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이 검찰을 단도리할 수 있을라나
조간신문 보다가 느닷없이 생각난 건데, 시비를 따지는 건 나중에 하더라도 집권세력의 정치적 입지강화라는 측면에서 이번 검찰조직문제를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신임 대검 반부패 강력부장이라는 심재철이 조국 사건을 덮자는 취지로 태도를 취했다가 다른 검사들로부터 "네가 검사야?"라는 항의까지 들었다고 한다. 심재철 검사가 평소 가진 자들과 있는 자들에게 상당히 관대했던 자라는 세간의 평은 여기서 건너뛰기로 하고.
청와대 + 추미애가 추진하고 있는 검찰 물갈이가 어떤 수준에서 진행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사례가 심재철 인선이다. 어떤 면에서 그런가? 과거 노무현 정권때와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노무현이 강금실을 법무부 장관으로 앉혔지만 강금실이 인사전권을 휘두르면서 검찰조직을 내파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무현이 '평검사와의 대화'라는 집권자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해서는 안 될 일을 생중계까지 해가며 진행하면서 검사들의 텐션만 올려놓기도 했다.
이와 비교해보면 현 정권이 검찰의 속성에 대해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지, 혹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솔직히 노무현은 순진해서 당한 거고, 이번 정권은 노무현처럼 당하진 않겠다고 악이 받쳐 있는 상황이라고 보인다. 틈 나면 하는 이야기지만, 당시 평검사와의 대화를 생중계로 보고 있다가 아, 이 정권은 이대로 끝나는구나라는 걸 절감했었는데, 검찰이라는 조직은 내가 니들 봐줄테니 열심히 해봐 정도로 다독여서 정신차릴 조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걸 무시했기에 노무현은 당했고, 문재인은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뭉쳐 있다.
기실 몇 가지 제도 정비한다고 해서 40년을 쌓아 올린 검찰의 철옹성이 와해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혹자들은 박정희 때는 육사가 다 해먹었고, 전두환 노태우 때는 경찰이 더 악질이었지 검찰이 전횡을 한 건 불과 30년이 채 되지 않았다며 검찰만 팰 게 아니라 경찰도 패야 한다고 하는데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다. 그런데 일의 순서 따져서 제대로 된 거 없고, 언제나 순서 세다 보면 아직도 혁명은 시기상조라고 손 털게 되는 거다.
검찰이 30년도 안 되서 저지경이 되었다면 깔 때 다른 깔 넘들보다 몇 배는 더 세께 까는 게 맞다. 육사는 이제 국방의 의무에 충실한 조직이 되었고, 경찰의 권력분산은 21대 국회의 과제가 되었다. 검찰 조지는 거 제대로 조지지 않으면 다음에 악 받친 검찰의 반격으로 한국 사회질서는 거의 초토화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검찰은 몇몇 제도가 정비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까짓거 뭐 문제도 안 되고 여전히 극강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힘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위험한 게 바로 이들 조직 내부의 결속이다. 검찰이 상명하복하고 동일체 정신 지키는 건 육사 출신 하나회 떨거지들보다 더 강위력하다. 하나회는 사조직이지만 검찰은 공조직인데다가 그 규모와 역할 자체가 하나회 따위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경지에 있다. 이런 조직은 제도 바꿔봐야 다음 번에 수 써서 제도를 뒤집을 수 있다.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국회의원 몇몇은 먼지 털듯 털어서 골로 보내는 거야 식은 죽 먹기니까. 털릴 놈은 털려야 하지만 이게 검찰이 지들 자의로 날리고 싶은 놈 날리는 수준까지 가면 그 땐 국가체계라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정권이 검찰조직의 내부반발을 어떻게 잠재우면서 조폭형 조직구조를 공무원형 조직구조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진행되는 건 그냥 힘 대 힘의 싸움. 물론 그 덕분에 현재와 같은 검찰조직구조가 와해되면 그 다음 새롭게 질서를 구축할 수 있겠지만, 교과서야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몰라도 현실적으로는 대가리 잡은 놈이 바뀌면 언제든 또 바뀔 수 있다는 여지만 남겨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번 싸움에 대해서는 "아무나 이겨라가"가 아니라 "둘 다 져라"라는 응원의 심정이 발동하는 거다. 지라고 하는 것도 응원이 될 수 있는 건가? 암튼...
한편으로는 집권 4년차에 접어드는 정권이 검찰을 단도리함으로써 다른 국가기관도 정신차리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겠다. 니들도 말 안들음 다 뒤집는겨. 하지만 그 역시도 국가기관의 관료들로 하여금 더 납짝 엎드리게 만들거나 아니면 이 정권의 반대파에게 정권을 갖다 바칠 궁리를 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거다. 다 양날의 칼이라는 거거든. 물론 이 개난장판의 향연 속에는 하루 하루 일해서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라는 건 그냥 양념일 뿐이다. 지들 하는 일에 대한 알리바이로 동원되거나.
어쨌든 둘 다 져라. 그러면 어찌 해서 그 폐허의 흔적 위에 새로운 길이 날 수도 있을지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