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 선언들
어제 하루 종일 임종석과 김세연의 불출마 선언 때문에 난리가 이만저만이 아니더라. 나도 좀 놀라긴 했다만, 그런데 놀라는 이유가 좀 다르다.
먼저 임종석.
뷰스앤뉴스: 임종석 총선 불출마 "제도권 정치 떠난다", '86세대 물갈이'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한 2선의 아직 '젊은' 정치인이 정치를 안 하겠다고 선언하니 많은 사람들이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듯 싶다. 그리고 이것이 당장 내년 선거에 미칠 영향을 재느라 동분서주한다. 먼저 청와대 끈 대고 있는 예비정치인들에게 브레이크 걸리는 거 아니냐는 전망이 있다. 더 나가 86세대들에게 이제 좀 정치에서 손 떼라는 사인이라는 해석도 있다. 중진급 이상 더민당의 고인물들에게 그만 해먹고 다 나가라는 물갈이 신호라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다들 그럴싸한 이야기다.
과거 정치인들의 전력을 봤을 때, 임종석이 이제 완전히 제도권 정치판에서 손 떼고 떠나는 게 불가역적으로 확정되었다고 자신할 수는 없다. 하다못해 노무현 청와대의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은 정치 안 하겠다고 했던 사람인데 대통령까지 되었다. 멀리 보면 DJ는 은퇴선언을 몇 번이나 했던가? 하지만 임종석이 일단 안 하겠다고 한 이상 그걸 처음부터 의심할 필요는 없겠다. 더 이상 정치 안 하겠다고 해놓고 제도권 정치 바깥에서 실질적인 정치를 하면서도 정치적 책임은 지지 않는 얌생이 짓 하는 유시민도 있으니 그런 방법도 가능할 거고.
그런데 임종석의 이번 '은퇴' 선언을 보다가 오히려 더 걱정이 되는 부분이 보인다. 임종석은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난 사실 그의 정계은퇴보다는 이 부분이 더 우려스럽다. 임종석이 누군가? 89년 평양 통일축전에 임수경을 파견한 장본인이다. 누차 언급했지만, 난 이 두 임씨가 당시의 오판에 대하여, 그리고 그 오판이 불러온 노동운동 초토화에 대하여 무릅 꿇고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노동운동 초토화 뿐만 아니라 그들의 행위는 장기적으로 남북관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임종석이 앞으로 통일운동에 매진하겠다면, 89년의 평가부터 다시 해야 할 일이다. 당시에 대한 냉정한 판단을 하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평가하여 거기서부터 비전과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될지 의심스럽다. 난 오히려 임종석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을 다시 30년 전으로 되돌릴지 모르겠다는 불안감이 커진다. 청와대에서 비서실장을 하면서 보여줬던 그의 행태는 이런 우려를 뒷받침한다. 난 임종석으로 인하여 한국사회의 통일운동에 대하여 깊이 의심하게 되었고, 지금 다시 임종석이 그 일을 한다는 시점에서 더 깊이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다른 한편, 자한당의 김세연의 은퇴선언은 좀 아리까리 하다. 기본적으로 김세연이라는 자가 그 자리에 올라가게 된 배경과 그동안의 과정을 보았을 때, 그가 은퇴한다고 선언한 것이 이렇게까지 뉴스가 될 일인가 싶기도 하다.
뷰스앤뉴스: 김세연, 총선 불출마. "황교안-나경원도 물러나야"
일단 김세연이 자한당에 대하여 내린 평가는 김병연이 할아버지 이름에 똥칠을 하면서 장원급제했을 때 내놓은 답안지급이라고 할만하다. 다만 김세연과 김병연의 차이는, 김세연은 전후좌우사정을 다 알고 자한당에서 내내 생활하고 있었다는 것과 김병연은 시제를 보고 답을 낼 때까지 할아버지의 사정을 몰랐다는 것, 그리고 김병연은 사실관계를 알게 되자 부끄러움을 못 이기고 집도 절도 버린 채 삿갓 하나 쓰고 죽장 하나에 기대 괴나리 봇짐 매고 팔도를 유랑했지만, 김세연은 당 다 때려부수자고 해놓고 그냥 여의도연구원장 자리와 현직은 유지하겠다고 버틴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데, 그의 은퇴의 변은 자한당을 뚜까 패는 절창의 내용을 보여주면서도 결국 그 강도와는 별개로 이도 저도 아닌 불분명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자한당이 좀비정당이 되었다고 하고 그래서 다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자는 건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건 지가 제시하는 어떤 방향으로 자한당이 발전적 해체를 하게 되면 내가 다시 뭘 해볼 수 있겠다는 여지를 그대로 남겨두고 있다. 이런 해석이 얼마든지 가능하니까 자한당 내 꼴통들은 월 별 개소리를 다 보겠다는 반응을 하게 되고 ,이거 다 유승민이하고 합방하려고 자리 까는 거 아니냐는 볼멘 소리가 나오게 된다.
애초에 아버지 후광으로 국회의원까지 하게 된 김세연은 5선 의원이었던 아버지의 지역구를 세습해서 3선을 했다. 부자 도합 8선이면 금정구에서만 한 세대가 훌쩍 넘도록 지역을 장악하고 있었다는 이야긴데, 이게 뭔 말이냐 하면 금정구 약 25만 주민 중에 거의 절반 가까운 주민들이 생애의 절반을 이 김세연 부자와 함께 했다는 게 된다. 지역적 기반이 이렇게 충실한데다가 대대로 부자인데 현재 20대 국회의원 중 재산총액 2위(1629억원)이다. 장인은 한승수 전 총리인데, 돈, 가문, 재산, 지위, 명예를 다 갖춘 그야말로 한국사회 0.01% 금수저다.
그런 김세연이 은퇴를 하면서 향후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공적 책무감을 간직하면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데 미력이지만 늘 함께 노력"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의도연구원장과 현직 의원직은 남은 기간 "열심히" 임하겠단다. 사실 이건 자신이 속한 자한당에 대한 매서운 충고라기보다는 난파 직전의 배에서 탈출하는 쥐의 속성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 또한 그가 향후 부산을 거점으로 지속적으로 현실정치에 개입할 것임이 분명한 상황에서, 어차피 폭망할 당에 있느니 이미지 관리 해놓고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주말을 달궜던 두 정치인의 정계은퇴 소식은, 기실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별로 유쾌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더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그동안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한 자들의 면면을 훑어 보았더니, 이용득 빼고는 노동정치의 현실이나 한국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지적을 한 자가 없다는 특징이 보이더라. 옘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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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까 이용득이 저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고, 아니 그럼 뭐 기성 정당이 노동정치를 얼마나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는 건지 그것도 좀 어이가 없다만, 여지껏 꿀발다가 이제 그만 두는 변으로는 그닥 임팩트도 없고 감동도 없다. 아무튼 그나마 한국노총 출신이라고 해도 퇴장의 변에 노동 이야기 한 마디는 얹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어차피 이들의 불출마 선언들은 기득권 세력 내의 기득권 강화 플랜에 엮인 내부 정비용일 뿐이다. 그런 한계를 알면서도 이들의 행보가 주목되는 건 역시 이들의 움직임이라는 게 결국은 인민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고. 아무튼 은퇴고 나발이고 그건 니들끼리 알아서 하시겠지만, 이 와중에 저 빈틈들을 비집고 쐐기를 꽂을만한 진보의 역량이 없다는 게 날이 갈 수록 아쉬워지는 거다.
아, 신경쓰지 않기로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