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협곡'의 '시다바리'
난 도대체 어떤 멘탈에 대한 궁금증을 지울 수가 없는데, 온갖 음모론으로 현실로 드러난 범법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다가 급기야 개인사의 비극을 동원해 눈물샘을 자극하면서 공인의 문제를 신파로 만들어 대중을 호도하는 저자들은 무슨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지 말이다.
김어준이가 하는 팟캐스트는 정경심의 뇌암을 이야기하고, 이걸 또 긁어다가 조국의 사퇴가 어쩔 수 없었다고 알리바이를 만들어대는 부산외대 이광수나, 이 모든 사달이 윤석열을 비롯한 수구 검찰의 책동에서 비롯되었다며 다시금 서초동으로 촛불들고 가자고 선동질하는 자들이나...
이 와중에 하고 싶은 이야기 몇이 있었는데, 시간이 아까워 놔두고 있었던 걸 김수민이 지적했다.
NEWSTOF: [반론] 노동운동이 뭐하러 '서초동 협곡'으로 들어가나
원래 이 반론을 촉발했던 이광수의 글은 왜 노동계가 서초동으로 가지 않느냐는 비난이었는데, 괜히 조회수 올려주기 싫으니 링크는 생략한다.
이광수가 말한 요지는 '시민운동 -> 노동운동'의 경로가 역사적인 사회발전단계이고, 현재 서초동에서 '시민운동'이 들끓고 있으니 여기에 '노동운동'이 참여했다가, 나중에 사안이 발전적으로 정리된 후 '노동운동'이 대의를 가지고 폭발하면 그 후 세계가 해피해진다는 것이었다.
난 ㅆㅂ 이 따위 작자가 역사학자라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질 않는데, 이자의 전공인 인도에서는 역사가 그렇게 작동했나보지? 이 역사학자는 앙시앙레짐을 뒤엎었던 '시민'과 오늘날의 '시민'을 착각하고 있나본데, 과거 구체제를 뒤집은 '시민', 즉 부르주아지가 부르주아지혁명을 성공한 이래 지금까지 투쟁은 이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의 계급투쟁이었고, 그 최전선에서 벌어지는 운동이 노동운동이었다.
부르주아 혁명 이래 '시민'이라는 말은 자본소유여하가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서 동질적인 정치적 배경과 의제를 가지고 있는 집단적 총체를 의미하게 되었다. 그 사회의 조직과 운영에 직접적 권리를 가지고 있는 주체이자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의 핵심요소가 바로 오늘날의 '시민'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체제에서 이 '시민'의 대부분은 '임노동자'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들의 이해관계는 노동의 이해관계와 직결된다.
시민사회 내부의 갈등은 그리하여 같은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계급 간의 갈등으로 전환되는데, 결국 언제나 그 핵심은 계급의 동학이 어떻게 굴러가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이광수는 이해하지 못하다보니, 자꾸 '시민운동 다음에 노동운동'을 운운하게 되며, "노동자 계급의 사회`정칮거 이데올로기적 해방의 과제보다는 전(全) 민족 대중과 함께 하는 과제의 해결이 더 중요하게 대두될 때 큰 힘을 발휘했다"라는 대두(大豆)로 메주 쑤는 소리를 하게 된다.
이광수가 그 예로 드는 것이 87년 항쟁인데, 6월 항쟁에 노동자가 참여했다가 6.29 이후 시민운동이 쌩깠지만 이를 서운해하지 않았기에 789대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희안한 인과관계를 내놓기까지 한다. 곡학아세도 유분수지, 87년의 항쟁과 대투쟁은 그따위 경로의존적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박종철 치사사건, 전두환의 호헌선언, 이한열 피격사망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분노촉발과 노동운동의 폭발이 우연한 시차를 갖게 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지, 이광수처럼 무슨 처음부터 노동운동이 계획적으로 먼저 6월 항쟁에 참여하고 그 후 조성된 조건에 따라 789투쟁 하고 이런 것이 아니었다는 거다. 87의 상황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정연하게 정식화했던 민중의 자발성이 어떻게 현실화되는가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다.
아무튼 김수민의 반박에 대해 이광수가 어떤 말로 또 변명을 늘어놓을지 모르겠지만, 김어준, 이광수, 유시민류가 벌여놓은 이 작당질에 부화뇌동하고 박수쳐준 사람들도 이젠 좀 냉정을 되찾고 곰곰히 생각이란 걸 해보기 바란다. 조국의 법무부장관 인선으로 벌어진 어떤 현상은 그냥 합법과 불법, 서초동과 광화문,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의 대립문제가 아니다.
특권을 산소처럼 빨아먹고 있던 사람들과 그러한 특권에는 다가갈 일조차 없었던 사람들이 이 땅에 함께 살면서, 한 쪽은 다른 한 쪽의 수액이 되고 다른 한 쪽은 그 수액을 당연한 듯 빨아먹는 현상이 공화국이라는 체제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음이 폭로된 것이 이번 조국 사건의 핵심이다.
그런데 수액이 되어 빨리던 자들이 또 부리나케 서초동으로 뛰어간다. 앞으로 또 빨리고 싶어서인가. 그걸 또 빨리라고 선동질을 한다. 김어준, 유시민, 이광수 같은 자들이. 이 자들에게 김수민이 한 이야기를 다시 돌려주겠다.
"노동운동이 뭐하러 '서초동 협곡'에 갇혀 시다바리 노릇을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