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지지 시민단체의 뒤통수
인터넷 '시사 IN'의 이번호 특집은 로스쿨이다. 로스쿨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쏙 뺀채 정치인들과 교육관료들의 짜고 치는 고스톱으로 정원논란만 요란했던 로스쿨 논의에 대해 이번 기사는 일침을 놓고 있다. 스릴 만점이었던 정원 줄다리기에 대한 내막을 확인하고 싶으시면 이 기사를 한 번 일독하실만 하다.
행인의 포스팅을 쭉 읽어보신 분들은 다들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시사 IN'은 정치인들의 너구리같은 밀고 댕기기 신공에 대해 까발리는 한편, 대학 서열화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특집기사는 또 하나의 꼭지를 마련하고 있는데, 제목이 "뒤통수 맞고서야 아뿔사!"란다.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제도도입에 우선 신경을 썼던 시민단체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주 내용이다. 대상이 된 단체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인 한상희 교수는 기자가 '애프터 서비스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하자 "책임론이 나와도 할 말이 없다. 더한 것도 자임해야 할 판이다"라고 했단다. 불쌍한 우리 대장님 ㅠㅠ...
개인적으로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 대해선 애증이 깊다. 기자도 말한 것처럼 그들의 충정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로스쿨 도입될 동안에는 입닥치고 앉아서 뒤쪽으로는 계산기 두드리고 몇 천억씩 쏟아붓던 대학당국의 밥그릇 경쟁과는 달리, 이 동네 사람들은 그나마 현실 사법의 왜곡된 구조를 어떻게 해서든지 타개하려는 취지에서 로스쿨을 주장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분들에 대한 비판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다른 기회에 적절하게 비판할 수 있을 것이고, 비판을 위한 근거는 이미 넘치고 쎘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펴낸 "우리가 로스쿨을 말하는 이유 -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라는 책은 이들의 원죄를 영원히 증명할 증거가 될 것이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줄이기로 하고.
'시사 IN'이 의욕적으로 시민단체의 헛발질에 대해서 기사를 기획한 것은 좋았으나 사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다. 시민사회에서 소위 '로스쿨 푸싱'의 강도를 따져보면 사법감시센터는 이론제공 정도의 역할을 한 정도니까. 실제 장외로 물자와 인력을 동원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단체는 '새사회연대' 였다. "올바른 로스쿨~" 어쩌구 하는 연합단체가 전면에 드러나 있으나 실상 그 내부를 조직하고 움직였던 단위는 새사회연대였다.
지난 7월 3일, 국회에서 로스쿨 법이 통과하자마자 새사회연대는 의욕적으로 "올바른 로스쿨 전국순회 설명회"를 개최했다. 9월 4일부터 진행된 이 행사는 전국을 돌며 유수의 대학에서 강연형태로 진행되었다. 이 순회설명회를 위해 새사회연대는 자료집까지 만들었는데, 그 제목이 "국민이 로스쿨의 주인입니다"였다.
이름도 거창한 이 자료집에서 새사회연대는 로스쿨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일부 기득권을 가진 법조계로부터 많은 저항과 반발이 있었고, 새사회연대와 로스쿨법비대위 중심의 전국 시민단체가 지속적으로 로스쿨법의 심의과정에 국민의 요구를 불어넣고 반영시키기 위해 오랜 입법운동을 벌여왔"다고 한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로스쿨법은 이러한 모든 변화로 가는 문을 연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질문 한 번 하자. 도대체 그 국민이 누군가? 국민의 요구가 뭐였나? 로스쿨인가? 아니면 '올바른' 로스쿨인가? 미안하지만 로스쿨 자체에 대한 논의를 완전히 탈각시킨 채 새사회연대가 '올바른' 로스쿨 운운하면서 로스쿨을 마치 기정 사실인 것처럼 상정하고 운동을 한 이유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이해가 되질 않는다.
새사회연대의 착각은 계속된다. 로스쿨법 통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지금 국민과 사람이 중심이 되고 다양성과 상상력이 존중되며 민주주의와 법치가 자유롭게 활개치는 인권사회로 한 걸음 내디었"단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로스쿨법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는 대학과 교수가 중심이 되어 밥그릇과 대학서열화가 존중되며 민주주의와 법치로부터 '국민'은 소외되는 기막힌 사회로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새사회연대는 이런 문제를 발생시킨 로스쿨을 두고 "한국형 로스쿨" 운운한다.
웃기는 것은 법 제정되고 로스쿨 시행령도 나오기 전에 교육부 관계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법무부 관계자도 아니며 더더욱이 대학관계자도 아닌 새사회연대의 대표가 이런 자료집을 들고 각 대학을 순회하며 설명회를 개최했다는 거다. 로스쿨 전도사의 역할을 선도적으로 수행한 것인데, 이러한 경과만 보면 마치 로스쿨법은 새사회연대가 다 만든 것처럼 여겨질 정도다. '시사 IN' 기자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를 언급하기 전에 새사회연대부터 살펴봤어야 한다.
로스쿨 설명회를 하면서 뼉다구만 앙상하게 만들어 놓은 법안설명회를 한 것은 그런대로 넘어가자. 그 내용 일일이 다 따지면 읽는 사람 거의 미쳐버릴 테니까. 다만, 로스쿨법을 찬양하면서 새사회연대가 자료집에 언급한 것들 중 몇 가지는 짚어야겠다.
일단 "사회가 요구하는 법조인은 책속의 법률지식을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현실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이라는 새사회연대의 관점이다. 이건 전형적으로 현재 법조인을 비판할 때 너도 나도 써먹던 비판이다. 그런데 이게 진짜 문제인가?
현실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뭐가 필요할까? 그것도 법적으로 말이다. 당연히 법률지식이다. 그거 없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즉 법률(현실)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법적지식이 충만해야 한다. 여기서 '잘'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중요한데, 이 '잘'은 단지 절차를 매끄럽게 한다는 의미만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고 법현실이 만족하는 법률적 문제해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법조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각은 바로 이 부분에서 삐딱해진다. 휠체어를 탄 재벌총수들은 집행유예를 선물받지만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의문이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판사에게 석궁을 들이댔다는 것만으로 어떤 교수는 구형 10년에 선고 4년이 떨어진다. 이 과정에서 판사나 검사는 절차적으로 문제를 '잘 해결'했다. 국가보안법위반사범에 대해선 엄청나게 긴 시간을 두고 집요하게 수사를 하는 검찰이 삼성 비자금에 대해선 난리가 났는데도 눈치만 보고 있다. '떡찰'의 전형적 모습이다. 어쨌건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정해진 대로, 검찰법에 정해진 대로 '잘'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으로 보면 아무리 이해하려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거다. 이건 결코 '잘 해결'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로 벌어진다. 그래서 나온 고금의 명언이 "무전유죄 유전무죄"다.
그렇다면 로스쿨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이건 로스쿨이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다. 초중등 12년 교육과정에서 얼마나 전인적 교육이 이루어지느냐와 대학 4년 간 얼마나 지적으로 풍부한 인성의 발전이 이루어지느냐에 달린 문제다. 요즘 세간에 회자되는 '인문학'이라는 것의 도움이 없으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신기루다. 절차를 '잘' 해결하는 것은 굳이 학문과정에서 완결성을 요구할 필요가 없다. 고등교육과정에서는 그 절차가 어떻게 이루어지며 거기에 어떤 정도의 이해를 해야하는가 정도만 교육되면 된다. 나머지는 현장에서 스스로 갈고 닦을 일이다.
이 사람들이 착각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학교가 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처럼 떠드는 거다. 다시 말하면 마치 로스쿨을 하면 양질의 변호사가 완전한 형태로 배출될 것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고, 하다못해 로스쿨 원조인 미국조차도 로스쿨 자체가 뛰어난 변호사를 배출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뛰어난 변호사는 스스로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지 교육이 이를 완전히 담보할 수는 없다. 이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의 사기다.
다음으로 학부교육의 정상화 및 내실화 부분. 새사회연대 자료집에 따르면 로스쿨을 도입함으로 인해 "취업 등의 문제로 학생들에게 도외시되었던 인문학과나 사회계열의 학과들도 새로운 부흥의 기회"를 갖게 되고, 따라서 "곧 우리 사회의 기초학문은 든든해지고 공교육이 내실화되는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건 일전에 행인이 포스팅한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로스쿨 도입으로 공교육 정상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던 민교협 일부 교수분들과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가 펴낸 "우리가 로스쿨을 말하는 이유" 중에는 "법률교과서뿐 아니라 데카르트와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고도 법률가가 될 수 있는 것, 도서관이나 고시원이 아니라 사회봉사현장이나 취미생활공간에서 대학과정을 보내고도 될 수 있는 것"이 로스쿨을 만드는 취지 중 하나라고 하는 글이 있다. 새사회연대나 민교협이나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나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로스쿨이 들어선다고 해서 이런 바램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 적나라한 사실이 바로 지난달 말에 교육부에 의해 확정된 로스쿨인가기준이다. 인가기준에 따르면 전체점수 1000점 만점에 입학전형관련 점수가 60점으로 6%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부항목을 보면 입학전형계획의 공정성과 타당성이 20점, 교육목표와 특성화 목표의 반영정도가 10점으로 입학전형관련 점수의 절반을 차지한다.
각 대학 로스쿨은 특성화전략을 갖추고 이에 해당하는 학생들을 선발할 수도 있는데, 예를 들어 성균관대학처럼 기업법무를 중심으로 교과과정을 짜는 곳에서는 주로 경영학이나 경제학과 출신의 학생들이 우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로스쿨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가고싶은 로스쿨의 특성화전략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고, 따라서 학부전공을 택하더라도 이에 상응하는 계획에 맞추어야 한다. 게다가 로스쿨의 원래 취지 상 학부의 학점은 상당한 비율로 입학전형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슨 대학교육 정상화며 공교육 정상화가 가능하겠나? 인문학이 부흥한다고? 철학과 학생이 전공공부하는 이유가 철학의 학문부흥을 위해서가 아니라 로스쿨 진학을 위해서인데 철학이라는 학문분야가 부흥하나? 도대체 이게 무슨 논리일까? 사회봉사현장이나 취미생활공간에서 대학과정을 보낸 학생들, 로스쿨 들어가기 하늘의 별따기가 된다. 게다가 현재 로스쿨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는 학교들을 보면 각 단과대, 즉 각 대학 법대에 있는 동아리들 공간마저 없애려는 학교들이 있다. 실상은 이런데 무슨 인문학의 부흥을 운운하나?
물론 새사회연대를 비롯한 각 단체들이라고 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바른' 로스쿨이 되면 현재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고 자신들이 주장했던 바 대로 대학이 변했을 것이라고 하는 거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영양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로스쿨이라고 해서 문제가 달라질 수 있었다는 것을 실증하지도 못한다. 어차피 로스쿨은 로스쿨이다. 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이 학부과정에서 쇼펜하우어를 읽었는지는 몰라도 로스쿨에서 쇼펜하우어를 읽을 시간은 없다. 한국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마지막으로 새사회연대의 자료집에 나온 문제점 하나만 짚어보자. 로스쿨의 특성화가 대학을 분화하고 지역을 변화시킨단다.
"대학은 그동안 사법시험 합격자 배출 현황과 졸업생들의 사회적 지위를 중심으로 명문/비명문으로 서열화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평가기준이 되던 사법시험제도가 폐지되고 로스쿨이 설립되는 각 대학은 특정분야에 법률 전문가를 양성하도록 특성화 계획을 잡고 있어 모든 대학이 새로운 출발선에 나란히 서서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김진명 장편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수준이다. 뭐가 "새로운 출발선에 나란히 서서 도약을 준비하고" 있나? 기본적으로 로스쿨법이 통과되는 그 때부터 이미 로스쿨을 유치할 수 있는 학교와 그럴 여력이 없는 학교는 명문/비명문으로 서열화되었다. 이제 유치전에서 승리하는 학교와 탈락하는 학교는 또다시 명문/비명문으로 갈리게 된다. 거기 더해서 정원을 150명(항간에는 200명까지 늘린다는 소문도 돈다) 꽉 채워 인가받는 학교와 50명 겨우 받아 운영하는 학교간의 서열도 나뉜다. 어디 그뿐이랴? 변호사자격시험 합격률이 높은 학교와 낮은 학교 간에 서열도 갈리게 될 것이다. "출발선에 나란히"?
"이제 대학들은 지역사회의 특성을 잘 살려내고, 지역의 인재는 물론 전국 각지의 인재들이 특성화를 위해 전국적인 대이동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이제 국민은 새로운 기준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법조인 교육과 배출역량을 갖추었는지로 대학을 평가하게 됩니다. 대학은 지역발전을 이끌어내고 지역민들의 법률서비스 향상에 일조하는 로스쿨을 설립해야 할 사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예 국민교육헌장을 쓰고 있다. 다른 건 제하고 뒷쪽에 있는 것만 가지고 질문을 하자. 대학이 로스쿨 유치하는 것과 지역발전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나? 도대체 영남대학 로스쿨이 대구지역에 어떤 발전을 일구어낼 것인가?
새사회연대는 이에 대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수립 여하에 따라 무변촌 문제 해결을 위해 지방자치단체 시군구에서 공공변호사로 활동하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그렇게 되나?
물론 당사자가 공공변호사를 지원해서 무변촌 법률서비스활동을 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가고자할 마음이 없는 당사자에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의무적으로 공공변호사 활동을 하라고 지정할 수는 없다. 그가 로스쿨 다니면서 장학금 받고 다녔다 하더라도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순간 바로 위헌이다. 도대체 새사회연대는 뭘 믿고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시사 IN' 기자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에게 했던 질문은 새사회연대에도 유효하다. '애프터 서비스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로스쿨 지지 시민단체들은 교육부와 법조기득권에 의해 뒤통수를 맞은 것이 아니다. 그들의 뒤통수는 자기들 스스로가 때린 거다. 그나마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자신들의 전술적 오류에 대해서 통감하는 모습이나마 보인다. 민교협은 로스쿨법 제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애저녁에 입을 다물었고, 새사회연대는 아직도 '올바른 로스쿨' 운운하며 떠들고 있다. 지 뒤통수를 지가 갈겨놓고 누가 때렸냐고 두리번거리는 꼴이다.
일이 많아서 며칠 블질을 못 했는데 오~ 역시 행인님 대단하세요 ^^ 핵나라당 등등 보고 그냥기겁했습니다 쿨럭; 음... 그러고보니 일전에 포스팅 한 글 중에 하나 생각나서 여쭙는 건데... 사회당에 대해서 비판적이신거 같아서요 ^^; 봐도 잘 모르니 쿨럭; 음... 제가 또 학교 농활 주체라서 통일농업 이야기 들은거 같은데, 조만간 정리해서 올리면 가르침을 한 번 주셔요 ^^*
에밀리오/ 사회당은 제가 뭐 비판하고 말고 할 일도 없습니다. 항상 바쁜 에밀리오님, 홧팅이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