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노무현 VS 박근혜
산오리님의 [회창할배를 보고...] 에 관련된 글.
조갑제의 예언이 맞아 떨어진 건지, 아님 조갑제랑 회창옹이 짠 건지는 몰겠지만, 연초에 갑제 아찌가 내놨던 말이 각본처럼 굴러가고 있다. 조갑제는 11월 초까지 대선판을 들여다보다가 11월 중순 경에 이회창이 대선에 출마해야 한다고 했더랬다. 조갑제가 예언을 한 거라면 '조갑제 닷컴' 집어 치우고 미아리 어디에다가 점집을 하나 차리는 것이 갑부될 지름길이겠다. 역시 행동하는 보수, 한국 보수의 두뇌 조갑제는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마저 있었던가 보다. 그러게, 아무나 보수질 하는 것이 아니다.
암튼 회창옹이 전격 출마를 선언함으로써 이번 대선, 무척 재미있게 돌아가게 생겼다. 이명박의 독주를 막을 자 그 누구던가, 이러면서 속칭 '범여권' 주자들 골머리를 싸매고 있던 와중에 등장한 이회창, 순식간에 이곳 저곳의 표를 슬슬 쓸어가고 있다. 당황한 명박, 새벽같이 회창옹의 자택을 방문해 읍소라도 할 예정이었으나 얼굴도 못 보고 회군. 회창옹 가시는 길마다 찬성파와 반대파들이 격돌을 벌이고 있다.
이 와중에 한나라당, 내부적으로 보통 곤혹스러운 처지가 아닌갑다. 이재오가 급기야 최고위원을 사퇴했다. 이명박은 뭐 씹은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고, 전재희는 이회창에게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일을 왜 당신은 모르냐며 천륜까지 끌어대 호통을 치고 있다. 이정도면 난리가 아닌 거다.
그런데, 이 소용돌이의 중심에 한 사람이 고즈넉하게 앉아 여유를 부리고 있으니 다름 아닌 박근혜다. 이명박이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당선되고 난 뒤 이재오가 한참 어깨에 힘주고 목 빳빳하게 쳐 들고 다닐 때, 저거 저러다가 큰 코 다치지 했을 사람 많을 것이다. 박근혜가 누군지 아는 사람은 이런 예측을 쉽게 할 수 있었다.
박근혜, 사실 한국 정치사에서 박근혜만큼 엘리트 정치코스를 밟은 사람이 없다. 영부인이었던 육영수가 문세광에게 저격당한 후 20대의 나이에 어머니 대신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아버지 박정희를 보좌했다. 이건 중요하게 보아야할 대목인데, 현재 한국 정치판에서 20대 내내 정권 최고의 위치에서 정치판을 두루 살피고, 쿠데타와 민주항쟁을 경험하면서 정치판이 돌아가는 면면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박근혜의 정치력은 지난 2004년 탄핵정국 이후 확실하게 부각되었다. 2004년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의 수뇌들은 나라를 살리겠다고 쌀뜨물까지 퍼먹는 퍼포먼스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면치 못할 상황에 처했다. 한나라당은 말 그대로 당 자체가 사라져야할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바로 이 때, 수첩 하나 손에 쥐고 오직 "국가보안법 사수" "사학법 사수" 딱 두 가지만 옹골차게 말하면서 한나라당을 기사회생 시킨 사람이 바로 박근혜다.
2004년 총선에서 분노한 국민들에게 심판받은 한나라당이었건만, 불과 반년만에 한나라당을 보수세력의 확고한 대변인으로 끌어올린 박근혜, 결국 이후 벌어진 각종 선거에서 열우당을 자근자근 씹어가며 한나라당을 회복시켰다. 어떤 정신나간 닌자가 얼굴에 칼자국을 내는 와중에도 "대전은?"이라는 말 한마디로 측근들을 감동시키면서 선거판을 휩쓴 용장의 모습마저 보였던 바가 있다. 바로 그 박근혜, 그가 이번 대선판의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이재오가 최고위원직을 사퇴하는 것은 박근혜의 세력을 이명박에 결합시키지 않고서는 이회창이라는 돌발변수를 제어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적어도 박근혜의 입이 댓발 나오게 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할 때, 이재오는 이 상황에서 백의종군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이명박이 선거에서 깨지더라도 할 말이 있게 된다.
절박한 사정은 이회창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다. 연초 이명박과 박근혜가 시끈벌떡하고 붙었을 때, 회창옹, 은근슬쩍 이명박의 손을 들어주신 바가 있다. 박근혜가 그거 잊고 있을리가 없다. 이회창 입장에서는 박근혜가 공식적으로 자신을 지지해주면 말 그대로 이명박을 확실히 제낄 수 있는 교두보가 마련된다. 그래서 박근혜에게 은근히 추파를 던지고 있으나 아직 박근혜는 표정에 변화가 없다.
회창옹의 가세로 이번 대선이 반공보수 vs 천민자본보수 vs 잡탕 세력의 한 판이 된다고 할 때, 결국 반공보수 vs 천민자본보수의 구도에서 이기는 자가 대권을 거머쥘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서 박근혜가 이회창으로 대별되는 반공보수에 가담하느냐,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천민자본보수에 가담하느냐가 관건이 될 판이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봐도 무서운 박근혜다.
이러니 이번 대선은 결국 "노무현 vs 박근혜"의 구도가 되어버렸다. 정동영과 문국현 사이에서 저울질을 하는 노무현과 이명박과 이회창의 사이에서 저울질하는 박근혜. 아직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고 있는 두 사람의 신경전. 사실 이게 이번 대선의 관전 포인트다. 12월의 결과는 결국 노무현이 손 들어준 사람이 이기느냐 박근혜가 손 들어준 사람이 이기느냐 하는 싸움으로 갈 공산이 크다.
아마, 양진영 모두에서 "비판적 지지" 내지는 "단일화"이야기가 나올지 모르겠다. 한쪽에서는 "이회창 찍으면 정동영 된다"고 난리 치고 다른 한 쪽에서는 "문국현 찍으면 이명박 된다"고 난리치는 요사스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와중에 뜬금없이 "고려연방" 들고나온 권영길 후보, 언론에게 빛 한 번 받아보지 못할 가능성도 꽤 크다. 환장할 노릇이다...
행인님의 [이번 대선은 노무현 VS 박근혜] 에 관련된 글. 정치인들은 흔히 "이거면 이거고 아니면 아니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왠지 묘한 분위기를 흘리며, 이러저러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도록 말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탁월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회창옹이 출마를 선언한 이후 며칠간 침묵을 지키던 박근혜, 지난 12일, 이회창의 출마에 대하여 "정도(正道)가 아니다"라고 발언하였다. 이명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