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성과 Boxer
엊그제 토론회의 중심 주제는 익명성이었다. 발제를 맡은 어느 대학 교수님께서는 익명성이 온라인에 존재하는 만악의 근원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1977년 뉴욕 대정전 사태의 아수라장이었다. 이 교수님의 주장은 만일 뉴욕의 시민들이 서로를 잘 알고 있었더라면 그렇게 무법천지의 지옥도가 펼쳐지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다. 온라인도 마찬가지로 자기의 실명을 걸고 글을 쓰게 하면 최진실 같은 악플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것이 이분의 판단이다.
그리하여 도출되는 결론은 악플이 자살에 사용된 흉기였다는 것. 여기서부터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압박붕대부터 치워야지. 압박붕대 제조금지법, 압박붕대 판매자 처벌법, 뭐 이딴 거 만들자는 소리는 왜 안할까? 해서 익명성에 모든 사태의 원인을 돌리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게 된다고 누차 주장했으나 씨도 먹히지 않았다. 게다가 한나라당에서 왔다는 여의도연구소 무슨 연구원은 말의 맥락도 파악하지 못한 채, 사람이 죽었는데 압박붕대를 운운하다니 이것은 죽은 사람을 모독하는 행위고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언성을 높힌다. 이뭐병...
발제자가 이야기한 1977년 뉴욕 대정전사태를 잠깐만 보자. 불과 25시간의 정전 동안 뉴욕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단다. 당시 뉴욕 인구가 1000만이었는데, 약탈된 점포가 2000개가 넘고 당시 돈으로 10억불의 손실이 발생했고, 몇 백건의 방화와 절도가 이루어 졌다고 보고되고 있다. 왜 뉴욕의 시민들이 불과 하루 남짓 정전된 상황 속에서 이렇게 야수로 돌변했는가를 학자들이 조사했더니 그 이유가 바로 익명성 때문이었다는 거다. 이게 이번 토론회 발제자께서 예를 든 사건이다.
문제는 바로 이렇게 '익명성'과 같은 단일한 원인으로 사태의 전말을 파악해버림으로써 정작 밝혀야 할 근본적인 원인은 묻혀버린다는 거다. 1970년대 뉴욕의 상황이 단지 익명성이라는 하나의 조건으로 인해 밝은 날 거리에서는 온화하고 점잖던 시민들을 깜깜한 밤거리에서는 늑대인간으로 돌변시켰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을만큼 간단한 것이 아니다.
소위 전후 호황기를 누렸던 미국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기침체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다. 다들 알다시피 이 시기에 베트남 전쟁이 터지고 히피문화가 등장하며 세계적으로 신좌파운동의 파고가 일어나게 된다. 미국의 입장은 어땠을까? 2차 대전과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적어도 군수산업분야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산업체계가 호황을 거친 후 베트남이라는 호재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의 정치와 경제는 위험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 당시의 상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하나가 다름 아닌 Simon & Garfunkel의 불후의 명곡 Boxer라는 노래다. 1970년에 나온 이 노래의 가사를 들여다보면, 노가다라도 뛰기 위해 도시로 온 청년이 뉴욕의 한 귀퉁이에서 내기권투선수가 되어 처참한 나날을 보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고, 피를 빨아먹는 것 같은 링 위를 떠나고 싶어했다. 그러나 갈 수가 없다. 이 노래 가사를 한 반항아의 철딱서니 없는 청춘의 일기라고 넘겨버리기엔 당시의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았다.
70년대를 들어서면서 가시화되는 불황의 국면, 고층빌딩군 어딘가에서 보통사람이 평생써도 남을 돈을 하루에 거래하는 사람들과 그 도시 어딘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몇 푼의 파이트머니를 받기 위해 피를 흘려야 하는 빈민들 간에 벌어지는 계급적 균열, 인종분리와 배제의 상징이 되어버린 뉴욕 할렘(Harlem)에 버려진 아프로-아메리칸들의 분노와 좌절. 이러한 문제들이 쌓이고 쌓이던 1977년 어느날 그만 뉴욕에 정전사태가 벌어졌던 거다. 1000만이 몰려살던 도시에서 익명성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이라고 해서 평일 대낮에 마빡에다가 민쯩 붙여놓고 사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가슴에 맺혀 있는 소외감과 세상에 대한 저주. 거기에 정전사태는 하나의 발화점이 되었던 거다.
익명성에 기대 뉴욕 정전사태를 판단할 때, 흑인들을 차별했던 그 사회의 부조리, 그리고 이런 차별을 방관하거나 조장하면서 이익을 추구했던 인사들의 범죄적 행위들, 빈민들에 대한 구제와 사회보장의 인프라를 조성하는데 게을렀거나 오히려 이를 방기했던 사람들의 무책임 같은 것들은 논의에서 사라진다.
발제자처럼 익명성에 중점적인 원인을 두게 되고, 따라서 아주 간단하게 익명성만 없어지면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심각한 위험성을 가지게 된다.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문제의 본질은 덮어지게 되고, 그 결과 원인제공자는 책임에서 자유롭게 되는 반면 언제든 피해와 고통을 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책임까지 떠안아 버리게 되는 결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에, 비무장지대에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 하나가 있었을 때, 언론과 정치권에서는 이걸 "게임 중독"의 문제로 전가시키기에 바빴다. 온라인 게임에 빠진 한 병사가 현실과 가상공간을 분리하지 못함으로써 그 경악할 사건을 저질렀다는 거다. 얼마나 간편한가? 바로 이 과정에서 한국의 분단상황이 한 젊은이, 아니 수많은 이 땅의 젊은이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는지, 분단상황을 핑계로 자행된 인권의 억압과 유린이 결국 어떻게 비수가 되어 자신들을 찌르게 되었는지는 감추어졌다. 그 사건으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별'이나 '말똥'이 있었다는 이야기 들어봤는가? 책임져야할 자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보호되어야만 했던 젊은 청춘들만 불쌍하게 되었더랬다.
온라인의 익명성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려는 시도는 그래서 위험한 거다. 그리고 이렇게 문제를 단순화시킴으로서 책임져야할 자들의 책임을 면피시켜주려고 하는 사람들은 더 위험한 사람들이다. 오늘 온라인의 익명성에 대해 얼굴 붉혀가면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정작 가장 완벽한 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는 싸이월드 같은 곳을 매개로 벌어지는 각종 문제점에 대해선 철저하게 입을 닫는다. 많이 치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퓃~!
Boxer라는 제목을 보고 임요환인 줄 알고 들어온 1人
잘 보고 갑니다.
동조자/ 헤... ^^;;; 임요환과 Boxer의 관계를 잘 모르는 1人이었습니다요... ㅠㅠ