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회 의원들의 해외연수
어쩌다가 등 떠밀려 구의회 의정연수 심의위원이 되어설랑 회의에 참여하게 되었다. 가관이다.
우선, 이미 일정 다 잡아 놓고, 갈 곳과 사전접촉 다 해놓고, 예산배정 다 끝내놓은 상태에서 심의를 하라는 건 뭘 어쩌라는 건지? 사전계획을 제출하면 그에 대해 심의하고 심의 결과에 따라서 연수 갈 의원 선정하고, 일정 잡고, 관계기관과 연결하고, 그에 따라 예산 확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음으로, 목적에 따라 방문해야 할 기관의 선정과 접촉을 누가 해야 하나? 이걸 관행적으로 여행사가 맡아서 진행한다. 여행사라... 그 여행사에 어떤 전문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번 의정연수 대상은 구 의회 행정복지위원회다. 다음번 심의 대상은 재정건설위원회고. 다음 건 뭐 다음에 이야기하고, 이번 건만 보면, 도대체 그 여행사에서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외국의 관계 기관과 접촉할 수 있는 건가?
거개가 그렇듯이, 여행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정해져 있고, 그러다보니 저쪽에선 의례히 또 한국에서 뭣들이 놀러 오는구나 싶어 하던 이야기 그냥 해주는 수준이다. 이걸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번 구 의회 행정복지위원회에서 가겠다고 하는 나라가 싱가포르하고 말레이지안데, 이 두 나라를 붙여서 의정연수 다녀온 기초의회가 7군데고 광역의회가 1군데 있었다. 대충 뽑은 것만 그런데 더 자세히 보면 더 많이 나오겠지. 암튼 그런데, 그들 연수보고서가 천편일률이다. 어떤 보고서는 아예 싱가포르관광청 자료를 그냥 복붙했더라. 이게 무슨 연수라고... 여행사에 어떤 전문성을 가지고 맡겼는지도 알 수가 없다.
다음으로, 연수목적과 방문지의 괴리가 너무 심하다. 예를 들어 이번에 가겠다고 하는 곳 중에 싱가포르의 시티갤러리라는 곳과 말레이지아의 푸트라자야 관리청이 있다. 이 두 곳을 방문하는 목적이 뭐냐니까 선진도시행정을 견학하고, 구의 역사와 미래를 주민들에게 알릴 방향을 모색하고, 도시환경 개선방향과 미래도시계획의 방향모색에 활용하고, 도시재생의 방향을 모색하고... 원 별 장티푸스에 걸릴...
싱가포르 시티갤러리 갈 바에 그냥 서울역사문화박물관을 한 번 가보는 게 나을 거다. 도시계획과 도시재생에 관해서는 작년에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서 서울시로 연수를 왔었다. 차라리 서울시에 연수를 의뢰하던가. 신행정수도급으로 아예 도시 자체를 새로 만든 푸트라자야에 가서 어떤 도시행정을 배워오겠다는 건지, 배워와서 적용하겠다는 동네가 신행정수도급도 아니고 그냥 산자락 다 밀고 지금 아파트단지 짓고 있는 곳인데 무슨 도시재생, 도시계획을 배워와서 적용하고 난리법석을 치겠다는 건가?
더불어서, 그렇게 낑궈 넣은 방문지들이 7/12이 관광지다. 아니 연수고 나발이고 그냥 의원들 친목도모 목적 관광여행 간다고 하던가... 진짜 이 의원들이라는 자들이 해외여행 한번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그러는 건지. 뭘 쪼잔하게 이걸 심의받아가며 지 돈 안 쓸려고 저럴까 싶다.
회의 중에 기가 찼던 건, 설명을 하고 심의를 받아야 하는 행복위의 위원장이 보인 태도다. 이미 다른 지자체에서 다 보고 온 거고, 온라인 뒤벼보면 내용 다 나와 있고, 그렇다면 이번 방문에서는 그동안 다른 지자체에서 습득한 결과나 논문 등에서 찾을 수 없는 어떤 다른 문제점을 보고 배워 올 것인가를 물었다. 그랬더니, 아직 다른 지자체 결과 다 보진 못했지만 방문하는 기관이 조금 다르므로 차별성이 있다고 한다. 다른 기관이라고 해봐야 어떤 지자체에선 A라는 요양원을 가고 이번엔 B라는 요양원 가는 거밖에 차이가 없다. 운영의 방식이라든가 지원체계가 똑같다. 그냥 동네가 다르면 차별성이 있다는 건가?
질문이 이어지자 행복위 위원장이라는 사람은 "그럼 우리가 가서 뭘 배워와야 하는지 말해보라"고 되려 역질문을 한다. 이런 일이 한 두번도 아니고 몇 차례 반복되어서 심의위원장에게 주의를 주라고 당부까지 했지만, 회의가 다 끝난 후에도 도대체 뭘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볼멘 소리를 하고 있다. 아니, 그 수준이면 그냥 가지 마시라고요... 그렇게 가고 싶음 당신들끼리 곗돈 부어서 가시든가.
실태를 들여다보니 기가 막힐 지경인데, 그동안 이렇게 비행기값으로 날린 돈이 얼마나 될까? 이러니 구의회 무용론이 나오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제 정신들 좀 차려야 할 건데, 이렇게 하면서 무슨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며 연방제형 분권자치를 이야기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