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없는 세상

1984년 촉발된 'KBS 시청료 거부운동'은 실질적인 반정부투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운동이 내용적으로는 반정부투쟁이었음에도 형식적으로는 일종의 소비자운동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땡전뉴스'의 오명을 뒤집어 쓴 KBS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운동은 오랜 기간 이어졌고, 실제 1987년 6월 항쟁의 저변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가능할 정도다. 기록에 따르면 KBS의 시청료 수입이 1984년에는 1256억원에 달했는데, 1985년 1196억원, 1987년 1012억원, 급기야 1989년에는 790억원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렇게 광범위하게 대중적 운동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것은 신군부정권을 두렵게 할만도 했다.

 

정권에 저항하는 차원에서 벌어진 KBS 시청료 거부 운동은 민주화세력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보수단체들 역시 때에 따라선 KBS 시청료 거부운동을 전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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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당시 보수진영에서 벌인 시청료 거부 운동 길라잡이 만화다. 매우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이 내용은 형식적으로는 과거 전두환 정권 당시 벌어졌던 시청료 거부 운동의 내용과 매우 흡사하다. 이렇게 보면 갑자기 KBS가 불쌍해지기도 하는데, 언론이라는 것이 어차피 잘해야 본전이고 건수 생기면 양쪽에서 주어 터지는 것이 숙명이니 일단 그러려니 하자.

 

2013년 연말, KBS 수신료 인상이 사회적인 논의과정을 제껴버리고 이사회에서 속사포처럼 통과된 후 또다시 시청료 거부운동이 시작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1981년 정해진 수신료가 무려 한 세대가 지나도록 오르지 않고 있다는 것이 사건의 발단이긴 하다. 소위 '합리화'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것도 그런 이유다. 사실 민주노동당 정책위에 있을 무렵 수신료 인상 문제를 매우 긍정적으로 검토한 바 있고, 일정한 전제 아래 인상에 합의한 적이 있다. 그 전제 중 하나는 방송 수신료 수익금 중 EBS로 가는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안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수신료 인상안을 발표하면서 KBS가 중앙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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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고 우측에 박스로 처리된 항목들을 보면 도대체 KBS라는 방송사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또한 하고 있는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우선 전제가 가관이다. KBS는 10가지 '약속'을 제시하면서 그 조건으로 "수신료가 인상되면"을 달고 있다. 그런데 그 약속들이 과연 수신료가 인상되어야만 할 수 있는 내용들인지 모르겠다.

 

1번 항목에서 아예 말문을 막아버리는데, 거기엔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동반자가 되겠습니다."라고 되어 있다. 앞 뒤를 붙여보자면, "수신료가 인상되면 [그 다음에]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동반자가 되겠다"는 거다. 뭐하자는 걸까? 국가 기간방송의 역할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었나? 그럼 지금까지 수신료가 안 올라서 방송편성을 박통 마음에 드시게 만들었다는 건가? 다른 항목 역시 마찬가지인지라 더 들여다볼 필요도 없고.

 

상황이 이러다보니 불만이 터져나오는 건 당연한 일인데다가 수신료 납부 거부운동이 일어날 움직임이 보이는데, 그건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그런데 수신료 거부운동은 운동이고 뭔가 근본적으로 이 시점에서 달리 생각해볼만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다. 물론 개인적인 차원에서.

 

지난 봄에 거처를 옮기면서 TV를 없애버렸다. 전에 있던 TV는 연식이 좀 된데다가 브라운관 TV라 굉장히 크고 무거웠다. 하지만 10년 넘게 사용한 물건임에도 화질이라던가 기타 성능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자칭 타칭 축덕축에 드는 지경인지라 노상 축구경기를 시청하던 입장에서 TV가 없어진다는 게 굉장히 아쉽기는 했지만 큰 결심을 하고 동거인과 합의를 보았다. 해서 과감하게 TV를 치워버렸다.

 

처음 한 동안은 집에 있을 때마다 뭔가 허전한 느낌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곧 익숙해졌다. 제대로 보지도 않으면서 노상 켜놓았던 TV가 없어진 대신에 책과 이야기가 시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술에 쩔어사느라 정신이 나갔지만. 아무튼 TV가 없어진 후 알게 모르게 여러 종류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이 확보되었다. 뿐만 아니라 전기료가 절감되었다. 계산을 해보니 TV가 잡아먹는 전기료도 상당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더 좋은 것은 시청료를 내지 않아도 되고, 채널을 돌리다가 종편을 볼 일도 없어졌다는 거다. 어떤 이들처럼 예능프로그램을 즐겨보던 것도 아니고 해서 아쉬울 것이 없고,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TV 프로그램 이야기가 아무리 넘쳐나도 기왕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는 지경이라 약간의 소외감은 있을지언정 큰 불편함도 없다. 게다가 TV가 있었다면 생각할 수 없었던 공간의 여유라는 것까지 생겼으니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일거양득 수준이 아니라 일거 사,오득 정도의 효과가 있었던 셈이다.

 

시청료 거부운동이 벌어진다면 그것도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이다. 보다 광범위하게 대중운동으로 확산되면 더 좋겠다. 여기서 운동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키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집에서 TV를 치워버리는 사람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TV 시청하는 것 말고 더 재밌는 일들이 많이 있을 테니까. 나 대신 놀아주는 사람들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것이 도대체 어떤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지 고민해본 사람들은 이 참에 TV를 없애보는 것도 생각해볼만 하다. TV가 없으면 시청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건 뭐 너무 당연한 이야긴지라 덧붙일 필요도 없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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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12 16:12 2013/12/1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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