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관련 두 개의 헌법소원
87년 항쟁의 덕분에 겨우 이 사회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시대로 돌입할 당시, 분분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헌법과 관련된 최고의 유권해석을 할 수 있는 기관으로 헌법재판소가 설치되었다. 그로부터 20년 세월이 흐르면서 헌법재판소, 탈도 많고 말도 많았지만 그 기관이 가지는 위치로 인하여 오늘도 뻑하면 헌법재판소로 사람들이 달려 간다.
헌법재판소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없으니까 대충 여기까지 맛만 보고, 암튼 재미있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까지 헌법재판소가 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이 흔하게 벌어진다는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참여에 의해 논의되고 입법에 의해 결정되며 행정부에 의해 집행되어야 할 사안들이 각 이해당사자들에 의해 충돌된다 싶으면 헌법재판소로 일임되는 현상이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로스쿨법과 관련해 또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1월 8일, "서울지역 법대학생회연석회의(서법연)"이라는 학생들의 연대조직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제정 로스쿨법이 평등권과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고 법대학생들의 신뢰이익을 침해했다는 이유에서이다.
학생들의 관점은 명확하다. 즉, "로스쿨은 사회 양극화를 확산시키며 대학교육을 황폐화시키고 사법시험의 폐해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 교육관료, 법조기득권세력, 그리고 대학당국이 이들을 거리에 나서게 했고 헌법소원을 하도록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과연 이러한 헌법소원이 적실한 것인가 하는 거다. 로스쿨이 되었던 뭐가 되었던 간에 제도의 변경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은 바로 학생들이다. 또한 신림동 그 골짜기에 처박혀 법전을 들이 파고 있는 사시생들이다. 더 나가서 사법서비스의 이용자가 되는 시민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의견은 로스쿨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완전히 배제되어왔다. 로스쿨법 제정과정에서 곁다리로 끼어들었던 일부 시민단체 역시 주제에 걸맞지 않게 정작 "시민"들의 의사를 묻는 과정은 생략해버렸다.
만일 로스쿨과 관련한 사회적 공론의 장이 이처럼 제도변경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의사를 물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로스쿨과 관련한 논의의 구조 자체가 "사법개혁"의 한 축으로서만이 아니라 "교육개혁"의 차원, 더 나가서는 "문화개혁"의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면서 좀 더 다른 양상이 벌어질 수 있었다. 이 과정을 거쳤더라면 법조기득권세력의 밥그릇 사수투쟁을 보다 쉽게 무력화시킬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로스쿨과 관련해 사회적 공론의 장은 벌어지지 못했고, 오히려 공론으로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풍기면서 정관계와 법조계, 학계는 자기들만의 철옹성 안에서 "개혁"질을 했다. 그리고 오늘날 학생들은 헌법소원을 제기한다.
학생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하고 있는 동안 '한국공법학회' 역시 헌법소원을 준비하고 있단다. 한국 법학계에서 '한국공법학회'가 가지고 있는 비중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이라면 이들이 준비하는 헌법소원이 상당한 파장을 가져올 것이라는 점도 예측할 수 있다. '애들' 수준에서 이루어진 '서법연'의 헌법소원과는 중량에서부터 차이가 있는 거다.
공법학회가 준비하고 있는 헌법소원의 내용은 학생들의 헌법소원과 완전히 다르다. 공법학회는 현행 로스쿨법이 정하고 있는 총정원제와 권역별 할당, 인가기준 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단다. 비교하자면, 학생들은 로스쿨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고 공법학회는 대학들의 밥그릇을 제한하는 로스쿨법의 일부 규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법학계에 수다한 학회가 존재하지만 모두 공법학회에는 새발의 피다. 그만큼 법학계에서 공법학회가 가지고 있는 힘은 막강하다. 더구나 이 조직 안에 있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은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이거나 최소한 학교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절대 다수가 "교수님"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이 헌법소원을 준비하기 전에 자기 학교 구성원들과 토론 한 번 해봤을까? 아니, 이분들만이 아니라 로스쿨 준비하고 있다는 각 학교들은 과연 자기 학교에서 로스쿨에 관한 얼마나 열린 자세로 토론을 해봤을까? 전국법대학장협의회와 법학교수회 소속 학교 중 로스쿨 인가를 준비하던 37개 학교가 인가신청서를 교육부 대신 법학교수회에 제출하기로 결의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이러한 정황과 사정에 대해 학교 학생들과 이야기라도 해본 적이 있을까?
예를 들면, 각 대학에는 기성회라는 것이 존재한다. 물론 기성회 총회를 개최한 학교가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몇 해 전에 거의 대부분의 사립대학교들은 아예 등록금과 기성회비를 합쳐서 징수하는 만행에 동참한 적이 있다. 학부모들로 이루어지는 기성회는 돈만 내면 되는 조직이다. 당연히 학부모들은 자신이 자녀가 다니는 대학의 기성회원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로스쿨 인가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당연히 기성회에 그 의견을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해당 학교를 다니고 있는 전교생들의 등록금과 기성회비 등이 로스쿨이라는 단일한 분야에 집중되므로 다른 학생들에게 돌아가야할 등록금환원율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권리의무와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이므로 구성원들의 의사를 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성회는 커녕 전교생을 대상으로 로스쿨에 대한 토론회 한 번 열었다는 학교는 본 적이 없다. 이게 소위 대학교육정상화를 부르짖으며 대학교육의 민주성과 자주성을 소리높여 외치는 한국 대학의 실상이다. 서울 소재 모 대학은 대학운영과 관련하여 법인과 학교, 노조가 3파전을 벌이고 있는데, 이 다툼의 와중에 양념처럼 로스쿨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결국 로스쿨에 대해 학교 구성원들조차 합의하지 못하는 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는 끝내 로스쿨인가신청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면서 대학교수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공법학회에서 헌법소원을 한단다. 그것도 대학이 알아서 밥그릇 크기를 잴 테니 국가가 개입하지 말라고 하면서 말이다. 도대체 이게 헌법소원 감인가?
헌법소원 하기 전에 대학교수들, 과연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사회의 법학교육을 망친 주범들이 누군지 반성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신림동 고시촌 앞 큰 길가에 주루룩 도열해서 "우리 때문에 여러분들이 고생을 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고시생들에게 사과라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한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추앙받고 원로라고 대접받는 사람들이라면, 더구나 '정의'라는 가치를 가르치는 법학교수들이라면 냉큼 헌법재판소로 쪼르르 달려가기 전에 시궁창에 빠져버린 법학교육의 현실이 결국 자신들의 작품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겠는가?
누군가의 일생이 걸려있는 문제를 전적으로 자기 밥그릇에 맞춰 재단하는 이 모습, 여간 흉해보이지 않는다. 공법학회는 헌법소원을 운운하기 전에 최소한 '서법연' 학생들과 토론이라도 좀 해보기 바란다. 그들부터 납득시키는 자세를 보이고 난 후 헌법소원을 하던지 교육부 앞 단식투쟁을 하던지 해야할 일이다. 도대체 이 사람들의 이런 행위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질 않는다. 교육자의 풍모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겠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