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균 총리라...
결국은 이렇게 되는구나.
한겨레: [속보] 문 대통령, 국무총리 후보자로 정세균 지명
기사에도 나왔듯이, 한국 헌정사에서 국회의 수장을 지낸 사람이 정부의 총리로 지명되는 첫 사례다. 삼권분립체제라는 건 그냥 허상일 뿐이다. 어차피 한국 헌법이 삼권분립의 근본적인 원칙을 해할 여지를 많이 남겨두고 있는 상태라서 법적으로야 큰 문제가 안 되겠지만.
인물만 놓고 보자면 난 조국이나 정세균만큼 이 정권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 드물 거라고 본다. 게다가 최소한 김진표가 총리가 되는 것보다는 그나마 대중들에게 미칠 파급력이 적을 거라는 예상을 한다. 조국과 정세균의 등용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내게는 없다.
정세균이 총리지명이 되는 이 구조를 잘 봐야 한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이낙연을 내보낸 후 총리 인선을 하는 과정에서 최대한 힘을 아껴두어야 한다. 조국 사태로 인하여 흘린 피가 너무 많아서 수혈이 필요한 상태인데, 소신 있는 총리인선을 했다가는 그나마 보전한 힘까지 다 날릴 우려가 있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논란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후보가 필요했을 것이고, 정세균이 그나마 가장 적당한 대안이 되었을 거다.
문제는 이 구조에서 출발한다. 즉 이제 더 이상 이 정권은 촛불 정신 운운하면서 자신들이 개혁세력이라고 자처하는 것에 부응할만한 이후의 행보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거다. 자한당은 정세균 총리 인선에 있어서 아마도 거의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정세균은 그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되려 자한당 입장에서는 시장친화적이면서도 특별히 트러블을 만들지 않아왔던 정세균과는 얼마든지 잘 지낼 수 있다.
바로 여기 함정이 있다. 총리를 축으로 하는 행정부의 관료들이 행정을 하는데 있어서 제1야당이 협조적으로 나오면 그보다 편한 일이 없겠지만, 제1야당이 협조할 일이 과연 무엇이 있을까? 당연히 제1야당이 주장한 일들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제1야당은 이 정권을 만들었다고 하는 촛불이 적폐로 규정한 세력이다. 적폐를 청산하라고 만들어놓은 정권이 적폐와 오월동주하는 일이 벌어지는데 이게 별다른 충돌 없이 가능해진다.
결국 촛불은 들러리로 전락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정권을 보위해야 한다는 자가당착에 빠진 사람들의 분열적 행보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이들의 혼란 속에서 적폐청산은 물건너 가게 되는 거고.
다시금,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좌파의 무능력은 너무나 아프다. 그 일원이었던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힘 빠진다. 또 이렇게 일기나 싸질러놓고 말아야 하는 건지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