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민당의 얄팍한 선거제도 개편안
1월 21일 더민당은 의총 후 선거제도 협상안을 내놓았다. 다른 거 제하고 그 내용만 간략히 보면, (i) 의석 현행 유지 (ii) 지역구 200석으로 축소, 비례 100석 확대 (iii) 권역별 비례대표제 (iv) 연동형을 원론으로 하되 준연동형, 복합연동형, 보정연동제 제안 (v) 지역구, 권역별 비례에 동시 입후보 및 석패율제 (vi) 부분적 개방형 명부제 도입 등이다.
얼핏 지역구 의석을 현행 253석에서 200석으로 축소한다는 것만 보면 대단히 진일보한 혁신안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역을 보면 그게 또 그렇지도 않다. 더민당 홈피나 민주연구원 홈피를 봐도 이게 어떤 내용인지 명확하게 나와있지 않아서 더 살필 필요는 있는데, 어쨌든 간에 준연동형, 복합연동형, 보정연동형이라는 이 '연동형'의 탈을 쓴 이상한 제도들은 죄다 옛날 '전국구' 부활판처럼 보인다. 즉 지역구 당선비율에 따라 비례...를 가장한 전국구의원을 배정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문제는 이게 이미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결정을 받은 제도라는 거. 다시 환기하면 2001년에 전국구 선거를 규정하고 있는 공직선거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제도가 비례성을 반영하지 못함에 따라 민주주의의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판례로 인하여 알량하지만 현재의 비례대표제도 즉 1인 2표제가 도입되었던 거다.
자세한 사항은 헌재 2001.7.19. 2000헌마91, 112, 134 병합 결정 참조
더민당이 내놓은 준연동형, 복합연동형, 보정연동형이라는 유사 '연동형'제도가 실제로 이러한 형태를 염두에 뒀다면 이건 헌법재판소고 뭐고 간에 지들 쏠리는 대로 해치우겠다는 더민당의 태도를 보여줄 뿐이다. 이런 건 '개혁'이라고 하지 않고 '반동'이라고 한다.
또 하나 우려스러운 건 석패율제를 도입하겠다는 건데, 이건 이미 일본에서 그 폐단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있는 제도다. 석패율제라는 건 말이 좀 어렵다 뿐이지 쉽게 말하면 패자부활같은 거다. 즉 지역구에서 떨어진 후보를 비례로 구제하겠다는 거다. 이를 위해 전국단위 비례대표를 선출하는 게 아니라 권역별 비례제를 도입하겠다는 거고.
이걸 왜 도입하느냐? 더민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지역구가 줄어들게 되면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이 보통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게 얼만데, 정치생명을 끊으라는 거냐며 대들 수도 있다. 내 심정이야 뭐 솔직히 말하면 거의 대부분의 거시기들 정치생명 좀 제발 끊어지길 바란다만...
어쨌거나 간에,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은 둘째치고, 이 석패율제라는 게 일본에서는 끈 떨어진 중진들 자리보전하는 취지에서 이용되는 반면에, 비례의석이 요하는 직역대표, 전문가대표, 소수자대표 같은 대표성은 반영하지 못함에 따라 결국 정치적 다양성을 깨뜨림으로서 정치혐오를 가속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렇게 해서 유발된 정치혐오 또는 정치무관심 덕분에 아베가 니나노 하고 있는 거고.
그나마 더민당의 이런 천박한 안조차 당내에서 지지를 얻는 것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예상은 이미 당 안에서도 나온다. 대표적으로 국회사무처장인 유인태 의원은 "지역구 53석을 줄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관련기사: 경향신문 - 유인태 "민주당의 선거제 개혁안은 협상용 카드"
요컨대 여론이 도대체 여당이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말도 안 꺼내고 뭐하고 있는거냐고 비난하고 있고, 선거제도 개혁이 화두가 되고 있는 판에 그냥 눙치고 있기도 뭐하고 하니 말이나 꺼내놓자는 취지에서 내놓은 안이 이번 안이라는 거. 이만하면 그래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땡큐라고 해야 하나...
언젠가 박정희의 가슴에 총알을 박아 넣었던 어떤 인물이 박정희에게 "정치를 대국적으로 하라"고 했다던가. 더민당에게 꼭 그 말을 해주고 싶다. 하지만 뭐 더민당이 그 말을 안 듣는다고 한들, 내가 더민당 가슴패기에 총알을 박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에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