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으나 마나 집시법
정치적 의사표현을 가장 명확하게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것이 바로 집회와 시위다. 인민들의 정치적 의사를 억압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들을 밖으로 분출하도록 함으로써 사회 내의 다양한 의견을 외현하고 이를 통해 합리적 판단과 선택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헌법 제21조제1항은 집회결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으며, 제2항에서 집회결사는 국가기관이 허가하고 자시고 할 사항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집회와 시위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적 규정을 정한 것이 바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다. 재밌는 것은 헌법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절차적 사항을 규정한 이 집시법이 오히려 헌법의 정신을 위반하고 공권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인민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을 제한하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행법의 독소조항을 근거로 공권력은 집회시위를 지들 멋대로 금지하고, 조중동문을 비롯한 찌라시들은 헌법의 정신은 뒷전으로 쏙 빼놓은 채 시위대에게 법을 지키라고 강요한다.
경찰들은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소위 언론이라고 자칭하는 이 찌라시들은 대체 지들의 직분이 뭔지 알고는 있는 건지 의심스럽다. 현행 집시법의 독소조항이 다분히 위헌적 성격이 강하고, 각 규정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자기들 멋대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찰의 부당함을 이 찌라시들이라고 해서 모르는 바가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사회의 공기를 자처하는 언론사들은, 또는 그 언론사에서 기자질 하며 밥벌어 먹고 사는 기자라는 인간들은 본질적인 부분을 언급하고 이에 대한 비판을 해야할 일이다. 그런데 우째 이 찌라시에서 밥빌어먹고 사는 인간들은 되려 시위대오에게 "법을 지켜라"라고 강변할까? 원래부터 두개골 속이 비어 있는 인종들인가...
암튼 이 집시법 보면 가관이다. 형식상으로는 신고제로 되어 있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허가제도 이런 딱딱한 허가제가 없을 정도다. 예를 들어, 제11조는 국회의사당, 각급법원, 헌법재판소, 대통령관저, 국회의장공관, 대법원장공관, 헌법재판소장공관, 국무총리공관, 국내주재 외국의 외교기관이나 외교사절의 숙소를 대상으로 집회 시위를 할 경우 각 청사 또는 저택의 경계지점으로부터 1백미터 이내에서 집회와 시위가 금지된다.
이러다보니 국회 앞에서 집회를 하려는 사람들은 국회의사당 담벼락에서부터 100미터 떨어진 곳에 있어야만 집시법상 집회를 "허가" 받을 수 있다. 여의도 국민은행 본관 앞이 농성장으로 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예전에 국민은행 본관 앞 길 건너편에 한나라당사가 있을 때, 집회시위대오가 한나라당 업무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자 이 한나라당 또라이들이 집회가능제한 거리를 100미터에서 200미터로 늘리려고 한 적이 있다. 물론 지들이 당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유야무야 되었지만.
또 제12조에 보면 신고를 받은 관할 경찰서장이 "주요도로"에서 교통소통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이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해놓고 있다. 그런데 이 주요도로라는 개념이 아주 희안하다. 대통령령으로 고시되어있는 항목인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이건 도대체 집회 시위를 할 수 있다는 건지 없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서울만 보면 이렇다.
별표를 보면 알겠지만 서울시내의 도로 중에 이 별표에 예시된 주요도로에 걸리지 않는 곳이 거의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찰 입장에서도 난처하다. 이 별표를 들이 밀면서 주요도로 운운하기도 설득력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거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거의 대부분의 집회를 "허가"해주기는 하는데, 언제든지 이 규정과 별표를 들이밀면서 "허가"를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 웃기는 것은 경찰들이 집회시위를 인도에서 하라고 종용하는 거다. 인도는 원래 설치의 목적이 사람 걸어 다니라고 만든 길이다. 또는 인도 위에서 뛰든 앉든 누워 자든 보행자에게 방해만 주지 않으면 얼마든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짓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애초 보행자에게 방해를 주지 않을 수 있는 상황일 때 인도에서 집회시위를 하는 것은 신고조차 필요한 사항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회시위를 하는 사람들이 집회시위에 관한 신고를 하는 이유는 인도상에서 보행자들을 방해함이 없이 소기의 행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해 미리 관공서에 알리고, 집회시위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협조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그 협조는 인도가 되었건 차도가 되었건 집회시위할 수 있는 공간의 확보와 이 공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동안 주변의 사람이나 차량들이 최대한 불편함 없이 우회하거나 다른 교통로를 확보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그런데, 집회시위의 자유가 헌법으로 보장되어 있는 이 나라에서 경찰은 집회시위대를 향해 공공연하게 인도로 통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위법을 하는 것인양 사람들을 협박한다. 도대체 이 경찰이라는 것들은 지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하긴 법이 그렇게 애매하게 만들어져 공권력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넓게 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원천적으로 국회의원이라는 것들의 대갈빡 능력이 붕어수준이기에 벌어지는 일이니까.
예전에 골프장 건설 반대투쟁의 일환으로 지역 분들을 모시고 수원역에서 집회를 갖고 경기도청으로 시위행진을 했던 적이 있다. 도청 정문 앞에서 연좌를 하려 했으나 경찰이 막아 인도로 밀려났고, 항의하는 의미에서 행진대오가 전부 인도에 연좌한 적이 있다. 경찰이 오더니 불법행위란다. 당장 일어나서 행진을 계속 하란다. 뿔받은 행인, "법전 가져와봐. 법전 어디에 인도에 사람이 앉으면 불법행위라고 되어 있는지 좀 보자"라고 했더니 이 쉑 법에 있다고 궁시렁궁시렁 하면서 슬쩍 사라져 버렸다.
한때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부르던 노래 중에 "악법은 어겨서 깨트리리라, 불법으로 투쟁하리라"하는 가사가 있었다. 현행 집시법은 그 독소조항으로 인해 악법이 된지 오래다. 당연히 어겨서 깨야 한다. 국회의원들의 마빡에 제정신이 돌아와서 이 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제대로 고치기를 기다리는 것은 한정 없는 일이다. 경찰은 현행 법에 의거할 때도 집회시위대오에게 인도로 통행할 것을 강요할 근거가 없다.
"악법은 어겨서 깨트리리라, 불법으로 투쟁하리라"
멋집니다. 나중에 노래도 가르쳐 주세요^^
안티고네/ 당연히 오케이~!
몇 일전에 집안의 어르신이 뉴스를 봤는지 ...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해서 난감했다는 ... 구호를 외치면 불법시위라는 것이 말이 되냐고(파업이나 시위 등에 그렇게 좋게 생각하지 않는데도) ... ... 제가 살고 있는 이 사회 참 캐안습하다는 생각밖에는 ... 쩝 .. ILLHVHL들이라고 욕이라도 왕창하고 갑니다.
손윤/ 그러고보니 "ILLHVHL"이라는 표현을 꼭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직 한 번도 써먹질 못했네요... 쩝...
그나저나 손윤님 블로그는 제가 굉장히 딸리는 이야기만 올라가서 요즘은 쪽글달기도 주눅이 들더군요... ㅎㅎ;;;
법도 문제고, 법도 모르는 경찰들도 문제지만... 우리 스스로도 많이 물러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경찰이 안된다 하면 안되나보다 혹은 일단 조심히 빠지고 보자, 뭐 이런... 물론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려고 해도 물리력으로 막아버리면 별 도리가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기는 한데... 쨌든 집회 시위의 자유가 어떤 건지를 보여줄 수 있는, 정말 화끈하면서도 확실한 전술이 필요할 듯한데 떠오르질 않네요. 전경들이 상상력까지 막아버렸네요. ㅠ,ㅠ
미류/ 맞아요. 정작 문제는 법도 경찰도 아닌듯 합니다. 전복을 위한 한판 놀이를 마련해보고자 하는 우리의 상상력이 고갈된 것은 아닌지. 판에 박힌 집회와 시위가 결국 판에 박힌 진압과 저지를 만든 동시에 우리의 머리도 굳어지게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