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호치민 13 - 전철과 상업의 상관관계

달랑 며칠 발품 팔아 골목 몇 군데 돌아보고 나서 뭘 좀 안다고 한다는 건 개뿔이나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냥 훑어본 느낌 정도 이야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섣부르게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라고 할 게재가 아니다. 더구나 누군가 선생이 있어서 필요한 뭔가를 알려주는 시간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제 멋대로 무작정 돌아다니면서 뭘 본다고 한들 그게 실제로 뭘 본 것인지조차 의심스러운 거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호치민 역시 시덥잖은 걷기 여행자가 이러쿵 저러쿵 할만한 건덕지는 별로 없을 거다. 다리 아픈 거 참아가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본 것보다는 오히려 친구하고 잠깐 이야기하거나 친구따라 잠깐 돌면서 듣고 본 게 훨씬 더 이곳 사정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호치민에서 친구 따라 만난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인데, 어떻게 아다리가 맞아서 서울 근처에 살면서도 한 번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사람을 호치민에 와서 만나게 되었다. 그 덕분에 한국에서도 안 먹던 생태탕을 호치민에 와서 먹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거참... 또 한 명은 호치민에 거주한지 꽤 오래 된 교민이었다. 오래 살다보니 이것 저것 아는 곳도 많아서 갈비탕 같은 쌀국수를 먹을 기회를 만들어준 분이기도 하다. 생태탕 같이 먹은 사람은 대기업에서 수출담당 업무를 하고 있는데, 무역상이라고 보면 되고, 쌀국수집 알려준 사람 역시 한국과 베트남 문물을 중개해주는 일종의 인플루언서(influencer)였다. 암튼 두 사람 다 사업을 한다고 보면 되는데.

확실히 운동판에 있었던 사람들과 사업하는 사람들은 행태나 시선 등이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아무리 장사를 하고 돌아다닌다고 해도 원래는 꿘 출신인데, 평상시 활동관계로 만나 이야기할 때와 사업 때문에 이야기할 때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해준다. 암튼 그런데, 두 사람이 친구와 만난 건 따로따로였지만, 분위기가 매우 비슷하다. 그들의 이야기는 군더더기가 없었고, 정식 회의시간은 아니었지만(정식 회의시간이었다면 아마 내가 끼지도 못했을 거고), 일 이야기 잠깐 하자고 하는데 진짜 일만 딱 이야기하고 정리가 된다.

친구는 물론이려니와 만났던 두 사람이 죄다 입을 열면 끝이 없을 정도로 구라를 까는 수준들인듯 한데, 더할 이야기와 뺄 이야기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난 이런 회의가 좋다. 현장 활동가들과 회의를 하다보면 그들의 진정성과 적극성을 표현하는 건 좋은데, 다 아는 이야기, 원론적인 이야기, 하나마나한 이야기, 부연하는 이야기, 중언부언에 하고 또하고 반복이 지속되면서, 아무리 봐도 20분 안에 끝날 이야기를 무슨 3시간, 4시간씩 끄는 거 보면 아주 진이 빠진다. 그 시간에 얼른 돌아가서 회의때 나온 이야기 까먹기 전에 일을 할 것이지... 세미나와 회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회의하자고 모여서 세미나하는 걸 당할 때마다 그보다 성질나는 일이 없다.

또한 이 장사꾼들은 어떤 일을 하면서도 부정적인 말을 하거나 비판적인 내용을 질질 끌거나 하질 않는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거의 나오지 않고, 일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동안 봤던 장사꾼들 대부분이 그렇긴 한데, 호치민에서 본 사람들은 친구 포함해서 죄다 그렇다. 일이 되게 하는 사람들과 일에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지 보는 것도 흥미롭다.

예를 들어, 지금 하노이와 호치민 등 대도시에서는 동시에 전철이 건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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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단에 건물들 사이를 가로지으며 좌우로 길게 올라가고 있는 교각처럼 생긴 구조물이 전철궤도다. 상당한 규모로 전철이 들어서고 있다. 나처럼 그저 도시정책이나 교통정책 정도 관점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그동안 호치민에 없었던 새로운 대중교통망이 생겨나면, 이 교통망으로 인하여 전철에 인접한 지역의 발전과, 대중교통이용의 빈도 향상과 노선연결을 위한 또 다른 대중교통망의 발달과, 그로 인한 오토바이 운행의 감소와 대기오염의 감소 등 어쩌구 저쩌구 할 수 있겠다만, 장사하는 자들의 관점은 또 신선했다.

일단 이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베트남의 대도시에 전철이 생김으로서 유발되는 산업효과 중 중요한 것이 바로 패션과 화장품 사업의 패턴이 바뀐다는 것이다. 호치민만 하더라도,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경우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이동하는데, 대기질이 매우 좋지 않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하고 다니고, 오토바이를 이용하다보니 복장이 나풀거리거나 화사한 옷을 입으면 불편하다. 더구나 햇볕 내리 쬐는 낮에는 너무 더워서 땀이 많이 나고 스콜이라도 쏟아질 때 밖에 있다보면 얼굴이고 복작이고 난장판이 된다. 이러니 특히 젊은 여성들이 굳이 화장에 신경을 쓸 이유를 알지 못하며 옷에 신경 쓸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마침 전철이 들어선다. 전철은 오토바이처럼 이동하는 과정에서 바람을 맞거나 비를 맞거나 해를 쬐거나 할 일이 없다. 특히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는 전철의 내부공간은 바람 씽씽 맞아가며 기온변화를 온 몸으로 느끼게 되는 오토바이와는 완전 다른 생활환경을 제공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화장이나 복장에 신경을 쓰지 않던 사람들이, 특히 여성들이 생각이 바뀌게 된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는데 편안한 옷이 아닌 다른 의상을 찾게 되며, 마스크를 벗으면서 얼굴에 신경을 쓰게 된단다. 그러니 당연히 화장과 패션의 양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거. 게다가 이렇게 패션과 화장에서 변화가 일어나게 되면 부수적인 여러 산업들이 덩달아 커지게 된다는데, 그게 가만 보니 식품, 잡화는 물론이려니와 의료에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는 게 이들의 관점.

그 옛날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미군 수송기를 타고 베트남 일대를 내려다보던 한진의 창업주 조중훈이 항구에 들락거리는 각종 배들을 보면서 아, 저기 돈들이 떠다니는구나 어쩌구 했다던데, 바로 딱 그런 마인드였던 거다. 같은 사물을 봐도 이렇게 다른 부분을 이야기할 수 있음을 확인하는 아주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이곳 저곳을 보고 느낀 결과들이 이렇게 사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깊이 연구하고 고민한 결과이기도 할 것이고. 나는 그렇게 보면 그동안 뭐든지 겉만 핥고 지나쳤던 것이 아닌지 하는 깊은 회한이 몰려온다. 난 정말 이들이 이렇게까지 생각을 확장하고 고민을 하는 만큼 내가 하던 뭔가에 대해 몰입했었던가 싶기도 하고.

하필 쌀국수 소개시켜줬던 사업가를 만난 건 돌아오기 하루 전의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고. 뭘 할 것인가? 도대체 나는 무엇이 하고 싶은 것인가? 다시금 고민이 깊어진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저렇게 하는만큼이나 정책을 짜든 연구를 하든 간에 그 정도의 심도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닌지. 앞으로 연구고 나발이고 다 정리하고 완전 reset한 삶을 살더라도 말이다. 게으른 주제에 가능할지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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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4 10:12 2019/11/04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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