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대회
진철.님의 [군대에서] 에 관련된 글.
아무리 생각해도 현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은 예수다. 예수 팔아 장사질 하다보니 밑천이 들길 하나 세금을 내길 하나, 이건 거의 거저 먹는 장사다. 말빨은 좀 있어야 하겠지만서두. 장사밑천으로 예수 팔아먹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보니 혁명가 예수의 길을 따르는 많은 목회자들, 보기에 안타깝다. 행인이 아는 몇 안 되는 존경하는 목사님들까지 도매급으로 욕을 먹어야 되는 현실을 예수가 바라보면 뭐라고 할라나? 뭐, 건 그렇고...
복무 중에 사단장이 바뀌었다. 새로 온 사단장은 독실한 예배당 신자였다. 뭐 혼자 예배당을 다니건 말건 그건 상관할 바가 아니었으나, 이 인간이 아마도 전 군의 예배당화 내지는 전 병력의 예배당 신자화를 계획했던 것인지 군 내 선교사업이 장난 아니게 늘었다. 귀찮을 정도로. 다행히 군종병 짬밥이 얼마 되지 않은 녀석이었던지라 군종병에게 찝적거림을 당할 일은 없었지만 이게 사단 단위로 전도사업이 짜여져 내려오면 아주 웃기는 일이 발생한다.
그 중 대표적이었던 케이스가 바로 무슨 무슨 "부흥 대성회"였다.
예비군 사단이라 실제 병영에서 복무 중인 병사는 별로 없는 사단이었는데, 난데 없이 무슨 "부흥 대성회"를 하는지 어이가 없을 때였다. 행사컨셉을 보니까 가관이다. 장소는 잠실 올림픽 스타디움. 대상은 사단 내 전 병력과 "예비군"! 들려오는 소문에는 각 연대장끼리 모여 누가 더 많은 사람을 긁어 모아올 수 있는가 내기까지 했단다.
1990년 초가을(초봄이었나?? 어쨌건 좀 쌀쌀한 때였는데... 기억이...) 쯤이었다. 사단에서 동원예비군 훈련 지침이 내려갔는데, 당일 예비군 훈련 장소를 잠실 메인스타디움으로 한다는 것이었고, 참석자는 산악행군 등 원래 예정되어 있는 훈련을 다 받은 것으로 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대신 참석하지 않을 경우에는 이러 저러한 불이익이 돌아간다는 내용 역시 떡 하니 찍혀 있었다. 이 엄청난 행사를 위해 필수운영요원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병력이 당일 메인스타디움으로 향했다.
행인이 있던 부대 통신대장은 완전 꼴통이었다. 이 꼴통의 엽기적 행각은 거의 끝도 없이 이어질 정도였는데, 프라이버시와 관계된 문제이므로 모른척 해주기로 하고, 어쨌든 이 부흥대성회를 진행하기 위한 외곽경비를 통신대가 맡게 되었는데 그게 다 이 꼴통의 덕택이었다. 단지, 무전기를 다룰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안이 채택되어 졸지에 사복을 입고 외곽경비를 하게 되었다.
외곽경비를 하려다 보니 행사장에 거의 다섯시간이나 일찍 도착해야 했다. 다른 연대에서 차출나온 외곽경비병력들과 구역을 나누고 장비점검 하고 위치 파악하고 뭐 이런 짓거리를 하면서 준비를 했다. 그러고 있는데, 시커먼 차량 몇 대가 들어오더니 시커먼 옷을 입은 건장하고 날렵한 몇 무리의 병력이 역시 시커먼 조준경이 달린 시커먼 총들을 메고 내리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저격병들이란다. 오오... 대통령이라도 뜨는 것인가...
암튼 그로부터 잠시후, 별판 단 차량들이 속속 들어오는데, 이게 아무래도 사단에서 준비한 행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대낮에 엄청난 별들을 보게 되었다. 네 개짜리도 보이고 세 개짜리도 몇 대씩 들어가고 그러다보니 별 두개나 하나짜리는 별로 그럴싸해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그리고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부흥대성회의 제목이 다 기억나지는 않는데, "구국"이라는 말도 들어가고 "대통령"이라는 말도 들어갔던 것 같다. 암튼 그런 제목의 부흥대성회가 진행되는데, 이름만 들어도 짜르르한 조**, 이**, 김** 하는 초대형 교회의 목사들이 열 댓명이나 동원되었다.
이들이 주로 한 기도는 "악마의 무리로 부터 우리 노태우 대통령을 보호하시고..." 어쩌구 하는 거였는데, 쩌렁쩌렁 울리는 스피커소리때문에 외곽에 있던 우리의 귀에도 그 내용이 자세히 들려오는데, 진짜 웃기지도 않는 내용들이 태반이었다. 그 때 거기서 "노태우 대통령을 사악한 무리로부터 보호해주시고..." 어쩌구 했던 목사들, 아직도 살아서 떵떵거리고 있다. 쪽팔린 줄도 모르나보다.
그러기를 어언 한 두시간. 별판 단 차량들이 줄줄이 빠져나가고 소위 VIP들이 모두 지 갈 곳으로 다 가버렸다. 이제 진짜 사단병력과 예비군들과 목사들만 남은 상태. 외곽경비병력은 모두 철수해서 행사장 정리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병력 소집하고 메인스타디움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아직도 순서에 따라서 목사들이 번갈아 나오며 설교와 통성기도와 찬송가를 불러제끼고 있었다. 나름 진지한 단상의 분위기.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는... 예비군들은 한쪽에서는 술을 퍼마시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었고, 일부 예비군들은 구석탱이에 처박혀 따땃한 햇볕을 받으며 자빠져 자고 있었고, 어떤 예비군들은 현역병들을 데리고 농담따먹기를 하고 있었고, 또 어떤 예비군들은 멱살잡고 싸움질을 하고 있었다.
예비군들이 이렇게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개 껌 씹는 소리 정도로 생각하며 노닥거리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말리거나 제지할 수가 없었다. 목사의 통성기도 소리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드디어 스탠드 저쪽에서 고함소리가 들려나왔다. "아 씨바 이제 집에 갑시다~!"
웃음 소리 왁자지껄. 이쪽 저쪽에서 욕설이 쏟아졌다. 그게 목사의 설교소리와 또 묘한 조화를 이룬다.
"적화야욕에 불타고 있는 빨갱이 도당들의..."
"아 조또 이제 그만 하고 집에 가자니까~!"
"노태우 대통령님을 보호하시고..."
"씨바, 빨리 도장 찍어 줘~!"
"이 땅에 평화와 번영을..."
"마누라 기다린다, 이 씨방새들아!!"
오오... 조금만 더 있으면 폭동이 일어날 태세. 이미 일부 예비군들은 담당 동대 동대장이나 방위병을 붙잡고 집에 보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고, 병사들이 집결해 있는 곳에 소주병이 한 두개씩 날아오기 시작했다. 이 때 나타난 사단의 간부가 목사님 설교하고 있는 도중에 방송을 날린다. "조금 있으면 끝나니까 조용히 기다리세요!"
불난 집에 기름을 붓지... 닭대가리 같은 넘... 결국 그 말이 사단이 되어 예비군 일부가 스탠드를 우르르 내려와 단상쪽으로 전진. 병사들이 막아 서지만 뭐 지들도 빨리 끝내고 싶은데 억지로 예비군 막을 생각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였고, 소동이 점점 시끄러워진다.
눈치빠른 목사님, 할 말이 많으신 듯 했는데, 얼른 기도 끝내고 후다닥 들어가시고, 정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단장과 간부들이 일어나 목사들과 악수를 하면서 지들끼리 삼삼오오 단상에서 빠져나간다. 우리도 장비철수만 하면 되는 상황인지라 상황종료를 선언하고 박스카 있는 쪽으로 빠져 나갔고. 나가면서 보니까 동대장들과 동방위병들, 관할 지역 예비군들한테 둘러싸여 혼줄이 나고 있었다.
예비군들 모아놓고 예비군 훈련 대신 부흥대성회를 했던 희안한 군대. 그로부터 불과 몇 년 후 쇠고랑 차고 심판대 앞에 섰던 노태우를 보면서 그 때 와서 헛소리 삑삑하던 목사들 중 몇 명이나 반성을 하고 참회를 했을까. 아마 한 넘도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도 그 목사들, 떵떵거리며 설교질 하러 돌아다니고 있고 게중에는 교회 세습하려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인간들도 있으니까.
어쨌든 이 부흥대성회를 통해 은혜를 입은 것은 통신대였다. 외곽경비 잘 섰다고 2박3일짜리 포상휴가들 잘 다녀왔으니까. 하나님, 예수님, 쌩유~~ ^^;;
예비군들 군복 입고 시위하면 아무도 못 막습니다^^. 86년에 저희 사단에서 동원 훈련 중에 예비군들이 폭력적 시위를 벌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간부들은 다 도망을 가거나 걸려서 갈비뼈 몇 개 부러지고... 결국 연대장한테 사과를 받아내고 끝났지요^^. 시위 이유는 예비군이 밤에 동초 서면서(예비군들은 거의 절대 경계근무 안 합니다^^) 술 마셨다고 연대 작전과장이 예비군의 뺨을 때렸고, 그 소리가 전 연대에 퍼지면서 연대 예비군이 다 들고 일어난 거죠^^). 하여간 그때 군대에서 똘아이들 참 많았습니다^^.
곰탱이/ 지가 있던 연대 역시 마찬가지였습져. 동원예비군 동원해서 장교테니스장 정비작업 했다가 나중에 대박 터졌죠. 예비군들 연좌농성하고 나중에 한겨렌가 어딘가 기사까지 나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