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법을 뒤집는 운동을 준비하며...
비례성 강화를 통한 대의기구 재구성을 목표로 열심히 뛰는 분들이 많이 있다. 이즈음 요구되는 비례성 강화의 방식은 대충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수렴되는 것으로 보인다. 오래전부터 이 운동에 직간접적으로 함께 해 왔던 입장에서, 지금은 휴지기에 있지만, 나는 이 운동이 성공하기를 학수고대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바람과는 별개로, 비례성이 강화된 공직선거법 개정은 향후 장시간 요원할 것이며, 혹시 일부 개정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정치세력구도 하에서는 병아리 눈물에 버금갈 정도로 찔끔 수준에 머물 것임이 확실하다.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소선거구 승자독식 구조가 자리잡혀 있던 나라에서 비례성 강화된 형태의 선출체제를 만드는 건 희귀사례이다. 한국의 경우에, 지역할거를 통해 이득을 보고 있는 거대 보수양당의 체제가 공고한 이상, 비례성을 강화하는 선거체제는 이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저지된다.
예전부터 문제제기를 해왔던 거지만, 공직선거법 개정보다는 정당법 개정이 더 쉽고 빠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믿는데, 이상하게도 정당법개정에 대해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이슈화하지 않고 있다. 보수정당이야 정당법체계가 바뀌게 된다면 다양한 측면에서 손실이 우려될 수 있으니 그렇다쳐도, 진보진영이 정당법에 대해 소극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물론 공직선거법과 마찬가지로 이 법들이 개정되면 진보진영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비례성 강화를 위한 공직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질 경우 진보진영만이 제도정치권에 진입하는 것이 아니라 극우 역시도 같은 효과를 누리기 쉬워진다. 정당법이 개정되면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이 쉬워지는 것만이 아니라 극우정당을 만드는 것도 쉬워진다. 그런데 왜 굳이 공직선거법이며 정당법을 개정하자고 하는가? 그건 다름 아니라 그것이 소위 '민주주의'의 방식으로 적합하며, '공화주의'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향후 정당법 개정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겠다. 앞으로 현행 법체계를 분석 및 비판하면서 정당법의 대안적 형태를 제시할 것이다. 물론 결론은 완전히 정해진 것이 없고, 현재 가지고 있는 내 생각이 변화될 수도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정당법이라는 것 자체를 폐지하자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향후의 논의과정에서 많은 의견을 수렴하여 다듬어지게 될 터이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것은, 현행의 정당법체계에서는 결코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공론의 장으로 나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계급정당의 건설이나 부문 또는 지역정당의 건설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따라서 이러한 가능성들을 현실화시키려면 정당법을 바꾸는 건 사활을 건 문제이며, 이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공직선거법 백날 바꿔봐야 비례성 강화는 실질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은 조직적 역량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므로, 일단 현상과 이론의 측면에서 정당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고자 한다. 다른 기회에도 누차 장담해왔던 것이지만, 내 계산으로는 공직선거법을 바꾸는데 들인 노력의 100분의 1만 들이면 정당법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투입 대비 산출이 매우 분명할 것으로 보이는 마당에, 이걸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간혹 정당에 소속된 분들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하지만, 입장이야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방식 또한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논의가 광장으로 드러나고, 이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어야 나중에 뭔가 일이라도 만들어볼 여지가 생기지 않을 것인가?
공직선거법 개정운동을 하시는 분들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본다. 그럼 게으름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일을 시작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