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플러스기고-새로운 전망의 노동정치를 설계하자(6.20)
▲ 사진 : 노동정치연구소 홈페이지 |
상식적 중도보수가 국정 책임지라는 유권자들의 판단
이번 선거는 말 그대로 원사이드하게 진행되었고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수구세력과 중도보수세력의 전투는 결국 수구세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퇴장명령으로 막을 내렸다. 냉전수구세력에 대한 가차 없는 대중의 심판이었다. 달리 해석하면 한국사회의 다수 유권자는 상식적 중도보수에게 국정을 책임지라고 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절대다수 유권자는 다만 교과서적 차원에서 인정될 수 있는 보수적 안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수구세력은 생존역량을 발휘하면서 재구성될 것이고, 수구가 수행하는 약간의 탈색을 용인하면서 정치구도는 보수양당체제로 급속하게 전환될 것이다.
수구의 전멸은 안타깝지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인데, 그들의 생존역량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김진태의 말처럼, 이번 선거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철벽의 30%가 수구의 뒷배가 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저들의 절치부심은 밑천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지금 걱정해야 할 것은 갈 곳을 잃어버린 노동중심 진보정치다.
이번 선거에서 노동정치는 총체적 난맥을 보였다. 대중들에게 ‘노동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과정도, 대안도 존재하지 않았다. 선거의 주체였던 진보정당들은 노동정치를 부각시키지 못했다. 원내정당인 정의당은 노동정치의 가치를 부각하지 않았고, 민중당은 주요 거점지역에서 몰락했으며, 노동당은 유효한 선거운동마저 진행하지 못했다.
정당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주노총을 비롯한 대중조직 역시 별다른 정치행보를 보이지 못했다. 그동안 노동계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문제를 비롯한 각종 노동현안을 주도하지 못했다. 선거가 닥칠 때까지 정부와 여당이 짜놓은 프레임을 따라잡기에도 벅찬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선거가 임박하여 정책협약 이상의 의미가 없는 ‘민주노총 후보’ 전술을 진행하는데 그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노동정치는 아예 선거과정에서 실종되었고, 그나마 노동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세력과 인물들은 여지없이 패퇴했다. 소위 ‘영남진보벨트’라고 했던 노동자 밀집지역 중심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형해화되었다. 대공장 조직노동자의 동원을 전제한 선거전술은 더 이상 가능성이 없음이 확인되었다. 1997년 이래 추진되어온 노동자 정치세력화, 좌파적 진보정당의 제도권 진출이라는 노동정치의 과제가 벽에 부딪혔다. 아니 더 신랄하게 말하면, 1997년 이래 이어졌던 대공장 조직노동을 인적, 물적 기반으로 했던 노동정치의 어떤 전형은 이번 6.13지방선거로 종말을 고했다.
지난 세월 동안, 노동정치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면서 보수정치와 질적으로 차별되는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구태의연하게 노동정치가 필요하다는 당위만을 앞세운 채, 조직노동의 참여를 당연한 조건처럼 전제하는 정치활동에 머물러 왔다. 2008년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이래 노동정치가 혼선을 거듭하였고, 9년에 걸친 수구정권의 반노동적 국정농단, 통합진보당 해산 등 노동정치 전반이 감당하기 어려운 난국들이 있었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노동정치는 독자적 정치활동의 역량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대안부재와 대의실종이라는 자멸의 길을 걸어왔다.
노동정치의 한 시대 종언 : 노동정치의 방식과 주체에서
우선 언제부터인가 진보정치세력 안에서 노동정치의 대의에 대한 논의가 실종되었다. 왜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중요한지, 노동정치가 확인해야 할 당대의 계급적 과제가 무엇인지 등에 대한 논의가 지난 수년 동안 과거에 비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동정치는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도 스스로를 정비하는 과정을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대의가 실종된 상태에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의 제출은 부재했다. 당장의 현안에 따른 대정부투쟁과 노동관계법 개악저지 투쟁 등은 이어졌지만, 대중이 공감할 수 있는 전망과 대중이 함께 할 수 있는 실천노선은 그다지 확연하게 제시되지 못했다. 물론 수구정권의 집권기에도 철도파업의 승리와 같은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노동정치의 과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과정에서 대중들은 노동정치의 대의에 동의하고 그 대안을 지지할 때 과연 세상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가를 묻게 되었다. 더 적나라하게는 그 바뀐 세상에서 나의 이해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를 회의하게 되었다. 과거처럼 일종의 부채의식으로 노동정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던 대중들은 이제 없다. 대중은 더 이상 당위만으로 지지를 표명하지 않는다. 대중들은 노동정치를 주장하는 세력들에게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달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본 것을 신뢰할 수 있을 때 당신들을 지지하겠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대중의 관점과 요구가 달라졌지만 노동정치의 현실화와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주장하는 정당과 조직은 스스로 변화하지 못했다. 노동정치를 이야기하는 정당 및 정치세력은 촛불로 등장한 중도보수정권과의 차별성을 드러내지 못했다. 노동정치에 대한 희망을 간직한 유권자들에게 보수정당과 구분할 수 있는 변별지점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도보수는 언론으로부터 ‘진보’로 규정되었고, 노동정치를 갈망하는 세력은 그들과 유사한 ‘범진보’로 포섭되면서 유권자들은 양자를 구별할 의미를 찾지 못했다. 이런 틀 안에서 민주노총이 ‘민주노총 후보’ 명단을 발표하고 진보정당이 후보자를 내세운들 노동정치 본연의 의미는 실종되고 오직 선거공학만 남게 되었다. 선거공학만 남은 공간에서는 당연히 이에 익숙한 기득권 보수정당들과 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당선도 불가능하고 존재의 의미를 알리는 데도 실패했다.
중도보수정부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고공행진을 계속하고 있는 과정에서, 특히 전통적으로 노동정치가 수행했던 정치활동마저도 중도보수정부가 대리하는 상황에서 노동정치세력의 입지는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동정치가 가지고 있는 평등, 평화의 세계를 중도보수정부라고 해서 가져다줄 수 없음은 명백하며, 결국 노동정치의 의의와 가치는 계속해서 유효하다. 그렇다면 향후 정국의 방향을 예측하면서, 우리가 처하고 있는 이 시공간이 필요로 하는 노동정치를 어떻게 조립하고 지향할 것인지는 여전히 노동정치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몫이자 책임일 것이다.
노동정치의 패러다임을 다시금 형성해야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동정치의 의의를 다시 확인하고, 현 정부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에 돌입한 지금, 현 정부가 가지고 있는 노동정책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근 논란이 된 최저임금 산입범위 입법화 과정에서 보여주었듯이, 보수정권과 보수정당은 현재의 시장자본주의체제를 구조적으로 변혁할 어떠한 의지도 가지고 있지 않다. 조세의 문제, 복지의 문제, 가계부채 문제, 영세자영업자의 문제, 양극화 문제 등 노동자의 생존이 달려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이 정부가 가지고 있는 한계가 빠른 시간 안에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노동정치는 이처럼 친자본적이며 반노동적일 수밖에 없는 보수정권의 한계와 대별되는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 단지 조합주의에 얽매여 개별 사업장의 현안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장기적으로 노동정치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무엇이며, 그것이 현 정부의 비전과 어떻게 다른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중도보수집권세력과는 확연히 분리정립되는 노동정치의 위상을 정립하는 작업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더불어 더 이상 대공장 조직노동의 동원구조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대공장 조직노동의 필요성이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선거시기에 닥쳐 여기에만 매몰되는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문제가 사회모순의 근본문제임을 환기시켜야 한다. 대중들로부터 승인될 수 있는 정도의 역량을 제시하고 보수정치와 대별되는 노동정치 고유의 비전을 제출할 수 있어야 한다. 대공장 조직노동은 바로 이 비전 안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되 비정규 불안정 노동 전반과 대의를 위한 연대의 기조를 가져야 하며 노동정치가 이를 추동해야 한다.
동시에 그동안의 노동정치에 대한 냉혹한 평가와 면밀한 전망이 제시되어야 한다. 적어도 1997년 이래 이번 지방선거까지, 기존 형식의 노동정치의 부상과 정점, 쇠락과 종언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필요하다. 종래 노동중심 진보정치의 연대연합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이번 선거의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금 통합을 주장하는 흐름이 발생할 것이지만, 지난 시기 노동정치에 대한 엄격한 평가와 반성이 전제되지 않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연대연합 또는 통합의 논의는 구태회귀에 머물고 말 것이다.
물론 노동정치를 왜곡해왔던 불필요한 대립구조는 청산해야 한다. 공장 담벼락을 넘어선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여전히 노동정치의 과제이며, 노동자의 자생적이며 자주적 활동을 통한 지역정치의 복원 또한 지속해야 할 과제이다. 지난 시기 노동정치의 한계와 오늘날의 현실에 대한 냉철한 평가는 바로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라도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 평가의 결과는 패권주의와 조합주의를 일소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이념의 정비 및 인적 청산까지 포함한 것이 되어야 한다.
분열이 문제가 아니라 분열의 이유를 명확히 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문제의 해결은 분열의 이유와 책임을 밝히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정치의 분열과 반목이 어디에서 기원한 것이며,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과정을 밟는 것이 시급하다. 또한 보수정치세력의 재편과 기득권 강화공세에 맞서 노동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실천경로와 전망이 대중들에게 제출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정치세력은 전열을 정비하고 새로운 시대의 노동정치를 실행해야 할 시급한 과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이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노동정치를 고민하는 제 세력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하자.
지방선거 이후 보수정당 간 이합집산은 가속도를 낼 것이다. 특히 형식상의 다당제 체제는 종식되고 명실공히 양당제 체제로 회귀할 것은 분명하다. 거대 보수양당이 정치를 분점하는 과정에서 노동정치의 위상은 더욱 곤궁해질 수 있다.
출발을 미루면서 시간을 소모하는 동안 노동정치는 보수정치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 뿐이다. 더 늦기 전에 결연한 각오를 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