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은 산골이고, 목포는 항구냐?
며칠 전에는 연일 예천이 떠오르더니, 이젠 연일 목포가 떠오른다. 일단 두 사건의 공통점은? 직업윤리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맥락이 닿는다. 예천의 군의원들과 더민당 의원 손혜원은 두 경우 모두에 있어서 자신의 지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을 하지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물론 전자의 경우는 직업윤리뿐만이 아니라 인간적으로 갖추어야 할 4가지가 없었다는 한계도 있다.
애초에 인륜의 도리와 통상의 도덕률조차도 간직하지 못한 자들이 군의원을 하고, 그걸 또 공천을 하고, 좋다고 그걸 밀어준 연결고리의 문제가 결국 의원이라는 직업에 걸맞은 직업윤리의 실종을 보여주는 것으로 귀결된 것이 예천의 사태라면, 손혜원의 선의를 100% 믿는다고 할지라도 국회의원으로서, 그리고 누가 보다라도 연관성이 분명한 일련의 정보유통과 물리적 환경조성이 어우러진 투자/투기가 이루어진 것은 당사자가 자신이 점한 위치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벌어진 일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 두 사건에서 공통점은 또 하나 더 있다. 예천이고 목포고 이게 서울중심주의에 찌든 자들의 눈으로 볼 때는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먼 별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거.
엊그제 언론에서는 목하 '서울 강남'의 집값이 계속 하락세라는 게 뉴스가 되었다. 그런데 그 하락이라는 게 전월 대비 0.09% 집값이 떨어졌다는 거. 이게 서울중심주의 세계의 사고관에서는 대형 뉴스가 된다. 이동네 집값이 반년 사이에 수억 뛰는 건 일종의 에피소드로 다뤄지지만, 그렇게 올라간 집값이 많이 쳐야 천만원 안짝 떨어지면 한국의 경제위기상황이 도래한 것이 된다.
반면, 저 경북 어디에 처박힌 예천이나, 맨날 그 동네는 항구라는 것만을 세뇌시키는 노래로나 머리에 박혀 있는 목포는 이런 요사스러운 일이 아니면 이정도 난리의 주제가 될 정도의 비중이 전혀 없는 외계다. 이번 두 사건에서 내가 볼 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이 두 동네의 경제, 사회, 문화적 상황이 지금과 달랐으면 어땠을까?
예천은 문경, 영주, 안동, 의성 등 경북에서도 내로라할 정도로 산간오지에 접한 군들 한 가운데 있는 곳이다. 주변 지역보다는 상대적으로 평지에 위치하고 있지만 다른 평지에 있는 대도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물이 맑고 달아서 이름붙었다는 예천은 양궁으로 유명한 곳이다. 맑고 단 물을 먹고 선수들의 양궁실력이 배가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말고 예천이라고 하면 '서울사람'들의 머리에 남는 거 있나?
목포는 그래도 "목포는 항구다"라는 노래가 있어 나이 좀 든 사람들은 가보진 못했어도 이름자는 들어봤을 거고, 불행한 역사지만 세월호를 건져 목포 신항에 올려놨을 때 잠깐 세간에 이름이 올랐었다. 그 밖에 걸출한(?) 정치인인 박지원 덕분에 선거철에는 또 관심대상이 되기도 하고. 그리고 뭐? 뭐가 있지? 최근들어 먹부림이 판치면서 목포는 먹방코스가 되기도 해 유명세를 좀 타는 중이다.
이 두 지역은 서울 이외의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어차피 한국은 서울과 그 외 지방으로 나뉘니까. 여기서 서울 이외의 지역은 언제나 동경의 대상이 서울이 된다. 서울처럼 화려하게 되고 싶고, 서울처럼 번잡해지고 싶고, 서울처럼 집값도 오르고...
여담이지만, 담양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의 초등학생 아들넘이 나를 처음 만났을 때, 서울 사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그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지면서 "서울 가고 싶다..."를 연발하는데, 아니 이게 무슨 40 몇년 전에 우리 시골 친구들이 하던 말이나 분위기하고 완전 판박이... 이 녀석은 지 애비(즉 내 친구)의 직장이 담양일 뿐 집은 광주에 있는데도 이지경이다. 이 녀석 누나 역시 "나도 서울 가고 싶다..."하더니 "서울 살고 싶다..."까지 나왔다.
서울을 선망하는 친구 아이들의 눈망울...
잡썰은 좀 정리하고, 무슨 얘기냐면, 쫓아가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 있는데, 그래서 외형적으로는 쫓아갈 요량이 좀 생겨서 분주히 뒤를 밟지만, 실질적으로는 결코 닿지 못하는 차원의 한계에 부딪쳐 지속적으로 좌절하는, '서울'을 따르고 싶은 지방의 안타까움이 이 두 사건에서 나타난 공통적 핵심이라는 거다.
예천의 경우는 사안 자체가 좀 간단하니 패스하고, 목포를 잠깐 보면, 구도심이라고 표현되는 일단의 용어가 나타내듯, 왠지 한물 간듯한 어떤 공간이 있는데, 이 공간을 둘러싼 욕구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직업윤리에 소홀한 손혜원이라는 인물이 등장하게 되는 것.
단기간에 개발을 통해 이익을 보고자 하는 자본과 개발업자들은 어차피 장사도 되지 않는 '구도심'을 싹 밀고 거기다가 아파트 단지 화끈하게 꽂아놓고 싶었겠다. 당연히 이들은 돈도 있고 기술도 있고 밀어부칠 제반 여건도 있다. 게다가 쭉쭉 올라간 아파트에서 살아보고픈 사람들의 욕구마저 자신들의 편이다.
이러한 욕구가 충분히 구도심을 연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존재했으리라 추정되는데, 이건 다른 지역들, 예를 들면 광주나 진주 같은 경우를 보더라도 충분히 납득이 된다. 광주광역시가 이미 아파트 거주비율이 전체 가구의 70% 이상이라고 하고 진주 혁신도시는 아예 아파트 단지로 채워버리는 실태가 그 추정의 근거다. 아파트는 근대의 지체를 탈피해 현대화로 진입하는 입구로 지역에 다가간다.
반대로, 구도심을 어떤 형태로든 '보존'하고, 자생력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일련의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은 돈도 없고 기댈 언덕도 없다. 게다가 주변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이들에게 손을 내밀 이유가 없다.
그런데 일정한 조건이 형성되었을 경우, 예를 들어 목포 구도심처럼 보존지구 지정되고 주요 건물들이 등록문화재로 등록되면 해당 건물 소유주나 사용자에게는 일정한 수혜가 돌아간다. 그렇게 되면 이 수혜를 목적으로 건물의 매입등이 이루어질 수 있고, 손혜원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후자의 경우가 전자의 경우, 즉 확 다 쎄려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아파트고 뭐고 개발 해서 이윤을 남기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후자가 문화적 유산을 이어받아 보존하는 게 목적이라면, 여기엔 보다 장기적인 구상이 결합되어야 한다. 예컨데 지역문화보존의 계획, 지역시민사회와 보존을 위한 연계, 중앙정부가 일정한 책임을 질 수 있는 장치 등. 이게 있을 때 전자와 후자의 차이가 생긴다. 없으면? 그건 시기상의 차이, 즉 투기냐 투자냐의 차이일 뿐 근본적인 성격이 바뀌진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당장의 개발이익을 노리는 전자와 장기적 보존계획이 제대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후자의 차이는 없고, 좀 더 가지고자하는 욕구가 상대적으로 단기냐 장기냐의 시차를 두고 만족되는 점에서 형식이 달라질 뿐이다.
여기에 결합되는 또다른 측면에서의 욕망들이 있다. 박지원의 경우, 손혜원을 두둔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목포가 지역구도 아닌 손혜원이 이렇게 목포를 위해 애쓰는데 목포가 지역구인 당신은 뭐했냐는 목소리가 나오자, 박지원측은 문화재지구지역 결정이나 이를 위한 제도 마련에 힘쓴 게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더니 이 사건 관련 언론사의 인터뷰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면서 개인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는 데 활용한다.
그러더니 한 인터뷰에서 박지원은 "돈 있는 분들은 여기(목포) 와서 투자 좀 해라. 지금 목포에 빈 집이 많다"는 소리까지 했다. 손 의원 덕분에 해당 지역의 주택거래가 활성화되었다고 칭찬까지 했다. 투기심리를 자극하는 건데, 이건 목포에서 투기 좀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까지 건드린다. 서울 돈이 들어오면 우리 집값도, 땅값도 오르겠거니... 이 때 우리도 좀 질러야 하겠거니...
한데, 목포는 현재 자기집이 없는 가구의 비율이 43%에 달한다. 이 상황에서 외지인들이 돈 싸들고 들어와 투기/투자를 하면 집값은 올라가고, 집값이 올라가면 서민들의 내집마련은 점점 더 요원해진다. 박지원이 목포에 빈 집 많으니 서울 사람들이여, 돈 짊어 지고 와서 집 좀 사라, 이럴 이야기할 상황이 아니라, 빈 집이 남아 돈다는데 어째 주택 자가보유율이 기껏 57%밖에 안 되는지에 대해 먼저 머리를 좀 싸맸어야 하는 게 아닌가?
결국 어떤 욕망의 분위기, 그리고 그 욕망을 어느 정도는 현실화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일으켰고, 이번 사건을 통해 이득을 보고 싶어 하고, 그런 사람들을 기반으로 정치를 하는 정치인의 준동이 이번 사건을 종으로 횡으로 얽고 있다. 모든 건 화려한 도시를 열망하는, 혹은 그 도시에서 돌고 도는 돈을 열망하는 마음과 닿아 있다.
다시 원래의 문제의식으로 돌아와, 만일 예천이나 목포가 저 경북 산골짜기 어디메나 혹은 전남 바닷가 근처가 아니라 서울의 한 구에 속하는 곳이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자. 사안은 상당히 다른 측면에서 발생하거나 풀렸을 거라고 보는데, 예컨대 예천군의원이 벌인 수준 미달의 사태는 아예 벌어지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벌어졌더라도 동네사람들끼리 모여 유야무야 대충 얼버무리고 말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않았을 거고.
목포 구도심의 문제는 어땠을까? 이건 별로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건 돈이 걸린 문제고, 젠트리피케이션이 횡행하는 가운데 건물을 사려고 하는 자들, 건물을 산 자들, 건물을 가지고 농간질 치는 자들의 상당수가 손혜원 같은 '선의'를 이야기하면서 투자/투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그 자리에서 돈을 빼먹는 건 알뜰하게 빼먹고.
문화유적을 지키겠다는 손혜원의 '선의'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는 사실 객관적 기준을 설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손혜원이 이래저래 목포 구도심에서 건드린 건물이 물경 20채가 있다는 정도로 커져나가는 사건의 추이를 보면 이 건은 단지 '선의'를 믿는 수준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다.
웃기는 건 이 건이 터진 지역이 목포다보니 이렇게 잘했냐 못했냐 하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는 거다. 서울이었으면? 이건 누가 뭐래도 장사한 것일 뿐이다. 이게 오늘날 서울과 지역의 차이다. 오죽하면 똑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선의냐 아니냐를 따지게 되나?
결국 이 두 사건에서 향후 나와야 할 대책은 서울 이외의 지역을 그대로 놔 둘 것이냐로 귀결되어야 한다. 단지 정치관계법 좀 바꿔서 비례의석을 높이거나 기초의원정당공천제를 폐지하여 만악의 근원을 잘라내자는 수준에서 예천 건을 끝내서는 안 된다. 또한 손혜원이 투기를 했냐 여부를 따져 처신불량 내지는 공직윤리위반 등 개인의 비위문제로 목포 건을 끝내서도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이 '서울지상주의', '서울중심주의'로 인해 지방을 계속해서 변방의 끝자락으로 치부하는 현실을 극복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끝없는 지방의 '서울-되기'의 욕망을 자조, 자주, 자립의 틀로 바꿔낼 것인가? 이 두 사건은 이렇게 공통의 과제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