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은 통째로 비난할 대상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을 했기에 더 말을 보탤 필요가 없겠지만 그래도 한가지 첨언을 하자면.
예를 들자면, 더민당이나 미통당은 단일한 대상으로서 통으로 그 당을 비판할 수 있다. 그 안에 그나마 쓸모 있는 의원들이 있을지라도 그렇다. 나는 이 당들을 보수양당으로 규정하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다. 더민당과 미통당은 그냥 그렇게 당 이름 걸고 통으로 까도 아무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정당은 공통의 정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모여 만든 강력한 결사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비록 그 안에서 당의 방향과 갈등을 겪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전체로서 정당의 한 부분이며 정당이 져야할 책임 일체를 공동으로 져야 한다.
내가 특정 정당의 당원일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내가 속한 당을 비난할 때, 그 비난이 정당하건 터무니없건 간에 나는 당과 함께 그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당을 통으로 찍어서 날아오는 비난을 피하고자 "난 그 당의 당원이지만 당과 입장이 다르므로 그런 비난은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비난의 대상이 국가나 지역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번 총선에서 서울의 강남서초나 대구경북은 미통당이 싹쓸이를 했다. 그러자 온 도처에서 '깨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지역을 통으로 싸잡아 비난한다. "~것들"이라는 표현이 난무하고 대구경북을 독립시켜주자는 등의 말도 나오며 그보다 더 심한 말도 나온다.
이러한 비난이 부당한 건 정당과는 달리 지역은 특정한 이념에 따라 공통의 정치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자주적으로 모여 만든 정치결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그 사람들은 어쩌다보니 거기서 태어나서 쭉 살고 있을 수도 있고, 먹고 살기 위해 그 지역에 자리를 잡았을 수도 있고, 어딘가로 가고 싶어도 할 수 없이 머무를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
물론 그중에는 강한 향토심과 지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나라를 팔아먹어도" 미통당을 찍겠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대구경북은 결코 민주당에게 넘기지 않겠다거나 강남서초 아파트여 영원하라는 신념을 공유하면서 모여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결과를 보며 지역을 통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바로 '혐오'이자 '차별'이다. 정당은 통으로 싸잡아 '수구꼴통'이라거나 '꼼수정당'이라고 욕을 해도 차별이나 혐오라고 하기 어렵지만, 지역은 싸잡아서 그런 식으로 욕해선 안 된다.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당을 찍었건 간에 그래도 같이 살아갈 방도를 함께 모색해야 할 동료시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