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구속
오늘 아침 최대 뉴스는 뭐니뭐니 해도 양승태의 구속 수감. 솔직히 영장실질심사 마치고 양승태가 구치소로 들어간 후 밤 12시쯤에 결과가 나온다고 하길래 그 시간까지 기다리다 소식이 없어 아, 이번에도 글렀다보다 했다. 양승태가 구속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혹시나 하던 마음이 역시나로 바뀌었고 그냥 기대를 접기로 했던 거. 하지만 아침에 본 뉴스는 양승태가 구치소 밖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과 지지자들을 다시 만나지 못한 채 그대로 구치소에서 법무부 무상급식을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오... 갑자기 근육통이 진정되는 듯한 느낌이...
이 즈음에서, 잠시 호흡을 고른 후 돌이켜 생각해볼 몇 가지가 있다.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잠깐 정리를 해야 할 부분들을 보자. 양승태 구속 수감 소식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의 퇴임사. 날짜를 찾아보니 2017년 9월 22일에 그는 퇴임했다. 그 때 그의 퇴임사를 보면서 기가 막혔다. 사람은 어디까지 파렴치해질 수 있는가? 그가 정권과 유착하여 온갖 중요 사건들의 판결을 왜곡했다는 심증은 차고도 넘칠 때였다. 확증을 잡을 수 없고, 주요한 내용들은 그때까지 크게 밝혀진 게 없어 공분만 높아지고 있던 때였다. 하지만 지난 시기 양승태 대법원의 작태들이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합리적 의심'을 하고 있었다.
오늘 그 퇴임사를 다시 찾아보았다. 구구이 명문이고 절절이 절언이다. 전문은 다음을 보라.
법률방송뉴스 - [전문]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사 "한국사회 진영논리 병폐... 재판 독립 지켜야"
그는 자신이 법관과 대법원장을 지내오는 동안에 "국민의 신뢰야말로 사법부의 유일한 존립 기반임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적극적인 자세로 국민에게 다가가 신뢰를 획득하는 것은 모든 법원 구성원들의 기본적 의무라고 생각"했단다. 이 대목에서, 나는 사회의 고관대작들이 가끔 들먹이는 국민이 누구인지를 보다 분명하게 정의할 필요를 느낀다. 적어도 양승태에게 있어서 그의 '국민'은 그가 왜곡했던 그따위 빌어먹을 판결들에 환호할 자들이었음이 분명하다. 또한 상고법원 설치 등 사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제도를 왜곡하려 했던 그의 목적에 찬동하는 자들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 그가 '국민'으로 호명하지 않았던 다른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들은 그가 "적극적인 자세로" 다가갈 필요는커녕 법을 왜곡해서라도 휘잡아야 할 대상들일 뿐이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강변하면서 다른 쪽의 논리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진영논리의 병폐가 ... 이러한 그릇된 풍조로 인하여 재판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과 다르기만 하면 극언을 마다 않는 도를 넘는 비난이 다반사로 일고 있고, 폭력에 가까운 집단적인 공격조차 빈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법부가 당면한 큰 위기이자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의 기본원칙에 대한 중대한 위협입니다."
양승태는 복 받은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순둥이같은 국민들이 살고 있는 국가에서 대법원장을 했다는 사실에 말이다. 이 물러빠진 국민도 못되는 국민들은 사법부에 기껏해야 탄원서나 조직해서 낼 줄 알았지 법원에 화염병 하나 꽂지 않는다. 이 착한 국민들이 원한 건 그냥 말 그대로 '법대로'였다. 그놈의 법이 원천적으로 가진 놈들이 지들에게 유리하게 만든 법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나마 법대로라도 되길 바라는게 이 소시민들의 소망이었다. 그런데 그나마의 법조차도 지들 편한대로 왜곡해서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내려온 게 양승태 류였다. 이걸 지금까지 견뎌가며 겨우 구속시키는 것으로 정리하는 이 사람들 덕에 아직 목숨부지하고 살고 있는 거다. 재판의 독립과 사법부의 독립을 깨트린 건 진영논리가 아니라 양승태의 사적 욕망이었다.
양승태는 곧장 이렇게 덧붙인다. "오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이룩한 사법체계의 근간이 흔들리거나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 어렵사리 이루어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던 말이던가. "그대로 이루어지리라" 말 그대로, 양승태가 우려했던 그대로 이루어졌다. 사법부의 독립은 심각하게 의심받고 있고, 민주주의는 그만큼 후퇴했다. 사법체계에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엄청나게 많이, 그것도 굉장히 크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누가 그렇게 했는가? 바로 이 퇴임사를 발표했던 양승태 본인이.
"법관에게는 어떠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할 헌법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을 따름입니다. 법관이 이러한 헌법적 책무를 깊이 인식하고 법의정신에 따른 슬기로운 균형감각과 의연한 기개로써 지혜와 희생정신을 발휘할 때 사법은 비로소 국민의 굳건한 신뢰 위에 서서 그 소중한 가치를 지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는 부끄러움이라는 걸 아예 모르는 인간이다. 인간으로서 갖추어야할 요건 중 하나인 수오지심(羞惡之心)을 갖추지 못했으니 이는 금수로 봐야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금수라도 가지고 있을 수치심이 없으니 금수만도 못한 인간인가? 법원에 출두할 때도, 영장심사를 마치고 나올 때도, 그 이전이나 이후에도 이 자는 자신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큰지, "재판의 독립을 지켜야 할 헌법적인 의무와 책임"을 어떻게 휴지조가리로 만들었는지, "법의 정신" 같은 건 애저녁에 어디다 팔아치웠는지를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오래 되었다고 다 고목이 아닌 모양"이다. 그는 그가 바라던 "모진 풍상을 견뎌온 흔적에서 숙연한 연륜의 향기가 풍겨"나오는 고목이 아니라 부패할대로 부패해 온갖 악취를 풍기며 뒹굴고 있는 폐기물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그는 자신이 써내려가고 후배들 앞에서 읽어내려갔던 퇴임사의 온갖 미사여구와는 전혀 반대의 길을 걸었던 과거에 발목을 잡히게 되었다.
그가 재판을 통해 죄에 합당하는 처벌을 받게 되지는 않을 거다. 왜냐하면 그의 죄에 합당한 처벌을 규정한 법률이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법은 그에게 찰과상 정도의 상처만을 입힐 뿐이다. 하지만 그는 법보다 더 큰 원리에 의해 처단될 것이다. 사정여하를 막론하고,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치적 의도에서가 아니라 오로지 헌법과 법률의 위반 여부만을 전제로 대법원장이 구속될 수 있다는 초유의 사태를 만든 장본인으로서 그는 사회적 처벌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처벌은 그 처벌을 받는 본인이 처벌에 대하여 인정을 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 본인에게 내려진 처벌을 처벌이 아니라 정치적 내지 종교적 박해로 인식하게 되면, 그는 스스로를 범죄자가 아니라 순교자로 승격시킨다. 양승태가 그러한 차원이 인간형처럼 보이기에, 사회적 처벌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긴 하다.
양승태 대법원이 만들어낸 더러운 판결들의 실상은 연일 파헤쳐지고 있다. 왜정시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불이익을 안긴 국가배상판결, 이석기 재판과 통진당해산 등에 개입한 것, 하급심에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던 사건들을 터무니없는 이유로 뒤집어버렸던 KTX 승무노조 사건이나 철도파업, 통상임금 등 노동사건, 국공립대 기성회비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등 양승태 대법원이 이 땅의 법과 제도를 무용지물로 만들고 사법부를 사유화하여 전횡을 일삼았던 사건들은 지금까지 나온 것만으로도 기가 찰 노릇이고 앞으로 뭐가 더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있다. 그것도 모자라 재판관들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법관들을 관리하고, 국회의원들의 편의를 봐주면서 상고법원설치입법을 종용하는 등 공작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이쯤 되면 이 작자가 대법원장인지 박정희시대 중앙정보부장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법과 제도를 따져보면 양승태가 법무부 무상급식을 오래 받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몇 차례 밝힌 것처럼, 오로지 사심으로 바라건데, 양승태가 이제부터 영원히 바깥 햇살을 못 보게 되었으면 한다. 법무부무상급식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가다를 뛰어서라도 세금을 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