쟁취한 사회‧경제적 권리를 천부 인권으로 선포하고 국가권력 질서로 부르주아 권리를 보장하기 적합하도록 개편한 정치이념이다. 이때 부르주아 권리의 핵심은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 질서 속에서 부르주아적 개인들의 영리 추구의 자유다. 그리고 법치국가란 부르주아적 권리를 국가도 침범할 수 없는 국민 기본권으로 보호하는 국가체제로서, 오직 이러한 부르주아적 개인들의 대표기구가 합법적으로 위임하는 바에 따라 국가 행위가 이루어지는 국가이다. 법치국가의 전제로서 권력 분립, 국가 집행 기구에 대한 부르주아 개인들의 대표기구인 의회 통제력, 사법권이 존재해야 한다. 반봉건투쟁 속에서 부르주아들이 수립하려 한 정치질서란 모든 인간의 자유와 평등, 사회 전체 해방이 아니라 유산자들의 자유 공화국이었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1998년 만들어진 노사정위원회가 여러 번에 걸친 개명을 거쳐 지난 문재인 정권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노사정 3자주의를 통한 사회적 대화 원조는 국제노동기구(ILO)다.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투쟁 고조로 국제 부르주아에게는 위기감이 팽배하였다. ILO는 이러한 부르주아의 위기감을 반영하여 1차 제국주의 전쟁 직후인 1919년 출범하면서 세계 전쟁 억제와 코뮤니스트혁명을 예방하고자 하였다. 한국의 경사노위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경사노위 위원장은 극우 유튜버가 아니더라도 표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친자본적인 인물이 선임되었다. 가령 노동운동 출신 인사를 위원장에 인선하더라도 그는 친자본적인 성향에서 활동할 뿐이다. 계급사회에서 대화를 통해서 피지배계급의 최소 권리를 획득하고 유지한다는 것은 결국 몽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관철하려면 김문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경사노위 자체를 부정하고 비판하며 계급투쟁의 역량을 증대시켜야 한다. 그런데도 경사노위 참가 전제 중 하나로 노동계급 의사를 국가기구에 반영하는 제도가 경사노위뿐이라서 참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계급사회에서 계급 간 대화는 대등한 힘이 바탕이 되었을 때 일시적인 순간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계급 간 이해관계에서 절충이 없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역사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용어는 이데올로기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라는 주장에는 반공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김일성주의’는 ‘공산주의’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왜곡의 시작은 단어, 기호에서부터 비롯된다. ‘바이든이 아니고 날리면’이라는 해명은 처음에는 웃음거리였지만, 지배계급의 반복된 선전 진행으로 어느새 진실이 되고 역사가 된다. 간접제와 민주주의는 다른 개념이지만 19세기 미국에서 조합하고 조작한 간접민주주의라는 용어는 어느새 학교에서, 책에서 민주주의 인양 재생산되고 있다. 이처럼 지배계급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왜곡된 용어는 수없이 많다. 스탈린주의, 김일성주의가 코뮤니즘과 등호 관계로 선전되고 이데올로기화되는 것 역시 노동계급에 혁명의 경로와 전망을 침탈하고 지배계급의 이익에 복무하게 된다.

 

그동안 한국 (수구기득권)지배세력은 공산주의와 김일성주의를 정적 제거와 노동자·인민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그들의 주장에 반대하는 세력은 반공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공산주의, 좌경빨갱이, 김일성주의라 낙인찍으며 탄압해왔다. 심지어는 자유주의적 주장까지 좌경빨갱이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렇듯 그들의 마녀사냥과 거기에 더해 스탈린주의, 마오주의, 김일성주의에 대한 공산주의 낙인은 공산주의에 대한 엄청난 혼란과 왜곡을 낳고 있다. 탄압의 강도가 얼마나 혹독했으면 한국 사회에서는 ‘다르다’를 ‘틀리다’로 사용하는 언어적 습관과 사고까지 재생산되고 있다.

 

코뮤니즘과 코뮤니스트

 

코뮤니즘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기계적이고 맹목적이며, 스탈린주의와 김일성주의 영향으로 비민주적, 봉건적, 기본권 억압, 경제난이라는 이데올로기 공격이다.

 

“코뮤니즘은 … 구(舊)사회에 내재한 모순으로부터 그리고 그 사회 발전의 필수적인 귀결의 하나로서 출현한다. 그러나 코뮤니즘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비록 코뮤니스트 사회가 자본주의에 내재한 경제적, 사회적 모순의 결과이자 실재적이고 객관적인 조건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실천적이고 집단적이며, 의식적인 창조물이다. 역사상 최초로 하나의 사회 계급이 그들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직 조직화하고 의식적인 방법으로만 가능하다. 이것이 코뮤니즘이 지적인 ‘계획’도 아니며, 맹목적이고 기계적인 필연성도 아닌 이유다. 코뮤니즘은 인류 공동체가 이전 사회관계의 폭력적 파괴에 뒤이어 구세계를 의식적이고 점진적으로 변혁시킨 결과가 될 것이다.“ (”코뮤니즘이란 무엇인가“ 「코뮤니스트」 9호)

 

즉, 코뮤니즘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철폐해 나가는 조직되고 의식적인 혁명을 통해서 가능하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구별을 철폐하고 자본과 임금 체계, 상품 생산, 그리고 모든 민족적이며 계급적인 분리를 철폐해 나간다.

 

코뮤니즘은 계급,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 어떤 종류의 개인적, 집단적 소유도 없는 사회이다. 이러한 결과로 결핍 철폐와 필요에 의한 생산과 계급 철폐를 통해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가능하다. 코뮤니스트는 이처럼 투쟁과 혁명으로 자본주의를 넘어선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동자와 활동가들이다.

 

김일성주의와 코뮤니즘

 

결론부터 말한다면 김일성주의는 코뮤니즘과 아무 관련이 없다. 북한은 김정은이 3대 세습하면서 현시점에서 절대 권력이 혈족으로 이어지는 유일한 봉건적 성격의 국가이다. 김일성주의는 맑스주의에 사람 중심의 사상, 이론, 방법을 부가했다고 한다. 그러나 맑스는 사람 중심의 세계관과 이른바 인간(의 속성)론은 맑스주의에 없던 어떤 것, 그리고 이후 ‘시대의 발전’에 수반하여 부각되는 새로운 합리적 요소가 아니라 맑스가 이미 1840년대에 포이에르바하에게서 배웠다가 그의 사상의 발전과 함께 비판하고 폐기해버린 ‘비합리적 요소’에 지나지 않는다. 즉, 북한의 절대권력 세습과 맞물린 통치 이데올로기이다.

 

"그럼 북한은 코뮤니즘 국가인가? 마오주의의 중국혁명이 부르주아 인민혁명인 것처럼 스탈린주의가 위로부터 강제한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는 노동계급의 혁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국가자본주의의 변형에 불과하다." (“북한,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가 종착된 봉건적 주체주의”, 「코뮤니스트」 창간호)

 

공산주의가 아닌 코뮤니즘

 

한국의 수구기득권 세력은 이념과 논리가 시시때때로 바뀌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이다. 그들의 이익을 유지하고 획득하기 위해서는 극우 이념도 갖다버리는 세력이다. 그럼 수구기득권은 왜 자기주장에 반대한 세력을 공산주의, 김일성주의로 낙인찍을까? 이것은 ILO 창립 배경과 비슷한 이유이다. 코뮤니스트혁명의 방지와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 지배계급 내 다른 분파에 대한 권력 독점에 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도 김일성주의자로 낙인을 찍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와 김일성주의를 특징짓는 비참함, 결핍, 그리고 억압이 자본주의를 더욱더 높은 형태의 사회로 바꿀 수 없다는 불가능성과 공산주의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 주고 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경쟁, 제한 없는 부를 축적하고자 하는 욕망, 이런 것들이 인간 본성의 본질이라는 것으로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선전은 노동계급 일반에 심각한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왔으며, 왜곡과 편견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투쟁을 정치화하고 자본주의 체제 전체에 맞설 수 있는 역량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이것이 부르주아가 취하는 이득이고 낙인찍는 이유이다

 

나오며

 

이처럼 공산주의라는 용어는 스탈린주의, 김일성주의와 혼동으로 국제 부르주아에 의한 악의적인 선전으로 이용된다. 전제주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와 민주주의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그리고 지배계급이 열심히 유지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신비화의 근거이다. 따라서 이러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맑스주의 탈을 쓴 온갖 사이비(스탈린주의, 마오주의, 김일성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공산주의가 아닌 코뮤니즘을 원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기나긴 자본과의 투쟁에 첫걸음이다.

 

2022년 11월 10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ㅣ 윤태상

 

 

<주>

1. “진짜 공산주의자 오세철 교수가 본 문재인·노무현 공산주의자 논란”, 「경향신문」, 2015년 10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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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생활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다

생활비가 천정부지로 치솟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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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영국의 물가상승률 10%는 다른 어떤 '부자' 국가보다 높고 모든 품목이 상승할 것이다. 국내 휘발유 가격은 지난 12개월 동안 95%, 전기요금은 54% 올랐다. 둘 다 수백만 가구가 "먹을지 또는 난방할지"라는 딜레마에 직면하게 될 가을에 더 오를 것이다. 성인 네 명 가운데 한 명은 가계비를 부담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다. 식료품 가격이 오르면서 푸드뱅크를 이용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고, 아동 빈곤도 증가했으며, 집세도 올랐다. 그러나 임금과 복리후생은 그렇지 않다.

 

생계보조금 정책의 변경은 수급자의 35%가 이제는 더 적은 돈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큰 타격은 장애아동 가족과 저소득층이다. 생계보조금 지원을 받던 900만 가구는 연간 500파운드 삭감을 겪을 것이다. 자녀가 있는 커플은 72파운드 손해 볼 것이다. 푸드뱅크에 대한 수요가 그렇게 많은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푸드뱅크의 재고가 부족하고 줄 음식이 떨어졌다고 보고하고 있다.

 

공식 수치와 경제 뉴스는 코로나 이후 노동력이 부족한 부문에서 임금을 올리는 '시장 세력'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고 지목한다. 그러나 진실은 임금 소득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수십 년 동안 감소해 왔고 오늘날에는 이번 세기 동안에 가장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 노동자에게는 그들의 임금이 인플레이션을 따라잡을 가능성이 없다. 정부가 팬데믹 기간에 말한 모든 립 서비스에도 불구하고, NHS 직원들은 그들을 향한 박수갈채가 사실은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간호사들은 이제 12년 전보다 7% 더 적게 받는다. 조산사는 10%를, 병원 컨설턴트는 12%를 덜 받고, 구급차 직원들도 실질적 임금 삭감에 직면했다. 다른 부문은 사정이 더 나쁘다. 가장 경험이 많은 교사들은 실질 임금이 9% 하락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또한 빈곤한 아이들이 처한 위기에 대처하고 있다. 많은 교사가 그들 반에서 배고픈 아이들을 먹이기 위하여 교사 휴게실에서 모금했다고 보고한다.

 

물론 모두가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은 아니다. 고급 요트를 탄 우리의 착취자들 외에도 임금 노동자들 사이에도 불일치가 있다.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사람들, 특히 금융과 부동산을 취급하는 사람들은 보너스로 인해 대폭적인 급여 인상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우리 노동자 대부분은 앞으로 몇 달 동안 더 힘들 것이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맨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재정연구원은 빈곤한 가정은 10.9%의 전반적인 물가상승률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미 최저가 식품 가격이 10% 인상된 경우도 있다. 다시 말해, 수년간 확대되어 온 빈곤 격차가 이제는 극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 대부분의 전반적인 삶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재 코로나에 걸린 200만 명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수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에 대한 의료적 치료가 지연되고 있다. 남성의 10% 미만이 건강한 상태로 은퇴하는 반면에 여성 연금 수급자 5명 중 1명은 이미 빈곤선 아래에서 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모두 토리당의 탐욕과 잘못된 관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토리당이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정책은 노동자들이 ‘노동당 지지자’들을 맹렬히 비난할 수 있도록 옹호하는 척하면서 노동자들을 맹렬히 공격하는 것과 같다. 공정한 기회의 확산이라는 ‘레벨 업’ 주장은 역대 장관들의 공허한 약속을 내뱉는 진부한 구호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부 스스로는 팬데믹에 따른 연쇄적 반응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거나, 석유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세계적인 식량 부족을 야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는 심지어 브렉시트의 효과라고 속삭인다. 이 모든 것이 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중 어느 것도 왜 위기가 그렇게 깊은지, 왜 위기가 세계적 인지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사실 지배계급은 그들 자신의 시스템을 통제하지 못한다. 자본주의는 절벽을 지나 허공으로 향하는 폭주 열차와 같다. 그리고 극우부터 극좌에 이르는 전체 자본주의 스펙트럼에 있는 누구도 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노동계급이 모든 대가를 치르게 하면서 동시에 노동계급을 비난하는 훨씬 더 창의적인 방법들을 생각해 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을 거절할 때, 그들은 이미 어떻게 싸울지에 관한 준비를 하고 있다. 다른 많은 제약과 더불어 경찰, 양형 제도, 법원은 너무 시끄럽다는 이유로 개인의 시위는 물론 대중 시위를 봉쇄하고 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또한 내무장관 프리티 파텔(Priti Patel)은 처음으로 특수경찰에게 테이저건을 지닐 수 있는 권한을 조용히 부여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한 세기 동안 가장 큰 ‘감옥 건설 프로그램’에 착수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이것이 자본주의가 우리를 위해서 염두에 두고 있는 미래이다.

 

우리의 대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때이다. 이윤과 배당금이 없지만, 모든 사람의 기본적인 요구는 물론 그 이상의 것이 보장되는 세상을.

 

2022년 8월 21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위 기사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기관지 「오로라(Aurora)」 최신호(제60호)에서 발췌한 것이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8-21/cost-of-living-goes-through-the-ro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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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합병은 세계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또 다른 단계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합병은 세계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또 다른 단계이다

-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성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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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서의 핵 러시아 룰렛...

 

9월 21일, 푸틴은 우크라이나 반격의 압력으로 연설에서 두 가지 주요 발표를 했다. 첫 번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예비군 30만 명의 '부분 동원' 선언이었다. 이것은 러시아를 지배하는 억압의 분위기에서 그 규모, 기간, 지리적 확장에서 주목할 만한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이 전쟁은 이미 그렇게 해온 부유한 소부르주아지보다 나라를 떠나는 것이 더 힘든 러시아 노동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두 번째 발표는 도네츠크(Donetsk), 루간스크(Lugansk), 케르손(Kherson), 자포리지아(Zaphorizhia) 등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부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4개 영토에서 러시아 합류를 위한 국민투표 선언이었다. 일주일 만에 러시아 지배계급이 사이비 국민투표를 했고, 놀랍게도 압도적으로 다수가 가입에 찬성하는 결과가 나왔다! 일주일 더 지나서 러시아에 합병되는 지역에 대한 모든 공식적인 조약이 러시아와 러시아가 임명한 그 지역의 수장들이 서명하고 비준했다.

 

푸틴의 연설이 러시아 지배계급이 전장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을 인정한 것과 별개로, 러시아의 이러한 영토 병합은 분쟁의 일반화와 잠재적인 핵전쟁을 향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러시아의 군사 교리는 국가의 생존이 위태로울 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러시아 영토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보호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푸틴은 연설에서 러시아의 군사 교리가 해당 지역에 적용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를 분명히 했다. 푸틴의 세력 내에 있는 러시아 지배계급의 다른 구성원들은 훨씬 더 분명히 했다. 메드베데프(Medvedev)와 라브로프(Lavrov)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고 주장함에 따라 우크라이나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전략적 핵무기"를 사용하여 그 영토를 방어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 위협을 가하는 것과 동시에 나토 국가들은 일반화된 전쟁과 핵전쟁을 향한 준비를 하고 있다. 침공이 시작된 이래 유럽은 군사화되었고, 나토 휘하의 종전 4만 명에서 3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난 병력이 비상경계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토의 벨기에에 대한 전술적 핵 공군 훈련은 위협이 끔찍한 실질적인 선택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독일을 포함한 모든 주요 나토 국가에서 군사 예산이 확대되었다. 바이든과 행정부는 미국 경제가 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과 노동조합은 10만 명의 철도 노동자들의 계획된 전국적인 파업을 방해하고 성공적으로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젤렌스키는 사이비 국민투표가 시행되는 와중에 나토에 우크라이나의 나토에 대한 긴급한 밀착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보냈고, 이는 거의 확실하게 분쟁을 일반화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불길한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대한 보복을 위해 자체 핵무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David Petraeus) 예비역 장군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흑해에 있는 모든 병력을 파괴함으로써 러시아와 재래식 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세계적 위기를 겪고 있는 자본주의는 핵전쟁의 길을 열었다.

 

 

... 더 넓은 전쟁으로 세계를 위협하다

 

분쟁 초기부터 언급했듯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다. 대신, 그것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와 미국의 두 경쟁 제국주의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쟁이 과거의 제국주의적 분쟁(2010년대 시리아 등)과 다른 점은 현재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가 너무 심각해서 경쟁 제국주의에 의해 더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 지배계급은 이 분쟁을 그들의 생존에 실존적인 것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그들이 그것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오래된 '뒷마당'을 미국과 유럽 자본에 완전히 내주는 패배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이나 미국과 유럽연합의 꼭두각시 주인도 크림반도를 포함한 모든 점령 지역에서 러시아인을 몰아내는 완전한 승리가 아닌 어떤 것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평화를 대가로 그들에게 영토를 제공하는 러시아와의 협상이 이뤄진 평화 정착조차도 경쟁국(중국 등)에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보여줄 무언가를 내놓을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미국은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일부 영토나 유익한 정착을 할 수 있다면 주요 제국주의 경쟁자인 중국이 대담하게 대만이나 다른 곳에서도 그와 같은 일을 할 것이라는 우려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미국이 이 분쟁 내내 러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려고 시도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자본주의 언론과 국가 지도자들은 핵전쟁과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분쟁에 대한 준비에 대해 능숙하게 이야기한다. 이는 사건이 전개된 특정한 방식(러시아가 즉각적인 침략자) 때문에 순간적으로 인류, 국제 평화, 이른바 "규칙 기반 질서"(나토 국가의 지배계급)에 호소하는 평화스러운 복장을 하게 되는 지배계급들조차도 러시아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전쟁을 통해 그들의 이익을 방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제국주의 세계 무질서의 모든 측면의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궁극적인 방법으로 전쟁을 강요하는 자신의 논리에 갇혀 있다. 이러한 제국주의 전쟁은 우리를 모든 생명의 완전한 멸종으로 이끌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전쟁은 우리를 멸종의 문턱으로 내몰고 있다. 그들은 핵폭탄과 미사일로 대결전을 가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삶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 비극과 비참하지만, 우리 노동에서 수확한 자신들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대결전을 가할 힘을 가지고 있다.

 

대안이 있고, 그것은 세계 노동계급에 달려 있다

 

자본주의가 세계와 인류에게 가할 수 있는 파괴에 점점 더 다가갈 때, 전투적인 국제주의자로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잃고 최종 붕괴를 기다린다고 말하는 비관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노동계급이 투쟁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이 택한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이는 증가하는 반대의 증거를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경로의 결과는 정치 활동으로부터의 후퇴이거나, 더 나쁘게는 사회민주주의, 스탈린주의 또는 트로츠키주의와 일부 평화주의적 자유주의자들과 같은 부르주아 정치 운동에서 피난처를 찾는 것인데, 이들은 모두 대대적인 계급운동의 부재를 부르주아지 계급지배와 임금노동의 착취에 대한 타협과 지지를 위한 핑계로 사용한다. 이러한 경향은 또한 비판적으로 모두 제국주의 권력을 지지하거나 전쟁을 끝내야 하는 세력으로 노동계급을 보지 않고 대신 우크라이나와 같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제국주의 국가 간의 외교적인 해결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상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곳의 노동자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적 경제 위기는 그들에게 전쟁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의 실질 임금 하락이 전 세계 수억 명의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이미 우리는 노동계급이 우리에게 비참함과 떨어지는 생활수준만을 제공하는 체제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초기의 징후를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 7월 이후 거의 10만 명의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 직전에 있었는데, 파업을 피하고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국가와 노동조합 형태의 하수인들에 의해서 저지되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행동을 취하게 하거나 때로는 와일드 캣(비공인) 파업을 벌이기도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란 노동자들은 악랄한 국가 탄압과 맞서 싸우면서 와일드 캣 파업을 하고 노동자평의회 구성을 요구하는 독립 조직을 향한 특별한 행동을 해왔다. 에콰도르의 노동자는 전국적인 파업으로 국가를 마비시키고 정부가 에너지 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노동조합만이 노동자들이 더 나아가는 것을 막았다. 미국 제국주의의 착취 공장인 아이티에서 노동자들은 미국이 지원하는 또 다른 독재 정권에 맞서 파업과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 짧은 문서에 기록하기에는 너무 많은 다른 파업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민족주의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생활 수준의 급격한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배달 노동자들이 와일드 캣 파업에 참여하고 자신의 투쟁을 조직함으로써 파업과 시위에 대한 전시 금지를 무시하고 있다.

 

우리는 대대적인 계급운동 부활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시기를 살고 있다. 코뮤니스트로서 우리는 이 운동에 참여하고, 계급이 체제의 공격에 대응하고, 우리의 생활수준에 대한 공격을 모든 국가의 전쟁 경제에 연결하고, 더 넓은 노동계급이 국제주의적 전망을 갖추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계획을 시작했으며, (파업 위원회, 대중총회, 노동자평의회의 창설을 통해) 계급의 독립 조직을 위해 싸우고,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을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 지역과 국가에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출범했으며 더 많은 위원회가 준비 중이다.

 

우리는 세계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길고 깊은 세계적 위기의 끔찍한 결과에 직면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인류에 대한 위협이다. 노동계급의 무급 노동에서 파생된 소수의 이윤은 역사의 문제일 뿐이다. 세계 노동계급은 그것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로 대체할 때이다. 앞으로 펼쳐질 투쟁 속에서 함께 모여 혁명적 강령을 정립하는 것은 장기적이고 더 큰 그림을 숙고해 온 소수 혁명가의 책임이다. 어떠한 계급운동이라도 계급이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조직을 건설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피를 요구하는 전체 체제를 폐지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조직은 국제적이어야 하며, 자본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계급 없는 코뮤니스트 사회를 이루기 위한 투쟁에서 타협 없이 싸워야 한다. 그것은 결코 계급 위에 있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되며, 대신 우리의 투쟁을 안내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은 이러한 목표를 향해 싸우는 데 전념하는 조직 중 하나이다.

 

이 체제는 벼랑 끝으로 향하고 있다. 문제는 노동계급과 나머지 인류가 그것을 따라갈 것인가이다. 지금은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든 수준에서 조직할 때이다.

 

2022년 10월 21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10-22/russia-s-annexations-in-ukraine-are-another-step-towards-global-imperialist-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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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ICC는 왜 자본주의 해체 개념의 타당성을 방어하는가?

ICC는 왜 자본주의 해체 개념의 타당성을 방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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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프랑스의 온라인 공개회의에서 "자본주의 해체의 심화, 인류에 대한 위험 및 프롤레타리아트의 책임"에 관해 몇몇 참가자들은 ICC가 개발하고 방어하는 자본주의 해체 개념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회의에서 표명된 반대에 대한 우리의 답변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계속해서 토론하고자 한다.

 

다양한 비판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공식화된 주요 비판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비판 : 맑스주의 전통에 없는 혁신이라는 것이다. "맑스주의가 시작된 이래, ICC 이전에는 「코뮤니스트 연맹」도, 제3 인터내셔널도, 과거나 현재 코뮤니스트좌파 그 어떤 조직도, 자본주의의 해체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늘날 ICC 외에는 그 이론을 고수하고 있는 조직은 없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쇠퇴라는 틀이 현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할 때 왜 맑스주의와 관련된 이러한 혁신인가?”

 

두 번째 비판: 역사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 "ICC는 해체의 국면이 부르주아지나 프롤레타리아트 중 그 어느 쪽도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 한편으로 세계전쟁, 다른 한편으로 세계혁명-에 대해 부르주아지나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이 대응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회의 기본 계급 간의 교착 상태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가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할 만큼 충분히 의식이 있어야 하지만, 세계혁명에 대한 자신의 전망을 제시하기에는 의식이 불충분해 보인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어려움은 이러한 해체 국면에 자본주의의 침몰로 이끄는 스탈린주의가 붕괴한 시기에 촉발된 코뮤니스트 반대 운동으로 가중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도정에서 주관적인 요소들에 그러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이 아닌가?“

 

세 번째 비판: 동어반복 비전과 결합한 현상학적 접근법. “ICC는 세계에서 발생하는 재난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이를 현상학적 접근법을 채택하여 자본주의의 해체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한다. 이것은 해체를 사건으로 설명하고 사건을 해체로 설명하는 현시기의 동어반복적 시각으로 귀결되며, 결국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허용하지 않는다."

 

맑스주의 전통에 없는 혁신인가?

 

자본주의는 흥할 때나 쇠할 때나, 각기 다른 역사적 단계를 거쳤다. 보기를 들어, 자본주의가 쇠퇴기로 진입을 예고한 제국주의 단계의 경우, 이는 사실이다.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제국주의의 개념이 이론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레닌과 룩셈부르크와 같은 당대의 혁명가들이 자본주의의 삶에서 이 새로운 국면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맑스주의의 과학적 방법에 확고히 의존하는 것을 통해서였다.

 

실제로 맑스주의, 즉 과학적 사회주의의 방식이 항상 움직이는 현실을 이해해야 할 때 불변의 도그마에 갇혀서는 안 된다. 게다가 맑스와 엥겔스는 1872년 독일어로 재인쇄한 「코뮤니스트 선언」 서문에서 알 수 있듯이, 필요한 경우에는 수정하여, 항상 불충분하거나 구시대적인 입장을 발전시키고 풍부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선언문 자체가 선언하듯이, “이러한 원칙의 실제 적용은 모든 곳에서 그리고 항상 그 순간의 역사적 조건에 의존한다. [...] 지난 25년 동안의 대규모 산업의 엄청난 진보와 노동계급의 당 조직의 병행적 발전에 직면하여, 실천적 경험에 직면하여, 2월 혁명의 첫 번째,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리 코뮌 전체에서, 처음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두 달 동안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 강령은 여러 곳에서 일시적인 관심사에 머물렀다.“

 

이는 또한 룩셈부르크가 민족 문제에 대해 그 당시에 노동자 운동이 방어한 입장에 맞서 싸웠을 때의 태도였다: “그가 말하고 매우 분명하게 증명했듯이, 1890년에 철두철미하게 방어하기 위해 맑스가 1848년에 폴란드 독립을 지지한 것은 사회 현실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맑스주의 자체를 변형시키고 현실을 연구하는 살아있는 방법을, 건조한 준 종교적 교의로 바꾸는 것이었다.”[1] 우리는 또한 1920년대 이후 코뮤니스트좌파가 러시아 혁명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퇴행으로 야기된 새로운 문제들, 특히 과도기 국가의 문제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와의 관계에 대해 행한 모든 비판적인 일을 언급할 수 있다.

 

반면 맑스주의와 관련된 진정한 "혁신"은 반(反)혁명 와중에 보르디가가 정교하게 기술한 "1848년 이후 맑스주의의 불변" 이론과 「국제코뮤니스당(ICP)」의 보르디가주의자들. 그리고 이 개념은 역사 유물론의 시작에서부터 존재하지만,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의 데이먼주의자들의 모호한 태도와 심지어 자본주의의 쇠퇴의 개념에 대한 보르디가주의자들의 순수하고 단순한 거부에 의해서도 채택되고 실행된다![2] 게다가 이러한 코뮤니스트좌파의 흐름인 자본주의의 해체의 개념을 비(非)맑스주의로 간주하여 거부하게 만든 것은 맑스주의와 관련된 이와 같은 "혁신"이다.

 

 

역사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

 

봉건주의가 쇠퇴하던 시기에 부르주아지는 고유한 생산 방식과 교환 수단을 가진 착취계급으로 마침내 정치권력을 장악한, 계급 이익에 대한 소외된 의식의 기반이 된 봉건 사회에서 성장하는 경제력에 자연스럽게 의존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력만을 가진 착취당하는 계급으로서 사회의 어떤 경제력에도 의존할 수 없다.; 따라서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계급 사이 세력 관계의 필수적인 요소를 구성하는 성숙함, 계급의식과 조직적 능력의 발전에 의존할 수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코뮤니즘에 의해서 대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이 그 쇠퇴기로 자본주의 생산 방식으로의 진입과 함께 충족되기 때문에, 세계 코뮤니스트혁명의 미래는 오로지 주관적인 조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식의 깊고 넓은 성숙에 달려있다. 이것이 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의 의식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이 필수적인 바로 그 이유다.

 

이러한 측면은 특히 제1차 세계전쟁의 발발로 이어진 사건들에 의해 잘 드러난다. 1914년 7월, 경쟁 제국주의 블록들은 서로 군사적으로 맞설 준비가 되어있었다. 부르주아지에 남은 유일한 불확실성은 전쟁에 대한 노동계급의 태도였다.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국기의 뒤에서 단지 총알받이로 쓰이는 것을 허락할 것인가? 이러한 불확실성은 1914년 8월 4일 사회민주주의의 기회주의 세력이 전쟁 채권에 찬성 투표함으로써 부르주아지 진영으로 확실히 넘어감으로써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배신행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머리에 일격을 가하여,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이라는 계급의 적에게 최근에 넘어갔던 이전의 노동계급 조직들의 중요한 도움과 함께. 제1차 세계 제국주의 전쟁에 프롤레타리아트를 동원하기 위하여 부르주아지가 즉각적으로 착취했던 계급의식의 저하로 이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1914년 마침내 부르주아지가 제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도록 허용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에 대한 타격이었다. 스탈린주의의 붕괴에 따른 반공 캠페인의 타격과 더불어, 1980년대 같이 계급의식이 취약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세계 코뮤니스트혁명에 대한 자신들의 역사적 전망을 하는 데 방해가 되었고, 이는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해체의 단계로 진입하게 했다. 다시 말해, 노동계급의 전망 부재는 이제 사회 전체의 전망 부재를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자본주의의 쇠퇴기에 주관적 요인의 중심성과 결정적 특징을 보여준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과는 거리가 먼, 역사의 도정에서 주관적 요소에 주어진 중요성은 그것에 대한 진정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접근을 구성한다. 모든 일관된 유물론자들이 그렇듯이, 맑스에게 있어서 계급의식은 물질적인 힘이다. 코뮤니스트혁명은 의식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혁명이다: “코뮤니즘은 이전의 모든 운동과는 달리, 생산과 교역의 모든 초기 관계의 기초를 뒤엎고, 처음으로 모든 자연적 전제를 의식적으로 현존하는 사람들의 피조물로 취급하고, 그들의 본성을 제거하고, 통일된 개인들의 힘에 복종시킨다.”[3]

 

현상학적 접근법과 동어반복적 비전이 결합한?

 

 

쇠퇴하는 봉건 사회는 해체의 요소나 현상의 발생으로 특징지어졌는데, 그중 30년 전쟁을 장식한 잔혹 행위와 도덕적 쇠퇴가 완벽한 보기이다. 즉, 봉건제를 쇠퇴기로 가라앉게 한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진행되었는데,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경제적 역동성은 사회 전체가 해체의 국면으로 가라앉는 것을 막았다.

 

그 상황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매우 다르다. 성장하는 경제력이 사회를 쇠퇴로 몰아가는 불가피한 상황에 균형을 맞추는 새로운 착취 계급의 성장을 보여주지 않으며, 기존 생산양식을 대체할 새로운 생산양식의 발전도 보여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구사회의 잿더미에서 나와야 하는 새로운 사회, 코뮤니즘이 바로 “현 상태를 폐지하는 진정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코뮤니즘은 오랜 자본주의 생산 관계가 파괴되는 것에 기초할 때만 세울 수 있다. 이러한 “현 상태를 폐지하는 운동”이 새로운 사회의 전달자인 계급에 의해 실현되지 않는 한, 쇠퇴기가 진행될수록 축적되고 증폭되는 해체의 요소들은 그들의 표현을 제한할 수 있는 어떤 적대적인 힘도 사회에서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죽어가는 자본주의로부터 이어받을 수 있는 생산 방식이 없다면 사회는 서서히 부패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쇠퇴를 분석하기 위한 이러한 일반적인 틀로 무장한 채, 우리는 1980년대 이후 발생한 현상을 관찰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그 자체로" 관찰한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의 과학적 방법에 확고하게 의존하면서 관찰했다. 동구권의 해체를 블록 정치의 해체로 규정할 수 있게 한 것은 현상학적인 것이 아닌, 새로운 세계의 분쟁을 향한 자본주의의 행진을 일시적이고 물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이러한 접근이었다. 마찬가지로 스탈린주의의 붕괴를 1980년대 내내 발전해 온 자본주의 해체 진전의 결정적 순간으로 분석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틀이었다. 이 새로운 국면의 시작은 바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중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현상에 직면한 혁명가들의 그것과 같은 접근법을 채택했고, 레닌이 말했듯이, "진보적 부르주아의 시대"가 즉, 자본주의의 쇠퇴기에 접어든 "반동적 부르주아의 시대"에 자리를 내준 "전쟁과 혁명의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고 인식했다.[4]

 

그러므로 우리에게 반대한 것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삶에서 이러한 궁극적인 국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해체로부터의 불가분의 현상의 축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의 두 기본 계급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다. 여기서 우리의 방법론적 출발점은 환경에 의해 축적된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역사의 원동력”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계급투쟁과 그 동력에 의존하는 맑스주의와 일치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또한 자본주의의 해체가 "자신을 부양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특히 자본주의의 해체(자연적인 지구상의 환경과 보건의료 연구 시스템의 파괴 증가, "마스크 전쟁"과 "백신 전쟁"으로 절정에 달한 세계 부르주아 내에서 "각자도생"으로 일반화된)의 산물인 코로나19 대유행 현상과 역시 이와 같은 해체(경제 위기로의 침몰, 부채로의 도피 가속화, 제국주의 긴장 증가)의 경우이다.[5] 그러므로 현실에 대한 이러한 접근법은 동어반복이 아니라 변증법적 유물론의 방법론적 엄밀함을 채택한 것이다.

 

우리는 독자들이 특히 「국제 평론」 117호에 실린 맑스주의적 해체 개념의 뿌리에 관한 기사를 읽고 계속해서 이 주제에 대해 숙고할 것을 권한다. 또한 토론을 계속하기 위해 우리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도 환영한다.

 

2021년 12월 29일

DM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주>

 

[1] 「국제 평론」 157호, 동구권이 부상한 후 100년 만에 국가에 관한 질문 (국제코뮤니스트흐름)

[2] 「국제 평론」 118호 참조, 1-쇠퇴 이론은 역사 유물론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1부 (국제코뮤니스트흐름)

[3] 맑스와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1846

[4] 「국제 평론」 121호 참조, 4-역사 유물론의 핵심인 쇠퇴 이론 (국제코뮤니스트흐름)

[5] 코로나19에 대한 특별한 기사 참조 : 진정한 살인자는 자본주의이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

 

<출처>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131/why-does-icc-defend-validity-concept-decomposition-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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