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초조와 자신없음?
운동권들의 회의 중 상당한 경우에, 과연 이런 회의를 할 이유가 있을까 싶은 일이 왕왕 있는데, 어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도 그런 인상. 경사노위 참여여부를 두고 얼추 4개의 안이 붙었는데,
- 원안이 있는데, 즉 참여안이 있는데 여기에 불참안을 내는 이유는?(불참 하고 싶으면 원안 반대 하면 되는 거 아닌가?)
- 수정안이 부결되면 원안표결을 해야 하는데 의장이 원안철회를 해?(회의 규정상 그렇게 하는 게 가능한 것인가?)
논의과정이 현 정부 여당에 대한 성토와 상황전환을 위한 태도변화의 요구, 그리고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데 미숙한 집행부에 대한 비판으로 진행되었으면 했는데, 내가 볼 때는 이런 부분들이 그다지 부각되지는 않은 듯. 현상에 대한 반복적 발언(다 아는데 왜 자꾸?), 정부에 대한 직접적 요구안이 아니라 불만의 강조(그게 그건가?), 이해하기 어려운 회의진행과정과 대의원들의 혼란(찬성이 반대되고 반대가 찬성되고?), 그러다가 다시 원안을 만들어 논의에 부치겠다는 이상한 귀결(아니, 그럼 어차피 또 이 꼴 반복인데?)...
이러한 논의의 와중에 미묘하게 흔들리는 멘탈. 아, 지금 이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들에 대한 자신이 없구나... 그 불안과 초조가 저 강력한 발언과 이상스런 대립 구조 속에서 그대로 묻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그냥 내 생각일 뿐인가? 솔직히 위원장의 마무리 태도는, 아 이거 뭐 그냥 아무것도 안 되는데 다 때려 치자는 분위기까지 보이는 듯 해서 영 개운칠 않다.
난 남한 최대 통일운동조직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고 있는 민주노총이 노선과 체질에 있어서 노동현안과 남한사회 체제문제에 더욱 천착하길 바라는 입장인데, 대의원대회의 진행을 보면 뭐 앞으로도 별반 달라질 것 같지는 않고, 그러한 노선과 체질의 혁신이 없는 한 대정부투쟁과 대정부 정치전략/전술의 획기적 변환도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실 뭐 그림만 그려보자면, 조직적으로는 대의원 대회에서 경사노위 불참 선언 ---> 대정부투쟁 선포 ---> 바로 집회와 시위 조직 ---> 강력한 투쟁 이렇게 가면서, 정치전술적으로는 정부와 여당에게 입장정리 요구 ---> 적어도 기본적인 노동사안에 대한 전향적 조치(예를 들어 조건 없는 ILO비준, 김용균 사망 진상규명 합의 등) 시행 ---> 민주당 의원 발의 노동조합법 개정안 철회 등 가시적 노동친화행보 진척, 뭐 이렇게 진행하면서 그 성과 여부에 따라 경사노위 참여안을 재론하겠다고 하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그런 건데...
아무튼 오밤중까지 김밥 먹어가며 자리를 지키고, 논의에 참여했던 민주노총 대의원들에겐 경의를 표한다. 그나저나 오늘부터 또 이 결과 가지고 온갖 개소리들이 작렬할텐데, 멘탈관리들 잘 하시길 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