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속일 수는 없는 건가...
자연인의 경우 유전자가 대물림됨으로써 생명체로서 증식의 흔적을 남기게 된다. 집단에게 있어서는 공동으로 간직하게 되는 역사가 유전자의 역할을 하는지 모르겠다. 유전자와 역사는 물질과 관념만큼이나 격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을 보면 그거나 그거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특히나 집단과 집단이 분류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느 특정 집단이 간직한 고유의 기억이라는 건 그대로 유전자처럼 그들의 습속에 배어 있게 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예컨대 바로 이 경우.
노컷뉴스: 선거제 빈틈 노리는, 플랜 B '비례한국당'
기사의 핵심은 선거제 개편으로 인해 비례의석비율이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자한당이 '비례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을 만들고 이 정당이 확보한 비례의석을 통해 자한당 고유의 의석확대와 같은 효과를 누려보겠다는 전술을 고려했다는 거다. 즉 '자한당 의석수 + 비례한국당 의석수 = 죄다 우리편' 뭐 이런 거...
자한당 입장에서는 어차피 더민당 2중대 역할하고 있는 민평당이나 3중대 역할을 하고 있는 정의당이 부럽기도 했을 거다. 저들은 되는데 왜 우리는 안 되는가라는 자괴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위성정당전술을 아예 당에서 검토한다는 건 퇴행도 이만저만한 퇴행이 아니다. 애초에 민평당이나 정의당은 더민당이 만들어놓은 위성정당이 아니다. 야당 간 공조를 처음부터 부정한 건 자한당이니까. 이것들은 아직도 지들이 여당인줄 알고 있으니.
한국에서 위성정당에 빠삭한 집단은 역시 과거 독재정권의 아류들이다. 박정희, 전두환이 죄다 이런 식으로 정치 자체를 쓰레기로 만들었다. 아, 박정희는 위성정당이고 자시고 아예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들어서 총통 노릇을 했으니 볼장 다 본 거고.
전두환이때 이 신군부가 획책한 건 대대손손 쿠데타 세력끼리 권력을 돌려가며 먹어보자는 것이었다. 박정희처럼 혼자 먹으려다가 총맞아 비명횡사하지 말고, 서로서로 밀어주고 땡겨주면서 영세불멸 정치군인의 세계를 만들어보자는 거였다. 이러니 박정희 혼자 독식할 때와는 달리 뭔가 그럴싸한 명분과 구조가 필요하다. 명분이라는 건 민주적 정치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고, 그러한 구조는 다양한 정치세력을 보장하는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들었다. '위성정당'이라는 걸. 좀 더 적실한 표현이 있더라. '구색정당'이라고... 정권장악의 의지 없이 구색만 갖춘 정당이라는 뜻이다. 전두환이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 쿠데타 세력이 이 짓을 했다. 일단 지들 핵심인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민정당을 만들었다. 그래놓고는 부패정치 일소를 내걸고 정치활동을 금지시켰던 정치인 중에서 말 잘 들을 수 있는 자들을 방면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위성정당을 만들어낸다. 그게 민주한국당(민한당), 한국국민당(국민당)이다.
박정희는 야당을 겁박하거나 공작하거나 했고, 결국은 아예 통일주체국민회의를 만들어서 야당이 뭔 짓을 하든 지 맘대로 일이 되는 정권구조를 만들었다. 그랬던 박정희지만 지가 나서서 아예 야당을 창당하는 짓까지는 하지 않았던 건데 전두환이는 그걸 해냈다. 이런 놈이 더 무서운 거다. 지들이 만든 야당에는 아예 안기부 요원들을 집어넣고 정권의 지침을 하달했더랬다.
그 민정당이 민자당이 되고 신한국당이 되고 한나라당이 되었다가 새누리당으로 변했고 지금은 자한당이라는 이름을 걸고 있다. 이렇게 간판만 바꿔달고 계속 한 통속으로 지내왔던 정당이다보니 전두환이가 남긴 유전자가 여전히 왕성하게 제 특질을 발현하는가보다.
기사를 보니 당내에서도 별로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따져보면 공들인 만큼 효과가 나올지도 미지수다. 전술이 채택되고 진행될 가능성이 그다니 높지는 않은 듯 보인다. 그러나 이런 전술이 당내에서 공식적으로 거론되었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단지 꼼수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발상이라든가 구체적 내용이 전두환이가 했던 것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피에 흐르는 건 쿠데타의 흔적이었던가. 그렇다면 정녕 이들과 공화국의 미래를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인지 근본적인 회의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제나 뭘 상상하든 그 이하를 보여주는 자들이다. 이런 제1야당을 두고 있는 더민당이 다시 한 번 부러워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